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인턴일기 검색 결과

22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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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공연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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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서 엄마가 준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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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을 수 없는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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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지던트 시험이 인생의 전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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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의사가 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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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질 때까지 일하는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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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줌마 인턴의 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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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위는 만들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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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가 미워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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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여, 패기를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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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로 사회화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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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와 ‘여자’라는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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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급실의 잠 못 이루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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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엽기적인 여자 인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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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림받았지만 행복한 아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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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림받았지만 행복한 아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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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 날짜 없는 퇴원 요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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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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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여러 번 해 본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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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vein을 보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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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약한 시스템과 과잉 적응된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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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나는 어떤 경우에 달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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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마치고

 

나는 요즘 공포의 chest pain 환자들이 줄을 잇는 심장내과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새벽 5시면 어두컴컴한 병동의 불을 켜고 아침 EKG를 찍는다. 전날 coronary angiography를 시행한 환자들의 puncture site dressing도 회진 전에 끝내야 한다. 평균 10개 정도의 EKG 30분내로 찍는 것이 나의 목표다. 그렇게 부랴부랴 찍을라치면 어제와 오늘 EKG를 비교하는 진지한 자세는 언감생심이다.

유난히 이른 아침을 시작하는 몇몇과의 인턴들 얘기를 들어보면 routine dressing도 오전 회진 전에 다 마무리해야 하고 chest tube bottle깨끗하게비워져 있어야 하고 새벽 5시에 항상 ABGA를 해야 한단다. 어떤 날은 dressing set가 부족해서, 어떤 날은 새벽부터 무슨 피를 뽑느냐며 화를 내는 환자를 설득하느라, 결국은 레지던트 선생님께 혼줄이 난다. 도대체 요즘 인턴들은 뭘 하는지 알 수 없다며
.

환자가 당일 무슨 검사를 했으면 주치의는 오후 회진 때 그 결과를 윗년차나 staff에게 notify해야 한다. Image study를 했으면 진단방사선과의 official reading을 받아야 하고 EGD echo를 했으면 결과지가 chart prep되어 있어야 한다. 오후 회진에 대비해서는 병원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각종 검사지를 챙기고, 안 나온 reading을 빨리 부탁한다는 메모들을 판독실에 남긴다. Old chart에 있는 자료들을 복사해서 병동 chart prep하는 일도 간간이 하게 된다
.

외과 계열의 인턴들은 일이 좀 더 많아 보인다. 디지털 시대라지만 아직도 각종 장부들이 많다. 그 장부를 정리하고 종합해서 문서로 만들고 잠자는 윗년차를 깨워 confirm 받고 프린터로 인쇄하고 그 장부를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고…. 원내 전자네트워크 시스템을 이용해 수술 결정 당시부터 입력이 시작되고 모든 process one-stop으로 결정될 수는 없는 걸까? 유령처럼 새벽 2∼3시에 병동과 의국, 인턴방을 오가는 동료 인턴들의 퀭한 눈동자를 보면 마음이 답답하다
.

한 번의 공연이 무사히 막을 내리기까지, 무대 위의 배우도 중요하지만 무대 뒷면에서 보이지 않게 뛰어다니며 일하는 스탭진들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인턴은 병원에서 펼쳐지는 회진, 수술 등의 중요 공연을 위해음지에서 일하지만 양지를 지향하는스탭진의 말단이다. 조명이 제대로 준비되지 못해, 음향 기기가 원래 싸고 질이 나빠서, 공연 장소가 비좁아서…, 이런 변명은 중요하지 않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관객들의 반응과 환호성이 그 모든 것을 설명할 뿐이다
.

그러므로 내가 일하는 병원이, 한국의 의료제도가, 우리 과의 현실이 어떻다는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묵묵히 뛰고 일이 성사되기 위해 기꺼이 발품을 판다. 다만, 나도 언젠가 무대 위로 올라갈 배우가 될 텐데, 막일을 하면서 배우의 소양을 키우고 연기지도를 받는 일이 병행되지 않으면 나는 막상 무대 위에 서게 되었을 때 감동을 전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배우가 되고, 내가 속한 극단에 대한 세인들의 평은 점점 나빠지며 관객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을 극단의 대표가 알았으면 좋겠다
.

또 교과서의 이론뿐만 아니라 일대일로 연기지도를 받는 과정에서 연기자의 자질이 경험적으로 습득되는 측면이 강하다면, 내 윗사람이 극단 내에서 취하는 태도, 선후배를 대하는 방식 등이 언어화되기 이전에 나를 체화시키게 되고 나도 유사한 방식으로 후배를 지도하는 사람이 되기 마련이다. 1년 뒤에 나는 인턴들에게 어떤 선배의사가 되어 있을지 가끔 무서울 때가 있다.

  • 감사합니당! 2016.01.22 21:20 신고

    우연히 ABGa에 대한 꿀팁이 있을까 네이버 검색중에 이 글을 발견햇는데 너무 신기하게도 저는 지금 본과4학년이며 편입을 한 동기들보다 4살 많은 학생입니다. 저희 pk에서도 제가 왕언니에요! 그냥 나만 이런 길을 걷고 잇는건 아니엿구나 생각이 들어서 언제 읽으실지 모르지만 글남기고 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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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 엄마가 준 커피

 

내 캐비닛 구석에는 시커멓게 말라붙은 커피자국을 드러낸 빈 병 하나가 있다. 편의점에서 한 병에 3천원이 넘는 값에 팔리는 고급커피다. 이 커피는 내가 소아외과에서 일할 때 만났던 6개월 된 아기 민서의 엄마가 준 것이다. 출생 직후 tracheo-esophageal fistula가 발견되어 수술을 하고, stenosis된 부위에 bougination도 하고, aspiration pneumonia도 생기고, 자꾸 토해서 체중도 늘지 않고, 그래서 민서는 집에 있는 날보다 응급실에 오거나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날이 더 많은 아이였다.

처음 민서 엄마를 보았을 때 엄마는 왜 자꾸 X-레이를 찍느냐, 뽑기도 어려운데 피검사는 왜 하느냐, 약을 먹는데도 왜 계속 토하냐는 등 불만 섞인 질문을 많이 했다. 가끔은 아기 곁에서 울고 있기도 했고, 새벽에 보면 겨우 잠든 민서 옆에서 쪼그려 자고 있기도 했다
.

담당 선생님은 민서 몸무게가 6kg을 넘을 때까지 병원에 입원해 있자고 아예 못을 박으셨다. 회진 때마다 몇 번 토했는지, 몸무게는 얼마나 늘었는지, 잠은 잘 자는지 등을 점검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상태에서 나는 다른 과로 옮겨갔다
.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소아병동을 지나다 아직도 그 자리에 민서 이름이 적혀 있는 걸 보고 안부가 궁금해졌다. 어느새 6kg가 되어 있는 민서는 얼굴과 팔다리에 살이 오르고 기운차게 몸을 들썩이며 뒤집기를 하고 있었다. 낯도 별로 가리지 않고 까르륵 잘 웃는다. 모든 아기들이 웃는 모습은 천사 같지만, 아파서 시름시름 앓던 녀석이 좋아지고 나서 웃는 웃음은 정말 예뻤다
.

민서 엄마는 기운을 다 민서에게 빼앗긴 듯 얼굴이 수척했지만, 표정만은 참으로 밝았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검사를 받고 무슨 시술을 받았는지, 다음주면 퇴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까지, 묻지도 않는 말을 하면서 즐거워한다
.

민서 상태가 좋아지니 소아병동을 지날 때 가끔 들르는 일에 부담이 없어졌다. 내가 인턴에 불과하고 지금은 다른 파트에서 일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꼬박꼬박 의사 선생님께서 잘해주셔서 그렇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내가 뭘 해 줬는데?’ 어색하기 짝이 없다
.

우연히 캐비닛에서 무슨 학회 때인지 기념품으로 받은 립그로스를 발견했다. 병동을 지나다 민서 엄마에게 건넸다. 병동 공기가 건조해서인지 엄마 입술이 다 부르트고 갈라져 있는 게 안쓰러웠었다. 다음 날 오후 소아병동을 지나는데 민서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부르더니 냉장고에서 커피 한 병을 건네준다. “병원 안에서 뭐 살 게 있어야죠라며. 그 커피가 맛있기도 했지만, 그렇게 나를 기억하고 있다가 건네준 마음이 더 고맙다. 정작 나는 한 것도 없는데 이러실 필요 없다고 말하자, “관심을 갖고 한번씩 들러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데요라고 한다
.

상태가 좋지 않고 별로 호전되는 것도 없어 보이는 환자들을 아침저녁으로 만날라치면 내심 마음이 갑갑하다. 하지만 힘든 시간들을 잘 견디고 난 후 환자 상태가 좋아지면 의사는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 된다. 의사의 직업적 역할이 환자를 치료하는 것인데,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능력 있는 의사뿐만 아니라고마운 의사선생님도 될 수 있다는 면에서 의사는 좋은 직업인 것 같다. 아직은 내가 누군가에게 고마운 존재가 되는 것보다는 의사에게 요구되는 능력을 갖추는 것에 치중해야 할 때라는 생각도 들지만, 가끔 환자가 나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는 걸 느낄 때면 참 기분이 좋다. 이 맛에 의사를 하는구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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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기억들

 

초턴 시절, 지방 병원 파견으로 시작한 한 인턴. 그라목손을 먹고 응급실에 온 할아버지 CPR을 한 후 가족들을 모아 놓고 expire 선언을 하다.

역시 초턴 시절, 입고 있는 가운마저 어색하던 때, UGI bleeding 콜을 받고 병동으로 달려갔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간호사에게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묻자, ‘그건 선생님이 알아서 해야죠라며 자기들끼리 station에 모여 농담을 하는 간호사들을 보고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다
.

