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112

가족을 치료하는 것

92세 외할머니가 폐암 뼈전이를 진단받으셨다. 전신 통증이 너무 심해 근처 병원에 갔다가 다발성 골절이 발견되어 여러 검사를 하셨고 폐암의 뼈전이가 그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통증이 심해 밤에 잠을 잘 못 주무셔서 입원이 필요할 정도였다. 암환자의 통증 조절. 그건 나의 전공이니까 내 환자로 입원하기로 하였다. 할머니는 본인이 암이라는 걸 모르신 채 손녀가 있는 병원이니까 입원하신 걸로 알고 계신다. 척추 갈비뼈 여기저기 전이가 되어 있고 폐에 물도 고이기 시작한다. 언제 생긴 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앞으로 얼마 안남으신것 같다. 전이 정도도 심하고 늑막에 물도 차기 시작하는 걸 보니, 곧 숨도 차실 것 같다. 가족들은 조직검사나 항암치료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암이라는 사실도 ..

내가 생각하는 명상의 과학적 근거

이건 순전히 내가 오늘 처음 명상 한번 따라해보고 나서 느낀 점이므로 진짜로 과학적 근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명상을 시작하면 척추를 곧추 세우고 바른 자세로 앉아야 한다. 나는 고관절이 안좋기 때문에 양반다리로 앉는 것보다 의자에 앉는게 편하다. 그렇게 자기에게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명상의 시작은 숨을 들이 마쉬고 내쉬고 하는 자기의 호흡을 느끼는 것이다. 천천히 들숨 날숨을 쉬면서 그렇게 숨쉬는 자신을 느낀다. 그리고 경직되어 있는 어깨, 입술근육, 머리근육, 그렇게 나도 모르게 긴장되어 있는 근육을 이완시키기 위해 부위별로 생각을 집중하면서 호흡을 계속한다. 계속 숨을 편안히 쉬면서 자기 신체 곳곳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훈련을 하는 과정인 것 같다. 그렇게 10분 이상 숨을 쉬면서 호흡을 고..

마음근육 만들기 - 오늘 명상프로그램 시작!

오늘 명상 프로그램을 시작하였습니다. 앞으로 매주 화요일 12시부터 4시까지 두번의 세션을 6주간에 걸쳐 진행합니다. 총 22명의 환자와 보호자가 신청하셨습니다. 암환자는 몸도 마음도 고단합니다. 고단하고 외롭고 힘든 마음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야 합니다. 명상 프로그램을 통해 그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병원의 공식적인 지원도 없고 관심있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해서 준비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했고 어려웠습니다. 마음 속으로 괜히 시작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나 잘 할 걸, 긁어 부스럼이다, 솔직히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엄마와 함께 부인과 함께 환자들은 약간 어색한 분위기에서 첫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짝을 지어 잠시 대화를 하고 서로가 ..

임종시간

이제 환자가 돌아가시는 시간이 언제인지 알 것 같다. 24시간 내, 48시간 내, 72시간 내 돌아가실 것 같다는 나의 느낌은 거의 맞는다. 그래서 환자와 가족들을 단속한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할 말 있으면 다 하시라고, 볼 사람있으면 다 만나시게 해 주시라고. 환자는 아직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은데 왜 그러시냐고. 가족들은 부인한다. 재산문제, 법적인 문제 그런 것도 다 정리해 놓는게 좋겠다는 나의 썰렁한 말에 경악을 금치못하면서도 내가 이렇게까지 나오면 가족들이 감상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린다. 내 병이 치료되지 않는 암이라는 사실을 알 때부터 환자와 가족은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이 삶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치료 가능성이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치..

퇴원해서 있을만한 병원

유방암이 복막으로 전이된 환자. 어떤 암이든 복막 전이가 진행되면 복막과 장이 유착되어 장 운동이 원할하지 않다. 복막증이 진행된 환자들은 장이 막힌 건 아닌데 꼭 막힌 사람처럼 잘 먹지 못하고 먹으면 토하고, 가스도 잘 배출되지 않아 콧줄을 끼우고 있기도 한다. 유방암 복막 전이는 그리 흔하지는 않은데 이 환자는 복막증이 잘 치료되지 않아 제대로 못 먹고 지낸지가 수개월.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먹고 기운내서 항암치료를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두꺼워진 복막때문에 영양실조로 돌아가시게 생겼다. 60대 초반의 환자는 의식도 맑고 본인의 상황도 잘 이해하고 계시고 우리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받으신 분이라, 어떻게든 치료를 받고 좋아지고 싶어 하셨다. 예전에도 힘든 위기의 시간을 항암치료를 하여 넘기신..

왜 영양제도 안 주시나요?

