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검색 결과

45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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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레이트 어답터(Late adapter)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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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마라톤 풀코스 완주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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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펠로우 탐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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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ason 4는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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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 생존자로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후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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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시스템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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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I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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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 의무기록의 시대, 환자 진료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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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들의 돈은 어디로 새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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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술을 거부하는 그 환자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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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길을 찾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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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어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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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쩜 저런 의사가 있나/어쩜 저런 환자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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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의사가 환자되면, 그냥 '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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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수소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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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가 청진을 하면서 꼭 들어야 할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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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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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어서 몸 아픈것도 힘든데 돈 없는 것은 더 서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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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위한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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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공부를 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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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준비하는 길에 정도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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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의 달, 가족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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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강의는 시작되고 학생은 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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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여 비급여 임의비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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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학회에서 '꼼수'를 나누는 교수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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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선생님의 가운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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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나를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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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슈퍼맨 할머니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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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슬기엄마는 종지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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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아직도 의사와 환자 사이의 거리는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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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우리 병원에 전자차트(Electronic Medical Record)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나는 당시 오더도 제일 많이 내고 차트와 함께 몸부림치며 살아야 하는 레지던트 1년차였다. 시스템이 바뀌었다고 처방을 못 내거나 환자 진료에 차질이 생긴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새로 바뀐 EMR 시스템에 적응해야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정보통신팀에 전화를 해야 했고, 오더를 내다가 막히면 젊고 똘똘한 동기들에게 물어봐서 내가 풀지 못한 당면과제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 젊고도 빠릿빠릿한 동기들은 같은 오더를 내더라도 클릭을 몇 번 하느냐가 나랑 달랐다(물론 그들의 클릭 수가 훨씬 적었다). 처음 가동되는 덩치가 큰 EMR은 클릭 한 번 하고 화면이 넘어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바보 같은 클릭을 한 번 하면 그만큼의 시간을 버리는 셈이었다.

그들은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단번에 시스템을 섭렵하였지만 나는 같은 질문을 몇 번씩 반복하면서 겨우 적응하고 있었다.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누구를 탓할 시간도 없었다. 나는 무조건 시스템을 마스터해야 했다. 그것도 아주 신속하게. 그런 내가 부끄럽거나 한심하다는 생각을 할 시간도 없었다. 파스텔 톤의 화면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컴퓨터 화면에 익숙해지는 데만 해도 시간이 걸렸다.
그러던 내게 교수님들의 외래 차트가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들은 EMR을 사용하지 않고 여전히 종이차트를 쓰고 있었다. 그날 진료사항을 종이차트에 기록하면 외래 간호사가 스캔해서 EMR 차트에 파일을 올리는 식이거나, 전자펜으로 글씨를 쓰면 그걸 EMR에서 그림으로 인식해서 서식파일로 저장되는 방식으로 선생님들의 진료결과가 EMR에 기록되었다. 레지던트나 펠로우들이 외래에 투입돼서외래 받아쓰기를 하는 과도 생겨났다
.
연로하신 교수님들이 새로이 EMR 교육을 받고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도 힘드실 것이고, 교육을 받는다 해도 이걸 현실적으로 능숙하게 쓰기까지는 불편함이 많으실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나도 힘든데, 교수님들은 더 힘드시겠지. 그래도 마음 속 한구석에서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상당히 씁쓸한 일이라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EMR과 받아쓰기


눈 깜짝 하는 사이에 새로운 전자제품, 컴퓨터 관련 상품들이 출시되고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선보인다. 난 그러한 변화에 상당히 둔하고 심지어 저항적이기까지 한데, 그 이유는 내가 불편하고 적응하기 귀찮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새로운 것이 과거의 것과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 잘 모르겠고, 바뀐 뭔가에 다시 적응하는 게 귀찮기 때문이다
.
하다못해 핸드폰 기종만 바뀌어도 문자 보내는 방식이 바뀐다. 난 핸드폰으로는 전화를 걸고 받는 것과 문자를 보내는 것 이외의 기능은 사용하지 않는데, 기종이 바뀌면 문자를 보내는 키보드가 바뀌니 여간 불편하다. 그 외 핸드폰 기능은 잘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고, 확인하지도 않는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
나는 하루하루 아날로그 방식으로 환자를 보고, 일을 하고, 병원을 뛰어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일을 잽싸게 빨리 잘 하지 못하니, 뭔가 프로그램이 바뀌면 적응해서 일을 수행하는 데 시간이 두 배로 걸리기 때문에 좀 비효율적이더라도 예전의 방식대로 하는 게 나에게는 차라리 나았다. 그래서 난 고집스럽게 내 방식을 고집하며 살았고, 비록 소수일지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나 같은 아날로그 족속들과 감정을 공유하며 디지털 시대의 비애를 함께 나누고 견디며 살아왔다.

의사로서 내 삶의 본질은 환자를 잘 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디지털 방식을 내가 쫒아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한다 하더라도 크게 상관이 없을 거라고 믿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기능만 최소한으로 알고 적응하며 살았다. 정말 좋은 상품이나 프로그램은 나 같은 사람도 한 번만 해보면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라 믿으며, 그래서 나를(나 같은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과 상품들이 나온다면 기꺼이 선택해서 사용하겠지만, 불편하다면 굳이 적응하는 데 괴로워하며 시간을 쓰지 않으리라는 나만의 배짱으로, 디지털 시대를 느리게 사는 편이었다
.
간혹 문제가 생기면 얼리 어답터인 동생이나 슬기에게 문의하였다.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나는 본체를 뜯어서 동생에게 달려갔다. 아니면 동생을 불렀다. 병원 정보통신팀에도난 아무 것도 모르니 다 알아서 해결해 달라는 식의, ‘배째라정신으로 살아왔다. 별로 창피하지도 않았다.


더 이상배째라못하나?


그런 내가, 지난주에 아이폰을 샀다. 사실 정말 사고 싶었거나 사야 하는 필요성이 있다거나 제품이 궁금했던 것은 아니다. 아직 기본적으로 저장되어 있는 프로그램들 이외에 다른 아이템(‘어플이라 부르는)을 다운 받거나 응용해 보지도 않고 있다. 전화를 걸고 받는 것도 내 구식 핸드폰보다 편치 않고, 내가 애용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예전 구식폰만 못하다. 자꾸 오타가 나고 문자 메시지를 쓰다가 커서를 옮기는 것도 불편하다. 통화 감도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전화기 크기도 커서 주머니가 늘어진다. 그런데 나는 왜 아이폰을 샀을까
?
나와 함께 디지털 시대에 저항하며 아날로그 족속으로 머물며 함께 저항(?)했던 동지들이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 한 가지 이유였다. 구식이며 예스럽고 적응력 떨어진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들조차 아이폰을 이용하여 이상한 메일을 보내고 실시간으로 뭔가 정보들을 확인하며 신세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많은 저널과 인터넷 사이트에서 스마트폰에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내놓으면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환자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실현할 수 있는 대안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연구들도 시작되고 있다.
변화가 천천히 누적되면서 인식의 변화를 동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매우 빠른 속도로 혁신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양질 전환의 법칙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이제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가 열렸다고 말한다.


여전히 아날로그 족속


미국 암학회에 참가하느라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탔다. 나는 책을 잔뜩 싸 짊어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작가 이름만 보고, 어디선가 본 서평을 떠올리며 몇 권의 책을 사 가방에 담았다. 내가 처음 고른 책은 폐암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노년의 랍비와의 대화를 기록한 ‘8년의 동행이라는 책이었다. 천천히 진행되는 랍비의 죽음이 괴롭지 않게 기술된다. 랍비의 과거 회상을 통해 우리가 죽기 전에 누구를 만날 것인지, 누구와 시간을 보낼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아날로그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랍비는 이메일로도 사람의 마음을 전할 수 없어 항상 전화하여 직접 목소리를 듣고 방문하는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전형이었다. 그가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그것이었다
.
미국에 도착할 무렵, 미국인인 듯한 내 양 옆의 사람들이 모두 아이폰을 꺼내 문자도 보내고 메일도 보내고 게임도 하고 현란하게 다운받은 자신의 아이폰으로 뭔가를 부산하게 하고 있다. 가방을 챙기고 자리를 정리하면서도 왼손에 쥔 아이폰은 절대 놓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이 짧은 시간을 풍요롭게 해주는 아이폰의 실체가 뭔지 궁금해서 자꾸 흘끔흘끔 그들을 훔쳐본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충돌은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계속되겠지? 설마 그렇게 일찍 아날로그가 완전히 몰락하지는 않겠지?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리라. 그렇지만 디지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내 세상에서 배제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의 아이폰을 소중하게 주머니에 넣는다. 나도 더 이상 세상의 흐름에서 배제되면 안 될 것 같다는 일말의 두려움도 있음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더 좋은 것, 더 빠른 것, 더 신식의 뭔가가 계속 나오더라도, 아날로그인 나는 코드화되지 않고 남아있겠지.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 족속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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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풀코스 완주의 추억

2002, 나는 본과 3학년 실습학생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새벽에 헬스클럽을 다녔는데 병원 실습이 시작되니 과마다 스케줄이 달라 정기적인 운동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 무렵 마라톤이 유행하기 시작하여, 일산에 사는 나는 호수공원 마라톤클럽에 참여하기로 하였고, 주말이면 일산 호수공원을 비롯 다양한 달리기 코스를 개발해 뛰기 시작하였다. 운동이라는 게 한번 빠져들면 약간 중독이 되는 경향이 있어서인지 난 주말이면 몸 컨디션을 만들어 서너 시간씩 달리기 연습을 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일요일 아침 6시에 호수공원에 나가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너무 불안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연습한 끝에, 나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에게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끝까지 다 뛰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웠으니까. 얼마 전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하프마라톤에 도전하는 것을 봤는데, 그들은 몇 번이고 그만둘까 갈등하고 힘들어하면서 수 시간에 걸쳐 달렸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다들 등을 돌리고 울었다. 그걸 보니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들이 왜 우는지 아니까
.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서 내가 배운 것은 첫째, 이 길을 뛰는 것도, 걷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모두 나의 선택이자 의지이며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데 뛰기로 결정하는 것, 묵묵히 그 길을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둘째, 출발선에서 같이 뛰기 시작했던 이들이 쭉쭉 나를 앞질러 나가도 전혀 초조해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마라톤에 임하는 나의 최대 목표는 기록이나 순위가 아니라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므로 내 앞에 몇 명이 얼마나 좋은 기록으로 경기를 마감했는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마추어 마라토너인 나는 쓰러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며, 그들과 나는 같은 길 위를 달리는 것 같지만 사실 비교할 수 없는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신이 달리기로 결정한 길을, 자신의 방식으로 달리며,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기 위해 체력을 안배하고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견디며 결승선을 향해 달린다는 점에서 말이다. 중간에 달리기를 포기하고 자동차를 타고 휭 달려 결승선에 도착할 수도 있다. 그렇게 결승라인을 밟는 것은 나에게 아무런 감흥과 의미를 주지 않는다. 출발점에서 42.195km를 지난 시점에 도착하는 방법이 자동차가 아니라 내 두 발로, 그 길 위에서 모든 갈등과 고민, 고통을 저울질하며 견뎠을 때 결승선에서의 내가 얻어가는 것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충족감으로 가득 차 있게 된다
.
난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등의 서류를 쓸 때면마라톤 풀코스 3번 완주라는 나의 경력을 꼭 밝히고 싶은데, 그런 걸 쓰는 칸이 없어서 언제나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하루 한 시간만 나를 위해 쓰자

그러나 나는 꽤 오래 전부터 마라톤을 하지 못한다. 고관절에 dysplasia가 있으니 마라톤은 장기적으로 내 고관절에 좋지 않을 거라는 남편의 충고에 따라 달리기를 멈췄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멈춘 후 다른 운동도 흐지부지 하지 않게 되었다. 인턴 때, ‘나의 젊음은 아직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오기로 10km 단축마라톤에 나갔다가 숨이 차서 죽을 뻔했었다. 레지던트를 시작한 이후에도 마찬가지. 마라톤은 언감생심, 정기적인 운동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저 회진을 운동 삼아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잠을 줄여서라도 해야 할 뭔가가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정해진 시점까지 발표 준비를 해야 하고, 논문을 읽어야 하고, 논문을 써야 해서, 항상 시간이 부족하게 되었다. 밤늦도록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뭔가를 해야 했다
.

사람의 하루는 24시간이니까 꼭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잘 분류하여 꼭 해야 하는 일과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누구나 얘기한다. 결국 시간을 배분해서 쓴다는 것은 그 사람의 철학과 인생관,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것이므로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간은 나를 반영하는 것이고 나아가 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뭔가에 너무 고착되고 집착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았고, 적당히 열심히 하는데도 여유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게 제일 그럴듯해 보일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바쁜 일상에서 운동을 위해, 건강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렵게 되었다. 최소한 펠로우를 마칠 때까지는 불가능하겠지, 라며 포기하고 있었다. 정말 몸이 나빠지고 있다는 걸 자꾸 느낀다. 늘 피곤하고 정신이 맑지 않고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항상 해야 할 일을 다 못하고 있다는 중압감에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벌여 놓은 논문들이 마무리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큰 스트레스다. 잡일을 하다보면 모드 전환이 안 되기 때문에 내 일이 자꾸 뒤로 밀리고 좀 차분하게 해 보려고 해도 시간만 흐를 뿐 정작 되는 일이 없다. 정작 나를 위한 일도 아닌 일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다 보니 뭔가 손해를 보는 느낌으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

그러던 중, 얼마 전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연세대학교 안에 1시간 정도면 왕복할 수 있는 산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지난주에 처음 가봤는데 정말 숨이 차고 힘들었지만, 정상에 올라 저 멀리 남산과 한강을 바라보며 땀을 식히니 예전에 마라톤 연습을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앞으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등산을 해 보겠다고 결심한다. 하루 한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으로 확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 병원과 환자와 동료들을 잠시 멀리하고, 그저 걸으며 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금 나는 묵묵히 걷고 견디는 것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어쩌면 지금 나는 펠로우 증후군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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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펠로우에게 박수를!

 

훌륭한 펠로우는 새벽일찍 일어나 환자파악 마쳐요. 주치의 없어도 회진도는데 전혀 문제 없어요. 아침에 보호자 warning도 다 해놓아 교수님 회진 도실 때 보호자들이 군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리게 만들어요. 평범한 펠로우는 밤새 뭔가 꼬물꼬물 하다가 늦잠자서 아침이면 허둥지둥이에요. 환자 파악한 것도 다 엉켜서 기억이 잘 안나요. 주치의들 자리 비우면 회진때 어물어물 교수님께 노티도 제대로 못해요. 상태 나빠진 환자 보호자들이 회진때 엄청 complain 해요. 교수님 회진 도실 때 기분 나빠져요.

훌륭한 펠로우는 교수님이 스터디 주시면 약속 날짜 어김없이 논문 다 써요. 교수님 코멘트 하시면 바로 회신해서 response 보여드려요. 그래서 교수님들이 좋아하세요. 항상 당당한 표정으로, 다른 더 나은 주제로 할만한 스터디 없나 교수님들과 상의해요. 평범한 펠로우는 과제 주시면  제때 해낸 적이 없어요. 논문도 교수님이랑 약속한 시간까지 쓴 적이 없어요. 교수님 코멘트 해주셔도 뭉게고 대답 못해요. 병원에서 교수님 뵈면 멀리서부터 피하게 되요.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야 하는 교수님들이 많아져서 병원을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방안에서 꼼짝 못해요.

훌륭한 펠로우는 병원 시스템도 잘 알고 후배 레지던트들 다루는 법도 잘 알아요. 언제 검체 접수되고 언제 결과 나오는지, 레지던트들도 요령있게 닥달해서 필요한 결과를 앉아서 보고받고 자기는 논문읽으며 시간 아껴요. 평범한 펠로우는 레지던트들한테 일 제대로 못시키고 결국 자기가 땀흘리며 돌아다니며 결과 확인하다가 지쳐요. 환자 설명도 직접 다 하다보니 항상 시간이 없어요. 병동에서 힘 다 빼고 방으로 돌아오면 녹초되어 최신 지견 업데이트도 못하고 논문도 제대로 못 읽어요. 악순환이에요.

훌륭한 펠로우는 학회 참석 일정도 미리 챙기고 향후 스터디 계획도 미리미리 잘 세워서 시간을 짜임새있게 잘 써요. 매사 자신감 만빵이에요. 평범한 펠로우는 허둥지둥 살면서 학회가 언제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남들 다가는 학회 못 쫒아가요. 겨우 학회장 가서도 졸아요. 무슨 얘기하는지 모르고 있다가 병원와서 교수님이 질문하시면 대답도 못해요. 항상 혼나면서 눈치보고 자신감 완전 바닥이에요.

 

L양에게

나는 이제 평범한 펠로우 2년차 생활에 접어들었다. 아직 아마추어라서 그럴까? 하는 일이 매번 새롭고 낯설다. 내가 잘 모르는 낯선 일이 생기면 당황하고 허둥지둥이야. 작은 일에 걸려 넘어져도 더 먼 미래를 바라보며 툭툭 털고 있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애 쓰는 나를 위해 씩 웃어주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기 보다는, 항상 불안하고 불만스럽다. 오히려 펠로우 1년차 때는 나름 새로운 의욕도 있고, 의욕에 비해 따라주지 못하는 나의 실력에 대해서도 교수님들이 어느 정도는 관용적으로 대해주셨던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교수님들의 관용에 의지할 때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독립적인 종양내과 의사로 자리잡고 기능할 수 있을지를 타진해 봐야할 때가 되었다는 깨달음이 오니, 만사가 참 부끄럽고 위축되고 나의 형편없음이 자조적으로 크게 다가온다.

듣자하니 L양도 요즘 위기라는 소문이 여기까지 들리네. 평범한 펠로우 1년차는 파트가 바뀌면 매번 당황스러워. NCCN guideline이라도 다시 한번 리뷰하고 파트를 시작해야 하는데, 환자 파악하고, 주치의들 문제 생기면 막고, 교수님들이 시킨 다른 일도 좀 하고, 그렇게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난 도대체 이 파트에서 배운게 뭔지, 공부한게 뭔지, 알게된게 뭔지 되새김질 해 볼틈도 없이 다음 파트로 텀이 바뀌게 되지.

주위의 훌륭한 펠로우들은 정말 얄밉게도 효율적으로 시간 잘 쓰고, 레지던트 애들도 닥달을 잘 해서 내가 해야할 일과 움직여야 할 동선을 최소화하지. 그들은 대단해. 그들은 나처럼 인생을 끌려가며 살지 않아. 정말 용의주도하지. 그들과 나를 비교하면 난 정말 한없이 위축되고 바보같아.

그런데 L, L양이 수많이 내과의 subspecial 중에 혈액종양내과를 선택했는지 그 첫 마음을 생각해봐. 그리고 4년차 치프때는 신나고 좋았잖아? 그냥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고, 남과 나를 비교해서 종양내과를 선택한 것도 아니었잖아? 그 마음을 떠올려봐. 사실 훌륭한 펠로우가 논문 몇 개 더 쓰고, 용의주도하게 병원 생활을 하는 것만큼 중요한게 L양처럼 따듯한 마음으로 환자보고, 레지던트들에게도 여러 모로 좋은 선배가 되어주는 거야. 내가 예전에 본 L양은 그런 사람이었어. 겸손하고 자기 할일 열심히 하고 착하고 똑똑한 L양이 지금 힘들어한다니 나도 속상하네.

종양내과의사는 L양처럼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고 기본을 다하기 위해 성실하게 애쓰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야.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좀 부실해도, 동기들에 비해 나의 출발이 좀 늦어보여도, 선생님들 마음에 영 안드는 펠로우로 보이는 것 같아도, The show must go on이야. 힘내라구.

