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검색 결과

36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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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1 - 이수현 슬기엄마

    마지막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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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1 - 이수현 슬기엄마

    병원으로 호적을 옮겨서라도 간호할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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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1 - 이수현 슬기엄마

    Even if I Don’t Know What I’m D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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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1 - 이수현 슬기엄마

    연세의료원 노조 파업의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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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1 - 이수현 슬기엄마

    병원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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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1 - 이수현 슬기엄마

    회식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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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1 - 이수현 슬기엄마

    3월에는 대학병원 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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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1 - 이수현 슬기엄마

    나는 ‘우수’ 전공의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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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1 - 이수현 슬기엄마

    나는 이럴 때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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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1 - 이수현 슬기엄마

    “너 미쳤니?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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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1 - 이수현 슬기엄마

    내 안에 버려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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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1 - 이수현 슬기엄마

    슬기 엄마 파견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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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1 - 이수현 슬기엄마

    나쁜 소식을 전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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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2년차, 집에 있다가 갑자기 불안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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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꿈에 나타난 vocal 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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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친절에 대한 양가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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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내가 2년차가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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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질병과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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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치기 EMR, 이번엔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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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누구에게 최선을 다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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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나는 고발한다, 내 형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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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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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슬기엄마, 입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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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양심과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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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1년차, 여름휴가 맞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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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사망 기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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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오 주여, 저는 어찌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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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기흉을 만들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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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새 병원에서 일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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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배고픈 1년차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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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일기

 

2004 4, ‘슬기엄마의 인턴일기가 시작된 이후주치의 일기로 이름을 바꾸면서 만 4년 가까이 연재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동안 제 글을 읽고 댓글을 통해, 또 직간접적으로 의견 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줌마 인턴으로 시작한 저는 내과 의국 내 최고령자로 3월이면 4년차 치프가 되고, 제가 병원 생활을 시작할 때 초등학교에 입학한 슬기는 어느덧 5학년이 되어 인터넷으로 MP3를 다운받아 듣는 것을 좋아하는 청소년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럴수록 내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초조함과 부끄러움이 쌓여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하루가 되어야 한다는 계몽주의의 담론에 익숙해 있는 편인데, 근간에 이르러 주치의 일기를 계속 쓰는 것이 앞으로 더 나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반복되어 오늘 글을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이 코너를 마감할까 합니다.

글의 소재를 선택할 때마다 느끼는 갈등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두 가지 측면에서 제 글의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의료제도나 의료계의 현실에 대한 거시적인 시각이 점차 소멸되어 간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공부했던 사회학은 작은 현실들을 엮어 규칙을 발견하고 거대 담론으로 일반화하는 학문이었는데, 환자 한 명, 장기 하나, 검사 하나하나가 중요하고 그걸 가지고 고민하며 해결해야 하는 풋내기 의사로 살다보니 내가 세상 흐름의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의료계 내부적인 논쟁이나 정치적 사안에 대해 잘 모르고 지냈고,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
설령 흥미있거나 궁금한 사안이 있거나, 논쟁거리가 생겨도 주위 의사들과 이에 대해 얘기할 만한 시간적 공간적 여유는 없었습니다. 때론 내 의견이 있다 해도 병원이라는 엄청난 위계 조직에서 레지던트의 위치는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기보다는 입다물고 조용히 환자만 보면서 지내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1
년차 초반에 한 회식자리에서 그런 문제를 얘기했다가 다음날 환자 진료에 문제가 생기자 전날 회식자리에서 제가 한 말을 끄집어내 빈정거렸던 윗사람이 있은 후로 저는 회식에서 제 개인적인 의견이나 주장을 말하지 않기로 결심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회 내에서 의료가 차지하는 다양한 속성, 전문가로서 의사의 사회적 책임, 의료를 둘러싼 여러 직종과 자본의 갈등 등 수많은 일들을 그냥 스쳐 보냈습니다. 지면을 통해 뭔가를 말하려면 그만큼 공부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없었고 판단을 내릴 만한 능력도 점차 소실되어 갔던 것 같습니다
.
두 번째는 내가 쓴 이 글을 내가 일하는 병원 내의 누군가가 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비판하고 싶은 사건들, 동료들의 문제, 병원 내에서 관찰되는 구조적·개인적 잘못들을 함부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단지 흉허물을 덮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에 더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단지 발설해 버림으로써 사건을 확산시키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것 아니냐고 누군가가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이 그 비판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
이런 이유로 제 글의 소재가 다소 중립적이고 휴머니즘적인 주제, 혹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농담거리 등을 맴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의대에 편입하게 되었을 때, 인턴 생활을 시작할 때, 내과 레지던트가 되었을 때, 그때마다 저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시선들이 있었습니다. ‘네가 의료사회학을 했다는데, 어디 한번 지켜보마. 제대로 전공을 살리는지’, ‘의사가 되기 전에는 한국의 의료제도와 의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었는데, 시각이 유지될지 혹은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지등등의 말이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저는 아직 내과 수련 중이고 내과 레지던트 트레이닝과 사회학 박사학위 논문은 도저히 같이 진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요즘은 사회과학 서적이나 논문을 읽으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리고, 사회학 내부적인 (소위) ‘유행은 전혀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학과 내 연구자 공동체집단과는 멀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
시간이 나면 갈팡질팡 할 때가 많습니다. 어떨 때는 사회과학 신간 서적을 읽거나 오래 전에 내가 공부하며 모아두었던 논문, 정리해 놓은 파일을 열어보지만, 이미 사고 체계가 많이 변해버려 나의 옛날 아이디어를 전승해서 풀어가려면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지 답답할 따름입니다. 어떨 때는 외국 학회에 참석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임상데이터를 정리하는 엑셀파일을 채우며 의학논문을 준비해 보지만, 임상진료와 연구라는 어느 한 축에서도 전문가가 되지 못한 채 수많은 오류를 반복하며 시간을 날려버리기 일쑤입니다. 집에서는 아마 제가 무슨 대단한 위인이라도 되는 줄 알고 있을 겁니다. 어느 순간 마음이 조급해지고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면 집에 못 가고 병원에서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이 대목에서 슬기와 슬기 아빠에게, 그리고 가사노동을 대신 짊어지고 하시는 친정 어머니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지난 번 글에서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로이제 100% 의사가 다 되었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아직 레지던트인 저로서는 100% 의사가 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100%란 무조건 의사 편에 선다는 의미에서 100%가 아니고 다른 여타의 것을 떠나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에서 100%가 요구되는 것이라고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저에게 baseline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미처 완성하지 못한 사회학 공부를 하면서 저의 세부 전공을 살리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글을 가지고, 어떤 사람이 되어 여러분께 인사드리게 될지 모르겠지만, 저에 대한 평가를 조금만 더 유보하고 지켜봐 주십시오.

소중한 지면을 저에게 할애해주신 청년의사에도 감사드립니다. 휘발될 뻔한 저의 4년이 일기로 남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당분간 마음 속에, 머리 속에 뭔가 알찬 것을 저장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비워진 채로 살면서 조금씩 채우는 것은 제 몫이겠지요. 저와 함께 공부하던 많은 대학원 동료들이 번듯한 대학의 교수로 발령을 받아 연구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걸 보면 부럽습니다. 외국 유학까지 다녀와서 영어논문 업적도 많고 지적 유희를 즐기며 냉철한 사고방식을 발휘하는 것도 부럽습니다.
나는 나이만 먹고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싶은 조급함이 들 때면 본과 3학년때 마라톤에 도전하던 시절을 떠올립니다. 그 누구와 비교할 것 없이, 나에게 주어진 풀코스를 끝까지 다 뛰자는 생각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5시간의 42.195km. 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볼까 합니다. 독자여러분, 그동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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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으로 호적을 옮겨서라도 간호할껴

 

아이구, 속이 쓰려. 왜 이렇게 속이 쓰린겨?”
위장 보호하는 약을 여러 가지로 쓰고 있는데도 그렇네요. 보험이 안 되더라도…(Proton pump inhibitor를 한번 써볼까요
?)”
갑자기 할아버지가 내 말을 막으며 나를 병실 밖으로 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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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비보험으로 약 쓴다고 하면 우리 할망구가 약 안 쓴다고 그려. 그러니 암말 말고 내가 싸인헐 텐게 그냥 줘. 비보험이라도 속 풀리는 데 도움이 되면 써야지.”

말기 환자들의 고통
내가 요즘 주로 보는 위암 환자들은 말기가 되면 대개 복막으로 암이 진행되어 암종증의 상태가 되며 이로 인해 장 폐색이나 장 마비가 오는 경우가 많다. 배가 빵빵하게 불러오고 물 한 모금만 마셔도 토하기 때문에 결국 L-tube를 꽂고 suction하는 기계를 연결하여 decompression을 해준다. 호전되면 다시 음식 먹기를 시도해보고, 다시 불러지면 다시 decompression하는 과정을 몇 차례씩 반복하는 사이 환자와 보호자는 지쳐가고 전신 상태도 악화되기 십상이다. 21세기 첨단 의료의 시대에 장 마비가 온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만한 특별한 약이나 시술 없이 물리적인 decompression밖에 할 게 없다는 사실이 나도 이해가 안 되는데, 환자들은 얼마나 절망을 느낄까 싶다. 못 먹고 사지는 빼빼 말라가는데 배만 불룩해져 있는 환자들이 할아버지는 그런 할머니 옆에서 도움이 된다면 돈 걱정하지 말고 뭐든지 해달라고 말씀하시지만 살림살이가 그리 넉넉해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상태가 호전되지 않고 이렇게 계시다가 돌아가실 확률이 많다는 말에 할아버지는 눈물을 글썽거린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달라고 내 손을 잡는데, 죽어가는 환자를 보면서도 별다른 느낌 없이 삭막해지고 메말라버린 내 마음이 꿈찔한다
.
학습지 영어 선생님을 하던 40대 초반의 여성, 그런 환자들은 나에게 언니뻘이다. 두경부 암을 진단받고 수술을 했지만 1년만에 재발하고 수술부위를 중심으로 재발된 암과 농양이 뒤엉켜 감염치료, 항암치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상태이다. 구강구조에 병이 생기다보니 기도와 식도의 입구가 구분되지 않아 tracheostomy, gastric tube insertion을 한 다음 항암치료 받을 준비를 한다. 어떻게든 치료를 받겠다는 의지가 높지만 외형적으로 행색이 말이 아니고,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니 환자 삶의 질도 말이 아니다. 목에 있는 구멍을 막아야만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그를 참으로 이질적 존재로 느끼게 만든다. 잦은 기침과 가래…, 이 젊은 여자 환자는 암을 진단받은 후 이혼을 했고 설암의 특성상 자신의 원래 직업인 영어교사를 계속 할 수도 없었다. 혀를 너무 많이 써서 암이 생긴 것 아니냐고 말하는 친정어머니는 회진 후 찾아와 병원비 걱정부터 하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다.

암 발생과 가족관계의 변화
과연 암의 발생은 혼인상태 및 가족관계를 변화시키는가? Marital status cancer에 대한 여러 논문에서는 일관된 결론을 내지 않고 있으나 통계적 유의도를 근거로 하여 암의 발생 자체가 부부관계를 악화시키거나 이혼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며 암 발생 이전의 부부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을 접할 수 있다. 과연 암의 발생 이후 변화된 가족, 부부관계의 문제를 통계가 얼마나 유의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도구가 될지 모르겠다. 무엇으로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
삶의 catastrophic event라고 할 수 있는 암-진단된 암의 severity에 따라 다르겠지만-을 진단받았을 때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지해 줄 수 있는 1차적인 집단이 가족이고 결혼했다면 부부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아직까지 병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은 할아버지, 아저씨가 투병을 할 때 할머니, 아줌마들이 곁에서 간호하는 모습이다. 물론 극진한 할아버지, 아저씨들이 예전보다는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고 이 음식, 저 음식을 해 오고, 옆에서 닦아주고 씻어주고, 같이 산책해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영화처럼 우아하지는 않아도 부부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부부란 어떤 존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
암 진단 후 이혼당하고 혼자 투병하는 환자의 쓸쓸함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줄 수 없는 공허함과 함께 힘겨움을 더한다. 용기를 북돋워주고 정서적으로 충분한 지지가 있어도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은 힘들다. 그렇게 혼자 남은 젊은 여자환자들을 보면 결혼식 때 혼인 서약은 뭐하러 하나 싶은 억하심정이 든다. 질병의 발생과 치료 과정에 가족이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 큰 것도 우리나라의 독특한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리 첨단의 의료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하더하도 힘들고 뻥 뚫린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가족의 사랑일 것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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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의료기관에서 말기암환자, 회복가능성 낮은 환자를 검사 및 시술의 계획 없이 L-tube만 꽂고 기다리며 계속 입원시키기는 어렵다. 처음에 말했던 할아버지는 내게 이런 말도 했었다. “병원으로 호적을 옮겨서라도 간호할껴.” 그 말씀에 가슴 깊숙이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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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 if I Don’t Know What I’m Doing

 

우리 병원은 지난 주부터 4년차 레지던트들이 전문의 시험 공부를 위해 환자 진료에서 한걸음 물러나고 3년차들로 책임 업무가 넘어오게 되었다. Subspecialty를 정하는 과정에서 이리 저리 마음 휩쓸리고 감정 소모도 많았는데, 마음을 다잡을 여유도 없이 한 파트의 치프가 되어 순식간에 중차대한, 그리고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잡일까지도 해결해야 하는 만능일꾼으로 변할 것을 요구한다.
일 하는 건 그렇다 치자
.
학생 실습 때 몇 번 발표해 본 이후로 공식적인 발표를 해 볼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갑자기 내가 담당해야 하는 저널 발표나 conference가 많아진다.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다 해도 언제든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치프가 되어 연차는 올라갔지만 발표 능력과 요령은 급격히 저하되어 학생보다 더 똑똑하지 못한 것 같다. 나의 어리버리한 표정에 나도 놀랄 지경이다
.
다른 과와 함께 하는 공통 세미나도 많아지고 내가 모르거나 내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 사실은 별로 갖고 싶지도 않은 - 주제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논문 읽고 발표하는 일들이 급증한다
.
심지어땜빵도 많다. 갑작스러운 대진이나 발표, 원고 작성에 동원되는 것이다. 지금은 배워야 할 때이나, 주제나 흥미도에 상관없이뭐든지 열심히 하자주의는 금물이다. 그것은 매우 생산성 없이 24시간을 보내며 나를 소모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요령껏 눈치 있게, 나에게 꼭 필요한 일들을 우선순위로 삼아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줄 알아야 한다. 얄미운 이들은 논문 쓰는 일을 알뜰하게 챙긴다. 남는 건 논문 뿐이라며….

백조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
가장 당황스러운 일은 내가 치프이니, 뭐든 물어보면 대답이 튀어나올 것으로 기대한다는 점이다(사실은 내가 무식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대하는 것 같다). 다른 과에서 뭔가를 물어오면 아주 겸손한 사람인 것처럼, “제가 확실하게 잘 모르겠으니, evidence를 찾아서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저는 하나도 모르거든요. 왜 자꾸 그런 걸 저에게 물어보시나요?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찾아보고 확인 받아야 한다구요라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교수님들도그래서 자네 생각은 어떤가?”라고 질문한다. 내 생각을 준비해서 뭔가를 말하기 위해서는, 백조가 물 위에 우아하게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물 속에서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처럼, 엄청나게 몸과 마음을 굴려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처럼 저널을 발표하는 날이면, 발표를 마치고 나서 마음이 매우 허탈하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마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태연스럽게 말해야 한다. 잘 모르는 부분은 빠르게 읽고 슬라이드를 넘긴다
.
질문은 적당히 피하고, 마치 다른 질문을 받은 것처럼 엉뚱한 소리를 하곤 한다. 사실은 잘 몰라서 딴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데 말이다.

소프트웨어의 변화와 수련의 제도화
지난 여름 우리 병원은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라는 국제적 수준의 의료기관 평가를 받았다. 우리의 실제 수준과 그 평가의 기준을 맞추기 위한 급격한 변화의 허실을 경험하며 착잡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진료 및 병원 운영의 표준화(standardization)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라는 점에 동의할 수 있다. 또 우리 자체적인 노력으로 변화하기 힘든 부분이 외부의 강제적인 힘에 의해 규정되고 변화한다는 사실이 씁쓸하지만, 변화의 방향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변화를 거치며 대학병원 진료의 큰 역할을 담당하는 전공의 수련과 교육에 관한 부분은 강조되지 않았다. ‘레지던트쯤 되면 누가 가르쳐 줘서 공부하나, 스스로 알아서 책 찾아보고 공부하는 거지?’라고 반박할 법하다. 그러나 시대가 요구하는 기준은개인의 의지로 문제를 극복하는 것 보다는표준화된 제도에 진입하면 표준화된 실력과 술기와 질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매일 매일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극기적인 힘을 발휘하고 발을 동동 굴리다가 헛발질을 하지 않도록, 속도가 다소 못 미치더라도 차근차근 교육하고 기본을 연마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변화가 하드웨어의 변화와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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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가 끝나니 긴장감이 떨어진 탓일까? 소프트웨어의 변화를 위한 노력은 발견하기 어렵다. 전공의 자체적으로 아래로부터 요구하는 것도 없고, 위에서 강제적으로 지시하는 내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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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나 수련의 문제 개선이라는 주제 자체가 가시적인 변화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고용량 스테로이드 요법을 써서라도
병원 생활이라는 것이 몇 개의 순환 고리가 얽혀 있어 비슷한 주기를 반복하는 듯하다가, 정신 차리고 보면 다른 회전 고리의 공전 궤도에 진입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새로운 고리에 처음 진입할 때는 초 긴장감으로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왕창 소모하게 된다.
함께 순환 고리를 통과하고 있는 동기들과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살다간 relative adrenal insufficiency 로 기운 없고 의욕 없어 physiologic dose steroid hormone을 복용하여 50대가 넘어 동문회를 하면 모두 쿠싱이 되어 만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농담한다. 하지만 요즘 같으면 high-dose steroid replacement 라도 해서 뭔가 강력한 힘을 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물이 줄줄 새면서도 어느새 콩나물이 자라 있는 것처럼, 뭔가를 머리에 집어넣어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하며 좌절감을 느끼면서도 의대를 무사히 졸업한 것처럼, 아는 것도 부족하고 환자도 제대로 못 보며 좌절감의 연속으로 1년을 보냈지만 지금 3년차가 되어 있는 것처럼, 치프가 되어 맞이하는 한 해를 또 마칠 무렵이면,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며 박수를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의욕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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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의료원 노조 파업의 현장에서

 

우리 병원 노조의 파업이 벌써 일주일을 넘겼다. 어제는 요로감염으로 응급실에 온 환자를 외부 병원으로 전원하였다. 7년 전 우리 병원에서 루프스를 진단받고 3년 전에는 CNS까지 involve되어 힘겹게 회복한 병력이 있는 환자다.

한 달에 한 번씩 혹은 보름에 한 번씩 꼬박꼬박 외래에서 추적관찰 중인 이 환자를 위해 길고도 구질구질하게 소견서를 작성하였다. 이 사람의 disease activity를 시사하는 symptome and sign은 무엇이었는지, disease activity가 증가하면 어떤 치료를 해서 효과가 있었는지, 최근 스테로이드 용량은 어떻게 조절하고 있었는지, 마지막 균 배양 검사에서 어떤 균주가 자랐으며 어떤 항생제에 민감성이 높았는지…. 세세한 검사결과들까지 챙기다 보니 시간도 엄청 오래 걸렸다.

오버같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왠지 다른 병원에 가면 찬밥 신세가 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중환이라며 다른 의사들이 꺼려하면 어쩌나, 사소한 정보라도 빠지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내 아이 다른 집에 가서 구박받을까봐 노심초사하는 엄마의 심정과도 비슷했다. 우리가 잘 봐줘야 하고, 잘 봐줄 수 있는 환자인데, 생면부지 병원으로 보내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환자에게 정말 미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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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정도 신환 입원이 없다. Stage lV의 종양학과 암환자들은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는지 기약도 없이 애타는 마음으로 병원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비록 말기 암환자이지만, 살아야 할 의미가 있기에,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볼 요량으로 치료를 결심한 분들이다. 그렇게 시작한 항암치료에 다행히 반응이 있다며 좋아할 무렵, 갑자기 치료가 중단되어 버린 이들의 초조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순간에도 몸 안에서 암세포가 점점 퍼져가는 느낌이 든다는 한 환자의 탄식을 들으며 나는 할 말을 잃는다. 이번 주말을 넘기기 전에 이들을 입원시킬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입원장을 받고도 입원하지 못한 수백 명의 환자들에게 연락하는 일부터, 미리 기본 검사를 해올 것을 요청하고, 인력을 재배치하여 항암제 조제, 수액 연결 등 원래 의사의 업무가 아닌 것들이라도 전공의들이 직접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필요할 텐데….


진단검사의학과나 진단방사선과 전공의는 서비스 파트 인력이 파업으로 빠져버린 후 검사실 기사로 나섰다. 접수, 수납, 안내를 비롯하여 X-ray, CT, MRI도 직접 찍고 판독한다. 밤새 병동으로 이동촬영도 다닌다. 진검 전공의는 채혈도 하고 기기회사로 연락하여 maintainance를 직접 배워 기계를 가동하고 점검한다. 마취과가 채혈을 도와주지 않으면 진검 전공의는 기본 lab을 시행하고 output report할 수 없다. 수많은 검사가 이들의 손에서 밤을 새워 진행되고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이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임상 분야 전공의들은 갑자기 줄어버린 환자 수에 상대적으로 할 일이 없다. 불안한 마음에 아침 일찍부터 병원에 나와 늦게까지 일을 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당직도 서지만, 정작 몸이 그리 바쁘지는 않다. CPR 방송이 나니 순식간에 내과 의사 30명이 모였다. 파업으로 분위기 안 좋은 병동에서는 간호사가 vital sign, I&O, 채혈을 해주지 않고 call도 해주지 않는다. 의사는 order내고 그 order대로 직접 다 시행해야 한다는 벽보가 붙어 있다. 전공의, 전임의, 인턴, 학생이 돌아가면서 sugar check도 하고 vital sign도 확인하며 charting도 한다. 그 자리에서 lab도 뽑고 station에 가서 c-line set도 가지고 와서 내가 setting하고 내가 line을 넣는 일도 있다. 파업이 시작된 지 10일이 넘었는데 전공의 업무배치가 아직은 편중되어 있는 것 같다.