임종을 기다리는 환자. 가족들도 긴 병에 많이 지쳤다. 더 이상 검사하지 말고 편안하게 돌아가셨으면 한다고 하셨다. 나도 그러는게 좋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엊그제부터 수액을 다 끊었다. 임종 직전에는 수액을 끊는게 환자에게 편안하다. 임종 순간에 각종 분비물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에 환자가 힘들다. 어제부터 혈압이 떨어지더니 아침에 회진을 도는데 혈압이 70-80mmHg 정도 밖에 안된다. 내일쯤 돌아가시겠구나. 진통제만 남기고 모든 약을 다 중단하였다. 진통제만 약간 증량하였다. 동공이 작아졌지만, 그냥 그대로 두기로 했다. 나는 환자 상태를 살피고 별 말 없이 방을 나섰다. 남편이 따라나온다. "영양제도 안 주시고 너무하시는거 아닌가요? 아무리 죽을 사람이라고 하지만..." "영양제나 수액..

나에게는 예정되어 있던, 가족에게는 준비가 안된

연수가신 손주혁 선생님이 끝까지 진료하시던 환자. 나를 처음 만난 건 재발된 유방암으로 치료를 9번 하고 CT를 찍고 결과를 보러 온 날이다. 예전에 만난 기억이 있는,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처음 진료를 보는 날, 나는 환자에게 폐전이가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야 했다. 수술 전 항암화학요법을 하다가 환자가 자의로 치료를 거부하였고 몇달뒤 폐로 전이가 되어 병원을 다시 찾으셨다. 다행히 첫 치료에 반응이 좋은 듯 싶었고 9번까지 항암치료를 한 후에 휴지기를 가질 예정이셨다. 그런데 9번 항암치료 후 찍은 CT에서는 전이가 다시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첫 면전에서 병이 나빠졌다는 소식을 전해야했다. 다시 항암치료를 하자고 했더니 환자가 몸이 아직 힘들다면서 조금 더 쉬었으면 한다고 하신다. 난 2주후..

사실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샀어요....

외래에서 환자랑 사진을 찍고 싶을 때가 있어요. 힘들었던 항암치료를 꿋꿋하게 마치고 '이제 안녕, 만나지 맙시다' 그렇게 빠이빠이 하며 헤어질 때. 재발해서 상심하고 속상하고 두렵지만 열심히 치료받고 잘 이겨내겠다며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할 때. 입원해서 고생많이 하고 겨우 퇴원했는데, 컨디션 많이 좋아져서 외래진료실을 당당하게 걸어들어 오실 때. 두 내외가 손잡고 다정하게 외래에 오실 때 아이와 함께 항암치료 받으러 온 엄마.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함께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샀어요. 요즘 값싸고 좋은 디지털 카메라도 많은데 왠 폴라로이드냐구요? 제가 아무리 사진 찍으면 뭐해요. 함께 공유해야 하잖아요. 근데 제가 그거 저장하고 따로 인화하고 다음에 만날 때 챙겨서 사..

저보다 더 힘든 환자에게

환자의 경과기록을 보다보면 환자와 깊은 대화를 통해 환자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여러 임상과 예를 들면 정신과, 방사선종양학과 뿐만 아니라 병동 간호사, 사회복지팀, 호스피스팀 등의 기록을 보면 알수 있다. 나는 기록을 보고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알고 있다는 티를 내지는 않는다. 다만 그 모든 분들께 조용히 감사드린다. 그들에 대한 환자의 반응도 내가 아는 모습과 다른 경우가 있다. 좋아지지 않는 병 때문에 환자가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고 최근 항암치료에 대한 반응도 없어서 내심 힘들게 호스피스 얘기를 꺼냈다. 제가 환자분 치료를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전 환자의 컨디션을 보고, 가능한 유용한 약이 있으면 항암치료에 도전해 볼거에요. 그런..

입원했으나 좋아지지 않는...

환자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입원한 후 좋아지기는 커녕 점점 더 나빠지는 환자들이 있다. 요즘 입원 분위기 왜 이러지? 자궁경부암 할머니는 최근 1-2주일 사이에 한쪽 팔, 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이 생겼는데, 외래날짜가 얼마 안남았으니 그때 말해야하지 하고 외래날 맞춰서 오셨다. 다른 만성질환이 많아 가능하면 입원을 싫어하신다. 당일로 왕 푸쉬를 해서 MRI를 찍었다. 오른쪽 뇌로 전이된 종양이 보인다. 감마나이프를 했지만, 마비된 왼쪽 팔, 다리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평소 치료 의지가 엄청 강하신 분이었는데, 왜 병원에 빨리 오시지 않았을까? 집이 전라도 저 먼 곳에 있어서 그랬을까? 누워있는 사람은 지금 당장은 제아무리 컨디션이 좋아 보여도 금방 컨디션이 쇠한다. 폐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