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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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01 - 이수현 슬기엄마

    2014 갑오년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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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29 - 이수현 슬기엄마

    쓴소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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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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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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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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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속 구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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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짐 마음의 빚 1 - K 선생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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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12 - 이수현 슬기엄마

    최선을 다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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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이 나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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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29 - 이수현 슬기엄마

    늦은 시간 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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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21 - 이수현 슬기엄마

    독백이 아닌 대화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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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19 - 이수현 슬기엄마

    제가 외판원은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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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10 - 이수현 슬기엄마

    그녀에게 들리는 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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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08 - 이수현 슬기엄마

    환자들이 종양내과 의사에게 듣고 싶은 말 BEST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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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07 - 이수현 슬기엄마

    나도 단풍이 되고, 낙엽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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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03 - 이수현 슬기엄마

    내 인생에 소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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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0.31 - 이수현 슬기엄마

    오늘 유방암 생존자/경험자를 대상으로 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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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0.21 - 이수현 슬기엄마

    종양내과의사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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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0.01 - 이수현 슬기엄마

    전화번호를 바꿔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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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꿎은 눈물 한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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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9.16 - 이수현 슬기엄마

    명절동안 열이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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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9.08 - 이수현 슬기엄마

    가능한 직장 생활을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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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9.07 - 이수현 슬기엄마

    약 순응도 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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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9.06 - 이수현 슬기엄마

    주치의 변경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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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8.28 - 이수현 슬기엄마

    글을 계속 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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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8.18 - 이수현 슬기엄마

    긴 병 끝에는 가슴에 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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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자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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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8.10 - 이수현 슬기엄마

    진로를 고민하는 레지던트와 이야기를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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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8.09 - 이수현 슬기엄마

    자원 봉사를 시작하는 슬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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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8.08 - 이수현 슬기엄마

    콧물이 뚝 - 없어보이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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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갑오년.


120년전 1894년은 갑오농민전쟁으로 시작하였다.


이어서 조선을 차지하겠다는 일본과 중국의 청일전쟁이 우리 땅에서 벌어졌다. 어이없는 전쟁.


왜 남의 나라 이권 다툼을 왜 우리땅에서 하도록 놔둔 것인가?


그리고 갑오개혁.


120년전 갑오년은 역사의 격변기. 그리고 비극의 근현대사의 발원지가 되었다. 


사람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른 코드로 읽고 해석한다. 그것이 오늘의 우리.


오늘 시작한 갑오년은 어떤 한해가 될까?

 

 

전봉준

 

황동규

 

1

손금 접어두고 눈 오는 남루


寒天 법도 없고 겁도 없는 논


땅 위에 깔리는 허연 눈가루


마음에 짓밟는 형제의 손.


 

2

눈떠라 눈떠라 참담한 시대가 온다.


동편도 서편도 치닫는 바람


먼저 떠난 자 혼자 죽는 바라


同列 흐느낄 때 만나는 사람.


 

눈떠라 눈떠라 참담한 시대가 온다


그의 눈에는 식민지 조선의 참담한 미래가 보였나보다.

 

120년전 갑오년은 어둠의 시대였으며


이때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던 사람들은 죽음으로써 삶을 마감하였다.


갑오농민전쟁,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이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

 

                                                     안도현

 

눈 내리는 만경 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땅속에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였네

못다 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갈 것을


우리 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 목숨 타오르겠네

봉준이 이사람아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오늘 나는 알겠네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슬픈 시다.


서울로 압송되어 가는 전봉준을 보며 이름없는 들꽃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같이 억울하고 같이 싸워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풀뿌리들이


전봉준의 마지막 타는 눈빛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내가 외면해도


세상은 변하고 있다.


내가 그리도 무관심하려고 보려고 했던 거대 권력들은


개인 삶의 심층적인 곳까지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지금은 120년전보다 나은 갑오년일까?


이제


내가 최선을 다한다고


좋은 세상이 되는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아는 나이가 되었다.


 

오늘 하루는


를 넘어서


우리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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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1.06 11:12

    비밀댓글입니다

  • 2014.03.11 21:57 신고

    우리를 위한 시간 되시나요?
    진짜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해요

  • 달콤한 우주 2014.04.01 14:58 신고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가끔씩 안부를 묻는 사이처럼
    소식이 없으면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리워 하기도 합니다.
    울 이쁜쌤은 어디 가셨나요?

    봄꽃도 사방에 피어 제 소식을 알리는데
    꽃보다 더 이쁜쌤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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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

 

몇일 사이

국시를 앞둔 몇몇 4학년 학생들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어쩐 일인지

나는 강의실 수업으로 종양학이나 유방암에 대해 수업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가끔 실습을 나온 학생들에게는 종양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암환자를 진료하는 것의 학문적인 측면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지만

강의실에서 주로 수업을 듣는 1,2학년 학생들에게는

임상의학 입문으로 나쁜 소식 전하기, 의사와 환자의 관계, 선택수업으로 있는 호스피스 수업에서 말기암환자에게 항암치료를 하는 것의 의미, Women in Medicine 수업에서 여자의사로 일한다는 것 등의 (소위 마이너) 분야로 수업을 주로 했던 것 같다.

 

주제가 그래서 그런지,

슬라이드를 많이 만들어서 많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 보다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고 단답식이라도 답을 들어보고 롤 플레이도 해보고

환자의 실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그리고 솔직하게 수업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수업을 하면서 신이 난다.

자신하건대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슬라이드를 많이 만들지 않으니 쳐다볼 슬라이드가 없어서 졸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수업이 끝나면

자체적으로 피드백을 받아본다.

 

가장 놀라웠던 반응은

학생들이

실재 임상상황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환자 및 가족들과 면담을 하면서,

의사가 겪는 수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는지 알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의대생들은 기본적으로 동기부여가 아주 잘 되어 있고, 습관적으로 성실하며, 아주 열심히 공부한다.

 

뭐든지 열심히 하지만

가끔은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순간이 많을 것이다.

학생들은 그 답을 찾지 못해도 열심히 공부한다.

그런 학생들이 '왜'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는지를 느끼게 되었다는 의견이 많아서

내심 뿌듯했다.

 

수업을 하고 나면

내가 실재로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학생들은 나를 통해 환자를 열심히 보는 의사가 되어야 겠다고 결심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뭔가를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나도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결심하는 메일을 보내는 학생들이 있었다.

 

 

국시를 준비하는 4학년 학생이 오늘 나에게 보낸 메일은

그 무엇보다 나에게 값진 선물이다.

 

교수님의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은 저에게 그리고 제 주위의 많은 학생에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때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씀들과 표정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런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서 우리 학교가 자랑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직접 찾아뵙고 감사 전해드렸어어 하는데.. 얼굴도 안보이는 인터넷 상으로나마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서글프게도 선뜻 마음 전하기 힘든 곳이 병원인것 같습니다.

병원을 떠난다는 소식에 '아이고 우리 환자들 어떡해...'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교수님은 그런 의사선생님 이십니다. 저의 꿈은 좋은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 집중하다보면 꿈은 점점 작아만 집니다. 그때마다 다시 꿈꿀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끝까지 열심히 해서 부끄럽지 않은 의사가 되겠습니다.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어디에서든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라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리고 부끄럽다.

 

4학년이면

임상실습을 통해 병원의 분위기를 어렴풋이 알게 된 때.

당장 내년부터 인턴으로 일 할 생각에 설레임과 두려움의 양가감정이 있는 시기.

그들은 나의 수업을 듣고 나의 블로그를 통해 환자를 보는 진료현장에서 어떤 갈등이 초래되고 있는지, 왜 개인이 최선을 다해도 좋은 의사가 되기가 어려운지,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법과 제도와 시스템의 존재를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의기양양 의대생이 되었지만

한 해 두 해 시간이 가고

병원 실습을 통해 레지던트 펠로우 교수들의 삶을 보고

생각만큼 환자들로부터,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의사의 사회적 지위와 현실을 접하며

충격을 받고 실망한다.

그런 그들이

냉소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겸허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려움이 많으니 더 노력해야 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의사, 뛰어한 의학자로 성장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교육은 중요하다.

 

내 논문 하나를 publish 하는 것 보다

선생이라는 지위에서

학생들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주고 더 많이 고민하게 하고 또 함께 고민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에게는 나의 한계와 과오를 넘어서

더 능력있는 의사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선생'이 필요하다.

그게 우리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투자이다.

 

우리 학교는 내년 본과 1학년 학생부터 A,B,C,D 와 같이 등급을 매기지 않고

Pass or Fail 로 평가시스템을 바꾼다고 한다.

전체 120명의 학생을 30명의 단위로 묶어 각각 책임지도교수가 있고

그들을 보다 가깝고 밀접하게 지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 담당교수가 얼마나 교육에 전념하고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형편이 될지 모르겠다.

나는 학생 교육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담당 교수를 한번 해보고도 싶지만

임상으로서 지금까지 했던 일을 모두 다 하면서

학생들까지 담당하라고 한다면 제대로 못할 것 같다.

 

학생들은 새로운 평가 제도 하에서 적절한 능력을 함양하고 성적에 얽매이기 보다는 더 넓은 관점으로 의학과 의료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뭔가를 더 시도하고 도전해야 할 것이다. 책상 앞에서 족보만 파서 좋은 점수를 얻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좋은 평가를 위해 화려한 스펙을 쌓기 보다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전초전으로

많은 것을 경험하고 고민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병원에서는

그렇게 대학에서 배출된 학생들, 모든 과목을 pass 하고 온, 외관상 다 똑같은 학생들을 어떻게 평가하여 임상과 전공의로 선발하고 이후 연계된 교육을 할지에 대해 미리 고민해야 한다. 우리 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다른 학교의 학생이 대학 성적표를 가지고 올텐데 어떻게 객관적으로 우리 학교 학생들과 평가할 것인지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학생 때의 경험과 고민이 이어지고 전공의 수련 기간동안 그 노력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연계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의과대학 교육 커리큘럼의 개혁만으로는 좋은 의사 만들기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없다.

전공의 숫자를 줄이고 있고 병원 인건비를 축소하기 위해 펠로우 숫자도 줄이고 새로운 교원을 뽑는 것이 점점 어려워 지고 있는 마당에

그들의 교육을 누가 어떻게 담당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의과대학 교수이기도 하고 병원에서 임상진료를 담당하는 의사이기도 한 사람들은 그런 부분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학생들에게 좋은 멘토가 되기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어차피 일정 기준을 갖춘 학생들일테니 그놈이 그놈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유일하게 객관적으로 평가 가능한 국시성적에 초점을 맞추어 성적대로 사람을 뽑아버리는 무성의한 정책을 선택하면 안될 것이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료계는 총파업을 했었다.

그것으로 무엇을 얼만큼 얻었을까?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과정이 어떠하든...

 

14년만에 또 다시 의료계가 파업을 하겠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만큼 의료계가 절박하고 어려운 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또 다시 국민의 신뢰를 잃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파업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력하다.

그러나 개원가와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다르다. 대학병원도 빅5 이냐 아니냐에 따라 다르다.

의사들의 이해관계가 달라 집단행동을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큰 임팩트를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부는 파업을 해도 의사들만 욕먹고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별로 괘념치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지금 의대 교육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학생 교육은 핵심이 되지 못한다.

그들이 곧 우리의 후배가 되어 의사가 될텐데 말이다.

학생 교육에 있어서는 개원가보다는 대학병원의 책임이 크다.

지금 대학병원은

병원 생존을 위해

정부가 제시한 약간의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여 

부가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장례식장을 어떻게 키우고 화장품 회사와 어떻게 조인할 것인지 고민할 것이다.

 

그런 미래에서

우리 학생들에게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인지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나도 할 말이 없다.

대학병원에서 선생으로 일했던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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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nior staff 2013.12.30 08:51 신고

    선생님... 댓글은 처음 남기지만 오래전 청년의사에 글 남기던 시점부터 선생님 글을 매우 좋아하는 후배의사입니다.(의대학번은 제가 높겠으나...) 의대교수의 덕목은 CARE(clinic, assignments, research, education)라고 생각하는데 병원에선 clinic, 학교에선 research, 선배의사들은 assignment(잡일 또는 보직)에 대한 과도한 압력을 받고있지만 학생과 전공의 교육만큼은 매일 조금씩 시간내서 확보하려고 노력중인 젊은 의사입니다.
    Big5가 아니다보니 저희 과의 staff은 모두 다섯인데, 정교수 2분, 부교수 2분, 조교수인 저 하나, 이렇게 임상조교수나 fellow없이 몇 년 버티다보니 학교에서 요구하는 논문실적까지 채우려면 fellow4년을 포함하여 몇년째 평일에는 밤12시 전에 집에 거의 들어가지 못하는 삶을 살고있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러더라도 선생님 글처럼 제 현실보단 의대교육의 문제가 더 심각하게 생각되는 의사 중 한 명입니다.
    이러한 글이 무언가 의사사회에 적게나마 파장을 일으킬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누구도 아닌 나역시 언젠가 그에대한 책임을 져야할 의대교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facebook 공유도 하였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2.30 13:21 신고

      파장은요... 그런거 기대 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도 이제 더 이상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말할 수 있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좀 비겁하죠. 있을 때 잘해야하는건데 ㅠㅠ
      제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대안도 없고 갑갑하고 나는 너무 지치고 그런 상황 아닐까요?
      특별한 일이 없어도 12시 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없는 생활...
      그래도 욕심이 있으면, 꿈이 있으면, 악착같이 하고 살 수 있는데
      과연 그럴만큼 꿈과 욕심이 뭘까 생각해 보면 인생이 참 아스라 해집니다.
      저도 그만두게 되었지만
      나가는 그 날까지는 이렇게 바쁜 생활을 할 것입니다. 이것저것 너무너무 일이 많으니까요.
      아무도 모르죠.
      도대체 왜 저렇게 사는지...
      그러니까
      순간순간 삶의 exit를 찾으시고
      꼭 행복하게 사세요.
      저도 행복하게 살라구요. 하고 싶은거 하면서 밤 새면서 행복한 일을 찾아...

  • 근영아빠 2013.12.31 02:13 신고

    답장도 남겨주셨네요.
    1. 뭐 몇몇 사람들 마음의 파장도 중요하니까요... 지금까지 잘 해오셨습니다. 선생님처럼도 못하는 의사들이 대부분이니까요... 학생수업에 일차의료에 정작 필요한 내용이 아닌 전문의 수준의 학회 강의록들 짜집기해서 만든 엄청난 양의 강의슬라이드를 모두 중요하다 강조하는 교수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학생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것들 하나하나 정성들여 만들어서 하는 강의가 진짜이지요.
    2. 저는 적어도 경제적인 욕심, 쉬고싶은 욕심 정도는 크지 않아서 학교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를 떠나면 결코 할 수 없는 것들... 내 양심대로의 진료만 해도 논문실적이 모자라거나 학교명예를 실추하는 일만 없으면 짤리지는 않을, 공부하고싶을 때 공부하고 논문 쓸, 국내외학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할 수 있고, 좀 어려운 환자 고민하면서 이런저런 검사를 통해 final decision을 할 수 있고, 전공의/학생들과 늘 가까이서 가르치며 새로움을 공유하고픈 욕심 정도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디 시골 조그마한 도시라도 대학병원이라면 그러한 걸 유지할 수 있겠단 소박한 욕심이지요.
    3. 나름 주말엔 가족들과 ventilation을 하고 살고있고, 그리 악착같은 성격은 못됩니다만 조언 감사드리고, 선생님도 늘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 펠로우 2014.01.01 00:33 신고

    이제 취직을 준비하고 있는 펠로우 2년차입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다보니 저처럼 변화가 생기실 해 인가봅니다. 저는 제분야에서 제일 잘 아는 사람중의 하나가 되어보고자 펠로우를 결심했었는데, 조금 일찍 포기하고 나오려고 합니다. 변화를 앞둔 시점에 불안감 착잡함 후련함 해방감이 뒤섞인 연말을 맞이하고 있는데 선생님 또한 그러실것 같아요. 힘내세요.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 2014.01.05 06:10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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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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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지 몇번째

결혼한지 몇년째

몇번째 생일

몇번째 기념일

시간이 가는 것,

횟수가 지나는 것에

별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내가

블로그 천번째글을 쓰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에 대해 꽤나 의식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누군가 말해 주었다.

하루를 한결같이 살아야 하는 것 처럼

천번째가 되는 그날도 그랬으면,

그래서 특별하지 않은 오늘의 이야기를 쓰는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어린 충고를 해 주었다.

그 말이 정답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솔직히 긴장이 되었다.

 

천번째 쓰는 글만큼은

 

나의, 그리고 그 누군가의 심금을 울릴만큼 멋진 글로 소감을 남기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쓰는 글은

내 머리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생활,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뒹굴고 있는 이 현실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

그러므로 내가 천번째 글을 쓰는 그날의 존재적 조건이

그 글을 결정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환자를 보지 않으면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별로 없다.

그래서 학회를 가면 나는 글을 안 쓴다. 학회장에서 느끼는 점이나 새롭게 배우게 된 지식들을 정리해서 올려보기도 했지만 영 흥이 안나고 글도 잘 써지지 않는다. 그렇게 쓰는 글은 2시간씩 낑낑거려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블로그에 1주일 이상 글을 올리지 않는다. 글을 써야겠다는 욕망 (desire) 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다시 환자를 보는 순간

머리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그런 생각들 중의 하나를 모티브로 삼아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수첩에 단어 하나로만 적어놓아도

나는 단숨에 한바닥 글을 쓸 수 있다.

'염색' 이라는 단어 하나만 적어놓아도 그날 나에게 항암치료 후 탈모가 되었다가 다시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한 환자가 염색해도 되냐는 질문을 하며 동시에 털어놓은 그녀 삶의 이야기가 모두 다 생각난다.

 


나는 그렇게 글을 써 왔다. 매일 일을 마무리하고 밤 1 2시가 넘어도 글을 썼다. 글을 쓰는데 걸리는 시간은 30분에서 한시간 정도. 나는 기승전결을 생각하지 않고, 글의 구성을 생각하지 않고 일필휘지로 글을 써내려 간다. 왜냐하면 내가 쓰는 이야기는 그냥 현실 자체였기 때문에 특별히 메이크업 할 필요가 없었다. 환자를 보며 내가 느낀 것, 내가 들은 것, 내가 생각한 것을 그대로 쓰면 되었다.

 

 

누가 시켜서, 아니면 의무감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글을 쓰고 싶다는 나의 욕망이었다. 아마도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의사로서 느끼는 삶의 불만과 응어리들을 글로 해소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었나 보다.

 

 

그래서 블로그는 의사로 살아온 내 삶의 이력서와 같은 존재이다.

 

 

누구든 내 블로그를 보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내가 드러나는 공간이었다.

나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꾸밀만한 것도

내세울만한 것도

감출 것도 없는

보통 사람이라

블로그를 통해 내가 노출되는 면이 있다 해도 별로 특별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솔직한 생각을 담을 수 있었다.

위험한 발언은 스스로 삼가하였다.

누군가를 공격하는 발언도 하지 않았다.

불특정 다수를, 막연한 누군가를, 저 멀리 존재하는 거대한 제도를 욕하기는 쉬웠다. 그래서 나는 딱 그정도만 했다. 구체적인 문제 상황을 지적하고 문제의 핵심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 발언은 나를 위험하게 할 수 있으니까. 나는 아주 안전하게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블로그는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도구가 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쓴 글 때문에 욕을 먹거나 비방을 당하기도 했다. 나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은 꼭 나의 블로그를 인용하였다. 그들은 내가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떤 내용에 대해 분석하고 비판을 하는 것이 '의사로서 나는 잘 하고 있는데 너는 문제가 있는거 아니냐'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나의 글쓰기를 부정적인 뉘앙스로 받아들이고 나를 재수없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혹은 의사들끼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퍼뜨림으로써 환자를 선동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평가받는 것 또한 내 삶의 이력이 되리라.

 

 

 

904901* 

9420550*

9520551*

9820580*

982215*

201071044*

Y024520*

S******

Y019224*

Y011119*

 

이것은 내 대학시절부터의 학번 그리고 의사로 일하면서 사용했던 병원 아이디들이다.

 

94, 95학번이 나란히 있는 것은, 1994년도에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가 나중에 이대에서 졸업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서울대 입학이 취소된 적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대학원을 못가게 되는 것인가 내심 절망하여 여기 저기 입사시험도 보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그 이듬해에 다시 대학원 시험을 보고 합격하여 대학원 석사 학번이 2개가 되었다.

98학번이 두개인 것은 하나는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학번이고 하나는 연대의대 학번인데, 의대는 2000년에 본과로 편입했지만 같이 다니는 동기들이 98학번들이라 나도 98학번을 부여받게 되어서 같은 년도 학번이 두개가 되었다.

1990년에 처음 대학에 들어가서 2004 2월에 대학을 졸업했으니 (중간에 비는 기간도 있기는 했지만) 여러 대학을 다니고 또 오래도 다녔다. 지금도 취직을 위해, 혹은 공적인 업무를 위해 서류를 준비하려면 성적 증명서, 경력증명서를 떼는데 시간과 돈이 많이 들고, 증빙서류도 남들보다 훨씬 많다

 

이런 것들이 내 삶의 이력이다.

애초에 시작한 길을 계속 가지 못하고 돌아돌아 오늘의 여기에 이른 것처럼

나는 지금도 이 길을 계속 가지 못하고 어디론가 돌아가게 될 모양이다.

그렇게 돌아가는 길이 가까운 내 미래의 삶의 이력가 되겠지.

이러한 나의 이력이 궁극적으로 나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좀 더 살아봐야 알 것 같다.

 


내가 나의 미래를 컨트롤할 수는 없지만

미래를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는 컨트롤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에 대해

의사가 된 것에 대해

종양내과 의사로 환자를 본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나의 길에서 많이 배웠다.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사회에 대해, 정의와 도덕에 대해 배웠다.

내가 그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인생에서 나의 중심을 잡고 당당하게 설 수 있게 도와준 것이 사회학이었다.

연대에서 의학에 입문하여 좋은 선생님들, 그리고 선배님들께 많이 배웠다. 내가 그만한 선배, 선생이 되지 못해 부끄러울 뿐이다. 우리 학교, 우리 병원은 지금 여러 모로 한계와 위기에 봉착해 있고 어려움도 많다. 우리가 고작 이런 수준인가 한심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만한 의사로 만들어 준 것, 이만큼 일할 수 있도록 키워 준 것은 우리 학교와 병원 그리고 나의 선생님들이었다.

또한

나는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배웠다.

나는 환자들의 이야기, 그들의 목소리에 귀 귀울여야 하는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부족하고 불완전한 의사의 한계를 메꿔주는 것은 환자들이었다. 그들은 고통받는 존재로서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나는 환자들을 통해 병을 이해하고 의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의사가 되지 않고, 한국의 의료를, 환자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학원 시절 공부했던 의료사회학을 계속 공부했었다면 

결코 알 수 없는 사실, 그리고 진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다소는 평탄치 않았던 나의 지난 시간들, 복잡한 이력을 나쁘게만 보지 않으려고 한다.

 


이제 지난 3년간 세브란스에서 암환자를 진료하며 보냈던 시간을 접고

새로운 삶의 이력서를 쓰게 될 모양이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한해를 마감하게 되어

내심 불안함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 시간조차 나에게 어떤 가르침이 될거라고 믿는다.


 

나는

지난 3년간

의사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성실한 자세란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였다.

의대생 시절, 레지던트 시절의 최대 관심사는 유능한 의사가 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능력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성실은 손쉽고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 의사로서 성실한 자세를 갖춘 사람으로서 살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의사로서 올바른 실천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였다. 진료현장에서 환자를 위해 싸워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것, 그것은 내가 의사로 일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이제 새롭게 다시 생각하는 자세로 지금의 나를 바라보려고 한다

나의 결점,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하려는 의지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좋은 의사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일단 환자 곁에서 떠나게 되었다. 그 시간이 잠시가 될지 오래 걸릴지, 혹은 영원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어떻게 되더라도 실패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내가 천번째 글을 이렇게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본래 이렇게 예기치 못한 일들이 생기고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만큼도 나의 몫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도 한마디 해주고 싶다.

수고 많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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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유진 2013.12.28 20:29 신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음 장을 시작하시더라도 또 거기서 고민하시고 힘들어 하기도 하고 또 보람도 찾으시겠지요
    언급하기 쑥스러우셨을지 모르지만... 블로그가 선생님께 불리함을 준 면도 있겠지만 또 이렇게 글 하나 남기지 못해도 마음으로 많이 지원하고 감사드리는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걸 잊지 말아주세요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2.30 13:17 신고

      격려 감사합니다.
      우린 누구나 인정받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존재인가 봅니다.
      이렇게 남겨주시는 글 때문에
      징징거리고 울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기운을 내 봅니다.
      감사합니다.

  • 2013.12.29 15:42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2.30 13:16 신고

      망하긴요...
      그렇지 않아요.
      다음 외래 때 얘기해요.

  • 2013.12.29 19:19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2.30 13:14 신고

      socmed@yuhs.ac 입니다.

  • 2013.12.30 09:50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2.30 13:16 신고

      지영씨, 지난번 파이 잘 받았어요. 그런 뇌물 제가 좋아하는거 어찌 아시고 ㅎㅎ. 저를 격려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진심으로요. 제가 오늘 이시간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다 환자들 때문이었습니다. 제 환자들과 헤어지는거, 끝까지 저를 힘들게 할거에요. 그래도, 그렇게 흘러가는게 인생인가 봅니다.

  • 2014.01.07 13:55

    비밀댓글입니다

  • 사브리나 2014.02.02 19:30 신고

    선생님 저는 선생님처럼 글재주도 없고... 공부를 많이 안해서 그런지 말주변도 많이 없지만 단한마디 제심정을 표현할수있는거.. 많이 아쉽고 서운하네요. 선생님 그리고 지난번에 제가 들고간 약봉지에 동그라미쳐서 이약은 빼고 먹으라고 표시까지 해주시고 너무 감사하고 감동받았어요. 다음진료가 마지막뵙는거라니 더 서운해요.