Liver cirrhosis Child-Pugh C
로 입원한 할머니, hemorrhoid가 커져 터지기 직전이지만 수술을 하지 못하고 observation하며 지켜보던 중, 어느 날 아침 갑자기 hemorrhoid가 터져 low GI bleeding 발생, verbal order를 내고 레지던트 선생님을 부른 후 한 명은 ambu를 잡고 한 명은 bleeding focus compression하며 지켜보는데 곧바로 shock에 빠지는 할머니, 수 시간만에 expire. 의식이 남아있던 순간까지 허옇게 질린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아프다는 환자를 지켜보다
.

수술 후 갑자기 develop UGI bleeding, continuous irrigation을 하다 arrest가 나자 혼자 CPR을 하며 의사를 불러모으던 중 갑자기 expire. 주치의가 나타나네가 환자를 죽였다며 소리를 치다
.

2
주일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 하다가 햄버거를 사서 5분만에 먹고 콜라와 감자튀김을 들고 뛰어 병동으로 오던 중 감자튀김을 떨어뜨리고 나서 갑자기 눈물이 핑 돌다
.

입원 예정인 환자 수십명의 차트를 대출해서 prep해 놓았는데, 차트도 안 챙기고 뭐 하냐는 콜을 받다. 허겁지겁 달려가 보니 누가 보다가 내팽개쳤는지 옆방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차트들…. 이 과는 안 해야겠다고 생각하다
.

3
번의 UGI bleeding으로 VDA도 하고 SB tube도 꽂았지만 vital이 흔들려 ICU care까지 받고 다시 병동으로 돌아와 4번째 bleeding을 해 버린 GI 환자, 결국 TIPS 시행 후 상태 호전되어 퇴원하던 날 환자가 인턴을 불러 곶감을 주며 아플 때마다 달려와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하다
.

매일 밤 코피가 나서 멈추지 않는 liver cirrhosis 환자, 1시간 간격으로 vaseline gauze packing을 하느라 잠도 못자고 신경질이 잔뜩 나 있는데 롤케이크를 건네주는 보호자. 그리고 다음날 환자는 expire 하다
.

말턴 몇 명이 모여 늘어놓은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이다. 대개의 기억은 감동적이고 좋은 것보다는 painful하고 슬프고 기분 나쁜 것들이 많아 보인다. 처음 맞닥뜨린 환자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선언하는 것,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게 윗년차가 권위적으로 일을 시키고 닦달하며 결과를 재촉할 때, 아는 게 없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난 후 나의 무지를 한탄할 때, 손이 부족해 도움을 청하자 냉정하게 거절하는 동료에게 실망할 때, 전화통을 붙잡고 입원 예정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하던 일, 수술 스케줄 정리하느라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새던 일
….

물론 수기처방을 하고 X-ray film을 들고뛰던 불과 몇 년 전에 비하면 인턴의 life cycle은 상당히 개선됐다지만, 그래도 억울하고 외로울 때가 많았던 인턴 시절. 이제 끝이 보인다
.

1
년차 레지던트, 주치의가 되어 일하게 될 앞으로의 1. 절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에게 지혜와 인내와 성실함을 주소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늘 각성하는 자세로 일하게 해 주소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늘 alert하게 병동을 지키는 의사가 되게 해 주소서, 더불어 한 번 본 내용은 잊지 않도록 노화과정을 더디게 해 주소서,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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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시험이 인생의 전부냐

 

10여일 전에 전공의 시험을 보았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동료들이 불안에 떨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결과가 발표되어 시원섭섭하다.

나는 내과에 지원해서 합격했다. 솔직히 참 기뻤다. 예년의 분위기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올해 우리 병원 내과 지원자간의 경쟁은 유례없이 치열하지 않았나 싶다. 의국원이나 교수 면접이 있기는 했지만, 일말의 arrange도 없이 철저히 시험과 인턴근무 성적을 기본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 많은 동료 지원자들은 성적도 우수하고 인턴 생활도 열심히 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머리 회전 빠르지 않고 순발력 떨어지며 센스 없이 일해 온 나로서는 매일 불안함과 초조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틈 나는 대로 학교 도서관에 가보지만 내 머리는 이미 그저 열심히 달리면 되는 인턴의 몸에 익숙해져 활자를 낯설어하고 있었다
.

전공과 학교를 바꿔 대학원을 진학했기 때문에 대학원 진학 당시의 면접도 쉽지 않았었다. 대학원 재학 중에도 끊임없이 연구원, 아르바이트 등을 위한 면접을 여러 번 경험했다.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는 이미 목적에 따라 여러 version으로 준비되어 있었으며,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답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의 과거력상 어느 정도의 질문이 예상되기도 했다
.

시험 그 자체로 나를 평가할 수 없다는 자신만만한 태도, 최선을 다하면 되지 그 이상 연연하는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라는 느긋한 태도, 우리 병원에서 내과 트레이닝을 받는 것이 나의 절대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여유 있는 태도
….

그러나, 마음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매우후달리고있었다. 당락 자체에 괜한 집착이 생기고 안 되면 내가 취할 행동 노선에 대해 엄청난 대안도 만들어두고 있었다. 얼굴 표정은 어떻게 짓는 게 좋을지까지 다 생각해 두었다. 이 소심함이여
.

1
년만에 보는 시험,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도 참 어려웠다. Marking을 제대로 못해서 답안지를 바꾸기도 했고, 답안지를 내고 나오며 책상 위에 신분증을 놓고 나오기도 했다. 면접에서는 예상했던 질문에 대해서도 당황하며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왜 이렇게 의연하지 못하고 세련되지 못할까
?

발표가 나자 인턴방 분위기는 상당히 조심스럽다. 합격하지 못한 동료가 주위에 있는데 합격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축하한다, 좋겠다, 나중에 consult 내면 잘 봐달라며 껄껄거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이번의 당락이 인생을 결정지을 만큼 중대한 사건은 아니라는 점에 대해 조만간 insight가 생기고 마음의 평정을 찾겠지만, 그때까지는 조용한 시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

그러고 보니 이번에 시험을 치지 않은 동료들도 있다. 삶의 맥락에서 1년 정도 쉬다가 새롭게 start해 보리라는 마음이 들었으리라. 그런 선택도 결국은 자신의 몫이고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인턴들에게 무슨 과를 할 거냐, (쉬겠다고 하면) 왜 쉬려고 하느냐, 한번 그렇게 쉬는 것을 윗분들은 안 좋아하니 그냥 하는 게 좋을 거다, 쉬면서 뭐 할거냐, (뭘 하겠다고 하면) 그런 건 해서 뭐 하느냐 라는 식의 superficial하고도 공격적인 질문공세를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

어떠한 이유로든 내년 전공의 1년차를 시작하지 않는 동료 인턴들에게 2005년 한 해가 답답한 병원을 떠나 사회의 공기를 호흡하고 의사의 시각이 아닌 사회인의 시각으로 우리의 의료, 의사들에 대해 고민하며, 병원 안에 머무르는 나보다 훨씬 성숙한 사고와 너그러워진 마음을 얻을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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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의사가 된 기분

 

물론 나는 올해 초에 의사국가고시를 보고 8만번대 국가가 인정하는 의사면허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인턴 생활을 하는 중에 진짜 의사가 된 기분을 맛본 것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전공의 인력이 부족한 과 중의 하나인 방사선종양학과에서 일을 하고 있다. 대학병원인 만큼 방사선 치료를 필요로 하는 암환자들이 많은데, 레지던트가 부족하기 때문에 인턴에게도 몇몇 중요한 임무가 부여된다. 그리고 이런 임무들은 이제까지 다른 과에서 내가 주로 해 왔던잡일과는 달리 머리를 써야 하는 고차원적인 노동을 요구한다는 면에서 새삼 낯설기까지 하다
.

나를 가장 신나게 하는 일은 타과에서 의뢰된 환자들의 old OPD chart, chemochart, previous RT chart 등 우리 병원에 존재하는 환자의 모든 chart review하여 staff 선생님들께 notify하는 일이다. ‘인턴 주제 staff에게 direct notify하는 것도영광스러운일이지만, 선생님과 환자의 상태에 관해 토론을 하고 선생님께서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을 consult 용지에 받아적는 것, 그래서 마지막에감사합니다. ○○○/이수현 배상이라고 마무리짓는 그 행위가 나는 정말 신난다
.

새병원 이전을 앞두고 EMR(electrical medical record)을 통해 모든 기록과 자료들을 digitalized data로 통합하는 것이 대세를 이루지만, 나는 인쇄된 consult 용지에 나의 필체로 answer를 적고 어슷하게 접어 차트에 끼워두는 그 행위가 참 맘에 든다. 비록 그 answer의 내용을 내가 결정한 것도 아니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planning해서 RTx를 시작하겠다는 단순한 것일 때도 있지만, consult를 내놓고 answer를 기다릴 각 파트 주치의와 환자들을 생각하면 왠지 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내 이름이 적힌 기록이 나간다고 생각하니 글씨는 내 얼굴인 셈, 글씨는 깔끔하게, 내용은 단순하면서도 정확한 guideline을 제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쓰려고 매번 노력하게 된다
.

또 환자에 대한 review consult가 난 이유에 대해 선생님께 notify하면 선생님들께서는 이 환자는 이렇게 치료하는 게 어떤 의미에서 도움이 될지, 선행하거나 병행되어야 하는 다른 검사 및 치료방법은 없는지, 다른 case에서 이렇게 치료해봤더니 예후가 좋았다든지 하는 말씀을 해주신다. 때론왜 이 환자의 stage Ⅲb라고 생각하지?’ 혹은 ‘Lymph node enlargement가 보이는 cut은 어떤 image인가?’하는 등의 질문을 하시기도 한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내가 환자 진료에 전념하는진짜의사가 된 것 같다
.

가끔 consult 마감 시간이 지난 후에 1∼2년차 선생님들로부터 call이 온다. “무슨 무슨 환자인데, 다른 검사를 하느라 chart prep이 안 되서 제시간에 consult를 못 내 미안하다. 하지만 이러이러한 연유로 한시라도 빨리 RTx를 시작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으니 오늘 consult가 꼭 해결될 수 있게 해달라는 식의 push 전화다. 그런 push도 나는 신난다. 내가 부지런히 해주면 환자에게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그런 소박하고도 착한 마음이 절로 든다
.