다른 병원으로 전원이 어려운 혈액내과 환자들의 병동은 노조가입 여부를 막론하고 전 간호사가 정식 근무를 하고 있다. 파업이 결정되기 며칠 전부터 수간호사가 간호사 개개인을 다 면담하고 손 한번 바뀌면 유리처럼 깨질 수 있는 혈액내과 환자들에 대한 간호는 파업과 무관하게 제공되어야 함을 설득하였다. 파업이 시작되던 날, 정규복을 입고 모두가 station에서 일하며 인계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평소대로라는 말이 이때처럼 의미심장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파업이 시작되었으면 노사 양측은 파업 1주일, 2주일, 1달 등을 단위로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단기전으로 파업을 정리할 것인지, 장기전으로 가게 될 것인지에 따라 전략과 전술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노조도, 경영진도 아니기 때문에 양 집단의 내심은 알 수 없지만, 환자 진료를 위한 의료진의 계획이 더 이상 늦추어져서는 안 될 것 같다.

나는 노동자가 자신의 계급적 지위를 깨닫고 정치적 수단으로서 파업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노동자의 권리이다. 그러나 파업은 고도로 정치적인 공간이다. 현재 노조가 외부적으로 내걸고 있는 의료의 공공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유니언숍 허용의 문제는 명분과 정당성을 위해 존재하는 이념/이데올로기이며, 내부적으로는 한국노총의 동의 하에 3년간의 유예 기간을 두고 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노동관련법이 예고되면서 노조 및 노조 지도자들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동운동 자체도 개혁의 대상이 되는 마당에 노조 지도부는 정치적으로 강력한 세력화를 도모하거나 경제적으로 물적 토대를 공고히 하지 않으면 존재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처해 있는 것이다.
한편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노동조합의 인사권 요구에 대해 강한 불안감을 느끼고 유니언숍으로 표방되는 노조의 형태 변화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최대한 막고 정치적인 요구에 대해서는개별 병원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논조로 논의 전개를 유예하고 있다. 경영진의 방어와 노조의 공격 지점이 정면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지금의 파업이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인 것 같다.


그러나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인가? 나는 수술을 기다리는, 항암치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단지 자동차 생산 대수를 감소시키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인간의 생명이 담보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직종의 파업과 다른 차원의 윤리적 문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노조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서 총파업을 결의하고 검은 리본을 달며 파업의 결의를 다지던 날, 우리 병원의 노조는 정치적 이슈와 무관하게, 상급단체의 결의와는 무관하게 야유회를 갔었고, 2000년 의약분업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치열했을 때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나 파업을 감행했던 경험이 있다. 과거가 모든 현재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책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의사가 된 내가 지금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명제는 바로 치료받을 수 있는,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의 권리이다. 외형적인 파업의 유지 여부와 관계없이, 하루라도 빨리 우리 환자들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그게병원밥먹는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우리 병원 노조의 파업이 벌써 일주일을 넘겼다. 어제는 요로감염으로 응급실에 온 환자를 외부 병원으로 전원하였다. 7년 전 우리 병원에서 루프스를 진단받고 3년 전에는 CNS까지 involve되어 힘겹게 회복한 병력이 있는 환자다.

한 달에 한 번씩 혹은 보름에 한 번씩 꼬박꼬박 외래에서 추적관찰 중인 이 환자를 위해 길고도 구질구질하게 소견서를 작성하였다. 이 사람의 disease activity를 시사하는 symptome and sign은 무엇이었는지, disease activity가 증가하면 어떤 치료를 해서 효과가 있었는지, 최근 스테로이드 용량은 어떻게 조절하고 있었는지, 마지막 균 배양 검사에서 어떤 균주가 자랐으며 어떤 항생제에 민감성이 높았는지…. 세세한 검사결과들까지 챙기다 보니 시간도 엄청 오래 걸렸다
.

오버같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왠지 다른 병원에 가면 찬밥 신세가 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중환이라며 다른 의사들이 꺼려하면 어쩌나, 사소한 정보라도 빠지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내 아이 다른 집에 가서 구박받을까봐 노심초사하는 엄마의 심정과도 비슷했다. 우리가 잘 봐줘야 하고, 잘 봐줄 수 있는 환자인데, 생면부지 병원으로 보내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환자에게 정말 미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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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 정도 신환 입원이 없다. Stage lV의 종양학과 암환자들은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는지 기약도 없이 애타는 마음으로 병원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비록 말기 암환자이지만, 살아야 할 의미가 있기에,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볼 요량으로 치료를 결심한 분들이다. 그렇게 시작한 항암치료에 다행히 반응이 있다며 좋아할 무렵, 갑자기 치료가 중단되어 버린 이들의 초조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순간에도 몸 안에서 암세포가 점점 퍼져가는 느낌이 든다는 한 환자의 탄식을 들으며 나는 할 말을 잃는다. 이번 주말을 넘기기 전에 이들을 입원시킬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입원장을 받고도 입원하지 못한 수백 명의 환자들에게 연락하는 일부터, 미리 기본 검사를 해올 것을 요청하고, 인력을 재배치하여 항암제 조제, 수액 연결 등 원래 의사의 업무가 아닌 것들이라도 전공의들이 직접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필요할 텐데
….


진단검사의학과나 진단방사선과 전공의는 서비스 파트 인력이 파업으로 빠져버린 후 검사실 기사로 나섰다. 접수, 수납, 안내를 비롯하여 X-ray, CT, MRI도 직접 찍고 판독한다. 밤새 병동으로 이동촬영도 다닌다. 진검 전공의는 채혈도 하고 기기회사로 연락하여 maintainance를 직접 배워 기계를 가동하고 점검한다. 마취과가 채혈을 도와주지 않으면 진검 전공의는 기본 lab을 시행하고 output report할 수 없다. 수많은 검사가 이들의 손에서 밤을 새워 진행되고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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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임상 분야 전공의들은 갑자기 줄어버린 환자 수에 상대적으로 할 일이 없다. 불안한 마음에 아침 일찍부터 병원에 나와 늦게까지 일을 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당직도 서지만, 정작 몸이 그리 바쁘지는 않다. CPR 방송이 나니 순식간에 내과 의사 30명이 모였다. 파업으로 분위기 안 좋은 병동에서는 간호사가 vital sign, I&O, 채혈을 해주지 않고 call도 해주지 않는다. 의사는 order내고 그 order대로 직접 다 시행해야 한다는 벽보가 붙어 있다. 전공의, 전임의, 인턴, 학생이 돌아가면서 sugar check도 하고 vital sign도 확인하며 charting도 한다. 그 자리에서 lab도 뽑고 station에 가서 c-line set도 가지고 와서 내가 setting하고 내가 line을 넣는 일도 있다. 파업이 시작된 지 10일이 넘었는데 전공의 업무배치가 아직은 편중되어 있는 것 같다
.

다른 병원으로 전원이 어려운 혈액내과 환자들의 병동은 노조가입 여부를 막론하고 전 간호사가 정식 근무를 하고 있다. 파업이 결정되기 며칠 전부터 수간호사가 간호사 개개인을 다 면담하고 손 한번 바뀌면 유리처럼 깨질 수 있는 혈액내과 환자들에 대한 간호는 파업과 무관하게 제공되어야 함을 설득하였다. 파업이 시작되던 날, 정규복을 입고 모두가 station에서 일하며 인계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평소대로라는 말이 이때처럼 의미심장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


파업이 시작되었으면 노사 양측은 파업 1주일, 2주일, 1달 등을 단위로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단기전으로 파업을 정리할 것인지, 장기전으로 가게 될 것인지에 따라 전략과 전술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노조도, 경영진도 아니기 때문에 양 집단의 내심은 알 수 없지만, 환자 진료를 위한 의료진의 계획이 더 이상 늦추어져서는 안 될 것 같다
.

나는 노동자가 자신의 계급적 지위를 깨닫고 정치적 수단으로서 파업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노동자의 권리이다. 그러나 파업은 고도로 정치적인 공간이다. 현재 노조가 외부적으로 내걸고 있는 의료의 공공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유니언숍 허용의 문제는 명분과 정당성을 위해 존재하는 이념/이데올로기이며, 내부적으로는 한국노총의 동의 하에 3년간의 유예 기간을 두고 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노동관련법이 예고되면서 노조 및 노조 지도자들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동운동 자체도 개혁의 대상이 되는 마당에 노조 지도부는 정치적으로 강력한 세력화를 도모하거나 경제적으로 물적 토대를 공고히 하지 않으면 존재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처해 있는 것이다
.
한편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노동조합의 인사권 요구에 대해 강한 불안감을 느끼고 유니언숍으로 표방되는 노조의 형태 변화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최대한 막고 정치적인 요구에 대해서는개별 병원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논조로 논의 전개를 유예하고 있다. 경영진의 방어와 노조의 공격 지점이 정면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지금의 파업이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인 것 같다
.


그러나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인가? 나는 수술을 기다리는, 항암치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단지 자동차 생산 대수를 감소시키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인간의 생명이 담보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직종의 파업과 다른 차원의 윤리적 문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

노조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서 총파업을 결의하고 검은 리본을 달며 파업의 결의를 다지던 날, 우리 병원의 노조는 정치적 이슈와 무관하게, 상급단체의 결의와는 무관하게 야유회를 갔었고, 2000년 의약분업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치열했을 때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나 파업을 감행했던 경험이 있다. 과거가 모든 현재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책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의사가 된 내가 지금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명제는 바로 치료받을 수 있는,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의 권리이다. 외형적인 파업의 유지 여부와 관계없이, 하루라도 빨리 우리 환자들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그게병원밥먹는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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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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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다

 

의료사회학을 처음 공부하며 논문을 통해 접한병원은 일종의 소우주라는 표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병원이라는 하나의 단위 조직 내에서, 우주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일도 다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그리고 내가 직접 이 거대한 대학병원 안에서 실습을 도는 의대생으로, 음지에서 일하는 인턴으로, 환자를 둘러싼 모든 시공간에서 총대를 메야 하는 내과 1년차로 일하며, 그 표현은 참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는 내 생활과 사고, 기쁨과 슬픔의 정서, 그 모든 것이 병원 안에서 이루어졌고 병원 안의 질서가 나에게 절대적인 의미체계를 형성하였다
.

회진을 돌며, 수많은 파트를 돌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성격의 환자와 가족, 의사와 간호사, 의료진과 행정직 등 다양한 인간 관계 속에서, 처방을 내는 순간 보험심사과와 접촉하며, 의국에서 동료들과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매 순간마다, 사람, 조직, 돈이라는 요소를 둘러싼 조직 내 갈등, 병원과 사회의 갈등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나의 관점에서 경험을 해석하였다. 물론 이렇게 우아하고 지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짧았다
.

1, 2
년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3년차가 되니 이제 병원만 들여다보고 사는 것이 때론 지겹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오래 전에 관계가 끊겨버린 옛 친구들, 뉴스를 보아도 쟁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힘들게 돌아가는 세상 일들, 그렇게 세상 속의 병원으로 고립되어 버린 나를 돌아보며 뭔가 나를 세상과 이어질 끈을 찾고 싶지만, 병동을 떠난 시간에는 의국의 컴퓨터 앞에 앉아 한쪽 스크린으로는 EMR 화면을 띄우고 한쪽 스크린으로는 논문 search 화면을 띄우며 마우스를 이쪽 저쪽으로 옮겨가며 뭔가를 계속 모니터링 하고 있다
.

이렇게 살다간 내 가족을 잃겠다는 위기감(!)에 서둘러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마치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긴 사람처럼 나도 모르게 어느새 잠이 들어 새벽 알람에 눈을 뜨고 허둥지둥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다
.

그 사이에 꼬맹이인줄 알았던 슬기는 사춘기 소녀가 되어 있고 남편과는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간략 대화로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하고 있으며 나 대신 살림을 꾸려가는 친정어머니는 만성적인 두통과 허리 통증, 주부습진으로 인해 일상적인 삶의 질이 말이 아니다.


엄마로서, 주부로서, 딸로서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멀리 한 채 나는 수년간 의대생활, 병원생활을 지속하고 있고 그런 나를 가끔 공허한 마음으로 되돌아 본다. 의사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농담에 웃어 버릇 했더니 다른 직업을 가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 감이 떨어진다. 무섭게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노래방에 가도 90년대 초반 노래까지밖에 부르지 못한다. 사회학을 했던 나는 사회로부터 완전 고립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자괴감을 느낀다.

가장 심각한 것은 세상을 향한, 나를 향한 성찰과 비판의 칼날이 무뎌지고 하루하루를 소진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무기력감이다. 내공을 키우기보다는 형식만을 갖추며 면피에 급급하다는 그 느낌. 이러다간 우울증이 올 것 같다
.

1
년차 초반, 한 신장내과 교수님께 크게 혼이 난 이후로 난 term을 짤 때마다 신장내과에 배정될까봐 전전긍긍 마음을 졸였었다. 모든 파트를 골고루 돌아야 한다는 대 원칙하에 나는 3년차가 되어 처음으로 신장내과를 돌게 되었다
.

내가 만나는 환자들은 대개 투석을 하는 신부전 환자들이고 오랫동안 투석을 하다가 생긴 합병증으로 입원치료를 요하기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어려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몸 상태도 좋지 않거니와, 그 환자를 간병해 온 가족들의 피로도 극심한 상태이다. 요독 제거가 되지 않아 입맛도 없고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음식도 한정되어 있으며 잠도 잘 오지 않는다. 밥도 제대로 못 먹는데 매끼 먹어야 하는 약은 한 움큼씩. 시커먼 얼굴로 누워있는 그들을 보면 투석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는, 전쟁이 나면 혈액투석하는 환자들을 위한 특별지정병원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극단적인 생각도 하게 된다. 다른 과에 비해 입원기간이 길어서인지 한 환자를 꽤 오래 볼 수 있다. 환자에게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변화라도 민감하게 감지해야 하고 약도 세심하게 조절해 주어야 하며 그러려면 책도 많이 찾아봐야 한다. 수액조절, 혈당조절 뭐 그리 조절할게 많은지
….

그러나 만성질환으로 평생을 낫지 않고 투석에 의존해야 살아가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오히려 세상 일에, 사람 사는 일에 왠지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나에게 경각심을 주고 있다
.

의사로서 환자를 매우 세심하게 진료해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교훈 이외에도, 질병의 경제적 육체적 부담으로 인한 가족관계의 해체, 우리 사회에서 만성질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부양부담,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의학적으로는 특별히 호전될 것도 없고 획기적인 치료의 대안도 없는 만신창이가 된 환자에게 헌신적인 사랑으로 돌봄을 실천하는 가족들을 보며 썰렁한 내 마음 씀씀이를 반성하게 된다


엊그제 6.10이 지났다. 국가기념일이 되었다며 87 6월 민주항쟁 당시의 흑백사진들이 미디어를 통해 비춰지고 관련자들에 대한 뉴스, 다큐멘터리, 토론회 등이 있었다. 나는 한국 민주화 20년에 대해, 올 대선에 대해, 의료법 개정에 대해, 의협회장 선거에 대해 딱 부러진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 것들을 논하기에 나에게 부여된 병원의 의미가 아직은 너무 크다. 그래서 어쩌면 지난 3년여간 나의 주치의일기에는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등장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직은 병원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의사인가 보다
.

아마도 마음 속 어딘가에 렌즈 선택의 기준이 있었으리라. 그런데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병원 안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얼굴들이 아직은 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많다는 사실이다. 모든 일상이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지겹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병원에 있을 때 마음이 편한 주치의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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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에 대한 단상

 

나는 지금 병원에서 일하기 전, 회사라는 공적 영역에서 월급 받고 근무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회식이라는 말을 별로 들어본 일이 없다. 학생이나 인턴 때도 회식은 나와 별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내과 소속이 되고 난 이후, 회식이 단지 밥만 먹는 자리는 아니라는 것, 때로는 매우 부담스러운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물론 내과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

레지던트는 2개월을 전후로 part가 바뀌기 때문에 적응할 만하면 보따리를 싸서 이동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Term change를 전후로 며칠 동안은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새로운 파트, 혹은 파견병원의 첫 며칠은 참으로 힘들고 실수투성이이기 때문에, 윗분들께 혼나기 일쑤다. 윗년차 혹은 교수님 눈 마주치는 일조차 어렵다. 그만큼 내 안에 켕기는 것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실수도 많고 켕기는 일도 많고 자신감도 없다 보니 저 멀리서 교수님이나 윗년차 선생님이 보이면 길을 돌아가버리는 등의 비겁한 행동도 한다
.

그렇게 병원 생활을 하다가 회식자리가 생기면 가 봤자 마음만 불편할 것 같아 뭔가 핑계를 대고 빠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개의 회식은 내 마음대로 가고 말고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몇 시까지 오실 예정이니 레지던트들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서라도 미리 자리를 채우는 것이 예의다. 물론 회식이 있는 날은 미리미리 일 처리를 해 놓아야 하지만 오후에 신환이 대거 입원을 한다거나 일이 많아 미처 마무리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병원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회식도시간 엄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하던 일을 중단하고 가운을 벗어 던지고 마구 뛰어야 한다. 회식장소로
.

1
년차 초반 멋모르던 시절, 나는 어떤 회식에서 별 거리낌없이 내가 앞으로 어떤 분야를 전공하고 싶은지, 그 분야에 대한 내 생각은 어떤지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한 윗년차가 다음날 병동에서 나의 지지부진한 일 처리에 대해 혼을 내면서 이런 식으로 일하는 게 당신이 하고 싶은 분야의 특징이냐고 면박을 줄 때, 나는 앞으로는 회식에 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 결심한 적도 있었다
.

회식은 아무래도 병원에서의 긴장을 풀고 인간적인 이야기도 나누면서 서로간의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만, 인간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은, 왜 동기에 비해 나이가 많냐, 의대는 왜 왔냐, 결혼은 했냐, 애는 있냐, 집안일 하랴 병원일 하랴 힘들지는 않냐 등의 질문을 회식 때마다 당하게 된다. 별로 감출 것도 자랑스러운 것도 없지만 약간 특이한 존재가 되어 비슷한 대답을 하다 보면 사실 마음이 허탈하다. 내가 속한 집단에서 나는 이런 pattern으로만 질문 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 싶어서
….

나에 대한 우호적인 마음으로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를 평가하는 날카로운 시선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은연 중 깨닫게 되었다
.

또한 내가 살면서 얼마나 깊이 마음을 열어놓고 사나, 얼마나 진지하게 살고 있나 별로 자신도 없고 늘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지만, 회식의 많은 시간이 겉도는 이야기들로 채워진다는 느낌도 받는다. 나는 그저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생각,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대화를 주도할 만한 능력도 없다는 생각, 바쁘고 힘들고 졸린데 그 자리를 지키고만 있다는 느낌이 들 때면 참 내가 한심하다
.

나는 서너 명이 모여 수다를 떨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그에 대해 마음껏 비판하고(만약 더 친하다면) 비난도 서슴없이 퍼부을 수 있는 그런 왁자지껄한 술자리가 좋은데, 그 이상의 자리로 확장되면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것 같다
.

지난 주처럼 Term change 주간에는 선생님들도 그 동안 수고한 전공의들에게 회식 자리를 마련해 주시는데 그것이 이리 저리 겹쳐 3~4일 회식이 연속되면 몸은 몸대로 피곤하고 마음도 공허해진다. 공허해하는 내가 다소 병적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

내가 인턴 때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울려대는 call의 대부분은 1년차의 order가 인턴의 업무를 지시하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한 과의 모든 레지던트, 인턴이 같이 점심을 먹는다는 모 병원의 시스템이 참 부러웠다. 굳이 특정한 날에 모여 어색함을 풀고 인간미를 느끼기보다는 일상적으로 매일밥을 같이 먹는다는 행위가 서로간에 더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여유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

어떨 때는 회식에서 먹는 음식 자체가 매우 부담스럽다. 평소에 내가 먹고 사는 음식보다 훨씬 비싼 음식을 먹을 때면 우리가 십시일반해서 내는 돈도 아니고 어딘가 출처가 있을 텐데, 과연 우리가 한끼 먹는 식사에 이렇게 돈을 많이 써도 되나 싶은 아줌마 근성이 나온다. 또 이렇게 쓸 돈이 있다면 먹는 것에는 돈을 좀 덜 쓰고 다른 일이 쓰면 안 되나 하는안티 근성도 나온다


밥만 먹는 회식도 있지만, 술이 동반된 회식은 회식 후반부의 분위기가 평상시 통제 가능한 상황을 넘어서기도 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 여자 의사가 별로 없는 과에서는 성추행이나 언어적 성폭행이 오가기도 한다. 이렇게 망가지면서 술을 마셔야 친해지게 되는 것일까 싶게 많이 마시기도 한다. 물론 아무리 마셔도 다음날 회진준비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여러 유형의 한계상황이 오겠지만 억지로 술 먹고 또 그 술기운을 이겨내며 다음날 병원일을 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은 아닌 것 같다
.

4
월초, 내과 입국식에 가서 1년차들이 술을 많이 마시고 일종의 신고식처럼 자기 소개를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술자리가 시작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이미 발음이 꼬이고 소리를 꽥꽥 지르며열심히 하겠습니다를 외치는 모양이 내가 90년에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의 신입생 환영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구식이었다. 이것이 과연 우리에게 통과의례의 의미가 있나 싶었다
.

나이가 많아 이것저것 쓸데없이 불만이 많아졌나 보다. 내가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한계를 괜히 외부로 투사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좀 더 cool하게 지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늘 명백하게 구분되는 삶을 살 수는 없지만 적당한 거리감과 예의, 그리고 서로에 대한 애정이 좀더 자연스럽게 관계맺음할 수 있는 병원문화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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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는 대학병원 가지 마라?

 내과 3년차 이수현입니다
슬기는 초등학교 4학년, 고학년이 되었고, 나는 내과 3년차, 고년차가 되었다. 우리는 둘 다 뭔가 으쓱해진 기분으로 3 1일을 맞이했다
.
병원에서 전화를 받을 때내과 3년차 이수현입니다라고 말하며 내심 뿌듯함을 느낀다. 왠지 높은 사람이 된 것 같고, 내가 말하는 것은 예전보다 더 중요한 것 같고, 뭐 그런 겉멋을 잠시나마 느끼는 것이 크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
이제 3년차가 되었으니 일 하느라 바쁜 1년차에게 핵심만을 가르쳐주고 1년차가 잘 모르는 노하우를 알려주며, 시간이 나면 커피 한잔 같이 하면서 의사로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논의할 수 있는 그런 관계로 잘 지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내가 처음으로 함께 호흡을 맞출 1년차를 기다렸다
.
3
1일 처음 만난 그. 우리는자기 소개를 할 여유조차 없이 환자 파악을 하고 아직 제대로 파악도 안 된 환자들이 급 진료상담을 요청하면 그에 응해야 했다
.
그렇게 뒤죽박죽 시간이 엉키자 서로에게 익숙할 시간도 없이, 서로의 스타일을 확인할 틈도 없이, 당장 눈앞에 떨어진 일을 처리하느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일 중심의 관계, 그렇게 썰렁한 관계를 형성할 수 밖에 없었다.