  • 주수경 2014.02.22 10:59 신고


    저 지난번에 허셉틴 4차 맞으러 가서 선생님께 마지막이라는 말을 들었던....
    주수경 이예요.
    다시는 못뵐 줄 알았는데...
    이런 공간이 있었네요....^^

    선생님은 이제껏 제가 만났던 의사 샘 중에 가장 짱!이십니다!!
    불안한 암환자들을 마음 편하게 해주시고,
    짧은 말 한마디에도 위로과 격려를 주셔서,
    그 우울한 항암기간을 제가 잘 이겨낼 수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는 시간들이었어요.

    선생님 같으신 분들이
    지금 날로 늘어나는 암환자들에게 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여성암 환자들에게는 더욱....
    꼬옥~ 다시 돌아오셔서
    전처럼 화끈하게 호탕하게 때로는 부드럽고 따듯하게,
    불안에 떨고 있는... 확 울어버리고 싶은 환자들을 위로해주셔서,
    눈물을 삼키고, 그래도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진료실을 떠날 수 있게 해주세요 !
    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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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엄마

둘 다 아들.

한명은 유치원, 한명은 초등학교.

바람 잘 날 없다. 

그래서 엄마는 바쁘다.

아이들 학교 학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 것도 그렇고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그렇고 

아이들 과제 봐주는 것도 그렇고 

정신이 없다.



유방암 치료를 마친지 2년도 되지 않아 한쪽 폐에 물이 가득찼다. 

나는 전날 그녀의 사진을 리뷰해 보고 깜짝 놀랐다.

나보다 한참 젊은 그녀. 

내일 그녀를 어떻게 만나나.

얼마나 절망하고 힘들어 하고 있을까.

마음이 무겁다.


그런데 다음날 외래에서 처음 만난 그녀.

나는 그녀를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녀는 나한테 오랫만이라고 인사한다. 


저 선생님 알아요. 

예전에 항암치료 받다가 열나서 입원했을 때 선생님 본 적 있어요. 

저 그때는 선생님 환자는 아니었거든요.

제 옆에 입원한 환자 보러 오셨을 때 선생님이 환자한테 설명해 주는거 저도 열심히 옆에서 듣고 있었거든요. 그 환자랑 저랑 비슷한 형편이라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호호.


먼저 인사하고 아는 척 해주고 

환자가 참 명랑하다. 

 


숨 차지 않나요?


네.


빨리 걷거나 운동할 때도 괜찮아요?


제가 원래 게을러서 운동같은 거 잘 안해요. 그래서 숨찬지 잘 모르겠는데요...


환자가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며 나한테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임상연구로 치료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번 오는 스케줄. 바쁜 그녀는 정해진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자꾸 늦는다.

매번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한다. 

아이들을 봐주고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자기가 다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얼마든지 맞춰드려야죠. 좋아지기나 하세요' 


나는 그렇게 마음 속으로 기원했지만...


병이 금방 나빠졌다.


항암제를 바꿔서 다시 치료를 시작했다.


그녀는 여전히 바쁘고 자꾸 늦는다.


약을 바꿨는데 좀 어떠신가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원래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지

뭐 별로 달라진 걸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죠? 선생님 진료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제가 너무 둔한가 봐요.  



다행이다. 

흉막 전이가 진행되서 많이 숨차면 어쩌나 했는데 그녀는 여전히 씩씩하고 바쁘고 나한테 미안해하고 열심히 산다.    



이번주 엑스레이를 보니까 좀 좋아진 것 같은데

바꾼 항암제가 효과가 있는거 같아요. 


그래요?

역시!

제가 요즘 매일 풍선을 엄청 불고 있거든요. 

풍선불기 많이 하면 폐기능도 좋아지고 폐도 좋아진다고 해서요. 

내가 풍선 불어주면 애들도 좋아하고

일석이조에요. 



입구가 조금 열린 그녀의 가방을 슬쩍 보니

정말 풍선이 여러개 있다. 


그녀는 아플 틈이 없는것 같다. 

이제 막 개구장이가 된 두 아들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하소연한다.

애들 때문에 미치겠다고, 정신이 없다고...



그런 와중에도 매주 병원에 오고, 

급여가 안되는 비싼 항구토제 먹고, 

틈 나는 대로 풍선도 불고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는 젊은 그녀에게 전이성 유방암의 예후와 치료과정에 대해서 다 설명해 줬다.

그러나 그녀는 끄떡 안한다.

그리고 외래에 오면 항상 웃는다.

매일 자기에게 생긴 부작용도 수첩에 잘 적어온다.

꽤 힘든 증상들이 있는데도

그녀는 늘 웃는다.


선생님, 너무 걱정마세요. 

열심히 하면 좋아질 거에요.


긍정의 힘.


이번 가발 예쁘네요.

항암치료하는데도 얼굴 안 상하고 예뻐요.

힘 내세요.


그녀는 나보다 훨씬 강하다.

두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하루하루를 잘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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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엄마 대신 외래에 왔다.


멀리 시골서 사는 엄마.

서울 사는 딸네 집에 오셨다. 

요즘 들어 소화가 잘 안되는 거 같다는 엄마의 한마디.

딸은 시골 가시기 전에 내시경 검사라도 한번 받고 내려가시라며 엄마 등을 떠밀어 내시경 검사를 받게 하였다.

그렇게 진단받은 위암, 엉겁결에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하러 들어가보니 CT에서 보이는 것보다 복막 전이가 훨씬 심했다.


나이도 많고

몸도 약한 엄마.  

항암치료를 받으셔야 한다고 한다.

엄마는 '수술 했으니 당연히 항암치료를 받아야지' 하신다.

딸은 엄마한테 4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수술 다 받았으니 빨리 집으로 가야 한다, 집을 너무 오래 비웠다, 마음이 급하다며 

퇴원하자마자 당신 혼자 버스타고 시골 집으로 돌아가셨다. 

딸은 걱정이 되서 매일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바쁠텐데 매일 전화도 다하고 왠일이냐며 엄마는 핀잔을 주지만 

싫지 않으신 눈치다.

딸은 전화로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항암제 잘 드시고 계시냐고 묻는다. 

노란거 한알 흰거 한알 꼭꼭 잘 챙겨드시라고 당부한다. 


열심히 일지를 써 가며 약을 드시는 엄마.

어제 밤에 전화가 왔다.


얘야, 어찌된 일인지 흰거 한알이 없다. 

옮겨 담다가 어디다 흘렸는지 어쩐지...

모레까지 다 먹고 일주일 있다가 병원 가야 허는디

한 알이 부족해.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정확히 먹으라고 혔는디 어쩌냐?


딸은 이 추운 날 엄마의 S-1 한 알을 처방받으러 작은 애는 업고 큰 애는 걸려서 병원에 왔다.


최선을 다하고 싶은 환자와 가족의 마음.

마음이 울컥했다.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한 알이라도

하루라도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좋아질거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치료하려고 하는 마음. 

나른한 내 마음이 한없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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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매일 

블로그에 일기처럼 글을 썼다.

블로그에 쓴 글은 

아주 솔직하게 

내 심정을 진솔하게 담아 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런 것은 아니다.


내부 검열.


이 글은 

일단 내 환자가 보고 있고 다른 병원 환자들도 보고 있고, 

동료 의사도 보고 있고, 내 윗사람도 보고 있다. 

나를 모르는 그 누구도 

내가 쓴 글을 통해 나를 읽어낼 수 있으므로 

나 스스로 내부 검열을 하고 내 보낸다.

적당히 나를 드러내는 것 같지만

나의 속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없다.

상당히 정치적으로 판단하여 글을 쓰고 올리는 셈이다.

어차피 우리는 여러개의 가면을 바꿔쓰면서 사는 존재니 특별할 것도 없다.  


나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건/사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었다.

내 이야기의 본질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도 가느다란 실마리만 슬쩍 던지고 오픈하지 못한 이야기도 있다. 내가 쓴 글을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글을 쓰는 동안 사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일상의 소소한 문제에 잽을 날리는 것은 

해결에 도움이 안되면서

오히려 상황을 심각하게 만들 수 있고 

내가 속한 조직에 해를 가할 수도 있으며 

궁극적으로 내 신상에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잽은 삼가하는 편이다.

그러나 스트레이트를 날릴만한 힘이 내 안에 비축된 것일까? 

아직은 아니다. 

그러므로 난 그만큼 내부검열을 해서 글을 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별적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에

나의 

혹은 

나를 읽어내는 사람의 정치적인 계산이 들어가 있기 마련이라 

중립적으로 읽혀지지 않은 부분도 꽤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혹평을 듣기도 했고 평판(이랄 것도 없지만)에도 흠이 갔다. 

그러나 나는 최소한 그만큼은 감안하였고 각오하였다. 

그래서 괜찮다. 



특별히 어떤 독자층을 염두에 두고 쓴 글들은 아니지만

대략

의사로서 환자에게 하고 싶은 말

혹은 

의사로서 의사를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 그리고 이 사회에 하고 싶은 말 

혹은 

의사로서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


그 정도가 내 마음 속 주된 독자층이 아니었을까 싶다. 



경기가 좋지 않고

출판 시장은 더 상황이 좋지 않으니

흥행에 성공할 것 같지 않은 나의 글을 어디서 책으로 내주겠다고 할지 모르지만

지난 3년간 이 블로그를 통해 썼던 글들을 모아

1권 혹은 2권의 책으로 내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종이책을 선호하지만 예산상 종이책이 어려우면 E-book 으로라도 낼 예정이다. 

내가 쓴 글은 독자층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마케팅의 입장에서 시장을 형성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출판사들이 내 책을 내는데 주저함이 있는 것 같다. E-book 이면 그런 부담은 없겠지?



그리하여

나는 책 제목과 구성을 어떻게 할지 결정했다.

내가 그동안 쓴 글을 

단지 주제별로 엮는 형식의 단순 편집을 통해 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주제를 정해서

기존의 글을 다시 쓰기로 했다.

그동안은 그걸 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서 엄두를 못 냈지만

이제 시간이 있을 거니까 

한달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책을 다시 써보기로 마음 먹는다. 



책 제목을 미리 공개하면 재미없으려나?

어차피 흥행을 노리고 쓰는 책이 아니며

누군가가 내 아이디어를 도용해서 먼저 쓸 수 있는 책도 아니니

슬쩍 공개해 보고 싶다.


환자 유감 vs 의사 유감


같은 상황에 대해 환자의 견해 그리고 의사의 견해가 어떻게 대비되고 있는지 대조적으로 조명하는 방식을 취하려고 한다. 그래서 서로의 입장과 시선이 어떻게 교차되고 있는지 보여줄 생각이다. 그러면 의사와 환자간에 형성되어 있는 길고도 먼 인식의 간격을 좁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스마트하게 한권으로 낼 수도 있고

쓰다가 분량이 많아지면 두권을 세트로 낼 수도 있겠다. 



알고 보면

내가 그동안 썼던 글들은 

의사와 환자 각자의 입장에서 이미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상대방을 향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내 글이 멀리 떨어진 이들 사이의 다리가 되기를 바랬다.


그리고

새로 다시 쓰는 글에는

내부 검열을 조금 줄이고

이제까지보다는 약간 더 솔직하게 써 볼 생각이다. 

이제 누구에게 해를 입힐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의 평판에 대해 신경쓸 일도 없으니까

그냥 자유롭게 써보기로 했다. 

그 생각을 하면

꽤나 흥미진진하다. 



이것이 2014년을 맞이하는 나의 첫번째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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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mhere 2013.12.16 02:44 신고

    블로깅에서 얼마만큼을 공유하며 쓸지는 대부분 블로거의 고민인 것 같더군요. 우리 나라 의료 정책이나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의료계의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단어'와, 국민들이 사용하고 이해하는 '단어' 사이에 격차가 존재하여, 무엇이 정말 문제인지, 우리 나라의 시스템은 무엇이 좋고, 무엇은 아직도 개선할 부분이 많은지 이해하기가 참 어려웠는데, 선생님의 책이 그런 격차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 덕순씨 딸 2013.12.16 11:24 신고

    선생님 시간 나신다는게 무슨 말씀이신지 불안해요
    먼저 글에서도 멈추고 돌아보는 느낌이 들어 불안했는데요 어쨌든 책이 나오는 건 반갑고 누군가 돈 많으신 분 혹은 적은 돈을 내는 여러 사람의 후원을 입어 종이책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영감이 넘쳐서 다시 쓰시는 작업 수월하시길 바래요 혹시 교정 봐드릴까요?^^

  • 사브리나 2013.12.16 20:46 신고

    선생님~ 전 단순해서 종이책이좋아요. 저도 구입해서 읽을래요~♡

  • BlogIcon 이수자 2013.12.17 09:56 신고

    출판하시면 제일 먼저 구매하겠습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지인들에게도 선물하고요. 힘 내시고 지면으로 글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2013.12.17 10:57

    비밀댓글입니다

  • 어느해 36인턴 2013.12.17 17:02 신고

    교수님 응원합니다.. 36병동 인턴이었던 시절부터...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 2013.12.18 18:19

    비밀댓글입니다

  • 시몬 2013.12.20 13:10 신고

    국내메이저바이오 기업에서(팀원23명/의사6명) Clinical Research Physician (rheumatology, oncology), Global Safety Physician 을 모십니다. 관심있으신분은
    구체JD 보내 드리겠습니다. JNPartners 한석중/이사 simon@jnpartners.kr 010-3977-0050

  • 김순자 2013.12.21 00:34 신고

    환자유감&의사유감...
    기다려집니다
    올 한해 잘 지냈어요
    늘 맘속으로 선생님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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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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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선생님께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제가 그 요청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제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요. 사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일종의 문화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병원을 새롭게 디자인해보겠다는 설명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어요. 시스템과 제도가 아닌 문화라아직 완성형이 아닌 상태로 당신이 제작한 비디오 클립을 보고 어렴풋이 어떤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 짐작할 수는 있기는 했지만 말이죠.

 

의사가 된지 몇 년이 되었고 그 후로도 몇 년째 일하고 있지만 암 분야가 아닌 쪽으로 환자 혹은 환자 가족이 되어 다른 병원에 가면 도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특히 큰 병원은 아주 막막하죠. 내가 어느 창구부터 들러야 하는지 언제 돈을 내야 하는지 무슨 검사부터 해야하는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물어보는게 일이니까요. 요즘엔 병원 곳곳에 자원봉사자나 도우미들이 있기는 하지만, 여하간 큰 병원에 가면 정신이 없고 피곤하죠

 

하물며 외래가 아닌 입원을 하게 된 환자들은 얼마나 더 마음이 불안할까요?

당신이 보여준 비디오 클립에서처럼 중심정맥관 삽입, 그 시술 행위 하나에도 매우 복잡한 일들이 얽혀 있고 그 과정더이 얼마나 험란한지, 환자를 배려하지 않고 있는지를 알게 되어 깜짝 놀랐습니다.

중심정맥관 삽입 그 자체를 위해서 입원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죠. 그리 복잡한 프로세스가 아니기 때문에 외래에서도 할 수 있어요. 당신이 보여준 환자는 입원을 해서 다른 뭔가의 검사, 추가 시술, 치료 등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중심정맥관이 필요하니까 입원 후 제일 먼저 이 시술을 받기로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환자는 입원 후 앞으로도 갈 길이 멀겠죠. 이 시술이 시작이니까요. 환자가 의료진으로부터 중심정맥관 삽입이 왜 필요한지, 어떤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는지, 시술은 언제 하게 되는지, 시술하는 동안 보호자가 있어야 하는지, 시술을 위해 몇시간의 금식이 필요한지 등의 설명을 들었는지의 여부는 비디오에 포함하지 않고 있었지만 아마도 그 과정을 포함했다면 더 충격적이었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우리 환자한테 하는 걸 생각해 보면 말이죠. (제대로 설명을 잘 안한다는 뜻이죠 ㅠㅠ)   

 

아침에 일어난 환자는 금식을 해야 하는지 하지 않아도 되는지 담당 의사와 간호사의 지시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침 식사가 나오는 바람에 혼란스러워 했고, 정작 언제 시술을 하는지 정확한 시간도 모른채 대기해야만 했으며, 검사실로 가는 동안 이송직원은 계속 다른 전화를 받느라 휠체어를 멈추어 얇은 병원 가운만 입고 이동하는 동안 너무 추워서 감기에 걸리게 되었어요.  한 명의 환자가 의사의 처방 이후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그 전 과정을 추적하고 병동에 돌아와서 마무리가 되기까지를 보여주고 있는 비디오 클립이었네요.

 

아마도 중심정맥관 삽입이 아니라 입원 후 각과 별로 진행되는 협진을 위해 환자가 언제, 어떻게 검사하고 이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봤다면 더 충격적이었을 거에요. 어느 날 밤 한시에 제가 퇴근하고 있었는데 휠체어를 타고 캄캄한 복도에 남겨진 환자를 본 적이 있었어요. 여기서 왜 이러고 계시냐고 했더니 협진 때문에 검사를 한다고 해서 여기 왔는데, 검사를 하고 난 후 그쪽 파트 레지던트는 다른 일이 있다고 가 버리고, 자기를 데리러 병동에서 이송하는 직원을 보냈다는데 한시간이 넘었는데도 오지 않고 있다며 할머니 환자가 울먹거리고 계셔서 제가 병동까지 모셔다 드려야 했던 적도 있었거든요. 그런 일이 흔하지는 않지만 드물지도 않은게 우리 병원 현실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렇지요.

 

환자의 경험에 주목하라는 컨셉은 미국 의료시스템에서 시작되게 아닌가 싶어요. 이들은 아찔한 속도로 발전하는 의료기술, 엄청난 자본의 투자, 하드웨어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만족도나 병원, 의료진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지 않는 이유, 질높은 의료서비스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를 분석하였죠. 궁극적으로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가 경험하는 의료 현실에 주목하게 되면서 서로의 신뢰가 어긋난 지점을 찾아 메워보려는 시도가 시작된 것 같아요. 세계 최고의 병원이라는 메이요 클리닉, 존스 홉킨스 병원, 엠디엔더슨 암병원, 클리브랜드 클리닉 등 유수의 병원이 의료개혁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 왜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도약하지 못하는가, 엄청난 투자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왜 병원을 신뢰하지 않는가, 이들 일류 병원에게 새로운 생존전략이 필요했고 해결의 실마리를 문화에서 찾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일환으로 환자 경험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병원에서 왜 문화에 주목하는가? 그러나 문화(culture)라는 개념은 참으로 포괄적이고 막연한 것 같지만 반대로 구체적인 실례를 찾기가 어렵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병원도 그런 일환으로 환자의 시각에서 의료서비스를 관찰하고 프로세스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것들이 단지 환자들의 민원 제기가 아니라 환자 경험 이해하기로 생각하려고 하는 것 자체는 어느 정도 발상의 전환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런 노력이 왜 눈에 띄게 성공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저는 이제야 비로소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근거가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첫째 의사들은 환자의 경험이나 병원의 문화라는 개념에 별로 관심이 없고 병원에서 하는 각종 개혁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는다. (혹은 참여할 시간이 없다)   

둘째 병원의 수익성 창출과 이런 시도들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안그래도 현재 병원 경영은 적자이며 경제적으로 위기 상황인데 지금 지엽적인 문제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셋째 병원 내 수많은 직종들, 부서들별로 이해관계가 달라 특정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힘들다.

넷째 문제를 공유하여도 진심을 다하여 일을 해결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우리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기도 합니다.

.

그리고 저는 이 중에 네번째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우리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진심으로 대화하며 문제를 풀어본 경험이 별로 없어요. 윗사람들은 늘 말하죠. 서슴없이 비판하라고, 어떤 의견이든 받아들이겠다고, 자유롭게 제안하라고. 그러나 아랫사람들은 이미 너무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게 자유롭게 얘기했다가 그 후과가 나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나를 해칠 것이라는 것을 말이죠.

 

저만해도 그래요. 예전에 레지던트 1년차 때 회식에 가서 저녁을 먹는데 그때 여러 선배 의사들이 있었어요. 누군가가 나에게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어떤 분야를 전공으로 하고 싶냐고 물어봤었죠. 그때 전 잘 모르면서도 막연히 내가 가진 꿈 중의 하나로 완화의료(palliative medicine or supportive medicine)’를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회식을 끝내고 병원으로 돌아온 다음 날 나는 1년차 레지던트로써 또 뭔가 가벼운 사고를 쳤고 빵꾸를 냈던 것 같아요. 그랬더니 대뜸 이런 말을 듣게 되더군요. ‘그게 네가 하려고 했던 supportive care? Supportive care 하는 사람은 일을 그딴 식으로 하는거냐? 남들 하는대로 지금 보는 네 환자나 잘 봐라.’ 저는 그 말이 매우 충격적이었고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었어요.

 

그러나 그 이후에도 가끔은 어떤 순간에 나를 드러내고 나의 의견을 내 놓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내가 했던 말이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와 나를 상처입히는 일이 몇차례 더 있었어요. 다시는 의견을 내지 않겠다, 말 많은 사람은 일만 더 많이 한다, 그냥 일 진행되는 형국을 보면서 적당히 중간만 가자, 괜히 비판했다가 나만 비난받을거야, 회의 때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게 최고야, 그런 소극적인 인간이 되고 말았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과정으로 위축되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 의사들은 솔직하게 의견개진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의사로 일하는 순간이면 언제라도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가 책임질말만 하는게 낫다, 윗사람이 시키면 그 진위를 따져 의견을 내는 것 보다는 일단 시키는대로 하는게 낫다, 그것이 학문적인 것이든 일상적인 것이든 말이죠. 그저 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이런 대답이 윗사람의 심중을 건드리지 않는 좋은 대답인 거에요.

 

그래서 라는 질문을 잃어버리게 되었죠.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몇몇 동기들과 뒷담화를 하는 것으로 내 의견을 분출하는 것으로 끝내고 말죠.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들도 마찬가지더라구요.

간호사들은 간호사들 내부에서의 업무도 있지만 대부분은 의사들과 일하고 환자 상황에 대해 의사들에게 보고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노티하면서 환자 업무를 실행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환자 진료와 관련된 의견을 개진해도 의사들이 이를 고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간호사를 대놓고 무시하는 일도 자주 있고 어디 간호사가 이런 일까지 나서느냐는 무안을 당하는 등 수없는 경험을 통해 의사들에 대한 불신이 매우 커져 있습니다. 이는 어느 한 병원의 상황이라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우리 주변의 문화가 그런 경향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롭지 않은 의사소통구조는

아무리 제도적으로 혁신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되어도

인력이 지원되고

돈이 투자되어도

결론적으로 일을 성공하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의사소통은 단지 말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K 당신이 하는 일에 도움을 못 드려 죄송하다는 변명을 하는 와중에 너무 멀리 돌아왔습니다. 내가 왜 당신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을까 생각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다 변명이지만, 그 이유와 과정을 고민하는 것이 저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하는 일이 성공하려면

당신이 우리 조직 내부의 사람이었다면,

나 또한 우리 병원 조직의 중심적인 위치에서 일하는 명망있는 사람이었다면,

너무 많은 외래와 환자에 치여 늘 시간을 허덕이며 써야 하는 주니어 스탶이 아니었다면,

나와 함께 일하는 펠로우라도 한명 있었다면,

제가 이렇게까지 무관심하게 굴지는 않았을텐데 라고 변명해 봅니다

 

그러니 좀더 명망있고 시간을 낼 수 있는 높은 선생님을 설득해서 다시 시작해 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분명히 호의적으로 참여해주실 선생님들이 계실 겁니다. 세상에 어떤 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철학이 중요하겠지만 사람과 자원을 잘 배분하고 운영하는 정치적 역량도 매우 중요한 성공의 열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마음에 회의적으로 남아있는 주제입니다.

우리가 환자의 눈 높이에서 환자 경험을 중심으로 병원의 문화를 재구성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파이팅을 빌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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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ngrehab 2013.12.14 22:33 신고

    교수님 글에 환자만 위로받는 것이 아니라 저희들도 위로를 받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교수님...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2.16 02:54 신고

      저희가 누구일까요 ㅎㅎ
      여하간 위로가 되신다니 다행이에요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죠.
      때론 나도 누군가의 위로가 될 수있고...
      때론 누군가가 나의 위로가 될 수 있고...

  • 달콤한 우주 2014.01.12 16:09 신고

    안녕하세요~ (^^)* 선생님
    병원휴게소에 앉아 잠시 정신 충전(?)하고 있다가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왔어요.

    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프로젝트 수업이나 디베이트 수업을 진행하면서
    에세이나 저널이나 다양한 장르에 대한 경험이
    개인적 실력을 높이는데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 팀이나 그룹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은
    소통과 분배에 대한 힘조절이 꼭 필요한 요소임을
    아이들이 깨닫게 되길 바라게 됩니다.
    하나의 배움을 통해 다양한 것에 유능해질 수 있기를...

    선생님의 글을 읽다가 생각나는 에피소드 하나....
    층간소음으로 윗층 아래층 이웃이 오랜기간 미워하고 신고하고 다투기를 여러번,
    중재를 나서면서
    층간 소음을 없애는건 불가능한거고 관계와 이해를 통한 대화와 소통을 시도했더니
    여전히 층간소음은 있지만 이젠 그 소리가 거슬리지 않는다는 결론..ㅎ

    저 또한 말이 두서없지만
    공감하며 이제 정신이 충전 되가는 기분이네요.

    참... 제가 있는 이 병원에선 '네비게이션'이란 표현을 쓰는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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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했지만...

 

2000년 의과대학에 편입했을 때

나는 나의 존재 조건 자체로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동기들보다 7-8년 나이가 많은 것, 이미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아줌마 의대생이라는 것, 사회학을 공부하고 의대에 편입했다는 것 자체가, 대부분 동질적인 속성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의대생 사회에서 매우 이질적인 조건이었다. 강의실에서 수업만 들으면 되었던 의대생 시절보다는 인턴, 레지던트로 일하던 전공의 시절에 나를 규정하는 좀 더 강력한 딱지가 되었다. 나는 그 딱지를 떼어버리기 위해 아주 많이 노력해야 했다. 의대 입학 당시, 나는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온 상태라 내 주위의 일상적인 것, 많은 것들을 분석적으로 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사회과학에서는 그러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대학원생인 나에게 생명력과 같은 자격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을 견지하는 것은 의대생이 된 후 일상을 유지하기에 참으로 불편한 것이기도 하고 의대 공부에도 도움이 안되었다.