난 이미 진짜 의사인데 왜 이제서야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되는 걸까? 아마도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의미부여가 자리를 잘 잡았기 때문 아닐까? 지금 이 마음을 내내 잊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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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질 때까지 일하는 의사들

 

어렸을 때부터 allergic asthma, rhinitis, conjunctivitis, dermatitis, 심지어 exercise-induced bronchospasm까지 종종 경험했던 나, 요즘처럼 공기가 차가울 때면 어김없이 allergic attack이 찾아온다. Antihistamine을 몇 알씩 한꺼번에 먹어도 소용이 없다. 수술방에서는 마스크 속으로 흐르는 콧물과 재채기를 참기 위해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병실에 들어가면 갑자기 재채기를 하며 코를 훌쩍거리는 나 때문에 이식 환자들이나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은 꺼림칙한 눈치다. 인턴숙소의 공기가 탁하고 건조한 탓인지 항상 목이 잠겨 있다. 코도 킁킁, 목도 킁킁.

둘러보니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한 달째 dry cough, hoarseness가 심한 한 내과 인턴은 chest X-ray, CBC 괜찮다는 말 하나를 믿고 그냥 버틴다. Crohn’s disease가 있는 동료인턴은 며칠째 watery diarrhea로 보기만 해도 dehydration 상태임을 드러내는 초췌한 얼굴로 유령처럼 병동을 달린다. 며칠 전 oncology 파트에서 일하는 한 인턴은 때늦은 나이에 chicken pox로 입원까지 했다. 자신이 일하던 내과 병동에 입원한 그는 갑자기 찾아온 여유에 몸은 편하지만 자신의 일을 대신하고 당직을 서는 인턴들에게 너무 미안하여 좌불안석이다
.

인턴 뿐 아니라 레지던트도 마찬가지인 듯. 긴장도가 높은 파트로 배정된 여선생님의 menstrual cycle이 불규칙해지는 사건은 꽤 흔하다. 심지어 abnormal vaginal bleeding이 있기도 하다. 힘쓰는 일을 하는 외과계 전공의는 lumbar disc herniation 악화로 인한 요통을 참으며 버티다가 결국 2주간 입원하기도 했다. Migraine으로 β-blocker NSAIDs를 수시로 복용하는 동료, 복용량이 늘어나는 것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

의대를 다니기 전, 누군가로부터레지던트는 아파도 쓰러질 때까지 병원에서 일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 말이 참 멋있어 보였다. 투철한 직업정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래, 바로 그것이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 아니겠는가, 라며 말이다
.

그런데 막상 그 자리로 내가 들어와 일해보니 내 자신의모든 것이 소모될 때까지 일하는 것은 매우 sustainable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시스템 하에서는 내가 아파서 일을 못한 만큼 다른 누군가가 잠을 못 자고 일하며 그걸 메워야 한다. 내가 몸이 좀 안 좋다는 소문이 돌면 나의 이미지도 유약한 사람으로 굳어질 것 같고 윗사람 눈에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냥 참고 지내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 상태가 악화되어 응급실로 내려가는 사건이 발생해야 그나마 면죄부가 부여되는 셈이다
.

인턴 주제에’, 골골거리면 어떤 과에서 나를 받아들이려 하겠는가 싶은 고민도 있다. 레지던트도 마찬가지, 일이 좀 많아지기만 하면 앓아눕는다는 낙인은 평생 지속될 수도 있다
.

Fordism
의 핵심은 노동자들의 업무동작과 과정을 초 단위로 분할하여 평가함으로써 효율적인 노동과정을 재구성한 것에 있다. 주어진 시간에 높은 노동강도로 일할 수 있는 conveyer belt를 만들어 노동을 표준화하였고, 그것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불만을 여가시간을 늘리거나 임금 상승으로 대체하며 노조설립을 막았다. 나는 포디즘을 선호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인턴의 업무과정도 제대로 분석하고 효율화하여쓸데없는 일에 동원되거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잉여시간을 나를 위해 투자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질 높은 의사를 양성하는 지름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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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인턴의 오프

 

내 오프는 초등학교 1학년인 딸 슬기가 더 챙긴다. 이 녀석은 내가 거의 1년 내내 every other day로 당직을 선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듯엄마, * *일날 무슨 일이 있는데 그날 엄마 오프지? 꼭 같이 하기다, 약속!” 이런 식으로 운을 뗀다. 아이의 달력에는 내 오프가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다. 오프라고 해도 주말 오프가 아닌 이상 귀가 시간은 저녁 8시 이후다. 허겁지겁 늦은 저녁을 먹고 나면 온몸이 노곤해서 씻는 것도 귀찮지만, 모녀 관계가 삭막해지지 않으려면, 슬기 일기 쓰는 것도 봐 주고 숙제도 챙겨주고 같이 목욕이라도 해야 한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요즘은 누구랑 친하게 지내는지, 요즘 관심거리는 무엇인지 등 엄마가 챙겨야 할 일은 많다. 둔감한 엄마가 되어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봐, 집에 도착하면 병원 일을 완전히 접어두고 아이와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려고노력한다’(그러다 보니 남편은 뒷전이 되는 게 사실이다. 미안해요, 슬기아빠).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늘 불안하다. 내가 인수인계는 제대로 다 해주고 온 것인지, 할 일은 다 하고 온 것인지, 내일 할 일 중에 준비가 빠진 것은 없는지…. 더욱이 요즘처럼 전공의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면 집에서라도 공부를 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 시간에 책을 펴고 공부하는 젊은 동료들에게 아줌마 인턴인 내가 뒤쳐질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경쟁력을 갖춘 의사가 되기 위해서 나는 좀더 부지런해져야 하는 게 아닐까? , 병원과 집만 아는 협소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신문도 보고 다양한 읽을거리도 접하는 시간이 필요할 텐데, 나는 왜 이렇게 집에만 오면 느슨해질까? 나와 수많은 과거를 공유했던 예전의 친구들과 연락 한번 못하고 지낸 지 너무 오래됐다. 집안 일도, 병원 일도, 사람 관계도, 나 스스로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도, 그 무엇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

사실 나는 친정 어머니께서 슬기를 돌봐주시고 일상 생활의 많은 부담도 대신 지고 계신다. 남편도 홀아비 신세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단 한번의 잔소리 없이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 아마도 나만큼 좋은 조건에서 의대공부를 하고 인턴 생활을 하는 아줌마 인턴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는 여자 의사들의 생활은 팍팍하다. 병원에서는 같은 실수라도아줌마라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신경이 곤두서고, 집에서는 부족한 아내,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늘 몸과 마음이 다급하다. 여기에 경제적인 문제나 다른 집안 문제라도 겹치게 되면 마음 깊이 외로운 비명을 질러댈 수밖에 없다
.

병원에서는 똑똑하고 일 잘하고 cool한 의사로, 집에서는 어디 새는 곳은 없는지 집안일 단속 잘하는 엄마로 살아가기 위해 정작 나는 마음을 독하디 독하게 먹어야 한다
.

올 한해 여전공의의 출산휴가를 3개월로 하는 대신 수련기간을 연장하는 것과 관련된 논의가 분분했다. 예전에는 한 달 쉬는 것도 눈치를 보아가며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이었던 것에 비하면 세월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한다. 아마도 여성의 출산과 양육, 가사의 분담에 대한 사회 전체적인 인식과 문화가 서서히 변화하기 전까지 여의사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부담은 여전하지 않을까 싶다. 그날이 올 때까지 멋진 여의사 선생님들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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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는 만들어지는 것

 

아니, 이 자식아, 지금 네가 뭐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이렇게밖에 못하겠어? 이러다 환자 나빠지면 네가 책임질 거야?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병동 station 앞에서 윗년차 레지던트가 1년차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낸다. 심지어 욕도 한다. 간호사, 환자와 보호자,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흘끔흘끔 눈치를 본다. 철제 차트가 날아다니고 종이가 휘날린다
.

사실 이런 모습이 일상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심심지 않게 발견된다. Painful memory. 심리적으로 trauma를 입을 만큼 고통스럽게 혼나며 배운 내용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공개적인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자신의 실수나 무능력이 공격당하면 수치심과 자괴감에다 윗년차에 대한 증오까지 덧붙여져 같은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행해지는 education의 일환일까
?

간호사에게도 좋은 말로 친절하게 order를 내리면 일이 지연되거나 미흡한 경우가 있는데, 이때 한번 입에 게거품을 물고 악다구니를 치고 나면 그 병동에서 자신이 내린 order 100% 실행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수술방에서도 심한 욕을 하며 험하게 굴면 일이 빨리 빨리 잽싸게 진행돼서 수술시간도 짧고 실수도 안 하는데, gentle하게 행동하면 아랫년차나 간호사들의 기강이 해이해지기 때문에, 거칠게 행동하는 편이 여러 모로 output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

윗년차가 convulsion하고 난 후 그 병동 station에서는 아랫년차가 설 곳이 없다. 간호사들도 자기들끼리 모여 누구는 무슨 무슨 일을 제대로 못해서 욕먹었다는 둥, 그 레지던트는 실수 투성이라 맨날 욕만 먹는다는 둥뒷담화를 나누기 일쑤다. 경력이 오랜 간호사 중 일부는 젊은 1년차 레지던트의 order를 무시하거나 그의 decision에 간섭하면서 주치의가 일하는 과정을 어렵게 만든다. 회진 후 4년차 레지던트는 인턴이 앞에 있는데도 그의 존재를 무시하는 양 1년차 레지던트에게 ‘***는 인턴선생님 시키세요라고 말하며 자리를 뜬다. 인턴들은 흔히 AN조차 자기를 무시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

회진을 기다리는 와중에 station에서 간호사와 농담 따먹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레지던트도 발견할 수 있다. 간밤의 회식자리에서 춤추며 놀았던 이야기, 어디 음식점이 좋더라는 이야기, 심지어 모모 연예인의 스캔들까지도 농담거리의 주제가 되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렇게 희희낙락하고 있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환자를 보다가 달려온 아랫년차에게는 쌍욕을 퍼붓고 안면을 바꾸는 사람도 있었다
.