개구리, 올챙이와 회진 돌다

1년차 때 겪었던 painful memory.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 스스로도 이미 괴로워하고 있는데, 그 일을 수없이 들춰내며 숨돌릴 틈도 없이 몰아쳤던 윗년차들의 가시돋친 질책들….
1
년차 때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펑크가 나고 일도 제대로 안 됐다. 검사결과를 제때 얻어내기 위해서는 병원 각 조직의 행정적인 업무절차까지 파악해야 하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환자마저 나에게는 정보를 숨긴 채 윗년차가 물어보면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배신을 했었다. 나는 한다고 했는데, 왜 중요한 일은 기억을 못하는 것일까. 왜 가장 중요한 일은 펑크가 나는 것일까. 여기저기서 하도 야단을 맞아서 누구한테 뭣 때문에 야단을 맞았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
그런 일을 나의 1년차는 겪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굳은 다짐이 있었건만, start는 역시 시원찮다. 지금 나와 함께 일하는 1년차는 내가 겪었던 그 혹독한 시간을 거의 똑같이 맞이하고 있다. 그는 초임자의 고통을 감내하느라 허덕이고, 나는 supervisor로서의 적절한 역할을 찾지 못해 허둥댔다. 그렇게 3월의 첫 일주일은 흘러갔다.

Practice training의 부조화

1년차가 환자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실행해야 하는 것은 오더를 빨리 내고 검사 진행을 확인하며, 펑크없이 일들이 처리되기 위해 각종 검사실, 병동, 윗년차 선생님들과의 긴밀한 연락을 통해 환자에게 제때의 검사, 치료 등이 제공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뭐가 되었건 많이 해본 사람이 능숙하고 실수가 없으며 환자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다.
Fever
가 반복되는 환자. Catheter change가 필요했고 혈관이 약하고 가늘어 지금 갖고 있는 femoral line을 제거하고 다른 쪽으로 central line을 잡아두는 것이 필요한 상황. 1년차는 밤 12시에 환자를 찾았고 자던 환자를 깨워 반대쪽 femoral line insertion을 시도하며 낑낑 대다가 1시쯤 포기하고 말았나 보다. 아침에 가보니 보호자가 서운함과 속상함으로 눈물을 비친다
.
환자를 위해 적절한 practice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명제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올챙이적 시절이 있지 않은가
!
1
년차는 일도 잘 모르고, 병원의 시스템을 모르고, 다른 과 일하는 패턴도 모르고, 예전에는 공부 좀 한다고 생각했던 하드에서는 지식이 출력되지 않고, 피곤에 쩔어 RAM도 기능이 떨어진다. 그가 좀 더 익숙해지도록 나도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고 그에게 시간을 허락해야 할 것이다
.
그러나 나는 다음날 내가 직접 central line insertion을 하였다. 보호자가 나에게 해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보호자의 눈물 앞에서 1년차가 배워야 할 덕목을 강조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반드시 해내라고 강요하며 환자의 약한 혈관 이곳 저곳을 찔러보게 할 수는 없었다
.
그런 식으로 일을 하다보니 정작 나의 1년차는 뭔가를 배우지도 못하고 원리도 깨닫지 못한 채 내가 바쁘게 서두르며 일하는 과정을 그저 지켜보고 있다. 그런 나를 거북해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
내가 개입하지 말고 그에게 전적인 책임을 맡겨 주고, 만약 일이 안되면 혼 나는 것도 그의 몫이므로 그냥 지켜볼 것인가! 1년차는 환자들의 모든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야 하는 책임감 강한 주체로 성장해야 한다고 다그치며 상황을 observation 할 것인가! 아니면 하루가 급한 일은 내가 나서서라도 해결하면서 일단 업무를 진행하고 진료를 우선으로 할 것인가! 정말 아픈 사람은 3월의 대학병원을 피하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반복되는 고행의 길

지난 주말 동안 1년차 수련회가 있어 이틀간 나는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우리는 사실 지난 1주일간 서로 적응하지 못하고 역할을 제대로 분담하지 못하며 몸과 마음을 소모하였다. 아무래도 내가 고년차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병원과 조직, 사람들의 관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나보다.
의사로서 사는 동안 매우 다양한 지위의 의사들, 간호사 및 기타 인력들과의 수많은 접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뭔가를 성취하고 일을 추진하려면 카리스마가 필요하고 리더십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
아직까지는 나의 역할 모델, 리더십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1년차 일을 하면서 허덕이는 수준인 것 같다. 나만의 카리스마! 서로가 부족한 탓에 그도 힘들고 나도 힘든 한주일
.
역시 painful memory로 가득찬 1년차를 보냈던 동기가 나를 격려한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좋아질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그래야 할 텐데….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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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우수전공의가 되고 싶었다

 

나는우수전공의가 되고 싶었다. 환자도 잘 보고, 동료 선후배와 관계도 좋고, 틈틈이 공부도 하고, 이를 바탕으로 논문도 쓸 줄 아는 excellent 한 바로 그런 전공의.

한때는 나도우수하다는 형용사가 나의 존재를 규정하는 상황에 익숙했었다. 그러나 그 한때는 너무 오래 전의 일이 되어 버렸다. 고백하건대, 뒤늦게 의대에 들어오고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치는 동안, 나는 누군가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고 격려받으며 일하는 상황이 그리 많지 않았다
.

물론우수하다는 것은 지위와 입장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는 측면이 있다. 그리하여 보편적으로 혹은 탁월하게 '우수한' 존재가 아닌 이상 적절하게 인정받기 힘든 것이 전공의 신분인 것 같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우수 전공의가 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내 좌절감은 별로 위로받지 못한다
.

나는 많이 배웠다


하지만 나는 많이 배웠다. 내가 지금 일하는 병원에서 배운 특히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bedside keeping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중환이 생겼을 때 환자의 바로 곁에서 vital sign을 체크하고 잠 못 자며 lab f/u하고 medication을 조절하며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는 교과서에서, 강의에서, 말로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부대끼는 동료, 선배들의 실천 속에서 획득되는 중요한 경험이요 기술이자 성실함이다.

내가 일하는 병원조직에 비합리성, 비효율성, 비민주성 등 비판해야 할 측면이 많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 자랑스러워 하는 구석이 있다면 바로 '환자를 보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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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최선을 다했던 환자가, 곧 죽을 것 같았던 환자가, 소변이 하루 종일 한 방울도 안 나오던 환자가 걸어서 퇴원하는 모습을 볼 때, 그가 고맙다며 건네는 음료수 한 박스를 받을 때면 잠못이룬 수많은 밤들은 모두 다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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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허덕이며 많은 환자를 보고, 그러다가 중환이 생기면 그보다 덜한 환자를 제대로 보지 못해 항의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힘들고 괴롭고 절망적일 때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항상 경중을 따져 급한 일과 덜 급한 일을,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을 가리는 것도 배웠다
.

그래서 집에 못 가고 밤 늦게까지 EMR을 점검하면서 내일의 회진과 할일을 정리하는 것이 전공의의 도리인 것으로 체화시킬 수 있었다. 환자를 보느라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집에 못가게 되어도 그것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각인되었다. 그렇게 각인된 습관이 병원에서의 생활을 지겹고 불만스럽지 않게 지낼 수 있게 도와준 것이 아닌가 싶다
.

그러나 초조하다


그러나 객관적인 기준으로우수전공의를 평가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논문이다. 그것은 비단 전공의 뿐만 아니라 전임의나 직급을 막론한 대학교수들에게도 공히 적용되는 기준이다.

나는 대학원에서 사회학 논문을 쓴 이후 의학논문을 쓴 적이 없다. 당연히 어느 저널엔가 기고한 논문도 없다. 그래서 나의 논문 점수는 빵점이다. 우리 동기 몇 명은 논문, case report 등으로 알뜰히 점수를 챙기고 있는 것도 같다. 물론 나도 아주 가끔은이런 것은 논문을 써 봐도 좋겠다거나나와 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던 다른 사람은 없는지 자료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건 정말 순수한학구열비슷한 것이었다. 나는 전문의 시험 응시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남들은 2년차 때부터 논문을 쓰거나 최소한 준비라도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

그러나 나에게는 공부에 대한 의욕보다 환자를 봐야 한다는 압력이 훨씬 크다. 정말 꼭 필요한 지식을 찾아보는 것 외에는 더욱 포괄적인 배경지식을 학습하고 더 나아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작업은 생각하기 힘들다. 시간을 투자하고 몸을 소모하며 일하고 났을 때 뭔가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리라
.

드물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모든 과정들을 균형적으로 잘 수행하여 부럽기 짝이 없다. 또 더욱 드물지만 환자를 보는 일에는 별로 열정이 없으나, 논문을 쓰거나 자료를 축적하여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사실 부럽다. 그리고 내심 마음 한구석에서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느껴지는 것은, 의사 개인을 평가할 때 bedside keeping에 대한 것보다는 잘 쓰여진 논문 한 편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지표가 된다는 점이다
.

그러므로 3~4년차가 되면 논문의 압력과 study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내 것을 발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다. 2년차도 끝이 보이는 시점이 되니, 마음이 무지 초조하다
.

벌써 절반? 아직 절반?


내가 공부를 안 하고(혹은 못 하고), 논문을 쓰지 않는(혹은 쓰지 못하는) 것이 비단 나 자신의 문제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의 위축된 자아는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나는 이제 곧 3년차가 되고, 뭔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보다는 책임감있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지위로 가게 될 것이다.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무엇을 잘 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모든 것을 잘 할 수 없다면 뭔가를 선택해야 할 텐데, 도대체 뭘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

요즘에는 부쩍 그런 존재적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모든 면에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뭔가 하나에는우수한전공의가 되고 싶었는데…, 벌써 전공의 시절이 절반 가까이 지났다. 기회가 아직 절반이나 남아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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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럴 때 울고 싶다

 

오후 5 40. 응급실, 내시경방 간호사, 직원들은 퇴근 준비를 마칠 시간인데, ‘목에 조개껍질이 걸렸어요를 주소로 내원한 환자가 응급실 EMR 명단에 떴다.
 
방금 전에 찍은 neck lateral view에서 esophagus에 걸려있는 조개껍질, 2cm가 넘는다. 응급의학과에서 연락이 오기도 전에 나는 이미 환자를 보러 간다
.

그건 내가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시간상 정규시간 전후로 내시경방 당직 chief도 바뀌고 notify하는 staff 선생님도 달라지고 여러 모로 당직 이후로 넘어가면 시간이 delay되기 쉬울 것 같아 나는 lab도 나오기 전에 환자를 보고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다
.

사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는 진정한 응급도 많지만, 수많은 과들을 적재적소에 연결하고 언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notify를 잘 하는가가 일을 수월하게 하는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상당한 센스가 -혹은 눈치가- 필요하다
.

이 환자가 온 시간은 5 40분이지만, 사진찍고 응급의학과에서 환자 보고 lab 나오고 응급실 내과 담당인 나에게까지 연락이 오려면 1시간 이상 시간이 소요될 것이 뻔하고, 그렇게 되면 당직시간에 응급내시경을 해야만 한다. 이건 여러 모로 복잡한 일이다. 따라서 나는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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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ray
에서 보이는 조개껍질은 매우 날카롭고 크기가 커서 시간이 지날수록 감염이나 주위 조직으로 염증이 확산될 확률도 커질 듯 보였고, 위치가 식도이니만큼 꺼내다가 식도벽이 찢어지거나 종격동염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았다. 환자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정작 내시경적 시술을 하는 사람에게는 꽤 부담이 될만한 상황이었다. 심할 경우 식도절제술을 해야할 수도 있다고 환자에게 설명한 후 나는 부랴부랴 소화기내과 선생님들께 연락을 취했다
.

물론 별 일 없이 순조롭게 조개껍질을 꺼냈고 환자는 불편감없이 내시경을 마쳤으며 내가 발빠르게 뛴 덕분에 그 환자는 시간지체없이 문제를 잘 해결했다고 생각하여 마음이 뿌듯했다. 비록 혈압이나 맥박 등의 vital sign이 흔들리는 환자는 아니었지만, 빨리 해결해 주는 것이 필요한 환자였으니 말이다. 내시경을 마친 환자는 당장 귀가하고 싶어했지만 chest pain, fever 등의 sign이 나타나지는 않는지, pneumomediastinum, mediastinitis 등의 합병증은 발생하지 않는지 경과관찰이 필요했기 때문에 하룻밤은 응급실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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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롭게 내시경을 마쳤기 때문에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혹 문제가 생기면 크게 생길 case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퇴원은 다음날로 미루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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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일처리는 원래 이렇게 늦냐?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 담당 staff 선생님은 병동의 입원환자가 30명이 넘었고 토요일 오전 진료가 12 30분까지 예약되어 있는 상태였다. 병동 회진을 돈 다음 시간이 부족하셨던지 바로 외래로 가셨고, 외래 환자도 많아서 1 30분까지 외래 진료를 보신 후 부랴부랴 응급실로 내려오셨다.

어제 그 환자는 선생님을 얼굴을 보자마자 잘 치료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아니, 환자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면 어떻게 해요?’라고 따지기 시작한다
.

나는 물론 선생님도 매우 당황스러워하셨다. 나는 이미 오전 10시에 환자에게 퇴원이 예정보다 늦어질 수 있고 시술을 해 주신 선생님 얼굴 뵙고 별 문제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주의사항을 듣고 가시는 것이 좋겠다며 기다려 줄 것을 설명한 바 있었다. 하지만 환자는 기다리다 지쳤는지 다짜고짜 따지기부터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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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생님과 응급실의 다른 환자-그날따라 왜 그렇게 중환이 많았는지- 회진을 도는 동안 내내 전화가 울렸고, 회진 후 나는 겨우 전화를 받았다. 간호사가 보호자 전화라며 계속 전화하고 있으니 받아달라고 한다. 아까 그 환자의 딸이다. 전날 본 기억이 난다. 나에게 20분이 넘게 역정을 낸다. 세브란스병원은 원래 일처리가 그렇게 늦냐, 도대체 그 교수라는 사람은 뭘 하는 사람이길래 1시가 넘어서 회진을 도는 거냐, 환자를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게 말이 되냐 등등의 불만을 계속 쏟아낸다. 내가 설명을 할 시간도 없이 퇴원이 늦어진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였고, 나중에는 나에 대한 인신공격적인 말까지도 쏟아져 나왔다. 내가 아까 환자에게 이미 다 했던 설명을 다시 한번 하면서 환자에게 양해를 구한 바 있다는 말을 하자, 자기는 처음 듣는 말이라며 나에게 오히려 화를 낸다
.

나는 너무 속상하고 어이가 없어 말을 하면 눈물이 나올까봐 아무 말도 못했다. 우리 병원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잘 아는데, 그리고 그 보호자의 지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며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병원의 시스템, 의사들의 일하는 방식 때문에 오해할 수도 있고 화가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만, 나는 너무나 속이 상했다. 그 사람의 문제가 빨리 해결될 수 있게 발로 뛰고 연락한 사람은 바로 나고, 그 사람의 문제가 신속하게 처리되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는 또 몇십 분을 기다렸어야 했는데, 정작 환자와 보호자가 화를 내며 달려드니 나는 오만정이 다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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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의사로서 자질이 없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힘들어하는 환자에게환자분, 기운내세요. 항암치료를 하는 과정이지만 약이 독이 되는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치료적인 효과가 더 크기 때문에 쓰는 것이니 잘 드시고 기운 내셔야 되요라는 말을 했다가, ‘지금 독이라고 했나요? 독이 될 수 있는 걸 나에게 쓰면서 기운내라구요? 당신 의사로서 자질이 있는 사람 맞나요? 당장 이 방에서 나가주세요.’라고 불벼락을 맞은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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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외과는 수술하고 환자에게 회진도 안 오냐? □□ ××학번인데, 수술한 의사 당장 병실로 오라고 해.’, ‘오늘 저희 과 수술이 하루 종일 있었습니다. 환자분 상태에 지금 큰 이상이 없어서 순서대로 회진돌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도 그렇지 수술 직후에 회진돌아야 되는거 아니야? 네가 하루 종일 수술하는 과 선택해서 일하는 거면서 밥 못먹고 수술한 게 자랑이야?’ 반말로 욕 하는 보호자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당황해하는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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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나빠진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기고 급한 대로 필요한 order와 환자 처치를 하고 병실로 돌아왔더니 배가 아파 죽겠는데 의사란 사람이 두 시간이 지나도록 와 보지도 않고 뭐 하는 거냐며, 당신 자식이 이렇게 아프면 가만히 두겠냐며 펄펄 뛰는 어머니. 다른 의사에게라도 연락을 취해서 PRN 진통제를 줬으면 이렇게까지 보호자가 화를 내지는 않았을 텐데, call 한 번을 놓친 나에게 더 이상 연락없이 환자를 아프게 내버려 둔 병동 간호사도 원망스럽지만, 24시간 내내 한 환자 곁에 keep 하면서 일할 수 없는, 그 넓은 병원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면 일하는 나에게 이렇게까지 화를 낼까? 내가 평소에 그 환자에게 뭘 그렇게 잘못했었나 자책하는 동기
.

의사들 중에도 사회성 떨어지는 사람 많지만, 사회성이 떨어지고 상식적으로 말 안 통하는 환자나 보호자들도 꽤 있다. 나는 정말 그 환자 때문에 애를 많이 썼는데, 아주 어이없는 문제를 꼬투리 삼아서 나에게 화를 낸다
.

내가 울고 싶어질 때는 윗년차나 staff 선생님에게 혼나거나 질책을 당했을 때가 아니라 이렇게 환자가 나에게 보복할 때이다. 자존심이 상해도, 불합리하게 혼이 나도, 어처구니없이 깨져도, 내 스케줄이 망가지고 기분이 너무너무 나빠도, 환자만 괜찮으면 다 참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반격을 당할 때면 아주아주 일할 맛이 떨어진다
.

누구나 병원에서의 불쾌한 경험들을 이야기 해보라고 하면 끝이 없다. 의사는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 그러나 의료가 무조건적인 서비스고 환자는 고객이며 의사가 서비스맨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고객의 권리의식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정말 우아하고 교양있는 환자는 무조건적인 자기 주장이나 자기중심적 요구를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게 내 힘을 빼는 환자들이 가끔 있다. 나는 그럴 때 가끔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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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미쳤니? 왜 그랬니?”

 

해는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고 사방이 어둑어둑해지는데, 등에 들쳐 업은 애는 배고프다고 울며 보채고, 저녁 밥상을 차려야 하는데 불씨는 안 살아나고, 화장실도 못 가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전래동화 속 아낙의 모습이 떠오르는가.

카운터가 휴가를 가 버려 그가 했던 낯선 일까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전화에 이리저리 몸은 바쁜데 효율은 없이 진땀 혹은 식은땀을 흘리며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나
.

나는 카운터가 휴가를 떠난 동안 지옥의 한 주를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휴가 중이다. 물론 내 카운터가 지금 지옥의 한 주를 살고 있을 게다
.

무식함과 피곤함의 불협화음


지옥의 주간은 그 전주부터 뭔가 좋지 않은 기운이 서린 데서 시작됐다. 연속 3일간 하루 2시간미만의 수면시간으로 버티다가-이틀에 한 번 당직이지만 당직이 아닐 때도 집에 가지 못하고 뭔가 꼼지락거리면서 할일이 많았다-4일째 당직을 서는 날. 나는 늦은 시간도 아닌 저녁 10시 반 경 1년차 당직으로부터 call을 받았고 직접 그의 얼굴을 대면하기까지 했다.

선생님, 환자가 vital stable하고 mental alert한데, telemetry V-tach이 계속 지나가요
.”

“(
유령 같은 표정으로) 얼마나 오래 지나가는데요
?”

오늘 입원한 환자인데요, telemetry 걸면서부터 non-sustained V-tach이 살짝 살짝 몇 번 지나갔는데요, 좀 전에는 한 6분 지나간 것 같아요
.”

“(6
분이라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음. 사실 들은 기억이 없음) 그래요? Vital stable하다구요? 제가 가서 한번 볼게요
.”

“(
멍한 상태에서) 환자분, 괜찮으세요
?”

지금은 괜찮다는 환자 말에 나는 다시 의국의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신환 review도 하고 내일 외래로 올 환자의 퇴원요약지도 정리하면서 능률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2
시간이 지나 다시 1년차 당직의 call. “선생님, 아까 그 환자가 이번에는 LOC(loss of consciousness)가 있으면서 V-tach이 지나갔어요
.”

그제야 나는 정신이 들면서 이렇게 두고 볼 환자가 아닌 것 같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왔다. 아마 한참을 졸다 깨다 반복하면서 어느 정도 수면이 보충이 되어 정신이 들었던 모양이다
.

다시 환자를 보러 갔을 때 환자는 내 앞에서 의식을 잃어 주었고 EKG monitoring 상으로 non-sustained V-tach이 길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환자는 tachybradycardia syndrome으로 지난 4월에 pacemaker를 넣었고 어제 박동기클리닉에 내원하여 뭔가 setting을 바꿨다고 했다
.

나는 그때부터 마음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우선 당직 3년차 선생님께 연락을 했다. 환자는 자꾸 정신을 깜박깜박 잃는 모습을 보이더니 seizure like activity, bradycardia가 심해지면서 Torsades de pointes가 뜨는 것이 아닌가
.

환자는 급격하게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나는 춤을 추는 EKG에 너무 당황했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솔직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

새벽 3시 반 교수님께서 병원에 도착, 환자의 박동기 setting 90회로 늘리자마자 마치 마술을 부린 것처럼 환자가 아주 stable하게 숨을 쉬고 상황이 종료되었다
.

죽다가 살아난 환자


나는 그 새벽부터 하루 종일 여러 윗사람들로부터너 미쳤니? 왜 그랬니?”라는 말을 무수히 들어야 했다. 최고 압권은 내가 찍은 12 lead TdP EKG였다. 교수님께서는 rhythm strip이 아닌 12 lead EKG TdP가 찍힌 건 처음 보셨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런 EKG를 찍기 전에 대부분 management를 다 하기 때문에 그런 rhythm은 잡힐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웬 창피인가!

나는 그 일이 있은 다음 주 화요일 teaching conference로 환자의 case를 발표하게 되었다. 어떤 언어로 그 다양한 EKG를 읽어야 할지, 박동기 리듬은 어떻게 reading을 해야 하는지, 그 환자는 왜 전날 박동기 클리닉에서 setting을 바꿨는지, 바꾼 후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궁극적인 event는 어떤 경과를 거쳐 발생했는지, 나는 어떤 대목에서 오판을 한 것인지 공부할 것도 많고 수없이 EKG를 들여다보아야 했다
.