의학/의료는 사회과학적 지식체계와는 언어도 다르고 시스템도 달랐다. 무엇보다 경각을 다투는 환자의 목숨을 다루는 순간에 나는 나의 지식과 실력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어야 했다. 환자를 살리지 못한다면 최소한 해를 주면 안되었다. 나는 최소한 평균적인 의사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평균적인 의사가 되기도 힘들었다. 또한 내가 의사 사회의 질서에 잘 적응하고 동료들과 팀원이 되어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튀지 않기 위해, 의사사회의 평균을 따라가기 위해, 의사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멤버가 되기 위해 애를 썼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좋은 의사가 될 수 없었다. 동료들과 협력하고 조화롭게 일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였다. 


그런 시간이 흘러 나는 이제 더 이상 사회학을 공부한 사회과학자가 아니라 평균적인 의사가 되었다. 그만큼의 몫을 해내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는 도전과 혁신보다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나을 때가 더 많았다. 나는 그러한 전체적인 틀을 수용하였고 이에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의사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내가 일하는 의료 현장에서 뭔가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개선하기 위해 시스템의 힘을 이용하거나 사람들과 토론하면서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그렇게 목소리를 내는 순간, 나는 튀지 않기 위해 지난 십수년간 노력했던 나의 실천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요구되는 미덕은 정해져 있었다. 환자도 많이, 잘 보고, 학생이나 인턴, 레지던트 교육도 잘 하고, 논문도 잘 쓰는 것이 대학병원의사로 생존하기 위한 최소 자격 조건이었다. 이런 요구사항들을 잘 이행했는지 눈으로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지표들도 있었지만 진료건수, 진료수익률, 유명 저널에 게재한 논문수 등- 직접적으로 그 성과들을 확인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 환자들에게 잘 했는지, 학생이나 전공의들을 잘 교육했는지-. 


나는 그런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업이었다. 시스템이나 제도개선 등의 문제는 나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제기하여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무관하게 나만의 해법으로 시작한 일이 블로그였다. 

내 환자들을 위해 블로그를 만들고 오로지 그들에게 최대한 적절한 정보를 주고 언제든 당신 주치의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짧은 진료시간에 못다한 질문과 이야기들이 소통되는 공간을 준비하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고 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었지만 나는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매일 글을 올리고 환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면서 새로운 힘과 의욕을 얻었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나는 블로그에 접속했고 환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오늘 하루 내가 환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다. 의사로서 사는 매 순간은 환자로부터 뭔가를 배우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쓰며 그런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개인적인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블로그도 다른 의사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는 계기가 되었다. 의사들끼리나 해야할 법한 병원 내부의 이야기가 밖으로 나가는 계기가 된다고, 나 혼자 치기어린 영웅적 무용담을 늘어놓는 공간에 불과하다고 그런 글을 쓸 시간이 있으면 논문 하나라도 더 쓰라고그런 평가를 들으면서도 그런 지적이 내 의도와 실체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블로그에 글쓰기를 계속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행위는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상 뭔가 새로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더 이상 나의 에너지를 분산시킬 수 없었다. 정규직 교원으로 발령받기 위해서는 2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계약기간 내에 나에게 요구되는 사항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 외의 것들에는 시선을 돌릴 여지가 없었다. 일단 가시적으로 눈으로 보이는 지표들부터 완성시켜야 했다. 최소한은 만족시킬 수 있었지만 최고가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다 균형적으로 잘 하지는 못한 것 같다.  

 

내 이름으로 외래를 개설하고 입원환자를 진료했던 지난 3년간 나는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만큼만 최선을 다했다.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고 나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사회의 의료시스템과 우리 병원 조직의 문화, 우리가 가진 한계점 등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문제제기를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조화롭게 풀어나가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은 내 능력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고, 시스템과 잘 연결되지 못한 개인이 갖는 한계이기도 하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이 내 환자를 위한 최선의 방편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환자를 위해서는 성의있는 한 명의 의사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안전한 병원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환자를 위해 했던 최선은 사실 최고가 아니었고 최고가 될 수도 없었다. 여전히 의사는 지식과 실력의 면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하는 존재지만 그것만으로 환자에게 최고의 의료 질 높은 의료 그리고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학회 기간 동안 읽기 시작한 책, ‘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는 나의 지난 3년 시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나는 밤잠을 줄여가며 환자 진료를 준비했고 나의 환자를 같이 진료해 주시는 협진 파트 선생님들께 부지런히 메일로 환자의 상황에 대해 논의하였고, 외래 전날밤 의무기록을 다 작성하였고 처방도 미리 내 놓았다. 부족한 진료시간의 한계를 메우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야 겨우 환자와 눈 한번 맞출 수 있었다. 그런 준비가 소홀했던 날은 환자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진료했다. 수십줄에 달하는 항암제 처방을 내느라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손발이 다 벗겨지고 진물러서 항암제를 못 먹겠다는 환자의 양말을 벗겨볼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다. 항문이 찢어진 것 같다는 환자의 엉덩이를 제대로 관찰할 시간도 없었다. 하루 종일 외래보고 밤이면 그날 외래에서 작성했던 의무기록을 보완하고 그리고 나면 다음날 외래를 준비하고, 그렇게 다람쥐가 제자리에서 챗바퀴를 돌리듯 3년을 살았다. 주말이면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논문을 썼고, 열심히 전공의 교육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나의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의사로서 내 문제의식 자체가 둔해진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여전히 의사인 나와 환자들 둘러싼 현실에 대해 민감한 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문제라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 직접적인 매스를 들이밀지 않았고 (혹은 들이밀지 못했고), 조직으로부터 그만큼의 일을 할만한 사람이라는 신뢰를 얻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병원이라는 존스 홉킨즈조차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의 다양한 결함과 실수가 반복되는 조직이었다. 마취과 전문의이자 중환자실 담당 의사인 저자 피터 프로노보스트가 어떻게 이러한 문제와 한계를 극복해 가는가를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 시사점이 많다.

 

나는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최고가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최고 운운하기 전에 크고 작은 결함과 실책이 훨씬 많은 사람이다. 나의 환자들은 아마도 그런 나의 한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나의 잘못된 처방 때문에 약국에서 다시 나에게 전화를 해야만 했고 수첩에 자기가 먹는 약의 종류와 남은 양을 적어와서 보여주면서 처방을 확인했다. 그래도 그들은 나를 비난하기 보다는 이해해 줄려고 노력했다.

래서 나는 환자들의 말을 경청한다. 내가 친절한 의사라거나 환자를 존중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의사인 내가 미쳐 인지하지 못한 위험과 한계를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간호사가 메워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환자들은 그런 나를 잘 알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 자신의 마음에 생기는 새로운 변화와 느낌을 잘 말해주기도 한다. 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CT에서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변화를 유추할 수 있었고, 내가 저지를뻔 했던 실수를 미리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론 실수를 했다. 나는 환자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그 모든 것들은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배운 것들이다.

 


당분간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지난 3년간은 항상 내 눈 앞에 환자가 있었다.

나는 환자를 보는 것만으로 지치고 힘들었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생활이 내 존재의 의미가 아니었나 싶다. 


잠시 눈을 감고

의사로서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려본다.

눈을 감아도 습관처럼 환자가 눈에 밟히겠지만 

애써 잊어본다.

내가 아직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그동안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최소한 이만큼의 고민을 해야 

비로소 내가 성숙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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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ㅅㅇ 2013.12.12 09:55 신고

    전에 의대생이였던 시절의 고민들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있네요. 감동있어요.
    응원합니다!

  • Smith Y 2013.12.12 10:11 신고

    선생님과 같은 고민을 많이 하는 의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공감이 됩니다.

  • 처음처럼 2013.12.12 15:24 신고

    힘내세요 선생님처럼 묵묵히 최선을 다하시는분이 계시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블로그통해 원격힐링 받는 1인이 처음으로 응원댓글남깁니다^^

  • 환자가족 2013.12.12 18:06 신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나는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가끔 선생님의 블로그를 드나들며 읽으며
    선생님이 내 아내의 주치의라는 것에 누구에게인지 모르게 감사한적이 많습니다.
    2년 반 동안 늘 걱정만 하며 살았지만, 이제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계속 환자들 곁에 있어 주십시오.
    건강하십시오 ...

  • 김수현 2013.12.13 02:00 신고

    4년전, 선생님께서 S의료원에 계실때 환자로 만났었지요.
    그때 선생님이 보여준 환자들에 대한 깊은 마음들을 지금도 잊지못합니다.
    그 감사함이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하여 선생님의 블로그를 찾게도 했습니다.
    선생님의 환자들중 많은 분들이 '선생님을 만난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느끼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와 또 그 당시에 선생님의 환자였던 이들이 그렇듯이요...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 마음에 묻어두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응원하는 마음으로 선생님을 위해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건승하시고 평안하세요.

  • 곁을 지나다 2013.12.13 14:30 신고

    폐북을 타고 들어와 몇 개의 글을 보고 막연하게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합니다. 나의 후배들 중 몇몇이 의사인데 선생님과 같은 길을 걷기 바라는 마음 가득합니다. 언제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 김현주 2013.12.13 18:32 신고

    선생님께 치료받지는 않았지만
    글로써 치유받는 느낌이었어요
    글 읽으면서두
    염려를 내려놓게되구
    걱정을 멀리하게되는 희망적인 시간들이예요
    늘 기도하는 맘으루 응원합니다
    보람있는 날들이 많기를 원합니다

  • 2013.12.14 03:59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2.14 10:16 신고

      저도 걱정이 많이 됩니다.
      내성이 생긴거 맞아요.
      일단 치료의 작용기전이 다른 방사선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봅시다.
      방사선은 그 자체 효과는 좋지만
      방사선이 미치지 않는 부위는 치료가 안되는 셈이니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더 나빠질 수도 있어요.
      일단 치료를 시작하시구요
      방사선 치료받다가 몸이 많이 힘들면 연락하세요
      제가 월수금 외래니까 화목 사이에 따로 봅시다 댓글 남기면 제가 연락드릴께요

  • 덕순씨 딸 2013.12.14 14:24 신고

    엄마 호스피스 있는 인천성모 알아보고 왔어요
    그곳 선생님께서 이수현선생님 이름을 반가워하며 좋
    은 샘이라 하셨어요 다 선생님의 발자국이





    아름답다웠기에 듣는 말이겠죠 엄마도 선생님이 식구같다고 하셨어요 의료현실 제반에 대한 고민도 풀어질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어차피 선생님 혼자 하실 일이 아니니 너무 무거워하지 마시고 오늘을 사세요 선생님 화ㄴ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잖아요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라고 하셨잖아요^^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2.15 02:35 신고

      다행히 뇌전이는 아니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간기능이 많이 떨어지셨나 봅니다.
      같은 진통제라도 양이 많게 느껴지셨나 봐요.
      인천성모병원 좋습니다. 거기 호스피스 선생님들 좋으세요.
      긴 병 마지막 길에 편안하신 분 별로 많지 않지만 어머님도 많이 힘드셨습니다. 제가 편히 해드리지 못해 죄송할 뿐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곳에 방문하셔서 늘 저를 격려해주시는 말씀을 해주시니 감사드릴뿐입니다. 제가 환자들에게 드리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았음을 깨닫습니다.

  • 준비생 2014.05.07 02:25 신고

    현재 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으로,
    청년의사 사이트에 게시하신 글을 접하고 이 블로그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마음을 울리는 글을 접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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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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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나는 피곤에 찌든 얼굴을 하고 사나보다.

외래를 보러 온 환자들이 진료가 끝나면 

병원 내 커피집에 가서 커피를 사서 외래방에 넣어주고 간다.

커피를 선물한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고 가시는 경우도 많다.  

아마도 내 몰골이 너무 피곤해 보이니 

이거 마시고 정신 차리라는 뜻 혹은 졸지 말라고. 


나이 사십이 넘으면 그 사람 인생이 얼굴에 반영된다고 했다.

그래서 사십이 넘으면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있다.

진실된 마음이 중요하지 외모가, 얼굴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들 하지만

첫인상, 관상이라는 것도 중요하다.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떤 방식으로 사는지, 어떤 철학으로 삶을 꾸려가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상의 습속(habitus)들이 얼굴에, 외모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가 비록 멋드러진 화장술 (내지는 변장술)을 뽐내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비비크림을 발라 다크 써클을 숨기고

립그로스를 발라 창백한 입술을 숨기는게 필요하다.

그것이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예의일 것이다.


그러나 

파렴치한 나는

365일 (곱지 않은) 쌩얼로

후줄그레한 외모로 

바쁜 일과를 핑게대며 창백한 유령처럼 병원을 떠돈다.

환자가 보기에도

그런 의사,

별로일 것 같다.


아무리 진심으로 정성껏 환자를 진료하고

엄청난 실력이 있다 해도

가운을 입은 상태에서 의사로 일하는 순간에는 

어느 정도 갖추어진 옷맵시와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학생실습 때부터 수많은 규제와 규율, 잔소리들이 따라다니는 것 같다. 




환자도 마찬가지다.

단정한 옷 매무새. 연한 화장으로 메이크업 하고 외래에 오시는 분. 

힘들고 고단한 항암치료 기간이지만 자기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치료기간 중 진짜 낯빛이 어떤지 보는 것이 필요하니 화장하지 말고 외래에 오라는 선생님들도 계시지만)

난 그렇게 자신을 꾸미고 단장하고 오는 환자들이 좋다.

마음의 강인함이 느껴진다. 


어머, 오늘 어쩜 이리 고우세요?


좀 찍어 발랐어요. 호호


조금만 치장해도 분위기가 완전 달라지는군요.

역시 여자는 좀 꾸며야 하나봐요. 호호


제가 병원 올 때 얼마나 신경쓰는데요?

선생님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요.


호호. 제가 남자도 아닌데 뭐 그리 신경을? 


남자보다 선생님이 더 좋아요. 



환자들과 닭살 멘트가 오간다. 

짧은 순간이지만

살갑다.





나보다 젊은 그녀.

일반외래에서 만났다.

폐암을 진단받고 첫 항암치료 후 내원하셨다. 

처음부터 뇌전이가 동반되어 감마나이프 시술도 받으셨다. 

내일 모레 신경외과 진료가 있는데, 감마나이프 시술을 하고 먹었던 항전간제가 떨어졌다며 약을 타러 토요일 외래에 오셨다. 이틀 후면 신경외과에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데 굳이 이틀치 약을...

뇌 MRI 에서 보니 병변도 아주 작아 감마나이프 합병증은 없을 것 같고, 이틀 정도 항전간제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별일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의사인 나는 그렇게 판단하지만, 이제 막 치료를 시작한 그녀의 입장에서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녀의 긴장이 느껴진다. 



토요일 외래라 외래 시간 운영에 여유가 있어 보였는지

처음 본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도 되겠냐고 묻는다. 


제가 4기인가요?



뇌전이가 있어서 4기 인가요? 

4기면 심각한거 아닌가요?  


네. 

뇌 말고도 뼈에도 병이 있어요.

원래 암이 생긴 장기 이외의 다른 장기에서 병이 발견되며 전이가 된 것이고 그래서 4기가 되는 것이죠. 


그럼 제가 말기 암환자란 뜻인가요?


4기가 말기라는 뜻은 아니에요.

말기는 더 이상 치료적인 접근이 힘들 때, 

예를 들면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 등으로 병을 좋아지게 하기 위한 대안이 더 이상 없을 때 통상적으로 말기라고 합니다. 환자분은 비록 4기로 진단받으셨지만 아직 컨디션이 좋고 이제 막 치료를 시작한 상태이니 말기라고 볼 수는 없는거 같아요. 


믿을 수가 없군요. 

저는 아무 증상도 없은데 4기 암환자라니. 

좋아질 수는 있는건가요?

항암제가 효과는 있나요?

제가 좋아질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


...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제 막 시작한 항암치료가 환자분께 어떤 효과를 낼지 아직은 판단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일단 항암제 독성이 별로 심하게 나타나지 않은게 다행인거 같습니다. 

비록 4기라 하더라도 일상생활을 잘 하실 수 있는 만큼 컨디션이 좋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거 같아요.

우리 환자분은 잘 견디고 이겨내실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얼굴에서 빛이 나는거 같아요.

원래 피부가 좋으신가요? 

어쩜 항암치료를 했는데도 이리 피부가 좋고 얼굴에 생기가 있나요? 


오늘 쌩얼이에요.


비로소 그녀가 씩 웃는다. 


빛이 나는 얼굴이니

그만큼 결과가 좋을거 같아요.

사람은 통계로 사는게 아니라 자기 생명력으로 사는 거랍니다. 


울먹거리는 그녀. 


선생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치료할께요.



화장술로 감출 수 없는 혹은 화장한 얼굴보다 훨씬 아름다운,

빛이 나는 얼굴이 되도록 

나도 노력하자. 

빛이 나는 얼굴은

마음 내면으로부터

삶의 철학에서부터 우러러 나올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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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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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입원환자 회진은 오전 일찍 끝내야 한다.
회진을 돌고 치료 방침을 결정해야  
전공의가 내 지시대로 처방도 내고
검사 결과도 확인하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푸쉬도 하고 - 회진 정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무수히 고민하고 제도개선을 요구했던 시절도 있었다. 많이 좋아진 부분도 있고, 여전히 구래를 답습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여하간 전공의는 회진 정리를 하고 오전에 바쁘게 뛰어다니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시스템에서라도. - 
여기 저기 병동에서 날라오는 병동 콜도 해결하고
예상치 못하게 상태가 나빠진 환자에게 달려가 봐야 하고
그 와중에 밥도 좀 먹고
당직서느라 못잔 잠을 의자에 앉은 채라도 선잠으로 보충을 해야 한다.
그렇게 전공의가 일을 하려면
내가 일찍 회진을 돌고 정리를 해줘야 한다.


한창 에너지가 넘칠 때는 잽싸게 회진을 돌고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회진을 빨리 돌아야 나도 내 시간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요즘은 그렇게 못한다.
그렇게 애를 쓰려면 힘이 딸린다.
솔직히 그럴 의욕도 없어지는거 같다.
많이 무기력해졌다.


아침에 간단한 회의가 있었다.
예전 같으면 회의 전에 회진을 일부 돌고 회의에 갔다가 또 나머지 회진을 돌고
눈썹 휘날리게 달리며 오전 회진을 돈 다음
외래 진료를 시작한다.


그런데 오늘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몸이 너무 힘들었다. 
회의 시간을 맞춰서 가기에 빠듯했다.
회의에 가서 겨우 얼굴만 내밀고 비실비실, 외래로 가서 좀 쉬다가 
오전 외래 진료를 시작했다.
입원 환자 회진을 못 돌고 하루를 시작한다.


외래를 보고 있는데
전공의가 계속 문자를 보낸다.
회진을 같이 돌지 않아서 결정이 안된 사항에 대해 묻는다.
미안했다.


외래보고, 회의하고, 미팅하고, 임상연구 audit도 받고, 보호자 면담도 하고...
내 자리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여기 저기 계속 바쁘게 돌아다닌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도저히 가운만 입고 못 다니겠다.
가운 안에 두꺼운 털조끼를 껴입고 목도리도 두르고 병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오래된 병원이라 조각조각 건물이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바깥 바람을 자꾸 쏘이게 된다. 
날이 추우니 몸이 계속 긴장상태이다. 에너지 소모율이 높은 것 같다.
그렇게 저녁 7시가 넘으니 너무 피곤하고 의욕도 없고 힘들다.


꾸역꾸역 혼자 밥을 먹고 저녁 회진을 간다. 밥이라도 먹고 가야할 것 같다. 너무 의욕이 없으니 밥심으로라도 회진을 돌아야 한다. 그 시간에 전공의를 부를 수는 없다. 그냥 혼자 돌기로 했다.



가장 상태가 나쁜 환자한테 제일 먼저 간다.
상태가 좋지 않은 어머니를 만나러 미국에서 딸이 왔다. 나와는 메일, 전화로 몇번 통화만 하던 중 나는 이제 시간이 얼마 없는거 같다고, 하루라도 빨리 와서 엄마를 보라고 독촉했다. 원래는 미국에서 사는 딸에게 가서 치료를 받기로 했지만, 그럴만한 컨디션이 되지 못하고 결국 우리 병원 응급실로 다시 돌아왔다. 그 딸에게 그동안 찍은 엄마의 사진을 보여주고 상태를 설명한다.
딸은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그냥 고통없이 주무실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소리내어 울지 못하고 꺽꺽 거린다.
그녀는 아픈 엄마에게 멀리 떨어져 있어 미안한 마음 뿐이다.



죽을 각오를 하고 항암치료를 시작한 K.
나이도 어린데, 그동안 아주 꿋꿋하게 잘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 병 상태는 아주 좋지 않다. 
2주 전, 나는  K에게 직접 말했다. 지금 못 먹고 아프고 힘들지만 지금 항암치료를 시도해 보지 않으면 좋아질 기회는 영영 없을 것 같다고, 치료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무너질 수는 없지 않겠냐고, 그런데 항암치료를 하면 지금보다 더 아프고 힘들고, 사실 죽을 수도 있다고, 그래도 해보겠냐고 직접적으로 K에게 물었다. 엄마는 차마 그 얘기를 직접 할 수 없으니 내가 직접 딸에게 얘기해 달라고 했다. 

K는 항암 치료를 하겠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엊그제 2번째 항암제를 맞았다.
항암치료를 시작한 이후로 통증도 심하고 잠도 잘 못자고 너무 힘들어 한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 봐도 통증 조절이 안된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 가보니 그렇게 퉁퉁 부어있던 양 다리와 배의 붓기가 많이 빠졌다. 항암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 같다. 나는 너무 기뻤다. 종아리가 말랑말랑 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K는 날 보자마자 울기 시작한다.
선생님 너무 보고 싶었다고, 왜 지금 왔냐고, 큰 소리로 엉엉 운다.
그동안 힘든 걸 참느라 너무 지쳤나 보다. 내 손을 잡고 놓지 않는다. 너무 미안했다.
같이 기도도 하고, 항암제 쓰고 좋아진거 같다고 격려도 해 주었다. 
통증 조절이 안되서 오늘은 수면제 맞고 자기로 했다. 
입원한지 50일이 넘었다. 그동안 그녀는 물 한모금을 못 넘기고 있었다. 
그래도 그동안 한번도 울지 않았는데 오늘 눈물을 터뜨린다. 많이 힘든거 같다.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며 큰 소리로 엉엉 운다. 아침 저녁으로 꼭 회진을 가기로 약속했다.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그녀에게 꼭 나아서 내 손톱에 네일 아트 해달라고 했다. 천주교 신자인 그녀를 위해 내 책상에 놓인 성모상을 가져다 줘야겠다. 

 
중환 몇명을 먼저 만나고 시름에 잠긴 보호자들에게 지금의 환자 상태를 설명한다. 
오늘 저녁 회진은 
이번에 퇴원 못하고 환자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그런 나쁜 말들을 주로 하는 날인거 같다.  




아침에 부지런히 회진을 못 돌고
저녁밥 먹고 뒤늦게 회진을 도는 오늘의 나.
사실 빵점이다.


그런데도 환자들은 이렇게 늦은 시간에 자기를 보러 와줬다는 사실에 연신 고맙다고 말한다.
왜 아침에 안 오고 이제 왔냐고 속으로 욕을 할지언정 겉으로는 고맙다고 한다. 
참으로 민망스러운 인사이다. 



그런데 
밤에 회진을 돌아보면 
분위기도 덜 어수선하고
환자나 보호자와 나누는 이야기도 더 진솔해 지는거 같다.  
이런 시간을 한번 갖고 나면 
의사와 환자 관계의 밀도도 높아지고 서로에게 깊은 믿음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컨디션이 왠만하면 입원장을 잘 안주는 편이라 
내 환자가 입원을 한다는 것 자체가 
환자의 현재 상태가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더 많은 관심과 집중적인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회진을 아침 저녁으로 돌면
내가 소진된다.
가능하면 나의 에너지를 아끼고 오래 버틸 수 있도록 나를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
환자에게 나의 에너지를 다 써버리면
나에게 요구되는 또 다른 병원 내에서의 역할을 다 수행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힘을 안배하고 에너지를 잘 분산시켜서 일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환자는
정성스러운 말 한마디를 할 줄 아는, 손 한번 잡고 위로해 줄 있는, 진심을 담은 눈길 한번을 더 주는,
그런 착한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오랫만에 착한 의사 코스프레를 한번 해 봤다.
가끔은 이런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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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가족끼리도

멀리서 보면 다정하게 대화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그들의 이야기는 대화가 아니라 서로 자기 얘기만 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나대로 내 이야기를 쏟아 놓고

상대방은 상대방 대로 자기 이야기를 쏟아 놓고 있다.

사실 각자 독백을 하는 건데 같은 공간에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게 대화냐, 독백이냐?


그렇게 말하고 웃는다.

그렇게 웃을 관계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진심을 다한 대화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이성적 준거에 의한 의사소통을 잘 하는 일 조차 생각보다 쉽지 않다.

대화는 어쩌면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은 적이 있는 환자들은 우리 병원에 올 때

그 병원에서 치료받은 의무기록과 검사결과들을 가지고 온다.

모든 기록을 다 떼어 와도

그 당시 의사는 내심 어떤 판단 기준에 의해 그런 치료적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쉽게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기회가 닿으면 그 선생님에게 연락을 하여 당시 정황을 묻고 지금의 상황에 대한 해석을 들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아, 그저 짐작을 하게 된다. 아마도 이러이러한 근거하에 이러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 같다 그렇게 말이다.


또는 그 병원에서 제시하는 치료를 받지 않고 우리병원에 오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치료를 받지 않고 한참 있다가 오는 바람에 지금의 나로서는 적절한 대안을 내기 어려운 상황으로 오는 경우도 있다. 