의국이나 분국 내의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병원 어디에서든 의사는 공개적인 시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나의 주치의는 얼마나 신뢰할만한 의사인가에 대해 환자와 가족들은 여러 측면에서 민감하다. 의료진이 회진을 돌고 떠난 뒤의 분위기, 간호사들끼리 하는 말, 주치의의 표정과 태도 등을 유심히 관찰하기 마련이다
.

내가 극성을 피우고 소리를 지르며 그악스럽게 굴면, 적어도 다른 사람들은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심정으로 내 갈 길을 방해하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의사가 의사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고 실천하지 못하면 의사의 권위는 누가 인정해줄 것인가? 권위(authority)란 행위 주체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러 나오는 측면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형성되는(socially constructed) 것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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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미워질 때

 

코에는 L-tube, 목에는 koken tube, 요도에는 foley catheter, 배에는 PEG, 가슴에는 chest tube, 심지어 항문에는 rectal tube. 대략 이 정도의 tube를 몸에 달고 있는 사람의 상태는 어떨까? ABR?

No!
재활의학과 환자들은 이런 관들을 주렁주렁 달고 물리치료, 재활치료를 받으며 병원을 누빈다
.

장기입원환자가 많아서인지 이들은 척 보면 내가 인턴인지 아닌지 안다. 내가 dressing이나인턴 고유의 job(L-tube insertion, ABGA, EKG, foley catheter insertion, nelaton, bladder scan… , 이제 이렇게 stat으로 해야 하는 procedure가 솔직히 지겹다)’만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는 듯, 나에게는 별 information을 주지 않는다. 반대로, dressing이 잘 못 되었다느니, 그렇게 붙이면 제대로 fixation이 안 된다느니, silk plaster로 붙이면 살갗이 부풀어오르니 종이 plaster로 해달라느니, aseptic하게 잘 하라느니 요구는 많다
.

가끔대박 dressing’도 있는데, aspergilloma pneumonectomy했거나 brain tumor frontal lobectomy를 했는데 wound closure가 되지 않아 dressing gauze만 벗겨내면 바로 큰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경우, coccyx에 지름 수 cm deep sore가 있어 아무리 debridement을 해도 살이 차오르지 않는 경우 등이다
.

보호자는 사소한 감염에도, dressing한 부위가 조금만 젖어도 예민해진다. 매일 잔뇨량을 체크하는 환자들은 소변을 보자마자 잽싸게 달려가 bladder scan을 해주지 않으면 이번 결과는 선생님이 빨리 와서 측정해주지 않아 많게 나온 것이니 다음 소변 본 후 다시 측정해 달라고 한다. 나를 조정하려 든다는 생각에 화가 날 뻔한 적도 있다
.

Head post-op wound care
를 매일 하는 10살 남자아이. 그 엄마는 내가 dressing을 할 때마다 영 거북한 시선으로 나를 지켜보는 듯해 불편했다. 지난 일요일에는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서 갔더니 예배보러 가야 하는데 이제 왔냐며 불평을 하기도 했다. 성형외과에서 wound skin graft를 한다기에 난 난생 처음으로 남의 머리를 깎게 되었다. 병원 이발사가 있지만 coumadine을 먹고 있기 때문에 상처나면 안 되니 의사선생님이 직접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부모의 요청에 의해서다. 아이는 조금만 세게 밀어도 아프다고 소리치고 전기면도기의 달달거리는 소리에도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1시간 동안 head shaving을 해야 했다. 가렵다, 아프다, 따갑다 계속 안절부절못하는 아이의 shaving을 겨우 마치고 나서, 난 울분을 달래기 위해 차트를 보았다. 도대체 어떤 환자야
?

두 달 전 갑작스러운 headache, vomiting, seizure로 응급실 내원, craniopharyngioma 진단 받고 바로 emergent op., 두달 동안 3번의 뇌수술을 받았고, 이제 4번째로 수술방을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 아이
.

병원에 있으면 자꾸 환자의 마음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내가 다른 잡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바쁘고 모든 일에 능숙할 수는 없는 그저 인턴이라는 사실을 이해해 달라고, 이들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

의사는 환자를 보면 진단명을 붙이고 그에 따른 protocol대로 검사, 치료를 진행하는 과정을 밟기 때문에 은연중에 환자가 표준화된다. 또 그렇게 표준화하는 것이 효율적인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모든 환자는 자신만의 이야기(narrative)가 있다. 자기 삶의 결정적인 위기를 병원에서 맞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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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여, 패기를 갖자

 

초턴일 때는 콜 한번에도 가슴 두근거리며 병동으로 달려간다. 환자 파악도 어렵고 기본 술기를 시행하는 것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애를 쓴다. 두세 달이 지나면 제법 일에 익숙해지고 몇 개의 콜이 쌓여도 당황하지 않으며 전화로 오더를 내리기도 한다. 아주 가끔 진단명을 맞추거나 환자의 병세가 달라지는 sign을 잡아내며 좋아할 때도 있다.

여름을 보내고 나면 어떤 과를 돌아도 비슷한 인턴 job이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환자 보는 일에도 예전 만한 애정이 생기지 않는다. 중환이 생기거나 내가 잘 모르는 일이 발생해도 윗년차 선생님께 notify하는 것으로 끝날 때가 많다
.

찬바람이 부는 요즘, 대부분 인턴의 관심과 고민은 전공 선택에 집중된다. 내부적 고민으로 마음이 심란하니, 평소 나를 괴롭혔던 외부적 요인에 대해서는 별로 괘념치 않게 된다
.

누구누구는 무슨 과에 지원하였다는 둥, 어떤 과는 어떤 기준으로 전공의를 선발할 것이라는 둥 소문이 무성하다. 이런 소문에 귀가 얇아지는 것은나는 과연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면 잘 할 수 있는지, 그리하여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에 대해 자신이 없고 특별히 어떤 과를 꼭 해야겠다는 강한 집념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개인의 자질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한국 교육의 전반적인 문제라고 돌려버린다면 문제는 너무 추상화되어 버리겠지만, 획일화된 의학교육의 틀, 수동적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우수한 석차를 기록하는 것이 우선시되는 문화를 오로지 개인의 의지로 타파하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

그런 의미에서 과 설명회를 개최하여 수업으로 포괄하지 못했던 해당 과의 다양한 연구영역, 의사들의 역할, 비전 등을 소개하고, 의국원 선발의 다양한 기준들을 소상히 밝히는 과들이 많아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관행시되었던충성경쟁의 분위기를 일소하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선택의 기회를 열어놓는 계기가 될 듯하다
.

그런데 역으로 인턴 스스로 기존의 질서와 제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행보를 보이는 측면도 존재한다. 성적이 나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지원할 과에 소위이 있는 사람이 지원하는 것은 아닌지에 연연하거나, 드러나지 않는 일은 소홀히 하면서 의국장이나 윗년차 선생님들로부터 찍히지 않기 위해가시적업무에 치중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

여러 정황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의 의지이자 진심이라는 평범한 명제일 것이다. 속칭 인기 있는 과의 부침은 7∼8년을 주기로 있어 왔고 의료기술의 발전이나 의료보험제도의 변화에 따라 과별 의사의 몸값은 변하기 마련이다. 구래의 관행대로 환자를 진료했을 때 풍요로운 삶이나 명예가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은 모든 과에 공히 마찬가지이다. 의사 10만을 바라보는 시대에 어쩌면 끊임없이 틈새시장(niche market)을 노려야 하고 교과서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평생 공부하는 의사가 되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젊은 의사들이여, 좀더 넓고 멀리 보고,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한 후 패기 있게 미래를 선택하는 자신감을 보일 때가 되지 않았는가
.

이상 모든 내용은 나 스스로에게 보내는 희망과 용기, 그리고 반성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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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 사회화되기

 

의료사회학의 학풍은 영국과 미국으로 대별된다. 의료시스템의 차이만큼 의료사회학의 학풍도 다른 것이다. 의사의 사회화(socialization) 혹은 전문화(professionalization)에 대한 연구는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되었다. 현재 미국 사회학회 회원은 1 5천명에 육박하며 이 가운데 의료사회학 전공자로 지칭되는 사람들이 2천명에 달해 미국 사회학회 내 2번째로 큰 분과에 해당한다.

1960
년대 중반 미국 의료사회학이 막 발전하기 시작하던 당시의 핫 이슈는왜 의과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비슷한 캐릭터로 변화하는가?’였다. 의대 입학 당시에는 다양한 학부를 졸업하고 그만큼 사회적 배경에 차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을 때의 태도, 가치관, 행동양식에 놀라울 정도의 획일성이 발견되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의사의 사회화 과정은 3단계의 지위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의대생 과정/전공의 수련 과정/전문의 수료 이후 임상의사로서의 생활. 임상 현장에서 환자를 보는 의사로서의 태도, 행위 양식, 가치관 등은 이 각각의 단계에서 조금씩 modulation되고 reinforcement된다. 각 단계에서의 독특한 경험과 훈련이 개별 의사의 전문가적 속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

나는 지금, 내가 외부자적 시각으로 분석했던 의사되기의 과정 중 두 번째 단계를 경험하고 있다
.