그러나 그 주는 바로, 내가 카운터 휴가로 인해 2배로 일해야 하는 주간이었다. 3일 연속 응급실과 병동당직을 계속 서야 했고 매일 6~7명의 신환이 들어왔고, 그만큼의 환자가 퇴원을, 또 그만큼의 환자가 다인실로 병실을 옮기기 때문에 오후에 EMR을 띄워보면 환자가 서너 명을 남기고 모두 바뀌어 있었다. Consult를 제때 해결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수술 때문에 operability consult를 낸 외과, 신경외과에서 신경질적인 전화도 점점 잦아진다
.

그러나 무엇보다 내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네가 어떻게 준비를 해도 넌 혼나게 되어 있다는 농담 반 진담 반 교수님의 말 때문이 아니라, 정말 나 때문에 사선을 넘어갔다 온 그 환자, 나의 잘못으로 인해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갔으면 아마 V-fib으로 넘어가서 arrest가 났을 거라는 사실이 내 가슴과 머리를 쥐어박아도 잊혀지지 않았다
.

나는 발표할 case를 준비하다가도, 응급실에서 환자를 보다가도, Torsades de pointes를 공부하다가도, 계속되는 문의전화를 받는 매 상황에서도 그 환자가 마음에 떠나지 않았다. 이제 2년차가 되었으니 1년차 때처럼 환자 management가 잘못되어 하룻밤 사이에 위급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는 미숙함은 없으려니 했던 나의 오만함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었다
.

case를 발표하기 전까지 나는 정말 인생 최대의 위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이 손에 안 잡히니 자꾸 실수하고 여기저기서 안 좋은 소리를 듣게 되면서 내 기분은 점점 다운되었다. 정작 발표를 하려면 EKG reading도 잘 안 되고 뭐라고 해석을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TdP의 이론에 대해서는 공부를 했지만, 정작 이 환자에서 EKG를 보면서 어떤 시점에 어떤 변화를 감지했어야 했는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적절했을지에 대해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발표 전날, 윗년차 선생님, fellow 선생님, 교수님들로부터 꾸중 반 가르침 반 싫은 소리를 듣고서야 내 입에서 겨우 뭔가 우물우물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

누나도 나와서 도와줘야 해!’

이번 사건은 나의 무식함 때문에 조기에 해결되지 못하고 환자가 위험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너무 피곤해서 정신이 없기도 했다. 뭔가 심각한 말을 들어도 반응이 있기까지 내 두뇌회로가 작동하는 시간이 너무 느렸다. 오늘은 휴가 5일째인 목요일이지만, 어제까지는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기만 하면 계속 졸았다. 아주 오랜만에 가족 여행을 떠났지만 내가 심하게 조는 바람에 슬기는 화가 단단히 났다. 나는 휴게소에 도착할 때마다 커피를 마셨지만 쏟아지는 잠을 조절할 수 없었고 저녁을 먹고 나면 9시부터 꾸벅꾸벅 졸다가 언제 잠자리에 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을 자고 있었다.

하루 10시간 이상의 수면을 4일동안 취하고 나니 오늘에야 비로소 정신이 좀 든다. 그 사이 내 카운터는 힘들고 처절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마치 1주일 전에 내가 그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 때 내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건 같이 일하는 카운터밖에 없었다. 그는 휴가 중 이틀을 반납하고 병원에 나와 나를 도와주었다. 그때의 고마움이란…. 물론 그는 농담처럼 나에게누나도 나와서 도와줘야 해!’라고 말했다. 당연하지
.

오늘 집에 도착했으니 내일 병원에 가마. 병원에서 연차별 경계를 넘어서, 부서별 경계를 넘어서 누군가의 일을 떠안아주기는 정말 힘들다. 기대하지도 말아야 한다. 한 배를 탄 동기, 같은 파트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
.

인생을 오래 살지도 않았는데 인생의 위기 운운하는 게 다소 건방져 보이기는 하지만, 내 카운터와 나는 인생의 위기를 넘기고 있다고 서로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서로에게 위기를 잘 넘겨야 한다고 궁상을 떨면서, 서로가 없으면 절망스러운 마음을 공유할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

휴가도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면 이제 더 이상 무식함이 용서되지 않는 명실상부한 2년차로 자리 잡아야 할 때다.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의욕도 살아나리라. 휴가 끝 무렵, 마음만이라도 의욕의 불씨를 지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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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버려야 할 것들

 

2년 전 내가 인턴을 처음 시작할 때, 평일 약제부에서 지정한 시간 이외 혹은 공휴일에 항암제 처방을 내면 인턴이 항암제를 조제했었다. 약제부도 아닌 암병동 한켠에 위치한 조제실에서는, 약제부가 지정한 시간 내에 chemo order를 못 낸 레지던트 때문에(!) 인턴들이 우글우글 모여 chemo mix를 하는 풍경이 자주 연출되곤 했다.

하지만 공휴일에 chemo start 하는 것이 레지던트의 책임이겠는가. 휴일을 앞두고 원무과에서 환자를 입원시킨 거고, routine schedule에 따라 투약하면 되는 chemo를 굳이 일요일이라고 delay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정규 mix 시간이 없는 일요일에도 chemo는 시작되어야 했을 뿐이다
.

때문에 인턴들은 다른 일을 미루고 오전 내내 mix 실에 붙어서 심하게는 10개 이상의 항암제를 mix해야만 했다. 어떤 약을 NS로 미리 녹이는지, 어떤 solution을 섞어서 mix하는 것이 맞는지, 1 vial에서 얼마를 덜어서 maintain fluid에 섞는 것이 맞는지를 따지고 계산하느라 여러 명의 인턴들은 그 좁은 공간에서 머리를 맞대야 했다. 한번은 cisplatin 10병이 들어있는 box를 떨어뜨려 그 중의 몇 병이 깨지는 일도 있었고, 급한 마음으로 mix하느라 손이 찢어져 10바늘 이상 suture를 해야만 했던 동기도 있었다
.

나는 당시 약사가 해야 하는 일을 왜 인턴이, 그것도 정작 doctor job을 해야 하는 시간을 반납해 가면서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해 심히 분노하였고, 항암제 mix라는 낯선 일을 하느라 primary call을 받는 내과 인턴이 환자도 못 보고 약 조제에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

그래서 당시 우리 인턴 동기들은 교육수련부를 통해 약국에 약사를 더 고용하여 항암제 order를 낼 수 있는 시간을 늘이고 공휴일도 약제부에서 항암제를 조제해 줄 것을 건의하였다. 그 결과 제안한 대로 다 되지는 않았으나 항암제 조제 시간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었다. 또 인턴이 항암제 조제를 할 경우 약물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으니 order를 가능한 규정 시간 내에 내서 정식 조제실 mix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부득이하게 규정 시간 이외에 항암제 처방을 하게 될 경우 담당 레지던트가 직접 mix하도록 지침이 변경되었다. 그래서 규정 시간 이외 항암제 조제를 의사가 하는 경우 그것은 담당 primary 레지던트의 몫이었다
.

이걸 왜 인턴이 해야 하나?

얼마 전 토요일 오후, 나는 2명의 환자 보호자들과의 면담에서 현재 암 병기상 수술은 어려우며 항암치료가 가능하다는 설명을 하였고, 이에 대해 가족과 환자는 꽤 오랜 시간 상의하더니 오후가 되어서야 항암치료를 받겠다고 결정하였다. 그래서 나는 토요일 오후에 항암제 처방을 내게 되었고, 결국 나는 퇴근을 미룬 채 항암제 조제를 위해 아주 오랜만에 항암제 조제실로 향했다. 여전히 좁디 좁은 조제실, hood에서 뿜어져 나오는 더운 공기, 그리고 엊그제 term change가 되어어리버리한표정으로 조제실 주위를 왔다 갔다 하는 인턴들이 있었다. 과연 저게 모두어쩔 수 없는’ order였을까 싶을 만큼 많은 항암제들이 쌓여 있었다. Maintain fluid와 내가 주입해야 하는 약물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은 아는지, 1 vial에 몇 ml가 들어 있는지, solution으로 녹이면 몇 ml가 되므로 몇 ml를 뽑아야 규정된 항암약물의 농도를 맞출 수 있는지에 대해 계산은 한 건지, 그들의 몸놀림은 불안해 보였다. 원래 인턴이 하지 않기로 되어 있는 업무인데 왜 이렇게 인턴들이 많이 모여 있는지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하였다.

조제실이 좁아서 내가 들어가 조제를 하는 동안 다른 사람은 들어오기 힘들 정도로 공간이 협소한데, 한 인턴 선생님이 들어와서 옆 자리에 앉아 주사기와 약병들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더니선생님, 어떤 needle로 해야 하는 건가요? ○○cc를 맞춰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며 나에게 묻기 시작한다
.

나는 불안한 마음에이 약이 어떤 병에 들어가는 게 맞는 건가요? 어떤 환자용으로 mix하고 있는 거지요?”라며 그에게 질문한다. 갑자기 두 사람은 땀을 범벅으로 흘리며 그 좁고 더운 hood 아래서 mix 용량을 계산하고 약을 환자별로 다시 분류하였다. 익숙하지 않은 그의 손놀림이 불안해 나는 그를 도울 수밖에 없었다
.

아마도 지금 인턴 선생님들이 이렇게 routine으로 규정 시간 외 항암제 조제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지금 1년차들은 자신들도 이렇게 일 했으니 인턴이 이 일을 하게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 결국 우리가 1년차가 되었을 때 인턴에게 일을 내린 셈이 되고 악습이 다시 반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

사실 1년차가 항암제 조제까지 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그래도 우리가 인턴 때는 규정이 바뀌면서 1년차 선생님들이 했던 일이다. 그것이 언제부터인가 다시 인턴의 일로 내려갔다는 사실에 대해 실망스럽고 부끄러웠다. 2년 전 여러 명분을 내세워 인턴이 항암제 조제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고 그 결과 정식 문서화는 아니더라도 규정이 바뀐 바 있었는데, 그것을 우리 스스로 암묵적으로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

2
년 전 당시 동기 인턴들은 모두 분노했었다. 왜 우리가 그걸 해야 하냐고. 2년 후 확인된 현실은 다시 인턴의 항암제 조제가 관행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현재 우리 동기들은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

개구리가 된 올챙이

원칙적으로 되짚어야 하는 문제는 항암제 조제가 의사가 아닌 약사에 의해 시행되도록 약국 인력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리라.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내 폐부를 찌르는 것은, 이제 개구리가 되어 올챙이적 생각을 너무 안 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지금에 와서 그때의주장들을 되짚어 보면 결국 우리가 인턴으로서 그런 일을 하기 싫어서 떼를 쓴 것이었거나, 아니면 1년차, 혹은 2년차가 되었다고 인턴 시절에 겪었던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겪었던 분노들을인턴 때는 원래 그런 거야라며 은근슬쩍 덮으며 넘어가 버리는 것, 둘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었나?

굳이 창조적이고 excellent하지 않더라도, 예전의 관행대로, 권위적 구조에서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당장 해야 할 일들이 펑크나지 않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솔직히 버거울 때가 많다. ‘이걸 꼭 이런 식으로 해야 하나’,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효율적인 업무 진행을 위해서는 role을 바꾸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등의 문제의식을 가끔 느끼지만, 그것을 건의하고 실행하기 위해 누군가와 논의하는 시간을 갖기는 힘들다. 또 누구에게 건의하고 어떻게 건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모호하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되는 대로,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 왔던 일들이 많았고, (현실적으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나도 가끔은 누군가에게 일을 지시하는 입장으로 position이 바뀌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내 내부는 별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아랫사람 입장에서 보면 나도 별 다를 바 없는 윗년차에 불과할 것이 분명하다
.

비만 환자가 되어가다

우리 안에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은 아닐까? 지금 비록 관행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처음 규칙으로 자리를 잡았을 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만한 근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변하면 관행은 깨지고 새로운 규칙이 적용되어야 하는데, 그런 사항들을 충분히 점검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가 ‘as usual’로 지나간다. 또 환자를 보면서 웬만큼 alert하지 않으면 원칙과 관행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힘든 게 솔직한 내 수준이다.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로 사는 사람, 고민은 하지만 대안이 없는 사람, 대안을 꿈꾸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 많은 사람들이오늘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고내일을 위해 오늘 우리가 우리 내부에서 버려야 할 것들을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 전공의 신분으로 바쁘고 정신 없이 사는 것은 영원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금은 의사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attitude가 결정되는 시간으로써 더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내 안의 버려야 할 것들을 제때 버리지 못하고 이 시간을 보내버리면 훗날 쓸데없는 fat만이 온 몸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비만 환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외부를 향해 소리칠 부분이 있다면 내부를 자정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구태의연한 명제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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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 엄마 파견 가다

 

나는 지금 지방병원으로 파견을 나왔다. 남편은 내게파견은 레지던트 생활의 꽃(!)’이라고 했다. 결혼 10년째, 집과 남편과 슬기를 남겨두고 혼자 지방에 내려와 있는 것에 대해 충분히 미안하지만, 가벼운 흥분감이 들 정도의 경쾌함도 부인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나를 경쾌하게 하는 것은 본원 생활의 빡빡함에서 해방되었다는 점이리라. 물론 교과서적으로 다짐한다. 이곳 응급실에서 일을 하지만 내가 보는 환자들에게 나는 그 순간 최선을 다하는 주치의가 되어야 한다.

대학병원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환자를 위한 진료 이외에도 신경 쓸 일이 아주 많다. 다소 순발력이 떨어지는 나에게 그런 일들은 약간 버겁다. 내과 내 각 파트별로 notify system이 달라서 환자를 보며 밤새고 고생한 다음에도 noti를 제대로 못 해서 혼나는 일, 소위 면피용 action을 취하지 못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 취급을 당하는 일, 나의 실수가 인구에 회자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더 위축되는 일…. 어찌 보면 나는 주위 의사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는 데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내 실력과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

파견을레지던트 생활의 꽃이라고까지 말한 남편의 말에는 그런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병원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시간적 여유가 많으니 환자 한 명 한 명을 볼 때마다 책도 찾아보고 고민도 충분히 하리라, 그 동안 이유도 잘 모른 채 관행적으로 처리했던 일들을 되새기며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해 보리라,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이곳 생활을 시작하고자 했다
.

History taking
이 안 되는 환자들

아침에 세면대에 머리를 부딪쳐 쓰러지며 의식을 잃었다는 52세 남자 환자. 그는 그렇게 쓰러져 있다가 오후 7시가 넘어서야 응급실에 왔다. 쓰러진 후 어지럽고 자꾸 토한다면서 자기 발로 걸어왔다. 최근 2년 동안 그렇게 몇 차례 쓰러진 적이 있었다는데, 의식을 잃은 적은 몇 번인지, 의식을 잃은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20년째 혼자 살고 있었다. 병원 기록상 2003 SDH로 수술 받은 적이 있고 alcoholic hepatitis로 소화기 내과를 간간이 찾았던 흔적이 있다. 나중에 나타난 동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20년 전 이혼한 이후 내내 혼자 살았고 2003년에 SDH가 생긴 것은 경운기에 나무를 실어 올리는 과정에서 떨어져 head trauma를 받은 것이며, 원래도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었지만 이혼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소주 1병 이상을 마시고 밥은 잘 먹지 않는 heavy alcoholics로 살아왔다고 한다. 엊그제도 어버이날인데 아무도 자신에게 전화하거나 찾는 사람이 없어 곡기는 끊고 술만 마신 것 같다.

다행히 Brain CT new lesion은 없는 것 같고 AST/ALT elevation 외에 크게 나쁜 소견은 관찰되지 않는다. 하지만 malnutrition, general weakness가 심하니 얼마간의 conservative care가 필요할 것 같아 입원하기로 했다. 환자는 머리가 아픈 와중에도 돈이 별로 없다는 내색을 잠시 내비친다. 그나마 멀리서 동생이 왔으니 입원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그는 퇴원 후 삶의 고단함을 술에 의지할 것이고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Fluid, liver pill, 그리고 신경과 약을 처방하면서도 과연 이런 약들이 그를 cure or care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자신이 없다
.

병원비 낼 돈 없으니 집에 갈래


길을 가던 중 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쓰러졌는데 못 일어나고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병원에 모시고 왔다는 72세 할머니. BP 180/70, HR 110, 산소 5 liter에서 saturation 70% 안팎이다. Chest CHF pulmonary edema. 청진에서는 both lower lung field crackle이 들리고 pansystolic murmur로 청진기가 요란하다. 산소 full mask로 겨우 saturation이 유지되고 medication 투여 후 BP PR이 조금씩 떨어진다. Severe diaphoresis도 약간 나아진 것 같고 foley insertion lasix를 줬더니 금새 urine output 1,000cc가 나온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할머니에게 말을 붙여본다.

할머니, 숨차지 않으세요?” “늘 차” “최근에 더 숨차지 않으셨어요?” “늘 그래서 잘 몰라” “최근에 감기 걸리거나 약 바꿔 먹은 거 있으세요?” “약은 다 떨어져서 안 먹은 지 꽤 됐고, 감기도 걸린 것 같아” “지금 숨찬 거 말고 다른 데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온 몸이 다 아파
.”

몸 여기 저기를 만져보고 두드려보지만 불특정 신체부위가 다 아프단다. 2 chest pain, dyspnea 로 본원에 입원하여 시행한 echo DCMP, EF 40%, severe MR, inferior wall severe hypokinesia, pulmonary hypertension 등 무시무시한 진단명이 기록되어 있다. CHF에 준해 심장내과 선생님이 2주간 약을 처방했지만 할머니는 그 뒤로 외래에 오지 않았다. 약도 그 때만 먹고 더 이상 먹지 않았다고 한다
.

다행히 intubation을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 환자는 중환이다. 마스크를 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함께 사는 분은 없는지, 자녀분은 안 계시는지 여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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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 지 오래됐어. 자식들은 돈 없어서 다 도망가고 없어. 나 병원비 낼 돈도 없으니 입원 안하고 집에 갈래” “지난번 입원비는 어떻게 내셨어요?” “동네 사람들한테 빌려서 냈지. 아직도 못 갚았어. 집 문도 다 열어놓고 와서 엉망이야. 나 갈래” “동네 분들에게 연락해서 집안 단속 좀 부탁하시면 안되겠어요?” “전화번호 몰라


이런 환자가 입원하면 의사가 환자 옆에서 keep하고 밤새 지켜봐야 할 상황인데, 환자는 집에 가겠다고 한다. 같이 온 보호자가 없으니 입원이 어려운 건 아닌가 싶었지만, 환자상태가 중하고 보니 무슨 수를 누가 냈는지 환자는 다행히 입원하였다
.

대학병원에서는 배우지 못하는 것들


환자를 보고 돌아온 당직실, 가슴 한켠이 묵직하고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지방이라 그런지 노인 환자가 서울보다 더 많고 독거노인이 대부분이다. 서울에 있을 때는 성의가 있는 자식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자식들이 부모를 병원에 모시고 온다. Hx도 자식을 통해 어느 정도 알 수 있고 환자 상태 및 필요한 검사에 대해서도 설명하며 진료를 진행한다. 노인의 P/Ex이나 lab이 애매한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환자에 대해 추론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정보들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곳 환자들은 그렇지 않다. 얘길 들어보면 Acute MI가 분명한 것 같은데 3일이나 참다가 병원에 오는 할머니, 평소에 가슴이 답답하다는 말을 하던 할머니가 아침 밥 먹고 갑자기 숨을 안 쉬어서 respiratory hold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알 수 없는 채 놀란 얼굴로 구급차를 부르는 할아버지, 배에 큰 수술 자국이 있는데 그게 무슨 병을 치료하려고 한 수술인지 전혀 모르는 할아버지, BST 500이 넘는데 자신이 당뇨인 줄 잘 모르는 할머니…. 이들은 마음속으로 다들 병원비 걱정, 내일 나갈 밭일만 걱정하고 있다
.

파견 나와서 가장 크게 배우는 것은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보던 관점을 전환하여, 보다 community 가까이서 환자를 접하고 우리 나라 보건의료 체계의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Harrison대로, Washington manual대로 환자를 management하고 약 쓰면서 f/u하는 것이 수련과정을 밟는 레지던트인 나에게 당연한 의무요, 학습의 과정이겠지만, 그렇게 병원 안에서 이루어지는 practice만으로 환자에 대한 care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
.

하지만 ‘So what?’에 대해서는 아직 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일도 아닐 것이다. 의대 학부시절 행동과학 시간에 배우고 난 후 잊고 있었던 sympathy → empathy → empowering의 도식이 생각난다. 어쩌면 난 내 의학적 실력과 지식의 미숙함을 핑계로 sympathy도 메말라 버리고 환자에 대한 공감의 능력도 상실해 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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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식을 전하는 법

 

내가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는 병동의 바로 옆 환자 휴게실에서는 방금 폐암을 진단 받은 환자의 부인이 애써 울음을 참고 있다. 나는 마치 진단명을 고지함으로써 내 할 일을 다한 것인 양 자리를 빠져나와 병동으로 몸을 피한다.

대학병원이다보니 모든 과에 기본적으로 암환자가 많다.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며칠 전에 시행한 조직검사 결과 악성 종양으로 판정되었습니다혹은이번에 새로운 증상이 있어 시행한 추가 검사에서 **, **에 전이가 있는 것으로 판정되었습니다. 치료했으나 암이 진행된 것 같습니다류의 나쁜 소식 (환자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 같은)을 하루에도 수없이 전하는 것이 주된 일과이다. 의과대학 혹은 의사가 되는 어떤 과정에서도환자에게 어떻게 나쁜 소식을 전할 것인가에 대한 communication skill 혹은 empathy attitude를 배운 적이 없으니 매번 실수를 통해 배울 수밖에 없는 것일까
?

환자에겐 평생 한 번, 나에게는 routine


나는 이런 말을 꺼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한다. 환자와 보호자가 같이 있을 때 말할 것인가, 환자에게 먼저 결과를 알리지 않으려면 어떤 보호자가 있을 때 먼저 운을 뗄 것인가, 예후나 치료에 대해서는 얼마만큼 정확히 말해야 하는가, 하루 중 어느 때에 결과를 알려주는 것이 가장 적절할까에 이르기까지, 나쁜 소식을 직접 전하게 되는 전 과정 동안 소심하게 별 걱정을 다하며 망설인다(실상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많기 때문에 시간적 압박에 못 이겨 내면적 망설임의 시간이 길지는 않다). 더욱이 부인할 수 없는 망설임의 이유는 (환자가 병을 이해하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설명이 되어야 한다는 교과서적이고 규범적인 측면도 있으나 솔직하게 내 심정을 말하자면) 어떤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 나의 시간을 save할 수 있는가와 연관되어 있다는 이기적인 측면도 있음을 인정한다.

