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112

임상연구, 별로 관심없었는데...

누구는 뇌로 전이되고, 누구는 뼈로 전이되는지 아직 잘 모른다. 특정 장기로 전이되는 경향이 있는 유전자가 있다는 정도가 알려져 있지만 그걸 실재 임상환자를 대상으로 검사하기에는 아직 연구는 초보단계이다. 설령 검사를 해서 결과를 얻었다 해도, 그걸 예방하기 위해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의학의 수준에서는... 난소암 복막전이. 소장, 대장을 감싸고 있는 복막. 거기에 전이가 되면 장 운동이 원할하지 않다.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되고 자칫 가스가 차서 배가 빵빵해서 횡경막을 치밀어 올리니 밥을 조금만 먹어도 숨이 차다. 대변도 잘 못 본다. 병이 잘 조절되지 않으면 복막에 있는 암세포가 복수를 만들어낸다. 복수를 빼 주면 일시적으로 편안하지만, 체내 전해질이나 알부..

명상 프로그램 시작!

본격적으로, 대대적으로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암환자를 대상으로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정말 도움이 될지 등을 타진해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달 시범적으로 명상 프로그램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대상은 주사 항암치료를 받지 않는 전이성 암환자입니다. 먹는 항암제를 드시는 분이나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경과관찰하는 분들이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스테로이드를 드시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02-2228-8182 안수림 간호사에게 전화하셔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아직 정확한 날짜는 못 잡았는데요 신청하시는 환자분들의 상황을 점검하고 11월 중순경 시작하려고 합니다. 비용은 무료입니다. 매주 1회. 한번에 1시간 30분에서 2시간. 6주 혹은 8주 프로그램이 될 것입니..

병실을 옮깁시다

그녀는 자신이 곧 죽을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날짜가 거듭될수록 불평이 줄어든다. 우리는 그날이 곧 다가올거라는 걸 알지만 서로 입밖에 내지 않았다. 급격하게 나빠지는 병. 지난 금요일 환자를 퇴원시키고 싶었다. 하루라도 집에서 아이들과 지내게 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다. 나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항암치료를 하는 문제에 대해 상의하였다. 문헌에 보고된 반응율은 10% 내외. 그러나 환자는 치료를 해보겠다고 한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까 하루라도 더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컨디션이 그럭저럭 괜찮으니까 해보자.... 그리고 주말을 보냈다. 주말 사이에 얼굴이 더 퉁퉁 붓는다. 항암제를 투여한지 몇일 안되니까 좀 경과를 봐야겠지만, 약이 안듣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오늘 저..

장기입원 할머니

70살을 넘기신 할머니. 내가 할머니를 처음 만났던 지난 7월에는 할머니 몸집이 좋으셨다. 그런데 그때는 통증도 심하고 요로감염이 겹쳐있어 열도 나고 컨디션이 아주 않좋으셨다. 오래된 당뇨로 자꾸 요로감염이 오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열이 나고 힘들고 혈당 조절도 안되는 상태에서 나는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PET-CT를 찍으니 난소암이 재발한 상태. 주요 장기는 아직 괜찮고 목 주위, 사타구니 주위 림프절에 주로 재발이 되어 있으며 일부 허리, 골반뼈에 전이가 확인되었다. 아직 쓸만한 항암제가 남아있고 난소암은 항암제에 반응하여 치료가 잘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 연세가 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항암치료를 해봐야겠다는 욕심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요로감염. 일단 열이 떨어지고..

학생들은 과연...

본과 2학년. 순수한 때다. 예과 때 막무가내로 놀던 습성을 벗어던지고 빡세게 공부하는 걸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2학년. 갑작스럽게 생활 패턴이 바뀌어 여러모로 힘들어하던 1학년 때와는 달리 이제 공부하는 것도 제법 틀이 잡히고 의학적인 지식도 꽤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말랑말랑한 뇌를 가진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나쁜 소식 전하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게 되었다. 다음주 금요일. 나는 실재로 지금 내가 진료하는 환자의 사례를 약간 변형하여 토론 케이스를 준비하였다. 엑스레이, CT, 피검사, 지금 쓰고 있는 약.... 환자의 질병 경과에 대해 의사의 입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와 의사로서 암환자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하는 원칙에 맞추어서 사례를 준비하였다. 그런데 의학적 상태와 독립..