우리 병원은 매일 밤 인턴들이 스케줄을 짜서 매시간, 혹인 2시간 간격으로 전 병원을 돌아다니며 위중한 환자들의 상태를 점검한다. 인턴 방의 커다란 화이트보드에는 인턴이 q1hr, q2hr로 체크해야 하는 전 병동의 환자 명단이 수시로 작성된다. BP, PR에서부터 L-tube test irrigation, ICU에서 bed ridden status인 환자의 suction, hepatic encephalopathy환자의 mental status를 확인하기 위한깨우기스케줄에 이르기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

새벽 1∼2시까지 일을 하다 인턴방에 돌아와 잠시 앉아 숨을 돌리고 난 후 새벽 3시 스케줄을 돌기 위해 전 병원을 순회하는 바로 그 맛이인턴의 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동선도 복잡한 병원 곳곳을 누비는 그 불타는 새벽을 넘기고 나면 다음날 녹초가 되어 제정신으로 일하기 어려운 날도 있다
.

제도는 쉽게 바뀌지 않으며 문화는 더욱 바뀌기 어렵다. 관행은 새로운 제도와 원칙이 제시되더라도 쉽게 변화하기 어렵다. 그래서 OCS PACS가 도입되기 전에 인턴을 했던 선배들은 매일매일 종이에 lab을 적고 X-ray film을 찾고 나르느라 잠못 이루던 인턴시절을추억의 그 시절로 회고하며 요즘 인턴은 많이 편해진 거 아니냐며 비아냥거리지만, ‘그 누구도 하기 싫어하거나 그 누구도 할 수 없거나 그 누구도 시킬 수 없는애매한 일을 인턴이 떠안게 되는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

한국의 의학교육이 다분히 강의실 중심인 것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인턴으로 시작하는 바로 지금이 의사로서의 자질과 인격, 태도를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노동자이자 피교육자인 이중적 신분의 인턴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어떤 과정을 학습해야 할지, 한 명의 훌륭한 임상의를 양성하기 위해 어떤 변화의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인턴 스스로, 또한 선배 의사들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위기의 한국 의료가 재도약하는 데 토대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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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여자라는 변수

 

의대에 편입했을 당시, 내 소개를 하면 반드시 돌아오는 질문. “몇 년생이세요?”

내 동기들이 78∼79년생인 반면 나는 72년생이니, 의과대학 전체 학생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많은 편이었다. 병원에 들어온 지금에도 웬만한 레지던트들보다 나이가 많고, 심지어 최근에 임용된 주니어 스탭과도 나이가 엇비슷하다
.

의대 오기 전 대학원에서는 항상 막내였던지라, 세미나를 위한 복사, 모임 연락하기, 모임 후 뒷정리 등 각종 잡무를 도맡았었고, 어떤 실수를 하거나 무식한 말을 해도 용인되었었기에, ‘왕언니라는 의대에서의 상대적 지위 변동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1995년 무렵 석사과정에서 문화(culture)와 세대(generation) 문제를 공부할 당시 나의연구 대상이었던 당시의 신세대들과 일상을 함께 하면서 느꼈던 충격이란
!

그러나 내가 나이가 많다는 것과 병원 의사의 지위체계상 가장 아래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는 것은 공적 영역에서 볼 때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그래서 오히려연장자 예우차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당혹스럽다. 예를 들면 업무를 배정할 때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가는 파트가 정해져 있고(일이 적고 편한 곳) 그로 인해 나이 어린 남자 인턴선생님들이 상대적으로 일이 많고 힘든 곳으로 배정되는 게 당연시되니, 보이지 않는 질책의 시선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병원은 아직도 남자 의사가 압도적으로 많고 일부 과에서는 아직도 여자 전공의 선발을 꺼려하는 현실에서, 자기 아래의 인턴이나이 어린’ ‘남자인턴이면 말도 쉽게 놓을 수 있고 스리슬쩍 개인적인 일을 시키기도 쉽고 함께 술 마시며 마음 편하게 터놓고 지낼 수 있기 때문에, 나처럼나이 많은’ ‘아줌마는 아무래도 뭔가 불편하고 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나 보다. 물론 나이도 어리고 귀여운 후배 여자 인턴이 오빠라고 상냥하게 부르며 빠릿빠릿하게 일을 해내는 것과 자식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줌마 인턴이 뭔가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니는 것이 윗사람 입장에서 보기에 어찌 같을 수 있겠냐만
.

하지만 우리가 공사분리를 모토로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공적 영역 내에서는 그 영역 내에서 통용되는 질서를 근간으로 인간 관계와 업무가 진행되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업무상 지위체계에서 아랫사람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면 나이를 불문하고 해내야 하는 것이고, 반대로 나이가 어린 후배라고 해서 업무와 상관없는 개인적인 일을 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리라. 반말을 하느냐 존댓말을 하느냐의 문제는 나이를 떠나 결정될 수 있는 문제이고
.

역으로나는 나이가 많으니 이런 잡일은 어린 네가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간혹 윗년차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데 자신에게 반말을 했다며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반말 그 자체보다는 자신에게 함부로 했다는 것이 불쾌하다는 말이겠지만, 역시 윗년차가 자기보다나이가 어린데도그런 언행을 보였다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반응이다
.

통계에서 나이와 성별은 기본 변수이다. 통계적으로 설정된 가설을 증명할 때 증명하고자 하는 가설이 시사하는 바가 나이와 성별이라는 기본 변수를 통제했을 때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통계적 분석의 시작이다. 내가 의사라는 직업과 인턴이라는 지위를 갖고 병원에서 일을 한다면 나이와 성별 변수를 통제한 이후에 내가 평가되는쿨한문화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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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의 잠 못 이루는 밤

 

몇 년 전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협심증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는 55세 남자. Regular follow up이나 medication없고, 술 담배가 왜 위험한지 별다른 설명을 들어본 적 없다. 30분 이상 가슴이 답답하고 이따금 숨쉬는 것까지도 힘들 정도로 chest pain develop되었는데도 이틀 이상 병원에 오지 않은 채, 속이 안 좋은 것 같다며 약국에서 무슨 약인지를 사먹다가 새벽에 chest pain이 심해져 응급실 내원.

Hypertension, TIA Hx
가 있는 할머니.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오른쪽 상지와 하지에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같이 사는 자식들에게 말도 안 하고 며칠을 지내다 갑자기 dysarthria가 생기고 mental status drowsy해져 응급실 내원
.

Underlying chronic disease
를 갖고 있는 환자는 자신에게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 가운데 life-threatening한 증상이 무엇이며, 언제 속히 병원에 와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가장 우선적으로는 의료인의 education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자신의 몸과 건강, 질병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학습해야 한다는의료소비자로서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도 방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환자들을 sustainable하게 관리하는 시스템도 마련되어야 함을 느낀다
.

새벽 2. 병동에서 환자를 보다 내려온 레지던트의 빨간 눈과 술에 취해 싸우다 유리병에 손이 찔려 온 환자의 빨간 눈이 서로를 노려본다. 응급실에 제대로 된 의사는 없냐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

1cm
가량 face laceration이 되어 내원한 1살된 아이. 엄마는 왜 내 아이부터 빨리 봐주지 않느냐며 5분에 한번씩 station을 찾아와 항의하고 성형외과 전문의를 찾는다. 레지던트에게는 진료 받지 않겠다며
.

Chronic gastritis
를 앓고 있는 젊은 여성이 1주일 이상 epigastric pain이 있었으나 참기만 하다가 한밤중에 배를 움켜쥐고 응급실에 왔다. Surgical abdomen은 아님을 확인한 후, 응급실에 앉을 자리조차 없는 상황이니 인근 작은 병원에 가서 hydration, h2 blocker 주사 등 conservative care를 받으라고 하자 진료거부라며 난리를 부린다
.

Pain
이 주관적인 것이긴 하지만, 응급실에서의 진료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환자들은의료소비자로서의권리를 앞세우며 응급실의 밤을 달군다
.

인턴으로 일하다보면 의외의 것들을 배운다. 병원이라는 일종의 소우주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절차를 통해 일이 진행되는지를 알게 된다. 응급의학과 인턴으로 일하면서 진료 과정의 다양한 지식과 술기도 배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의료시스템 하에서 응급실이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지, rapport가 형성될 시공간이 확보되지 못하는 응급실 상황에서 의사-환자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고 있는지, 진료 지원 부서와의 갈등은 어떤 것들이 존재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

더불어 그 아비규환, 아수라장 속에서도 나의 impression에 어디가 오류가 있었는지, 정확한 P/E을 하는 요령이 무엇인지, 경우에 따라 어떤 검사가 필요한지를 가르쳐주는 레지던트 선생님들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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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여자 인턴방

 

우리 병원 36명의 여자 인턴은 방 2개에 모여 같이산다’. 새벽이 되면 울려대는 call과 각자 맞춰 놓은 알람소리 때문에 비슷한 시간에 일어날 수밖에 없다. 같은 식빵에 같은 쨈을 발라먹고 같은 우유를 마신다. 음료수랑 야식용 라면도 같은 걸 먹는다. 잘 때도 모두들 초록색 수술복을 입고 잔다. 공동세면장의 비누도 같은 걸 쓴다. 큰 방에 한 대 있는 TV도 모두 둘러앉아 같이 본다. 누군가 큰 아이스크림을 사오거나 군것질 거리가 생기면 모두 함께 먹는다. 정말 정겨울 것 같지 않은가? 간혹 나는우리가 싸는 똥의 성분도 똑같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새벽 1∼2시까지 일해야 하는 파트, 새벽 4시면 일어나야 하는 파트 등 일하는 시간이 다르다보니 인턴방은 거의 24시간 불이 켜있기 십상이다. 식사시간을 맞춰 밥을 먹기는 어렵고, 짬이 나면 컵라면을 먹거나 인스턴트 밥을 먹는다. 그러나 어디 call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던가? 테이블에는 항상 누군가 먹다 말고 뛰쳐나가 젓가락이 꽂혀있는 밥그릇이 뒹굴기 마련이다. 차트와 밥그릇과 수건들이 나란히 놓여있어도 이제 별로 어색하지 않다
.

