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206

대신 청탁

환자는전이성 유방암으로 꽤 오래 치료를 받으셨다.좋아지고 나빠지기를 반복하니때론 우울해하고 슬퍼하고 의기소침해 지기도 했지만 매번 꿋꿋히 힘을 내서 다시 치료 받는 분이다.남편과 아들의 돌봄도 극진하여 내심 내가 참으로 존경하는 가족이기도 했다. 의사입장에서마음이 가는 환자였다. 늘 남편 혹은 아들이 환자 진료에 함께 오셨는데최근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오지 않는다. 남편분은 요즘 바쁘신가봐요?최근 들어 병원에 못 오시는거 같네요. 남편이백혈병 진단을 받았어요.지금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어요. 그 다음은 환자가 말을 잇지 못한다. 환자가 울먹이니 더 이상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남편 분 상태는 어떠세요? 담당 선생님은 만나 보셨나요? 내가 물어놓고도 미안하다.지금 내 환자가 그럴 형편은 못되기 때문이..

사랑보다정이 무섭다.사랑은 한순간의 열정 이후 식어버리지만정은 식지 않는다.일단 정이 들면 미워도 버릴 수 없다.욕하고 심하게 말싸움을 해도 등 돌릴 수가 없다.그게 정이다. 나는 내 환자들에게 정이 들어버렸다.예전에는 환자를 보다가 화가 나면 목에 힘을 꽉 주고 말했었다. 미워서.나를 못살게 굴고내 말 안듣고그랬던 그들이병이 나빠지고 기운이 떨어지면서 생로병사의 외로운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동행하면서나는 그들에게 정이 들어버렸다. 아마 내가 보는 환자들이 암환자라서 그런 것 같다.조기 유방암 환자들은 항암치료만 받고 훌쩍 떠나버리지만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은 죽을 때까지 내가 돌봐야 하는 사람들이다.긴 병의 여정에는벼라별 일들이 생긴다.그 모든 것들이 예..

생강차, 할머니의 사랑

할머니는3년전 언제부터인가 당신 유방 모양이 찌글찌글 해지고언제인가부터 움푹 파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지만그런 당신 몸에 대해 자식들에게 일언반구 하지 않으셨다.다 늙은 나이에나 아픈거 말해서먹고 살기 힘든 자식들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으로 병을 삭히며 시간을 보냈지만통증에는 장사 없고유방에서 진물이 나기 시작하자할머니는 더 이상 당신 몸을 건사하기 힘들었다. 처음 온 외래에서 할머니는 내 눈 한번 제대로 맞추지 않고 나를 외면하였다.검사도 최소한만 하기를 원하셨다. 이제 80을 눈앞에 두신 할머니의 뜻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할머니에게 왜 이제서야 오셨냐고그렇게 보내버린 3년 때문에병은 유방에서 뼈로 간으로 폐로 림프절로 옮겨가게 되었고몸도 말라가기 시작한거 아니냐고차마 그..

최선 3

그녀는 나랑 동갑. 뇌로 전이된 지 2년이 되어 간다.뇌 말고는 전이된 곳이 없다. 뇌 수술을 했지만 위치가 너무 깊어서 수술을 완전히 깨끗하게 할 수 없었다. 방사선 치료를 더 했지만 여전히 뇌에는 병이 남아 있다.그대로 놔두니 병이 커지는 것 같아서 젤로다 없이 타이커브만 먹고 있다. 전이된 병의 위치는 우리 몸의 호르몬을 관장하는 Pituitary gland 근처, 그리고 hippocampus.그래서 뇌 수술을 한 후 자기 스스로 필요한 호르몬 분비를 못하기 때문에 각종 호르몬제를 먹고 있다.우리 몸의 호르몬 시스템은 어디가 부족하면 다른 곳에서 이를 자극하는 호르몬이 나오고, 어디가 많으면 다른 곳에서 이를 자극하는 호르몬을 줄여서 균형을 맞추는 조절 기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인위적으로..

내가 상상하는게 다 맞는건 아니니까

토요일 외래는원래 내가 보는 환자들을 진료하는 날이 아니다. 항암치료 중에 기운이 없어 영양제를 맞고 싶은 사람갖고 있는 약 이 떨어져서 약 타러 온 사람.항암치료 하다가 부작용에 생겨서 증상 상의하러 온 사람.백혈구 수치 떨어져서 촉진제 맞으러 오는 사람.그런 환자들이다. 내가 담당 주치의가 아니므로그들 치료 과정에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도 없고 내릴 필요도 없기 때문에어쩌면 부담없이 진료를 보면 된다.당장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만 해결해 주면 된다. 피검사 보고 백혈구 수치 낮으면 촉진제 주고수혈이 필요하면 수혈 처방 해주고 진통제 조절이 잘 안되서 아프다고 하면 진통제 조절해 주고너무 아프다고 하면 입원장 주고 약 필요하다고 하면 그 약 처방해 주고그런 식이다. 그래도미리 예습을 한다.어떤 ..

