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나에게는 예정되어 있던, 가족에게는 준비가 안된

슬기엄마 2011. 10. 29. 21:41

연수가신 손주혁 선생님이 끝까지 진료하시던 환자.
나를 처음 만난 건 재발된 유방암으로 치료를 9번 하고 CT를 찍고 결과를 보러 온 날이다.
예전에 만난 기억이 있는,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처음 진료를 보는 날, 나는 환자에게 폐전이가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야 했다.
수술 전 항암화학요법을 하다가 환자가 자의로 치료를 거부하였고
몇달뒤 폐로 전이가 되어 병원을 다시 찾으셨다.
다행히 첫 치료에 반응이 좋은 듯 싶었고 9번까지 항암치료를 한 후에 휴지기를 가질 예정이셨다.
그런데 9번 항암치료 후 찍은 CT에서는 전이가 다시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첫 면전에서 병이 나빠졌다는 소식을 전해야했다.
다시 항암치료를 하자고 했더니
환자가 몸이 아직 힘들다면서 조금 더 쉬었으면 한다고 하신다.
난 2주후로 입원장을 드렸다.
먹는 항암제로 바꿀 예정이었기 때문에 외래에서 시작해도 되지만 입원해서 경과를 봐야할 것 같았다.

2주후 환자는 입원했다.
2주전보다 더 힘들어한다.
항암제 후유증이라기 보다는 병의 진행으로 인한 증상 악화였다.
산소를 하지 않으면 숨쉬는 것도 힘들고, 말도 잘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 하는 환자.
난 3일간 경과를 지켜봤지만, 더 늦으면 치료시기도 놓칠 것 같았다. 이제 40대 후반. 곁에 보호자가 없다. 숨쉬기 힘들어 내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는 환자에게 항암제 치료의 의미를 설명하고 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아마 환자는 내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2주간 입원을 했다. 1주일간 항암제를 드시는 동안 숨쉬는 것이 다소 편안해졌다. 산소없이도 누위계시는 정도. 내심 항암제가 약효를 발휘하나 싶던 8일째. 환자는 기운이 너무 없고 무기력감이 심하다고 호소한다. 입도 헐기 시작한다. 항암제 독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항암제를 다시 중단하고 경과관찰을 하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몇일이라도 집에 가서 생활해 보시라고 했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난
그저께.
환자는 응급실로 왔다. 의식 저하.
오자마자 찍은 가슴CT는 불과 1달전에 비해 병이 많이 나빠져있다.
응급으로 찍은 뇌 CT에서도 뇌전이가 여러군데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몸을 아프게 꼬집는데도 별로 반응이 없다.
환자 옆에는 두 딸이 함께 있다.
큰 딸을 불러 사진을 보여주면서 새로 전이된 부분, 기존의 병이 나빠진 부분을 설명하였다.
이제 항암치료는 할 수 없을 것 같고, 이번 입원기간 동안 돌아가실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딸은 순순히 이해하는 눈치다. 엄마의 유방암 타입이 공격적이라는 것도 이미 다 알고 있고, 병이 급격히 않좋아지는 상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호흡정지나 심장정지가 발생하면 심폐소생술을 하고 중환자실로 가서 인공호흡기 치료를 하시겠다고 한다. 나는 좀 당황했지만, 그건 별로 좋은 결정이 아닌것 같다고, 다른 가족과 좀더 상의를 해 보시라고 말씀드렸다. 딸은 상황은 다 알겠지만 1%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다고 한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며.
난 일단 더 이상 얘기하지는 않았다. 그날 밤은 이벤트 없이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
소량의 진통제를 연결한 탓인지 숨쉬는게 조금 고르게 느껴진다. 맥박도 100회 미만으로 안정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통증 반응이 없고, 대화도 하지 못하고, 의식이 맑지 않다. 반혼수상태인것 같다.
한숨도 못 잔 환자, 같이 한숨도 못잔 것 같은 두 딸.
엄마가 좀 좋아진 것 같다며
거 보라고 좋아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달라고 한다.
가족을 만나야 할 것 같아 가족 면담을 하자고 했더니 오전에 이모만 오셨다. 환자의 동생인 이모는 잘 알겠다고, 심폐소생술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이해하셨다. 그러나 오후에 병실에 가보니, 딸은 완강하다. 그들은 직계가족이 아니라고. 자기가 직계가족 대표니까 자기랑 얘기하라고. 자기가 결정하겠다고. 그리고 심폐소생술을 하겠다고 하신다.
난 다시 한번, 그리고 좀 더 강하게 회생할 가능성은 1%도 되지 않는다고, 인공 삽관이나 심폐소생술은 환자를 더 힘들게 하고 고통만 줄 뿐이라고 설명하였다. 딸은 내 말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다 해달라고 한다.

오늘,
오전동안 상태가 안정적이다.
나의 짧은 경험상 환자들은 임종하시기 바로 직전에 약간 좋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의학적으로 설명은 잘 안되지만 지금이 그런 때인것 같다고 딸에게 얘기했다. 끝까지 청력은 남아있으니까, 옆에서 따님들이 좋은 말 많이 해 주시라고, 엄마 사랑한다는 말 많이 해주시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듣기 좋은 말도 세번이면 질리는데, 이렇게 잔인한 말을 세번이나 하다니.... 아주 몹쓸 짓이다. 그러나 딸은 포기하지 않는다.

한시간 전. 
갑자기 맥박이 160회 이상으로 뛰고 산소포화도가 90% 이하로 자꾸 떨어진다고 연락이 왔다. 레지던트가 다시 한번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을 했지만 말이 안통해서 인공삽관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의학적으로는. 만약 인공삽관을 하면 중환자실도 가야하는 상황이다.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난 결국 다시 병동으로 갔다. 지금 인공삽관을 했다가는 심장정지가 올 것 같다. 환자는 chain stroke breathing을 하고 있다. 곧 호흡정지가 올 거라는 싸인.
인공삽관을 할 준비가 다 되어 있다. 인공삽관, 심폐소생술 시 사용하는 약도 다 준비가 되었다. 이제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번 딸에게, 다른 가족에게 설명하였다.

그리고 인공삽관을 하지 않기로 최종결정을 하였다.
진통제를 올렸다. 그동안 딸이 진통제도 올리지 말라고 하였다. 딸은 약대생이었다.
환자가 호흡수가 다소 진정되고 심장맥박수가 떨어지는 걸 확인하고 병실을 나왔다.

DNR을 강요한 것 같다.
이 딸은 아마 평생 날 원망할 것이다.
난 그래도 인공삽관을 하지 않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속상하다.
저승사자가 된 것 같다.
이게 뭐람...
이렇게 서로가 상처받으며 DNR을 결정해야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