 

내가 생각하는 학문의 전제조건은 세가지인데 첫째 자기 내부에서 나오는 학문에 대한 끝없는 열정이야.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 자신의 존재를 걸고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선택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 이런 사람이 그리 많을거라고는 생각안해. 둘째는 스승님(mentor)이야. 내가 귀감으로 삼고 본받고, 모시고 싶은, 그래서 평생 그로부터 배움을 얻는 스승님을 만나는 일이야 말로 정말 멋지고도 희열에 찬 일이지. 하지만 우리 모두 알 듯 쉽지 않아. 그런 스승님을 만난다는 건. 셋째, 같이 공부하는 공동체 집단, 지적 연대의식을 함께 하는 동료가 필요한 것 같아. 고민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코멘트해 줄 수 있는, 내가 답답해 하는 주제에 대해 같이 논의해줄 수 있는 비슷한 학문 공동체 집단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 세가지 중 한가지만 자기 내부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면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해. 솔직히 부끄럽지만 첫째에 해당하는 뜨거운 열정이 나에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 내가 선택한 길이면서도 과연 무한극한으로 열정적인가! 아마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거야. 그렇다면 스승님과 동료가 내 학문의 길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겠네. 나도 L양에게 그런 동료 중의 한명이 되고 싶어. 그러니 우리 서로를 의지하며 쇼를 무사히 마치자구. 내 수준이 실질적인 도움을 줄만한 실력도 없고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줄 입장이나 처지는 아니지만, 마음으로 깊이 응원하고 있으니 힘내라구. 우리 모두 평번한 펠로우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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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트릭스를 꽤 여러 번 봤었다. 그 영화에 자꾸 시선이 갔던 것은 키아누 리브스가 잘 생겼다는 것도 한 이유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당연시하며 살아가는 지금의 세상이 어쩌면 가상현실일 수도 있다는, 어쩌면 나는 가상현실에서 실체가 아닌 채로, 가상현실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기 않고 당연시하며 살아가는, 회로 속 배터리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기분나쁜/기분 묘한 신비감이었던 것 같다. 과연 실체는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나는 누구이며 진실을 알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사회학을 공부할 때 나 스스로에게 요구했던 사고 방식은 세상에는 ‘take it for granted that’ 으로 간주하게 만드는 질서가 있으므로 그 질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당연시 하는 것을 조금은 다르게 볼 줄 아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훈련할 수 있는 사고방식은 매우 다양한데, 나는 왜 하필 이런 방식에 호감을 갖고 몰입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이 당연시되는가, 왜 그것은 당연시되게 간주되었는가, 그것이 당연시 됨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가 그런 문제들에 나는 천착하였다.

그러나 의사가 된 후 나는 일단 잠정적으로 ‘take it for granted that’에 대한 관심을 접기로 하였다. 의학이라는 학문세계 내에는 반복된 실험과 임상적 경험을 통해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 온 축적된 지식의 양이 심히 막강하여, 환자의 생명을 앞에 두고 있는 나로서는 이에 저항할 수 없었다. 비판하거나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기에 앞서 당연히 여겨지는 기본 지식을 숙지하기가 빠듯했고 나는 용감무쌍하게, 기존의 질서를, 기존의 체계를 비판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입장을 정한 후 나는 매트릭스 바깥 세상에 대한 관심을 끊었고 그것이 바로 내가 의사가 된 것을 의미하는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30대가 시작되었다.

 

원래 계획이 그랬던 것은 아닌데 친절한 편집장님이 인턴시절을 시즌 1으로, 레지던트 시절을 시즌 2, 그리고 잠시의 공백기 후 다시 시작한 강사 시절의 슬기엄마 일기를 시즌 3로 명명해 주셨다. 인턴, 레지던트 시절 나는 환자와 보호자와 함께 병동에서 몸부림치면서, 밤에 당직을 서면서, 혹은 오프인데도 집에 못 가고 병원에 남아있다가, 응급환자 피검사가 나오는 걸 기다리며, 내 마음 속에서 분출되어 나오는 뭔가를 담아내는 글을 썼다. 30분이면 한편 정도는 후딱 쓸 수 있었다. 분노, 절망, 희망, 감동, 그리고 사랑이 시시각각 다른 색깔로 나에게 다가오고 소재기 넘쳐났기 때문에 나는 흥분을 조금만 누그러 뜨리고 마음을 차분히 하면 글을 쓸 수 있었다. 글을 쓰던 초창기에는 누구도 무서울 게 없었다. 남의 눈치 안 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글쓰기는 나의 뭔가를 표상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 스스로 검열의 시각이 강해졌다. 글을 쓰면서 남을 의식하게 되었다. 사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검열하는 과정이지만, 나는 점점 그 긴장을 견디기 어려웠고, 4년차가 되어 종양내과를 지원한 후 훨씬 많아진 업무와 과중하게 부여되는 책임감, 그런 것들로 인해 내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일 이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에도 관심을 갖기 싫어졌고 글쓰기를 종료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시즌 2가 마감되었다.

 

그러다가 작년 6, 아무리 봐도 기분나쁘게 생긴 직장 용종이 발견되고 정확히 진단이 안된 채 나는 수일을 긴장과 불안 속에서 지내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마음 속에 하고 싶은 얘기가 쌓여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서서히 그런 응어리들이 분출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종양내과 의사로 매일 만나온 암환자와 암이라는 병, 그들의 실체에 관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졌나 보다. 시즌 1, 2에서는 특별히 정해진 주제없이 용감하게 이 주제 저 주제를 건드리며 글을 썼던 것과는 달리, 시즌 3은 암에 대해, 암환자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들이 나의 모든 관심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1년간 의도적으로 암을 주제로, 암환자를 주제로 글을 쓰려고 노력하였다.

아직 시니어(senior) 의사도 아닌데 매주 신문에 칼럼을 쓰고, 학술논문이 아닌 주제로 책을 내는 나의 행위는 다소 산만하고, 최소한 대학병원에서는 의사로서의 삶에 집중성이 떨어지는, 그런 행동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에 쓴 글인데도 지금 다시 보면,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썼구나, 적절한 표현이 아니구나 하는 한계를 스스로가 깨닫게 되는 걸 보면, 나에 대한 그들의 시각이 완전히 오해는 아니라는 점에 대해 인정한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시즌 3을 끝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나는 새로운 사고의 계기, 내 인생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한 때가 된 것 같다. 지금은 나의 내부를 외부로 표출하기 보다 침잠하여 잠수함을 타고 내부적인 역량을 축적하는 것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시즌 3을 여기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당분간은 전문가다운 종양내과 의사로 환자를 진료하는데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취하려고 한다. 그것이 필요한 때라는 것을 절감한다.

내가 사회학을 공부하다가 의학으로 전환되던 그 길 어느 모퉁이에 분명히 있었던, 아직은 모호한 채 남아있는 나의 관심사들, 암환자들의 삶의 질, 암 생존자들의 정체성, 종말기 의료와 호스피스 등은 삶과 죽음의 문제는 의료의 영역이면서도 사회학적, 사회과학적 접근이 병행되는 것이 요구되는 지점들이다. 그런 주제들이 아직 내 삶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갖지 못한 채 가슴 속에만 숨겨져 있다. 내가 뭘 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시처럼 아무리 미천한 일이라도 그것이 당신이 할 일이라면 그 일에 흥미를 잃지 않기를. 시간에 따라 운은 변할 수 있지만 그것은 변하지 않는 당신의 천직이 될 것이니라는 문구를 소중히 간직하고 잠시 몸을 웅크려 현재와 미래를 준비해보려고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위치에서 다른 일을 하게 될 때, 새로운 이야기거리가 생겨나면 '시즌4'를 쓰리라 약속한다. 그동안 나의 글에 여러모로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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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생존자가 되어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후배에게

 

인터넷으로 외국 서적을 검색하다 보면 ‘A Survivor's Guide for When Treatment Ends and the Rest of Your Life Begins’ 류의 책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다. 생존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을 위한 안내서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청이 높아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같다. 아직 우리 의료 현실에서는 생존자에 대한 개념이 적극적으로 수용되지 않고 있는 터라,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침서는 없고, 환우회나 동우회에서 환자들끼리 정보를 소통하는 정도로 자신이 개발한 노하우를 전달하며 끼리끼리 도움을 주고 받는 수준인 같다.

 

생존자(cancer survivor)라는 개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게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암생존자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미국 암학회에서는 과거에 암으로 치료받았지만 완치되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나 진단 일차 치료를 통해 암이 치료된 사람 뿐만 아니라 현재 암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환자, 완치 목적이 아니더라도 암에 대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을 모두 생존자의 범주 안에 넣고 있다. 이들 개념 정의에 따르면 말기 암환자로 판단되어 치료를 목적으로 항암 수술을 받지 않기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생존자라는 개념으로 포괄된다. 그만큼 인생에서 암을 진단받고 치료 과정을 겪는다는 것은 단지 병을 앓고 지나가는 것을 넘어선 실존적인 사건이다. 치료를 종결한 환자라도 심리적, 육체적, 사회적 변화를 경험하며 자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영향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체적 불편감의 강도가 약해지겠지만 말이다.

의학적으로는 완전히 나았다고 판정을 받은 사람도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을 겪었다는 자체가 충격이며 정신적 외상(trauma)으로 남아 정서적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생존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리적 스트레스 정도가 높고, 5 이상 재발하지 않고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도 암을 진단받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40%이상 심각한 심리적, 사회적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환자의 10%에서 주요우울증을 진단받게 되고 상당 수가 치료 전후로 적응장애(adjustment disorder) 경험하게 된다. 연구에서는 젊은 생존자들 가운데 20% 외상 스트레스장애로 진단받고 나머지의 45%-95% 가까운 환자들은 외상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까지는 아니지만 관련된 증상을 한가지 이상 가지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많은 연구들에서 생존자들은 다른 인구 집단에 비해 적극적으로 자살을 하고 싶다는 느끼는 비율이 높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생존자들은 아주 사소한 증상의 변화에도 암이 재발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평생 낫지 못할 거라는 생각, 아무런 예고없이 암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사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비단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다.

치료기간이 길거나 치료의 강도가 높을수록 환자의 이전 생활과 치료 후의 생활 사이의 단절이 심각한데, 예를 들면 치료 환자들은 상당 기간 동안 육체적, 정신적 피로함을 경험한다. 피로함(fatigue)이란 치료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특히 완치를 목적으로 광범한 범위를 절제한 수술 후에는 해당 장기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게 되기까지 주변 기관으로부터의 보조적인 지원을 받게 되고 이러한 보상 작용이 지속되는 만성적인 피로함을 느끼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매우 적극적인 재활 훈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의 경우 항암제의 영향이 뇌기능에 영향을 미쳐 ‘chemo brain’이라고도 정도로 신경세포의 피로함이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젊은 생존자들은 어느 정도 기간까지 아이를 가질 없는 경우도 있다.  

 

생존자들은 일상으로 완전히 복귀하고 싶어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정기적인 병원 방문이 예정되어 있고 적절한 모니터링을 받아야 한다. 가슴에 방사선 치료를 받은 유방암 환자들은 치료가 끝난 수개월에서 수년 내에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방사선 폐렴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마른 기침과 가끔씩 숨이 차면 빨리 병원에 가서 가슴 엑스레이를 찍고 스테로이드를 먹으며 새로운 부작용에 대한 치료를 재개해야 한다. 호르몬 수용체가 양성인 젊은 유방암 환자들은 정기적으로 체내 여성 호르몬 수치를 체크하여 몸을 폐경기 여성처럼 유지하는 것이 재발을 방지하는 것에 도움이 되므로 항호르몬제를 복용하게 되는데, 이를 복용하기 시작하면 한동안 안면홍조나 관절통 폐경기 증상을 겪게 된다. 그런 증상을 느낄 때마다 이들은 자신이 유방암 환자라는 사실을 잊을 없다. HER2 수용체 양성이거나 삼중음정유방암 환자가 두통을 느낄 뇌로 전이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한다면, 그걸 두고 의사는 환자분께서 너무 예민하신 같다 함부로 말해서는 안될 노릇이다. 이들 유형은 뇌로 전이되는 장기특이성을 갖고 있다는 연구가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치료를 무사히 마쳤는데도 건강염려증 환자가 되어 병원을 전전 긍긍하며 재발 위협에 대한 노예가 되어 수도 없는 것이고, 조기에 재발을 발견하면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충분히 다시 한번 병을 완치시킬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일상에 충실한다는 신념하에 정기적인 모니터링이나 몸의 변화를 무관심하게 방치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생존자들은 두가지 상황에서 밀고 당기기를 하며 이러한 갈등을 마음 속에 품은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정답이 없기 때문에

 

1년간 유방암 치료를 받고 직장으로 복귀하는 후배를 위해 뭔가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주고 싶어서 이것 저것 궁리해보지만 마땅치 않다. 치료 과정에서 생존자 가이드라인을 운운하는 것이 아직 우리 현실에서는 사치스러운 개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고민들을 미뤄두었었다. 그러나 표적 치료제의 등장과 환자에 대한 완화적/보조적 치료약제와 방법들이 개발되면서 암이 있으되 암과 함께 살아가는 환자들이 늘어나는 보며 종양학을 공부하고 암환자를 보는 의사로서 이제 이상 이런 고민들을 묵혀둘 때가 아니며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개발해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선배로서 나는 그녀를 위해 따뜻한 조력자가 되어 묵묵히 함께 주고 몸과 마음이 힘들 언제든지 팔벌려 안아줄 있는 준비를 하는 밖에 없겠다.

자신이 암에 걸렸고 치료 중임을 주위 사람들에게 당당히 알렸던 그녀, 나에게 빡빡이 민둥머리를 셀카로 찍어 보내준 그녀, 재발의 위험이 높은 위험군이지만 1년만에 직장에 복귀하는 용기를 가진 그녀,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그녀를 위해 오늘밤 와인 한잔정도 축배를 드는 정도는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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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 좋아질 수 있고, 반드시 써야하는 약인데

쓰지 못하게, 쓸수 없게 하는 의료시스템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제발 ampho 좀 먼저 쓰라고 하지 마세요

 

모든 신약이 다 그런건 아니지만, 정말 획기적으로 좋은 약이 개발되어, 기존의 치료법을 뒤집는경우가 있다. ‘좋은 약이란 대개 기존의 약보다 효능이 뛰어나거나 아니면 약의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는 경우로 구분될 수 있다. 그런 좋은 약들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까지는 시간적 간극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약을 사용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해당 약제를 포함한 임상연구를 진행하거나 사용의 폭을 넓히거나 아니면 환자가 약에 대한 비용 부담을 전액 감당해야 한다. 더 이상 치료적 대안이 없어 의사가 마지막 카드처럼 이 약이 보험은 안되지만 한번 써보시겠어요?’라는 제안을 할 때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비보험 약제 사용칸에 서명을 한다. 나도 그런 설명에 해야할 때가 있는데, 사실 그 약제가 탁월하게 좋은 약이었다면 왜 진작 제안하지 않았겠는가? 표준적인 치료에 별 효과가 없을 때 큰 효과를 기대하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혹은 뭐라도 해야하니까, 망설이다 제안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환자가 돈을 좀 더 내더라도, 치료만 될 수 있다면 어떤 희생이라도 각오한 사람들 아닌가, 좀 비싸면 어떤가, 환자에게 도움이 될게 확실한데 뭘 망설인단 말인가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그렇게 개발이 어렵다는 좋은 약이 막상 출시되어, 여러 논문에서 입증되고 여러 나라에서 해당 약제를 사용하면서 치료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보험이 안되어서, 혹은 임의 비급여 논란이 무서워서 환자에게 해로울게 뻔한 약제로 치료를 한다면, 이는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런 치료를 지금도 하고 있는게 우리 현실이다.  

 

콩팥기능을 악화시킨 후에 사용할 것

예를 들면 면역력이 급격히 감소된 혈액 질환 환자들에서 진균 감염이 의심될 때 우리나라 보험에서 허가된 약은 amphotericin 이라는 항진균제인데, 난 개인적으로 그리고 대부분의 혈액종양내과 의사들이- 이 약을 매우 싫어한다. 이 약은 다른 항진균제보다 Aspergilosis라는 균주를 더 커버한다는 장점이 있는데, Aspergilosis는 치명적인 독성을 있어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환자가 항진균제를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 결국 amphotericin을 쓰게 된다. 이 약을 몇일 쓰다보면 거의 100% 신장기능이 악화되고 6시간 동안 이 주사를 맞는 내내 매우 힘들다. 약을 맞는 것 자체가 장단기적으로 환자에게 주는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환자를 지켜보는 것도 매우 힘들다. 항진균제를 써야 할 정도의 컨디션이라면 환자들은 전반적으로 체력이 매우 약해져 있고, 못 먹고 기운없고 다른 항생제, 항바이러스제까지 같이 투여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거기다 덧붙여 amphotericin이라는 어마어마한 독성을 갖고 있는 약을 쓴다는 건 의사로서 정말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대안이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국제적인 감염학회에서는 이 amphotericin이라는 약제를 더 이상 쓰지 말아야 하는 약으로, 심지어 환자에게 해로운 약으로 분류하였고, amphtericin의 독성을 완화시킬 수 있는 lipid 제형으로 제조한 amphotericin B voricornazole 이라는 항진균제가 효과면이나 독성면에서 첫번째로 선택할 수 있는 약임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모두 우리나라에서 처방가능한 약제이다. 그러나 현재 이들 약제는 보험규정이 매우 까다로와 대개 amphotericin을 쓰다가 신장기능이 정상보다 몇배 이상 나빠져야 2차 약제로 사용할 수 있고 100:100 환자가 비용부담을 하게 된다. 콩팥 수치가 나빠지기 전에 임의비급여로 쓸 경우 5년내로 환자가 소송을 제기하면 그건 병원책임이다. 환자가 약값에 대한 비용부담을 하는건 마찬가지더라도 임의비급여로 쓰면 안되고 환자의 콩팥기능을 나쁘게 한 다음에 100:100으로 써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환자들에게 설명하면 환자나 가족들은 통탄할 노릇이나 의사가 그렇다는데 어쩔 것인가. 다들 어이없어 하면서도 결국 치료를 하는 주치의에게 자신의 몸을 맡길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환자 몸을 나쁘게 한 다음에 더 좋은 약으로 치료하는 것 무슨 경우란 말인가!

비단 이 약제 하나만이 아니다. 경합하는 약 중에 성적이 조금 낫기 때문에 써볼 수 있다는 차원을 넘어, 정말 좋은 약들이 있다. 그런 약을 다 쓰게 해달라고 떼쓰는 건 아니다. 그건 보건의료자원에 대한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별로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다만 사람이 살고 죽을 수 있는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경제학적 관점을 넘어 고려해야 할 약제들이 몇가지 있으며, 이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사용을 허가해 주어야 한다. 보험으로 처리해 달라고까지 요구하지는 않겠다. 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약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에 동의하면 쓸 수는 있게 해줘야 하지 않는가!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의사의 전문성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왜 의사의 전문성이 인정받지 못하는가?

 

그러나 나는 순간 입장을 바꿔본다. 왜 이렇게까지 의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고 의사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가, 전문가로서의 의사의 발언이 존중받지 못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있는 것인가, 의사가 뭔가를 주장할 때 이를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이제 더 이상 의사는 사람들의 일상공간에서 만나기 힘든 존재도 아니고,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 사방팔방에는 편의점보다 많은게 병의원인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의사의 취약점이 쉽게 노출되고, 인구에 회자되기도 쉽다. 동료 의사를 비방하지 말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동료 의사들에 대한 평가를 엄중히 하지 못하고 비리를 눈감는 소극적 대응방식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인가. 의사 집단의 자정능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누군가 이상한 practice를 해도, indication에 맞지 않는 검사나 치료를 해도 의사들 간에 이를 논의, 비판하고 논쟁을 벌이기 보다는 슬며시 피해가는게, 뒷날 별 탈이 없다는 소극적인 대응방식으로 대처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회피하는 방식으로한 직업진단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쉽게 형성되는게 아닌가 보다.

 

이 복잡한 서류 준비를 하느니 안 쓰는게 낫겠네.

 

얼마전 서울행정법원은 카톨릭대 성모병원에 대한 과징금 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백혈병 환자치료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 중 급여 기준을 벗어난 일부 치료 재료나 약제에 대해 임의 비급여로 계산해 환자에게 청구한 것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려준 셈이다.

얼마전 병원에서 특정 약품을 임의비급여로 사용하는 일을 막기 위해, 미리 사전신청서를 작성하여 심평원에 요청해 100:100으로 약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기 위한 서류를 준비하였다. 보험심사과의 요청으로 몇번이나 서류를 다시 준비하고, 다른 과 교수님들과 심사 위원들께 이런 상황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설명하는 기회도 가졌다. 솔직히 그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서류작업이 익숙치 않고 귀찮아서, 그 약을 차라리 안쓰고 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아쉬울 것 없다, 보험도 안되는 약인데 안쓰면 그만이지비싼 약을 썼는데 여하간 환자가 좋아져 퇴원할 때는 고맙다며 인사하지만 한 5년쯤 있다가 과잉치료라고 소송을 걸면 그 환자를 치료한 의사는 더 이상 환자를 위해 약제나 더 좋은 치료를 고민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잘 해줘도 돈 많이 나오면 나중에 고소할텐데 뭐

엄청나게 다양한 신약들은 쏟아지고 있는데, 새로나온 약을 다 쓰겠다고 나서면 보험재정이나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건 살고 죽는 약들이다. 효과가 조금 더 나은 그런 약이 아니라 생존에 절실한 약, 그런 약들은 의사의 판단과 전문성을 인정해서 요청을 받아들여주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걸 가지고 다른 이득을 챙기려는 의사는 거의 없다. 엉뚱한 약이나 검사에 대해서는 보험 인정을 해주면서, 정작 필요한 검사와 약들을 비용부담을 이유로 사용을 허가하지 않는 걸 보면, 보험 재정에 대해서도 논의의 여지는 분명히 있다. 단지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핑계대지 않고도, 운영의 묘를 꾀하거나, 나아가 운영의 원칙을 바꿀 근거는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고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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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나는 초심자의 마음인데

전문의가 되면 최소한 해리슨에 있는 표나 그림은 머리속에 새겨져 있을 줄 알았다. 비록 내가 동기들보다, 혹은 절대적으로 나이가 많기는 해도, 전문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정도의 실력이면, 최소한 내과 레지던트 4년을 나름열심히 보냈다고 한다면, 전문의가 되어 환자를 보는데 자신감도 붙고, 뭔가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생기고 할 줄 알았다. 전문의만 되면

그러나 현실을 역시 매정하다. 뭔가 불확실하게 알고 있던 절름발이 지식들이 산산조각이 나고, ‘선생님,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나요?’ 정확한 근거를 요구하는 후배 레지던트들 보기가 민망하다.  어느새 많이 멀어져 버린 내과 내 다른 분과의 세세한 지식들에 취약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주로 다루는 항암제의 기본적인 기전이나 종양학의 고전격인 교과서도 제대로 읽지 않아 기초 지식은 점점 얕아진다.