환자 당사자나 보호자들은 평생 한 번 듣게 되는 끔찍한 말이지만 나는 routine으로 하기 때문에 내심 protocol이 있다. 주로 교수님들께서 환자들에게 설명하는 format을 유지하는 것이 의료진 설명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과가 바뀌면 교수님 style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와 가족들의 family dynamics, 질병에 대한 이해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protocol 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는다. 먼 지방에서, 직장 사정상 도저히 낮 동안의 시간을 낼 수 없다면서 밤 10, 11시가 넘어서 병원을 찾은 친척이 의사를 찾을 때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같은 설명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하는지 가슴을 치며 면담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잘못하면 젊은 사람이 버릇이 없다는 평을 들을 수도 있고, 어떤 병이든 처음 진단 받았을 때 가능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할애하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며 착한 마음을 먹는다. 주먹을 쥐고 내면의 분노를 참으며
….

Gerome Groopman
의 저서 의 초반부에는 저자가 만난 환자들에게 그들의 예후를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이 보인다. 예후가 좋지 않을 것이 예상되는 환자에게 실체를 알리기보다는 긍정적인 측면만을 설명하고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주는 의사, 온갖 세세한 통계를 언급하고 예후나 치료 반응률에 대해 사실적인 설명을 시도하며 객관성을 강조하는 의사, 그 양극단의 spectrum 선상 어딘가에 우리가 서 있을 것이다
.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어떻게모든환자에게 인간적인 나의 연민과 공감을 표현하며 나쁜 소식을 전할 수 있을까? 나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예후나 치료 효과, 치료 과정 등 정확한 사실에 기반한 정보들을 취합해 표준화된 설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물론 환자의 특징을 고려해야겠지만), 가능한 한 질병의 실체에 환자가 직면할 수 있도록 덜 충격적인 방법으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정작 치료를 받고 치료 과정의 힘든 시간을 겪어 나가는 당사자는 환자인데, 그 결정에 환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가족들까지 쉬쉬하며 이리저리 말을 돌리며 너무도 완곡하게 상황을 설명하다 보면 나중에 환자가 실망하고 분노하는 상황이 도래하리라.

비교적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환자가 병의 치료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편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해 왔건만, 오늘은 두 명의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고 퇴원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Lung cancer는 처음 진단 당시 stage lV일 확률이 50% 이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stage ll 로 진단 받고 operable ECOG 0 73세 제주도 할아버지, 다음주 화요일이면 수술이 가능한 상황까지 모든 스케줄이 짜여져 있었건만 그는 오후 회진 때 나를 보자 집에 정리할 일이 많이 있으니 당장 퇴원하겠다며 이미 옷을 다 갈아입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행운의 주인공이라고, 수술하고 퇴원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퇴원하면 원래 했던 농장 일도 조금씩 시작할 수 있다고, 한 달 뒤에 다시 오면 그때는 수술을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나빠질 수 있다고, 설득을 하다 하다 나중에는 내 할아버지 같으면 침대에 할아버지를 묶어놓고라도 수술 받게 하겠다고 아주 감정적인 단어까지 섞어가며 꼭 수술 받아야 한다고 애원(!)했건만, 할아버지는 울먹거리며 퇴원하겠다고 하셨다. 병동 구석으로 가 할아버지와 단 둘이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

도대체 퇴원을 하겠다는 진짜 이유가 뭔가요? 이해가 안 돼요
.”

내 손자가 뇌종양 수술 받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5개월째 이 병원 중환자실에 있어. 나 그 애랑 같이 이 병원에서 치료 받고 누워있기 싫어. 손자 치료로 이미 돈도 다 써버린 자식들에게 부담주기도 싫고. 내가 집에 가서 농장도 팔고 집도 팔고 돈 좀 마련되면 다시 올 거야. 되는대로 빨리 올게
.”

나는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

어수선하게 퇴원시킨 두 명의 환자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말이 어눌한 78세 할머니, 기관지내시경 검사상 lung cancer, T4N3M0 stage lllb inoperable하며 Rt. upper lobe 90% 이상 좁아져 있는 huge mass. 할머니는 1997년 위암으로 수술 받고 f/u 내시경을 2년 전까지 9번 하셨다고 한다. 내시경만 이번이 10번째라고 하셨는데, 검사 후 3일간 열이 계속 난 것이 procedure related인지, obstructive pneumonitis가 생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환자는 검사 후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Staging w/u이 다 끝나 오늘 가족들을 다 불러 진단명 및 병기를 고지하고 관련된 설명을 했더니 정작 환자 당신은 항암치료는 절대 받지 않으시겠다며 저녁 8시가 넘었는데 퇴원하시겠단다. Chronic otomastoiditis 탓인지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자꾸 딴소리를 하는데, 설득도 힘들고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힘들고, 환자와 대면하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 짜증이 확 솟구치는 것이 느껴진다. 지금 퇴원하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고 치료가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warning만 잔뜩 하고 퇴원처방을 냈는데, 퇴원 직전에 38도로 열이 났다. 열 떨어진 지 48시간이 지났는데 다시 열이 나는 것이다. Hospital acquired infection. Pseudomonas cover하는 anti를 써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도식적인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반사적으로 vital sign check한다. 다행히 vital
stable.
Hospital acquired infection
community acquired infection과 다르니 anti를 쓰고 vital sign close monitoring 해야 한다는, 현재 obstructive pneumonitis aggravation되면 lung abscess empyema로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설명을 하지만, 이미 가방을 다 싸고 병실 문을 나선 할머니에게 내 설명은 별 효력이 없다. 가족들도 할머니 뜻을 꺾기는 힘들다며 다소 방관적으로 나온다. 땀 흘리며 설명하는 나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보호자들이다. 나는 그렇게 오늘 두 명의 환자를 어수선하게 퇴원시켰다
.

환자와의 대면(confronting the patient)’에 다시 한번 소심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해답은 현실에서 나올 텐데 과연 내가 조망할 수 있는 현실의 범위는 얼마나 넓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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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차, 집에 있다가 갑자기 불안해지다

 

3 1, 나는 2년차가 되었다. ‘2년차가 되면 정말 좋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어 왔지만, 정작 나는 뭐가 좋은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더욱이 과연 내가 2년차의 자격이 있기는 한 건지 자신감이 없는지라, 솔직히 변화를 느끼기 힘들다. 당직 일수가 좀 줄었고, 나에게 잔소리하는 사람이 줄었고, 여기 저기 감시의 시선을 덜 느끼게 된다는 점은 2년차가 되어 느끼게 되는 자유로움이지만, 그 외의 것들은 아직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새로운 출발의 발목을 잡는 여러 요인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퇴원요약지와 미비기록 정리인 것 같다. 환자가 퇴원하는 당일 혹은 그 다음날에 퇴원요약지가 정리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오전 회진 후 퇴원 오더를 내고 오전 중에 환자 퇴원시키는 것으로도 허덕이는 판에 퇴원요약지까지 제때 정리하는 일은 나에겐 거의 드문 일이었다(똑부러지게 일 잘하는 동료들은 그렇게 야무지게 일처리를 하기도 한다. 정말 존경스럽다). Routine chemotherapy를 받는 환자들의 퇴원요약지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재원기간 중에 특별한 event가 있었으며, 그 일을 어떻게 management 했는지 요약하고, 그 환자가 다음에 입원했을 때 해야 하는 검사는 무엇인지, 무슨 문제가 있으니 약 처방이나 다른 과 협진을 고려하라는 등의 멘트를 남겨야 하는 환자들은 제때 퇴원요약지를 정리하지 못하고 미루다가 시간이 날 때 조금씩 정리하게 된다. 사실은내일 외래 방문일이니 누구 누구 discharge summary 정리해 주세요라는 외래 간호사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외래 내원 전날 밤에 정리하는 일도 많다
.

퇴원요약지를 보다가 아뿔싸!


그렇게 퇴원요약지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예전 order도 다시 열어보고, 해당 환자의 검사 결과도 다시 종합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내가 무슨 검사를 빠뜨렸는지, 퇴원약으로 무슨 약을 추가해 줬어야 하는지, 다음 입원 전에 어떤 검사를 꼭 하고 입원해야 하는지, 제 날짜에 입원장을 주기는 한 건지 등등을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주치의로서 했어야 하는 일들에 펑크가 나 있음도 발견하게 된다. 아뿔싸, 이마에 땀이 흐르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방에 사는 환자에게 전화해서 미리 서울에 올라와 CT를 찍고 입원을 해야 하니 예정보다 일찍 오시라는 둥, CT방에 연락해서 ○○○ 환자가 오면 무조건 찍어달라고 으름장 반, 사정 반으로 통보한다. 약이 빠진 환자가 발견되면 급한 마음에 내 돈으로 약을 사 둔 다음 병원에 오게 해서 약을 건네주기도 하고-열이 있어 IV antibiotics를 쓰던 환자에게 PO antibiotics를 주지 않고 퇴원시켰던 바로 그 환자, 너무 당황해서 처방전을 주는 것만으로는 내 마음이 너무 불안하여- 원무과에 전화해서 입원일을 바꿔달라고 하는 것 정도는 가벼운 episode일 뿐.

가장 심각한 것은 퇴원요약지를 정리하다 보면 그제서야 환자가 제대로 파악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사실이다. 검사 결과를 정리하고 예전 결과와 비교하다 보면, 이 환자에게 이런 문제가 있었구나깨닫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종양학과에서 일할 때는 내가 일하던 두달여 동안 3번 정도 입원하는 환자 그룹이 있었는데, 그들이 퇴원한 뒤 뒤늦게 통탄하며 그 환자의 상태를 파악했던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워, 그들이 다시 입원하면 정말 잘해주고 싶었고 실제로 잘해줄 수 있었다. 좋은 의사란 친절한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고 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처치가 제때에 적절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예측하고 준비하는 의사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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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비기록을 정리하다가 또 아뿔싸!


미비기록을 정리하다 보면 과거의 내가 보았던 환자들에 대한 통탄할만한 나의 실수들이 더욱 더 잘 드러난다. 신기하게도 이름을 보면 어떤 환자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급한 마음으로 내가 갈겨 적었던 transfer out note, ICU admission note를 보는 순간, 땀 흘리고 애타하며 그 환자를 봤던 시간들이 생생하게 눈앞에 떠오른다. 10cm가 넘는 두께의 종이 차트를 넘기며 내가 미처 기록하지 못했던 progress note를 적고 thoracentesis note를 메우고 마지막 퇴원요약지는 사망으로 기록된 그 환자의 차트를 다시 한번 보고 나면,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것을 반성하게 된다.

의무기록을 성실하게 작성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아마 내 생활의 24시간 모두를 병원에서 지낸다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인턴 때는 근무시간이 끝나면 counter에게 call을 넘기고 가버리면 만사형통이었지만, 그렇게 퇴근하는 길에 올려다보는 교수님 연구실들은 모두 불을 밝히고 있었다. 특히 임용된 지 몇 년 안되는 젊은 선생님들은 아마 출퇴근이 의미가 없을 만큼 병원과 학교에서 일상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시간을 투자한 만큼 보람과 성과가 있겠지
.

하지만 오늘 오프인 나는 저녁이 되자 집에 갈까, 아니면 남아서 progress note와 밀린 퇴원요약지를 정리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집에 가기로 했다. 벌써 3학년이 된 슬기와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또한 나에게 일말의 에너지가 남아있을 때 충전하지 않으면 완전히 소모되어 미처 충전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허덕거리지 않겠는가. 나는 할 일들을 남겨둔 채 병원을 나섰다. 그러나 이런 마음으로 매일 살아간다면 항상 일이 깨끗하게 마무리되지 못하고 마감에 임박하여 쫓기듯 일을 하는 형태로 시간이 흘러가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나는 늘 뭔가를 하고 있기는 한데 항상 마음이 다급하고 정리되지 않는 느낌이다
.

조만간 나 스스로에게 미비정리기간을 선포하고 밀린 의무기록을 정리하며 밀린 짐을 덜어야겠다. 잘못된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환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미래의 일, disease progression을 예측하며 준비된 자세로 환자를 볼 줄 알아야 2년차답지 않을까 싶다. 어떤 선생님으로부터중환을 보는 것이 한템포 늦는 것 같다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다시 그런 지적을 받으면 안될 텐데
….

야심찬 고민과 행복한 망상


밤에 당직으로 수없이 울려대는 call로부터는 조금 자유로워졌지만 실제 내가 감당하는 책임의 몫은 더 커졌다.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책임감이 커지는 위치로 변해갈 텐데, 아는 것 없이 책임감에 짓눌리기만 하는 소심한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진다. 내일 아침은 새벽같이 집을 나서야겠다는 초조함이 생기는 것 같다.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되 과거의 과오로부터는 자유롭고 미래를 진취적으로 준비하는 건강한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

1
년차 때 한창 힘들고 일하는 것이 지겨울 때는 3년뒤 내 모습을 떠 올리며 그때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상상했었다. 내가 4년차를 마칠 무렵이면 지금보다도 더 나이를 먹어서, 사회적으로도 참 애매한 나이가 되어 어딘가 자리를 잡기에도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 있을 것 같다는 걱정,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공부와 일의 영역을 잘 선택해야 한다는 때이른(!) 전망에 대한 고민, 완성하지 못한 박사학위 논문은 언제쯤 써야 할지, 주제를 내심 정해 놓은 것이 있는데 바꿔볼까 하는 생각, field study를 위해 지금부터 아예 내가 설정해 놓은 field에서 일을 시작해 볼까, 이제 어엿한 내과 의사인데 주말에는 적절한 곳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정도의 사회적 의무를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정식 의료 지원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소외 공간은 어디일까, 등등의 야심찬 고민을 하며 잠시 망상 속의 행복을 누리기도 했다
.

이제 그때의 망상들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되었는데, 언제까지 과거에 끌려다니기만 해서는 안 될 일이겠지. 조금 부족한 것은 동기부여. drive를 찾기만 하면 멋진 2년차로 생활할 수 있을 것 같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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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나타난 vocal cord

 

미국의 외과 전문의 아툴 가완디가 쓴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1장에는 저자가 학생 실습 때 Rt. subclavian vein catheter insertion 하는 장면을 처음 목격했을 때의 느낌이 서술되어 있다. 보이지도 않는 혈관을 찾아 catheter를 넣는데 어떻게 puncture가 되는 것이며, catheter 끝은 어떻게 Rt. atrium을 향하고 있는지, 혈관을 찢지 않고 어떻게 advance하는지가 신기할 따름이라는 실습학생의 그 놀라움.

내과 1년차가 되어 환자의 vital sign이 흔들릴 때 intubation을 하고 c-line을 넣는 일들이 순식간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위험해질 수 있는 환자들을내가 manage해야 한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고 소명감을 갖게 하는 중요한 일임과 동시에 나의 능력과 판단이 환자에게 치명적으로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주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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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해보는 procedure라 먼저 해본 동기들에게 설명을 듣고 책을 찾아 보지만, 그 누군가는 나의 첫 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속으로는 진땀이 줄줄 흐르지만 마치 여러 번 해본 것처럼 능숙한 몸놀림을 보여 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 제법 두려움 없이 ? 여전히 땀은 많이 흘리지만 - 이것 저것 할 줄 알게 되었다. 또 능숙하게 하지 못하다고 해도 두려움을 갖지는 않는다. 1년차가 끝나가기는 하는 모양이다
.

1
년차가 끝나가는데 아직도

그런 나의 발목을 잡는 procedure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airway를 확보하는 intubation이었다. 사실 평소에나이 먹은’ ‘여자레지던트인지라 못한다는 말 듣기 싫어서 내심 애를 많이 쓰면서 사는 편이다. Excellent하지는 못해도 열심히 하는 것으로 만회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acute management ABC 가운데 A를 위한 필수적 procedure라 할 수 있는 intubation을 못해 본 나로서는 마음 심연에 항시 불안함과 초조함, 그리고 위축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몇 번 blade를 잡고 시도해 보았으나 나는 도대체 vocal cord가 잘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를 보아 mask fitting을 해주며 누군가가 intubation을 할 수 있도록 보조하거나, 옆에서 c-line을 넣거나, 아니면 lab을 점검하며 order를 내거나, portable chest X-ray를 찍거나 검사결과를 빨리 알려달라는 독촉전화를 하면서 정작 laryngoscope 잡기를 사실상 회피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잡을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한두 번 안 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응급 상황에서 다른 할 일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과 시스템이 변하면서 환자가 vital이 흔들리는 중환이 될 것 같으면 미리 ICU arrange를 하여 transfer를 한다. 그러다 보니 병동에서 시급을 다투는 중환 management를 할 기회가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왠지 내 환자 중에는 intubation을 급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초응급 상황에 맞닥뜨린 환자가 없기도 했다. 그리고 간혹 발생하는 응급사태 때에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1, 2년차들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자리에서 intubation을 가장 먼저 시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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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어영부영시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나는 내심 불안, 초조함이 가중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1년차를 마치면 안 되는데…, 꼭 성공해야 하는데…, atlas를 몇 번이나 들여다보고 동기들에게 정황 설명을 들으며 다음에는 어떻게 해봐야겠다, 여러 모로 궁리를 하다 보니 꿈에 그림에서 본 vocal cord가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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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training failure?


그러나 fail 하기를 수 차례 반복했고, 나의 불안함이 느껴졌는지 동기들이 중환이 생기면 나에게 연락을 해 주었다. 와서 intubation 하라며. 얼마 전부터 내과 픽턴들도 들어오고 그들에게 procedure를 가르쳐줘야 할 판에 나도 못하고 있으니, 그런 내가 딱해 보였는지 눈물겨운 동료, 선배들의 기회 제공이 시작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vocal cord가 잘 안보였다. ‘나는 training failure라는 자책감이 엄습하고, 누군가 전화를 해 주면 병동으로 달려가는 내내 두려운 마음이 가득이었다. ‘용기를 내자, 두려움을 떨쳐버려야 해라고 되네이지만, 결국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은 intubation을 성공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던 내게 설 연휴 첫날 또 한번의기회가 왔다. 정월 초하루부터 intubation을 당해야 하는 환자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일이지만, 나는 그 기회를 잘 살렸다. 드디어 intubation에 성공한 것이다. Blade를 들어올리는 순간 vocal cord가 커다랗게 눈에 들어왔고, 그 안으로 tube가 쑥 밀려 들어갔다. 그리고 환자의 both lung field에서는 골고루 숨소리가 들렸다. CO2 retention으로 mental status drowsy해졌던 환자의 ABGA도 금세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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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서 만나는 동기들이 내 등을 토닥이며거봐, 하면 되는 거야. 이제 잘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정월 초하루덕담을 해주었다. 그들이 너무도 고마웠다. 남들보다 한참 늦게, 이제야 겨우 해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제라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더 적극적으로 해보자는 촌스러운 용기가 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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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고 싶고 남에게 미루고 싶은 막막한 상황들이 수도 없이 발생하지만 결국 문제의 해결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되는 것이 1년차의 삶이리라. 그러나 나의 부족함은 내 힘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동료, 선배들의 끊임없는 후원과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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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1
년차 생활이 이제 한 달 남았다. 지난 11개월 동안 수도 없는 위기상황에서 소리 없이 나를 도와주고 지지해준 동료들이 없었더라면 슬기엄마의 레지던트 생활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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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차 말에 겨우 airway를 확보할 수 있는 술기를 처음 성공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 병원 교수님들이 크게 우려하시지는 않을지 죄송할 따름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를 도와주는 동료들이 있고 선배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계시니 너무 걱정 마시라고, 묻지도 않는 질문에 답하고 싶다. 더불어 남은 1년차 기간뿐만 아니라 2년차가 되어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을 때 남에게 미루고 피하기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부딪쳐 보리라는 지금의 마음을 잃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

오늘 중환 회진 시간에는 요즘 1년차들이 환자 열심히 안 보고 무책임해지고 있다는 2년차 선생님들의 지적이 있었다. 그렇게 지적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 열심히 하리라, 내 양심이 무뎌지지 않도록 다시 한번 각성하고 처음 1년차의 마음으로 나머지 기간 동안 일하리라 다짐해 본다
.

Intubation
에 실패한 나에게 전화해서 그렇게 blade를 잡으면 왼손에 힘이 가지 않으니 vocal cord가 보이겠냐며 질책하신 정** 선생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에게 연락해서 laryngoscope을 쥐어주던 김**, 실패한 나에게 내일은 정월 초하루이니 내일부터는 꼭 성공할 수 있을 거라며 나를 격려해준 정**, 한 번만 성공하면 자신감을 갖고 잘 할 수 있을 것이니 너무 염려 말라고 하셨던 구** 선생님, 심지어 내과 의사에게 intubation이 전부는 아니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하셨던 김** 선생님, 모두들 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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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에 대한 양가 감정

 

내 이력이 좀 다양하다 보니, 친구들도 다방면에 걸쳐 있다. 학부 친구들은 선생님이 많고, 학보사 친구들은 언론 쪽에 많고, 사회학과 대학원 친구들은 탁월한 분석력으로 여러 곳에 퍼져 있다. 그들 그룹에서 뛰쳐나와 의사가 된 나는 그들과 아주아주 가끔 만난다. 나는 병원 이야기 말고 바깥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나이드신 부모님 때문에 병원 출입이 잦아진 그들은뭐니뭐니 해도 의사는 친절하고 설명을 잘 해줘야 한다고 나에게 충고한다. 그들의 말이 백번 옳지만 사실 마음 속으로 울컥 치미는 뭔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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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 넘는 환자의 주치의로 일하는 한 동기는 오전 내내 보호자와 보험회사 직원과 통화를 번갈아 하며 실갱이를 벌이고 있다. ‘그건 난소의 악성 종양이기는 하지만 난소암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code ***.**을 붙여 진단서를 발급할 수는 없습니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지만, 보호자는 전화기를 계속 붙잡고 있나 보다. ‘정 그러시면 보험회사 직원과 직접 통화를 하겠습니다’, ‘이 환자분은 위암의 난소 전이에요. 난소에 악성종양이 있다고 해서 난소암은 아니므로, code를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보험회사 규정을 제가 다 알 수는 없으니 그쪽 자문하시는 분과 상의하시죠
.’

그 친구는 결국 오전에 냈어야 했던 다른 환자의 항암제 order를 늦게 냈고, 오전에 했어야 할 여러 급한 일들을 오후가 되어서야 처리하러 뛰어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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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험 문제에 시달리며 여기저기 전화하고 보호자 설명하는라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남은 수십 명의 항암제가 오후 늦게 환자에게 연결되고, 환자들은 이뇨제 때문에 밤새 화장실을 왔다갔다 하게 되고, 그날 오전에 진행되지 못한 스케줄이 다음날로 미뤄지는 바람에 화가 난 다른 환자들이 항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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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암보험이 많아지면서 퇴원시 보험회사용 진단서를 요구하는 환자들이 많아졌다. 중심정맥 삽입시술은 언제 했으며, 언제부터 언제까지 무슨 치료가 진행되었는지 상세히 써달라는 요구가 많다. 기술되는 항목에 따라 환자에게 지불되는 보험금이 달라지고 혜택의 폭도 달라지는 모양이다. 해당 질환으로 언제 언제 외래에 왔었는지를 모두 기록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는 눈앞이 캄캄하다. 투병기간이 긴 암환자들이 언제 외래에 왔고 무슨 치료를 받았는지 다 찾아서 써주려면 한나절 내가 할 일은 모두 펑크가 나기 때문이다
.