유방암 수술 후 3기말로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도 하고 방사선치료도 하고 호르몬치료도 받아야 했던 환자다.

그런데 아무것도 받지 않고 2년 가까이 지내다가 

갑자기 목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고 목이 잘 움직이지 않는 증상으로 우리병원에 왔다. 

환자는 목에 임시 기브스를 한 채 외래로 걸어왔지만

나는 한 눈에 이것은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서둘러 당일 신경외과 외래를 접수하여 환자를 글로 보냈다. 

그리고 환자는 신경외과에서 당장 입원하여 수술을 받았다. 

큰 일 날뻔 했다. 


수술 후 환자를 다시 만났다.

통증도 없고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움직일 수도 있게 되었다. 

급한대로 호르몬치료부터 시작했는데, 약 먹은지 2주도 안되었는데 호르몬치료에 의한 폐경증상으로 환자가 밤에 잠을 잘 못자고 훅 달아오르는 느낌때문에 불편해 하기 시작한다. 약에 매우 민감한 스타일이구나...


근데요

왜 그때 수술받고 나서 항암치료도 안 받고 아무것도 안 하셨나요?


선생님이 치료 과정에 대해 너무 무섭게 말씀하셔서요.


원래 의사들이 그래요.

긍정적인 면만 말할 수는 없잖아요.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합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좋은 얘기만 할 수는 없답니다.


그래도 저는 그 설명을 듣고는 도저히 치료를 받겠다고 말할 수가 없었어요.


치료 안하겠다고 하니까 그 선생님이 뭐라고 하던가요?


호르몬 치료라도 하라고 했어요.


근데 왜 안하셨어요?


그냥 다 무서워서요. 

호르몬 치료도 나름 부작용이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원래 모든 약에 민감한 편이고 부작용도 많이 나타나는 편이라 왠만하면 약을 안 먹고 견디는 편이거든요. 


그렇지만

그때 뭐가 되었든 치료를 했으면 이번처럼 심각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그러게요. 

그때 선생님하고 좀 더 얘기를 해 볼걸 그랬나봐요.



환자가 특별히 고집스럽거나 자기 주장이 강한 스타일은 아닌것 같다. 

겁이 좀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성격이 좀 예민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다지 특별한 캐릭터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도 담당 선생님이랑 충분히 얘기가 잘 안되었나 보다. 3기 말이면 상당히 재발의 위험율이 높은 그룹이기 때문에 왠만한 의사라면 환자가 원하는대로 놔 두지는 않을텐데...



환자들은 

심리적으로 한번 위축되면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원하지 않는 정보는 잊어버리는 것 같다. 

의사로서 해야 하는 모든 설명을 다 해 주어도

나중에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이기도 하다.

우리처럼 대화 시간이 부족하고 진료의 많은 시간이 의사의 일방적인 독백 구조로 채워지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내 환자 중에도 수많은 환자들이

나의 윽박지르는 듯한, 강요하는 듯한 설명에 질려서

다른 전문가의 의견과 설명을 듣고자 나를 떠나고 있을 것이다.

지정된 외래에 환자가 오지 않으면 외래 간호사 선생님을 통해 몇번 연락을 해 보게 하지만

일정 시간이 흐르면 차츰 잊혀진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환자를 만났을 때는

치료를 받지 않고 나름으로 건강추구행위를 하다가 많이 나빠지고 아파서 오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된다.


그때 왜 안 오셨어요?


너무 무서워서요.


저한테 그런 심정을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선생님 너무 바빠 보여서 더 설명을 요구하기가 어려웠어요.

열심히 설명하신거 같은데 제가 더 말하면 무례한것 같기도 하고 

선생님이 내 입장을 고려해 줄 것 같지도 않고 그랬어요. 


...


일차적으로는 시간이 문제다.


생전 처음 항암치료라는 것을 받아야 한다는데

내 병이

내 운명이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도대체 항암제라는 걸 맞으면 어떻게 되는건지

항암치료를 받으면 완치가 되는건지

항암치료를 받으면 일상 생활은 할 수 있는 건지

우리 가족은 누가 돌봐줄 수 있을지

돈은 얼마나 들지

당장 내일 아침 밥상은 나 대신 누가 차려줄지 


나를 처음 만난 환자들은 항암치료를 앞두고 불안감이 크지 않을 수 없다. 

치료 자체, 그리고 더불어 나의 미래. 


그런데 내가 그들에게 할애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그들에게 내 설명은 너무나 축약적이고 어렵고 공감하기 어렵다. 



그런데 만약 시간이 더 많이 주어지면

잘 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 재진 암환자를 진료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5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던대로 15분 진료를 하는 그룹과 진료 시작 앞뒤로 20초씩 환자의 마음에 공감을 보이는 표현을 하도록 진료하는 그룹을 비교하여 환자의 만족도와 치료 순응도를 조사했더니 후자 그룹에서 월등히 만족도도 놓고 의사의 처방과 진료에 대한 순응도도 높게 보고 되었다고 한다. 

환자의 마음을 움직이는데는 40초의 시간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내 외래는 3분 진료라고 비아냥 대지만

사실 3분 혹은 5분만으로 진료가 끝나는 환자들은 별로 없다. 현재 병이 잘 조절되고 있고 증상이 없어서 자기 일상생활을 잘 하고 있는 일부의 환자들이 그렇게 짧은 시간으로 진료가 가능하다. (그리고 그들과 그렇게 짧은 진료만으로도 문제가 안되는 것은 이미 그 전에 오랜 시간동안 같이 고생한 과거의 경험, 그리고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미 지지고 볶고 다 해서 서로 알 걸 다 알기 때문이다.) 


그런 안정적인 환자들 일부를 제외하고는 환자의 생활사 전반까지, 마음까지 다 묻는 외국 진료현실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사실 5분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10분에 3명이 예약되어 있는 내 외래는 늘 지연되기 마련이다. 아예 예약을 10분에 2명이상 되지 않도록 강제지정하면 오전 진료는 2시가 넘어서, 오후 진료는 6시가 넘어서 끝날 것이다. (나는 오전 진료는 아무리 늦어도 9시에, 오후 진료는 1시에 시작한다.) 

 

최대한 노력한다.


제 설명이 이해되시나요?

더 궁금한 것은 없으신가요?

마음에 꺼림찍한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많이 힘드시죠?


그렇게 질문을 던지고 환자가 답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단 40초만이라도.



그래서

진료실 말잔치가 

공허한 나의 독백이 아니라

힘든 시간을 함께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우리의 대화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 김현주 2013.11.21 21:53 신고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거 정말 이해되요
    정말 맞아요 ㅎ
    무섭구 두려울땐 더욱 ~~

    독백이 아닌 우리의 대화를 고려해주시는 교수님이 감사하네요 ㅎ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1.22 06:43 신고

      그건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인거 같아요.
      환자라서 더 취약한 측면이 있는 거구요.
      저도 의사로서 그런 환자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처지라
      늘 반성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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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의료행위는

급여가 되는 항목과

비급여가 되는 항목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게 정해져 있는 항목 이외의 어떤 처방이나 의료행위는 다 불법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환자가 심평원에 민원을 제출할 경우 해당 진료비를 환자에게 모두 다 환급해 주어야 합니다. 

사안에 따라 벌금을 내는 경우도 있는것 같습니다.

그런 항목을 '임의비급여'라고 합니다. 

그래서 절대 임의비급여로 치료하거나 약을 쓰거나 검사하면 안됩니다.

그건 불법이 되는 셈이니까요. 

(대표적인 사건으로 소아 백혈병 치료 중 사용한 백혈구 생성 촉진제를 임의비급여로 과다하게 사용했다며 민원을 제기한 서울성모병원 사건입니다. 그 사건을 보며 비슷한 환자군을 진료하는 의사로서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절대 소신대로 진료하지 말고 법대로 진료해야 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런데도 전 가끔 불법을 합니다.

환자들이 민원을 제기하거나 소송하면 100% 다 제 책임입니다. 

그래서 덜덜 떨면서 불법행위를 합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약을 썼는데 성적이 좋지 않아 환자가 나를 고소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공포심을 느끼면서도 

가끔 불법을 합니다.

제가 불법 행위를 하면 불법 처방이 병원에 보고가 됩니다.

이제 절대 안하려구요. 


다행히 의료행위가 아닌 것은 괜찮습니다.


전 가끔 비의료행위에 관해 환자들에게 소개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소심하게도 저에게는 단돈 10원 한장 들어오는게 없다는 걸 먼저 밝히면서요


예를 들면


항암치료 중에 손발톱이 찌글찌글 해지는 경우가 흔한데요

그런 증상을 예방하거나 완화시키는 매니큐어나 보호제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특정 회사에서 개발된 거라 공공연하게 밝히기는 그렇네요)  

예방용으로는 한달에 한병, 치료용으로는 한달에 2병정도 쓰게 되는 이 매니큐어는 

본인도 의사이면서 항암치료 중인 제 친구가 자기가 발라보니 영 손톱이 멀쩡하다며 환자들에게 알려주면 좋을거 같다고 소개해 준 것입니다. 

의약품이 아닌 것으로 분류가 되어 있어 병원 처방이 안되고 우리병원 의료기 상사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격도 매우 비쌉니다. 한병에 56000원 정도 하는거 같습니다. 보험이 안되니까 비쌉니다. 비싼 걸 소개하려니 영 그렇습니다.

 

학교가는 아이들 옷 매무새도 봐줘야 하고, 딸애 머리도 빗겨줘야 하는데

손톱이 거칠어서 애기들 볼에 상처날까봐 노심초사하는 엄마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저는 젊은 엄마들에게 이 매니큐어를 소개합니다.

샾 같은 곳에 가서 한번 네일케어 받는데도 3-4만원 하니까 

한번 이거 발라보라고 말이죠. 


또 같이 쓰는 손 보호제도 일반 보습제나 제가 의약품으로 처방하는 스테로이드 크림보다 효과가 더 좋은거 같더군요. 비싼것만 빼면 훨씬 좋아보입니다.


그 회사에서는 이렇게 항암치료 중인 환자의 피부- 헤어, 두피, 손발톱 등을 포함 - 부작용을 예방 치료할 수 있는 제품을 많이 개발했더군요.


소심하게 다시 한번 밝히지만 그 회사와 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오늘은

우리 학교 후배이며 본인도 의사로 일하고 있고 

지금 항암치료 중인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분께 메일을 받았습니다.


탈모로 스트레스를 받는 엄마를 위해

피부과 친구를 통해 도움이 될만한 약을 알아봤다며 

저에게 추천해 주더군요. 

역시 처방전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제품들입니다.

그래서 역시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 한국만큼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이 질이 좋으면서도 싼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이 약들이 어떤 약인지 제가 먼저 알아보고 공부를 해야겠지만

괜찮다고 판단되면 

저는 환자들에게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그런데요

환자들에게 이런 설명을 할 때 

기분이 좀 묘합니다.

제가 마치 외판원 같기도 하고 특정 제품을 취급하는 회사와 뒷거래가 있는 약장사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혹시나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볼까봐 우려도 됩니다.


그런 눈치를 보면서 진료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꾸 경고 먹으니까 그런거 같습니다.

전 아직 관련 소송을 당한 적은 없는데요

한번 그런 일을 당한 선생들 얘기를 들으면 

환자를 위한다는 소신 진료가 뭔지 원칙도 모르겠고 환자를 진료하는 것도 덧없게 느껴진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런 날을 맞이하면

새가슴이 되겠죠.

어떻게 하는게 잘 하는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일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분노하지 않고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는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자꾸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암튼 전

특정 회사와 전혀 관련이 없음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ㅠㅠ 

 


 


 




  







 



 



  • BlogIcon 이수자 2013.11.20 09:14 신고

    선생님의 글들을 읽으며, 내 병에 대한 정보도 얻고 용기도 얻고 있습니다.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표적항암치료 과정을 거치고 재발이 없기를 기원하면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관리도 나름대로 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여 컴퓨터를 켜면 선생님의 블로그를 제일 먼저 확인합니다. 주시는 여러 가지 정보가 저희들한테는 어떤 보약보다도 달디다니 용기를 가지시고 계속 좋은 진료하시기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삼성에서 치료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수현선생님 화이팅하시고 건강관리 잘하세요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1.20 18:25 신고

      에이
      이제 이런 블로그 들어오지 마세요.
      그냥 지금처럼 열심히 잘 사시면 됩니다.
      제가 진료한 환자분도 아닌데, 저에게 이렇게 격려의 글을 남겨주시니 왠지 쑥쓰럽습니다. 그래도 진심으로 저에게 더 잘하라는 응원을 보내 주시는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hfvkfl 2013.11.20 21:30 신고

    슬기 엄마의 글들을 읽어보면 의사로서 정말 공감하곤 하는데요,
    가끔 슬기 엄마의 독특한 이력을 보면서 만약에 슬기 엄마가 사회학에서 멈춰서 사회학에 정진하는 의사가 아닌 사람이 되었더라면 어떤 글을 쓸까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아마도 지금 의사들을 백안시하는 환우회 간부들이나 일반 국민들과 같은 글을 쓰시지 않을까 합니다.

    아니죠, 그래도 슬기 아빠가 의사시니깐 그래도 그정도 글들을 쓰시진 않을거야 라는 기대도 해보긴 합니다.

    의사에 대한 적의는 전 국민이 의사가 되어야 없어질래나요? ㅠㅠ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1.21 09:27 신고

      글을 주신 분이 어떤 선생님이신지는 모르겠는데요
      아주 정곡을 찌르신거 같습니다.
      제가 만약 의사가 아니었다면, 의사로 일해보지 않았다면
      이런 정서는 갖지 않았을거 같습니다.
      저 또한 병원을 자주 다니며 불편함 불신 불쾌한 경험이 많아
      시작한게 의료사회학 공부였으니까요.
      제한된 경험으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지금까지의 제한된 나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늘 혼란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게 인생인거 같습니다.

  • 윤경아 2013.11.21 08:53 신고

    전 제 주변 사람들에게 선생님 자랑하고 다녀요. 환자들의 소소한(?) 질병과 고민거리까지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주시려 하는 종합병원 종양내과 샘이 바로 내 주치의 샘이다~!!!
    하트 발쏴해드릴게요 오늘도 힘 불끈불끈 내세요~~~
    ♥♥♥♥♥♥♥♥♥♥♥♥♥♥♥♥♥♥♥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1.21 09:27 신고

      감사합니다!

  • BlogIcon S.J.Pae 2013.11.21 15:16 신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은 저보다 더 인간적이신 것 같습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1.22 06:39 신고

      감사합니다.
      제가 좀 인간적이기는 한데
      그래서 헛점도 너무 많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ㅠㅠ
      두가지가 배치되는 미덕은 아닌데...

  • 일본에서 2013.11.21 15:45 신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제품은 한국제인가요? 제품명 그냥 가르쳐주시면 안될까요?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1.22 06:41 신고

      아닙니다.
      앞의 제품들은 프랑스 회사인 EvoLife 라는 회사에서 나오는 제품들이에요.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뒷쪽의 탈모제품은
      판토가(pantogar) + 엘-크라넬(Ell-Cranell alpha solution) 라는 조합인데 아주 확고한 data가 있는 약제 조합은 아닙니다.
      pantogar는 일종의 두피 영양제이고 e-bay 와 같은 외국 표핑몰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약이며 엘 크라넬은 의사처방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약입니다.
      약간 망설이다가 그냥 알려드립니다. ^^
      도움이 되시길.

    2. 윤경어 2013.11.22 09:57 신고

      판토가는 복제약이 나와 있어요. 두 곳인데 그 중 하나가 마이녹실 S캡슐인가 그래요.샘 말씀처럼 약은 아니고 영양제예요. 효모? 일 겁니다. 복용하던 거라 쫌 알아요. ㅎㅎ 판토가보다는 좀 저렴한 걸로 알아요.

  • 사꾸니 2013.11.27 13:04 신고

    마이녹실을 영양제?라 표현하면 아니것 같다는 생각이들어 말씀드립니다. 마이녹실의 주성분은 미녹시딜이며 고혈합치료로 개발되다가 부작용으로 머리가 나는현상이 생겨 탈모치료제로 여자는 3%, 남자는 5%의 함유량이 들어있으며, FDA(미국식약청)에 승인되어있는 제품입니다. 쉽게 말하면 혈관 확장제로 혈관속의 혈류량을 높여 머리가 잘 자랄수 있는 조건으로 만든다고 보시면 됩니다. 6개월에서 1년정도의 장기적으로 발라야 효과를 보이며, 중단할경우 다시 기존의 모발이 빠지는 현상이 있고 일부 혈압이 떨어지는현상도 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두피영양제는 아닙니다.

    1. 윤경아 2013.11.28 10:04 신고

      마이녹실 바르는 건 사꾸니 님께서 말씀하심 게 맞구요. 마이녹실 S캡슐이라고 판토가 복제약으로 나온 게 있어요. 같은 현대약품이라 그렇게 이름지은 것 같아요. ^^ 그나저나 항암 수술 끝나고 머리 다시 날 때 바르고 복용해도 될지 모르겠어요. 이젠 뭐 하나 하려면 겁나네요...

    2. 윤경어 2013.11.28 10:07 신고

      아..글고 효모가 주성분인 걸로 알아요. 독일 맥주 공장 직원들 손발톱이랑 머리카락이 유난히 건강해서 추적관찰하다가 나오게 된 약이 판토가라고 하네요. 제가 알기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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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두살 젊은 자궁경부암 환자.

폐전이가 있다.

그런데 아주 조금 있다.

그래서 아무 증상이 없다.

폐전이가 발견된 후 항암치료를 했는데 효과가 없고 오히려 약간 크기가 더 커졌다. 많이 커진건 아니고 3mm 가 5 mm 가 된 그 정도다. 그런 점들이 몇개 안된다. 


그 상태에서 내 외래를 처음 방문하였다. 

이미 표준 항암제는 다 사용한 다음이다.



지금 특별히 불편한 증상이 있으신가요?

혹시 빨리 걸으면 숨차거나 가슴이 답답한 증상 같은게 있나요?



없다고 한다. 



그럼 한달만 더 쉬다가 다음 치료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사실 지금 써볼만한 좋은 약이 없어요.

특별히 몸이 힘들게 하는 증상이 없으니 일단 좀 쉽시다. 

지금 어디 아픈 데도 없는데 

암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계속 항암치료만 하면서 살 수는 없어요.

몸도 좀 쉬어야 합니다.



그러는 동안 암이 더 나빠지는거 아닌가요?



아마 조금은 나빠질거에요. 

그렇게 좀 나빠지더라도 항암치료를 하면서 쌓인 독성도 좀 빠지게 기다리고

몸의 정상적인 기능들이 돌아온 다음에 치료를 시작하는게

그 다음 치료를 잘 견딜 수 있게 도와줄거에요.

지금 속도를 보아하니 빠르게 나빠지는 단계는 아니신거 같아요.



알겠어요.



처음 만난 의사가 치료 안하고 쉬자고 하니까 마음이 불안하고 그런가요?



좀 불안하기는 해요. 

근데 저도 사실 좀 쉬고 싶었어요. 



바로 치료를 시작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내가 내심 못 미덥겠으나

그녀 또한 계속 되는 치료에 지친것 같다.

그녀는 아주 똑똑하게 생겼다. 옛날에 공부 잘 했을거 같은 인상이다. 

환자가 똑똑해보이면 내가 좀 위축이 되는데(!) 

이 환자에도 마음의 부담이 약간 있었다.  

그래도 처음 만나 면담을 하는거 치고는 비교적 내 말에 우호적으로 대답을 해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 말 중간을 끊고 자기 말을 하는 경향이 좀 있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감정적으로 약간의 흥분 상태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지금 이렇게 병이 않좋아지는 상황에서 정서가 안정되고 편안한 것도 어찌보면 정상이 아니니,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한달 뒤에 보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3주만에 왔다.



너무 가슴이 답답해서 왔다고 한다. 예약된 외래가 아니라 당일 접수로 해서 진료 마지막 시간에 그녀를 만났다. 

힘들었는지 맥박도 빠르고 얼굴도 붉게 상기되어 있다. 

가슴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큰 변화가 없다.

병이 조금씩 나빠질 수도 있다고 한 내 말 때문에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은 걸까? 

괜히 그렇게 얘기했나? 싶었다. 



엑스레이 상으로는 큰 변화가 없어보입니다.

청진상으로도 나쁜 소리는 안 들리는 거 같아요. 

가슴 답답한거 말고 무슨 다른 증상이 있나요?



기침도 하고 가래도 있고 산에 가면 숨도 차고 그래요.



산에 다니시나요?



산에서 살아요.



어디 사시는데요?



봉화에 살아요.

원래는 서울에서 살았는데 암 걸리고 나서 부모님이랑 봉화로 이사가서 산속에서 살고 있어요.



환자 이야기를 치료 기록과 맞춰보니

처음 방사선항암병용요법 시작할 무렵 봉화로 이사가신 것 같다.

봉화에는 인적이 뜸하고 깊은 산골짜기가 많다. 



거기서 병원 다니는거 너무 힘들지 않아요?

오늘 병원 오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가요?



대중교통으로 오니까 5시간 정도 걸려요. 집에서 한참 걸어내려와야 동네버스를 탈 수 있고, 거기서 봉화역까지 온 다음에 무궁화호 타고 서울 와요. 무궁화호가 자주 있는게 아니라 시간이 더 걸리는거 같아요. 



그녀는 내가 질문을 하면 아주 논리적으로 대답을 한다. 

원래 직업이 고등학교 수학 교사였다고 한다.



치료를 받으러 계속 병원을 다녀야 하는데 너무 외진 곳에서 살면 

병원 다니기가 너무 힘들어서 지칠거 같아요. 

오늘처럼 힘들면 병원에 빨리 와야 하는데, 병원에 오느라 힘 다 빠지겠네요.



그래도 괜찮아요. 이 정도는 다 견딜 수 있어요. 

정신만 좀 차리고 살면 좋겠어요. 



정신이 없나요?

항암치료를 받으면 신경계도 영향을 받아서 환자가 좀 그렇게 느낄 수도 있어요.



그게 아니구요, 저 정신분열병이 있어요. 

증상은 환청이구요. 

그래서 늘 정신이 없어요.

너무 여러가지 소리가 들려서 그러는거 같아요. 



환자가 딱부러지게 말한다. 

보통 환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딱부러지게 얘기하지 않는편인데 그녀는 툭 던지듯,  대놓고 얘기한다. 



무슨 소리가 들리나요? 



너 그렇게 해 봤자 낫지 않는다. 결국은 죽을 거다. 치료받아도 소용없다. 

저를 쫒아다니면서 그런 얘기를 계속해요.



지금도 들리나요?



네. 제가 선생님 얼굴 안 쳐다보고 다른 벽 같은델 보면 계속 얘기하는게 들려요. 

병원 다녀봤자 소용없다고. 넌 결국 죽을꺼라고 말해요.

부모님은 제가 산속 공기 좋은 곳에 가 있으면 좋아질거라고 봉화로 이사를 하셨지만

조용한 산속에 들어가 있으면 더 크게 들리고 절 괴롭혀요.

가파른 곳에 가면 뛰어내리라고 명령하고 그래요. 



그런 얘기 들은지 얼마나 되었나요?



4-5년 된 것 같아요. 그때 이혼했어요. 처음에는 이런 얘기가 들린 건 아니었는데, 암 진단받고서부터는 나를 괴롭히는 소리가 더 심해진거 같아요. 요즘에는 매일 환청이 들려요. 



환청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나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런 소리 계속 들으면 너무 힘들지 않나요? 



힘들어요...



정신과에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먹어봤냐고 물었더니

한달 먹어봤는데 효과가 별로 없는거 같았다고, 부모님은 정신과 다닐 필요 없을 것 같다고, 공기좋은데 가서 마음 다스리면 될거 같다고, 더 이상 병원에 보내시지 않는거 같다. 

우리 병원 정신과 협진도 한번 보기는 했다.

차트에 환청 얘기는 없다. 주요우울증이라고 판단했던 거 같다. 환청 얘기를 안한 걸까?



오늘 정신과 진료를 같이 봤으면 좋겠는데 

이미 정규 진료시간이 끝나서 협진을 낼 수가 없다.

내가 입원하자고 했더니 집에 가서 돈을 가지고 와야 한다고 한다. 오늘 가지고 온 돈이 얼마 안된다며.  부모님이 돈 관리를 잘 못하시기 때문에 자기가 해야 한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일단 오늘 흉부 CT를 찍고 가시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외래에 오면 우리 병원 정신과 진료를 같이 좀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 너무 정신이 없어서 다음에 와서 얘기하자고 한다. 

기침약이랑 가래약만 타가지고 갔다. 

그녀를 진료한 시간이 오후 5시가 넘었으니 집에 돌아가면 캄캄한 밤중이겠다. 산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환청이 그녀를 또 괴롭힐텐데...



정신분열병 증상은 약을 먹으면 훨씬 좋아질 수 있는데...

이렇게 힘들지 않게 지내도 되는데...

가족의 사랑과 지지를 받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환청까지 그녀를 괴롭히고 있으니

그녀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당하는 고통이 너무 클 것 같다. 



다음주 외래에서 보자는 내 말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입을 꽉 다물고 고개만 끄덕이고 나간다. 



그녀에게 사방이 적이구나...   





 


 



  • 워니아빠 2013.11.11 11:18 신고

    산에 들어가기...
    아내에게 해주지 못한것이네요. 제겐 평생 한이 될수도 있는 말입니다.
    못들어가는 이유의 첫째는 돈이구요. 산에 땅사서 집지을 돈이 없고, 대출금, 생활비 등 돈 벌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어린 딸. 딸아이랑 떨어져 지내는 것도 아이에게 않좋고, 산에 데리고 들어가도 형제도 없어서 외로워 할것 같고...
    산에 들어가는 게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지만 대게 산에 계신 분들은 경과가 좋은 것 같더라구요.
    이젠 병원에서 해줄것은 없고 증상 관리만 한다네요.
    아내에게 넘 미안해요.
    그냥 죽어가게 내버려 두는 것 같아서...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1.11 23:30 신고

      아예 산에 가서 사는거 보다
      컨디션 괜찮을 때 1박 2일이라도 여행 다녀오시면 어떨까요?
      더 추워지기 전에...
      휴양림 같은 곳으로...
      항암 쉬면 컨디션은 오히려 좋아지는 경우가 많아요.
      증상 조절 잘하고
      몸 컨디션 되는대로 한번 시도해 보시면 어떨까요?
      전 가족 여행을 권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산보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게
      더 중요할 거 같아요. 제 생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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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임상암학회는 1년에 4회 소식지를 내고 있는데

'의사로서의 블로깅'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써 본 글입니다. 