그래도 다행인건 늘 환자들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것. ‘환자 열심히 봐서 노벨상 받은 사람 없다는 우스갯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리고 환자를 열심히 보는 행위가 나에게 어떤 가시적인 성과물로 남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반복되는 회진 속에서 누구보다, 어떤 지식보다 나를 가르치는 스승은 환자라고 생각한다. 아직 fellow이니 더 배우고 익힐 것들이 많다고 생각하며 뭣 좀 안다는 전문의가 아니라 아직도 배우고 경험할 것이 많은 초심자의 마음을 조금 더 유지해도 괜찮은 것 아니겠냐고 위로하고 싶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논문!!!???

그러나 정작 fellow가 된 나에게 요구되는 과제 중에 ‘SCI 등재 저널에 논문내기가 가장 중요하게 강조된다. 비단 종양학 뿐만 아니라 왠만한 대학병원의 왠만한 과에서는 이제 SCI 합산 점수, 논문 편수 이런 양적인 data가 그 과의 실력 및 실적, 해당 개인의 실력 및 실적으로 대치되고 있고, 승진, 보너스 등의 인센티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대다수의 의사들은 겉으로 차마 드러내지는 않아도, 논문 압박의 부담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나야 논문 몇 편이라도 써야, 그리고 가능하면 좋은 저널에 실린 논문이 있어야 취직할 때 유리하고 서류에 쓸 말도 있으며 그동안 놀지 않고 열심히 연구했다는 증거가 되어, 나에게 심각한 결격 사유가 없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환자를 열심히 보았다는 것은 객관적 기준이 되기 어렵다.

의대에서 논문이라는 기준으로 교수임용 및 승진의 기준이 강화된 것은 불과 3년을 전후하여 생긴 새로운 트렌드이고, 그전까지는 알음알음으로, 핵심 멤버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자기 사람을 선발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 선발 관행에 비해 논문의 양과 질을 임용 및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훨씬 객관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학맥과 인맥이 인재등용의 보이지 않는 카르텔을 형성하여 패거리 문화를 공고히 하는 것 보다는, 다수에게, 누구나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기준으로 논문업적을 제시하게 하여 공정하게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 나도 논문으로 승부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물론 어떤 조직의 inner group이 될 만큼의 인맥도 없지만…)

 

환자보기와 논문쓰기는 제로섬 게임?

그런데 내 생활을 돌아보면 논문을 쓰거나 자료 및 아이디어를 정리할 시간이 너무나 없다. 내 능력의 탓도 있겠지만, 환자를 보면서 이상하거나 궁금한 것, 뭔가 환자를 위해 새로운 대안이 필요할 때 폭넓게 논문 및 자료를 찾고 이론적으로 제안된 대답들이 과연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한지, 우리 병원에서 시행해 볼 수는 있는지, 환자에게 경제적으로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이런 것들을 알아보고 확인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드문 질환의 진단 및 치료, 치료에 반응이 없는 환자에 대한 접근, 정확한 진단이 되지 않은 채 나빠져가는 환자에 대한 추가적인 진단 등의 난국에 봉착하면 마음이 활활 타오르면서 자료를 찾는다. 과연 이론적으로, 혹은 논문에서 제시한 자료들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이용가능한 자료일까? 자신없어 하면서

아침 회진을 바람처럼 돌고 지나가 버리면 의료진의 결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 환자와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찬찬히 설명해 주어야 할 때, 환자 상태가 좋지 않은데 그동안 병의 경과와 치료경력을 미쳐 꼼꼼하게 파악하지 못한 주치의의 어설픈 설명에 화를 내며 더 높은 의사의 설명을 듣겠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 여기 저기 병동에 흩어져 있는 주치의들과 환자의 치료계획에 대해 상의하고, 때론 그들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느라 공부해야 할 때, 환자를 특별히 부탁해야 할 일이 있을 때 타과 의사들과 논의하고 부탁해야 할 때 (아마 근무 병원을 옮기고 나서 인맥이 다 끊어지고 관계망이 없는 상황에서 일을 도모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것 같다), 협진보러 갔다가 환자와 보호자가 설명을 요구하며 붙잡을 때, 응급실에서 처음 본 보호자가 나를 위협하며 불만을 토로할 때, 나의 시간은 참으로 부질없이, 순식간에 흘러가버리고 만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또 하루를 버렸구나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이렇게 바쁜 임상 현장에서 많이 경험하고 많이 고민하고 많이 공부하는 것이 장차 내가 평생 살아가야 할 이 분야에서 기초를 튼튼히 닦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대충할 때나에게 시간이 허락된다.

 

무한 경쟁의 시대, 폭 넓은 보편적 지식보다 좁고 깊은 전문지식만이 생존전략?

환자보는 시간을 줄이면, 회진을 안 돌면, 설명을 안하면 비로소 시간이 생긴다. 자기를 위한 시간을 만드는 것도 요령이고 실력이라고들 한다. 오후 회진을 안 돌거나 대충 일하면 나를 위한 뭔가를 조금씩 해낼 수 있다. 환자를 보며 허덕이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논문 좀 썼냐?”는 질문을 하길래 좀 바빠서…’라고 대답했다가 너 그렇게 논문 안쓸거면 나가서 환자나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아니, 나가서 환자나 봐!!!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레지던트 3, 4년차부터 병동에서 환자를 보는데 시간을 쓰는 것보다 데이터를 입력하고 SPSS를 돌리며 논문을 쓰고 subspeciality를 정하기 전부터 외국 저널에 좋은 논문을 내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도 높아졌다. 내가 호감을 갖는 모 주니어 선생님께 선생님, 그동안 논문 많이 쓰셨어요?’ 했더니 쓰레기 같은 논문 8개 써서 승진할 수 있게 되었어요라며 시니컬하게 쓴 웃음을 보낸다. 어쩌면 진짜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쓰레기를 재생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

나는 사회학을 했던 가락이 있어서 논문을 찾고 거기서 아이디어를 내보고 흉내도 내면서 논문쓰는 것이 그렇게 괴롭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정작 환자진료와 논문쓰기의 시간이 충돌할 때는 논문이나 자료로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아직은 환자가 우선이다. 그리고 난 아직 SCI 빵점이다.

 

만약 내 실력이 여기까지고 더 이상 환자보기와 논문쓰기의 양팔 저울에서 균형을 찾지 못하고 해매게 된다면, 난 아쉬울 것 없이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있는 개인이 되지 못한 채 낙오하겠지… ‘환자만보다보면 재미없을지도 모르겠다. 보다 어려운 케이스에 도전하고 다년간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자료를 정리하면서 논문을 쓰는 학문적 유희를 그리워할 것이다. 제로썸 게임이 되지 않게 하는 요령은 없는 것일까?

 

 

  • 2012.01.26 18:59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2.01.26 20:53 신고

      무한 영광은요... 동지죠.
      제가 드릴 수 있는 현명한 대답은? 없어요.
      술잔은? 같이 기울일 수 있어요. 그것만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유일한 성의...
      지방대라서? 그건 핑계에요. 제가 모범이 되는 선생님을 추천해드릴 수 있어요. 우린 그런 분들을 보고 배워야 해요.
      제로썸? 맞다고 생각해요.
      다른과? 다 마찬가지죠.
      로칼로? 우리 못 나가요. 혈종이니까.
      그럼 어떻게? 논문, 써야 되요. ㅋㅋ
      학회 같은게 있을 때 한번 뵈요... socmed@yuhs.ac 로 미리 메일 주시구요. 정답을 모르겠으면, 일단 쓰고 계세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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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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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병원 전산 시스템은 여러 모로 편리한 점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쪽지 기능이다. 모니터를 앞에 두고 보자면 오른쪽 위 구석에 노란색 편지 봉투 아이콘이 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쪽지를 보내면 그 노란봉투가 펼쳐졌다 닫혔다 하면서 깜빡깜빡 사인을 보낸다. 오전 회진이 끝날 무렵이면 파트별로 회진 정리를 하느라 모두들 전화가 불통인데, 이때 아주 급한 게 아니면 전달사항을 쪽지로 보낼 수 있다. 노란봉투를 클릭하면 보낼 사람 이름을 입력할 수 있는 창이 뜨고 이름을 선택한 후 엔터를 치면 쪽지창으로 전환되어 마음껏하고 싶은 말을 적어 보낼 수 있다.

일하다가 화면 오른쪽 구석에서 노란색 봉투가 반짝반짝 사인을 보내면 열어보게 마련이다. 일하다가 힘든 응급실 레지던트 선생님, 목말라요. 응급실 올 때 바나나 우유 부탁해요à나 돈없다’, subspecialty를 정해야 하는 내과 레지던트 선생님, 고민이 많은데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모르겠어요à그래요, 지금이 고민이 많을 때입니다. 그래도 지금이 좋은 때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될거야. 나중에 저녁이나 먹읍시다’, 회진 때 땀을 뻘뻘 흘리며 septic하게 뛰어다니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선생님, 힘들어 보이시네요. 힘 내세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à고마와요. 함박 웃음 아이콘 최고에요이거 연애하기도 딱 좋은 시스템 아닌가! (의도치 않게 직접 그런 쪽지 연애를 목격하기도 했다)

물론 쪽지는 반가운 사람에게만 오는 건 아니다. 보험심사과 선생님, 그때 그 환자는 아무래도 심평원에서 삭감이 예상되니까, 의무기록을 보완해주세요. 그리고 사전승인 신청서도 같이 준비해주시는게 좋겠습니다’, 어느 과에서든 내가 답변해야 하는 파트로 협진을 내면 전산처방시스템 내 협진란과 동시에 쪽지도 날라온다. 협진난 줄 모른척 하면서 답신을 뭉개지 말란 뜻이다. 가끔 넣는 처방에 오류가 있으면 간호사도 쪽지를 보낸다. ‘선생님 그 약은 다른 제형으로 코드가 바뀌었으니 오더 바꿔주세요.’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주치의들과 환자에 대해 직접 얼굴을 맞닥뜨리고 토론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쪽지만 왕창 날리며 회진 정리를 하게 된다는 점이다. 환자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을 하고 있는 주치의들과 같이 환자의 신체검사를 해보고 사진도 같이 보면서 증상과 맞춰보고 치료 방향에 대한 향후 계획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말이다. ‘누구누구 환자는 뭐뭐 해주고, 누구는 무슨 검사 오늘 꼭 하고…’ 이렇게 사무적인 쪽지를 날리고 오후에는 쪽지대로 명령을 수행했는지 체크하게 되는 경향마저 생긴다. 일수장부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병동 주치의 컴퓨터에 앉아서 띄워놓은 쪽지창을 봤는데 하루동안에도 수백개의 쪽지가 오고 있는 것 아닌가! 주치의들은 나 같은 fellow 뿐만 아니라 다른 과에서, 병동 간호사로부터, 병원 내 각종 지위직종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쪽지를 받다보니, 하루 수신량이 엄청났다. 그래서 그들은 쪽지 내용이 길면 잘 읽지 않게 된다고 한다. 나는 전화가 잘 안되면 쪽지에 구시렁 구시렁 내가 해주고 싶은 얘기도 같이 써서 보내곤 했는데, 레지던트들은 아예 그렇게 문장이 길면 읽고 싶지가 않다고 한다.

간호사들은 혈당을 체크한 간이검사결과, I&O, 환자가 원하는 약 이런 노티사항까지도 모두 쪽지를 통해 보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병동 일선에서, 같은 station에서 일하면서도 쪽지를 이용하다니 이거 뭔가 우리의 의사소통방식에 대한 생각을 재고해야 하는건 아닌지 마음이 무겁다.

 

논문을 쓰면서 자료정리를 위해 예전 환자치료를 기록한 의무기록을 살펴보는 것이 fellow 생활의 일과 중 하나인데, 나는 예전의 종이차트를 볼 때마다 선생님들이 환자를 얼마나 꼼꼼히 진료했는지, 약 처방, 검사 처방, 환자 신체검진 결과를 그린 그림, 환자의 주요 정보 및 검사결과에 덧그려진 두꺼운 빨간 동그라미, 형광펜 표시를 보며, 새삼 종이차트의 위력을 깨닫는다. 선생님마다 환자 파악을 일목요연하게 할 수 있는 틀을 갖고 계신 것 같다. 반듯한 정자체로 SOAP에 입각해 십수년간 한 환자를 일관성있게 진료해 오신 역사를 훔쳐볼 때면 그 존경심으로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컴퓨터 전산에서 고딕체와 명조체의 딱딱한 필기체와 고정된 형식에 입각해 정리된 지금의 의무기록과는 다른, 선생님만의 방식으로 강조할 건 강조하고 자유롭게 그림도 그리면서 환자를 정리하고 치료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차트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산시스템을 이용해 환자 정보를 찾는 것이 예전보다 훨씬 수월하고 편리해졌지만 디지털 화면 안에서는 스승님의 발자취와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워 아쉽다. 레지던트도 현란한 컴퓨터의 기능을 이용해 CT의 중요한 컷도 가져다 붙이고 특정 검사수치의 변화를 그래프로 전환하여 기록으로 옮겨놓고 아무리 긴 환자의 병력도 drag and copy를 이용해 완벽하게 의무기록을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drag and copy로는 절대 환자의 다이나믹한 병력을 파악할 수 없다. 완벽한 의무기록을 작성했지만 정작 중요한 환자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년여년 전 각종 X-ray film, lab 결과지 등을 꼭두 새벽부터 인턴이 찾아서 회진 준비를 하던 시절, 윗년차 레지던트에게 갖은 압력을 받고 결과지를 못 찾으면 off를 없애버리겠다는 협박에도 불구하고 결과지를 찾지 못해 벌당을 섰다는 교수님, 그러는 사이에 텀이 바뀌고 다른 과로 근무가 바뀌에 되었는데, 가운을 바꿔 입으면서 호주머니 속의 잡동사니들을 버리다가 네모로 졉혀져 사각모서리 끝이 다 닮아버린 그때 그 검사 결과지를 발견하셨다고 한다. 이제는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그 정보를 애타게 찾는 사람이 분실된 결과지 때문에 결과를 알 수 없어 속을 끓일 필요는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좋은 시스템이다. 밤새 온 병원을 뒤지며 다른 과에서 슬쩍 들고 가버린 차트를 찾고,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신원의 사람이 컨퍼런스 준비한다며 전체 사진 중에서 몇 장을 들고 가버리셨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교수님 방 열쇠꾸러미를 얻어 온 밤을 지새며 방을 뒤져야 했던 시절도 있었는데그때 소모했던 시간과 노력, 에너지를 더 이상 무식하게 낭비할 필요는 없게 되었지만, 그만큼 남는 시간 동안에 나는 무엇을 더 잘 할 수 있게 되었을까? 그렇게 아낄 수 있게 된 시간만큼 나와 환자를 위해 무엇을, 얼마나 더 잘 할 수 있을지 긴 호흡으로 생각해 봐야겠다.

 

나는 타자속도가 꽤 빠른 편이라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외래에서는 환자 얼굴 한번, 눈 한번을 제대로 맞추면서 진료하기 어려움을 느낀다. 화면에 집중하여 눈으로는 검사결과를 보고 손으로는 계속 자판을 두드리면서 환자가 하는 말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건성으로) 듣기 일쑤다. 오랫동안 초조한 마음으로 진료실 밖 대기시간을 참다가 들어왔는데 정작 의사는 환자 얼굴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은 채 진료를 한다면 환자들이 섭섭하지 않을 수 없겠다.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으면서도 옛 선생님들의 진지하고도 진득한 진료방식을 접목시키는 묘안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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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의 돈은 어디로 새고 있나?

 

어려운 형편에 4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마치고 장학생으로 대학원에 입학한 24세 김양. 4기 위암, 복막 전이로 진단받았다. 복막으로 병이 진행된 위암은 의사를 힘들게 하는 병 중의 하나이다. 항암제가 약효를 발휘해 암의 활성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환자들은 계속 복수가 차고 항시 숨이 차고 음식을 잘 못 먹는다. 숨이 차니 환자들은 정서적으로 매우 예민해져서 다른 환자들보다 짜증을 많이 내는 것 같다.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답답하고 체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복수가 가득 찬 배 때문에 활동도 잘 못하는데, 활동을 못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으니 허리도 아프다. 복막에 병이 있으니 장 운동이 잘 되지 않아 실재 장이 막힌 것이 아닌데도 기능적 폐색이 오고 이 단계에 이르면 콧줄을 끼워서 위액이나 가스 등을 밖으로 빼주지 않으면 배가 빵빵해진다. 복강에는 물이 가득 차 있지만 실재 혈관 내에는 체액이 부족하여 만성탈수상태이다. 복수가 찰 때마다 물을 빼주면 탈수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없고 바늘로 매번 환자를 찌르는 일도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더 이상 항암제를 쓰기 어렵겠다고 생각되면 증상 완화를 위해 복강에 아예 관을 거치시키기도 한다. 하루에 500cc정도, 조금씩 조금씩 빼주면서 복부 불편감을 완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김양은 복강에 관이 있어 매일 물을 빼야만 했고 코에 끼운 비위관으로도 하루에 500-1000cc의 체액이 배액되고 있었다. 더 이상 마를 것도 없는 38kg의 몸, 하얗게 질린 얼굴, 말을 하다가도 헛구역질을 할 정도라 회진 때 말 붙이기도 무서웠다. 그녀의 암세포는 항암치료를 시작한 이래 한번도 약제에 반응하지 않고 맹렬하게 확산되었다.

말기 암환자. 더 이상 치료적 관점으로 환자에게 뭔가를 해 주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는 단계였다. 힘들어하는 증상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편안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며 임종준비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의료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검사하고 진단하고 치료하고 퇴원하는, 공장처럼 turnover가 빠른 3차 의료기관에서 그녀의 증상과 불편함들을 충분히 평가하고 고민하기 어려웠다. 호스피스로의 전원을 설명하자 부모님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선생님만 믿으니 최선을 다해달라. 여기서 치료 받을려고 온거다’ ‘요즘 컨디션이 좀 좋아지는 것 같으니 어떻게든 항암치료를 해서 살릴 방도를 강구해 달라고만 애원하였다. 지금 최선을 다하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지금 환자에 대한 최선은 항암치료를 하는게 아니라고, 나는 가슴을 치며 답답해 했지만 부모와 잘 공감되지 않았다. 부모님 마음 다치시지 않게 말도 골라가며 조심했지만, 결국 나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임종을 준비하셔야 된다고 명확하게 말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공들여 말하면 왠만한 사람들은 임종준비를 해야할 때가 왔구나, 정리할 게 있으면 해야겠구나 알아듣는 편인데 이 부모들은 도무지 내 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부정이었겠지환자 상태가 더 나빠져서 hopeless discharge를 하게 되던 날,  아버지는 집으로 내려가면 태반주사라도 맞춰줄거라고, 면역치료도 다 알아봤다고 했다. 도대체 병원에서 해주는게 없다고, 한번에 5백만원이 들면 어떻고 천만원이 들면 어떻냐고, 일단 아이를 살리고 봐야지, 나를 원망하며 퇴원했다.