삶과 죽음에는 때가 있는 법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4기 암환자의 중환자실 및 인공기도삽관, 심폐소생술을 해야하는 기준은 직전의 전신상태가 아주 양호했을 때 - 회복의 가능성이 높으므로 치료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앞으로 효과가 좋은 항암제가 남아 있을 때 - 이 고비를 넘기면 다시 치료하여 생존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찬스가 있으므로 최근 시행한 치료와 관련하여 합병증이 생겼을 때 뇌전이 등 치명적인 장기에 병이 없을 때 정도이다. 교과서에도 명확히 기준이 나와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나 나름의 이러한 기준으로 중환자실 입실을 결정하지만 매번 환자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중환자실 입실을 결정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36세 아이가 둘인 자궁경부암 환자. 진단받은지 1년. 처음에는 수술가능한 병기라고 생각해서 수술방에 들어갔다..

마지막 가시는 길

환자들은 밤에 나빠진다. 암환자는 마지막이 가까와지면 예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예상치 못하게 나빠지는 경우도 가끔 있다. 대개 밤에 당직 레지던트가 그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임종이 예상되면 미리 인계를 잘 해서 환자에 관한 상황을 잘 전달하고 이것저것 불필요한 검사를 하기보다는 통증을 조절하고 환자를 주무시게 한다든지 하는 환자가 힘들지 않게 하는 조치를 해 주는게 더 낫다. 뇌출혈 직후 토하면서 흡입성 폐렴으로 갑자기 숨 쉬기 어려워서 일단 인공삽관을 하고 중환자실에도 갔었다. 안정적으로 유지되는데 이렇게 계속 시간이 가겠다 싶었다. 가족들도 조만간 돌아가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환자를 중환자실에 계속 혼자 있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환자를 깨우고 가족들이랑 눈이라도 맞추고 지내다가 가족들 ..

용감한 청춘

멀리 남도 섬에 사는 스무살 젊은이. 4년전에 고환에서 뭔가가 만져져서 수술을 하였다. Embryonal carcinoma (배아상피암). 예후가 좋은 암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3개월만에 처음 찍은 PET 사진에서 전신의 뼈, 양쪽 폐, 온몸의 림프절, 간, 다리 근육 등 전신 여기저기 암이 재발하여 허옇게 조양증강이 되어 있었다. 사진을 보면 헉 소리가 절로 난다. 원발병소는 수술했지만 순식간에 전신전이가 진단된 것이다. 척추에 암세포가 침투하여 골절이 와서 신경증상이 나타나 척추를 바로 세우는 수술부터 하였다. 9번의 항암치료, 다행히 반응이 좋아 자가조혈모세포 이식까지 하였다. 자가조혈모세포 이식을 한다는 것은 자기 조혈모세포를 2번에 걸쳐 추출하고, 아주아주 강한 항암치료를 두 차례 한다음, 모..

사진촬영

2014년에 문을 열 예정인 연세암센터 홍보자료를 위해 여러 종류의 리플렛을 만들고 있나본데 내가 그런 일을 하고 있다. 난 사실 종교적인 심성이 강하지 않고 신실하지도 않다. 우리 병원은 기독교 병원이니 기독교 신자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치료네트워크로 자리잡겠다는 내용으로 교회용 리플렛을 만드라는 오더를 받았다. 환자랑 같이 사진 찍고 리플렛 문구 작성하라는... 자신의 얼굴이 인쇄되고 널리 홍보용으로 쓰이는 리플렛용 사진촬영을 허락하기가 쉽지 않은데 어떤 분께 부탁을 드려야하나 나는 내심 몇일간 고민했다. 처음으로 대장암 간전이 복수를 진단받은 환자. 배가 잔뜩 부르고 숨이 차서 오셨다. 알부민 수치가 2가 안되서 온몸이 퉁퉁 부어있고, 복수가 늑막으로 넘어가서 숨이 차 제대로 누워있지도 못하고 안절부..

호스피스 병원에 대한 나의 몽상들

200-300병상 정도 규모의 작은 병원을 지어서 돈걱정 안하고 환자만 진료하면 되는 그런 병원을 운영할 수만 있다면... (절대 없겠지만) 암환자만 진료하는 병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응급시술이나 첨단 장비를 이용한 검사는 세브란스병원같이 큰 병원과 연계하여 비록 작은 병원이지만 신속하게 연계하여 큰 병원 못지 않은 의료서비스가 제공되고 수액 맞는 보존적 치료, 편하게 쉴 수 있는 쉼터같은, 집같은 보살핌을 주는 그런 병원을 운영하고 싶다. (수익율 백퍼센트 마이너스. 돈 걱정 안하고 보험삭감 걱정 안하고 입퇴원 푸쉬없고...이건 거의 공상수준임) 이 병원에서는 환자가 입원하면 세장의 카드를 준다. 한장은 타로점 카드 한장은 음악다방 티켓 한장은 캐리커쳐 티켓 1> 타로점 카드 나는 예전부터 타로점을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