진부한 소개글은 쓰고 싶지 않아

조금 형식에 변화를 주어 다음과 같이 써 보았습니다.

Copyright 는 저에게 있으니 Embargo 같은 것에 걸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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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이 종양내과 의사들에게 듣고 싶은 말 Best 4

: 블로그에 올라온 환자의 댓글 분석


 

암 치료 중인 환자들은 담당 의사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어할까요?


2011 3월부터 2013 11월 현재까지 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 (http://bravomybreast.com) 블로그에 올라온 환자들의 댓글을 분석함으로써, 의사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힘이 났다는 반응을 보인 표현을 모아봅니다. 이러한 분석은 객관적 빈도나 강도와 무관하며, 통계적인 의미는 부여할 수 없고, 순전히 저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선정된 것임을 밝힙니다.


 

저희도 아버님이 참 걱정입니다.


 

요관암 3기를 진단받고 수술 및 항암치료를 마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편도암 4기를 진단받은 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가면 담당 의사는 곁눈질로 아버지와 저를 한번 쓱 훑어 보고 무표정한 표정으로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제 다 나으셨네요" 이런 얘기를 해주지는 못할지언정 말입니다. 겉보기에는 이렇게 멀쩡하신데, 왜 치료를 할 수 없는지, 혼자 분노도 하고 마음도 많이 상했습니다. 외과 의사, 방사선종양학과 의사, 종양내과 의사를 번갈아가며 만나는데, 그 누구도 속시원한 말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진료 중에 아버지의 담당 종양내과 의사가 저희도 아버님이 참 걱정입니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늘 찬바람이 씽씽 부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가 이렇게 말해주니 고마웠습니다. 그도 자식된 마음으로 우리 아버지를 돌봐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블로그에 들어와 선생님의 일기 같은 글을 보며, 종양내과 의사가 환자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심정으로 진료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종양내과 의사들의 어려움도 공감할 수 있었고, 진료차례가 되었는데도 왜 환자를 부르지 않고 있는지, 굳게 닫긴 진료실 문이 왜 한참이나 지나서 열렸는지,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하면 많은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 그들의 감정에 대해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진료실 문을 닫아놓고 환자의 검사 결과를 확인하며 다행의 한숨을 쉬기도 하고, 앞서 나간 환자의 차트를 정리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종양내과 의사의 인간적인 모습을 알게 되니, 썰렁한 우리 아버지 주치의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음번 진료때는 쥬스라도 하나 사서 들고 가야겠습니다.

 


è  섣불리 위로의 말을 전할 수도 없고, 치료 결과가 좋을 수도 있지만 좋지 않을 확률이 더 많다는 것을 아는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가 지금 주어진 삶을 잘 유지하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주기란 쉽지 않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종양내과 의사의 심정을 더할것도 덜할것도 없이 잘 나타내주는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비록 제 환자도 아니고, 우리 병원 환자는 아니었지만, 보호자인 아들은 제가 쓴 블로그의 글을 통해 암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이 어떤 심정으로 환자를 보는지 알게 되었고, 자기 아버지 주치의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댓글을 남기셨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매우 의미있는 댓글이라 첫번째로 꼽아봅니다.  

 



유방암 치료 잘 하고

다시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기도 낳고 잘 살아 봅시다.


 

저도 쇄골임파선에 가슴뼈쪽 임파선까지 전이가 된 3기말로 진단을 받았습니다. 저는 호르몬 양성 허투는 음성이에요. 저는 아직 미혼인데, 박경희 선생님 같은 분이 저랑 비슷한 병기로 유방암을 진단받고 완치가 되어 의사로 일하고 있다는 거,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이번에 아들을 낳아 잘 산다는 얘기를 들으니, 저도 지금 치료 잘 받으면 그렇게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거라는 희망이 생기네요. 그런 분이 계시다는게 저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희망을 주는지 모르실거에요.


 

è  환자들에게는 좋은 롤 모델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들 비슷한 조건에서 치료받으며 암담해 하는데,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잘 살아가는 건강한 롤 모델이 있다면 의사의 한두마디보다 거기서 더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우리 병원 임상강사로 일하고 있는 경희가 레지던트 때부터 지금까지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임신을 했을 때, 그리고 예쁜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었을 때, 저는 블로그를 통해 짬짬히 경희의 소식을 전했고 수많은 젊은 유방암 환자들, 우리 병원 환자가 아닌 이들도 다들 내일처럼 기뻐하고 좋아했습니다. 또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환자가 잘 견디고 치료를 받아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 이야기를 소개하면 환자들의 댓글도 많고 다들 남의 일 같지 않게 좋아합니다. 지금 자신의 상태가 어떠하든 환자들은 희망을 갖고 싶어하는데 사실 의사들이 그런 면에서 좀 인색하죠. 저도 그렇구요.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좋은 모델을 소개하는 것도 환자의 치료의지를 북돋을 수 있는 중요한 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항암제 독성을 잘 견디고 계시군요. 대단하십니다


 

사실 좀 힘들긴 했지만, 선생님 앞에 가면 왠지 씩씩하고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잘 치료받는 환자로 행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깁니다. 그래서 웬만큼 불편한거, 힘든거는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그래서 병원에 갈 때는 옷도 좋은 걸로 골라입고, 정성껏 화장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오늘 선생님께서 제가 치료 독성을 잘 견디고 있다고, 오늘 온 환자 중에 제일 씩씩하다고 말씀해 주시니, 정말 제가 하나도 안 아픈 것 같이 느껴졌어요.


난 과연 언제까지 치료를 받아야 하는걸까, 그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게 늘 저를 숨막히게 합니다. 과연 좋아질 수는 있는걸까그렇지만 그렇게도 하기 싫은 항암치료를 하러 병원에 가는 날 제가 가장 생기가 있는거 같아요. 아마 선생님이 저를 자꾸 칭찬해주시니까 그런게 아닐까 싶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저도 아마 춤추는 고래가 되고 싶은가 봅니다.


 

è  4기 암환자들의 치료는 앞날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고, 사실 정확한 계획을 세우기도 어렵습니다. 외래 시간에는 그런 근본적인 이슈로 환자와 차분히 얘기하기가 어렵습니다. 한 두차례의 설명과 면담으로 환자가 자신의 상황을 다 받아들이게 되는 것도 아니구요.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는 치료 과정, 또 치료가 거듭될수록 환자는 몸과 마음이 힘들고 여러모로 위축되기 쉽습니다. 상을 받을 일도, 칭찬을 받을 일도 없는 일상, 떨리는 검사를 받고 결과를 보러 올 때, 항암제를 바꾸고 처음으로 독성을 평가하거나 효과를 판정할 때, 과하지 않은 범위에서 환자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말을 해주면 구겨진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의사는 때론,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보다 더 환자의 어려움을 더 잘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환자의 내면에 숨겨진 강점과 장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코멘트 해주면 큰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힘내세요


 

치료를 시작하고 난 후 약제 부작용이 하나둘씩 내 몸에 나타날 때, 아프고 놀라고 힘들었어요. 제가 겪는 부작용 하나하나에 대해 댓글을 달아주시고 설명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왜 그런지 아니까 두려움없이 견딜 수 있게 되는거 같아요. 외래에서 제거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 바람에 다음 환자 외래가 지연된거 같아 죄송해요. 항암치료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선생님이 제 질문에 대해 답글을 남기신 것을 읽었어요. 제 진료가 끝나서도 저를 위해 애써주셔서 감사드리고, 댓글 마지막에 항상 힘내세요라는 그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아마 그 말을 듣고 싶어서 자꾸 질문을 올리게 되나봐요. 선생님이 제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챙겨주시는 것 같이 느껴져요. 감사해요.

 


è  젊은 여성일수록 항암제에 의한 독성과 부가적으로 난소기능이 억제되면서 나타나는 폐경기 증상이 복합되어, 신경도 예민해지고 항암제 독성도 더 민감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젊은 환자들은 자기 병과 치료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기를 원하고, 병의 기전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환자들이 자꾸 에 대해 질문하면, 사실 저도 잘 모르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 부분은 아직 잘 밝혀져 있지 않다, 확실한 정답이나 기전은 아직 잘 모른다, 그렇게 솔직하게 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환자는 정말 끈질기게도 너무나 많은 것들을 질문하였습니다. 전이성 유방암의 약제나 왠만한 임상연구 결과는 다 알고 있었고, 자기가 하는 검사의 결과도 꼬박꼬박 챙기는 환자였습니다. 처음엔 사실 저도 좀 피곤했지만, 그렇게 몸살을 몇번 겪고 나니, 오히려 서로간에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고, 환자에게 설명하기도 더 쉬워졌습니다. 치료기간이 길어지면서 환자의 스타일에도 맞춰야 하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presicion medicine의 일환이 아닐까요? 그렇지만 환자가 아무리 똑똑해도, 결국은 의사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기 마련입니다. 그녀는 나에게 의학적 지식에 대해 설명을 듣기를 원했다기 보다는, 힘내라, 내가 널 응원하고 있다, 그런 격려의 메시지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 블로그는 암환자를 진료하며 살아가는 제 일기이자 진료 기록입니다.

시간 많이 듭니다.

그만큼 논문 못 씁니다.

그래도 전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립니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건, 매일 만나는 나의 환자들입니다. 그들로부터 가장 큰 가르침을 얻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 진료를 마치고 정리하는 블로그의 글쓰기가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블로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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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히말라야 트랙킹으로, 산티아고 800km 길로 향하고 있지만 

몸은 늘 병원 뒤 안산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사시사철 이런 산을 곁에 두고 오를 수 있으니 이게 어디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번 가을은 특히 그렇다. 


 

몇일 전 찍은 사진,

같은 산등성이에 모여있는 같은 종류의 나무들인데도

왼쪽 나무는 아직 푸르게 

오른쪽 나무들은 빨갛게 물들어 간다. 머리꼭대기는 아직 초록빛이 남아있지만...

누구는 좀 빨리

누구는 좀 느리게

그래도 지금 자기가 내뿜고 있는 색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오늘 오후 1시간쯤 짬이 났다. 

간단하게 빵으로 배를 채우고 안산에 다녀왔다. 

한 나무인데도

아래쪽과 윗쪽의 색이 다르면서도 

형형 색색 조화롭다. 

그런 나무들이 지붕을 이루는 가을길. 

따뜻한 가을 햇살이 비춰질 때 더 온화한 느낌을 준다. 


  


화려하지 않고 은은하게 아름다운 나무와 길.

스마트폰 카메라로는 

직접 나무 앞에 서서, 그 길에 서서 느끼는 그 감동을 담을 수가 없다. 


한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요즘 단풍 좋죠.

치장하지 않고 꾸미지 않았어도

때가 되고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이렇게 곱고 예쁜 색깔로 그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이들은 낙엽이 되어 다 떨어집니다.

죽기 직전에 나무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거에요.

그리고 나면

단풍은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무채색으로 말라 비틀어져 땅바닥을 뒹굴다가 

썩어 거름이 되고

이듬해 그 나무를 키우는 자양분이 됩니다.


우리 사람도 죽기 직전에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죽어서는 다른 이를 위한 거름이 되는 거죠.

우리도 단풍처럼 곱고 아름답게 늙어 죽읍시다. 

지금 아름다움을 우짖는 단풍은 

우리 인생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산에 가서 

나무마다 색이 다르고

같은 나무에서도 다른 색조를 선보이는 단풍을 보니


우리 인생도 

각기 다른 속도로 내달리지만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자기만의 색을 갖게 되고 

그 자체로 다른 존재이지만 남들과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게 되며

결국 죽음 직전에 마지막 아름다움을 선보이다가 죽는 것이고

죽어서 눈에 보이지 않아도

거름이 되어 새로운 생명 탄생에 기여하는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매년 

같은 자리에 

붙박이로 자리잡은 나무가

매년

다른 색의 형형색색 고운 단풍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만

그것은 죽음 직전의 순간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 순간에 아름다울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잘 죽기 위해 사는 동안 애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최근 1-2주일 사이

매우 빨리 나빠지고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는 환자들이 대거 입원하였다.

얼마전까지 

걸어서 외래 다니고 

동반 가족이나 보호자없이 혼자 힘으로 씩씩하게 치료받으시던 분들인데

무슨 도화선이 붙은 것처럼 갑작스럽게 상태가 나빠져서 입원하신 분들이 많다. 


비록 4기 유방암이라고는 했지만 

일상생활 잘 하시고 

어디 아프다는 내색없이 혼자 힘으로 병원 잘 다니며 치료하고 있었다.

다른 암에 비해 환자들의 일생생활 수행능력이 좋다보니

상대적으로 가족들은 환자 병의 무게와 심각성에 다소 무뎌지고 있었다. 

병의 궤적에 대해서 환자만큼 아는 가족이 없다. 

매번 외래 때 설명을 듣고 치료과정을 결정한 것은 오롯이 환자 몫이었다.

그런 환자가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족들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매일 서너명 이상의 가족들을 면담하고 있다.

내가 가족면담을 하기로 결정하는 때는 사실 환자상태가 좋지 않을 때이다.

환자 따로 진료하고

가족면담 따로 하는 것은

2중으로 노력하고 2중으로 시간이 소요되고 2중으로 감정이 소모된다.

그래서 선배 의사 모두들 

환자와 가족을 같이 면담하고 

환자에게도 가족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지금의 현실과 예후에 대해 설명하라고 충고한다. 

그렇게 두배로 일하지 말라고. 안 그러면 네가 지친다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그런 과정에서 상처를 받는다.

환자보다 훨씬 유방암에 대해서 잘 모르고, 

그동안 환자 치료과정에 동참하지 않아서 주치의 입장을 모르면서도 

어떻게 환자 앞에서 직접적으로 그런 얘기를 할 수가 있냐고, 

정말 이 의사는 매너가 없고 환자를 위할 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 서운한 마음을 의사집단 전체로 확장시켜 '의사는 원래 저래'라는 식으로 범주화해버린다. 

그리고 의사에 대한 '신뢰'를 철회해 버린다. 


누구나 자기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눈 앞의 사건과 대상을 '일반화'할 수 있다. 보편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다.  

아프고 힘들 때 병원에 갔는데 

힘들고 불편하고 뭔가에 상처받는 일이 생기면

그 일로 의료와 의사집단 전체를 불신하게 된다. 

나도 그래서 20년전에 대학원에서 의료사회학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었다. 

내가 받은 상처를 누군가에게 '투사'하는 것이 필요한데

의사가 좋은 먹이감이다. 


누구나 소송이나 재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변호사를 접촉해 본 경험을 가진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그러나 누구나 살면서 아프고 병들어 병원을 찾는다. 누구나 의사를 직접 접촉할 수 있고 의사와 얘기해볼 수 있다. 같은 전문직이라 해도 한국의 의사는 그만큼 접근이 용이한 대상이며 쉽게 약점이 노출될 수 있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감정적인 결정이라 해도

환자와 가족은 '자기 경험'과 '상처'를 바탕으로 

병원과 의사를 평가한다. 


한국 의사집단은 지난 30년간 이상 전문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었으며 '평판'이 나빠졌다.

전문가적, 직업적 자기 규제능력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문제 해결과정에서는 정부의 규제 대상이 되어 왔고 전문가 내부적인 질서와 규범을 위협받았다. 

어떤 이슈를 제기하고, 아무리 절규해도 

국민으로부터 이해받고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심평원이 의료의 질을 저해하는 규제방안을 강화하고 의사의 의료를 간섭해도

국민들은 의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지금 한국의사의 위기는 지금 한 시점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인 업보에 의한 측면이 많다. 

매듭을 지은 자가 풀지 않았고 

후대에 남은 자들이 너무나 많이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어야 할 운명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수많은 문제들을 한올 한올 푸는 것에 지쳐서 실타래를 몽땅 불에 태워버릴 지경이 되었다. 



나는 나를 위한 시간 배분을 한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

나에 대한 신뢰를 잃고 싶지 않아서,

밤에도 면담하고,

주말에도 면담하고,

한명 한명이, 한가족 한가족이 

지금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엄청난 위기와 나쁜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이해하시도록

애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이것밖에 없으므로. 

설령 

내가 지쳐서 더이상 못하겠다 나자빠지더라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을 때까지는 

그냥 하려고 한다.


내가 의사로 얻을 수 있는 평판은

죽는 순간 그 직전에 고운 단풍으로 빛을 내다가 낙엽으로 떨어진 다음일 것이다. 

나 혼자만으로 고운 색을 내기는 어렵겠지만

하는데까지 하자.

오래지 않아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말 인생이니까. 






 


    



 


 



 



  • 달콤한 우주 2013.11.08 00:19 신고

    그동안 모든 대외 활동을 가장 최소로 하다가
    저도 오래간만에 빠질 수 없는 교육때문에
    광주에 운전을 하고 갔어요.

    일을 할 때든, 쉴 때든, 놀 때든
    워낙 혼자 차를 몰고,
    음악을 크게 틀고
    운전하기를 좋아했었는데
    그동안 병원을 가까이 한 관계로
    내 사는 곳 안에서만 있었지요.

    눈부시게 노란 은행나무가
    파란하늘에 더 눈부시고,
    도로변 산과 주변의 나무들은
    온통 벅차게 하는게
    살 것 같은 느낌이였습니다.

    (누구였는지 잊었지만...대략)

    "금가루 떨어진 길을 걷는 당신,
    왕이십니다"

    저도 한껏,
    선생님도 한껏
    올 가을 은행나무 아래서
    ㅎ~ "여왕이십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1.08 15:33 신고

      너무 내면에 집중하지 말고
      밖으로 시선을 돌려봅시다.
      그순간 벅참을 느낄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고슬기 2013.11.08 21:22 신고

    단풍이 정말 예쁘게 들었네요^^ 저도 주말엔 동네뒷산에 올라가서 단풍 놀이를 해야겠습니다^^ 단풍처럼 아름답게 화이팅!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1.09 08:51 신고

      블로그에 가끔 글 남겨주시는거 잘 알고 있습니다.
      다음주에 만나서 화이팅 하도록 해요.
      열심히 일해주어서
      나도 덩달아 열심히 데이터정리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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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병원에서 유방암 환자를 진료하시는 한 선생님,

잊을만하면 한번씩 

좋은 글을 보내주신다.

병원 외부 회의에나 가야 만나뵐 수 있는 선생님이지만

학교 후배도 아니고 병원 의국 후배도 아닌 내가 이래 저래 힘들어 보인다고 생각이 되면

격려차원에서 좋은 글 때론 야한 이야기를 보내서 웃음을 주신다.



얼마전 받은 글.

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rs1026&logNo=50180443753&categoryNo=0



블로그로 공개되어 있는 글이니

옮겨도 될 것 같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두 손에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고 애쓴다.

조금이라도 더 움켜쥐려고 욕심을 부린다.

내 삶은

내 뜻대로, 내 의지되로 되는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렇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해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을 놓치고 나서

우리는 후회하고 원망하고 분노한다. 

그 마음을 다 내려놓으려면 얼마나 많은 인내와 성찰이 필요한 걸까?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하고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줄 수 있는 소중한 것은 어쩌면 가까이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병원 뒤 안산에 올라 어느새 깊게 물든 단풍과 가을산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로도 가을 햇살을 받아 깊고 그윽한 붉은 빛을 내는 단풍의 감동을 고스란히 담을 수 없다. 내가 그 앞에 서 있는 그 순간 느끼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게 찰나처럼 지나가는 아름다움을 고마와할 줄 알고 마음에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멀리 단풍 구경을 가지 않아도 뒷동산 작은 나무 하나에서 오묘하게 뿜어내는 자연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우주는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이므로, 멀리서 삶의 이치를 찾으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얼마전 입원해서 흉강경으로 늑막에 고인 물을 빼고 유착술을 받은 환자가 엊그제 외래에 왔다. 

러시아의 50대 후반의 아줌마.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았는데 여기 저기 병이 심하다. 우리나라로 치료를 받으러 오기는 했지만 경제적으로 아주 윤택해 보이지는 않는다. 입원비를 부담스러워 해서 외래에서 물을 빼고 치료를 시작했지만, 치료 효과를 보기 전에 늑막에 고인 물 때문에 자꾸 기침하고 숨이 차 한다. 어쩔 수 없이 입원을 시켜 수술적 방법으로 유착술을 시행하였다. 물이 다시 안 고이게 하려면 수술적으로 조치하는 것이 낫다. 통역이 없으면 단 한마디 의사소통도 안되는 러시아 환자와 그 남편. 비행기표를 예약했기 때문에 제 때 물이 다 빠지고 관을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조마조마하게 날짜를 맞추어 환자를 퇴원시켰다. 그리고 다음 외래에 항암치료를 받으러 왔다. 


그새 환자는 많이 안정되었다. 이제 숨도 별로 차지 않고 말씀을 잘 하신다. 걸음도 빨리빨리 잘 걸으신다. 화장을 예쁘고 하고 오신 걸 보니, 항암치료 받는 환자인지도 모르겠다. 환자가 항암치료를 받으러 간 사이 나는 남편을 불러 이것저것 상의를 했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결국 완치되기는 어렵다고. 어느 정도까지는 한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치료받을 수 있겠지만, 나중에는 환자도 힘이 들고 들이는 비용만큼 효과가 없을 지도 모른다고... 한국 사람이랑 말하기도 어려운, 그런 힘든 얘기를 남편과 나누었다. 남편은 잘 알겠다고, 그래도 일단 하는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번에도 물 빼고 증상이 많이 좋아지니 환자가 많이 좋아했다고, 그렇게 아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남편도 기뻤다고 했다. 

남편의 순박한 말에 내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래,  그런거지. 그렇게 이 순간을 감사히 생각하고 기뻐할줄 알면 되는거지.



유방암 치료 2년 반만에 재발했지만

여전히 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그녀. 근무시간을 조절하여 주말 사이에 입원하였다. 

처음 항암치료를 힘들게 받았던 그녀는 재발 후 호르몬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증상도 없으니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학교생활을 유지했으면 한다고 했다. 치료 기준에 맞지는 않아도 나는 그녀의 의견을 존중해서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3개월 동안 병이 조금 더 나빠진것 같다. 

그녀를 설득해 머리가 빠지는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그녀는 예전에 비해 이번 치료가 힘들지 않고 머리 빠지는 것 외에는 별 부작용이 없으니 내심 만족하는 눈치다. 그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가벼운 호흡곤란이 있었는데 증상이 좋아지는 것 같으니 치료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먹는 약에 구토감이 심해 주말동안 대상포진 주사를 맞고 내일 퇴원예정이다.

저녁을 먹고 소화를 시키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며 병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마주쳤다. 

얼굴 표정이 밝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표정이 점점 더 밝아진다. 피부도 상하지 않고 더 예뻐지는 것 같다. 

뭐라고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환자의 얼굴에서 밝은 빛이 나는것 같다. 그런 밝은 빛이 그녀의 생명력이겠지.


삶은 주어진 통계만큼 사는 것이 아니고 환자가 가진 생명력만큼 사는 거겠지.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우주는 환자들과 병원이다.

삶을 감사히 여기고 

바로 여기 주어진 것들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인생에 소중한 것은 이 작은 우주안에 있을 것이므로.


 

   

 

  






  • 달콤한 우주 2013.11.04 21:24 신고

    언니가 나즈막히 이야기를 해요.
    "산... 넘어... ...산이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올해 1월 저로부터 시작한 발병...
    그리고 아빠, 엄마...
    엄마를 보내드리면서
    좀더 가족간의 관심과 사랑을 점점 넓혀가게 되었죠.
    좀더 서로를 살피고 아빠를 잘 케어해 가면서
    생각보다 잘 견뎌가고 안정되어 가고 있었는데...

    지난주 정기검진한 결과 양쪽 가슴에 무언가 확인할 게 있다고 해서
    다시 추가검진을 예약했어요.

    딸만 많아 다복해 좋겠다던 우리집에
    덕분에 가족이된 사람좋은 형부도 많지요.

    내 검진 결과가 있을 쯤
    아빠같던 형부가 몸에 이상함을 느껴 검진했는데
    간암이고 전이되어 위암에 혈액암까지...
    치료할 수 없어 병원에서 돌려보냈어요.

    아직 그 심각함이 피부로 느껴지진 않지만
    처음 듣는 순간 재앙처럼 여겨졌지요.

    신음하던 언니의 나즈막한 긴 한숨,
    목에 걸려 울음도 나오지 않더군요.

    몹시 엄마가 생각나 아빠와 함께 다녀오는 길에
    죽~ 늘어선 빛깔좋은 단풍 잎들
    새삼 "참 곱다~".

    형부를 위한 가족 치료 계획을 하고
    서로 의연하게 긍정의 에너지를 가지고
    잘 견뎌보자 맘을 맞춰가고 있어요.

    김진호의 "가족사진"이란 노래를 크게 들으며
    사람 좋아 보이는 선생님 블로그를 방문해
    그냥 힘을 얻고 싶어 오늘도 들어왔다 갑니다.
    여전히 두서없는 글이네요.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1.04 22:13 신고

      힘든 시간
      그런 시간이 나에게 주어지게 된 뭔가의 의미가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그냥
      많이 힘드실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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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병원 유방암 클리닉에서

유방암 진단 후 급성기 치료를 마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강좌를 개최한 날이다. 


급성기 치료를 마치고 추적관찰 중인 그들을 어떻게 지칭할 것인가? 

'환자'라는 표현보다는

외국에서는 'Cancer Survivor', 우리말로 하면 '암 생존자'라고 번역되는데, 

생존자라는 표현보다는 '암 경험자'가 더 낫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이들은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유방암 치료를 일단 끝낸 분들이다. 