여자 인턴방은 2개지만, 남자 인턴방은 잠잘 수 있는 방만 4개에다 휴게실도 따로 있다. 남자 인턴은 68. 공간배치는 워낙 예전부터 유지되어 오던 것이라 쉽게 바꿀 수 없는 문제인가 보다. 지저분한 것은 남녀 방 모두 마찬가지이지만, 침대와 사물함 자리 말고는 테이블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공간밖에 없는 곳에 36명의 성인 여성이 살려니 지저분함과 일상적인 불편함은 말도 못한다. 때로는 책상에 엎드려 자야 하는 사태도 발생하니, 공부할 공간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사치에 해당된다
.

여의사 숙소는 별도의 문이 있어 남자 의사들은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우연이라도 한번 보게 된다면, 아마 여자에 대한 모든 환상이 완전히 깨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차마 내 입으로 우리 방의 현실을 더 자세히 말할 수는 없다
!

모두에게 모든 것이 노출되어 있는 공간이라 표정관리도 중요하다. 혼자 분을 삭히고 눈물 한 방울 찔끔 흘릴 공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듣고 싶지 않은 얘기도 의도치 않게 듣게 된다. 그러다 보니 소문의 온상이 되기도 쉽다. 입심 좋은 동기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한 상급 전공의가 있으면 나는 내가 한번도 본적이 없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매일 듣기도 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갖게 된다. 물론 내 말도 누군가의 입을 타고 밖으로 새어나가기 쉽다. 의사 사회란 (긍정적으로는) 동료간의 평가와 평판이, (부정적으로는) 소문이 중요한 사회라기에, 보이지 않는 시선으로부터도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

우리는 동기, 기쁜 일도 함께 슬픈 일도 함께!’라지만, 밀집된 한 공간에 모여 있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무더운 여름이라서 그런지 누군가의 사소한 한 마디에도 마음속에서하고 뭔가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표정관리도 더 힘들다. 스스로의 똘레랑스 역치가 낮아져 있는 것이리라. 밥상이자 화장대이자 작업용 테이블인 책상만 있을 뿐, 공부할 공간이 없다는 것도 화가 난다. 가끔 의과대학 도서관을 찾아보지만, 도서관 입구에 가면 어김없이 병동 call이 온다. ‘환자 nelaton 해주세요


이런 현실마저 트레이닝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이번 여름, 참으로 무덥고 지겹다. 진정한 내공쌓기를 얼마나 하고 난 후에 나는 자유로워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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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았지만 행복한 아이 (2)

 

성주의 진단명이 바뀌어 있었다. Graft versus host disease.

사실 hematuria가 있을 때부터, 그래서 동기 소아과 인턴이 q2h bladder irrigation을 한다고 투덜거릴 때부터 마음이 불안해서 성주에게 찾아갈 수가 없었다. 병동에 가서도 차트만 보았는데, 요 며칠동안 mild fever, abdominal pain, skin rash도 재발하고 있었다
.

오늘은 무거운 마음으로 성주를 찾아가 본다. 최근 1년 동안 성주를 돌보아 주고 계신 할머니는 성주가 있는 보호소 소장의 친구분이시다. 당신 집에서 성주를 돌보시고 이식 기간 동안 무균실에서도 내내 성주 곁에 계신 분이다. 바로 옆 병동에 입원한 당신의 친구에게 한번 가볼 틈도 없이 성주 곁에만 계셔주신다. Sibling donor를 찾기 위해 지난 6월 한 방송에서 인터뷰를 했을 때, 성주는 엄마, 아빠 찾아도 할머니랑 살 거라고 했었다
.

그랬던 성주가 최근 며칠 동안 심하게 앓고 밤잠을 설치면서 엄마아빠를 부른다. 밤새 잠을 못 자고 아파하다가 방금 전에 겨우 잠이 들었다는 성주는 내가 손을 잡아주자 나지막이 엄마를 부른다
.

난 사이비 천주교 신자라서 기도를 한 지 오래되었지만, 인턴이 되어 병원에 들어온 이후부터 나도 모르게기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간혹 하게 된다. 모든 검사와 치료를 마친 상태에서 성주의 회복을 기다려야 하는 이 시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다. 어쩌면절대적으로기도를 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

성주의 주치의이신 유철주 선생님을 비롯해서 소아병동 간호사들, 그리고 혈소판 공급을 위해 백방으로 지원자들을 모집하는 병원 원목실의 간사님, 성주의 치료비를 지원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성주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시는 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지금은 소량의 죽을 먹으며 TPN을 병행하고 있지만, 예전에 성주가 항암치료를 받을 때는 다른 환자 엄마들이 조금이라도 입맛이 당길 만한 음식이 있으면 성주를 꼭 챙겨주어 성주 침대에는 늘 먹을 것이 풍요로웠다. 비디오 테이프, 장난감 로봇, 레고 블록, 만들기 세트 등은 그들이 성주에게 일상적으로 보여주는 작은 애정 표현이다
.

과연 내가 성주에게 갖는 마음이 empathy인지 sympathy인지 되물어 본다. 그들의 일상적인 사랑 실천에 비해 나는 그저 안쓰러운 마음에 미련을 갖는 sympathy만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환자와 객관적 거리 두기라는 핑계로 환자에 대한 empathy를 구현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의사는 아닐까
?

어떤 인연에서든 성주에게 관심을 갖고 회복을 기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 녀석 때문에 일이 많아져 힘든 의사들의 불평을 우연히 들었을 때 나는 정말 마음이 상했다. 물론 나 또한 어떤 환자에게 나를 귀찮게 한다는 이유로 그를 향해 의미 없이 불평을 내뱉는 범인이라는 것을 알지만
.

환자의 삶과 그 이면의 context를 충분히 이해한다면 말 안 듣는, 혹은 짜증이 많은 환자를 두고그 환자 정말 malig하다고 고개를 내젓기보다는, 환자의 compliance를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방법이 적절한가 고민하는 의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교과서적인 원칙을 어떻게 체화할 수 있을지
….

친부모로부터, 또 양부모로부터 두번 외면당한 성주의 몸과 마음을 다독여주는 우리 병원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사랑이라는 약으로 지금의 acute GVHD가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기원하며, 앞으로의 병원생활에서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목록에환자에 대한 empathy’를 추가한다
.

1
년 가까이 데리고 키운 아이를 다시 파양하기까지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또 어떤 생각을 했는지 함부로 재단하거나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성주가 친부모와 양부모로부터 두 번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양육과정이 여러 차례 급변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었다는 사실이다. 주된 부양자가 자꾸 바뀌다보니 생기는 당연한 문제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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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았지만 행복한 아이 (1)

 

잠시 call이 안 오는 틈을 타 소아병동 끝에 자리잡은 성주의 방에 들렀다. 그 방에 들어가기 전에는 문에 매달려 있는 소독약으로 손을 닦아야 한다.

누워서 소변통을 붙잡고 시뻘건 피오줌을 누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성주. 며칠 전부터 hematuria가 생긴 모양이다. 오늘은 성주가 stem cell transplantation을 받은 지 33일째다
.

내가 성주를 처음 만난 건 본과 3학년 소아과 실습 때였다. 내가 담당한 환자의 옆자리에 성주가 있었다. 성주는 백혈병으로 항암치료 중이라 머리를 빡빡 밀었었는데, 어찌나 귀여웠는지 내 눈에 쏙 들어왔다. 내가 담당한 환자를 만나러 갈 때마다 은근히 성주를 찾아보곤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항상 옆에는 엄마가 아닌 간병인 아주머니가 계셨다. 성주는 성격도 쾌활하고 소아과 병동 이 방 저 방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아이, 기억력도 좋고 똘똘해 보여 자꾸 말을 붙여보고 싶은 아이였다. 내 딸과 나이가 같아서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

성주가 어떤 상태인지 궁금해 먼저 차트를 살펴보았다. 차트 첫 장에 ‘XX사회복지관이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고, admission note에는 ALL(L1), 내원 당시 WBC 5만 이상, severe abdominal distension, chromosome translocation positive risk factor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 환자라는 것 정도의 정보와 현재 치료 regimen만을 알 수 있었다
.

차트를 봐도 환자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 임상실습 초기. 나는 차트를 꼼꼼히 보거나 OCS에서 LAB을 더 챙겨보는 것보다 환자나 보호자를 만나보는 것이 적성이 더 맞는 편이어서, 일단 성주의 간병인 아주머니를 만나봤다
.

그 당시로부터 1년 전쯤, 성주의 친아버지는 어느 24시간 놀이방에 성주를 맡긴 후 찾아가지 않았다. 성주는 보호소로 이송됐고, 그곳에서 다행히 한 치과의사의 둘째로 입양이 되었다. 입양 후 10개월이 지날 무렵 abdominal distension이 심해 병원을 찾았다가 큰 병원에 가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백혈병임을 알게 된 부모는 세브란스병원에 와서 확진을 받았으나 적극적인 치료를 원치 않는다고 말하였다. 요양소에 가서 쉬겠다고
….

소아 백혈병은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경우 5년 생존률이 70%에 육박한다는 점에서 성인 암과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는, 위험인자가 있기는 하지만 조혈모세포이식을 해서 생착이 잘 될 경우 생존율을 더 높일 수 있으므로 힘들기는 하지만 반드시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주치의의 설명에 부모는 겨우 설득이 되었고, 항암치료 첫 cycle을 마친 후 퇴원을 했다. 한 달 후에 재입원하여 두번째 항암치료를 받기로 약속한 채
.

그러나 두번째 입원을 하던 날, 성주는 보호소 직원과 함께 병원에 왔다. 그 사이에 양부모가파양을 결정하고 성주가 원래 있었던 보호소로 보낸 것이다. 나는 그 두번째 입원에서 성주를 처음 만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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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 날짜 없는 퇴원 요약지

 

인턴 생활 4달만에 외부 병원으로 파견을 나왔다. 낡은 병동의 답답한 공기, 게다가 일찍 찾아온 여름의 텁텁함에 질릴 무렵이라 파견이 반갑다. 본원을 벗어난다는 해방감에다가 업무의 과중함도 비교적 덜하기에 마음은 가볍지만, 생소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고 일이 손에 익을 때까지는 불편함도 많다.