퇴원 처방을 다 내놓고 다른 일을 하느라 여기 저기 뛰어다니고 있는데 병동에서 전화가 온다. ‘옷 다 갈아입은 환자가 진단서를 요구한다는 전화다. 기차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빨리 해달라는 독촉과 함께. 만성 질환으로 투병중인 환자에게 보험금 지급 문제는 치료 못지 않게 중요할 수 있겠지만, 그럴 때는 솔직한 심정으로 욕이 나온다
.

환자는 당연히 의사의 설명을 듣고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의사는 당연히 설명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데, 이런 기본적인 일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환자들이 의사를 불신한다는 비의료인 친구들의 분석을 들으면, 내가 항변하고 싶은 것들도 많아진다. 나는겉으로 보이는 친절보다는 환자를 위해 꼭 진행되어야 하는 치료가 제때 적절히 시행되는 것이 의사로서 더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모두는네가 의사가 다 되었구나라며 내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 눈치다
.

내가 의료사회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도 병원을 오가며 내가 느꼈던 불만, 의사에 대한 실망과 분노 등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하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분석을 백분 이해할 수 있다. 그들 또한 내가 단지 의사의 입장에서 항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과 나 사이에도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거리감이 생기고, 결국에는그래도 의사는 친절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명제로 대화가 종결된다
.

물론이다. 의사는 친절해야지. 환자에게 친절할 수 있으려면 나에게 친절을 위해 할당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잡무가 끼어들면 안된다. 원무과, 보험심사과, 상황실, 외래 접수처 등과 내가 통화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왔다갔다하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내 환자를 위해 할당해야 하는 시간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

지방에서 환자의 먼 친척이 달려와서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 달라고 한다. 환자 상태가 좋지 않을수록 추궁하는 듯한 이들의 질문은 많아진다. 나는 이미 다른 가족들에게 다 설명한 바 있고 설명할 때 관련된 가족들은 다 와달라고 부탁했건만, 내가 설명을 소홀히 하는 듯한 인상을 보이면 인상이 불그락푸르락해진다. 하루에 몇 차례 이런 보호자들과 실갱이를 벌이고 나면 일할 맛이 딱 떨어진다
.

4
년전 학생 실습 때, 한 보호자가 오후 회진을 돌고 나오는 우리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저희 어머님이 이번에 처음 암을 진단받으셨는데요,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하시네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며. 그때 4년차 선생님은항암치료 안 받을거면 왜 입원하셨어요?”라며 쏘아붙이고 방을 나와 버렸다. 나는 그때 충격을 받았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얘기할 수 있나? 보호자는 의사가 잘 설득해서 항암치료를 받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그렇게 표현한 것 아니었나?’라 생각하며, 그 레지던트에 대해 참으로 실망한 적이 있다
.

물론 지금 생각에도 그 선생님의 대답은 냉혹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심정만은 이해가 된다. 환자와 가족들에게 의사의 한마디 한마디는 가슴에 비수가 될 수 있지만, 의사도 그렇게 척박하게 일하다보면, 그래서 진료를 위해 온전히 나의 능력을 다 쓰지 못하고 보험회사와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통화하고 보험 항목을 충족시키기 위해 진단서를 쓰는 것에 시간을 왕창 쏟아붓고 난 다음에는, 환자 만나기가 싫어진다
.

교수가 사령관이면 레지던트는 소대장쯤 된다고 누가 그랬다. 소대장이면 상당히 권한을 갖고 많은 일에 책임을 지는 자리임과 동시에 온갖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수행해야 하는 중간자적 지위지만, 그 지위를 너무 낮추는 자책은 하고 싶지 않다. 우리 의료 현실에서 우아하고 고상하게 환자 보는 일만 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행정 시스템과 지원 부서가 해야 할 많은 일들이발로 뛰는전공의에게 넘겨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표면적으로 불친절한 의사상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는 의사의 사회적 지위를 떨어뜨리는 작용을 함과 동시에, 본업보다 부업에 지친 의사의 자긍심도 떨어뜨린다
.

엊그제 1년차의 마지막 term으로 종양내과에 배치되었다. 40명이 넘는 환자를 하루 이틀 사이에 파악하는 일은 정말 내 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작업이다. 전임자가 꼼꼼하게 작성해준 off service note를 읽으며, 생각보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전신적으로 전이된 암으로 몇 년째 투병하고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진단, 재발, 항암, 수술, 방사선, 항암 등의 치료가 반복되며 오늘까지 버텨온 그들에게 한편으로 경외심을 느낀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치료를 받고 자신에게 남은 기간을 의미있는 시간으로 만드려는 환자들을 만날 때면, 나는 정말 그들을 위한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

그러나 내가 일하는 바로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그런 환자들의 보험회사용 진단서를 쓰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지 않은가! 나는 민간보험회사에서 요구하는 이런 일들을 왜 의사가 진료시간을 뺏겨가며 해 주어야 하는지 정말 화가 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런 문제의 개선을 누구에게, 그리고 어떤 창구를 통해 건의해야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알아볼 시간도 없다. 그리고 이런 일 때문에 날카로워진 신경으로 환자들에게 불친절하게 했다가 두 배로 나쁜 소리를 듣는다
.

그래서, 무조건 의사의 친절함을 강조하는 누군가에게는 억울한 심정이 들고, 친절할 만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지금의 현실로 인해 막연한사회불만세력이 되는 것만 같다. 어디서 악순환의 탈출구를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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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년차가 된다고?

 

1129일부터 2006년도 전공의 지원이 시작되었다. 작년 이맘때 나는 내과 지원을 눈앞에 두고 초조한 마음으로 시간나는 대로 도서관을 오가며 애를 쓰고 있었다. 병원마다 과마다 전공의 선발기준에 대한 철학이 다르고 선발의 관행에 나름의 관록이 붙었으므로,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수십년간 같은 분야에서 일하며 환자 진료 및 전공의 선발의 경험을 가진 노()선생님의눈썰미가 그 어떤 기준보다 정확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성적 이외의 요인들이 객관적으로 평가되기 힘든 의사 선발의 양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이렇게 말하면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성적 중심주의 운운한다며 타박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의사로서의 인성과 태도를 반영할 수 있는 더욱 적절한 기준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항변하고 싶었다
.

내과에 합격하기만 한다면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고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한순간도 멈춤 없이 정진할 것이니, 내 성적이 다른 지원자들보다 좀 처지더라도 나를 꼭 뽑아주세요라는 간절한 외침이 마음 가득이었으니, 내가 합격한 것은 그 뜻이 통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내과에 지원하는 몇몇 인턴 선생님들의 눈빛에서 작년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는 과연 올 한해 동안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매 순간을 일해 왔는지, 부끄럼 없이 성실하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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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때 해보지 못한 몇몇 procedure에 능숙하게 되고, 병원 곳곳에서 다른 의사, 간호사, 직원들과 싸움닭처럼 부딪히며환자를 위해서라면목소리 높이는 것에 주저하지 않게 되고, 밤새 잠 한숨 못 자 지저분하고 피곤에 찌든 지저분한 외모로 병원을 돌아다니게 되는 것에 대해서도 무신경해지고, 한밤중에 arrest 방송이 들리면 반사적으로 뛰어가 환자를 봐야 한다는 것도 배우고, 모르는 일, 생소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1년차 primary는 일을 해내고 정보를 알아와야 한다는 천하무적 정신도 배우고…. 이런 것들이 내가 1년차 생활을 하며 얻은 것이리라
.

1
년차 초반에는 학생의 질문으로 회진시간이 길어지면 내가 일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생각 때문에 초조하기까지 했는데, 이제 뭔가 좀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이론적인 뭔가를 풀어내기엔 굳어버린 내 머리, 지금의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내가 처음부터 봤던 환자 이야기를 해주며 이 환자를 파악하는 데 핵심적으로 중요한 사항이 뭔지 가끔 귀띔해 주기도 한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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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미의사가 되어버린 나에게환자의 목소리는 의학적인 언급인지 아닌지를 중심으로 선별되어 들린다. 초심을 잃고 관성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 슬쩍 거짓말을 해도 들통이 날 일인지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는 일인지 파악하는 눈치도 생겼다. 환자를 위해 해야 하는 일, 윗 선생님들께 잘 보일 수 있는 일, 내가 편할 수 있는 일, 면피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 등을 고려하여 내 생활의 동선을 짤 수 있게 됐다. 1년 전 나를 분노하게 했던 부조리한 상황의 중심에 내가 서 있는 경우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 환자를 위한친절을 강조하면 가끔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시간이 나면 책상 앞에 앉기보다 침대 위에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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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의 모습은 어느 순간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내가 던졌던 비판의 화살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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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년차로 살아남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1년차니까라며 눈감아 주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뭘 몰라도잠 못 자고 고생하느라 공부는 제대로 했겠냐’, 실수를 해도얘가 알고 했겠냐, 잘 모르니까 그랬겠지’, 윗 선생님들이 많은 것을 감안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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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2년차가 되는 것은 또 한번의 upgrade를 요구한다. 이제 나는시간이 없어서’, ‘잘 몰라서라는 변명을 하는 것이 궁색한 시기가 된 것이다. 과연 upgrade할 수 있을까
?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아직 누군가를 후배로 맞이할 만한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공식적으로 석 달이 남았다. 심기일전해서 지금 배우지 못하면, 지금 깨우치지 못하면, 지금 공부하지 못하면, 우스꽝스럽고 한심한 선배 의사가 되고 말 것이라는, 다소 유치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각성하고 살아봐야겠다
.

올해도 우리 병원 내과는 인기가 많아서 우수한 성적의 지원자들이 많이 몰렸다고 한다. 내심 부담스럽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새로운 가면을 하나 골라 손질해서 써야할 판이다
.

우수한 상급 전공의까지는 아니라도, 뭔가 배울 게 있는 선배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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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낙인

 

교수님이 알면 크게 꾸중하실 일이지만, 솔직히 아직도 난 sterile, Hygiene 등의 개념에 약하다. 그런 나, 지금 감염내과 1년차로 일하고 있다.

처음 학생실습을 감염내과에서 시작하던 당시, 회진이 마라톤처럼 이어지던 인상적인 첫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며, 그때 만났던 감염내과 전공의 선생님이 그렇게 멋지게 보일 수 없었다. , 나도 그런 선배 전공의 의사로 비춰지고 싶은데
….

이런 표현이 좀 그렇지만 온갖 잡균이 가득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감염내과, 내가 환자 등 한번 두드리고, 손 한번 잡는 것이 transmission route가 될 수 있으므로, 누구보다 감염예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VRE
격리병실의 환자를 보다가, HIV 감염환자의 IV line start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손을 씻고 장갑을 끼었다 벗었다 하지만, 마음이 바쁘다 보면 손도 대충 씻고 누가 안 보면 슬쩍 눈치를 보다가 가운도 갈아입지 않은 채 VRE 병동을 드나든다
.

우리병원에서는 HIV infection 환자들의 peripheral line을 의사가 start하도록 되어 있다. Needle도 다르고 sterile glove도 착용하게 되어 있다. 의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는 그냥 맨손으로 한다. 장갑을 끼면 아무래도 손이 둔하고 잘 안 되는 것 같다. 또 환자 앞에서 장갑을 끼는 것이 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몇 번은 피가 나에게 튀고 손에도 묻어 내심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
.

몇 명의 HIV infection 환자들의 주치의인 나 역시 시간이 많고 내가 하는 일과 내 환자들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을 더 많이 한다면 어쩔지 모르겠지만, 그들도 나에게는 환자일 뿐, 오전, 오후 회진 때 변화된 상황은 없는지, 열이 나지는 않았는지, 검사결과는 어떻게 나왔는지에 대해 파악하고 설명해야 하는 환자에 다름 아니다
.

CD4 cell count
가 떨어져 immunity가 형편없이 낮고 거의 bed ridden으로 누워 있는 환자가 열이 나면 나는 30분 간격으로 가서 채혈하고 온 몸을 뒤져서 fever focus를 찾고 하는 것은 다른 어떤 환자에 대해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간호사가 아닌 내가 채혈을 하는 것 빼곤
.

감염내과를 돌았던 동기 중 한 명은 그러다가 needle stick injury를 입고 두 달간 antiviral therapy를 하면서 약제의 adverse effect nausea, vomiting, diarrhea로 고생을 했다. 만에 하나 감염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거듭하면 좀 무섭기도 하지만, 사실 일을 하는 매일매일 바쁜 상황에서는 그런 걸 염두에 둘 새가 없으니, 편견 없이 환자를 보게 된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

그러나 그들에겐 보호자가 없다. 에이즈 예방협회에서 자원봉사를 해주는 간병인들이 며칠씩 돌아가면서 간병을 해준다. 아니면 보호자 없이 혼자 병원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의 과거사는 모르지만, 가족 없이 하루 종일 병원에서 크게 호전 없는 병세를 묵묵히 감내하며 지내는 것은 참 힘들어 보인다
.

HIV infection
에 대한 의사들의 시각도 아직은 질병과 환자 이외에 뭔가가 덧칠해져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 마음속에 HIV/AIDS 환자들은 처벌의 대상이 되는 비도덕적 행위, 일종의 범죄, 퇴치되어야 할 바이러스와의 전쟁, 공포의 대상, ‘우리와 구분되는 일군의 타자 집단이라는 의미로 자리잡는다. 가족 내에서도, 직장에서도, 의료서비스시스템 내에서도 이들은 구별되고 차별 받는 대상이 된다
.

인구의 40% 가까이 HIV infection 상태로 존재하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다국적 기업에서 생산하는 HAART(Highly Active Anti Retroviral Therapy) 약제들을 generic drug으로 개발하여 싼 값에 공급하기 시작하였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치료 약제 중 일부를 국가가 공급하기는 하지만, 일부는 한 병에 백만원이 넘기도 한다. 이 주사약을 2주에 한번씩 맞는 환자들은 완치의 기약 없이 쏟아부어야 하는 약값 때문에 중도 포기를 선언하는 경우도 있을 법하다
.

아무 생각 없이 맘에 안 드는 누군가를 가리켜암적 존재라는 말을 하곤 한다. 정작 암 환자는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특정 질병에는 그 질병의 biological nature와 무관하게 사회적 의미가 덧붙여지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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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정서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적 차별과 낙인으로 이어질 때 이는 또 한번의 소수자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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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는 수잔 손탁의질병으로서의 은유를 다시 한번 펼쳐보고, 방금 찾은 저널 ‘Theory of disease stigma’를 읽어보면서, 질병 자체보다는 내 전공이었던 사회학적 관점에서 이들 질병과 환자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오랜만에 가져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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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EMR, 이번엔 진짜다

 

2주전부터 ‘D-○이라는 안내문이 병원 곳곳에 붙었다. D-day EMR을 시작하는 11 1일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표현이라 좀 우습기도 했지만, 그만큼 병원 구성원들에게 이 날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려는 노력으로 보였다.

10
31일 밤 10시부터는 기존의 OCS order를 입력하지 못하게 되고, 몇 시간 동안 system shut down 시간이 이어지다가 11 1일 새벽부터 새로운 OCS EMR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

무슨 일이 생기면 당연히 1년차는 매일 당직을 서는 시스템으로 바뀐다. 10 31, 이날은 이제 막 chief가 된 3년차 선생님들까지 집에 가지 못하고 변화가 초래할 혼란을 예상하며 다들 병원을 지켰다
.

System
이 완전히 shut down 되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1년차들은 오후 내내 다음 날 order까지 미리 입력하며 종종 걸음을 치다가 오후 10시를 기해 일단 컴퓨터로부터 떨어져 앉을 수 있었다
.

컴퓨터가 멈추니 오히려 할 일이 없었다. 1년차 무리들은 차라리 일찍 잠을 자고 새벽 3∼4시부터 새 EMR로 예전 기록들이 넘어오는지 monitoring 하다가 새벽 5시가 되면 order를 입력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로 했다. 다들 알람을 새벽 3시에 맞춰놓고 잠을 청한다. 3시가 되자 여기 저기서 핸드폰 알람소리로 시끄럽다. 누군가가 컴퓨터 앞에 앉는다. “아직 안 되네. 더 자자.” 다들 불안한 마음으로 선잠을 잔다
.

그렇게 뭉그적거리기를 5 30분까지. 그때까지도 새병원 EMR은 작동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지난 3월부터 10여 차례의 리허설이 있었고, ‘다음 주면 EMR 시작이라는 말도 수 차례 반복되었기에, 우리들 사이에서는양치기 EMR’로 통하는 판국이었다. 그러니 교육도 설렁설렁 받고, 정작 무엇무엇을 준비하라는 지침이 내려와도 다들설마 하겠어?’라는 심정까지 들었었다
.

새벽 5 30. ‘ EMR이 가동되었다는 전체 방송이 울렸고, 누군가가 말했다. “? 되네. 망했다. 빨리 회진준비 해야겠다라고. 모두들 놀라 컴퓨터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

정말 이 시스템이 가동될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심리적 저항감도 높았지만, 의사들은 그 특성상 일단 적응하기 시작하면 또 무서운 속도로 적응한다. 병동도 비명을 지르지만,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다들 overtime으로 병동에 남아 일하고 있다. 내가 봤을 때 EMR을 시행하면서 가장 힘들고 복잡해진 것은 간호업무라고 생각되는데
….

오늘은 신환이 10명 왔는데, EMR로 환자를 받고 order를 내고 예전 기록을 찾아보는 데에 예전의 5배 이상 시간이 소모된 듯하다. 너무 바쁜데 당장 fluid order를 못 내고 검사항목을 click하지 못하니 가슴이 활활 타오를 지경이었다
.

1996
, 당시 석사논문을 쓰던 나는 현대, 삼성, 대우 등의 대기업이 대형병원을 짓고 병원산업에 진출하게 되는 현상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소위 기업형 병원이 등장하는 사회적 맥락과 기업형 병원의 운영이 기존의 병원과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하면서 나는 EMR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다. 의료 정보화가 의사의 직업적 전문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행정, 기술적 측면의 변화가 의사 고유의 권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의 몇몇 논문도 읽을 수 있었다. 막상 지금은 EMR이 갖는 철학적인 전환을 생각하기보다는 당장 order를 내고 order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업무가 되어 버렸지만
.

지금 우리 병원에서는 많은 의사와 간호사 등이 예전의 몇 배에 달하는 노력을 들이며 집에도 못 가고 애를 쓰고 있다. 일부에서는 왜 의사가 이런 기술적 문제에까지 세세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불안정한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라는 논리로 EMR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나도 잘 모르니까’, ‘새로 배우고 익히려면 귀찮으니까라는 명분으로 새 EMR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도 있는 듯하다. 안정된 기존 시스템 속에서도 겨우 환자를 보고 있는데, 뭔가가 자꾸 변화하는 불안정한 상황이 의사의 anxiety를 높이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

시간이 흐르고 시스템이 안정되면 분명히 일이 손에 익숙해지고 전체적으로 얻는 이점이 많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 우리가 겪어야 할 어려움이 아주 크리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는 없다. 어쨌든 방송에서까지 언급되었던 진료 대혼란은 서서히 정리될 것이다. 아무리 conservative한 성향의 사람이라도 변화의 흐름을 함께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

나는 의사 집단이 정치적으로 conservative한 성향을 보이는 것은, 환자 진료라는 자신의 일상업무에 쓸데없이 변화가 발생하는 것보다는 현상을 잘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나을 때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그러나 의사들은양치기 EMR’이 알고 보면 꽤 괜찮은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불과 2∼3일만에 깨달았다. 역시 대단한 적응 능력! 물론 아직은 완전치 않아서, 이 원고도 다운되어버린 컴퓨터 앞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쓰고 있다
.

Medical technology
개선이 medical care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문은 수도 없이 많다. 언젠가 그 논문들을 한번 리뷰해볼 생각이다. 그러나 그게 언제가 될지…. 아무튼, 그 변화의 흐름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영광스러운 마음이 지금의 혼란을 버틸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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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최선을 다할 것인가?

 

당직을 서는 밤, 중환이 2∼3명만 되어도 다른 환자에게는 손 딱 끊고 중환 manage로만 온 밤을 지새게 된다. 중환들은 lab도 좋지 않고 한눈에 보아도 안색이 좋지 않아 주치의는 매우 불안하다. Lab도 자주하고 한 번이라도 더 가서 안색을 살핀다.

틈만 나면 OCS를 열어 lab을 확인하고 지금 들어가는 약들을 점검하면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

그러나 그렇게 온 밤을 환자 곁에서 보내고 난 다음날, 환자들이 expire하는 경우도 많다. 의사를 그렇게 옆에 붙잡아 둘 정도로 중한 환자였으니 사망 가능성도 높았겠지만, 내가 낸 lab 하나, 내가 쓴 약 하나가 그의 죽음을 induction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게 밤잠 못 자고 환자를 보다가 다음날 환자가 죽게 되면 몸과 마음이 다 지치고 힘이 빠진다
.

Hepatocellular carcinoma terminal stage
의 환자와 acute B-viral hepatitis 환자가 있었다. HCC 환자는 hepatorenal syndrome을 의심하고 있는 중으로, daily Cr, T.bil은 오르고 urine output 감소하나 ascites는 증가하며 BP도 겨우 유지되는 정도로 낮다. 낮에 이미 조만간 환자가 죽을 수 있음을 설명한 바 있다. 보호자는 CPR은 원하지 않지만 그전까지 필요한 치료나 검사 등은 모두 진행해 달라고 하였다. 나는 그 환자의 악화되는 lab을 보며 다음 lab을 기다릴 때까지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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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에게 집중적으로 신경을 쓰는 동안, acute B-viral hepatitis 환자에게는 거의 가 보지 못했다. 다른 병력 없이 급성 B형 간염에 걸린 것으로 생각되는 그 환자는 저절로 간기능이 회복되며 수치도 정상화되어 곧 퇴원 예정이었다. 이 환자에게는 특별히 신경 쓰지도 못한 채 퇴원 예정일이 다가왔다. 간염에 대한 education이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는 퇴원하자마자 직장에 복귀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교수님은 이번에 처음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라면 이후 퇴원했을 때 lab 추이는 어떨 것이며, 왜 자주 f/u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나를 꾸짖으셨다. 그 말씀, 당연히 맞는 말씀이긴 한데
….