다른 암에 비해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들도 많고 

항암치료 기간도 길며, 

수술도 하고 

방사선 치료도 하고, 

1년간 표적치료제도 쓰고, 

5년간 호르몬제도 쓰는, 치료가 복잡한 병이다. 

   

나는 그들에게 유방암 치료가 끝난 후 발생할 수 있는 장기 합병증 가운데 신체적 측면에 맞추어 강의를 하게 되어 있다. 



의사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하는 발표는 

영어로 슬라이드를 만드는 경우가 많고 인용을 할 때는 반드시 참고문헌을 밝혀야 한다. 각주 설명 다는 것이 일이다. 

혹은 자기가 연구한 성과물이나 실험한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라면 연구 가설에 맞게 결과를 조합하여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간데 - 발표를 준비하게 된다.

발표를 듣는 청중과 발표자 간에 기본적인 지식에 대한 공감대가 있으므로 

기본적인 전제는 생략하고 다이렉트하게 본론으로 들어가는 공격적인 화법을 구사할 수도 있다.

그 나름으로 어렵다.  


한편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발표는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게 중요하다. 

그림이나 사진, 그래프를 보기 좋게 넣고

가능하면 슬라이드에 글을 줄이고

쉬운 말로 설명하여 

청중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물론 환자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 하더라도 

배경적 지식을 무시하거나 참고문헌을 밝히는 것에 소홀하면 안되겠지만 

그 자체에 치중하기 보다는 

환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핵심 메시지가 잘 이해되는 방식으로 슬라이드를 만드는게 중요하다.

자꾸 발표를 하다보면, 슬라이드의 포장과 편집에 집착하게 된다. 슬라이드 쇼를 구성하거나 슬라이드 바탕화면과 디자인, 글씨 색깔, 선 굵기 그런 형식적인 요건들에 점점 집착하게 된다. 그런 외형적인 포장보다는 핵심 메시지를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너무 자세히, 빡빡하게 설명하는 것도 별로고

너무 두리뭉실, 교육적 효과를 상쇄하는 그런 발표도 별로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인지 환자 눈높이에 맞추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알고 보면 환자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잘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평소에 진료실에서 환자들이 많이 질문하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잘 설명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 좋을 것같다. 


의사는 환자들의 질문을 받으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어 하는지 

그런 심정을 잘 담아서 말이다. 


어떤 날은 진료실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개똥쑥이 면역성을 증진시키는데 먹으면 어떻겠냐는 질문을 하신다. 

어떤 날은 아사이베리로 질문이 바뀐다. 

아마 전날 TV에 나왔나 보다. 


똑같은 답변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은근히 짜증이 난다.

그러므로 이렇게 환자와 일반인 대상으로 한 대중 강의는 교육적 차원에서 매우 소중한 기회이다.

정기적으로 주제를 잡아서 일종의 시리즈처럼 제공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단 의사의 강의는 지루하지 않게.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관련 분야의 종사자들이 내용의 연속선상에서 환자 교육용 강의가 제공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교육과 강의는 의학적으로 적절한 범위 내에서 검증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사실 검증되지 않은 교육과 강의들은 너무 많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 강의를 듣기 위해 온 분들은 

지식을 얻기 위해 혹은 학문적인 목적으로 공부를 하기 위해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건강과 미래, 내 존재의 안전성을 의식하며 

애가 타는 마음으로 듣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러므로 예후, 위험요인, 합병증 이런 주제들을 언급할 때는 단어 한개를 선택할 때에도 신중해야 할 것이다. 



지난 달 

유방암 치료 후 3-4년이 지난 암생존자/경험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번 교육을 받고 나서 유방암 네비게이터 - 유방암 치료 중인 환자들을 돕고 지원하는 지역 사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자원 봉사자 - 로 활동할 예정인 분들이었다. 

유방암 환자들과 상담하고 그들을 지원하려면

유방암에 관한 의학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마련된 교육의 장이었다. 나는 그들을 대상으로 유방암 일반에 대해 교육을 하게 되었다.


나는 유방암의 특징 - 다른 암에 비해 내부적인 세부 아형이 나뉘어져 있고 그 세부아형별로 재발이나 질병 진행의 특징이 다양하다는 것, 5년이 지나도 재발할 수 있다는 것, 공격적인 타입의 삼중음성유방암은 2년을 기점으로 재발 여부에 대해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 HER2 양성 환자들의 재발 양상은 어떻다는 것 등등 - 을 설명하였다.

내가 언급한 사실들은 

이미 잘 정립되어 있는 주제이고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늘 염두에 두는 내용들이었다. 

내용에 특별한 사항은 없다.

나는 소위 과학적 지식(scientific knowledge) 을 말한 것이고, 임상적으로 중요한 유방암의 특징들에 대해 잘 설명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의를 듣는 청중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삼중음성유방암으로 치료를 마친지 이제 막 2년이 지난 사람은

내 강의를 들으며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다들 자기의 조건을 염두에 두고 내 말을 듣고 있는 것이다.

암을 진단받고 치료받았다는 것, 

지금은 괜찮지만 여전히 재발의 위협이나 치료의 장기 후유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그것은 왠만한 노력과 의지로는 극복할 수 없는 조건인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아차 싶었다.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지식을

환자와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게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고민도 많이 필요하고

의사로서의 경험과 연륜도 필요한 것 같다. 

진료실에서 한 명의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명분하에 

디테일에 얽매여 사느라 큰 그림 그리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자유로운 인터넷 환경에서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되고 있지만

믿을만한 정보를 얻기 힘든 환자와 가족, 암생존자/경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강의를 해 보도록 해야겠다.


방금 완성한 슬라이드 파일을 가지고 

강의장소로 출동!

 

 





  

 

  • 2013.11.01 10:36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1.01 13:28 신고

      걱정하시는 맘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아이를 위해 추천할만한 유전자 검사는 없습니다.
      또한 다른 어떤 검사라도 미리 좀 해보는게 나을지 그런 것도 없습니다.
      운동많이 시키고 많있는거 많이 먹이고
      그러면 될거 같습니다.
      오랫만에 방문해 주시기 반갑-이런 말이 좀 그렇지만- 습니다.
      아이들과 Gravity 보세요
      준서랑 같이 보는거 괜찮을 거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어른은 어른 나름대로 괜찮구요.

  • 워니아빠 2013.11.01 14:09 신고

    제 아내는 survivor에 못들어 갈것 같네요.
    젊은 사람이라 예후가 않좋은 건지 그동안 6년동안 항암만 줄창나게 하다가 이제는
    쓸약도 별로 없네요.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갑니다. 어디 시원하게 말할데도 없고 답도 없고...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 병에 괴로워 하며 아이걱정, 제 걱정...
    얼마나 힘들까요. 불쌍한 제아내.
    암환자 카페도 열심히 드나들어 봤지만 이제는 왠만하면 제 아내보다 별로 안 심하고...관심 주제 자체가 많이 달라졌어요.
    고칼슘혈증이 왔는데 이것이 몇개월 남지 않았다는 싸인이 되는 건지 궁금해서 글남깁니다.
    한번도 뵙지도 못한 선생님이지만 이곳에 글을 남길수 있어 자그마한 위로가 됩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1.01 22:00 신고

      뼈전이가 있으신가 봅니다.
      고칼슘혈증이 잘 조절되지 않으면 사람이 자꾸 늘어지고 기운도 없고 쳐집니다. 그리고 특정부위가 아닌 온몸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하지요. 결국 병 자체를 콘트롤해야 고칼슘혈증도 해소됩니다.
      일단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응급조치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위기는 넘길 수 있지만 병이 치료되지 않으면 이벤트도 반복되고 환자도 많이 고생하는거 같습니다.
      제가 치료 병력이나 지금 상태를 모르지만
      고칼슘혈증 자체가 위험요인이나 예후를 결정한다기 보다는
      이후 치료적인 접근이 가능한지 여부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관련 증상을 잘 알고 있다가 이상 징후가 보이면 빨리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해보고 필요시 조치를 하는게 필요하겠네요.
      섣부른 위로나 대안을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주치의가 아니니 그만큼은 이해해주실 것을 믿으며...

  • 준서아빠 2013.11.02 10:20 신고

    안녕하세요. 전에 댓글 몇번 본기억이 있는데요. 저와 애들 엄마는 이 싸움에서 이기진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선생님 블로그에 일부러라도 와지질 않더군요. 추억과 기억과의
    싸움을 피하고 싶은 심정이랄까요. 하지만 꼭 워니엄마는 잘되실거에요.

    저도 약간은 남편분 심정이 와닿습니다. 그래서 또 힘드네요... 꼭 이기실겁니다.
    오늘이 마지막인것 처럼 많이 같이 얘기도 하시고 얘들 상의도 같이 하시고 하셔요.
    사랑하고, 했고, 할거라고 얘기도 많이 해주시고.



    저는 블로그에 오는게 이래서 힘들군요... 그럼...

  • 나무야 2013.11.04 10:01 신고

    교수님~- 삼중음성은 수술이나 항암후 시간이 지날수록 재발이 줄어드는 거 아니에요? 오히려 2년을 지나는 시점에 재발이 높은거에요? 2년 이전 재발율이 2년 이후 재발율보다 높은줄 알았거든요.

  • 워니아빠 2013.11.06 11:07 신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많은 힘이 되었어요.

  • 2014.06.12 14:37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4.06.14 11:26 신고

      언제 답을 보실지 모르겠지만...

      ER이 negative 이면서 PR만 positive 인 경우는
      명목적으로는 luminal type 이지만
      사실상 시간이 지나면서 triple negative 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2014.07.26 15:28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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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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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를 받으러 외래에 오면

환자는 일단 피 검사부터 합니다. 

그날 피검사 결과에 따라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몸상태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피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 시간 이상 외래 대기실에서 기다립니다.

자기가 예약한 시간이 넘어도 앞 환자들 진료에 밀려 내 진료 시간은 지연되기 일수 입니다. 

그 전에 CT라도 찍었다 치면

그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에 초조함이 더해집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잔뜩 긴장해서 

1분 1초가 영겁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게 애타는 마음으로 두어시간 진료를 기다리다가

겨우 주치의를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들어간 진료실, 

의사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 인사에 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의사는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그게 저의 모습입니다. 


바로 앞의 환자가 펑펑 울고 나갔습니다.

검사 결과가 좋지 않고

몸도 많이 약해져서  

제가 당분간 항암치료는 그만 하고 일단 좀 쉬자고 했습니다. 

환자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나는 억지로 짧은 시간에 이해를 시켜야만 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그녀에게 내 마음을 이해시킬 수가 없습니다.

좋은 말로 인사하고 헤어지지 못했습니다. 

내 마음은 잔뜩 굳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환자가 나가고 들어오는 동안

막 나간 앞 환자 의무기록을 정리하고 

환자 명단을 다시 띄워서 

이번에 진료할 환자의 피 검사 결과 화면 띄우고

CT 사진 화면 띄우고

환자의 의무기록 화면을 띄웁니다. 

그렇게 여러개의 화면을 띄우는 동안 컴퓨터는 버벅버벅 한 개씩 화면을 보여줍니다. 

어제 리뷰할 때까지 판독이 안 나왔으면 그 자리에서 공식 판독결과를 확인하기도 하고

환자의 피검사 결과가 어떤지도 확인하고

걸어들어오는 환자의 품새를 보고 환자 컨디션을 짐작하고

지난번 외래 때 환자가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뭘 궁금해 했었는지 메모도 확인하고

그러느라 

정작 내 앞에 자리잡고 앉은 환자의 얼굴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게 저의 모습니다. 


다행히 

이번 환자의 검사 결과는 좋습니다.

이번에 바꾼 약이 효과가 좋은 것 같습니다.

좋은 결과를 보니 나도 마음이 가볍습니다.

그동안 그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기 때문에 한껏 그를 격려해 줍니다. 

긴장하며 굳어져 있던 그의 얼굴도 비로소 환하게 펴집니다. 

나도 그제서야 겨우 빈곤한 미소를 보입니다. 


그 다음 환자는 상황이 또 다릅니다.


그리고 

그 다음 환자는 상황이 또 다릅니다. 


수분 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을 단위로 내 얼굴도 굳어졌다 풀어졌다를 반복합니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백명에 가까운 환자들을 보면서 오후 서너시가 넘어가면

내 얼굴은 완전히 굳어버립니다.

근육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화가 필요한 환자, 오래 토론해야 할 것 같은 환자들은 진료시간의 뒷쪽으로 배당합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갈수록 진이 빠집니다. 

대화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환자에게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종양내과 의사의 얼굴은 무표정한 것이 더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호불호를 얼굴에 드러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일관성이 있고

환자들에게 심리적으로 나쁜 영향을 덜 미친다고 합니다.

한번 좋다고 같이 좋아하고

한번 나쁘면 같이 침울해 하는 모습을 노출하는 것이

환자의 정서에 더 좋지 않다고 하네요. 

일관된 모습으로 환자를 대할 줄 아는 것이 종양내과 의사가 가져야 할 미덕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저도 아직 사람인지라

그런 표정관리를 잘 못하고 내 마음을 얼굴에 다 드러냅니다. 


의사의 사소한 몸짓 하나, 사소한 말 한마디도

환자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는 아직 아마추어 의사인것 같습니다. 


환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어설픈 설명을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어려워서 의사들끼리도 난관에 부딫히는 사항들이 많습니다. 

어찌보면

의사의 설명을 듣고 다 이해하는 것 보다

그냥 의사를 믿는 것이 더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의사에게 믿음을 갖게 하는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병의 시작부터 저랑 인연을 맺고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하는 환자도 있지만

그런 라포를 채 형성하지 못한 채 급박한 상황을 맞이하여 내 말을 내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저도 환자와 가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도 있구요. 


오늘 제 진료실에서

큰 슬픔과 분노를 안고 나가신 분이 계십니다. 

저는 아직 훈련과 수양이 더 많이 필요한 의사인것 같습니다. 

아직 그런 수준인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야 

다음 환자를 편안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김순자 2013.10.22 10:21 신고

    선생님!!
    독감 폐렴주사 맞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타이레놀 먹고 은행나무숲 다녀왔습니다
    낙산사 바다 코로 숨쉬기 입으로 숨쉬기
    제몸에 있는 구멍들 가을 공기에 취해
    호사를 누립니다
    하루쉬고 가을 소 금강산 소금강
    제몸에 난 구멍들이 또 호사....
    계속 타이레놀 복용해야했습니다 쳐져있는것보다
    나았습니다
    다시 불면증이 생겨 약먹고 좀 잡니다 ㅎㅎ
    불면증 관절통 근육통 이딴거 이젠 다 익숙해지고 문제없어요
    암도 다시 활동하려면 하라지요 시간이 흐르는데요 뭐...
    의연히 지내지만 검사결과 보는 외래시간은
    대기 1분전부터 가슴뛰고 다리후들거리는거 늘 그러네요
    만약 결과가 않좋더라도 급 실망하고 분노하는건
    제 스타일 아니지만 막상 닥치면 저도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ㅎㅎㅎ
    오늘 블로그에 선생님 글 있어서 반갑고 좋았습니다
    지치실때마다 잠시 창밖 내다보며 스트레칭이라도요 쌤~~
    응원합니다 쌤~
    저도 잘 지내겠습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0.31 05:47 신고

      내 주위의 좋은 경치들 잘누리고 계신거 같아 부럽습니다.
      항시 몸도 찌뿌뚱하고 순간적으로 마음에 불안함이 오지만
      일상적으로 나의 몸과 마음을 다지고 노력하시는 모습에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보냅니다.
      저도 응원할께요.
      늘 감사합니다.

  • 윤경아 2013.10.22 11:50 신고

    제가 항암 1차 지나고 샘이 제 가슴 눌러보시곤 화들짝 놀라시며 많이 줄었다고 기뻐해주셨을 때 저도 넘 좋았지만...저희 친정엄마는 이후 걱정근심이 사라진 듯해요. ㅋㅋ 정말정말 감사했어요~~~^^
    오늘은 4차 마치고 유방촘파 하러 온 날입니다. 온 김에 저도 안산에 함 가볼까 해요. ㅎㅎ 물어물어 가볼라구요~^^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0.31 05:49 신고

      안산은 다녀가셨는지...
      이제 치료의 반이 지나가는군요.
      너무 먼 미래를 보지 마시고
      이번 주기가 무사히 넘어가도록 그것만 신경쓰세요
      에반겔리온? 책 이름이 그거라고 하셨나요?
      서점가면 한번 볼랍니다. ㅎㅎ

  • 2013.10.22 23:05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0.31 05:52 신고

      항암치료로 인한 저림은
      대개 발끝에서 시작해서 서서히 위쪽으로 올라오는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벅지 바깥 쪽 저리는 증상이 원래 있었던 건지
      최근에 나타나는건지 잘 모르겠는데요
      지금 말씀하시는 건 척추쪽 증상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디스크나 척추관 협착증 때 표현하시는 양상같은데
      그건 엑스레이 찍어보고 의사가 진찰을 해봐야 합니다.
      항암치료와 관련된 신경저림 증상은 6개월에서 2년까지 지속될 수 있으니 결국 경과관찰하고 심할 때는 약 먹으면서 버티는 거구요
      항암치료와 관련이 없는 다른 척추 병이라면
      일반 정형외과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면 될 거 같습니다. 일단 MRI 같은 고가의 힘든 검사보다는 단순 엑스레이를 먼저 찍어보게 될 겁니다.
      제 생각에 우리 병과는 상관이 없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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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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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을 드렸던 내 마음 


75세 이상 연세가 많으신데 항암치료를 꼭 해야 하는 분들

신장기능이나 심장기능이 좋지 않아 갑작스럽게 상태가 나빠질 수 있는 분들

평소 만성질환으로 전신상태가 좋지 않고 병세가 위중하신 분들

그런 분들께 명함을 드려 왔다.


암 치료의 긴 여정에는 늘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병이 나빠지면서 그러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지만, 애를 써서 위기상황을 극복하면 또 소중한 삶의 시간이 주어지기도 한다. 나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 회생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었다. 그런 내 욕심에 명함을 드렸다.

 

환자들은 자기 주치의 명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로를 얻는 것 같았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모르겠을 때, 그 누군가에게, 특히 의료진에게 연락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나는 이렇게 위중한 환자들에게 명함을 드려 왔는데, 환자들은 생각보다 별로 연락을 많이 안하시는 것 같았다. 나의 처지를 배려해 주시는 것 같다.     


지난주 검사를 하고 왔는데 결과를 미리 알려줄 수 없겠느냐, 입원 일정이 연기되고 있는데 빨리 입원하게 해달라, 이런 문자를 받았을 때는 솔직히 기분이 나빴다. 이런 푸쉬를 받으려고 전화번호를 알려드린 건 아니었는데그래도 지난 3년간 2-3번 정도에 불과하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직접 한 것도 아니고 문자를 보낸 건데 뭐….



 

그녀는 항암치료를 해도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단 한번도 약제에 좋은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나빠지기만 했다. 그러는 와중에 자꾸 혈전이 발생해서 폐정맥이 막혀 숨이 차기도 하고 다리 정맥이 막혀 다리가 퉁퉁 붓기도 했다. 케모포트를 넣은 쪽 팔 혈관이 다 막히는 바람에 심장으로 혈류가 흐르지 않아 얼굴이 퉁퉁 붓기도 했다. 주사약을 쓰면 괜찮은데 먹는 약을 쓰면 다시 혈전이 재발하였다. 혈전 때문에 늘 조마조마 하였다. 매번 응급실행이었다


그 분이 중환자실에서 혈전용해제를 쓰고 퇴원하시던 지난 겨울, 내 명함을 드렸다. 그 이후로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병은 꾸준히 나빠지고 있다. 이제 쓸만한 항암제가 없는 상황이다. 나빠지는 정도가 심하지 않아 최근에는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그냥 경과관찰만 하고 있다. 무리해서 효과도 별로 없는 항암치료를 계속 하는 것보다는 좀 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때 호스피스와 임종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 했었어야 했을까?


몇일 전, 외래를 보는 중에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환자가 아침에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며 쓰러져 집 근처 병원 응급실로 왔는데 지금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는 문자였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외래를 보는 날이라 전화를 할 여력이 없어 레지던트를 시켜 그쪽 병원 상황을 알아보게 하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마 또 혈전이 생겨서 심장주위 관상동맥이 막힌게 아닐까 짐작되었다. 내가 직접 전화를 할 수도 없었고 설령 전화를 해 봤자 도움이 될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2-3일이 지나 환자가 사망했다는 소식과 함께 나를 원망하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또 몇일이 지나 나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는 문자를 보냈다. 몇일 간격으로, 또 한번 오면 몇분 간격으로.


그들 부부는 금술이 좋았다. 늘 함께 외래에 오셨다. 치료가 잘 되지 않는데도 나를 잘 믿고 따라주었다. 긍정적으로 살려고 열심히 노력하시는 좋은 분들이었다. 부인을 잃은 남편은 주치의인 내가 자기 부인의 마지막을 책임져주지 않은 것에 대해 원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려고 한다. 한번 얼굴 보고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은데 문자를 자꾸 보내신다.

그런 문자를 자주 받게 되니 나도 힘들다. 하필이면 요즘 다른 환자로부터 그런 원망성 문자를 자주 받고 있다. 나를 욕하는 내용도 있다. 입원하게 해달라는 문자도 많이 온다. ‘지금 힘든데 어떻게 할까요그런 상의가 아니라 입원장 발급해주세요그런 명령조의 말투도 나를 거슬리게 한다.  

 



나는 진료실에서 미쳐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나의 블로그를 이용한다. 누구나 비밀글 형식으로 글을 올려 관리자인 나만 볼 수 있게 질문을 할 수 있다. 우리 환자들이 자기 이름과 병원등록번호를 밝히고 질문을 하면 나는 EMR로 환자 정보를 확인한 후 답변을 한다. 외래 시간이 너무 짧으니 이렇게라도 환자들과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암이라는 병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만, 병과 관련된 증상, 치료와 관련된 증상, 부작용도 다양하고, 치료기간이 길어지면서 생기는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 등도 만만치 않다. 한번 외래에 40-50분씩 시간을 할애하며 진료하는 외국 시스템과 비교하면 뭐하겠나. 나는 5분 진료의 한계를 블로그를 통해 극복하고 싶었다. 전체 시스템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난 최소한 내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블로그에는 매일 암환자를 진료하면서 느끼는 나의 고민을 담은 글을 올리기도 하는데, 환자들이 그걸 읽으면서 의사인 내 입장을 잘 이해해 주는 것 같았다. 내가 보험회사 소견서를 쓰면서 왜 열을 받는지, 왜 환자가 돈을 내겠다고 해도 비급여 약제를 못 쓰는지, 러시아 환자에게 40분 이상 진료시간을 할애하는 것에 대해 왜 열을 내는지, 왜 병이 나빠지는데도 치료하지 않는지, 왜 미리 검사하지 않았는지 등등. 사회제도적인 것에서부터 의학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내가 암환자를 진료하며 느끼는 어려움, 갈등을 일기처럼 블로그에 기록해 왔다. 그들은 나의 고백(!)에 동참하여 나의 상황과 심정을 이해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약처방에 실수가 있어 수납을 다시 하고 약 처방전을 다시 받게 되어도 실수를 눈감아 주는 것 같았다.



환자들의 이야기를 사례처럼 기록할 때는 특별히 주의를 많이 기울인다. 환자 사적 정보가 공개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환자와 찍은 사진을 올릴 때는 미리 양해를 구하기도 하고 블로그에 글을 올려도 되냐고 미리 묻기도 한다. 그렇게 주의한다고 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데 최근에 올린 글 하나가 문제가 되었다. 환자 자신은 괜찮다고 했지만, 환자를 알고 있는 주위 사람들과도 관련이 있어서 글을 삭제하게 되었다. 내 블로그에 올린 글을 지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여기저기 연락을 해서 관련 글을 다 삭제해 달라고 부탁을 해야 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아주 많이 소심해져 있는 상태이다

환자를 위해서, 소박한 마음으로 실천했던 일들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몇가지 경험을 하고 나서 그렇다. 여기저기서 욕 먹고 싫은 소리 들어도, 내 환자에게 만큼은 최고의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정작 환자들에게 원망을 듣고 후회되는 일들이 생기고 보니 새삼 내 자질이 의심되고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은지 3주가 지나가고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으니 환자에 대한 마음도 멀어지는 것 같다.

어떤 인간관계에서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뜨겁지 않은 마음으로, 너무 썰렁하지 않은 마음으로, 너무 심각하지 않은 마음으로 환자를 대할 수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 지금 배움과 고행의 시간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엊그제 SNS로 한 선생님께 메시지를 받았다. 우리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집이 지방이시라 댁 근처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으시는 환자를 만났는데, 그 환자를 진료하신 후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셨다. 나를 좋은 의사를 기억하는 환자들이 있으니 힘내시라는 격려의 메시지.


이제 많이 쉬었으니 힘 낼 때가 온 걸까

 

  • 2013.10.01 12:29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0.05 18:33 신고

      요즘은 자꾸 쉬게 됩니다.
      재충전이 잘 안되네요.
      따뜻한 격려의 말씀에 저도 기운을 얻게 됩니다.
      감사해요.

  • 워니아빠 2013.10.01 15:06 신고

    선생님은 정말 좋은 의사세요.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0.05 18:33 신고

      아니에요
      매일매일 한계를 느낍니다.
      ㅠㅠ

  • 김순자 2013.10.01 15:17 신고

    선생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기쁨도 슬픔도 모두다 이해하고 공감해요
    마음이 아픈 환자 보호자인지라
    지금 당장은 서운한 감정이 앞서
    선생님이 원망스럽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 추스려 이성을 갖게될거예요
    저도 선생님 명함 갖고 있어요
    갈비뼈 수술할때요 ㅎㅎ 그때 주셨어요
    블로그 출석하며 저도 선생님 이야기 공감하며
    감사한데 요즘은 좀 뜸하셔서 어머니 충고때문이구나 생각했어요 그 말씀 백번 맞거든요
    저는 요즘 화초키우고 산에 다니며 잘지냅니다
    다 적응하게되는군요 앞으로도 잘 적응할껍니다
    선생님 생각하면 하옇튼 늘 감사해요
    선생님 산에 가보세요
    그리고 다시 힘내세요~~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0.05 18:32 신고

      산에 가서 나무보고 오면 훨씬 나은데...
      요즘 그럴 시간도 없어서요
      조금씩 나아지고 계신거죠?
      저도 늘 화이팅 외쳐드릴께요.