UCC 대박나세요!

외래 진료 초반부에는상태가 안정적인 환자들이 많다. 앞쪽 진료를 할 때는 수년간 호르몬제 하나로 전이성 유방암이 잘 잘 조절되고 있거나 항암제 후 허셉틴 하나만 맞고 있거나독성없이 항암제를 잘 맞고 있거나 하는 컨디션 좋은 환자들을 '스피디'하게 진료한다. 병이 안정적인 그들은특별한 증상도 없고 아프지도 않기 때문에나에게 할말도 없다.자기 먹고 사는 일이 바쁘니까 자기 일 하는 것에 집중한다. 나한테는 기대하는 것도 별로 없다. 외래 일찍 보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도 많고아이들이 학교, 유치원 가는 틈을 이용해 치료를 받고 가는 사람도 있다.그렇게 그들은 바쁘다. 진료 앞 부분에서 한두명 지연되는 것이 진료 후반부로 가면 한두시간 지연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진료 앞 부분에는 이렇게 컨디션 좋은 환자..

사실 '쿨'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내과 의사이면서도암 환자가 아니면이제 왠만한 진료에 자신이 없어진 거 같습니다. 똑같이 허리가 아프다고 해도암환자의 요통에 접근하는 나의 자세와암이 없는 환자의 요통에 접근하는 나의 자세는 다릅니다. 암환자를 대할 때는 기본적으로 그에게는 '암'이 있다는 사실이내 마음가짐을 다르게 합니다. 저는 대부분 외래 전날 다음 날 오는 환자들의 상태를 리뷰하기 때문에사진을 미리 다 보고 들어갑니다. 공식 판독이 나와있는 경우도 있고당일날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판독과는 무관하게 제가 직접 사진을 보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 많기 때문입니다. 환자 이름이나 얼굴만 봐서는 그가 누군지 모르겠는데CT를 보면 비로소 그가 누군지 알겠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사진을 미리 보고 뭔가 결정을 내려놓고 외래를 들어가지만막상 외래 시..

남편도 힘든데...

항암치료를 시작한 환자. 아드리아마이신은 투약 후 2주가 지나면머리카락이 숭숭 빠지기 시작한다.뭉텅뭉텅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처음에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지만2-3일 지나면 너무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서 온 집안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니 그거 청소하기도 귀찮고 머리카락이 빠지면서 두피가 아프기 때문에 두통도 생기고이래저래 성가시다. 그래서 환자들은 머리를 다 밀어버린다. 그렇게 머리를 밀고 나면 환자들이 용감해진다. 그리고 나면 환자들이 잘 울지 않는다. 나는 이런 일을 겪으며 환자가 본격적으로 자기 치료의 주체가 되고 씩씩하게 치료받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1주기 치료를 마치고 2주기 치료를 하러 올 때 머리를 밀고 두건이나 가발을 쓰고 온 환자 옆에같이 머리를 밀고 온 남편들이 앉아 있을 때가 있다...

상상할 수 없는 내일, 그냥 오늘을 살자

징하게 습하고 무더웠던 여름.지칠 줄 모르고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물러가나보다.영영 올것 같지 않았던 가을도 오려나 보다.바람이 시원해졌다. 힘들고 지치는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될것 같아 절망하지만시간은 흐르고상황도 변하고어느새 내 마음도 변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이 절대적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겠다. 장성한 자식들은 다들 성공해서 미국에서, 호주에서, 유럽에서 잘 살고 있는데한국에 홀로 남은 부부.환자는 세번째로 난소암이 재발했다.그리고 같은 시기에 70 넘은 남편이 치매를 진단받았다.원래 항암제 독성이 심하게 나타나는 편이었다. 이번에도 항암치료를 시작하고 보니 남편 시중 들기가 힘들어졌다.자식들에게 국제 전화를 걸어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환자는 남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저를 포기하지 않다니...

내가 무슨 말을 하면그녀는 대개 그 내용과 별로 연관이 없는 질문로 응답하였다. 이번에 병이 나빠졌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고 등등의 심각한 얘기를 다 하고 나면변비약 없으니까 약 주세요뭐 그런 식이었다. 할머니도 아니다. 나랑 나이도 비슷하다.뭔가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느낌이었다.내가 병이 나빠졌다고 해도 남의 일처럼 '그럼 어떻게 하실건가요?그렇게 물었다. 수술 전 항암치료 하고 수술했는데수술 부위에서 금방 재발하였다.순식간에 목 근처 림프절 부위로 병이 진행되어 방사선 치료를 했지만 또 금방 재발하였다. 주요 장기는 침범하지 않은채수술한 쪽 유방 근처의 피부, 겨드랑이와 목 림프절, 어깨 부위의 피부 이 정도로 전이가 진행되었다.피부 병변이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어 면적이 넓어져 간다. 마치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