1
년차가 밤에 만나는 중환들, 특히 암 말기 환자들은 최선을 다한 manage에도 불구하고 expire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routine대로 procedure를 시행하고 protocol대로 환자를 보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오히려 benign disease이고 이후 재발방지를 위해 education이 중요한 환자들에게는 정작 필요한 설명이 제공되지 못하고, 그 결과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퇴원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

죽음이 예상되고 의사로서 병원에서 해줄 것이 특별히 없는 환자에게는 유달리 쌀쌀맞은 한 선생님이 계신다. 그 선생님은 맺고 끊을 줄 알아야 한다고, 해줄 것이 많은 환자들에게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씀이시다. 죽을 사람도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살 사람에 대한 설명과 교육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더욱 필요한 일이다. 불치병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신약을 계획하고,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완치를 바라는 대학병원에서 죽음이 뻔히 예상되는 환자에게 너무 많은 힘을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을 완전히 부인하기는 어렵다. 어차피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나는 우선 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나는 죽는 순간이 그 사람의 평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참으로 야비한 결정들이 진행되는 경우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최선을 다한다고 할 때의최선에 대한 의사와 환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고, 환자의 보호자의 생각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 ICU 자리를 arrange하도록 push할 것인지, lab을 자주해서 조금이라도 보충해 줄 것이 있으면 보충해주고 I&O도 맞춰주고 vital sign monitoring할 것인지 등 생사를 두고 의사가 결정해야 할 것이 많은데, 죽음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환자의 불편감이 neglect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게 생겼는데 죽을 사람에게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말들을 한다.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닌데 나는 왜 그 말을 들으면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 것일까? 늘 최선을 다할 수 없다면 나의 능력을 배분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결국 최고의 노력과 management는 환자가 죽기 직전에야 이루어진다. ‘평소에 잘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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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발한다, 내 형제를

 

일하다 보면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영 마음에 거슬리는 때가 있다. ‘과연 이런 사람도 같이 일하는 의사라고 말할 수 있는지회의적일 때가 있다는 말이다.

내가 1년차라서 나에게 이렇게 함부로 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괜한 자격지심일까
?

여러 환자들, 특히 노인 환자들은 여러 과 진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 환자를 두고 consult transfer 등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내 환자 때문에 다른 과 의사들과 접촉하면서 부탁도 하고 문의도 하는 일은 다반사다. 불행히도 아직 1년차라 그런지 내가 다른 과 의사들의 청탁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말이다
.

그렇게 여러 과의 의사들을 접촉하다 보면 의사들간에 서로 예의를 갖추어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씩 알 것 같다
.

내과 의사에게, 특히 1년차 레지던트에게 오전, 오후 회진은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Staff 선생님과 함께 도는 오전 회진이 환자에 대한 치료방침이 결정되는 시간이라면 오후 회진은 환자들의 사소한 불평도 들어주고 의료진의 입장도 설명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환자를 진료해 볼 수 있는 다소의 여유로움이 주어지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효과적으로 잘 운영하는 것이 1년차의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

그런데 최근 한 환자에 대한 회진 시간은 참 고역이었다. 사연은 이렇다. 얼마 전 **(차마 과 이름을 밝히지는 못하겠다)에서 hyponatremia, ARF를 이유로 transfer된 환자는 2주간의 management를 통해 electrolyte가 안정되고 Cr level upper normal level에서 유지되어 다시 원래 과로 transfer하기로 하였다. 내과적으로는 더 이상 도움을 줄만한 것이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환자는 1주일 이상 내과 환자로 남아 있어야만 했다. **과의 staff이 해외 학회를 간 상태라서 환자를 아직 transfer in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쪽 파트의 답변이었다
.

그쪽 파트에서도 매일 회진을 돌고 드레싱도 하고 있으니 어차피 마찬가지라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다. 환자를 누가 담당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comprehensive management를 제공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나도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싶었다
.

그러나 현재 main lesion의 상태는 어떤지, 앞으로 어느 정도의 치료가 더 요구될 것인지, 지금 왜 이렇게 아픈 것인지 등 환자가 궁금해하는 내용들에 대해 내가 지금의 proceess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그건 **과 선생님께 여쭤보세요라고 말을 돌려야 하니, 명색이 주치의로서 얼마나 체면 안 서는 일인가! 물론 내가 그 환자의 병에 대해 간략하게 공부를 하기는 했지만(그 병이 무슨 병인지 밝히면 어느 과인지 드러나기에 역시 밝히지 않는다), 환자 상태와 연관된 적절한 치료방침이나 예후를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과에서 나에게 그런 정보를 주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

며칠 후 학회에 갔던 staff 선생님은 돌아왔다. 환자도 원래 치료 받던 과로 옮겨달라는 요구를 시작했다. 그런데도 그쪽 파트에서는 차일피일 미루며 환자를 받지 않았다. 슬슬 화가 나가 시작했다. 나는 현재의 상태를 내과적으로 설명하고, 내과적 문제만 보면 opd f/u 도 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했지만, 그쪽 파트에서는알겠다고 대답할 뿐 transfer in 하지 않았다. Staff 선생님께서 내과 문제를 다 해결하면 받으라고 했다는 핑계를 대면서
.

나는 그들이 도대체 환자는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지, staff notify는 제대로 한 것인지 모든 것이 다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회진 때 guiding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staff의 의견이 결정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했는지 짐작할 만했다
.

나는 사실 **과의 레지던트가 일하는 이러한 방식 때문에 최근 10여일간 상당히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이다. 그가 나보다 윗년차라지만, 자신이 담당하는 환자를 보냈으면 그에 상응하는 관심과 예의를 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예의까지는 아니더라도 환자에 대한 활발한 정보 교환을 통해 내과적 문제와 **과적 문제를 검토하고 어느 과가 주된 진료를 담당하는 것이 적절한지 결정하는 process를 밟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 정도의 interdisciplinary discussion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환자는 대학병원에 오는 것이고 의료진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아닐까
?

환자보다는 의사를 주로 접하는 진단방사선과 1년차 동기, 불과 몇 달 안 되었지만 이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누가 문제 있는 의사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과가 함께 일하는 응급실, 응급의학과 2년차 선생님은 병원에 있는 누군가를 사귀려면 자기에게 먼저 물어보라고 말한다. 환자를 대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의사들 사이에서 함께 일하는 방식을 통해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

Professionalism
을 논하는 최근의 논의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 peer group review. 전문가 스스로 내부 평가를 수행하는 것이 quality control에 필요하고내부자 고발이 갖는 부담과 위험성을 제도적으로 합리화하여 전문가 집단의 도덕성과 지적 성찰을 유도하자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늘 문제가 되기 마련이다
.

그러나 한국의 의사 집단은 아직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고사하고 평가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취약한 상태이다
.

과 내부적으로는 위계질서를 따지고 충성 경쟁을 하면서도 다른 과와 함께 일하는 현장에서는 예의가 없는 의사, 혹은 그런 풍토를 조장하는 그룹이 있어 의사들의 진료문화를 오염시키고 있는데도 이를 교정할만한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

물론 나라고 예외겠는가? 다른 파트의 누군가가 내가 일하는 방식에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면전에서 얼굴 붉히며 말하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이 없다면 얼마나 답답할 노릇이겠는가
?

내칠 것은 내쳐야 한다. 문제가 있으면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교정하지 않고 묻어버리면 안에서 계속 썩으면서 다른 것들까지 오염시킬 것이다. 이러한 악습과 잘못된 내부 관행을 스스로 정화시키지 못하는 한 의사 집단은 결국 질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환자들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

물론저런 사람도 의사냐라는 비난의 화살이 나에게도 돌아올 수 있겠지만, 그 화살을 맞지 않으려 애를 쓰는 동안 결국 나는 발전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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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병원의 환자들은 몸과 마음이 아파 고통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심심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환자들이 병원에 와서도 좀 바쁘게 돌아다니고 할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검사든 교육이든 하루 스케줄이 있어서 나름대로 병원에서의 시간표를 운영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내 꿈이기도 하다.

많은 경우에이 환자는 오늘 무슨 검사를 하면 다음에는 무슨 검사를 해 보고 결론을 내린 후, 치료는 어떻게 결정하고…’ 이런 plan을 가지고 입원 환자를 보게 되지만, 치료가 어려운 일부 만성질환자들에게는 이런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
.

의사들은 그런 환자들을해줄 게 없는환자들이라고 말한다. 나는 예전부터 의사들이해줄 게 없다는 표현을 하는 게 참 마음에 안 들었다. 소위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어떻게 의사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라며 분개했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주치의가 되고 보니 어떤 파트에서 일하든해줄 게 없는환자들이 있다는 걸 통감하고 있다
.

43
세 남자환자, GB cancer 진단받고 세 번째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하였다. 직장에는 잠시 병가를 낸 상태. 그는 입원 후 carcinomatosis로 진행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항암치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intestinal obstruction으로 L-tube rectal tube를 꽂은 채 며칠간 고생하다가 colostomy라도 해서 변과 가스를 배출하는 palliative op를 하기로 했으나 open and close. 3 liter 가까이 복수만 빼고 다시 병실로 돌아온 그는 IV nutritional support, L-tube with gomco suction으로 물 한모금 넘기지 못한 채 하루가 다르게 비쩍 말라가고, 가스와 변은 전혀 배출되지 못한 채 배만 불러가고 있었다
.

그의 pain morphine에도 반응하지 않고 오로지 IV NSAIDs에만 반응하고 있었다. Ulcer bleeding Hx가 있는 그에게 NPO 상태에서 계속 NSAIDs 를 주다니 정말 안 될 노릇이지만, 그의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매일 오전 오후에 회진을 돌면 아무 할 말도 없고, ‘오늘은 어떠세요? 가스 나왔어요?’ ‘그냥 그래요이 말 이외에는 주고받을 말이 없었다. 그에게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

터질 것 같은 그 배를 보며 이대로 두다가는 perforation되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외과에 의뢰하여 percutaneous tube insertion이 가능한지 문의하였지만 panperitonitis 가능성이 높아 수술이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 다시 진단방사선과에 의뢰하여 intervention을 요청하고 오늘 저녁 늦은 시간 cecotomy를 하고 병실로 돌아왔다. 드디어 그는 오늘 병원에서뭔가를 한 것이다
!

Gomco suction
을 새로 낸 배쪽의 tube로 연결하자 자장면 색깔의 변이 밖으로 배출되었고, 나는 정말 기뻤다. 배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가스와 변이 나오는 걸 보니 내 속이 다 후련했다. 그러나 사실 지금의 tube로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Tube가 막힐 가능성도 높고 한번 빠지면 다시 넣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는 어쩌면 이대로 병원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할 것이다. 내 또래의 부인, 그리고 슬기보다 어린 딸이 한 명 있는 그
.

내가 주치의가 되어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나름대로의 프로그램이 있다면 일주일에 한 번은 병원에서 특별히 해줄 것이 없는 환자 한 명을 정해 시간을 갖고 만나는 일이다. 그를 위해 회진시간을 특별히 30분 정도 할애한다. 그때는 병 얘기도 하지만 그의 마음을 묻는 일을 해 본다. 그러나 30분의 시간으로 사람의 마음을 묻고 그 마음을 소통하는 일은 아주 어렵고 피상적일 가능성이 높아 쉽지 않다. 그래서 아직까지 썩 훌륭한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

의사로서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피하고 싶은 환자들이 있다. 환자를 피하기 시작하면 나는 정말 비겁한 의사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그에게 말을 붙여보려고 한다. ‘오늘 어때요?’ 이런 말이 아니고 죽음을 목전에 둔 그의 마음을 두드리는 말을 걸어보는 게 이번 주 나의 과제다. 암환자에게 가장 힘든 것은 통증과 외로움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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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엄마, 입원하다

 

닷새 밤낮을 sore throat으로 진통제를 먹으며 참다가 감염내과 외래를 찾았다. Peritonsilar abscess. Neck CT에서 abscess는 상당히 크고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더 진행될 경우 airway obstruction으로 tracheostomy가 필요할 수도 있고 brain abscess로 진행할 수도 있는, 흉측한 morphology였다.

ENT
에서 daily I&D를 할 필요도 있고 IV antibiotics를 써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abscess 때문에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음식도 넘기기 힘들어 나는 입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내가 일하던 16층 병동에 입원하고 counter가 내 주치의가 되었다. ‘꼭 우리 병동에 입원해서 다른 신환의 입원이라도 막아야 한다는 그의 처절한 지령 때문이었다. 조금 전까지 가운을 입고 일하던 내가 환자복을 입은 모습을 보고 내가 보던 cancer terminal 환자들이 나를 위로한다. ‘의사선생님이 아프면 어떻게 해요. 빨리 나으세요. 고생이 많으시네….’ ‘고생은 요, …(긁적긁적
).’

동료들은 OCS로 내 lab도 띄워보고 CT도 봤는지, ‘그동안 잘 못 먹었나봐, potassium이 좀 낮네. NS 100ml KCl ‘충분히’ mix해서 줄게. 그래도 leukocytosis는 심하지 않네. Daily blood culture 어때?’라며 짓궂게 군다. 그들이 입을 모아 가장 먼저 하는 말. “좋겠다, 입원해서. 맘껏 자겠네
.”

I&O
check하지 않아도 된다는 4년차 선생님 말씀에 어찌나 감사했는지. 평소 나는 I&O check order를 내면서 환자들이 자신이 먹는 양과 배설량을 매순간 기록한다는 것은 정말 귀찮은 일이요, 때론 비참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의사는 인간의 몸을 지배하는 micropolitics의 주체라는 푸코의 명제도 떠오르곤 했다
.

Lab
을 자주 한 것이 아닌데도 몇 번의 채혈에 내 양팔은 이미 여러 군데 퍼렇게 멍이 들었다. 전에 일했던 hematology에서는 daily lab을 해야 하는 환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바싹 마르고 퍼렇게 죽어버린 팔뚝이 떠오른다. Lab order를 잘 내는 의사가 되어야지
….

나에겐 최대한의 배려가 제공되었겠지만, 아직 병원은 환자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공간이다. 그러나, 의사 환자가 가장 골치아픈 환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착한 환자가 되려고 군소리 없이 병실에 틀어박혀 잠만 잤다. 병원의 친절은 단지 상냥한 말투나 무릎을 꿇는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친절은 개개인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이며, 얼마나 의료의 정도(
正道)를 실천할 수 있게 해주는가의 다른 지표가 되어야 한다
.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린 ENT 1년차가 밤 10시가 넘어 oral dressing을 해준다. 땀으로 범벅이 된 그에게 나는 아쉬운 대로 초코파이만 몇 개 집어줬다. Local anesthesia도 없이 두 곳에 incision을 넣어 pus를 뽑는 일, 출산보다 더한 고통이었음을 나는 증언한다
.

병원비를 지불하고 퇴원할 때는 사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수많은 광고에서 입원만 해도 하루에 얼마, 진단 받으면 얼마, 이렇게 말하는 판국에 내 돈으로 병원비를 다 내다니, 미련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민간보험들 때문에 얼마나 짜증이 났었던가! Organic lesion definite하지 않은 가벼운 접촉사고 환자들. 입원의 indication이 되는 건 아닌데 어딘가 불편감을 호소한다. 퇴원을 종용할 수도 없고 특별히 해줄 것도 없고, 일상에 복귀하여 생활하면 좋아질 수 있는 증상인데도 수동적인 자세로 약물, 주사, 치료를 통한 완치만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다. 진단서에 무슨 치료를 언제 받았는지는 물론 외래 방문 횟수와 날짜까지 기입하라고 요구하는 보험회사도 있지 않았나. 아니 진단서 한 장 발급하는 데 병원 수익이 얼마나 되길래, 의사가 환자보는 데도 시간이 부족할 판에 민간보험회사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나 싶은 생각에 울화가 치민 적도 있었다. 그런 민간보험의 등장이 patient’s illness behavior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는 public health 차원에서 충분히 연구해 볼만한 주제가 될 것이라는 우아한 생각으로 분노를 달랬다
.

1
주 이상 입원 및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지만, 두 배로 일하는 동료가 허덕이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도 불편하다. 누군가가 장난처럼 던진나이를 먹으니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렇다니까라는 말도 가슴에 맺힌다. 아직 low grade fever가 왔다갔다한다. 이놈의 abscess가 커지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내일 업무에 복귀한다. 의사도 아파 봐야 환자에게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써줄 수 있고 환자를 대상화(objectifying)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처럼, 나는 과연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경험을 한 것일까
?

확실한 것은 동료들이 부러워했던 것처럼 잠은 푹 잤다는 사실. 내일부터 충전된 지금의 내 에너지를 충분히 발휘해서 미안한 마음을 보상해야겠다. 또 하나 확실한 것은, 의사선생님은 참 고마운 존재라는 점이다. 나를 치료해 준 ENT 동기와 적절한 IV antibiotics를 처방해 준 감염내과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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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과의 싸움

 

지금은 밤 11 40, 중환자실. 오늘 새벽 2시에 걸어서 응급실에 온 환자가 intubation 상태로 중환자실에 있다. 하루 종일 이 환자 때문에 응급실을 왔다갔다하며 시간을 다 보내고, 병동 환자는 제대로 못봤다. 지금은 중환자실에서 환자 옆을 지키고 앉아 inotropics를 조절하고 SaO2가 변하는 걸 보며 어떤 ventilator setting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있다. 그나마 여기서라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준 환자에게 감사하며.

하지만 지금 응급실에 있는 또 다른 환자도 만만치 않아서 inotropics를 증량하고 있는데도 BP가 오르지 않고 urine output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call이 오고 있다. 빨리 내려가 보아야 한다
.

병동 환자를 볼 여유가 없어 내일 아침 회진이 걱정된다. 하지만 둘러댈 얘기들은 얼마든지 많다. 환자를 보지 않고도 마치 본 것처럼 거짓말하는 일도 (아주 간혹) 있음을 고백하거니와, 나 이외의 다른 동료들도 비슷한 거짓말을 하며 자신의 비양심적 행위에 자책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

정말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거짓말을 하는 그 순간에는 다른 선생님들도 내 말을 믿어주는 척 하고 넘어가지만, 사실은 다 알고 있다는 것도 안다
.

사람은 자신의 내면만을 바라보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를 염두에 두고 행위하는 존재다. 사회학자 고프만은 이를 가리켜 연극적 자아라고 표현한 바 있다. 사람이라는 영어 단어 person의 어원이 가면이라는 뜻을 갖는 persona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시사적이다. 나 또한 몇 개의 가면을 바꿔가며 일상의 여러 국면을 살아간다
.

매 순간을면피하며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는 time table 속에서 지내다보니 가면의 존재가 아닌 진짜 나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갖지 못한다
.

나는 어떻게 환자를 보고 있는지, 내가 어떤 방식과 태도로 병원에서 일을 하는지, 나의 궁극적인 가치지향은 무엇인지, 그러므로 현재의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내 안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가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나는 얼마나 성실하게 해야 할 일을 빠짐없이 해내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

또 하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라치면 내 마음을 후벼파는 자책감이 있다. 다이내믹한 병원 생활에 적응하다보니 비굴해지기 쉽다. 윗사람으로부터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고, 쓸데없이 눈 밖에 나면 여러 모로 불리하니까, 환자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일보다는 윗사람이 시킨 일, 의국에서 요구하는 일 등 보이지 않는 관료적 체계에 물들어 내가 의사로서 수행해야 하는 기본 업무보다는 이런 형식적인 일에 나를 얽어매고 주객이 전도되는 듯한 질서체계에 적응해 버리는 것이다
.

나는 지금 잠시 내 얼굴과 가장 가까운 모양의 가면을 쓰고 앉아 글을 쓰고 있지만, 이것도 역시 가면인지라, 글을 써 내려가는 동안에도 나는 누군가를 의식하고 그것에 준해 행동하는 셈이다
.

이렇게 변질된 나의 속성으로 인해 몇 번의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다. 나의 이런 태도가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정확한 사연과 정황을 아는 사람은 오로지 나 뿐인 경우도 많다. 적당히 발림하여 상황을 포장하여 슬쩍 넘어가기에 성공하면 말이다
.

뚝심 있게, 내 양심의 소리에 맞춰 당당하게 일하는 1년차가 되고 싶다. 그러므로 이제 글을 접고 응급실로 내려가야겠다. 사실 원고마감에 쫓기면서 쓰는 글이지만, 순간 나를 반성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늘 하루 내가 저지른 오류들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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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차, 여름휴가 맞이하다

 

1. 휴가 초반 3~4일은 잠을 자도 계속 병원 꿈을 꾼다. 나의 malpractice로 인해 환자 상태가 악화되어 괴로워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2.
나 대신 병동을 지키며 everyday 당직을 서는 counter 1년차가 자꾸 전화를 해서 고요한 내 마음에 돌을 던진다
.

3.
휴가 5일째 저녁부터 병원에 돌아갈 생각을 하며 뭘 해도 마음이 편치 않아 결국 병원으로 복귀하기 위한 가방을 챙기고 나서야 안심하게 된다
.

4.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질서에 적응하지 못해 외출시 허둥대며 시간을 낭비한다. 바뀐 버스 노선표, 은행업무, 언제 분실했는지 모르는 운전면허증과 주민등록증의 재발급 등 잡무를 처리하는 나의 동선이 무질서하게 해체되고, 일 하나 처리하는 데 몇 번의 헛수고를 반복하며 세상을 원망한다
.

5.
가구 및 물품들이 재배치된 집안에서 물건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하고 남편, 딸아이, 친정어머니의 도움과 눈총을 받는다
.

6.
딸아이의 방학숙제를 돌봐주려 하지만, 이미 많은 것을 배운 아이는 내 도움을 별로 필요치 않고 오히려 귀찮아하여, 나는 엄마로서의 기능상실에 당황한다
.

이게 이번 여름휴가의 특징이었지만, 꿈같은 1주일간의 휴가를 보내고 나니 왠지 답답했던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 같다. 나는 평소 연휴가 생겨도 특별한 계획을 세워 화끈하게 놀만한 재능이 없는 관계로늘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핑계를 대며 밋밋하게 지내는 편이라 특별히 여름휴가를 고대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여름은 예외였다. 2~3주 전부터는 어떤 고난과 고통도 이번 휴가를 버팀목삼아 버텨왔었다. 병원만 벗어나면 뭘 하든 나에게 보람찰 것만 같아, 계획이 없어도 좋았다
.

예전부터 읽어보리라 결심했던 책. <작은 변화를 위한 아름다운 선택>. 현재 하버드 의과대학과 아이티를 오가며 환자를 진료하는 내과의사이자 의료인류학자인 폴 파머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이 책을 읽은 것이 이번 휴가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니었을까? 굳이 주인공인 폴 파머와 나를 비교한다는지 그에 비추어 나는 어떤 지평에 서 있는지를 비교하는 유치한 짓은 하지 않았다고 변명한다. 그가 보여주는 실천적인 삶의 방식은 대단히 경탄할만하지만, 나에게 더 큰 반향을 울린 것은 그가 공부한 의료인류학이 그가 의사로서 살아가는 삶에 viewpoint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는 점이었다
.