  • 2013.10.01 17:48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0.05 18:31 신고

      아직도 블로그에 들어오시다니...
      이제 들어오지 마세요.
      다 잊고 훨훨 날아야죠.
      그래도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 2013.10.01 18:03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0.05 18:34 신고

      감사합니다.
      치료방침은 정하셨나요?
      잘 이겨내세요.
      힘든 시간이지만
      그렇게 이겨내만큼
      더 좋은 시간이 올거에요

  • 영상의 2013.10.01 19:39 신고

    저는 영상의라 선생님의 기분을 손톱만큼이나 이해할 뿐이겠지만.. 어느것이나 좋은면이 99개여도 나쁜면 1개가 있다면 망설여질 수 밖에요 ..ㅠㅠ 힘을 못드릴 뿐이지만 조용히 응원하고 있는 후배가 한명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힘내세욧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0.05 18:31 신고

      감사합니다. ㅠㅠ

  • 2013.10.01 21:02

    비밀댓글입니다

  • 대구환자 남편 2013.10.01 23:35 신고

    그래도 선생님은 제가 아는 한 가장 환자Friendly한 의사선생님입니다.
    힘 내시고, 일희일비하지 마시고 지금처럼 계셔 주십시오.
    저는 보호자이지만, 제 처와 같이 선생님을 믿고 의지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마 그 분도 우선의 서운함이 앞서 그러시지만 속으로는 여태 까지의 선생님의 관심에 고마워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고맙습니다.

  • 김정선 2013.10.02 11:00 신고

    선생님 맘이 많이 힘드셨군요...그분들은 상대방 생각 안하고 당장 자기 앞에 닥쳐 있는 것만 생각해서 그럴거예요....그래도 선생님을 좋아하는 분들이 더 많아요...그중에 저도 포함되구요....선생님 만나뵈니 기뻤어요...힘네세요~~ 10월이 시작되었네요...환절기에 감기조심하시고 기쁘고 행복한 한달 보내세요...화이팅!!!!!!!

  • 슬기아빠 2013.10.02 13:12 신고

    그랬었군요. 그래서 아주 긴 시간 동안 침묵했었군요. 선생님께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겠습니다. 최근 제 직장 동료 중에 암 말기 상태라 수술도 못할 지경에 이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 생각하면 암 이란게 얼마나 무슨운 일인지, 그나마 제 아내는 얼마나 다행인지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선생님만큼 환자에게 잘 해 주시는 분,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전처럼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세요.

  • BlogIcon 진소연 2013.10.02 18:18 신고

    선생님 마음이 참 귀하세요 기운내셨으면 해요 많은 환자분들과 가족분들에게 위안이 되실거예요

  • 2013.10.02 20:12

    비밀댓글입니다

  • 2013.10.02 20:51

    비밀댓글입니다

  • 들들이아빠 2013.10.04 00:13 신고

    교수님! 교수님은 의사지 성직자가 아닙니다
    지금만해도 우리나라의 척박한 의료현실에 작은 발걸음을 하고 계신답니다 화이링~~

  • 2013.10.04 09:02

    비밀댓글입니다

  • 손님 2013.10.05 13:01 신고

    안녕하세요. 우연히 블로그를 알게되어 글 하나 읽고는 밤새 정독했습니다.
    어릴때 의사를 꿈꾼적이 있는데 그때 꿈꿔왔던 이상형의 의사상(?)이 선생님이신 것 같아요.
    프로이시면서도 가슴따뜻한...
    살면서 우리모두는 언제 어떻게 아프게될지 모르는데 선생님처럼 좋은 의사선생님이 계신다는 생각에 안심도 되고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늘 힘내세요. 응원하겠습니다.

  • 2013.10.05 21:58

    비밀댓글입니다

  • :) 2013.10.10 13:51 신고

    트위터에서 선생님글 보고 블로그까지 오게 되었는데,
    명함을 주셨다는 문장을 읽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누군가에겐 그저 의사선생님의 명함 한장 일수도 있으나,
    선생님의 환자에 대한 책임감, 애정이 그 건내진 명함 한장에
    모두 녹아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부디 환자들이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선생님의 마음이 헛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응원하겠습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0.13 19:28 신고

      응원 감사합니다.
      처음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기란
      누구나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 2013.10.18 19:44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0.20 14:26 신고

      누구신가... ㅎㅎ

  • 지적카리스마 2013.11.02 11:22 신고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교수님께서는 이미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계신 분 같습니다. 그러한 열정을 볼 때마다, 빨리 소진되진 않을까하는 우려와 염려가 교차하고는 합니다. 기운내시고, 항상 교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후배의사들과, 교수님을 따르는 뭇 환자들을 보시며 화이팅하시길 바랍니다. (왠지 주제넘은 소리같네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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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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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하는거

대학병원 횡포 아니야?


환자 드나드는 틈에

진료실 문이 열리니 

밖에서 소리치는게 들립니다.

목소리를 듣자 하니 누군지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진료하는 환자의 남편인 것 같습니다. 


그는 

내 앞에서는 별로 싫은 소리 안하시고

늘 네네 하십니다.

예의를 갖추고 저를 대해주시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진료실 밖에 나가면 외래 대기실이나 간호사들이 앉아 근무하는 스테이션 앞에 와서는

큰 소리도 많이 치고 간호사들에게 싫은 소리도 많이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제가 약처방을 빼먹거나 진단서 요청을 받아놓고도 미쳐 작성하지 못해

번거로운 일들이 생긴 것인데, 

정작 저에게는 아무 말씀 못하시고 애꿎은 간호사에게 역정을 냅니다.


환자들은 마음 속으로 의사에게 불만이 많아도 정작 민원을 내지 않습니다.

혹시 민원을 제기한 나의 신상 정보가 담당 의사에게 들어가서 내가 치료받는 과정에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불만을 간호사에게 퍼 붓기도 합니다.


한편에서는

지나친 혹은 과도한 소비자 주권의식 때문에 어이가 없는 민원이 쇄도하는 현실도 존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소심한 환자들, 정당한 요구도 제대로 못하고 참을 인자를 그리며 병원을 다니는 환자들이 더 많습니다. 


내 이름으로 외래를 개설한 지 2년이 지났을 무렵, 

나의 진료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환자들은 어떤 점에 불만이 있을까 궁금해서 

병원 민원을 담당하는 팀에 문의를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최고에요.' 

그렇게 나를 친절 의료진으로 추천을 하는 일은 쉽지만 

'선생님은 이게 문제에요. 이런 점은 개선해 주세요' 

그런 불만을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일은 환자로서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제기한 민원이 있다면 그걸 알고 

나의 진료 행태를 고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서 문의를 해 본 것입니다.

그렇지만 담당 직원은 환자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문제라 하여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쓴 소리를 달게 받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비판과 지적을 받고 그걸 고칠 줄 알아야 나의 발전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서

용기를 내어 질의해 왔는데 관련 정보를 얻지는 못한 셈입니다.


의사들 사이에 '동료 평가'라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내가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상황을 직접 곁에서 보고 모니터링할 기회는 없기 때문에

임상 의사로서 진정한 나의 모습은 

동료 그 누구도 제대로 알기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성격은 무뚝뚝하지만 의학적으로 제대로 된 결정, 정확한 설명을 하는 의사도 있고

친절하지만 겉도는 말만 하는 의사도 있을 겁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전자와 같은 스타일은 별로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의사가 봤을 때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의사일 수도 있습니다.

시각차가 있기 마련이죠.


명절 연휴 전이라 그런지

어제 월요일 외래는 유난히 환자가 많고 진료시간도 1시간 이상 지연되었습니다.

예정된 진료시간이 30분 지연된 환자는 파란 색으로,

1시간 지연된 환자는 노란 색으로 색깔이 바뀝니다.

노란색 환자들이 한두명씩 생기기 시작하면

내 마음은 너무나 부산해집니다.

계속 시계를 보면서 진료를 하니, 아마 나를 보는 환자도 불안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늦어지면 당일 항암치료를 못 받고 다음날 다시 오시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오후 4시가 넘어가면 제 마음은 너무나 바빠집니다.


그렇게 부산한 나의 마음은 환자 진료에도 영향을 미쳐서 진료를 본 환자도 불만이 생기고

그렇게 불만을 갖는 환자에게 진료 설명을 하는 간호사도 힘이 듭니다. 

외래에서 환자 진료에 문제가 없고 원할하게 진행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의사인 저의 능력이자 책임인데

애꿎은 간호사만 

환자에게 들볶이고 

시간에 쫒겨 신경질을 내는 나에게 싫은 소리를 듣습니다.


점심시간도 없이 종일 이어진 긴 외래 진료를 마치고

나는 의례적으로 '수고하셨습니다' 썰렁한 한마디를 남긴 채 진료실을 나서려고 하는데

'네' 라고 조용히 대답하는 그녀의 지친 얼굴에 눈물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순간 

내가 나이도 많고

윗 사람인데

이렇게 처신하는 내가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선물도, 변변히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눈물만 안겨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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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 열 나고 아프면

외래가 열리지 않으니 

응급실로 오셔야 합니다.


명절 때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시구요

명절 음식 주의해서 드세요.

기름기 많은 전 같은 걸 많이 드시면

소화도 잘 안되고

설사할 수도 있습니다.

송편도 꼭꼭 씹어서 잘 드셔야지, 안 그러면 체할 수 있어요. 조심하셔요.


항암치료를 한 후 10-14일 사이가 걸려있는 분들은

백혈구 수치가 낮아서 열이 나기 쉬우니 감기걸리지 않게, 설사하지 않게 조심하세요.


만약 열이 나면 일단 타이레놀같은 약을 한번 정도 드시고 열이 떨어지는지 관찰해 보시고

다시 열이 나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열이 반복적으로 나게 되면 병원에 와서 피검사를 하고 항생제를 처방받아 드시거나

증상이 심하면 입원해서 항생제 주사를 맞으시는게 필요합니다.

수목금은 외래가 열리지 않으니 응급실을 이용할 수 밖에 없겠지만

토요일은 종양내과 일반외래가 열리니 토요일 당일 접수를 하고 외래로 오셔요.


컨디션이 왠만하면 가족들과 함께 추석을 보내시라고 많이 퇴원을 시켰는데

여전히 퇴원할 컨디션이 못되서 입원하고 계신 분들도 있고

이 기간동안 돌아가실 가능성이 높아서 임종을 눈앞에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명절에는 더 마음이 무겁네요.


부디 모두에게 몸과 마음이 편안한 한가위가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 슬기아빠 2013.09.17 11:12 신고

    교수님도 추석 명절 잘 보내세요. 푹 쉬시고 비염도 많이 좋아지셔서 건강해지세요. 그래야 환자 돌보는데 덜 힘들지 않을까요. 우린 집에서 그냥 쉽니다. 난 여행을 가고 싶은데, 집 사람은 아무데도 가지 않을려고 합니다. 다 경제적인 이유와 차가 밀린다는 이유로.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09.26 21:46 신고

      이렇게 명절을 챙겨 인사 주시니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꼭 부인과 여행가세요.
      시간이 좀 지나가면 몸과 마음에 여유가 있으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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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으로 진단받고

설령 재발, 전이성 암으로 진단받았다 하더라도

나는 환자가 원래 자기가 했던 일을 계속 하시기를 바란다.

그래서 

토요일 나만의 VIP 진료, 사실은 직장인을 위한 항암치료 외래를 열곤 한다. 



위암으로 수술 받고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았다.

TS-1과 cisplatin 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cisplatin 급성독성으로 이명이 생겨 cisplatin 은 중단하고 TS-1만 1년 유지하였다.

그리고 3년이 지났는데...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시행한 정기 검진 CT에서 부신에 재발이 의심되는 병변이 발견되었다.

다른 곳에는 병이 없이 부신에만 병이 있어 재발을 확인할 겸 제거 수술을 하였다. 재발이 확인되었다. 다행히 다른 곳은 아직 의심할 만한 곳이 없다. 눈에 보이는 병이 없어도 항암치료를 해야 했다.  


재발한 위암에 준해 토요일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그는 대기업 샐러리맨이다. 

어렵게 입사한 첫 직장. 

아직 미혼.

지금 부서에서 일한지는 아직 1년이 채 안되었다. 

겨우 분위기 파악하고, 업무에 익숙해지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게 되었다. 안 그래도 감원바람이 부는데 이제 와서 재발했다는 사실을 알리거나 항암치료 한다는 이유로 매월 병가를 내면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눈치도 보이고 윗사람들도 나를 호의적으로 생각할 것 같지 않다. 요즘 같이 기업이 힘든 시절, 야근도 많고 업무량도 많은데, 항암치료를 받는다는 이유로 빠지기 어렵다. 

TS-1만 먹을 때는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이번에는 두가지 약으로 다시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니 또 독성이 발생할까봐 걱정도 되고, 다시 또 재발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라고 하니 마음도 우울하다. 

환자 뒤에는 항상 아버님이 서 있다. 우리 아들 다시는 재발하지 않게 해달라고 나를 만날 때마다 간곡히 말씀하신다. 아주 부담스러운 아버님의 간청이다. 


환자는

이제 직장은 포기하고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지 고민하고 있다. 

아직 미혼이라 직장을 그만두고 치료를 받으면 부모님께 의지하면서 지내게 될텐데 그건 별로 원치 않는다. 안그래도 부모님 많이 애타하시는데 하루종일 얼굴 쳐다보고 지내는 것도 힘들 것 같다. 

만약 지금 직장을 놓아버리면 복귀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이 나이에 직장이 없으면 앞으로 좋은 여자를 만나도 결혼하기 어려울텐데...

지금 수술하고 눈에 보이는 병이 없기는 해도, 또 재발될 수 있을텐데...

환자는 여러가지로 갈등이 많은 눈치다.

복강경 수술이라 그리 힘들었을 것 같지 않은데 순식간에 4kg 이상 몸무게가 빠져 버렸다. 


약물 투여시간이 길지 않은 옥살리플라틴과 먹는 약 젤로다를 병용 요법으로 하여 치료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3주에 한번 하는 항암치료는 매주 토요일에 하기로 했다. 내가 매주 토요일 외래 진료를 여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체력이 견디는 한에서 항암치료와 직장생활을 병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지원하기로 했다. 


토요일 진료의 한계상 검사 예약 등이 불편할 수 있음을 감안하시라고 했다.

그래도 인생은 기싸움이니 기 한번 잘 모아보라고 격려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니, 내 동생 대하듯 각별히 진료해주고 싶다.

그래서 꿋꿋하게 이 시기를 잘 넘기고 정상적인 생활을 잘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막 개강을 맞이한 대학.

환자는 교수님이다.

개강 첫 주인데 갑자기 병이 나빠져서 입원을 하시게 되었다. 

외래에 오셨을 때만 해도 아주 힘들어 보였는데, 

다행히 폐에 고인 물을 빼주고 나니 컨디션이 많이 회복되셨다.

교수님을 위해 주말 항암치료 계획을 세워본다. 

치료효과가 좋으면 얼마든지 주말에 항암치료 하실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드렸다.

환자가 좋아지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배려해 드릴 수 있다. 

우리 교수님이 이번 학기 정상적으로 수업을 잘 하실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가능한 당신 하시던 일을 계속 하셨으면 한다. 

힘이 되는 데까지 자기가 전문가로 일하는 일터에서 생활하셨으면 좋겠다.

병 따위는 성가시지만 달고 다니는 것이라 생각하고

평생했던 내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지내시게 하는게 내 소망이다. 

 

지금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원하고 염원하며 이번 항암제의 치료반응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확실한 지표나  분석 방법이 나와서

미리 효과와 독성을 예측하고 

효과가 없을 땐 약도 빨리 바꿔서 환자가 쓸데없이 고생하지 않게 하고 

그런 치료를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마음이 애타지는 않을텐데...


여전히 

지금의 나는

이번 주말 항암제를 시작한 이들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

인생에 앞으로 주어진 시간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시간동안 보람차게 행복하게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일하고 사랑하고 

암에 항복하지 않고

지금의 어려움을 꿋꿋이 이겨내는 영웅이 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아직은 그런 수준이다.

암치료라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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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진료는 여유가 있다.

내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생님 환자들도 진료하는 일반 외래이기 때문에

특별히 치료적 결정을 하는게 아니라 

피검사 결과 확인이나 필요한 약을 처방하는 등 비교적 마음이 가벼운 진료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해 나에게는 다소 낯선 병을 가진 환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40대 여자 구강암 환자.

수술하고 방사선치료하고 항암치료를 다 했는데  

2년만에 수술 부위에서 재발이 되었다.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첫 치료 이후 외형적인 변화도 심했고, 

얼마전 재발하면서 누공이 생겨서 

음식을 먹으면 새기 시작한다. 

그래서 환자는 마시는 것만으로 연명하며 지낸다고 한다. 

위로 직접 튜브를 넣는 시술(Gastrostomy)에 대해 설명드렸다.

비록 튜브를 넣더라도 

영양 상태를 개선해야 

지금 받는 항암치료도 덜 힘들게 받을수 있고 몸 컨디션도 더 잘 회복된다고 말씀드렸다. 

먹는게 시원치 않으니 재발 이후 몸무게가 20kg 이상 감소하였고 무슨 약을 처방하여도 잘 먹지 못한다.

단기간에 이정도 살이 빠지면 휘청휘청 어지럽고 힘들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치료받고 맨날 가만히 집에 누워있기만 하면 어떻게 하냐고 다그쳤다. 환자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지금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 환자도 아닌데 더 다그칠 수는 없었다. 



75세 할아버지 소세포 폐암. 

진단 당시부터 소세포암 확장병기라 

예후가 좋지 않은 유형에 속하기도 했거니와

이 항암제 저 항암제로 치료를 해 봤지만 서너번 만에 병이 계속 나빠지기를 반복.

더 이상 항암치료 하지 않고 경과 관찰만 하기로 했는데

그 사이에 겨드랑이에 큰 종양이 생겨서 팔이 퉁퉁 붓기 시작한다.

겨드랑이에 방사선 치료를 해서 종양크기 자체는 줄어든 것 처럼 보이는데, 

바깥쪽 피부가 괴사되어 안쪽의 종양이 노출되어 보인다. 거기로 진물과 피가 계속 난다. 

피부에 구멍이 뻥 뚫려 있고 길을 따라가 보면 종양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전기소작술로 지혈을 하기 어려워 보인다. 계속 외래에 와서 피검사하고 수혈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CT만 봐도 꽤 아플 것 같다. 그동안의 처방을 보니 진통제도 계속 증량이 되고 있었다.  

요즘 진통제 어떻게 드시고 있는지 여쭤봤더니 

두달전에 처방된 아주 소량의 진통제를 드시고 있다고 한다. 

이걸로는 통증 조절이 안 될텐데 싶어, 

증량해서 처방한 약들은 어떻게 했냐고 했더니 

한번 먹고 나서 부작용이 심해 그 뒤로는 처방해 줘도 약을 안사고 처음에 처방받은 약을 아껴먹으면서 견뎠다고 한다. 

이런. 


암환자에게 약을 처방할 때 특히 진통제를 처방할 때는 

마약성 진통제에 관한 교육, 부작용 및  대처방안 등을 함께 설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진료실에서 내가 주로 처방하는 약들의 실물을 약통에 보관해 두었다가

환자에게 이 약은 왜 주는 건지, 이 약을 먹고 효과가 없으면 저 약을 먹으라는 식으로

약을 직접 보여주면서 교육을 한다.

아주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료가 밀리고 바쁘면 그런 거 따져서 교육할 여유가 없다. 그러면 환자가 제대로 알아서 약을 먹는지 어쩐지 모르겠다. 최초로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에게는 코디네이터가 수첩에 약 사진도 붙여주고 약 별로 설명도 해준다. 약국에서도 추가적인 설명을 해 준다. 그러나 최초 교육에는 비용을 청구해서 받을 수 있는데, 그 다음부터는 안된다. 그것도 비급여라 환자들이 부담스러워한다.  

CT 등의 검사는 보험으로 인정을 해주면서 

설명과 교육은 보험이 되지 않으니

비급여 서비스를 계속 확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약 설명이나 부작용 관리 등을 교육하고 사후적으로 추적관찰하면서 모니터링하는 것은 

환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참으로 질 높은 서비스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가뜩이나 병원 수입이 감소하고 있는데 

이런 걸 담당할 간호사를 새로 고용한다든지, 다른 일 제쳐두고 이 일을 하라고 하면, 

현재 시스템에서는 경제적 이득이 감소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부작용이나 suboptimal 한 치료로 인한 손해를 생각한다면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먹는 항암제를 처방하면 

의사가 처방한 약을 사지 않거나 

약을 샀지만 먹지 않는 환자들도 종종 있다. 

심지어 비싼 표적치료제를 사놓고도 안 먹는 환자들도 있다. 

뼈전이가 나빠진 것으로 생각해서 5년간 호르몬제를 이약 저약으로 바꿔서 처방했는데, 정작 환자는 이 기간 내내 약을 한번도 않먹은 경우도 있었다.   


항암제도 점점 먹는 약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는데

내가 처방한대로 환자들이 약을 잘 먹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될 노릇이다.


그래서 먹는 약에 대한 임상연구를 할 경우에는 다이어리를 써 오게 하고, 남은 약들을 가지고 오게 해서 수거하여 남은 양을 확인한다. 얼마나 약을 잘 먹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환자에서 이렇게 하는게 좋을텐데, 지금의 통상적인 외래 시스템에서 그걸 검토하고, 확인하고, 챙기는 것까지 진행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약을 꼬박꼬박 열심히 먹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앱 서비스를 이용해서 환자의 자가 관리를 돕고

알람 시스템을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먹지 않겠다고 결심해 버린 환자들 마음의 문은 이런 IT 기술로 열 수 없다. 진료실에서 의사가 챙기고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가끔 시간이 나면 환자들에게 약 먹는 패턴을 얘기해 보라고 한다.

식전, 식후, 약 먹으면서 불편한 점, 집에 남은 약이 얼마나 있는지, 지금 먹고 있는 약으로 증상이 잘 조절되고 있는지, 내가 처방한 약이 도움이 안될 경우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등등의 사항을 물어본다. 환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어떤 식으로 처방하고 확인해야 하는지 방법적으로 도움이 된다. 그리고 환자들이 규칙적으로 약을 먹게 하고 부작용을 모니터링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고, 섬세하게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사항임을 알게 한다. 


나는 종양내과 의사이니 

항암제를 처방하고 

다음 CT에서 그 약효로 인해 종양의 크기가 얼마나 줄었는지에 

관심이 쏠리는게 사실이지만 

그외의 보조적인 약제들의 효과와 부작용, 만성질환으로 먹고 있는 다른 약들과의 상호작용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예전에 레지던트 때 마그네슘과 와파린의 모양을 구분하지 못하고

변비 때문에 마그네슘을 먹는다는게 와파린을 먹어 버려서 응급실에 INR 18로 온 할머니가 생각난다.


당분간 

환자들이 

내가 처방한 약을

내가 처방한 방식대로

잘 먹고 있는지

효과는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대대적으로 한번 점검해 봐야겠다. 


  


  • 종병 문전 약사 2015.06.17 09:06 신고

    고민하시는 내용이 많이 와닿네요
    2015년도 벌써 뜨거운 여름입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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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미국으로 연수를 가셨던 손주혁 선생님이 돌아오셨습니다.


당시 혼자 유방암 진료를 하시던 손 선생님께서 연수가기 6개월 전부터 

막 임용된 저에게 조금씩 환자를 인계해 주셨습니다. 

저희 병원은 조기 유방암 환자는 외과에서 추적관찰을 하기 때문에 

제가 인계를 받아 진료를 계속 해야 했던 손 선생님 환자들은 모두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이었습니다.


나름으로 애써서 진료했지만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2년전 손주혁 선생님이 정한 치료방법을 변경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잘 계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손주혁 선생님은 이런 분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 정말 반가와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유가 어찌 되었건 환자들은 주치의가 바뀌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정이 든 것도 있고

지난 2년 이상의 시간동안 자기에게 있었던 이벤트를 다 알고 있는 제가 

계속 진료하기를 바라시지만 

지금처럼 유방암 진료가 저 한명에게 몰려 있다보면

종일 진료를 하는 월요일 수요일이면 늘 100명이 넘는 진료를 해야 합니다. 

힘들게 치료받는 환자들 손 한번 잡아주고

속상해서 눈물 흘릴 때 마음 한번 도닥여줄 시간도 없이

항암제를 정해서 치료받으시라고 결정하여

등떠밀어 진료실에서 내보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인것 같습니다. 

진료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환자 진료수가 적정하게 배분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작 진료시간에

이제 손 선생님이 연수에서 돌아오셨으니 그 쪽으로 예약을 해드리겠다는 설명도 제대로 못한 채 환자 예약을 변경하고 있습니다.


제일 오래본 환자들이니 

저도 그만큼 정이 들고

서로에게 익숙해져서 편하고 좋은데

저도 이런 헤어짐이 아쉽습니다.


진찰한 환자가 나가고 다음 환자가 들어오는 그 사이에

저는 맹렬히 차트를 정리하고 처방을 내는데

그렇게 하다보면 

들어와서 자리에 앉는 환자와 눈을 맞추고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은채 진료를 시작합니다.

자리에 앉은 환자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기다려주십니다.

아주 예의없는 행동이죠.


그렇지만

지난 2년 이상 나와 함께 치료했던 환자들은

그런 나의 상황을 다 이해해주고

내가 환자들에게 겉으론 싹싹하게 굴지 않아도

많이 고민하면서 치료방침을 정하고 부족한 수준에서나마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제가 기대한 이상으로 많이 참아주시고 이해해 주셨습니다.  