나는 낯선 병원의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병실에는 육중한 침대 대신 고물고물한 아기들이 담겨있는 바구니가 가득하다. 폐렴이 의심되는 아기들, 설사하는 아기들, 황달치료 중인 아기들이 구역별로 놓여 있다
.

내 아이가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이니, 대략 7년 전에 나는 이런 갓난아이를 데리고 씨름하며 여름을 보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그 아이들이 '환아'라기보다는 내 아이들처럼 친근하게같이 파견 온 총각 인턴 선생님보다는 조금 더느껴지는 것도 당연. 내가 아이를 안고 달래며 청진을 하는 모습을 보던 한 간호사는 나의 남다른 익숙함에 내 과거력을 대번에 알아차린다
.

바구니 머리맡의 이름표는 아이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진단명, 간단한 과거력, 대소변상태, 그리고 이 아이가 어떤 경로로 이 병원에 왔는지까지. 그래서 몇몇 아이들이 '동방'이나 '홀트'와 같은 사회복지기관에서 온 아이임을 알 수 있었다
.

저렇게 바구니 안에 누워 있으면 같은 이불을 덮고 같은 기저귀를 차고 비슷한 care를 받지만, 정작 저 녀석들이 커가면서 받을 사랑과 관심이 남들만 못하면 어쩌나 싶어 안쓰럽다
.

기관에서 온 아이 중에 태어난 지 5개월이 넘었건만 내내 incubator care를 받는 아이가 있다. 그동안 TPN으로 겨우 3kg를 넘긴, cleft palate를 비롯해 multiple anomaly를 가진 아이인데, 어제는 한 차례 seizure를 했다. 그 아이의 예쁘게 말려 올라간 속눈썹에는 항상 눈물이 말라붙어 있다
.

어떤 연유에서든 이땅에 태어난 생명이라면 마땅히 그 생명권이 존중되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의 도움이 제공되어야 하겠지만, 한국처럼 '가족의 보험적 성격'이 강한 사회에서 가족 없이 삶을 출발하는 아이들이 넘어야 할 관문은 첩첩산중일 수밖에 없으리라
.

'
장애가 있다 해도, 그래서 'normalize'되지 않는다 해도 그 나름으로 삶의 질을 보장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논하기에 우리 사회는 부족함이 많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래서 나는 아직 여물지 않은 녀석의 입술을 보며 '수술해서 cleft lip & palate를 고친다 해도, 다음에는 어디를 어떻게 언제 손을 대서 너를 세상에 선보일 수 있겠니?', '비용은 누가 지불할 것인지, 그렇게 대가를 치르면 얼마나 좋아질 수 있는 것인지…' 그런 비용효과적인 야비한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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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양기관에서 일하는 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양부모가 되려는 사람이 입양할 아이를 선택할 때는 깜깜한 밤중에 불을 켜지 않고 누가 누군지 모르게 해서 아이를 데려가도록 권한다는. 입양이 결정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어떤 기준에 의해 차별이 발생하고, 그 기준에 의해 선택되지 못한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란다
.

오늘은 기관에서 온 두 녀석이 한꺼번에 퇴원했다. 그들의 퇴원요약지를 작성하는데, follow up 날짜는 공란으로 남았다. 다시는 그들이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해졌기 때문이 아니었기에, 그 공란처럼 내 마음도 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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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환자들

 

소화기 내과에서 내가 담당했던 30여 명의 환자 가운데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환자들이 몇몇 있었다. 다른 환자들이 다 stable해도 한두 명의 중환이 있으면 밤잠 편안히 자기는 틀렸다.

한밤중, 환자의 혈압이 떨어지고 있다는 call이 오고, 발바닥에 불이 나게 병동으로 뛰어간다. 가자마자 손목을 붙들고 pulse를 확인한다. 분당 150. 혈압은 잴 수가 없다. 청진을 하니 심음은 희미하게 들리는데, light reflex가 없다. 다시 손목의 pulse를 확인하니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vital sign check하는 짧은 순간에, 환자는 expire한 것이다
.

내가 있는 병원의 입원환자 중 암환자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주 높다. 암 진단 이후 4∼5, 신체 주요 기관에 multiple metastasis, 치료보다는 현상유지를 위해 입원한 환자들
….

화려한(?) 병력기록지와는 달리 외관상으론 크게 아파 보이지 않고 표정이 밝은 환자들도 많다. 그렇지만 방심은 절대 금물. 사소한 감염에도, 단 한번의 fever에도, 가벼운 시술의 합병증으로도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환자가 나빠지면, 가족들은멀쩡하게 잘 살던 사람, 걸어서 병원에 들어온 사람을 병원에서 죽였다며 병동이 떠나가라 고함을 치고 곡을 한다. 그들이 밉다. 그렇게 환자가 죽어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환자도 불쌍하고 가족도 불쌍하고 환자를 위해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나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

우리 병원 본관 7층에는 소위임종방이 있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질 때, 죽을 때까지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제공되는 1인실이다. 임종방에는 병동에서 arrest가 난 상태로 급박하게 들어가기도 하고, DNR을 받은 환자가 상태가죽으러들어가기도 한다
.

내가 소화기 내과를 시작하기 전날 밤 UGI bleeding이 터졌던 간암환자는 내가 소화기 내과를 마치기 전날 밤 그 임종방에서 expire했다. Total bilirubin 64까지 올라가 우리를 긴장시켰던 환자. 지난주부터 밤마다 코피가 나서 멈추지 않고 refractory ascites로 숨차하며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한밤중에 바세린 거즈로 nasal packing을 해 주었더니 답답하다며 빼서 지혈이 제대로 되지 않아 한 시간만에 다시 가서 packing을 해야 했다. 나의 밤잠을 설치게 한 그가 미웠다. 아침까지 빼지 말라고 했는데 왜 그랬냐며 나도 모르게 질책을 한다. 그렇게 나를 성가시게 하더니 임종방에서 이틀을 채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서서히, 보는 사람이 더 괴롭게 서서히
….

그가 나에게 한 마지막 말은혈압 어때요?”였다. 혈압이 떨어지면 나빠진다는 말을 들어서일까? 그가 갖는 삶에 대한 기대, 희망이 무서웠다
.

환자에게, 또 그 가족에게 환자의 질병과 죽음이 갖는 의미를 의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 삶의 context를 이해하기 어려우니, 죽음을 거부하고 삶에 집착하는 환자든 죽음에 초연한 환자든, 젊고 건강하고 경험 없는 의사가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

그저 생각한다. 고도의 실험과 연구, 신약과 수술기법의 발전이 한 축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면, 남아있는 삶의 기간을 어떻게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인가, 환자는 자신의 신변 정리를 어떻게 하고 가족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이며, 신체적 고통과 영혼의 고통을 덜기 위해 어떤 노력이 다각적으로 제공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즉 총체적인 terminal care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중요하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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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여러 번 해 본 사람처럼

 

미셸 푸코가 지적했듯이 근대는 주체의 탄생으로 문을 연 시대이고 병원은 근대 임상의학의 탄생과 함께 주체의 몸에 대한 권력이 행사되는 공간이다. 푸코의 철학적 테제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병원인 것 같다.

땀으로 범벅된 초턴의 얼굴을 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팔을 내밀고 항암주사를 맞아야 하는 환자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미안하고 당황스럽다. 지난번 인턴 선생님이 주사를 잘못 놓아 일주일 내내 팔이 아프고 저렸다는 말로 은근히 나에게 압력을 넣는 환자가 얄밉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

간경변으로 복수가 너무 많이 찬 환자에게 paracentesis를 시행한다. 나는 마치 여러 번 복수천자를 해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도구들을 챙기고, 굵고 긴 복수천자용 18번 바늘을 환자의 배에 꽂고 물이 나오는 걸 확인한 후 당당하게 병실을 나선다. 그런데 5분 뒤 병동에서 call이 온다. 선생님, 물이 나오지 않는데요
?

나는 병실로 달려가 바늘의 위치와 각도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환자 position도 바꿔본다. 배에는 물이 가득한데 왜 물이 나오지 않는 걸까? 결국 담당 2년차 선생님께 연락한다. 와서 보시고는 복수를 받는 bottle 입구에서 tube가 꺾여 있는 걸 발견하신다. line을 똑바로 펴니 바로 물이 나온다. 내가 땀을 줄줄 흘리는 것만큼 환자의 배에서도 복수가 줄줄 흘러나온다
.

Upper GI bleeding
으로 L-tube irrigation을 계속 해야 하는 환자 곁에서 잠시 졸다가 다시 irrigation을 시작하는데 saline이 들어가지 않는다. 허둥지둥 Tube를 더 넣어보고 빼보지만 마찬가지다. 환자는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고, 결국 나는 L-tube를 빼본다. 어느새 tube 끝이 clotting이 되어 막혀 있다. 다시 L-tube insertion을 시도하니 구역질이 나는지 또 피를 토한다
.

