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임상연구, 별로 관심없었는데...

슬기엄마 2011. 10. 16. 13:28


누구는 뇌로 전이되고, 누구는 뼈로 전이되는지 아직 잘 모른다.
특정 장기로 전이되는 경향이 있는 유전자가 있다는 정도가 알려져 있지만
그걸 실재 임상환자를 대상으로 검사하기에는 아직 연구는 초보단계이다.
설령 검사를 해서 결과를 얻었다 해도, 그걸 예방하기 위해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의학의 수준에서는...

난소암 복막전이.
소장, 대장을 감싸고 있는 복막. 거기에 전이가 되면 장 운동이 원할하지 않다.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되고
자칫 가스가 차서 배가 빵빵해서 횡경막을 치밀어 올리니 밥을 조금만 먹어도 숨이 차다.
대변도 잘 못 본다.
병이 잘 조절되지 않으면 복막에 있는 암세포가 복수를 만들어낸다.
복수를 빼 주면 일시적으로 편안하지만, 체내 전해질이나 알부민이 빠져나와서 환자는 배는 부른데 기운은 빠지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복수가 금방금방 차오르면 아예 배 안에 카테타를 넣어 환자가 조금씩 뺄 수 있도록 장치를 하는 방법이 있지만, 그것은 치료하고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배부를 때 임시방편으로 물을 빼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복막 전이로 인한 불편한 증상은
항암치료를 해서 암세포를 걷어내는 방법밖에 없다.

세명의 난소암 복막전이 환자가 주말동안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다.
이들은 모두 난소암을 진단받고 이미 4-5차례 약제를 바꿔서 항암치료를 받은 분들이다. 치료경력도 길다. 난소암은 생각보다 예후가 좋은 암이다.
환자는 나보다 약간 나이가 많은 정도.
그들에게는 슬기보다 약간 더 큰 아이들이 있는 정도.

여러번 약제를 바꿔서 항암치료를 했는데도 병이 조절되지 않는다.
그렇게 조절되지 않을 때 나에게 협진이 의뢰된다.
이제 보험되는 약도 없고
보험이 안되는 약이라 해도, 별다른 효과를 기대해보기가 어려워서 선뜻 도전하는데 망설여진다.

예를 들면 
전이성, 재발성 난소암에서 탁솔+카보 만으로 항암치료를 하는 것보다 아바스틴을 병용하는 것이 성적이 우수하다는 것이 여러차례 반복적인 임상연구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바스틴은 비급여이고, 한 번 치료에 4-5백만원 정도가 드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보험도 안되고, 심지어 임의비급여이기 때문에, 환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전액 환불, 심지어 병원은 5배를 환불해야 한다.
또한 나에게 진료가 의뢰되는 경우는 대개 3-4회 이상 항암치료를 하여 약제 저항성이 높은 세포들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제 와서 아바스틴을 쓰는 것이 과연 어떤 효과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아바스틴 연구는 처음으로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내가 만나는 환자군과 생물학적 성격이 다를 것이다.

환자들 보기가 너무 안타까워서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신약을 개발한 모회사에 연구계획서를 제출하였다.
전이성, 재발성 난소암을 진단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최초 항암제를 투여할 때, 신약을 같이 투여할 수 있는 방법은 임상연구밖에 없다.
지난 주에 어렵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거절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계속 노력할 것이다.
좋은 약을 포함한 임상연구를 잘 짜서 환자들에게 이득이 되는 치료를 하고 싶다.
1군 항암제가 아니라...

컨디션은 아직 괜찮은 이들.
항암치료를 해 볼 수 있는 컨디션.
본인들도 아직 조금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1-2년만이라도.
아이가 고등학교 갈 때까지만이라도, 아이가 대학졸업 할 때 까지만이라도. 엄마들의 염원은 너무나 간절하다.
나는 아직
이들을 위한 치료약제를 1군 항암제에서 골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