수십명 이상 짧은 시간 내에 

대량으로 항암제 처방을 내다보면

한두가지 약들의 처방에서 실수가 있습니다. 

환자는 돈을 내고 처방전을 받아보고서 그 사실을 압니다.

조용히 외래 방으로 돌아오셔서 담당 간호사를 통해 처방 오류를 지적하시면

제가 처방을 다시 합니다.

그러면 환자들은 다시 돈을 내고 처방전을 새로 받습니다.

그렇게 귀찮은 일을 당하면서도 참아 주셨습니다.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런 환자들 중에

블로그에 들어오시는 분들이 꽤 계신데요

언제든 안부 전해주세요.

간혹 손 선생님께 못 여쭙고 궁금한 사항들이 있으면 비밀댓글로 질문 남겨주세요. 제가 성의껏, 필요하면 손 선생님과 상의하여 답을 드리겠습니다. 언제든지 제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저를 불러주세요. 


여름이면 손으로 만든 부채를

가을이면 손수 쪄 가지고 온 고구마를

심지어 기차타고 오면서 먹고 남은 옥수수를

항암치료 이겨낼려고 배운 뜨게질 솜씨를 이용해 만든 인형을

문방구 좋아하는 나를 위해 예쁜 수첩을

그런 소소한 선물로 당신 마음을 나에게 주신 환자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어쩌면 여자끼리라 더 부담없이, 

격의없이 지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가르침을 주신 환자들도 많았습니다. 


제가 이만큼의 의사 노릇을 하게 된건 다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뜨거운 마음과 사랑을 많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손 선생님께로 진료를 받게 될 환자분들 모두가 

지금처럼 건강하게 계속 잘 치료 받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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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07 17:26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09.08 18:17 신고

      면역치료는 좋은 치료 후보가 될 수 있지만, 아직까지 효과가 입증된 면역치료법은 없습니다. 간혹 면역치료라는 이름으로 치료를 하는 병원들이 있는데요 임상연구로 입증되지 않았으며 보험이 되지 않아 가격이 너무 비쌉니다. 미국에서는 치료반응이 좋을 때 자기 백혈구를 뽑아놓고 면역치료를 하는 프로토콜로 1상 임상연구를 하는 병원도 있지만 아직 한국에서 시행되는 곳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입증이 안된 비싼 면역치료를 하는 것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항암치료를 독성을 견딜 수 있는 선에서 9차나 12차까지 해 보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전신무력감이 심하고 수치가 자꾸 떨어지는 것이 문제지만, 치료반응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니 독성을 견디는 한에서 치료를 더 받으세요. 여러모로 몸과 마음이 힘드시겠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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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진료 현실에서는 

제한된 시간 때문에

환자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기 어려우니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환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2011년 3월 2일 

제 이름으로 외래를 개설하고 입원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하면서

가능하면 매일 글을 올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매일의 나를 돌아보아야 했습니다. 

진료를 마감하고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은 저에게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경험하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내가 의사로 일하는 그 어떤 한 순간에도

환자들은 

나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를 찾는 그 어떤 환자도

자기 마음 속에 우주를 품고 있으나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병과 싸우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블로그 글을 쓰던 초반에는 

환자들이 외래 시간에 주로 묻는 질문들에 대해 글로 답을 하여

비슷한 의문을 품는 환자들에게 정보를 주고자 하는 것이 글을 쓰는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사로 살아가는 일상의 나를 돌아보는, 

우리의 의료 환경을 돌아보는, 

병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는 환자와 가족의 삶을 생각하는, 

내가 일하는 병원을 돌아보는, 

그런 계기들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에 대해, 무언가에 대해

욕도 하고 반성도 하고 

저에게 그런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희 엄마는 

이렇게 내가 쓴 글이 

칼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 거라며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너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네가 그렇게 공개적으로 글을 쓸 수록 너에게 적이 많아지는 것이다,

조용히 살아라

그렇게 말이죠. 


그렇게 매일 글을 쓸 시간과 에너지가 있으면 논문을 쓰는데 집중하라는 무언의 압력도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중요한 지적입니다. 


사실 글을 쓰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고 실재 글을 쓰고 마무리하는 과정에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블로그에 올리는 환자들의 질문에 매일 답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EMR을 열어서 환자의 정보를 확인하고 답을 해야하는 상황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고, 내 환자를 위해 이 정도는 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글을 쓰는 시간은

내 하루를 의미있게 해주는 명상의 시간과도 같았습니다. 

 

환자들은 

다음 항암치료를 받으러 오는 그 3-4주의 시간 동안

집에서 별의 별 생각을 다 하며 이것저것 고민을 많이하고 지내지만

정작 외래에 오면 생각이 잘 안나고

외래 진료가 밀려있는 걸 보면

에이 뭐 나까지 이런걸 질문하려고 하나, 다음에 하지 뭐 그런 마음으로 저에게 질문을  못하시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부족한 의사소통의 현실을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진료받는 환자가 아닌 사람도 블로그를 방문하고

의사인 나의 의견을 묻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자기가 처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내 환자가 아닌 경우에는 

환자에 관한 의학적인 정보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인터넷상으로 답변하는 것에는 한계가 많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아픈 사연도 많고

내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일도 많고

환자들에게 공감을 가지게 될 수록 나의 한계를 더 많이 느끼게 되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좀 멈췄습니다. 

잠시의 멈춤으로 나를 되돌아보고 재충전하는 것이 필요한 시간인것 같았습니다.


할 말은 많은 것 같은데

말머리를 틀 수 없는 것 같은 그 느낌.

그게 제 요즘 심정이었습니다. 


내 마음이 무겁고

혹은 내 마음이 슬퍼도

외래에서 환자를 만나면 

힘들게 치료받는 그를 격려하고 

충분히 공감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려면

내 마음에 내공이 조금 더 쌓여야 하는 것 같습니다. 


시원한 가을바람과 함께 

에너지를 되찾고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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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길어져

병원 출입이 잦아지다 보면

점점 눈에 가시같은 일이 많이 발견됩니다.


환자가 컨디션이 좋다면 병원 출입이 잦을 이유도 없겠죠.


환자 몸이 안 좋으니 

병원에 왔는데

뭔가 일이 제대로 잘 진행되는 거 같지 않고 

의료진들의 검사와 처방, 처치 등에서 손발도 잘 맞지 않는거 같고

믿음이 흔들리고 자꾸 예민해집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불편하고 부당하고 눈에 거슬리는 일들이 더 잘 보이게 됩니다.

병원을 자주 다니다 보면 그만큼 병원 시스템에 대해서 잘 알게 되니까 오류나 에러도 더 잘 보입니다. 


제가 아주 마음을 많이 쓴 환자가 있었는데요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겼는지 모릅니다.

이과 저과 소속도 여러번 바뀌웠어요.

그리고 환자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 앞으로도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만큼만이라도 유지되면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가족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겠지만요.


매우 긴 기간동안

버텨준 환자도 대단하고

옆에서 간병한 남편도 더 대단합니다.

아마 병원비도 많이 나왔을 거 같아요.


오래 병원에 입원해 있다보니

저의 실수, 의료진간의 의사소통 장애, 간호 상 실수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의료진 간의 실수를 인정하고 솔직하게 사과드렸습니다.

그런 실수로 인해 

환자에게 해가 되었거나 치료의 효과가 덜하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사과한다고 마음이 풀어지겠습니까? 

잘못 되었을 때 진심으로 사과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설령 그 일이 환자의 예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 아니었더라도

가족된 입장에서 섭섭함과 분노를 쉽게 누그러뜨리기 어렵습니다.

정말 제 능력껏 '올 인' 해도 다 잘하기는 어려운 직업인 것 같습니다.

  

마음이 풀리시지 않는 모양입니다.

저에게 많이 실망하신 눈치입니다. 

마음의 문을 닫으신거 같아요. 


원래 병이 좀 그래요

어쩔 수 없는 코스입니다.

그렇게 말하기가 어렵네요. 그냥 원망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랫만에 딸이 엄마를 만나러 왔네요. 엄마만큼 예쁜 딸이에요.

해맑게 웃으며 엄마 옆에서 노는 딸을 보며

남편과 가족들의 마음에 멍이 듭니다.

내 마음에도 멍이 듭니다.  

그냥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야 하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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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엊그제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한 증상이 생겼다고 한다.

수년 전에도 그런 적이 있어 

관상동맥조영술을 비롯하여 심장검사를 하신 적이 있었는데

별 문제 없으셨다.

역류성 식도염 증상과 감별이 잘 안되어 가끔 위장관 약을 드려보기도 했다.

증상이 심하지 않으니 흐지 부지 넘어갔다. 


몇일 전부터

잊고 있던 증상이 다시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더 강도가 심하다.

엄마는 왠만하면 나에게 전화 잘 안하시는데 

오늘은 힘들어서 병원에 오고 싶으시다고 한다.


다행히 외래 진료가 없어 엄마를 모시고 진료를 받으러 다녔다.

가운을 벗고 보호자가 되어 

이과 저과를 예약하고 검사하고 약 받고

그렇게 병원을 2-3시간 돌아다니다 보니 

회진도는 거 보다 훨씬 다리도 아프고 기운이 빠진다.


엄마는 

갑자기 아프니까 

작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난다고 하시며 우신다. 

외할아버지는 그보다 더 먼저 몇년 전에 돌아가시고 

자식들은 다 서울에 올라와 있고

늙으막에 가길 어디 가냐고 

원래 사시던 고향에서 끝까지 혼자 지내셨다. 

돌아가시기 2달전에 폐암 뇌전이를 진단받고 병원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제서야 자식들이 외할머니를 제때 못챙긴 것 아닌가 싶은 후회로 다들 침통해 하셨다. 

매년 여름 휴가 같이 보내고 자식들이 순서 정해 돌아가면서 한번씩 고향에 다니러 가고 그렇게 했지만

횟수로 치면 몇번 안되었고 

별로 마음 많이 못 쓴거 같다고 후회하신다.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100일 넘게 매주 수요일 저녁 명동성당에서 가족미사를 보았는데

다들 후회 막급이셨다. 



오늘 엄마를 보니 

나도 후회가 되고 눈물이 난다.

지금까지도 나 뒷바라지 해주시는 엄마.

나 뿐만 아니라 내 가족까지 다 돌봐주시는 엄마.

나 병원 생활 잘 할 수 있게 모든 걸 다 지원해 주시는 엄마.

그런 엄마가 아프다고 하니까 비로소 나도 시간을 낸다.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잘 해야할텐데...




집안 형편이 넉넉치 않아 가족 모두가 일을 해야 한다. 말기암 어머니 병간호를 담당할 사람이 없다.

요양병원으로 모시자니 돈이 많이 들고, 돈이 좀 덜 드는 곳은 그만큼 허술하다.

사실 어머니 컨디션이 꼭 병원에 계실 정도는 아니다. 

잘 못 드시고 기운이 없지만 어디 특별히 아픈 곳은 없다. 

다만 거동이 편치 않아 늘 도와드려야 하고 드레싱해야 하는 관도 두개다. 장루를 가지고 계시니 잘 관리해 드려야 한다. 이번에 통증이 심해져서 병원에 오셨는데, 자식들이 항상 곁에 있지 못하니 할머니는 하루 종일 우두커니 천정만 바라보고 누워있다. VRE 병동에 계시니 자원봉사자 출입도 안되고 휠체어를 타고 밖에 나갈 수도 없다. 

돈이 없는게 문제인 가족이다.



그러나

돈이 많은 가족이라 해도 다른 걱정이 있기 마련. 

돈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들은 자식들과 갈등이 많다. 유산이 문제가 된다.

돈이 없어도 비극적이고 슬픈 일이지만

돈이 많다고 걱정이 없고 행복한 것은 절대 아닌거 같다. 

돈이 많아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벌어놓은 돈은 없어도 똑똑하게 자식 잘 키워놨다고 생각하며

그거 하나 자부심으로 내걸고 살았던 분들도 있다. 

그런데 정작 환자는 아프고 힘들지만 

바쁘고 잘 나가는 자식들은 병원에 올 시간도 없다.  

나는 자식들을 만나기 어렵다. 시간이 없는 자식들을 만나려면 몇번의 스케줄을 조정하여 주말 저녁에 만나야 한다.  


다양한 가족들을 만난다.  

이제는 일종의 만성질환이 되어버린 암을 치료하는 길고 긴 여정에는

그동안 취약하게 유지되고 있던 우리 삶의 모순과 헛점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오늘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외래에서 대기하고 약 받고 검사하는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든다.

인생 별 거 없는데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 별로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조금 더 잘 해야겠다. 

내가 도대체 뭘 위해 이러고 사나 싶다. 


엄마 진료 차트를 훔쳐본다.

엄마는 내가 제일 걱정이라고 하셨다. 

내가 문제였나보다. 













  • 2013.08.16 17:46

    비밀댓글입니다

  • 달콤한 우주 2013.08.19 00:30 신고

    제가 유방암 수술을 끝내고 방사선 치료를 앞두었을 때,
    86세이신 아빠의 방광 결석 수술...
    통증이 심해지셔서 신중히 수술을 검토하고 상의하고
    결국 수술을 통해 100개도 넘는 동글 동글한 돌들을 꺼내셨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 시작 되었어요.
    수술 전날까지 노인복지회관에서
    8년째 일본어를 강의하셨는데
    수술이후 치매 증상이 시작되었지요.
    처음엔 섬망증으로 한두달 이후 괜찮아지실거라 했지만
    두달이 지난 이후에도 배회, 불면, 초조, 화냄, 짜증, 엉뚱한 표현들 등등
    전혀 개선되지 않아
    덕분에 저는 방사선 치료를 받는 내내 4시간정도 밖에 못 잤지요.

    이후 아빠는 MRI도 찍고 뇌기능검사도 하고 혈액 검사를 한 결과
    치매 중기...
    이미 4~5년 전부터 진행되었을거라 하시는데
    워낙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고 평생 가르치시는 일을 하셔서
    가족들이 몰랐다가 수술로 인해 더 들어나게 된거라 말씀하시는데...

    덕분에 딸 다섯 돌아가면서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맛있는 음식, 운동, 건강식품 이외 처방약 등등 집중한 결과
    어떤 부분에선 치매가 진행되고 있지만
    어떤 부분에선 좀 똘똘해지신 것 같아 (아이 같아지셔서^^)
    더 이상 나빠지시지만 않았으면 바래봅니다.

    자유롭게 자신과 일에 몰입해 살다가
    나와 아빠에게 찾아온 큰변화로
    갑자기 예상치 못한 생활들이 펼쳐지지만
    그래도 오래 오래 내 곁에 계시길 바래요~~~

  • 복이맘 2013.09.02 23:51 신고

    교수님 7685129입니다. 외래를 하고오면 교수님은 참 편안함을 느낌니다. 이글을보니 더욱 가깝게도 느껴지고요. 오늘5차를 맞고 부산에 내려오는데 4차후 검진결과가 좋다고하니 좀 두렵지만 남은3차도 열심히 맞고 스고하시는 교수님께 더 좋은 모습모여드리고 싶어집니다^^ 교수님 진료잘봐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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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부러진 3년차 레지던트

말없이 별 내색없이 묵묵히 똑똑하게 일 잘 한다.


상의할 일이 있어서 오늘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 3년차인데 내과 중 어떤 파트를 하고 싶냐고 물어보았다.

내분비나 종양학과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그의 고민의 궤적을 들어본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전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같이 지원하는 동기들의 숫자

먼저 그 파트를 선택한 선배들의 진로

과 분위기와 교수님들


그런 상황적인 요인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요인들을 고려한다고 해서 

요령쟁이, 잔머리 굴리기 그렇게 비난할 수 없다.


실재 여자 레지던트들이 밀리는 파트도 있고

최근 몇년간 취업 성적이 별로 좋지 않은 파트도 있다.

대학에 남거나 개업을 하는 것이 모두 가능한 과도 있지만 

감염내과나 종양내과처럼 개업을 할 수 없는 파트도 있다. 

인력이 이미 포화되서 갈만한 자리가 없는 경우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의 신념으로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로

어떤 파트를 결정하는 것은

대학이나 과를 선택할 때만큼 쉽지 않다. 더 어려운 것 같다. 

살아보니 다 비슷하더라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여타의 모든 것을 다 상쇄시킬만큼 강렬한 열망을 갖고 삶을 추진시킬만한 강한 원동력을 갖게 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은 것 같다.


몇 차례 지나쳐 온 내 인생의 전환점을 돌이켜 보건데 

나에게 그런 강한 열망이 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누구나 반대하고 누구나 만류하는 일, 조건이 좋지 않은 상황도

오로지 나의 신념과 열망으로 극복하고 노력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에게

어떤 원칙으로 진로를 정하는게 좋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였다. 

토요일이라 주중의 피로가 쌓여 심신이 많이 지치고 노곤해서 그랬을까?

나도 신념이 없어진 걸까?

설국열차를 보고 나서 그런 걸까?


어느 정도 갈등의 시간이 지나면 그냥 관성으로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 마음 속 내면에서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지금 차지하고 있는 몇조각 안되는 자리를 유지하느라 급급하게 되는 것 아닐까?

내 삶의 원칙 중 최소한의 몇가지 요건이 충족되면

나머지 힘들고 고달프고 어려운 일들은 그냥 접고 가슴에 묻어둔 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 최소한의 요건을 확실히 하는게 필요하다. 


사십이 넘었건만

그래서 청춘을 위한 각종 시리즈북을 보며 위로와 힐링을 얻기에 시간이 많이 지났건만

그래도 흔들린다.

마음도.

신념도.

꿈도.

희망도. 

 




  • 2013.08.12 02:01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08.12 11:24 신고

      빈혈약은 빈혈검사를 해보고 드시는게 좋겠습니다.
      빈혈약이라는게 철분제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여자는 나이를 먹으면 철분결핍성 빈혈에 잘 걸리지 않아요. 대개 생리양이 많은 젊은 나이게 걸리는 경우가 많죠. 철분을 복용하여 간에 쌓이면 잘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에 나이드신 어르신들의 영양제에는 철분제재를 뺄 정도랍니다.
      지금 어지러움증의 원인은 항암제로 인한 신경손상으로 기립성 저혈압이 생겨서 그런거 같습니다. 신경기능이 손상되서 균형감각을 잘 못 잡는거에요. 그냥 시간이 지나가면 서서히 좋아지구요 어지러운 증상이 유발되는 자세를 피하는게 치료입니다. 앉았다 일어설 때 천천히 하시면 좀 나을거에요.

  • 준서아빠 2013.08.13 10:11 신고

    샘글을 읽게되면 항상 나를 돌아봅니다.

    누가 옆에서 잔소리하는 일이 거의 없어 잘못된 타성대로 살아가게되더군요.

    샘글은 이런 나를 한번씩 돌아보는 기회를 주네요. 복잡한 세상을 사는 아줌마 아저씨로서

    의 동질감을 느끼면서요.

    지난주 외래다녀와서 영수증 정리를 하다가 보니 병원비가 800원 이더군요..

    지금 바깥에선 보편적 복지, 세율등으로 시끄러운데 좀 씁쓸하고 복잡해 집니다.

    의료 복지란 의미가 국민에게 싼거란 의미일까요?

  • 지적카리스마 2013.08.14 15:21 신고

    흔들리는 그러한 마음이야 말로 살아있다는 중거가 아니겠습니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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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된 슬기.


요즘은 대학가는 방법이 너무나 다양해서

요령있게 입시 전략을 짜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사실 그런 걸 잘 모르고 특별히 나만의 대안도 없고 

솔직히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편이다.

오히려 우리 엄마만 안달이다.


슬기 말에 의하면 사람들이 요령이 있다고 말하지만 자기가 보기에 그게 다 그거라고 한다.

그냥 하던대로 하면 된다고 한다.

중요과목 열심히 하고

평소에 국영수 하고

슬기는 아직 문과갈지 이과갈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걸 결정하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예전에는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토익, 토플을 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 그런 건 소용이 없다고 한다. 


자원봉사 점수도 스펙 중의 하나로 이용된다.

그래서 아주 어이없는 프로그램들이 자원봉사로 둔갑하여

대충 시간을 때운 후 자원봉사를 한 걸로 도장을 받아 스펙쌓기에 이용되기도 한다.

슬기는 그런 걸 매우 비판하는 편이다.

자기는 그런 식으로 자원봉사 하는 건 무의미하고 시간낭비라며 맹렬히 비난해 왔다.


그게 무슨 자원봉사냐며 - 예를 들면 공원 휴지 줍기, 그런 걸 왜 고등학생이 자원봉사로 해야 하는 거냐고, 왜 보건소에 나가서 솜뭉치 만들기 그런 걸 자원봉사로 해야 하냐며 비난하곤 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활동이냐며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비판은 잘 한다.

그러나 비판하는 만큼 자기가 뭘 찾아서 할 생각은 안하는 것 같다.


여름방학이 4주밖에 안되는데

학교에서 하는 과학 특강으로 2주를 보내고 나니 2주가 애매하게 남는다.

다른 학원은 안 가겠다고 한다. 


난 슬기에게 우리병원 호스피스팀이 하는 활동 중에 자원봉사자가 필요한 프로그램을 추천하였다.


장기입원을 하는 백혈병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병원 학교가 있는데

거기서 어린이들의 방과 후 과제나 놀이를 도와주는 역할이다.

예전에 내가 본과 1학년 때 재활병원 어린이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아이들 밥 먹는거 도와주던 봉사시간이 생각이 났다. 

애들은 언니, 오빠들이 와서 한시간씩 놀아주고 가는 걸 좋아했다.

슬기도 그런 걸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어린이 학교 아이들은 대학생보다 고등학생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대학생보다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이 더 마음이 통한다고 한다. 


어제 슬기가 병원에 와서 교육을 받았다.

2시간 정도 같이 놀아주면 좋은 환아가 있었는데

마침 슬기가 감기가 걸려서 어제 활동을 시작하지 못했다.

슬기는

단순히 감기걸린 것만으로도 아이들과 접촉에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에 다소는 마음이 쓰였나보다.

별걸 다 주의해야 하는군 

다소는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이번 여름방학은 얼마 남지 않아 자원 봉사를 할 기회가 별로 없지만

이어서 다음 겨울방학에도, 

그리고 내년에도 계속 자원 봉사를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배우지 못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가족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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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알러지가 매우 심한데

그 원인이 되는 물질이 매우 다양하다.

초등학교 때 알러지 항원 검사를 해 봤는데

집먼지 진드기가 가장 강하고

계절에 따라 -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즌이 심한데 - 어떤 나무들에 강한 반응을 보였다.

그 때는 달걀, 밀가루에도 알러젠이 있어서 면역 치료를 4년간 받았다.

천식 때문에 15년 이상 고생한 것 같다. 1년에 한달 이상 결석을 했다.

그땐 의료보험이 안되서 병원비가 아주 비쌌는데 

엄마는 당시 내 키보다 더 많은 돈을 병원비로 썼다고 하셨다. 

천식에 좋다고 하여 고양이 뇌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스무살이 넘어 

그 많던 증상 중에 천식이 저절로 좋아졌다.

원래 그렇다. Allergy March라고 한다. 60이 넘으면 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서른 살 넘어서 눈물 콧물 증상이 심해져 다시 검사해 봤는데 

검사를 하고 나니 항원 항체반응을 한 등판이 온통 시뻘겋게 변했다.  

달걀, 밀가루의 항원성은 없어졌지만, 그 외에도 여전히 강한 항원들이 많았다. 

계절별 꽃가루, 나무들이 많았다. 


검사 결과지를 잃어버려서 알레르기 항원이 뭐뭐 있는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살다보면 

어느 순간에 재채기를 하기 시작하는지, 

콧물이 흐르는지, 관찰해보면 나에게 어떤 물질들이 알러지를 일으키는지 알 수 있다.


어떤 동네를 가면

어떤 산에 가면

어떤 날씨가 되면

찐득찐득한 눈물이 나고 간지럽다.

맑은 콧물이 뚝뚝 떨어지고 재채기를 하기 시작한다. 


운동을 많이 해서 체온이 올라가면 피부도 부풀어 오르고

샤워를 하고 나면 피부에 간지러움증과 발진이 생긴다. 

많이 웃거나 빨리 뛰면 천식이 생긴다. 

한번은 출발하는 기차를 잡아타려고 너무 빨리 뛰었다가 아나필락틱 쇼크에 빠진 적도 있었다.

금속에도 알러지가 있어서 바지 허리춤에 있는 단추 때문에 배를 벅벅 긁기 일수다.


그야말로 나는 알러지의 화신이다. 알러지 교과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병들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알러지를 전공해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오늘도 진료 중에 환자에게 설명을 하는데

갑자기 맑은 콧물이 뚝 떨어졌다.

나는 허겁지겁 콧물을 들어마시지만(!) 이미 떨어진 콧물은 어쩔 수 없었다.

환자에게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죄송하다고 사과하였다.

갑자기 분수처럼 콧물이 터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Allergy attack 이다.

코를 킁킁 거리고

눈을 삐죽삐죽 거리고

재채기를 하는 그런 나를 

환자 자리에 앉아 바라보면 저 의사도 참 안됬네 그런 생각이 드나보다.

그렇게 낑낑대는 나에게 진료 중 진단서 떼어달라는 말을 하는게 미안해서

진료 다음 날 따로 일반외래를 찾아와 진단서를 끊어가는 환자도 있었다.

내가 그렇게 안되 보였나...

그래서 나는 먹는 약으로 조절이 안되는 급성발작같은 증상이 발생하면

진료를 보다가도 주사실로 달려가 안티히스타민이나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는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개시 환자부터 내 상태가 않좋아 보이는지

나를 걱정한다.

몇시간 코풀고 재채기 하고나면 얼굴도 벌겋게 달아오르고 붓는다.

눈도 흐리멍텅해지고 초점을 못 맞춘다.

많은 환자들이 내 상태를 우려한 오늘.

나에게 급성발작을 일으킨 알러젠은 무엇일까?


날씨?


환자?


요즘 뭔가 나를 공격하는 알러젠들이 기승을 부리는 시즌이다.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