 

16세 장군. 10대에 발병하는 골육종(Osteosarcoma)은 항암치료와 수술을 병행하면 완치율이 꽤 높은 병인데, 장군은 그 길을 비껴갔다. 폐와 전신 뼈로 전이된 그의 암세포는 잘 컨트롤 되지 않았다. 이미 다른 병원에서 3년간 치료받은 그는 이미 쓸 수 있는 항암제는 거의 다 쓰고 왔다. 외래에서 교수님은 작용기전이 다른 항암제를 포함하여 마지막으로 항암치료를 해서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완화되는지 가능성을 타진해보자고 설명하셨다. 이미 구부정해진 골격, 목발이 없으면 걷지 못하는 그. 항암치료를 여러 번 하고 났더니 예기불안과 구토가 생겨서 이번 입원 전날에는 아예 밥을 한 숟가락도 못 먹었다고 한다. 입원 기간 내내 부모님은 뵙지 못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장군의 침상을 지키고 계셨다. 작년 2월까지 항암치료를 했는데, 항암치료를 해도 병이 계속 나빠지고 아이가 힘들어하자, 이들은 한방으로 치료를 전환해서 침을 맞고 한약을 먹으며 지냈다고 한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혈관이 없어져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침을 맞고 한약을 먹는 동안 혈관도 생기고 생기가 돌며 좋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폐 전이가 악화되면서 숨이 차기 시작하자 다시 병원으로 올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당연하죠. 항암치료를 안하니까 혈관도 생기고 몸도 훨씬 편한거죠. 그게 침이랑 한약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구요라는 말이 하마터면 튀어나올 뻔 했지만 꾹 참고, ‘통증조절에 침은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약은 당분간 중단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은 항암제를 쓰고 있으니 여러가지 약제를 한꺼번에 쓰면 간에 무리가 될 수 있으니 항암제를 하는 동안에는 한방 치료를 쉬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한약이 안되면 침은 계속 맞아도 되겠죠? 침 맞으면 아이 컨디션이 많이 좋아지던데…’ ‘이번 항암제는 골수기능이 많이 떨어지는 약제라 중간에 침을 맞다가 염증이 생기면 쉽게 염증이 확산될 수 있습니다. 침은 정말 안됩니다.’ 그동안 당신들이 해 오던 한방 치료를 모두 다 못하게 하자, 나를 편협한 의사인게 뻔하다는 표정으로 보시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셨다.

 

원발장기를 넘어 다른 장기로 병이 진행된 경우를 4기 암이라고 한다. 4기가 말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4기 암환자들은 치료를 하더라도 완치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일정 기간 동안 병이 control 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상태가 나빠진다.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등의 방법을 더 이상 시도하기 어려울 때, 막힌 곳에 스텐트를 넣고 관을 넣어 배액하고, 뭔가 환자를 힘들게 하는 상황을 조절하기 위해 시술을 해 보아도 통증이나 피로, 호흡곤란, 식욕부진 등의 증상이 조절되지 않을 때, 병원과 의사가 환자를 위해 해 줄 수 있는게 별로 없을 때가 있다. 이미 환자와 보호나는 많은 고통으로 지쳐있다. 거기에 대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더 이상 해볼 수 있는 게 없습니다에 불과할 때 의사로서 무능력하고 힘들다. 그런 환자들이 의사를 원망하고 떠나도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무슨 주사를 한두번 맞고 수백만원을 냈다는 둥, 어디가서 뭘 해보면 효과가 있으니 거기로 가보겠다는 둥의 말을 할 때 차마 나는 그들에게 별 말을 못하겠다. ‘내가 뭘 해주는게 있어야 이들을 막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자조하면서

명확한 건 그들이 잡는 지푸라기는 참 비싸다는 점이다. 비싼 지푸라기의 효과가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아도 그들은 지푸라기를 던진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절박한 그들을 위해 뭔가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푸라기를 던지는 사람 중에는 의사도 있고 한의사도 있다. 그들은 그런 취지가 아니었고, 환자가 원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환자가 원해 죽기전에 수백만원짜리 굿을 했다 해도 내가 뭐라 말하겠는가. 나는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해준게 없는데

그래도 뭔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암 환자 한명이 죽기 전에 지출하는 의료비는 얼마나 될까? 평생 냈다는 의료보험료, 진단과 검사, 수술과 항암, 방사선치료 등 공적 영역 의료에 지출한 진료비의 비중과 건강보조식품, 각종 보완대체요법, 암이나 각종 질병과 연관된 보험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지출하는 돈 등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진 건강추구행위를 하며 지출한 비용을 모두 합치면 얼마나 될까? 어느 쪽의 비용이 더 많이 지출되고 있을까? 지출한 비용만큼 결과는 만족할만한가? 사실 이런 분야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는 확실하지 않다. 암보험에 가입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treatment outcome이나 survival에 차이가 있을까? 각종 건강보조식품의 복용은 증상 완화 및 삶의 질 향상에 얼만큼의 도움이 되는가? 그 모든 것들의 비용효과(cost-to-benefit)를 정확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내가 3년차 때 일이다. 4기 대장암으로 2주마다 한번씩, 34일동안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는 환자가 있었는데, 이번에 입원당시 Hb(혈색소) 9.0g/dl으로 경미한 빈혈이 있었다. 빈혈의 원인은 Anemia of chronic disease, 즉 암 등의 만성질환이 있을 때 동반되는 빈혈이었고, 굳이 수혈을 할 필요는 없었다. 환자의 전신상태를 고려할 때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target Hb 10g/dl 정도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에), 난 수혈보다는 적혈구 생성촉진인자(Erythropoietin)를 주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처방을 보니 간헐적으로 이 주사를 맞고 있었기 때문에 별 고민없이 처방했다. 퇴원 당일 환자가 병동 간호사실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화를 내고 있기에, 그 이유를 알아보니, 내가 처방한 적혈구 생성촉진인자가 보험이 안되서 평소보다 10만원 정도를 더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기가 맞겠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보험도 안되는 약을 처방해서 돈벌려고 하는 거냐며 화를 내는 중이었다. 나는 Hb 10.0g/dl 미만이면 보험이 되는 줄 알았는데, 이 환자가 최근에 수혈을 하고 나서 한번 12.0 g/dl이 체크된 적이 있었고, 중간에 12.0g/dl이 넘으면 보험이 안된다는 조항이 숨어 있었다. 환자 말대로 비보험 약제를 처방한 꼴이 되었다. 나는 좀 억울했지만, 환자 입장에서도 억울하겠다 싶었다. 문득 내 시야에 들어온 그의 진료비 영수증, 23만원 정도의 진료비를 지불하게 되어 있었다. 항암제 비용 뿐만 아니라 2 3일동안 문제없이 항암제가 투여될 수 있게 간호사들이 라운딩 돌고, 입맛 없다고 해서 영양제도 주고, 진통제 등 각종 약도 주고 2주간 집에서 먹을 약도 처방해 주고, 34일동안 잠도 자고 밥도 먹었는데 23만원이었고, 이번에 나 때문에 낸 돈을 빼면 평소에는 12-13만원 정도를 내고 나가는 꼴이었다. 암이라는게 하루 이틀 치료가 아니니 돈십만원이 작은 돈은 아니겠지만, 하루 만원하는 병실료와 식대도 참 싸지만, 나머지 의사의 진료와 간호사의 돌봄, 병원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가치도 참 싸게 매겨져 있다는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 퇴원하는 그의 가방 속에는 상어연골을 포함한 온갖 종류의 비타민, 건강보조식품, 홍삼액기스 통이 가득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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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을 때

 

58세 여자 환자, 같이 온 아들가 38세라고 하니 엄마와 나 정도 되는 연배다. 이미 6개월 전에 유방암을 조직검사로 진단받았고 한두달 후에 시행한 위 내시경에서 위암도 의심되었는데 그쪽으로는 조직검사를 하지 않았고, 조직검사를 한 병원에서는 위암 가능성이 높으니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는 말을 들으셨다고 했다.

당시에 찍은 내시경이랑 CT 사진을 가지고 오셔서 CD를 열어보니 다행히 유방암도 겨드랑이 림프절 없이 수술 가능한 상태인 것 같았고, 복부 CT 상으로도 위 근처에 특별히 의심할만한 림프절이 없어 위암이라면 수술 가능한 단계로 발견되신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환자가 암이며 수술하시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듣고도 수술이 가능한 병원-환자 집이 서대문구이니 세브란스병원에 오시는 게 제일 손쉬운 선택이었을 텐데도-에 가지 않은 채 시골 요양원에 가서 6개월 이상을 지내시다가 등이 아프다며 이제서야 병원에 오셨다.

나는 순간 복장이 터져서 이성을 잃을 뻔 했으나, 분명히 환자에게 사연이 있을 거라고 믿고 함부로 내 얘기, 내 주장만 하면 안된다며 끓어오르는 마음을 억누르고 환자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환자는 시큰둥, 별 말이 없다. 그리고서는 지금도 수술이나 조직검사 등 몸에 칼 대는 시술은 하지 않겠다는 말부터 먼저 하신다.

외래에서 이렇게 대화가 안되기 시작하면 큰일이다. 아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말을 못하고 있다. 아드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어도 아들 역시 명쾌하게 대답을 못한다. 아니, 이럴거면 병원에 왜 오셨나 나는 다시 억장이 무너지려고 했다. 왜 아픈지, 암이 얼마나 진행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는 해보시겠다고 하여 나는 입원장을 발급했다. 입원을 해서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외래에서 각종 검사를 다 하고 다음 외래를 잡아 내원하시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해서는 진료가 겉돌 것 같아서 나는 승부수를 띄우고 환자를 입원시켰다.

 

입원하자 마자 시행한 피검사에서 Hb6.8. 다행히 급성 출혈의 증거는 없고 그동안 혈변을 본 적도 없으시다고 하여 일단 수혈을 하였다. 위에서 출혈이 되고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만 내시경은 안하시겠다고 강력히 거부하신다. 내시경 하러 들어갔다가 조직검사를 할까봐 싫으시다고 한다. 지난번에 유방도 검사하는 줄 알고 초음파실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졸지에 조직검사를 하게 되서 후회하셨다는 말까지 하시며

악성이 의심되는 병변에서 조직검사를 하여 암세포를 확인하는 것이 암환자 진료의 기본이건만, 환자와는 여전히 말이 잘 통하지 않고 대화가 쉽게 풀리지 않아서 그냥 영상 검사를 먼저 해보기로 했다. 사실 영상 검사야 언제든 처방만 내면 금방 할 수 있다. 조직검사를 하는 것 보다 CT 찍는 게 훨씬 쉽다. 조직검사는 스케줄 잡기도 쉽지 않고 조직검사를 하고 나서 염색하고 슬라이드를 만드는 공정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는데 최소한 2-3일이 걸리고 세포 타입이 확실하지 않을 경우 특수염색을 하고 다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목놓아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는게 마음이 편치 않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이제는 복부 초음파도 잘 하지 않는다. 대개 초음파는 비급여이기 때문에 20만원 가까이를 환자가 내야하는 것에 비해 CT는 최첨단 기계로 찍어도 환자는 5%의 비용만 지불하면 되고, 가로 단면을 5mm 간격으로 커팅하여 뱃속을 샅샅이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에 환자를 손으로 만지고 장음을 듣고 이리 저리 검사하지 않아도 처방 한번만 날리면 손쉽게 뱃속 상황을 파악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가슴과 복수 CT를 찍고 보니, 등이 아프다고 했지만 복강 내 림프절 전이도 없고 유방이나 위 모두 병이 아직 자기 자리에서 많이 진행되지 않고 얌전히 자리잡고 있었다. 위 안에 있던 종양의 크기는 6개월 사이에 크기가 많이 커져서 식후에 등이 아픈 것으로 방사통이 생긴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었다. 아직 수술 가능성은 있는 단계! 나는 신이 나서 환자에게 달려갔다. 6개월 동안 치료를 안했는데도 아직까지 병이 많이 진행하지 않고 수술이 가능한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은 하늘이 다시 한번 소중한 기회를 주신 것이니 한번 도전해보자고 말할 참으로, 계단을 2개씩 뛰어올라 환자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이게 왠걸! 환자는 병이 별로 진행되지 않아 수술을 해볼 수 있다는 나의 설명에도 여전히 시큰둥하다.

그래요? 그래도 전 수술은 안할거에요

그렇게 수술이나 조직검사를 강력하게 거부하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한참을 말 없이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남편이 18년전에 이 병원에서 위암으로 죽었어요. 건강검진에서 위 내시경을 했는데 암인 것 같 고 조기인 것 같으니 큰 병원가서 수술 받으라고 해서, 이 병원에 왔죠. 내시경 하고 수술한 날까지 2주 정도 시간이 걸렸는데, 막상 수술을 하러 들어갔더니 생각보다 병이 많이 퍼졌다며 그냥 배를 열었다고 닫고 나왔대요. 그렇게 수술을 하고 나니 남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어요. 건강검진하며 아무 증상도 없었던 사람이 병원에 온 다음부터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고 통증이 생기고 음식도 못 먹고 항암치료까지 했는데 몇 달 못가서 죽더라구요.’

그랬었구나

그때는 지금보다 검사나 각종 시술의 정확도가 떨어지고 항암제도 좋은 약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으니 그럴 수 있었을 거라고. 암환자 중에는 그렇게 증상없이 4기로 진단되었다가 갑작스럽게 나빠지시는 분들이 드물지 않게 있으시다고, 그러나 그런 일이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니라고. 그러므로 지금 환자분 상태는 남편이 진단받고 치료받던 시절과는 완전히 상황이라고 말을 꺼냈다. CT에서 보이는 위 종양 덩어리도 모양상으로 보면 일반 위암이 아닐 가능성도 높다고, 진단을 정확히 해야 정확한 치료방법도 제시할 수 있으니 검사라도 해 보자고, 유방암은 아주 국소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니 수술하면 예후가 좋을 것이라고. 그러니 결국 유방이나 위 모두 완치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상황이니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결과를 기다려 보는게 어떻겠냐고. 만약 환자분이 내 엄마라면 반드시 수술을 하시도록 하루 종일 백날이라도 설득해서 수술하고 싶다고. 물론 지금 그렇게 조기라고 생각되도 수술을 하고 나면 병기가 생각보다 높은 것으로 진단받을 수도 있지만, 일단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보조적으로 하면 재발율을 낮출 수 있으니 지금 수술을 안하려고 하는 것은 교통사고가 무서우니 밖에 안나가는 거랑 비슷한 거라고. 나는 정말 열심히 설명했다. 보통 환자들에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열심히 설명하고 성의있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평소에 이렇게 환자보면 지쳐 나가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 환자에게 이렇게까지 매달릴 필요 없다는 생각, 환자가 선택한 길이니 내가 개입해서 결과를 바꾸려고 너무 애쓰지 말자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다가도, 환자의 CT를 보면, 이건 꼭 수술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니, 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환자를 설득하고 싶었다.

그런데 결론은 실패.

 

나는 이 글을 저장하고 청년의사에 송신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면담을 해보려고 한다. 모든 환자를 비슷한 농도에서 일관적으로 대하는게 쿨하고 좋은건데, 지금은 마음이 찝찝해서 그렇게 하면 안될 것 같다. 18년전에 남편에게 수술을 하게 할 것이 아니라 공기좋은 곳에 가서 맛있는거 많이 먹이고 사는 날까지 잘 보살펴주면서 죽더라도 고통없이 죽을수 있게 해줬어야 했는데, 자기가 병원가자고 우겨서 수술을 한 다음 남편이 나빠졌다며, 그래서 남편의 죽음이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 이후 18년동안 단 하루도 맘이 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괴롭게 사느니 내가 죽는게 낫지 싶다는 말을 하며 희미하게 쓴 웃음을 짓는다.

나는 그녀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이렇게 자신의 신념체계를 구축하고 병에 대한 개념,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있어 행동방식이 달라지는 환자들에게 의사로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적절한 것일까? 정답은 물론 없겠지만, 그리고 경험이 축적되어야 어느 정도 답이 보이겠지만, 아직 답이 안보이는 나로서는 늦은 밤 다 떨어진 에너지를 긁어모아 성심성의껏 환자와 대화를 나눠보는 수 밖에 없겠다. 예전엔 이런 거 잘했었는데, 이제 말주변도 떨어지고 있어 걱정이다. 이럴 땐 하느님, 제게 기를 불어넣어주세요외치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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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의사되기도 힘들다

 

작년 가을부터인것 같다. 나는 한달에 한번 꼴로 내가 4기 암을 진단받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여기 저기를 찔러 조직검사를 해 놓고 초조하게 검사결과를 기다리다가 결국 수술이 불가능한 4기 진단을 받고 곧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한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점검해 보거나 내 인생의 과제를 어디까지 수행했는지 미처 돌이켜볼 틈도 없이 항암치료가 시작된다. 꿈 속인데도 항암제가 혈관을 타고 들어가는 느낌, 명치가 아리한 느낌, 구역감이 치밀어 오르는 느낌 이런 감각이 매우 예민하게 살아있어 식은 땀을 흘리며 깬다. 일어나서 흠뻑 젖은 베게를 보며 내가 항암치료 중이라 땀을 많이 흘리는건가, 병원으로 향하는 내가 과연 출근을 하러가는 건가, 항암제를 맞으러 가는건가 한참 헷갈릴 정도이다.

그렇게 수시간을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고 비몽사몽하는 동안, 감정적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 특히 가슴이 제일 얼얼한데, 마치 뭔가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이 내 심장이 제대로 뛰지 못하게 짓누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멀찌기 떨어져서 보고 있는 또 하나의 내가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그런 유체이탈적인 느낌이 흐릿해지면서 제정신이 드는데, ‘그래, 착하게 살자. 환자들한테 잘하자. 우리 환자들 모두들 이렇게 충격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이고, 재발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영혼이 죽어갈지도 몰라. 몸은 나빠져도 영혼까지 암으로 짓눌리게 하면 안되겠다그런 새삼스러운 결심을 하곤 한다. 그래서 가끔 멍해질 때, 인생이 부질없다는 느낌을 받을 때, 아니면 누군가가 아주 미울 때, 내가 지금 완치될 수 없는 병으로 투병생활을 시작하게 된다면 내 마음에 걸리는 일,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는 관계들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유치하면서 대안없는 몽상인 줄 알면서도 자꾸 상상해보게 된다.

 

몸이 아프다고 영혼까지 아프게 하지는 말아야지

 

오늘은 월요일 아침, 주말을 보내고 나니 환자 명단에 변동이 많다. 교수님 회진을 준비하며 프리라운딩을 돌고 있는 바쁜 와중에 문자메시지가 왔다. 어머니가 신장에 생긴 종양으로 입원하셨다는 후배 레지던트. 옆구리 통증을 호소하는 어머니 모습이 떠올라 자기 가슴에 피멍이 드는 것처럼 고통스럽다고바쁜 회진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진다. 뭐라도 한마디 답장을 보내야 하는데 아직 진단도 안되어 있고 사진도 못 본지라 뭐라 할말이 없다. 그래도 녀석이 너무나 애가 타서, 어쩔줄 몰라 나에게 매달린다는 느낌이 드니 뭐라고 한마디 해줘야 하는데

2주일간 입원했다가 오늘 퇴원하시는 의사선생님이 계시다. 사실 조마조마하지만 일단 퇴원하기로 했다. 서서히 좋아지실 거라고 격려해드렸는데 자신이 없으신가 보다. 회진 후에 따로 나를 좀 보자 하시며, 꼭 좋은 의사가 되라고 당부하신다. 그리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신다. 아프고 나니까 눈물이 많아진다며 그냥 줄줄 눈물을 흘리신다. 나도 갑자기 눈물이 난다. ‘가을 학회 때는 꼭 좌장맡으시고 좌장보는거 사진 찍어서 보내주세요라며 선생님께 주문을 하긴 했지만, NPO 상태로 병원에서 생신을 넘기고 미음 몇 수저 겨우 드시는 상태에서 퇴원하시는 선생님이 너무 안쓰럽다. 암은 평등하구나. 누구나 똑같이 괴롭히는구나

 

평범한 종양내과 의사하지 말고 다른 길을 찾아봐

 

그렇게 마음이 무거워져서 회진을 마치고 방에 돌아와 메일함을 열어보니 미국에 연수간 선배가 오랜만에 안부메일을 보냈다. 청년의사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지 꽤 오래 되었는데, 이제야 알았나보다. 예전의 나를 아는 그는 이제 내가 문체도 그렇고 생각도 의사같다며, 죽음을 앞둔 사람과의 대화에서 뭔가 인간의 본성을 터치하는 인문학적인 글을 써보라고 운을 띄운다. 그리고 가슴을 후벼파는 한마디. ‘임종의학을 전공하는 의사, 우리나라에도 그런 종양내과 의사가 필요한 것 같아. 항암치료의 대상이 될만하면 환자를 보다가 그 선을 넘고 나면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종양내과 의사말고. 심지어 해주지 못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매몰차게 관계를 끊어버리는 그런 냉정한 종양내과 의사말고그냥 평범한 종양내과 의사하지 말고 다른 길을 찾아봐’. 아주 오늘 아침 연타속 홈런이다. 정작 나는 평범한 종양내과 의사짓도 제대로 못해서 허덕이는 형편인데, 내가 초라한 존재가 된 건지, 그가 그동안 나를 잘못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것인지, 여하간 최소한 생각없이 함부로 살지 말라는 경고로 해석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의대 입학하기 전에 사회학을 먼저 공부했다는 이유로 의대 공부에 깐죽거릴 수 없었다. 내 관심사가 순수 의학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 사회, 제도 등을 아우르는 비의학적인 영역에 더 많이 쏠려있다 하더라도 내가 의사의 신분으로 환자를 보는 신분인 이상 나는 철저한 의사여야 했고 정통 의학적인 견해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10년을 지내다보니, 나를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드디어 내가 의사화된 것처럼 보이나 보다. 의사를 하려면 제대로 된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너무 강력하게 고수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별볼일 없는 내 존재의 가벼움에 초라함을 느끼고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나 손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데, 최소한 교과서적인 표준 치료에 당당할 수는 있어야지 싶으니 그만큼이라도 잘 해낼려고 하는데, 그곳에 이르기까지도 내게 요구되는 덕목이 첩첩 산중이라 절망스럽고, 뭔가를 이루기도 전에 자꾸 허물어지려고 하는 것 같아 큰일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헛소리 안하고평범하게 살기도 버거운데, 이거 월요일부터 의기소침해지니 이번 한주 몸조심 해야겠다.

