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저보다 더 힘든 환자에게

슬기엄마 2011. 10. 17. 21:04

환자의 경과기록을 보다보면
환자와 깊은 대화를 통해 환자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여러 임상과 예를 들면 정신과, 방사선종양학과 뿐만 아니라 병동 간호사, 사회복지팀, 호스피스팀 등의 기록을 보면 알수 있다.
나는 기록을 보고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알고 있다는 티를 내지는 않는다.
다만 그 모든 분들께 조용히 감사드린다.

그들에 대한 환자의 반응도
내가 아는 모습과 다른 경우가 있다.
좋아지지 않는 병 때문에 환자가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고 최근 항암치료에 대한 반응도 없어서
내심 힘들게 호스피스 얘기를 꺼냈다.

제가 환자분 치료를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전 환자의 컨디션을 보고, 가능한 유용한 약이 있으면 항암치료에 도전해 볼거에요.
그런데 어쩌면 지금 환자에게는 항암제의 도움 말고도 다른 도움이 필요할 지 모르겠어요. 호스피스팀을 만나보시겠어요?

그렇게 어렵게 말을 꺼내고 호스피스 팀에 협진을 의뢰했는데
정작 호스피스팀의 기록을 보니 환자는 아주 의연하다.
내가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병의 경과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환자 스스로는 기대여명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를 연결해서 부은 다리에 대해 발맛사지를 해드리겠다는 제안에 대해
환자는
저는 아직 견딜만해요.
저보다 더 힘든 환자에게 먼저 발맛사지해주세요.
저도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할께요.

단지 자존심이나 그런 건 아닌것 같다.
내가 환자의 표정을 보고 짐작으로 예상했던 것, 그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환자에게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투여해야 하는데
검사결과보고 회진돌며 안색살피고
그러면서 겉으로 대충 짐작한 환자의 내면은 내가 예상한 것과 달랐다.
훨씬 깊고 고요했다.

죄송해요.
저도 부족함이 많네요.
끝까지 우리 잘 해봐요.
내일 또 새로운 하루를 도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