간경변 합병증으로 hepatic encephalopathy가 생겨 매일 dulphalac syrup을 먹고 관장을 하는 환자가 그렇게 배가 아파하는지 몰랐다. 내가 약속처방으로 묶어놓고 routine하게 내리는 order 하나에도 환자는 오전 한 나절이 힘들고 비참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

내가 그렇게 몸에 손을 댄 환자가 괴로워하고 고통받을 때면 안절부절, 가슴이 두근거린다. ‘모든 걸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며 망설이다가 치료의 주도권을 잃고 원칙이 흔들리면 안되는 거야라고 생각하다가여러 과에 걸쳐 consult가 난 환자라면 order를 주도면밀하게 내서 환자를 덜 괴롭힐 수도 있을 텐데, 내가 약에 대해 좀 더 잘 알면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될 텐데라고 반성하기도 한다. 앞으로 내가 병원 내에 있는 그 어떤 순간도, 나에게 가장 많은 가르침을 주는 사람은환자라는 사실만은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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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며칠째 상태가 계속 나빠지는 환자의 foley catheter change가 필요하다는 call이 왔다. 환자가 자꾸 의사를 부르고 괴롭히면 귀찮고 미워지는데 그때를 조심해야 한다는 한 동료의 말이 기억난다. 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은데 밤마다 의사를 부르고 귀찮게 굴던 환자를 자신도 모르게 neglect했는데, off를 나갔다오니 arrest가 나서 expire한 상태였다고 했다. 방금 이 환자도 그렇다. 입원한 지 2주일이 되어가는데 매일 매일 환자가 힘들어하는 정도가 심해진다. 어서 가 봐야지. 인턴인 내가 그 환자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aseptic foley change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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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인턴일기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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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 주사실에서 IV job을 처음 해보는 나. 병원마다 IV job을 인턴 혹은 간호사가 하는 것 때문에 다소의 논란이 있지만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외래 주사실 근무에 인턴이 투입된다.

나는 학생 실습 때부터 채혈용 vacuum tube, angiocath, scalp needle을 막론하고 IV를 성공해 본 적이 없어, needle phobia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Tourniquet을 묶고 튀어 오르는 vein을 찾는 그 행위부터 당황스럽다. 틈나는 대로 atlas를 보며 피부 밑 정맥의 주행을 눈에 익혀두지만 주사실 근무를 시작하던 날, 정작 환자 앞에 서기만 하면 서투른 손놀림,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 한눈에 보아도어설픈 인턴의 모습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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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 주사실에 오는 환자들은 항암치료 중 백혈구 수치가 떨어져 LivGamma를 맞는 환자, 한 달에 한 번 혹은 1∼2주에 한 번 꼴로 항암제를 맞는 환자, 수혈이 필요한 hematology 환자, 이식 후 immunoglobulin을 맞는 환자 등 주사실의 터줏대감들이라, 이렇게 어설픈 나의 행동거지를 한눈에 알아보고는인턴선생님 말고 간호사 선생님 불러주세요라며, 위축된 나를 두 번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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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먼저 주사실에 근무해본 경험이 있는 동료 인턴선생님들로부터 매일 특강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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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는 각도도 중요하지만 속도도 중요해요. 자신 없다고 머뭇거리면 손도 떨리고 환자도 많이 아파하니까 잽싸게 밀어 넣어야 되요. 침대 시트를 피바다로 만들지 않으려면 vinca에 피가 맺히는 순간 tourniquet을 풀어야 해요. 항암주사를 맞으시는 분들은 혈관이 약하니까 조심하세요. 손등에 주사하는 경우 regurgitation을 너무 자주 하면 혈관이 터지고 환자분들이 아파하세요. Intern’s vein을 이용하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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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땐 다 알 것 같은데, 한두 번 시도에 혈관이 잡히지 않으면 위축되는 마음을 감출 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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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첫 주 내내 매일 밤 같은 꿈을 꾼다. 정말로 똑같은 꿈. Angiocath insertion해서 피가 송글송글 맺히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sheath가 혈관 내로 더 이상 advance되지 않는 바로 그 장면. 작년에 읽었던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의 첫 장에서 저자인 아툴 가완디가 처음으로 central vein catheterization을 배우며 시행하다가 첫 환자를 fail하고 병실 밖으로 나와 당혹스러워 어쩔 줄 몰라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는 painful하게 procedure를 경험하지만 결국 심리적 불안을 극복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과연 묘책은 무엇인가
?

하다 보면 된다는 어이없는 말이 나에게도 적용된 것일까? 2주 동안 여러 종류의 주사제를 start하면서, 다양한 질병을 가진 환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환자 얼굴도 쳐다보지 못 했는데, 어느새 나는 환자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면서 IV start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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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주사실에서 빨간 adriamycin이 담긴 syringe를 보고는 심호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travasation되면 심한 necrosis를 시키는 adriamycin. Cylinder를 느린 속도로 서서히 밀어 넣는 것도 힘들지만, 다른 한 손으로 혈관을 만져보며 환자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은 내 피를 마르게 했었다. 그러던 내가 환자들과 항암치료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 환자들이 평상시 궁금해하던 질문에 대한 대답, 치료 시 주의해야 할 내용, 식생활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과연 어찌된 조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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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약한 시스템과 과잉 적응된 개인

 

소위의사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키는 것을 우선시하는 것이 직업적 윤리에 적합하다(매우 식상한 발언이다).

그러나 한 달 남짓한 병원생활을 겪으며, 여러 과에서 인턴 업무의 중심축이 환자 care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기보다는 의사들 사이의 왜곡된 권위의식과 의국 내 질서의 유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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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환자에게 왜 수술이 필요한지, 수술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며 예후와 예상되는 합병증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더 나아가 환자의 직업과 가족 관계 등을 고려했을 때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하는지 등의 내용이 논의되는 시간보다는, 과 내에서 입퇴원 장부를 작성하기 위해 인턴부터 레지던트 4년차까지 밤을 꼬박 새워서 자료를 정리하는 일, 의무기록이 제대로 되지 않은 미비차트를 윗 년차가 쓸 수 있도록 복사실에서 입원차트 200여개를 몽땅 복사해서 의국으로 갖다 나르는 일 등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있다. 의무기록실에 내려와서 쓰면 1∼2시간이면 될 일을 인턴이 6시간 동안 복사를 해서 윗년차에게 갖다주어야 하는 것은 웬 시간낭비, 자원낭비인가
?

수술장 운영을 원활하게 하고 스케줄이 펑크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수술예정일 이틀 전에 전화해서오늘입원해야 한다고 통보를 하고, 그 통보를 받은 환자는 정신없이 입원해서 수술 받고 수술 후 manage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불행히도 내가 본 환자들의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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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분명히 개선 가능한 문제점이고 합리적인 대안이 있다고 생각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 모두가 공감하면서,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머리를 맞대지 못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

이러한 생각에 대해인턴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야. 시간이 지나고 연차가 올라가면 좋아질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윗년차가 되어 뭔가가 좋아진다면 지금의 잘못된 관행을 내 아래의 누군가가 시간과 정렬을 소모하며 하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일단은 이곳에 적응해야만 생존할 수 있고, 살아남아야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일상의 소소한 문제에 발끈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나태한 생각으로 살아서도 안 되는 것 아닌가
?

내가 속한 공동체가 합리적인 공간으로 발전하기를 바라고,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하고 인정받는 일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매우 상식적이고 진부한 생각일 것이다. 현재 한국의 의사가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기에 많은 정책적 제약이 있고 의료 외적인 압력으로 진료에 어려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다방면의 노력이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기저에서는 전공의 수련 과정이 보이지 않게 특정한 정형화의 틀을 제시한다는 점, 전공의 과정을 통해 의사로서 사회화되고 전문화되어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내부적인 성찰과 개혁을 위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어떤 국민도, 어떤 정부도 의사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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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전제된다면 나는 컵라면을 먹다가 finger evacuation을 해야 한다는 병동의 call이 와도 기쁜 마음으로 똥을 파고 돌아와 퍼진 라면을 먹을 수 있는 인턴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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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 irritable하게 움직이는 환자를 원망하며 한 손으로는 환자의 두 손과 배를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환자의 턱을 붙잡고 있었다. 오늘따라 CT찍는 시간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지? 납옷을 입어서인지 몸이 축축 늘어지는 것 같아 힘들다. 누워있는 환자를 내 몸으로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한 채 CT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리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끝나는 기색이 없어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컴컴하게 어둠에 쌓인 방. 분위기가 이상해서 나는 누워있는 환자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내 몸무게에 짓눌린 채 괴로워하는 환자는 바로 내 남편. 아마 나는 가위에 눌려 꿈속에서도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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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되어 처음 근무한 신경외과에서의 한 달간 인턴생활, 그 사이에 내 몸에 각인(embodied)된 행위가 바로 이것, 움직이는 환자를 붙잡고 post-op CT 촬영이었던 것일까
?

불행하게도 지난 한달 동안 환자의 생명이 분초를 다투기 때문에 내가 뛰어다닌 적은 없었다. 내가 뛰어야 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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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수술할 환자의 sputum 10분 내로 검사실로 옮겨야 오늘 내로 AFB smear의 결과를 확인하고 수술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다는 윗년차 선생님의 call. 나는 1층의 필름판독실에서 뛰쳐나와 다른 건물 8층에 있는 환자의 검체를 받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못하고 뛰어 올라갔다 다시 그 길을 달려 내려와 다른 건물의 지하 검사실로 뛰어야 한다. 그렇게 뛰는 와중에 응급실에서 call이 온다. 빨리 와서 환자의 CD를 가져다 PACS에 올려야 오후 회진 때 선생님들이 함께 보실 수 있다고 하신다. 검사실에서 응급실로, 다시 PACS 운영실로 CD를 들고 뛰어야 한다. “5, 10분내로를 외치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다리품을 팔아 열심히 뛰는 만큼 과의 일이 진행되는데 차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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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4년차 선생님의 호출, ****-44라는 번호가 찍힐 때면 잽싸게 주위에 전화가 있는지 찾고 전화를 한 후 달려야 한다. Hormone test를 하기 위해 시간을 맞춰 채혈하는 것보다 의국장의 전화를 우선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환자를 제쳐두고 달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위계질서에 너무나 순종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다. 이런저런 이유로 10분 뒤에 가면 안 될까요? 라는 질문을 던지면다른 인턴 시키고 빨리 의국으로 와라며 끊기는 전화. 나는 순간 위축되지 않을 수 없다. 병원에서 인턴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며 말없이 뛰는 function만이 중요한 그런 존재인가
?

우리가 갖춘 시스템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간보다는 현재 시스템의 한계를 인력을 동원해서 급한 대로 메우며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과연 이 공간에서는 발전을 위한 비판적인 문제제기가 관통될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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