 

임상강사 1년을 보내며, 지금까지 달려온 속도에서 잠시 호흡을 멈추고 내가 살아온 최근의 시간들을 돌이켜보고 싶다. 잠시 다른 호흡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내가 너그러워질까? 전문의가 된지 1년이 되었다. 어쩌면 지금의 1-2년의 경험과 습관, 태도가 앞으로 의사로서 내 삶의 색깔과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간이라면 자전거 핸들 방향이 어느 쪽으로 꺾여있는지 모른 채 무작정 최선을 다해 페달을 밟아 대는 것보다는, 잠시 자전거를 멈춰 세우더라도 허리를 곧추 세우고 내가 전진하려는 길이 제대로 된 방향을 향한 것인지 마지막으로 재점검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턴을 마치면서 레지던트가 되면 좀 더 나아질거라고 믿었고 레지던트 한년차 한년차 올라가면서 내년에는 분명히 더 나아질거야 믿었고, 전문의가 되고 나면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독립적인 개체로 우뚝 서게 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이렇게 허약해서 큰일이다. 할 일이 산더미지만, 이번 설 연휴 때는 책과 음반을 잔뜩 싸들고 어디론가 잠적해서 최소한 1년치 마음의 양식은 쌓고 병원으로 복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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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과 개인을 연결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을 무척 좋아했고, 그래서 내 꿈은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대학교 4학년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 여전히 우중충한 학교 건물, 한문 이름의 출석부, 교실 정중앙에 매달린 궁서체의 어색한 급훈, 그렇게 구리구리한 학교 안에는 보석처럼 빛나는 아이들이 살고 있었고, 나는 한달의 실습기간 동안 그들과 신나고도 유쾌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무렵 아마 난생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요즘 연애하니? 예뻐지는 것 같다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아마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예뻐졌던 시기였나 보다.

 

끝없는 나락 속에 떨어진 자존심, 존재감없는 1년차 주치의 시절을 보내며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11, 나는 한 3년차 선생님을 만나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그 선생님은 나에게 좋은 선배란 어떤 사람인지, 좋은 백커버는 어떻게 후배를 도와주는지 귀감을 보여주었다. 만성기관지 폐쇄증으로 이산화탄소가 몸안에 축적되어 2달 사이에 3번이나 기관삽관을 하고 중환자실을 오갔던 환자가 호흡이 고르지 않고 의식도 흐려지는 새벽 1, 나는 ABGA CO2 retention이 다시 되는 걸 보며 4번째 기관삽관을 해야 하나 고민하였고, 의학적으로 객관적인 적응증의 기준을 따르면 당연히 기관삽관을 하는게 맞겠지만, 전신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 이번에도 기관삽관을 하면 영영 기계호흡을 떼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꾸 망설여졌다. 환자의 횡경막 근육이 조금씩 지쳐가고 의식이 흐려지며 잠에 빠져드는데, 우물쭈물 시간을 보내다간 큰일나겠다 싶어 새벽 2시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병원 내에 계셨는지, 당장 병동으로 내려와 아침까지 침상을 함께 지키며 환자를 봐주셨다. 힘들고 길었던 밤, 그는 조근조근 뭔가를 많이 가르쳐주었다. 매주 일요일 오전에는 병원내 까페에서 파는 비싸고도 맛있는 까페라떼를 사가지고 평소보다 늦게 병동에 나타났다. 교수님이 안오시는 일요일이라도 천천히 회진을 도는 여유를 즐기자며그를 보며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존재가 되리라, 3년차가 되면 1년차를 진짜 사랑하고 많이 가르쳐주고 도와주는 선배가 되리라결심했었다. 그러나 막상 년차가 올라가니 후배들을 챙기기보다 내 앞길을 챙기는 것조차 벅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전 학회에 갔는데, 예상치 못하게 나보다 2년 아래인 트레이닝 병원 후배들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3년차일 때 1년차로 일하던 그들이니 내가 오죽 닥달하고 혼내고 괴롭혔겠는가! 그런데도 그들을 보자 어찌나 반갑던지! 그 반가움은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물론 그들은 나를 그다지 반기지는 않는 눈치였다. 옛날이 생각났겠지

 

같은 대학에서 같이 공부하고 실습하고 인턴, 레지던트로 일하던 동질적 집단에서 벗어나 낯선 병원에서 fellow를 시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도 다르고 처방 양식도 다르고 응급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notify system, 푸쉬하는 시스템도 달라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해결의 노하우를 적용할 수 없었다. 초창기, 뭔가가 많이 다르고 적응되지 않아 힘들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낯설고 그래서 마음터놓고 환자에 대해 토론하는 기회를 갖기 힘들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전문의답게 쿨한 fellow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아랫 사람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며 일을 시키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되었고, 무식을 티내서도 안되었다. 말도 우아하고 교양있게, 그들과는 직장인 만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윗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내 능력의 부재 탓인지 초반 2-3개월은 참으로 어색하고 마음편치 않게 지냈고, 병동제라 접촉해야 할 1년차 주치의들이 너무 많아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혼도 내고 분통을 터뜨리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1년차들이 점점 진화하기 시작했고 2년차들은 똑똑해지기 시작했다. 맘이 통하는 후배들도 생겼다. 각자 병원내 어디선가 일을 하면서 EMR 쪽지 시스템을 이용해 환자 관련 오더만 전달하는 관계가 아니라 안부도 묻고 걱정도 해주며 인간적인 교감을 쌓기도 했다. 나를 놀라게 하는 후배들도 생겼다. 저널을 들이대며 얼마전에 죽은 그 환자는 아마 *** 균에 의한 패혈증 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를 커버하는 안티를 안 쓰고 있는데, 그럴 경우 합병증으로 드물게 **** 증상이 발생하여 사망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라며 나의 코멘트-환자 expire 하기전에 culture 나갔으니까 나중에라도 결과 확인해보세요-를 잊지 않고 있다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인다거나, ‘이제 증상없으니까 이 약은 그만 쓰죠라고 말하면 선생님, 그 약은 *** 이유 때문에 쓴건데요, 그럴 경우 일단 쓰기 시작하면 1주일 이상 써주는게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요라며 당당하게 나의 근거없는 주장을 받아치기도 하고, 내가 안티를 바꿉시다. 환자 상태가 좋지 않네요라고 하면 지금 마지막 안티 들어간지 48시간이 안되었고 환자 vital sign도 안정적이며 임상적으로 특별히 악화상태를 보이는 것은 아니니 배양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바꿔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라며 조목조목 내 오더를 따지기도 한다. 내심 어려울 거라 생각하며 부탁했던 일들을 어떻게든 처리해 놓고 오후 회진 때 가서 깜짝 놀라며 어떻게 해결했나요?’ 라고 물으면 제가 힘좀 썼어요라며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씩 웃는다. 별 공치사는 하지 말아달라는 제스쳐와 함께.

 

이곳 삼성서울병원의 전공의들은 성균관 의과대학 출신의 인턴, 레지던트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전국 여러 대학의 각계 각층에서 모인 의사들이 더 많다. 그래서 누군가가 일 하는게 맘에 안들면 제 어느 학교 출신이니?’라며 쉽게 개인의 특성이나 한계를 집단으로 귀속시키는, 역사와 전통이 오래되었고 비교적 균질한 집단으로 구성된 대학병원에서 가장 먼저 족보를 따지는 관행이 자리잡기 힘들어 보인다. 그저 누구누구가 열심히 일하고 똑똑하고 누구누구는 게으르고 말도 안듣는다는 평가는 있을지언정, 개인의 특성을 그가 속한 조직의 특성으로 함부로 환원시켜 일반화시키는 나쁜 문화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달리 보면 보다 친밀한 선후배 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밀도있게, 생활속에서 형성되기 어려워 보인다. 자칫 형식적인 관계, superficial한 관계로 전락해 버릴 위험성도 있다. 의사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선생님보다는 가까운 선배의 조언이 필요할 때, 환자 관련, 내 진로 관련 여러 의논할 일이 생겼을 때 이곳 전공의들이 선배를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 혼자만의 생각으로 너무 쉽게 꿈을 포기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만큼의 세상 경계 안에서 미래를 결정해버리는 모습을 보면 참 아깝다 싶다. 너무 끈끈하고 얽어매는 지겨운 인간관계도 문제고 싫지만, 쿨하다는 미명하에 서로에게 싫은 소리 안하고 관심보이지 않고 일로만 연결되는 썰렁한 인간관계를 받아들이기도 싫다.

여하간 이미 형성된 기존 사회의 질서조차 재빨리 쫒아가기도 힘든, 유연성이 굳어버린 나이에 바뀐 조직에서 내가 잘 적응하게 도와주는 후배들이 고맙다. 콘센트에 플러그가 꽃히지 않으면 어댑터를 써야 하는데, 조직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어댑터는 역시 또 다른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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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나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논문의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 병원에 남아 있다. 주말이나 되어야 한숨 돌리고 내 일을 챙기게 된다. 나이가 먹어서인지 워밍업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내 고민이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었더라리듬을 찾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이제 겨우 집중할 수 있게 되었는데 병동에서 전화가 온다. 어떤 환자의 보호자가 **** 교수님 담당 fellow를 찾는다는 것이다. 환자 얼굴에 피부 병변이 생겼는데 그걸 어떻게 해야하는지 상의하고 싶다는 것이다. 병동 간호사는 피부 병변이면 직접 보지 않고 판단하기 어려우니 응급실이라도 내원하시는게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도 꼭 의사랑 통화를 하게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무리 사소한 변화라도 환자와 가족들은 불안할 수 있겠지…’ 병동에서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어본다. 받지 않으니 내심 다행이다 싶어 전화를 끊는다. 그래도 왠지 찜찜해서 30분쯤 지나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본다. 젊은 여자. 딸인가보다. 요점은 자신은 지금 외국에 있는데 환자에게 몇일전 피부병변이 생겨서 얼굴이 붓고 진물이 나는데 이것이 암과 관련되어 있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묻는 것이었다.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는 대답을 하는데도 계속 환자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동네 피부과에서는 대상포진이라고 했다는데 동네 피부과는 암 환자를 본 경험이 없으니 잘 모르는 거 아닌가요?” “아니 그럼 거긴 왜 가셨어요? 바로 종합병원 피부과를 가보던지 우리병원 종양내과 진료를 보던지 하시지” “저희 어머니가 대학교수이신데 바쁘시고 병원 가기도 싫어하시고 집도 멀어서요” “집이 어디시죠?” “수유동이요나는 순간 맥이 빠지고 기분이 나빴다. “지금 가면 봐주실 수 있나요?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면식도 없는 의사에게 전화로 환자가 지금 응급실로 가면 와서 봐 달라는 전화를 하고, 그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며, 내 이름을 묻는 행위에 당황스럽다. 전화를 하면 초 단위로 상담비를 계산한다는 미국 변호사 얘기를 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이렇게 요구하는 것은 너무 무례한 것 아닌가?

나는 얼떨결에 그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지금 병원에 남아있게 되었다. 어차피 병원에 있을 거니까 환자가 응급실오면 한번 가서 봐주지 가볍게 생각했는데, 생각할수록 괴씸하다. 보호자에 휘둘려 갑자기 내 시간, 지식, 노력에 대한 어떤 보상도 없는 의료행위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 자리 전화기가 울린다. 그 딸이다. 한시간쯤 후에 응급실에 도착할 거란다. 내 시간과 공간에 마음대로 개입하는 그녀가 갑자기 미워진다.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환자라도, 환자가 요구하면 무조건 그것에 응해야 하는가, 정석대로 진료를 받으라고 하지 않고 응급실로 오시라고 대답한 내가 싫어진다. 내가 잘못한 것이다.

 

정석대로라면 나는 병동의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었고, 병동 간호사가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전화를 했더라도 내가 일요일 오후 응급실로 직접 가서 환자를 볼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정석대로라면 환자는 암과의 관련성이 의심되고 불안했으면 병원 외래에 내원하여 종양내과와 피부과 진료를 보고 필요하면 조직검사를 하여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순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의사가 아니었던 시절, 특히 의료사회학을 공부하던 시절, 의사와 의료를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어떤 점이 불만이고 문제점이라고 생각했었는지 자주 되돌이켜 생각해본다. ‘환자가 병과 관련하여 문제가 생기거나 불안할 때 의사한테 전화하면 안되?’ ‘환자를 보는데 일요일이 어디있어?’ ‘다른 병도 아니고 머리로 전이된 암을 가진 말기 암환자인데 얼마나 마음이 다급하겠어?’ ‘병원에 있으면서도 내려와서 환자를 보지 않겠다는거야? 의사로서 자질이 있는거야?’ ‘응급실에 가서 제대로 진료를 받으려면 얼마나 오래 기다리고 힘든지 알아?’ ‘환자도 자기 할일이 있는 사람인데 병원에서 그렇게 일방적으로 대우해도 되는거야?’ 아마도 내가 의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항의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와 지금, 의료사회학을 공부하던 시절과 의사가 되어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요즘, 이 두 간극은 매우 멀리 떨어져있고, 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변화와 노력이 필요할텐데 그 답을 쉽게 얻기 어렵다. 나는 개인적 차원에서, 일단 내가 진료하는 환자, 내가 만나는 환자에게 그런 불만이 없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으로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환자도 환자로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환자는 권리도 있지만 의무도 있고 예의도 갖추어야 한다. 자신의 요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않으면 의사와 병원을 비난하거나 고발해 버림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당연시 인정받으려고 하는 환자나 보호자를 만나면 정말 화가 난다. ‘인터넷에 올려버리겠다며 협박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왈가왈부 하기보다는 마음내키지 않아도 환자의 입장에서 일을 처리해 줄려고 이리저리 애를 써서 방법을 마련해놓으면, 어째 일이 이리 더디냐, 내가 원하는건 이런게 아니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이제는 활성화되어버린 고객상담실에 불만건수로 접수를 해버린다. 굳이 그렇게까지 애써줄 필요가 없었던 일에 노력을 기울이다가 오히려 뺨 맞는 꼴을 당하는 것이다.

정석대로하는 의사를 만나 벙어리 냉가슴으로 묻지도 못하고 쩔쩔 매는 환자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1 1초도 더 시간을 내어주지 않는 의사들을 원망한다. 나는 그들의 편을 십분 이해하는 의사가 될 줄 알았다. 의사가 아니던 시절, 어쩜 저런 의사가 다 있나 싶었는데, 의사가 되고 보니, 어쩜 저런 환자, 저런 보호자가 다 있나 싶다. 적절한 의사-환자 관계의 형성은 단지 인성교육이나 태도의 문제, 혹은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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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대생, 레지던트일 때는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던 선생님이 나의 환자가 된다면? 그래서 그의 문제를 진단하고 나의 실력과 재능으로 수술을 하거나 술기를 시행하여 증상을 호전시키고 완치시킬 수 있다면? 정말 뿌듯할 것 같다. 선생님도 당신 제자가 그만큼 능력있는 의사가 되었으니 스승으로서 뿌듯할 것이고, 나도 예전에는 선생님 눈도 못 마주치는 햇병아리였는데 당신 몸에 손을 대고 이곳 저곳을 주무르며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는 의사가 되었으니 솔직히 으쓱할 것같다. 생각만 해도 우쭐해진다.

그러나 나는 종양내과 의사라서 그럴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 내가 보는 환자 중에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경우는 수술 후 재발방지를 위한 보조항암요법을 받는 환자들인데, 이들이 완치를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수술 때문이지 항암제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주 드물게 4기 환자 중에도 항암치료를 하는 중에 CT 등의 영상검사에 병이 눈에 보이지 않게 없어지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완치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 힘들다. 대개의 환자들은 일단 전신상태가 괜찮으니 항암치료를 하면 일시적으로 병이 호전되지만 궁극적으로는 병이 다시 나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항암치료를 받지 않는 나머지 환자들은 항암치료가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에 항암제가 아닌 다른 보조적인 방법으로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선생님을 진료하게 되는 경우는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고, 우쭐거릴 만한 상황은 더더욱 아니며, 어쩌면 다른 의사-환자 관계보다 더 어색하고, 심리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으로서 강한 모습, 예전의 당당했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항암치료를 받으며 견디고 있는 지금의 당신 모습을 더 참기 힘들어 할지도 모르겠다.

 

의사들이 가장 꺼려하는 환자는 의사-환자

의사들이 진료를 가장 꺼리는 환자가 바로 의사-환자(원래는 의사인데 환자가 된 사람)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까지 함께 한 사이이니, 얼마나 진정으로 잘 돌봐줘야 하겠는가. 그러나 의사환자에게는 검사 하나만 하려 해도 보통 환자한테보다 설명도 훨씬 더 자세히 해야 한다. 검사 중 합병증도 없어야 하고, 검사 결과도 잘 나와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부담감에 시달린다. 같은 의사끼리니까 어려운 의학용어도 척척 이해하고 의학이라는 학문의 존재적 불확실성도 잘 이해하기 때문에 일반 환자를 진료하는 것보다 말도 잘 통하고 이해도도 높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전공이 다른 의사들끼리는 말도 더 안 통하고, 어줍잖게 알고 있는 옛날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면, 그걸 무시할 수도 없고 안 들어줄 수도 없고 대략 난감이다. 환자가 주장하는 강도도 높고 고집도 세고 그런 와중에 주위의 지인들로터 엄청난 압력까지 동반되면 짜증 동반이다. 평생을 의사로 살아온 환자는 자존심이 세고 병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예민함으로 똘똘 뭉쳐있고 가족들은 환자가 의사이니 그를 통제하지도 못한다. 게다가 그 병이 암이라면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불행히도 암은 발생율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즉 유병율도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생존자가 많아졌기 때문에 유병율이 높아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하간 주위 아는 사람들 중에 암 환자도 많고 항암치료를 받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진료하는 환자가 의사이거나 아니거나, 대통령이거나 아니거나 상관없이 똑같이 진료해야하는 게 원칙이겠지만, 여하간 의사-환자는 솔직히 신경쓰인다. 종양내과의사로서 낫지 않는 암으로 기약없는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 의사-환자를 보는 일이 아직은 어렵다. 환자가 자신의 예후나 치료의 어려움에 대해서 비교적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추상적으로 얼머무려서 달랠 수도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래도 환자는 환자다

VIP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듯이, VIP니까 검사도 덜 하고 보통의 과정을 뛰어넘거나 과도하게 진행하다가 오히려 환자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환자가 된 의사선생님께 ‘VIP syndrom을 우려하여, 다른 환자분들과 똑 같은 과정으로 검사하고 치료하겠습니다. 이해하실 수 있도록 설명은 얼마든지 자세히 해드리겠지만, 담당 의사인 제가 보기에는 이러이러한 검사와 과정을 다 거치며 다른 환자들과 똑같이 고생하시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 탈이 없을 것 같습니다. 검사 및 치료방침을 결정하는 과정에 환자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는 있겠지만, 최종 결정은 담당 의사인 제가 하는 것이니 제가 결정하면 그대로 따라주십시오라고 초반에 말하는 편이다. 조금 더 배려하려고 정규 코스를 벗어나는 순간에 환자가 나빠지는 걸 꽤 자주 목격했다.

신기하게도 진료 초반에 이렇게 나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면, 환자가 된 노 선생님들이 고분고분 따라주신다는 점이다. 환자가 된 그분들 역시 담당 의사가 한번이라도 더 찾아와 주길 바라고, 오후 회진시간이 되면 내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다. 당신도 이미 다 보고 알고 계신 CT사진과 피검사 결과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해 주고, 배라도 한번 만져주고 가기를 마음 속으로 바라고 있다. 나보다 훨씬 높은 교수님들이 진료하고 상의하여 진료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나의 결정권은 별로 없지만, 약도 교수님들이 다 정해주시기 때문에 내 역할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주치의가 환자 곁에 머무르고 진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게 중요한가 보다.