나는 최근 몇 개월 동안 내가 의료사회학을 공부했던 사람이라는 점을 잊은 채 살고 있었다. 병원이 내 생활의 모든 공간이었고 이 안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들이 내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1년차에게 필수불가결한 통과의례라는 것은 알지만, 내 마음 씀씀이까지 땅콩만큼 작아져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하는 소심함이 몸에 배어버린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곳보다 훨씬 넓은 세상이, 각기 독특한 order가 작동되며 구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에, 병원에서 일면적으로 발견되는 현실에 쉽게 부화뇌동하고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 심장만큼이나 콩닥콩닥 가슴졸이며 일상에서 발을 동동 굴렀던 것은 아닐까? 후회되지만 아마 시간을 되돌이킨다 하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왜 내 일상의 일과 환자, 병원에서의 생활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생활하지 못하고 야심만만하게 미래를 꿈꾸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왜 그렇게 끌려다니기만 했을까
?

일주일간의 휴식이 생각보다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되었나보다. 조금 마음이 커진 것 같고 계속되는 call에도 짜증이 덜 난다. 내심좀 잘해보리라하는 욕심도 생긴다. 그동안은 이런 마음조차 꿈꿀 여유가 없었는데 말이다. 3인데 휴학하고 항암치료 중인 녀석에게 숙제로 내준 영문독해를 함께 풀고, 백혈병이 재발한 동생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기 위해 입원한 언니 환자와 함께 잠시 묵상도 드리고, 한달 이상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사선을 넘고 살아돌아온 젊은 총각의 사타구니를 들여다보며 상처에 granulation tissue가 많이 자라 정말 다행이라고 웃을 수 있으니, 여름 휴가 후 start는 썩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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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기록지

 

이 환자 EKG flat 남은 거 없어요?” “아까 사망 시간을 몇 시로 했었죠?” “본적은 어딘가요? 사망진단서는 몇 통 필요하대요?”

환자가 expire하고 나면 주치의는 할 일이 많다. 일단 expire 선언을 하고 나면 가족들에게 적절한 예의를 갖추어 조의를 표한 다음, 잽싸게 station으로 나와 선행사인, 중간사인, 직접사인을 스태프 선생님께 확인 받아 사망진단서도 작성하고, expire note를 쓰기 위해 환자의 chart도 잘 챙겨두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expire한 순간에 병동에서 expire note를 써야 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Expire note 마지막에 붙여야 할 flat EKG를 챙기는 일을 잊으면 mortality 발표가 있는 의국회의 때 혼나기 일쑤이므로 반드시 기억할 것
.

밤늦게 챙겨온 chart를 넘기며 expire note를 쓰다 보면 내가 이 사람의 죽음을 이런 식으로 정리해도 되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병원에서 사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리 죽음을 예상하고 신변을 정리할만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생의 마지막을 맞게 된다. 아주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면 이 사람의 인생을 기록한 문서가 있을 리 만무하다. 또 투병 중에 꾸준히 일기를 써서 자신의 심정과 생애를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의 생과 사를 공식적인 문서로 기록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쓰는 expire note가 유일하지 않을까? 컴퓨터 자판을 무의식적으로 두드리던 나의 손길이 흠칫 멈춘다
.

과거력상 **년에 ***병 진단 받고 ****치료하며 f/u 하다가 최근 develop ******증상을 주소로 내원하여 ******치료받았으나 치료에 반응 없고 disease progress 되는 소견 보여 환자 및 가족에게 현 상황 설명하자 추가적인 검사 및 치료 원치 않고 심폐소생술 및 인공기도 삽관하지 않기로 하여 DNR permission 받은 후 conservative care 하다가 자발호흡, 맥박, 동공반사 소실되고 EKG flat 소견 관찰되어 ** * **일 사망 선언함. 선행사인 ** 중간사인 *** 직접사인
****.’

바로 이것이 내가 작성하는 expire note의 전형적인 형식이다. 엊그제 사망한 환자의 expire note도 위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CML 10년 된 60세 남자로 2년 전부터 Glivec 치료의 indication이 되어 외래에서 복용을 권유하였으나 환자가 거절하고 지내다가 20일간의 poor oral intake, general weakness로 응급실 내원, septic arthritis 진단 받았으나, CML acute crisis 진행된 상태에서 ARF, hepatic failure, pulmonary edema가 순식간에 발생하였고 DNR 상태에서 내원 8일만에 사망한 것으로정리된 환자
.

내원 당시 보호자인 부인은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였지만, 왠지 남편의 질병이 진행되어 위험한 상황이 도래했다는 사실에서만 유래된 것은 아닌 듯했다. 환자는 3∼4일간 검사 및 치료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고, 나는 시간을 내서 부인을 만났다. 환자 가정에 최근 발생한 여러 문제들을 지면으로 옮길 수는 없지만 여하간 생의 최대 위기 국면에서 부인은 최종적인 결정을 혼자 내려야 했고 연명치료에 대해 평소 부정적인 의견이 확고했다는 남편의 뜻을 따라 적극적인 치료 없이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그가 입원해있던 며칠 동안 회진 시간의 1/3 이상을 그 보호자와 면담하는 데 쓰게 되었고, 숨쉬기 힘들어하고 온 몸이 노랗게 변한 채 퉁퉁 부어있는 그의 육체를 고통스럽게 바라보아야 했다
.
그가 사망한 직후. 솔직히 말해이제 회진을 좀 빨리 돌 수 있겠구나’, ‘내일 mortality 발표 준비를 해야겠구나’, ‘EKG flat 안 챙겨놨는데 station에 가면 있을까?’ ‘다른 병원 영안실을 이용한다는데 빨리 진단서를 써야겠구나’, ‘진단서에 선생님 도장이 필요한데 외래 문은 열려 있을까?’ 뭐 이런 생각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채운다. 그런 내가 무섭기도 하다
.

어떻게 죽느냐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반영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가 잘 죽기를 바랬다. Mental status alert할 때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더 나누고, 봐야 할 사람들 있으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었다. 환자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이런 얘기는 보호자와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정중하게, 최선을 다해 말한다는 느낌을 주면서 말해야 한다. 그러니 회진을 도는 바쁜 시간에 틈을 내어 하기가 어렵다. 그 환자로 인해 나는 며칠 동안 다른 환자들의 progress note 쓰는 것을 뒷전으로 미루고 좀 덜 중한 환자들에게는 신경도 제대로 못 썼다. 그런 걸 보면 죽음이 삶을 규정한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

오늘 mortality를 발표한 한 동기는 형식에 맞추어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고, 그 환자의 past history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혼이 났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다시 발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명복을 빌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살아 있는 환자에게 신경을 좀더 쓰는 것이겠지만, 고인의 명복을 기원하는 데에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리라. 평생 얼마나 많은 환자를먼저떠나보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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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주여, 저는 어찌하오리까?

 

Term change. 오 주여, 저를 굽어살피소서. 과연 언제쯤 term change 때의 이 중압감을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오늘로 7일째 constipation에 시달리고 있다. MgO 6T #3, alaxyl 1pack daily로 복용하고 있지만 이미 모두 돌처럼 굳어버렸나 보다.

나는 이제 1년차의 세 번째 term을 맞이하였고, 혈액종양내과에서 일하는 나흘째다. 나는 아침에 Chest X-ray를 보며 환자 presentation을 제대로 못해 꾸중을 들었다. 정확한 medical terminology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기를 몇 차례, 선생님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어물거리기를 몇 차례, 그런 나의 허점이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렸던지 언성이 몇 번 높아지다가 아침 회진을 마친다
.

사실 난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좀 느리기 때문에 -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내 업보인지라 - 발빠르게 움직이고 명민하게 환자를 파악하지 못해 초반에 혼나는 일 정도는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다
.

그런데 문제는 환자다. 과마다 환자들의 특성이 있기 나름이지만, 혈약종양내과의 환자들, 특히 내 환자들 대부분은 급성백혈병 환자들로 몇 차례의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거나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은 환자들이다. Chemo WBC 60, neutrophil 20, 이런 가슴 떨리는 cell count의 보유자이거나, 2주전 건강검진시 시행한 lab 1만개였던 WBC 2주 사이에 12만개로 급격히 증가하여 emergency leukopharesis를 하는 환자들…, 이런 환자들을 가리켜 한 선배 레지던트는유리알 같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였다
.

그래서 당직 때는 아무리 사소한 call도 무시할 수 없다. 배짱부릴 만큼 환자 파악이 잘 된 것이 아님은 물론이요, 이들에게 투여되는 이름도 낯선 약들은 손댈 수도 없고, 분명히 저녁 회진 때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던 환자들이 순식간에 확 shock에 빠져버린다. Call이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guideline이 머리 속에 정리되지 않은 채 시작하는 hema는 공포 그 자체다. Lab 교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직 실감하지 못한 채 게으른 1년차로 전락하여 하는 일 없이 바쁘게 뛰어다니지만 정작 꼭 해야할 일은 못하는, 한마디로 꼴통이 되어가고 있다
.

지금은 오후 회진을 마치고 곧 당직이 시작되는 시간대이다. 7시가 넘으면 나에게 오늘밤 우리 병원 hema 환자들의 모든 call이 몰려올 것이다. 정말 두렵다. 어제 당직은 8시부터 12시까지 fever call 12개 받았다고 했다. 이 스트레스는, cardio 근무를 마친 이 시점에서도 그 빠른 turnover를 쫓아가지 못해 정리하지 못하고 쌓여있는 cardio 퇴원차트를 볼 때 느끼는 스트레스와는 또 다른 엄청난 강도로 나를 압박한다
.

문제는 교수님이나 윗년차 선생님께 깨지는 게 아니다. 내가 너무 개념 없이 허둥대고 중요한 일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내과의사가 아닌가봐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되면서 또 다시 자괴감에 빠져드는 것이다.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들, 도망가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오늘은내과의사는 태도가 중요해.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성의가 있으면 일을 이렇게 할 수 있겠니?’라는 말을 들었다. 오 주여, 당신 말씀이 맞사옵니다. 저는 어찌하오리까
!

내가 비록 excellent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열심히 발로 뛰는 부지런함으로 나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했건만, 이제 그 마지막 무기마저 흔들리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둑을 무너뜨리려는 물살을 온몸으로 막아 나라를 구했다는네덜란드 소년처럼, 나는 지금 나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비판의 물살을 간신히 막고 있는 것 같다
.

내가 올해 주치의 일기를 다 쓸 수 있다면 그 마지막 편의 제목은곰이 사람되는 날혹은이무기가 용되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표현은 청년의사 편집국장님이 2주마다 한번씩 보내는 내 원고를 보고 격려차 보내준 답신 메일에 등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내 결심은사람은 못 될지언정 괴물은 되지 말자정도로 위축되어 있다고 할까
?

오늘은 off position으로 병원에 남아 있다. 다시 한번 환자 차트를 보고 병동을 돌아볼 참이다.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자리잡는다. 오늘은 정말 우울하고 슬픈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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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흉을 만들던 순간

 

내과 1년차라면 vital sign을 잡아야 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건만, 사실 나에게는 그럴만한 기회가 많지 않았다. 환자들 대부분의 vital sign stable한 내분비내과에서 첫 3개월, 그리고 조금이라도 중환이 될 것 같으면 CCU로 자리이동을 하는 심장내과에서 그 다음 2개월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제, 나는 응급실에서 NSTEMI환자와 맞닥뜨렸다. 괜찮던 환자가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자 나는 윗년차 선생님께 notify한 후 당당히 Rt. subclavian catheter insertion을 하려 했다. 항상 procedure를 시작하기 전에는 왜 이 시술이 지금 필요한지, 어떤 기대효과가 있는지, 발생 가능한 합병증은 무엇인지 한참을 설명하고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도 제대로 받아 왔건만, 이상하게도 어제는 별로 열심히 설명하지 않고 바로 line을 잡기 시작했다
.

Cancer
환자라서 너무 말랐던 탓일까?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한두 번 artery puncture가 되고 말았다. 한번 hematoma가 생기면 어차피 어려울 것 같아 한 번만 더 찔러보고 femoral line으로 바꿔야겠다고 결심하고 세 번째 바늘을 꽂는 순간, 뭔가 피슉 소리가 나며 피스톤이 밀려올라가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바로 pneumo구나, 직감할 수 있었다
.

서둘러 chest X-ray를 찍어도 시원찮을 판에 나는설마 아닐 거야하면서, 환자에게 dyspnea가 있는지를 물어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3년차 선생님이 X-ray order를 냈고, 희미하게 발견되는 pneumo-line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아직도 ‘high O2를 하면 저절로 흡수될만한 양은 아닐까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미 3년차 선생님은 CS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

가족들은 heparin까지 start한 환자에게 chest tube를 넣어야겠다는 흉부외과 의사의 말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 옆에 서서 동의서를 가슴에 끌어안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마침 나와 친한 흉부외과 동기가 동의서를 대신 받아줬고, 나는 끽 소리도 못한 채, 그의 procedure를 지켜볼 만한 배짱도 없이, 응급실 구석에서 그 환자의 admission note를 쓰면서 가슴을 졸이고 있어야 했다
.

순식간에 나타나 도움을 주고 소리 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간 흉부외과 동기도 고마웠고, 나 때문에 보호자에게 더 많은 설명을 하고 시간을 할애해야 했지만 나에게 한마디의 비난도 하지 않았던 윗년차 선생님들도 고마웠다. 불신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기는 하지만 크게 항의하지 않고 묵묵히 의사의 지침에 따라주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는 미안하고 고마웠다
.

그 환자가 오늘 CCU로 올라왔다. 나는 계속 OCS를 띄워보며 그 환자에게 내려진 order를 열어보고 언제 응급실에서 자리를 옮기는지 추적하고 있었다. 이제 좀 마음이 놓였다. 그를 담당하게 될 2년차 선생님과 중환자실의 간호사에게도 잘 좀 봐달라고, 하나마나한 부탁을 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정말 천근만근이다
.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지만, 백 마디 말보다 procedure의 성공적 수행이 더 중요한 순간이 많음을 느끼는 요즘, 이렇게 합병증 한번 만들고 나면 소심해지고 자신감도 떨어지고 환자 보기도 민망해진다. 여러 번 하다보면 skill은 좋아지는 것이니 너무 괘념치 말라는 동료들의 위로가 고맙기도 하지만 더 소심해지기도 한다
.

오늘 하루 더 씩씩하게 일하려고 애를 썼지만, 마음속은 온통 어제 본 그 pneumothorax 사진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내가 극복해야 할 십자가겠지
.

환자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Training 병원에서는 모든 것에 익숙하지 않은 1년차도 중환 procedure를 하게 되고 합병증을 만들게 된다는 것을. 그게 능력 있는 의사들을 만들어내는 길이라는 사실을…. 의사들에게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환자와 가족들이 이러한 정황을 모두 이해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

효과적으로 잽싸게 order도 내야 하고 틈틈이 progress note도 메꿔야 하고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만과 요구사항을 차분한 마음으로 충분히 들어줘야 하고 밤에는 퇴원한 환자들의 퇴원 요약지도 정리해야 하고 중환이 생기면 명민한 판단력으로 대처해야 하고 어려움을 겪는 동료 의사도 가서 도와줄 수 있는 의사가 되어야 하는 게 지금 나에게 떨어진 과제인 것 같다
.

더불어 나의 procedure로 환자가 더 고통을 받는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 것, 그것이 당분간은 나에게 가장 큰 절대절명의 과제로 다가온다. 나는 과연 이 모든 것을 수행할 수 있는 슈퍼 레지던트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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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병원에서 일한다는 것은

 

여러 일간지와 방송에도 소개됐지만, 세브란스병원이 새병원을 짓고 이사를 했다. 무릇 단칸방 이사 한번 하는 데도 가족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법이다. 며칠 동안의 어수선함과 고생을 감수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물며 중환자실이 이동하고 1,000명 이상의 환자가 자리를 다시 잡고 기존의 일부 병동을 폐쇄하는 등의 하드웨어의 변화와 함께 간호인력의 충원, 외래 및 입원환자 진료 체계의 변화 등 소프트웨어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짐이랴. 밖에서 보듯 근사한 새 건물로 가서 폼나게 일하는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아직 정식 open을 못하고 있는 EMR system 때문에 모르긴 몰라도 병원의 높으신 분들은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것이 아닌 듯하다. 수 차례 리허설을 하지만 자꾸 에러가 발생하니 아직은 예전의 OCS를 쓰면서 EMR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문제는 EMR이 자리를 잡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공의들은 정작 일에 쫓겨 새로운 체계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의료진과 실무진의 communication도 충분치 못한 것처럼 보인다
.

더욱이 내가 일하는 내과의 경우 새병원 뿐만 아니라 구병원의 여러 건물에 입원 환자들이 배치되다 보니 예전처럼 선생님 한 명에 레지던트가 몇 명 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병동제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동선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병동제는 주치의가 병동에 상주하며 일정수의 환자에 대한 management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에 가장 큰 장점이 있다
.

그러나 환자들의 입원은 완전히 병동제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대략은 과에 따라 병동이 정해져 있지만, 입원을 기다리던 환자들은 아무 병동이든 자리만 나면 덜컥 입원을 해 버린다. 입원 원무과에서 환자 입원을 결정하고 병동을 배치하는 행정시스템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겠지만, 내과 환자가 병원 곳곳에 입원을 해버리니 담당 전공의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내과 전공의들은 연차를 막론하고 새병원 이사 이후 과중한 업무에 지쳐 모두들 신경이 날카롭다
.

바뀐 하드웨어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고 병동제라는 소프트웨어의 변화에 기존의 개념과 관습을 조율하여 효율적인 진료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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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나는 새병원에 별로 정이 안 간다. 의사 숙소도 깨끗해지고 병원도 말끔하게 단장하였는데 말이다. 아마 변화를 파악하고 새로운 뭔가를 배워 적응해야 하는 것에 나도 모르게 저항감이 드는 것 같다. 그래서 폐허처럼 변해버린 구병동 의사실을 여전히 애용하고 있다. 지저분하고 구질구질했던 옛 병동의 분위기가 더 마음이 편하다. 변화가 주는 혼란을 받아들일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나보다. 젊은 나도 이런데, senior staff 선생님들은 마음이 얼마나 심란할까 싶기도 하다
.

변화란 반드시 혼란을 초래하기 마련이고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혼란의 와중에서 슬기롭게 대안을 마련하고 내부 구성원들이 단결하여 노력하는 것이 이치일진데, 전공의의 삶은 차분하게 그런 미래를 구상하고 현재를 견딜만한 여력이 안 된다고 변명하고 싶다
.

대형병원의 이사는 단지 물질적으로 뭔가를 이동시키고 세팅을 바꾸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병원 경영의 철학이 반영되는 과정이며 더불어 의료적인 것이 비의료적인 문제에 부딪혀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매우 사회적인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불어 모든 변화가 그러하듯 리더십이 극대화되어야 하고 조직 구성원의 마인드가 새롭게 개편되어야 하는 조직 문화의 지각변동이 동반되는 과정인 것 같다. 부디 새로운 병원 문화의 창출이 이곳에서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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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1년차가 사는 법

 

나는 끼니를 놓치지 않고 챙겨 먹는 편이다. 꼭 밥이 아니라도 배를 채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원래 성격도 너그럽지 못한데 hypoglycemic해지면 의욕도 없고 우울해지고 쉽게 짜증이 나는 편이기 때문에, 나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배를 채워 마음을 여유 있게 해줘야 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이 철칙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일을 하다보면 끼니를 놓치기 일쑤라서, 뭔가 눈앞에 있으면 일단 먹어야 한다는 근성(!)이 생기고 있다.

일단 각종 conference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30분 이내로 금방 끝나거나 과 내부적인 집담회에는 먹을거리가 제공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밥을 주는 conference는 꼭 챙긴다. 내가 속한 과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식사를 제공하는 conference가 있으면 마치 그 주제에 관심이 많은 척 하며 들어가 밥을 먹은 후 병동 콜을 받은 척 하며 나오면 된다
.

9시가 넘으면 직원 식당에서 그날 환자들에게 제공되고 남은 식사들을 모아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 11시 경에는 그곳에 가서 때늦은 저녁을 먹는다. 그래서 매일 환자들의 식단을 유심히 관찰한다. 그날 밤 나의 반찬이 될 것이므로. 어제는 저염저콜레스테롤식 반찬만 나와서 별로 맛이 없었다. 고단백 상식이 남는 날은 꽤 맛있는 불고기도 나오는데
….

가끔 의무기록실에서 전화가 온다. 미비차트를 언제까지 정리해줘야 한다는 협박성 전화다. 짜증 대신 얼쑤, 반가운 마음이 든다. 오전에 의무기록실에 가면 맛있는 빵과 원두커피, 간단한 다과가 준비되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미비차트 정리는 의국 차원에서도 챙기는 사항이므로, 적당한 시간에 의무기록실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은 병동을 비우는 사유로 용납될 수 있다
.

공휴일이면 의국에서 도시락을 줄 때가 있다. 그 시간은 어김없이 선두에 서서 도시락을 타러 간다. 늦게 가면 그것도 없어지기 때문에
.

예전에는 윗년차나 교수님과의 회식이 있다고 하면 사실 귀찮은 마음이 들었었는데, 이제는 병원 밖으로 나가 바깥바람을 쐴 수 있다는 생각에 더해한끼 식사는 잘 하겠구나하는 원초적인 본능이 발동되어 기쁜 마음이 앞선다
.

병동에서 힘없는 표정을 짓고 있으면 마음씨 고운 간호사는 나를 슬쩍 불러내서 먹을거리를 건네준다. 선생님, 이거라도 드세요. 어찌나 고마운지. 표정관리를 잘 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구나
.

의사실에 라면이 구비되어 있을 때도 있는데, 그땐 어김없이 포스트잇을 붙여 내 이름을 쓰고 prep해 둔다. 언젠가 나에게 유익한 생명의 양식이 될 수 있으므로. ! 유치하여라. 여기까지 쓰고 보니 참으로 내가 불쌍하구나
!

머슴을 부릴 때도 밥은 잘 먹여야 한다는 것은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이다. 그런데 때때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할 때면 서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에 윗년차에게 혼이라도 나면 서러움은 배가된다
.

그래서 오늘은 시도 때도 없이 chest discomfort가 있다는 심장내과 환자들의 EKG를 찍으며 병동을 뛰어다니는 우리 인턴 선생님들에게 피자를 쐈다. 물론 내가 제일 많이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후에 병동에서 일하는 그들의 얼굴 표정이 밝아 보여 흐뭇하다. 밥을 막 먹기 시작할라치면 EKG를 찍으라는 call을 받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심장내과 인턴 시절이 엊그제인데, 지금은 내가 미리 order를 내지 못해 일을 체계적으로 시키지 못하고 인턴들의 발품을 팔게 하는 1년차가 되었다. 미안함과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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