암으로 투병중이신 선생님께 종양내과 후배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사실 그리 많지 않다. 다른 환자들과 똑같이, 아프면 진통제주고, 소화안되면 소화제주고, 입맛없으면 입맛나는 약 주고, 피검사해서 부족한거 채워주고 넘치면 뺴주고, 운동하시라고 자꾸 잔소리하고, 가장 중요한 항암제를 결정하는 것에서도 다른 환자 진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해진 병기에서 표준치료하는 거고, 임상연구가 있으면 임상연구로 치료해보는 거고, 치료의 이득이 확실하지 않으면 일단 경과관찰하면서 증상조절하는 거고. 말 안듣고 고집피우면 혼내는 거고. 그러고 보니 하나도 다를 거 없는데, 괜히 부담만 가지고 있었구나 싶다.

환자가 된 의사선생님께 측은지심을 갖는게 적절한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예전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 환자복을 입고 투병중인 모습이 안쓰럽고 믿기지 않는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병동을 호령하고 우리를 혼내고 지적하고 잔소리하셨는데, 이제 그 잔소리를 어린 의사에게서 듣고 꼼짝 못하는 환자가 되셨으니 마음이 좋지 않다. 저만 믿고 열심히 치료하시면 좋아지실 수 있다고 큰 소리칠 수 있는, 그런 낙관적인 말을 할 수 없는 의사이다보니 어깨가 좀 움츠러든다.

별 수 있겠는가.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는 자주 가보는게 왕도이다. 선생님이니 부담스럽지만 자주 가보고 상태보고 불편한 거 찾아서 해결해드리고 마음 편히 해드리는 거 정도 해드릴 수 밖에 없겠다. 이럴 때는 내가 종양내과인게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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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부정수소외래, 혹은 보호자 외래가 있어야 하나?

 

가끔 눈을 떼기 어렵게 내 마음을 낚아채는 책들이 있다. 재미로, 감동으로 혹은 지식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는 그런 책을 만나면 여러권 사서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며 내가 느낀 기쁨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편인데 일본 병리의사로 알려진 가이도 다케루가 쓴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이라는 책은 진짜 재미있어서 주위에 웃음이 필요한 의사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반응은 꽤 좋은 편. 단 이 책의 진짜 재미는 병원 생활을 해본 의사가 가장 절묘하게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다구치는 신경과에서 분리되어 나온 부정수소외래(不定愁訴外來, indefinite complaint outpatient clinic)의 만년강사인데 부정수소외래를 찾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증상이 모호하고 진단이 어려우며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에 비해 실재 객관적인 검사를 통해 이상소견이 나타나지 않아 타과에서 이미 담당 의사들과 관계가 틀어지고 병원과 의사에 대한 불만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구치가 반나절 외래 한타임에 보는 환자수는 4-5, 환자 한명당 40분정도 진료하면 그날 그는 충분히 진료 임무를 완수한 셈이 된다. 환자들은 외래에 오면 자신의 증상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족관계, 돈문제, 은밀한 연애 문제까지 모두 다구치에게 털어놓고 그런 정황적인 요인들과 자신의 증상을 연결해서 설명하기도 하고 그렇게 말을 늘어놓다가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다구치는 그냥 마음을 비우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추임새를 해 줄 뿐이다. 사실 환자는 의사로부터 해결책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특별한 검사를 하지도 않고 약을 처방하지도 않고 진단을 위해 머리를 쥐어싸매고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병원 당국이 의사에게 요구하는 진료실적평가에 대해서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의사들은 진료하다가 관계가 틀어진 환자들의 불평불만이 쌓이기 시작하면 부정수소외래에 협진을 내서 환자를 그쪽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에, 병원측은 고객불만창구에 사건이 접수되지 않고 의사가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에, 다구치는 많은 환자를 보지 않아도, 수익성 높은 진료를 하지 않아도, 논문을 많이 쓰지 않아도 부정수소외래를 담당하는 의사로 인정받고 있다. 다구치는 그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외래 환자들을 적절히 관리하며 병원, 의사, 환자 모두와 적절한 거리감을 가지고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실재 일본 병원에 이런 진료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현실에서 부정수소외래가 있다면, 그리고 실재 다구치라는 캐릭터의 의사가 있다면 이들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런 외래가 있어서 환자를 그리로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꽤 자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에게 불만이 쌓인 환자의 분노를 잘 다스려주면 그가 아주 고마울 것 같다. 여하간 환자는 불편하고 힘이 들고 삶의 질이 떨어지는데, 의사인 내가 그를 위해 할애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은 한정되어 있고 다른 환자의 진료시간을 빼앗가하며 내 진료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그는 밉고, 의사와 환자는 서로에게 짜증을 내고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환자 진료가 아니라 보호자 진료?

 

환자 진료를 할 때 정작 환자의 증상과 불편감에 귀를 귀울이기보다, 함께 동행한 보호자의 말에 휘둘리거나 그의 목소리에 진료가 점령당하는 경우가 있다. 보호자가 조폭이라거나, 보호자가 의사라거나, 보호자가 핵심 권력층의 누군가와 가까운 사람이라거나, 보호자가 성격이 너무 까다롭다거나, 보호자가 너무 유식하다거나, 보호자가 너무 말이 많을 때, (그러면 안되지만) 보호자와 대화하고 보호자에게 정황 설명을 하고 보호자의 불만을 잠재우느라 내 에너지를 소모하고, 그러는 과정에 내 마음도 틀어져 버리면 정작 환자를 진찰하는 시간이 줄고 환자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환자가 적절한 설명을 들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의사들은 이제 많지 않다. 검사를 하는 이유, 기대효과, 예후 등에 대해 가능한 충분히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추세라고 생각한다. 다른 병원에서 옮겨 온 환자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이전 병원에서 설명들은 것에 대해 말하는 걸 들어보면, 다른 의사들도 참 열심히 설명하고 있구나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과도하게 의료진에게 설명을 요구할 때, 내가 의과대학을 수년간 다니고 의사생활을 하면서 배운 지식으로도 쉽게 이해되지 않고 확실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병의 기전과 진단검사 및 각 검사의 의미를 설명해달라고 할 때, 환자의 모든 증상을 하나하나 다 열거해가며 이러한 증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모두 설명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받아적을 준비를 하는 보호자들을 만나면, ‘내가 더 경험을 쌓아야 이런 상황을 능수능란하게 해쳐나갈텐데 아직 경험이 없어 힘들구나. 이 모든 것들이 다 트레이닝이다라고 생각하며 감정을 싣지 않고 그들을 대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솔직히 욱할 때가 많다.

엊그제 입원한 어떤 환자도 보호자가 지나치게 예민하여 대하기 어려웠고, 응급실에서 병실로, 병실에서 타병실로 전동, 전실할 때마다, 주치의들에게 환자인계만큼 많은 시간 보호자 인계를 해야 한다. 말조심해라, 응급실 한번 뒤집었다, 피검사 한번 하는 것도 보호자가 그 의미를 캐물으니 몰아서 검사나가라, 침대에 주사바늘 떨어져 있었다고 간호사 엄청 괴롭혔다, 이런 것들을 인계하다보면 환자는 간데없고 보호자만 인계되는게 아닌가 싶다. 전실된 환자를 처음 만난 주치의가 말 한두마디 실수해도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소리지르고 고소 운운하는 보호자를 만나면 욱 해서 한판 붙고 싶다는 마음 반, 조용히 피해야지 하는 마음 반이다. 나는 그런 보호자를 신경쓰다가, 숨 차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환자에게서 열이 나지 않고 백혈구 증가증이 없어도 폐렴을 의심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으니 주치의와 이 환자에서 항생제를 투여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설명을 해주려다가 보호자를 만나 쓸데없는 것까지 물고 늘어지는 그에게 열받아 항생제 처방을 깜박 잊고, 이틀이 지난 뒤에 환자의 호흡곤란이 악화되자 허겁지겁 항생제 처방을 지시하였다. 의사가 절대적인 존재이니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거만한 의미가 결코 아니다. 의사가 환자의 진료를 편안한 마음으로, 환자에게 집중하여 할 수 있게 하려면 보호자가 핵심문제가 아닌 것들로 의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힘든 것이 환자이고 상처받기 쉬운 쪽이 환자이니 의사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의사가 환자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면 보호자도 의사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 의사는 보호자를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진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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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청진을 하면서 꼭 들어야 할 소리

 

폐암 환자를 볼 때 예전에는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호흡음에 변화가 있는지, 심장 잡음은 없는지 주의깊게 듣는게 중요했지만 요즘 의사는 그것 외에도 2가지 소리를 더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지갑의 두께를 짐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폐암에 대한 신약 표적치료제를 자기 부담으로 지불하고 쓸 여유가 되는지 미리 파악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에게 비싼 약을 추천하면 환자가 너무나 속상해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환자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의사가 제안하는 고가의 항암제를 쓰겠다고 선뜻 대답했다가 몇 년 지난 다음에 심사평가원에 고소를 할만한 사람은 아닌지 미리 예측할 수 있어야 의사 생활 오래 할 수 있습니다” (국립암센터 이진수 원장님, 2009 11 26일 국회 항암정책포험 중에)

 

약값이 좀 비싸지만 꼭 썼으면 합니다” “사정상 그 약을 쓸 형편이 못됩니다…”

 

HER2 유전자가 과다발현되는 유방암 환자에서 허셉틴(Herceptin)이라는 약은 유방암 환자의 예후를 가름할 수 있는 결정적이고도 효과적인 약제이기 때문에 HER2 유전자 과발현 환자에서 이 약을 처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종양학과 의사 사이에서는 중죄(!)에 해당할 것이다. 표적치료제의 대명사처럼 불리워지는 허셉틴이라는 이 약은 1998년 미국 FDA에서 승인을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부터 재발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게 보험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허셉틴 단독으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탁센(Taxane)계열의 항암제와 병행해서 사용하게 되는데, 고가의 허셉틴에 대해 보험 적용을 해주다보니 탁센은 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허셉틴을 비보험으로 투약할 경우 한달 환자들의 비용부담이 130-180만원 정도드는데, 보험이 되면 이중 5% (얼마전까지만해도 10%)만을 지불하는 셈이니 얼마나 싼가! 탁센 계열의 약물 중 가장 싼 약제로 선택하면 대략 40~50만원 정도를 부담하게 되니 요즘 이 약제를 포함한 요범으로 치료를 받게 되면 한달에 항암제 가격만 60만원 정도가 든다. 보험이 안되던 시절에는 140-150만원 정도가 들었을텐데 2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허셉틴이 보험적용이 되기 전에도 이미 종양내과 의사들은 대규모 연구결과를 통해 생존률 향상에 큰 도움을 주는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험적용이 안되던 시대에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이 약을 투여할 것을 권유하였을 것이다. HER2 유전자 과발현 유방암의 특징은 나이가 젊은 여성에서 빠른 속도로 재발하고, 재발 후 급격하게 악화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주로 뇌로 전이되어 생존률을 떨어뜨리고 죽기 전 삶의 질이 순식간에 망가지게 된다. 이미 2005년에는 전이성 유방암이 아닌, 완치를 목적으로 한 수술을 받은 환자 중 HER2 유전자가 과다발현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 예방적으로 허셉틴을 썼을 때 이후 재발율은 2배 이상 낮춘다는 보고가 나왔지만, 우리나라는 2009 7월에 임프절양성의 조건을 가진 환자로 제한하여 보험으로 사용을 승인할 수 있게 되었다. 특정 약제가 보편으로 사용되던 시기와 그렇지 않던 시기를 나누어 생존률의 차이가 있음을 보고하는 메타 연구분석들이 있는데, 아마 우리나라는 보험으로 인정해주던 시기와 보험이 적용되지 않던 시기를 나누어 분석하는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인간 생명이 갖는 가치의 무한함 versus 경제적 자원의 유한함

 

앞으로 항암제는 정상세포를 포함한 모든 세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세포 독성 약제(cytotoxic drug) 보다는 특정 신호전달체계 상에서 암세포에서만 발현되는 단백질이나 신호를 감지하여 암세포만 공격할 수 있는 약제가 주로 개발될 것이다. 치료 효과를 드라마틱하게 향상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약제들도 꽤 있다. 정상 세포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에 항암제 독성도 상대적으로 낮아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환자들의 삶의 질도 잘 보존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약은 거의 대부분 보험이 안되기 때문에 한달에 수백만원을 개인돈으로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그만큼의 비용부담을 짊어질 수 있는 서민들은 많지 않다. 이십년 이상 암환자 치료에 종사하고 계신 모 선생님은 자신의 경험상 전이성 대장암 치료에서 표준치료에 혈관생성 억제제를 추가하는 것이 독성은 무시할만 것에 비해 생존률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고 치료 효과가 좋다는 설명을 100명의 환자에게 하면 5명 남짓이 신약을 쓸 수 있다고 하신다. 여러 국제적인 치료 가이드라인에서 이 신약을 더하는 것을 대장암의 표준치료로 제시하고 있으나 우리 나라 보험에서 급여가 제한되고 있으니 뻔히 좋은 약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쓰지 못하는 환자가 훨씬 많아, 효과적이고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면 이를 환자에게 설명하는 것이 의사에게도, 설명을 듣는 환자에게도 고통이 되는 현실이다. 다국적 기업에서 개발한 신약들의 효능이 입증되고 좋은 약제가 많이 나올수록 (또 그만큼 비싼 약들이 개발되면) 우리는 계속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는가? 이제 특정 약제를 보험으로 쓰게 해달라는 주장을 하기에는 좋은’ ‘신약쏟아지고있는데 이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암환자의 진료 비용부담을 20%에서 10%, 10%에서 5%로 낮추면 중산층 암환자들이 비급여 신약을 치료제로 결정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인가? 모든 신약을 다 보험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우선순위는 누가,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환자에게 어떤 약을 쓸 것인가는 지극히 의학적 질문이지만 그 대답을 얻는 과정에는 사회적 합의(consensus)가 필요한 것이다.

 

그동안 할말 많았다

 

종양내과는 다른 내과의사들에 비해, 예를 들면 내시경초음파, 혈관촬영술 등 활발한 술기를 병행하며 진료하는 내과의사들에 비해 육체적 활동성이 낮은 경향을 보인다. 주로 책상 앞에 앉아 일하고 환자 차트를 뒤적이며 논문을 준비하고,어떤 약을 쓸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시간이 일과의 대부분일 것이다. 다른 과와 집담회를 하거나 학회에 가거나 하는 활동들도 거의 책상과 의자 앞에서 이루어지니 특별히 기분전환할 아이템이 없다. 머리속에 쌓여있던 고민과 불만, 그리고 분노가 조심스럽게 표출된 곳이 있었으니 11 26일 국회에서 열린 1회 항암정책포럼 : 항암제 보장성 강화의 방향을 주제로 한 세미나였다. 세상물정 모르고 열심히 환자보고, 열심히 연구활동하는데 여념이 없으신 줄만 알았던 종양학과 대 선배 의사선생님들이 많이 참석하셨다. 부족한 현실이지만 내 앞에 있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으로 자리에 오셨으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세상일은 최선을 다하려는 순수한 마음만으로 변화되지 않으며 치밀한 계산과 사회적 주장, 그리고 정치적 세력화를 동반했을 때 변화가 가능하다는 면에서 야속하다. 좋은 약이 있으니 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그 혜택을 주고, 내가 치료하는 환자가 잘 나을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을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여러 경로를 거쳐가야 할 것이다. 전체 인구대비 해당 질환이 차지하는 비율, 질병의 중등도를 고려하여 재원의 cost to benefit ratio를 따져봐야 한다. 정책 결정권자들과 끊임없이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사회적 발언이 일상화될 수 있는 루트도 준비되는 것이 좋겠다.

특별한 사회적 압력이나 이벤트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우리 의료 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고 중요한 자리가 마련되었다고 믿고 싶다. 정작 국민은 그 자리에 없었고, 여전히 정책 결정권을 가진 쪽에서는 일방적인 주장이 반복되며 여전히 의사가 돈문제 운운하면 논의와 상관없이 제약회사 리베이트에 대한 책임론 운운하며 논의의 핵심을 비껴가는 토론문화가 극복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l  이번 원고의 많은 표현은 항암제 보장성 강화의 방향포럼에서 여러 선생님들이 개진하신 의견을 인용한 부분이 많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표기하지 못해 주장의 저작권에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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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그녀들은 뇌종양으로 수술, 방사선치료, 감마나이프, 항암치료를 다 했지만, 단 한번도 치료에 반응하지 않았다. MRI를 찍을 때마다 나빠지기만 했다. 상당히 공격적인 치료법을 구사하신다는 우리 교수님도 오늘 아침 MRI를 보시더니 이제 그만 하자하셨다.

의식은 멀쩡한데 뇌간에 병이 있는 그녀는 자발호흡이 잘 안되는게 문제다. 자기도 모르게 자꾸 이산화탄소가 쌓여서 의식이 흐려지는 일이 반복되고 그러면서 폐렴이 동반되곤 했다. 뇌간에 병이 있으니 호흡도 문제고 삼키는 기능도 안되서 침도 삼키지 못할 정도다. 그래서 결국 위에 튜브를 연결해 인공 영양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글씨를 써서 의사도 전달하고 와이브로 노트북으로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으며 병원에서 지낸다. 몇 달째 퇴원하지 못하고 치료법을 바꿔가며 전전하고 있다보니 전신적인 기운이 다 떨어진 것 같다. 기관절개상태로 지내고 가끔 밤에 가정용 인공호흡기를 호흡을 보조해주고 있다. 항암제는 그녀의 뇌장벽을 절대 허물지 못하는 것 같다. 장벽 안쪽은 조금씩 조금씩 나빠지고 있는데, 바깥 쪽에서 아무리 무기를 바꿔 공격해도 아직 감감 무소식인 셈이다. 이제 그만하는게 좋겠다는 교수님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엄마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진다. ‘저렇게 멀쩡한 아이를 어떻게 포기하겠습니까?’ 엄마가 별 말씀도 못하시고 눈물만 떨군다. ‘이번 항암치료까지는 해봅시다. 그리고 나서 다시 재평가해보죠아까 회진 돌기전에는 집이 부산 쪽이시니 이제 그쪽에서 재활치료 받으며 지내시게 해라. 항암치료는 그만 하자라고 결정했었는데오후부터 항암제가 투여되기 시작하니 그녀는 노트북으로 영화도 못보고 깊은 잠에 빠져 자고 있다.

 

또 다른 그녀는 병이 좀 심하다. 오른쪽 뇌가 거의 동공 상태로 변해버린 그녀는 왼쪽 상하지를 잘 움직이지 못한 채 침대에서 몸을 뒤틀며 지낸다. 그녀와의 의사소통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충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것 같고, 나도 그녀가 울부짓는 듯한 소리를 내면 대략은 무슨 맥락으로 얘기하는지 알 수 있다. 언뜻 들으면 짐승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몇 개월 전부터 병동에 나가면 대낮에도 술취한 것 같은 이상한 큰 소리가 들리곤 했었는데 이번 달에 파트가 바뀌고 보니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뭐가 맘에 안들면 소리를 지르는 스타일인데, 다인실에서 몇 개월간 있으면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데도 아무도 그녀에게 뭐라하지 않는다. 요즘 환자들 꽤 까칠한 편인데도 젊은 그녀의 투병을 묵묵히 인내해 주는 모양이다. 역시 이것저것 갖가지 뇌종양에 대한 치료를 했지만 별로 변화가 없고 얼마전에는 보험이 안되는 표적치료제까지 더해서 항암약물치료를 했지만 오히려 더 나빠지는 추세이다. 결혼한 딸이 아직 첫 아이를 낳기도 전에 뇌종양을 진단받게 되자 그 뒷바라지를 하며 훌쩍 늙어버린 듯한 친정엄마는 무슨 치료라도 해주세요. 여기서 교수님이 손 놓으시면 제가 사위를 무슨 낯으로 보겠습니까?’ 교수님도 더는 말씀을 못하시고 오늘 논문 좀 찾아보고 고민해 봐라. 내일 더 논의해보자하신다. ‘아니, 나에게 공을 넘기다니!’

 

오후 회진을 돌러가서 해결의 국면을 찾기 힘든 환자 몇 명의 어머니들과 면담을 한다. 더 이상 시도해 볼 수 있는 표준치료나 임상연구가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원칙적인 대안은 경과관찰(observation)이다. 뭔가를 하는 것 자체가 환자에게 해를 줄 수 있는, 앞으로 남은 시간마저 더 고통으로 짧아질 수 있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설명하고 납득시키기 어렵다. 아니, 어쩌면 엄마들은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치료를 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계속 설득하던 교수님도 엄마들의 파워에 밀리시는 듯, 치료를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이렇게 항암치료를 하는게 과연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솔직한 고민을 드러내신다. ‘지금 정도의 의사소통조차 안될 수 있어요.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열나고 쇼크에 빠지고 엄청난 약제들을 쓰는 치료 과정이 환자를 의미없는 고통 속에 빠뜨릴 수도 있어요. 자꾸 항암치료를 하는 것보다는 남은 여생 좋은 시간을 갖는 쪽으로도 생각을 해보세요.’ 보호자들과 비교적 대화를 잘 하는 편이라 자부했던 나도, 자식의 치료에 대해 집념을 갖는 엄마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렵다. 오늘 오후는 4 4패다.

 

누가 서로의 행복을 정의할 수 있겠는가

 

내가 지금 시행하는 치료, 여타 결정들이 진정 환자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 자신할 수 있을까? 행복은 주관적이고 상황적으로 변동될 수 있으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재조명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환자를 위한 결정이 정말 환자가 원하는 것일까? 의사의 결정을 뒤집을 정도로 엄마는 자식의 생존을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식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있지만 엄마의 목소리가 과연 자식이 원하는 것일까? 엄마와 나의 결정은 환자를 행복하게 해줄까? 그러고 보니, 난 오늘 4명의 엄마들과 면담을 했는데 정작 환자 본인과는 향후 치료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고 설명도 해주지 않았음을 지금에야 깨닫게 된다.

환자와 이런 이야기를 주제로 면담을 하려면 일단 보호자들과 먼저 이야기를 트고, 대화를 나눌만한 조용한 공간, 그리고 결론을 서둘러 내려고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여 환자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늘 그렇게는 못 하더라도 가능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사실 난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를 주로 병동의 복도에서 하고, 보호자랑 대화 중에 전화도 받고, 면담이 길어지면 초조한 모습을 보이면서 서두르는 모습을 노출한다.

이 원고를 정리하고 나면 빨리 저널들을 찾아 그녀들을 위해 써볼만한 약제 후보들을 정해야 할텐데, 그렇게 밤을 지새우며 약 선정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과연 내가 이렇게 바퀴를 열심히 돌리고 있는 이 자전거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잠시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죽음을 예감하는 환자를 위해 난 무엇을

 

젊은 그녀들과 엄마들을 대할 때면 나는 솔직히 힘들지만, 반면 이제 곧 여든이 되는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오후 회진은 그렇게 마음 무겁지 않다. 그는 10년전에 폐암으로 수술을 받고 재발없이 지내시다가 2달전에 복강내로 잔뜩 전이된 위암을 진단받았다. 부정맥을 조절하려고 입원하신 할아버지가 소화불량을 주소로 내시경과 복부 CT를 찍은 후 위암을 진단받으시자 충격을 받으셨던 모양이다. 항암치료로 협진이 나서 할아버지를 찾아갔을 때 그는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계시고, 물도 제대로 못 넘기며 구역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신체 검진을 하는데 별로 협조도 하지 않고, 별 말씀도 없으셨는데, 어찌 하다보니 할아버지가 말문을 틔웠고 나는 위암에 대해, 그리고 4기 위암의 예후와 치료 과정에 대해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리고 지금 복강 전이로 인해 식사가 어렵고 구역감이 조절되지 않을 수 있으니 컨디션이 호전되면 완치는 안되지만 항암치료를 하면 증상 조절에 도움될 수 있다는 것까지 설명을 드렸다. ‘그래, 나 아직 할일이 조금 더 남았으니 몇달이라도 시간을 벌어야겠다며 치료를 받겠다고 하셨다. 그는 그길로 번쩍 일어나 병동 복도를 걸으며 운동을 시작했고 항구토제 주사를 몇번 맞더니 죽도 드시기 시작했다. 아직 항암치료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컨디션이 지금보다 조금은 더 좋아지셔야 항암치료를 할 수 있다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나름으로 노력하신 셈이다. 그렇게 일단 퇴원하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항암치료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증상이 악화되어 입원하셨다. 위장이 막혀 스텐트를 넣을 계획으로 내시경을 했는데 내시경 중 발생한 호흡곤란이 급성호흡부전증으로 진행하여 결국 기관삽관까지 하고 중환자실 치료를 받게 되었다. 다행히 위기를 넘기고 일반 병동으로 나오셨지만 그의 체력은 이만저만 약해진 것이 아니다. 나는 회진을 가면 손바닥을 마주하여 할아버지랑 브라보를 하는데, 점점 팔을 높이 올리지도 못하게 기운이 빠지더니 엊그제 폐렴이 생긴 이후로는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 며칠전 컨디션이 잠깐 좋은듯 해서 할아버지, 병원에 계속 계시는거 너무 지루하시죠? 집에 가고 싶지 않으세요?” 여쭤보니 할아버지 : “, 집에 가고 싶어. 병원은 영혼이 없는 공간이야 : “집에 가서 뭘 제일 하고 싶으세요?” 할아버지 : “버리고 싶어. 내 물건 정리해서 버릴 거 버리는거…” 행복은 주관적이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설정될 수 있는 것이므로 젊은 그녀들과 할아버지의 행복은 다른 모습으로 요구될 수 있겠다. 치료도 하지만, 그리고 무기력하게 그들을 보내야할 때가 더 많지만 그들 삶의 마지막 여정 한 순간에 작은 행복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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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 몸 아픈 것도 힘든데

돈 없는 것은 더 서럽고

 

진행성 위암을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받으신 66세 할아버지. 첫번째 항암치료 이후 1년 이상 병이 진행하지 않고 유지하셨으니, 평균 여명은 넘기셨다. 속이 불편한 증상이 조금씩 악화되고 복부 CT에서도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넘어가는 부분의 위벽이 점점 더 두꺼워지고 있는게 보였지만 할아버지가 항암치료를 원치 않으시고 입원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셔서 외래에서 경과관찰 하고 있었다. 식사량이 줄고 몸무게도 너무 많이 빠져서 항암치료를 다시 하시면 어떨까 여쭤보니 할아버지는 검사 많이 안하고 입원 안하면서 항암치료를 하면 하시겠다고 한다. 매주 외래 주사실에서 항암제를 맞고 가실 수 있는 방법으로 치료를 시작하였고 할아버지의 전신상태는 ECOG PS 1. 병에 비해 매우 양호한 체력과 컨디션을 유지하시고 있었다. 66세라고는 하지만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약간 어색할 정도로.

그렇지만 항암치료를 시작한지 얼마 안된 어느날 할아버지는 음식물 넘기는 걸 점점 더 힘들어 하시더니 물만 넘어가도 토하는 증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항암치료 효과를 기대해 보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니, 암으로 막힌 부위에 스텐트를 넣어보는게 어떨까? 토하면서 흡입성 폐렴까지 오는 것 같아 항생제를 쓰기는 했지만, 막힌 부위를 뚫지 않으면 뭘 해도 컨디션이 크게 호전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스텐트를 넣기로 했다. 항암치료 중이라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는 중인데 괜찮을까 망설여졌지만 넣는게 더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

스텐트를 넣으면 보통 다음 날 물부터 마시기 시작해서 스텐트가 펴지면서 음식물 섭취를 단계별로 올리고, 죽 정도를 무리없이 드실 수 있으면 퇴원할 수 있으니까 일주일이면 퇴원하실 수 있겠지? 입원을 싫어하는 할아버지의 뜻을 맞춰드리고 싶었다.

 

중간진료비 영수증에 놀란 할머니

 

스텐트를 넣고 온 다음 날 열이 났다. ‘내시경을 하면 일시적으로 균혈증(bacterimia)이 있을 수 있으므로 열 나는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항생제도 쓰고 있었으니 경과보자그렇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피검사를 했더니 백혈구 수치가 급강하하고 가슴 엑스레이에서 왼쪽 상엽으로 폐렴이 대문짝만하게 생겼다. 24시간이 지나자 혈액배양검사 세쌍에서 그람음성균이, 소변에서도, 가래에서도 같은 균이 자라고 있었다. 환자는 숨도 차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혈압도 떨어지기 시작한다. 패혈성 쇼크(septic shock), 항생제를 바꾸고 모니터로 24시간 환자 생체징후를 모니터하기 시작했다. 중심정맥관을 삽입하고 inotropics를 시작하고 소변줄을 끼워 input and output을 정확하게 체크해야 했다. 중환자실이라도 가면 좋겠는데 자리도 없거니와 할머니가 단호하게 거부하신다. 절대 중환자실은 가지 않겠다고.

치료 시작 전 환자의 상태가 나쁘지 않았고, 이제 항암치료를 시작했으니 아직 항암제의 효과를 기대해 볼만한 때이고 항암치료 중 수치가 낮을 때 생긴 이벤트이니 수치가 오르면 좋아질 수 있고, 어쨌든 내시경 후 생긴 이벤트이니 병원에서 프로시저를 받고 나서 환자가 나빠지면 안되니까,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환자를 좋아지게 해야만 했다. 아침 저녁으로 피검사를 하고 매일 엑스레이를 하고 회진도 더 자주 가 봐야했다. EMR을 열면 이환자 혈액검사 결과부터, vital chart부터, fever 부터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환자는 백혈구가 회복되면서 전신 상태가 조금씩 양호해지고 혈압도 유지되기 시작한다. inotropics를 줄였다. 소변줄도 제거하고 6 liter까지 올렸던 산소 요구량도 줄어 오늘은 1 liter까지 산소량을 낮추어도 포화도가 95%가 나오니 모니터도 제거했다. 환자에 찔러 넣었던 수많은 관들, 줄들을 조금씩 제거하면서 , 좋아지겠구나마음을 조금은 놔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환자가 좋아지면서 내 마음도 조금은 편안해지려고 하는데, 병실을 나오는 나를 복도에서 할머니가 붙잡는다. 퇴원하시겠단다. 아니, 지금 왠 퇴원? 이제 겨우 좋아지기 시작하는데, 퇴원을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 할머니는 눈물이 그렁그렁 하여 할아버지가 더 이상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고, 어차피 죽을 건데 병원에 있으면 뭐 하겠냐며 집에 가시고 싶다고 하신다. 

4기 암환자라도 돌이킬 수 있는 (reversible) 부분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치료하면 환자는 좋아진다. 궁극적인 완치를 물으신다면 나는 쉽사리 예스라고 대답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고비를 넘길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니 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씀드릴 수는 있다. 나는 이 할아버지가 걸어서 퇴원하시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자꾸 지금 집에 가게 해달라는 것이다. 되려 내가 사정한다. 조금만 더 있어보자고. 이제 겨우 좋아지기 시작하는데 왜 그러시냐고. 지금까지 간호도 잘 하셨고, 할아버지도 잘 견디셨으니까 조금만 더 참으시라고. 그런데 정작 할머니의 눈물은 할아버지에 대한 염려도 분명히 있으셨겠지만, 어제 병원에서 나온 중간진료비 영수증 때문이었다. 자식 한명은 미국가서 오지도 못하고, 또 다른 자식은 자기 벌어서 먹고 살기 힘들다고, 두 노인이 겨우 입에 풀칠해서 먹고 사는데, 버는 사람은 없는데 이번에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고, 어차피 완치도 안된다면 무리해서 없는 돈에 치료하지 않겠다는게 할머니의 솔직한 고백이었다. 할머니에게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냐고, 사람이 살고 봐야지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검사를 최소화하고 더 이상 비용지출이 안되는 방향으로 입원치료를 유지하겠다고 할머니에게 말씀드리고 몇일만 더 여유를 달라고 했다. 사회사업과에 전화를 해 보지만, 경제력이 있는 자식이 있고 자기 소유의 집이 있으면 지원이 어려울 거라는 대답이다. 그래, 우리 병원이 자선단체도 아닌데 돈 없다고 누구나 지원해줄 수는 없겠지 하면서도, 할머니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지 못해 마음이 찜찜하다. 할아버지가 쇼크에 빠졌을 때 바꾼 항생제는 하루 4번 들어가고 있는데 보험이 되도 비싼 약인데 이거부터 바꿔야 하나?

 

혼자 발톱 깎기도 어려운 나이가 되었을 때

 

노인문제를 다룬 한 외국 서적을 보니 75~79세 노인이 경험하는 보행장애의 가장 흔한 원인이발톱을 제때 깎지 못해 생긴 문제때문이라고 한다. 이들 연령대의 35%가 자기 발톱을 스스로 깎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연령의 나이에서는 20% 이상에서 남의 도움없이 자기 몸을 씻을 수도 없다고 보고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65세 이상을 노인이라고 일컫고 있는데, 65세인지에 대해서 기원을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의 성립과 함께 노동력의 원할한 공급을 위해서는 적정 기간이 되면 새로운 젊은 노동인구를 유입하고 나이가 든 사람은 은퇴를 시켜야 했던, 그리고 그들에게 노인연금을 주어야 했던 서구의 맥락에서 규정된 나이가 아닐까 싶다. 이제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뿐만 아니라 75세 이상의 노인도 급증하여 전체 인구 중 노인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에서 14%가 되기까지 최단기 시간을 기록한 나라가 되었다. 그들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격변기를 살았고 발전 담론을 형성한 주체들이었지만 지금은 사회의 생산성을 약화시키는, 그래서 대접받지 못하고 자식들의 짐이 되고 있다는 비참한 심정으로 노년기를 접으려 하고 있다. 내일은 자녀분들을 병원에 오시라고 해서 면담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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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배려

 

2002년 나는 본과 3학년 실습학생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새벽에 헬스클럽을 다녔는데 병원 실습이 시작되니 과마다 스케줄이 달라 정기적인 운동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 무렵 마라톤이 유행하기 시작하여, 일산에 사는 나는 호수공원 마라톤클럽에 참여하기로 하였고 주말이면 일산 호수공원을 비롯해 다양한 달리기 코스를 개발해 뛰기 시작하였다. 운동이라는게 한번 빠져들면 약간 중독이 되는 경향이 있어서인지 난 주말이면 몸 컨디션을 만들어 서너시간씩 달리기 연습을 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일요일 아침 6시에 호수공원에 나가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너무 불안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연습하여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에게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끝까지 다 뛰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웠으니까. 얼마전 모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해프마라톤에 도전하는 것을 봤는데, 그들은 몇번이고 그만둘까 갈등하고 힘들어 하면서 수시간에 걸쳐 달렸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다들 등을 돌리고 울었다. 그걸 보니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들이 왜 우는지 아니까..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서 내가 배운 것은 첫째 이 길을 뛰는 것도, 걷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모두 나의 선택이자 의지이며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데 뛰기로 결정하는 것, 묵묵히 그 길을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었다. 둘째, 출발선에서 같이 뛰기 시작했던 이들이 쭉쭉 나를 앞질러 나가도 전혀 초조해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마라톤에 임하는 나의 최대 목표는 기록이나 순위가 아니라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므로 내 앞에 몇 명이 얼마나 좋은 기록으로 경기를 마감했는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마추어 마라토너인 나는 쓰러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는 것이 중요한 사람, 그들과 나는 같은 길 위를 달리는 것 같지만 사실 비교할 수 없는 자신을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신이 달리기로 결정한 길을, 자신의 방식으로 달리며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기 위해 체력을 안배하고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견디며 결승선을 향해 달린다는 점에서 말이다. 중간에 달리기를 포기하고 자동차를 타고 휭 달려 결승선에 도착할 수도 있다. 그렇게 결승라인을 밟는 것은 나에게 아무런 감흥과 의미를 주지 않는다. 출발점에서 42.195km를 지난 시점에 도착하는 방법이 자동차가 아니라 내 두 발로, 그 길위에서 모든 갈등과 고민, 고통을 저울질하며 견뎠을 때 결승선에서의 내가 얻어가는 것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충족감으로 가득차 있게 된다.

 

난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등의 서류에 마라톤 풀코스 3번 완주라는 나의 경력을 꼭 밝히고 싶는데 그런 란이 없어서 자랑할 수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고관절에 dysplasia가 있으니 마라톤은 장기적으로 내 고관절에 좋지 않을 거라는 남편의 충고에 따라 달리기를 멈춘 후 흐지부지 운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인턴 때 나의 젊음은 아직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오기로 10km 단축마라톤에 나갔다가 숨차서 죽을 뻔 했었다. 레지던트를 시작하면서 정기적인 운동은 불가능했고, 회진을 운동삼아 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잠을 줄여서라도 해야 할 뭔가가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내일까지 발표 준비를 해야 하고, 논문을 읽어야 하고, 논문을 써야하고, 항상 시간이 부족하게 되었다. 밤 늦도록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뭔가를 해야 했다. 사람의 하루는 24시간이니까 꼭 해야할 일, 하지 않아도 될 일, 중요한 일, 그렇지 않은 일을 잘 분류하여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누구나 얘기한다. 결국 시간을 배분해서 쓴다는 것은 그 사람의 철학과 인생관, 라이프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므로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간을 나를 반영하고 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뭔가에 너무 고착되고 집착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았고 적당히 열심히 하는데도 여유있는 사람처럼 보이는게 젤 그렇듯 해보일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바쁜 일상에서 운동을 위해, 건강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렵게 되었다. 최소한 fellow때는 불가능하겠지 라며 포기하고 있었다. 정말 몸이 나빠지고 있다는 걸 자꾸 느낀다. 늘 피곤하고 정신을 맑지 않고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항상 해야할 일을 다 못하고 있는 중압감에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벌여놓은 논문들이 마무리 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큰 스트레스다. 잡일을 하다보면 모드 전환이 안되기 때문에 내 일이 자꾸 뒤로 밀리고 좀 차분하게 해볼려고 하다가 시간만 흘러 정작 되는 일이 없다.

 

정잘 나를 위한 일도 아닌 일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손해보는 느낌으로 하루하루가 지나가던 중 연대 안에 왕복 1시간 정도면 왕복할 수 있는 산이 있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 지난주에 처음 가봤는데 정말 숨이 차고 힘들었지만, 정상에 올라 저 멀리 남산과 한강을 바라보며 땀을 식히니 예전에 마라톤 연습을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앞으론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등산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하루 한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으로 확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 병원과 환자, 사람들을 약간 멀리하고, 그저 걸으며 한시간을 보내는 거, 나에겐 묵묵히 걷고 견디는 것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지금 나는 펠로우 증후군에 빠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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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한다는 것은

 

나는 오늘 우연히 모 교수님이 당신 혼자 공부하시며 정리해둔 파일을 하나 입수했다. 당신이 공부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림, 사진, 메모들을 파워포인트에 정리해두셨다. 파워포인트 파일제목도 시원찮고, 편집도 안한 막파일이라 흰색 바탕에 통일된 글자체 한가지, 그리고 PDF file에서 복사한 그림들, 뭔가 연결된 흐름으로 메모와 사진과 그림이 이어지고 있는 듯 하지만 나로서는 그 흐름을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선생님은 파워포인트 한장 한장마다 아랫쪽에 출처를 명시하셨다. 저널이름, 발행연도, 페이지까지 소상이 기록해 놓으셔서 난 전자도서관에 들어가 저널 뒤지기를 시작했다. 아쉽게도 저자이름을 기록해놓지 않아 저널을 찾는데 약간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마치 남들의 눈을 피해 도둑질하는 사람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저널을 찾아 컴퓨터에 저장하고 프린트로 출력하였다. ‘이것만 읽으면 최소한 선생님만큼 알게되는 건가!’ 하는 행복한 망상에 빠진 채, 또 한번 이 주제를 타겟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의욕과 행복감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의욕과 행복감을 가지고 밤을 불태운 게 과연 언제이던가 싶다.

 

엊그제부터 읽기 시작한 청춘의 독서는 잠시 정치권에서 행보를 멈춘 유시민이 대학에 입한한지 30년이 지난 이 시점에 자신이 처음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으며 30년간 자신 사상의 궤적을 돌아보며 쓴 책이다. 그는 시류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고전들에 대해 자신의 감상을 기록하고 있는데, 멜서스의 인구론에 이런 내용이! 공자의 논어가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니! 나는 잘 모르고 지나쳤던, 그리고 읽지 않았던 책들을 읽는 것에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다는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지금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 싶지만, 당장 해야할 다른 일들이 내 발목을 잡지만, 그가 통렬한 감동을 느꼈다는 그 책, 나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의욕이 인터넷 서점에서 클릭을 할까 말까 자꾸 유혹이 된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다음 두가지 중 최소한 한가지 욕망을 충족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공부 그 내용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앎으로써 기쁘고 개벽천지를 만난 것 같은 감동 그 자체가 좋아서.

둘째 지적허영심이다. 난 남들이 모르는 분야를 이만큼 더 알아서 좋다는 느낌을 즐기는 것이다. ‘유방암 뼈전이에서 무슨 약을 쓰느게 좋니?’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밋밋하게 , 조메타 쓰면 되이렇게 간단히 폼없이 말하는 것 보다는 ‘*** ***년에 대규모 3상 스터디를 했는데 pamidronate하고 zolendronic acid하고 비교했더니 compression fracture 발생율에서 ***의 차이가 나고 bone turnover marker에서 ***의 차이를 보여서 zolendronic acid를 쓰는 것이 *** risk reduction effect가 있다고 볼수 있지라며 화려하게 대답하는 것을 즐기는 것.

내가 감히 진단하기로 많은 사람들은 전자보다는 후자적 요인에서 강한 drive를 갖는 것 같다. 솔직히 나도 후자의 측면에서 공부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내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겠다던 대학시절의 결심을 내려놓을 때,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하겠다고 사회학과 대학원을 처음 결심했을 때, 내가 하려고 했던 공부는 단지 지적허영심을 충족시키는 공부는 아니었다.

나는 세상에 유의미한, 가치있는 존재로 살다가 죽기를 원하였고, 내가 살았기 때문에 가치있는 삶과 시간과 공간은 무엇으로 창출되는지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청춘이었다. 나의 청춘은 갔는가? 지금은 시들시들하다. 물을 줘야겠다. 물을 줘서 다시 싱싱해지면 고목에서도 꽃이 피듯, 나의 메마른 영혼이 회복하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위해 오늘도 물을 줘야겠다. 아직 나의 청춘은 다 지나간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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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에 다발성 골수종을 진단받은 64세 할머니. 지난 4년간 3번의 골절로 정형외과 수술을 받으셨다.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병의 특징상 제대로 된 면역 글로불린이 형성되지 못하기 때문에 잦은 폐렴과 기타 감염으로 1년에도 수차례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병이 조절되었다가 안되었다가 하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여러 항암제들을 바꿔가며 투여해왔고 최근 들어 전체적으로 병이 악화되는 코스로 진행하시는 것 같다. 최근 다발성 골수종에 효과적인 좋은 약들이 많이 개발되었지만 그 중 일부만이 국내에서 사용가능하고 그나마 약값이 너무 비싸서 왠만한 사람들은 엄두조차 낼 수 없다. 다른 약제에 반응하지 않는 불응성 다발성 골수종에 사용할 수 있는 레날리도마이드라는 약은 하루 한알 먹는데, 한알에 50만원이 넘는다. 한달에 이 약값만 천5백만원이 넘는 셈이다. 할머니는 한달전부터 이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한달째 소변검사를 했더니 M 단백 수치가 거의 정상으로 떨어지고 신장수치나 빈혈 등의 임상적 지표들이 한달만에 놀랍도록 좋아졌다. 이번에 응급실로 오신 이유는 구역감이 심하고 배가 아파서였다. 여러 평가를 통해 내린 결론은 똥배. 복부 엑스레이에서 배에 똥이 가득차있다. 이른바 진단명 똥배. 금식하고 수액맞으면서 두세번 관장하여 변을 보시게 했더니 증상이 많이 좋아지셨다. (사실 레날리도마이드 자체 때문에도 배가 아플수 있고 그래서 약을 끊으며 증상이 완화되었을 수도 있고, 척추에 병변이 있어서 방사통이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내심 만족할만한 성과(진단과 치료면에서!)를 거두었다고 판단, 퇴원준비를 하는데, 정작 할머니는 불만 투성이다. 별로 좋아진 것도 없고, 온 사방데 몸이 아프다며

다소 지친 얼굴로 간병중인 아들, 며느리와 얘기를 나눠보니, 4년전 처음으로 이 병을 진단받았을 때 할머니에게 진단명과 병에 대해 자세히 알려드리지 않고, 심각하지 않은 병이니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한게 전부라고 한다. 시시콜콜 병원 출입이 잦아지고 사지 골절로 인해 거동도 불편하고, 심각한 병은 아니라면서 자식들은 자꾸 항암제 치료를 받으라고 하고, 뼈에 병이 있으니 병이 있는 부위는 통증이 심하고, 자꾸 감기 걸리고, 치료약제로 고용량 스테로이드가 들어가다보니 스테로이드를 복용하지 않는 기간에는 호르몬 부족으로 인해 더 힘도 없고 의욕도 없고, 이렇게 컨디션이 좋지 않은 채 수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할머니는 불평불만 투성이에, 항상 짜증을 내고, 조금만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해도 눈물지으며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괴팍한 노인네가 되어 버렸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에게 우울증이 있여 보인다. 지금에라도 병에 대해 자세히 설명드리고 치료에 협조적인 자세를 갖도록 하자는 나의 제안은 별로 호응을 얻지 못했다. 자식들은 보험도 안되는 비싼 약값을 부담하느라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짜증만 내는 환자를 돌보는 것에도 지쳐 보인다. 객관적인 검사수치가 좋아져도 환자의 짜증과 우울함은 쉽게 걷어내지지 않는다.

 

12년전에 폐암을 진단받고 수술하신 79세 할아버지. 이번에 진단된 위암은 수술할 수 있는 시기를 넘겨 발견되었다. 두번째 진단받은 암으로 내심 충격을 받으셨는지, 내가 할아버지를 처음 뵈었을 땐 말씀도 별로 없으시고 불편한데 얘기해보라 해도 별 말이 없는 채, 식사도 안하시고 일체 거동없이 침대에 누워계시기만 했다. 등돌리고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향해,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왜 자꾸 활동하시라고 하는지, 가능한 먹을 수 있으면 먹는게 왜 중요한지, 완치되지는 않지만 항암치료를 통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무엇인지, 항암 치료를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 어떤 경로의 차이가 예상되는지 등등에 대해 말씀드렸다. 이미 연세가 많으신데 무리하게 항암치료를 하려는게 아니고, 당장 문제가 되는 증상을 다스려서 가능한 일상생활을 유지하실 수 있게 도와드리는 치료를 하려는 거라는 말씀에 비로소 얼굴을 내 쪽으로 돌리신다. 우리는 첫날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이 할아버지는 성격이 상당히 깐깐하신 분으로, 당신 생각에 일처리는 방식에 문제가 있을 땐 일일히 지적하고 건의하시는 스타일인데다가 기억력도 엄청 좋아서 내가 한 설명, 담당 간호사이름, 투약상황을 다 알고 계셨다. 병의 진행속도와 전신상태 등의 변화를 경과관찰 하는 동안, 결국 항암제는 쓰지 못했고, 할아버지 컨디션은 조금씩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 위장관 폐색으로 음식을 드시지 못하게 되었고 스텐트를 넣으려고 내시경을 했다가 급성폐부전증이 발생해 중환자실도 다녀오셨다. 그 누구도 입밖에 내지 않았지만 할아버지 본인은 물론 자식들, 그리고 의료진들도 더 이상의 무리한 치료가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암암리에 공유하고 있다. 하루하루 몸이 야위어가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낙없이 돌아가시기 직전의 상태로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회진을 가도 특별히 병세나 상황 변화에 대해 내가 할말이 없고, 본인도 왠만한 건 알아서 해결하고 있다. 그래서 난 회진을 가면 환자에게 하루 종일 누워 있지말고 한두번은 휠체어 타시라는 것, 아무리 환자지만 이틀에 한번은 면도하시라는 것 뭐 그런 소소한 것들을 주문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환자에게 하루종일 뭐 했는지 말씀해보시라고 주문한다. 환자도 L-tube를 꽂았더니 목이 아프다, 누워있으니 오늘은 어깨가 아프다 그런 소소한 변화를 보고하지만, 대개 당신 생각의 흐름을 보고한다. 어제는 자식들보고 영정사진을 10개 골라오라고 해서 그 중에 2개를 결정했고 장례식장에 걸 사진의 이젤을 맞추었다는 둥, 골프장 회원권이 있는데 그건 큰 아들 안주고 마누라 줄거라서 내일 부인 명의로 바꾸려고 한다는 둥, 공증으로 처리할 명의변경이 몇건 있어서 변호사를 불렀다는 둥,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하루 종일 생각이 많은데 생각나는 걸 써보려고 했더니 기운이 없어서 글씨를 못쓸 상황이라 오늘은 녹음기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는 둥, 할아버지가 하루 종일 누워있으면서 당신의 죽음과 그 이후, 장례준비를 하고 계신 셈이다. 자기가 이렇게 시간을 갖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시는데, 사실 의사로서 뭘 해준다기 보다는 그냥 경과관찰하는게 전부인지라 고맙다는 말이 송구스럽다. 사실 3차 의료기관의 형편을 생각하면 임종을 준비할 수 있는 호스피스 요양기관으로 전원을 해야 하는데, 몇일전 부정맥이 일시적으로 악화되며 호흡곤란이 오고 가래를 잘 뱉지 못하면서 폐렴이 악화되는 상황이라 다른 곳으로 보내기에 환자 상태가 안정적이지 않다. 소위 전원의 시기를 놓친 셈이다.

 

낫지 않는 병, 심각한 병이 진단되면, ‘우리 부모님 성격에 곧이 곧대로 병명을 알려드리면 치료받지 않고 그냥 퇴원하신다고 할거에요.’ ‘환자가 마음이 약하니 진단명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마시고 그냥 약하게 표현해주세요등의 요청을 하는 자식들이 있다. 물론 그 심정은 100%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환자가 자신의 질병 상태와 경과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치료기간이 연장됨에 따라 쉽게 낫지 않는 병이 원망스럽고 몸도 개운치 않으니 의욕도 점점 떨어진다. 자기에게 경제력이 없는 경우에는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커진다. 정황적으로 우울증이 올 가능성도 높아지는데 이렇게 되면 몸도 몸이지만 여러 사람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요즘은 많은 병들이 완치되지는 않으나 조절할 수는 있고, 그러다보니 병이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하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다행일수도 어찌보면 사람 진을 다 빼놓기 쉽상이다.

CT상으로는 수술가능한 병변으로 생각했으나 막상 배를 열어보니 암이 복막내로 다 퍼져서 배를 열었다 닫고 나오는(Open and Close) 수술을 한 경우 보호자들의 대부분이 수술은 잘 되었으나 아직 병이 좀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항암치료를 하는거라고 설명해주기를 요청한다. 수술을 하고 났는데도 배가 더부룩한 환자들, 항암치료를 몇차례 했는데 오히려 더 힘들고 배도 거북하다. 어느 순간 자신의 치료단계가 완치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때 환자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매우 크다. 의사에 대해서도, 가족에 대해서도 자신을 속히고 진실을 알려주지 않은 채 치료를 시작했다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 환자에게 진실이 알려지지 않은 치료기간 동안에 의사들은 환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먼저 진실을 먼저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 기간동안 진정한 의사 환자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 원칙과 정도가 있겠는가! 말기 환자에게 죽음을 직접적으로 고지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질병의 심각도가 중증이고 현대 의학에서 더 이상 적극적인 검사와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이 의사와 병원에 의존하며 자기 생활의 전부를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정작 환자에게는 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런 정보를 서로 숨기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것이 환자와 가족사이에, 그리고 의료진과도 덜 고통스럽고 후회없는 시간을 만들어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뭘 드시는게 힘들면 사탕 같은 거라도 입안에 넣고 단물을 삼켜보시라고 했더니 할아버지가 버터맛 캬라멜을 시도해보셨다가 입안에 달라붙는다며 못 먹겠다고 나에게 몇 개 집어주신다. 말기 환자에 대한 진료와 회진이 고통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할아버지처럼 본인이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맑은 정신으로 죽음을 준비하며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눌 수 있을 때는 오히려 의사인 내가 환자로부터 뭔가를 배우는 시간이 된다. 그가 더 이상의 통증없이 편안히 임종을 맞이하실 수 있도록 잠시 기도드리는 것이 지금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인 것 같다. 오늘 회진은 병원 내 성당에서 기도로 마무리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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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가족을 생각하다

 

중학생이 된 슬기, 이제 어린이날 선물을 안 챙겨 줘도 되는 청소년이 되었다. ‘쿨하다는 말을 좋아하는 슬기는 나에게도 상당히 해서 나를 괴롭히는 일도 없고 특별히 엄마에게 요구하는 것도 없으며 나의 비가정적 생활에 대해서도 이해를 잘 해주는 편이다. ‘자기주도적 학습을 강조하는 아빠랑 상의해서 학교 공부는 해결하고 있는 것 같다. 슬기가 요즘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학원도 안 다니는데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문제집은 샀는지 난 그런 소소한 사항들은 잘 모른다. 늦게 퇴근했는데 슬기가 아직 안자고 깨어있으면 시간가는지 모르고 수다를 떨고, 수준이 격상된 슬기의 농담에 감동받아 웃다가 괜히 애를 늦게 재우는 나쁜 엄마이다.

 

슬기와 슬기 아빠는 성격적, 정서적으로 매우 유사한데 그들을 보면 유전자가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둘 다 논리적이고 문제해결형이라 세상일에 대해, 친구에 대해, 가정일에 대해서 얘기할 때도 쓸데없는 감정소모를 하지 않는 것 같다. 뭘 해도 계획을 잘 세우고 점검하면서 좋은 성과를 낸다. 내게 아내의 기능과 역할을 요구해봤자 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간파한 슬기아빠는 알아서 잘 드시고 잘 주무시고 슬기랑 공부하고 내가 처리하지 못하는 가정 잡무들을 일말의 불평없이 잘 처리해주신다. 내가 인터넷 서점에 읽고 싶은 책을 저장해놓으면 할인혜택이 많은 날을 알뜰히 챙겨 카드로 결제해 주시고 아직도 다 못갚은 학자금 융자금을 연체되지 않게 챙겨서 입금해주신다.

 

무엇보다도 이런 생활이 유지될 수 있게 엄마가 이 늙은 딸을 뒷바라지하고 계시는데, 애프터서비스기간이 무한정 길어지는 것에 대해 점점 힘들어하신다. 부양을 제대로 받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딸, 사위, 손녀의 정신적, 육체적 양육을 맡아하시느라 엄마가 도리어 지쳐가는 것이 느껴진다. 슬기 중학교 엄마들과 연락하여 요즘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행사가 있는지, 어느 학원이 좋다고 소문났는지,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는 수행평가는 어떤 항목인지, 최신 정보를 모조리 파악하고 계신다. 그런 엄마도 요즘 들어 힘이 많이 드신지 어느 저녁날이면 술 한잔을 하시고 수현아, 이렇게 사는게 최선이 아닌 것 같다며 내 마음을 떨게 하는 공포의 문자 메시지를 날리신다.

 

내가 병원 생활을 잘 할 수 있게 가족들이 보여주는 눈물겨운 성원에도 불구하고, 난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진정 감사하고 노력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가족이 나를 챙겨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가족을 위해, 가정을 위해 내가 기여하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둔감해진다. 병원에서 일어하는 소소한 작은 일에 분노하고 감정을 콘트롤하지 못한 채 나를 못 이기고 씩씩거리는 동안, 가족들과 대화하고 좋은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는 게으르다. 병원에서 환자에게 마음쓰고 친절하게 얘기하느라 내 에너지를 다 빼앗긴 것일까? 집에서의 나는 가족에게 예의도 없고 매너도 없다. 내가 처한 억울한 상황, 나를 화나게 하는 세상일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부가적으로 설명을 해야 하는 일들이 조금씩 쌓여가고, 별로 유쾌하지도 않은 그런 일을 집에서까지 얘기하고 싶지 않아 점점 말을 안하게 된다.

가족과는 좀더 색다른 얘기를 하고 병원에서의 일과 감정을 벗어버리고 즐겁게 지내고 싶다. 그렇지만 내 마음이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내 얼굴에, 표정에 그런 나의 감정이 묻어나나 보다. 얼마전 슬기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는 왜 사람의 목숨과 관련되는 심각한 과를 선택해서 힘들어하는지 모르겠어. 개업도 할 수 없는 과니까, 맘에 안든다고 병원을 나올 수도 없잖아.’ ‘수학을 좋아한다고 수학만 공부하며 먹고 살기는 힘든 시대야. 엄마는 환자 보는게 좋은데 환자보면서 먹고 살수 있으니까 좋은거야.’ ‘나도 같이 지내는 친구들이랑 다 마음이 잘 통하는 건 아니야. 힘든 면이 있지. 그래도 어쩌겠어. 맞춰가면서 살아야지.’ 조금 더 쿨하신 슬기 아빠, 나의 상황에 대한 정서적 공감을 표해 주기보다는 병원이라는데가 원래 좀 그래. 너 마인드 콘크롤을 좀 해야겠다며 한마디 던지고는 코를 골고 쿨쿨 주무신다. 이렇게 쿨한 부녀를 봤나!

 

예전에 나는 집에서 수다가 참 많았고 밤에도 수다떠느라 잠을 설칠 정도로 대화가 많았는데, 점점 수다를 잘 안떨게 된다. 대화를 하기 보다는 피곤에 지친 나를 그대로 노출하고 집에 오면 쓰러지듯 잠을 자는 일이 잦아지는 것 같다. 집에 오면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기 싫어지는 기분이다. 마치 TV 드라마에서 흔히 보듯, 회사일에 지친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에도 비협조적이고 자기 힘든 거 다 짜증내는 거, 내가 그런 남편 같은 존재가 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위트 홈이라는 행복한 이미지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관계만이 꽃피우는 것이 가족이 아니니까. 그래도 몸이 힘들고 영혼이 지쳤을 때 나를 온전히 쉴 수 있는 곳은 가족이다.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들은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정신을 차려야겠구나!

어제 시험이 끝난 슬기는 친구들과 돈을 모아 과일주스를 사서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을 찾아뵈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중학교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중간고사가 끝났다며 찾아온 어린 제자들이 얼마나 기특했을까? 여러 모로 슬기는 나에게 교훈을 준다. 가족과 스승을 기리라고 되어있는 5, 너무 부담스러워하지만 말고 순수하게 감사함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세상일에 지칠 때 가끔은 멈추어 숨을 골라야 하는 순간이 있고, 그렇게 숨고르기를 하는 동안,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 가족,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순수한 마음을 되찾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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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는 시작되고 학생은 졸기 시작한다

 

의대 수업의 90% 이상은 칠판판서와 필기를 하기보다는 - 요즘이야 의대가 아니더라도 이런 수업을 하는 과가 많지는 않겠지만- 각종 그림과 표로 넘쳐나는 슬라이드를 보면서 진행된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사진과 그림, 표들이 지나가기 때문에 필기는 포기한다. 그냥 되는대로 열심히 듣고 나중에 기억나는 것만 이해해야지 뭐, 누군가 필기를 잘 해놨을거야, 그거나 복사하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화면을 응시하는 수 밖에 없다. 슬라이드 화면이 잘 보이려면 강의실 조명은 최대한 낮추는게 좋다. 특히 엑스레이나 CT 등 영상 사진을 보는게 중요한 수업이라면 완전히 깜깜하게 조명을 끄고 시선을 화면에 집중하도록 하는게 필요하다. 나는 정신집중!을 외치며 빨간 레이저 포인터를 따라 교수님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어느새 레이저포인트 불빛이 내 이마를 가리키고, 모두가 나를 주목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 졸았구나나만 조는게 아니기 때문에 별로 창피하지도 않았다.

학생 뿐만 아니라, 전공의 시절에는 더 심했던 것 같은데, 컨퍼런스, 집담회 등 갖가지 발표와 강의가 이루어지는 시간이면 불이 꺼지고 슬라이드 쇼의 시작과 함께 졸기 시작하여 고개를 처박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사실 전공의때는 밤에 당직서느라 잠 못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피곤에 찌들어 있다가 컨퍼런스에 들어가 몸을 의자에 기댈 수만 있다면 그건 정말 꿀맛 같은 휴식시간이요, 딱딱한 나무의자가 내 휴식의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다. 큰 학회에 가서 보면 교수님이 분명해 보이는 높으신 선생님들도 졸기는 마찬가지였다. 때론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쉬며 수면을 취하기 위해 강의를 듣는게 아닐까 싶게 심한 사람도 있다. 정말 최선을 다해 졸지 않으려고 노력했건만, 실패로 돌아가 버렸던 나의 과거와 현재. 언제쯤 정신 차릴까?

 

어제 있었던 내과 MGR (Medical Ground Round)은 임상의를 위한 흉부 X-ray의 판독이라는 아주 고전적인 주제로 준비되었다. 기존의 MGR과는 다른 형태로, 호흡기내과 교수님이 직접 한시간을 강의하셨다. 아마 교수님 복장을 터지게 한 사건이 있었던 모양이라고 짐작해 본다. 직접 강의를 하시다니… ‘정상사진과 비교하라’ ‘Old X-ary와 비교하라’ ‘먼저 전체적인 그림을 살펴라’ ‘좌우를 비교하라’ ‘심장뒷쪽을 잘 살펴라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를 보면서 임상상황과 비교하여 사진을 판단하라그 정도의 교과서적이고 단순한 메시지가 강의 시종일관 반복되었다. 그 원칙을 지키지 못한 사진들과 함께.

나느 4년 전 이 교수님 파트의 주치의로 일을 했었다. 그때는 교수님이 어찌나 날카롭고 무섭던지 매일 아침 8시에 교수님 회진이 시작되었는데 7 30분이면 꼭 화장실에 가서 설사를 하고 나와야 비로소 움켜쥔 배를 펴고 회진을 돌 수가 있었다. 회진에 신경을 과하게 쓰니 장이 매우 예민해졌는지 나는 두달간 매일 설사를 했었다. 선생님은 나의 헛점, 무식, 환자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한 나의 진료양태 등에 대해 원칙적인 코멘트를 하셨고 나는 매일 아침 쥐구멍에 숨고 싶다는 심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선생님은 예의 그 깐깐한 목소리로 강의를 시작하셨다. 아무리 첨단 기법이 동원된 CT나 다른 영상장비들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내과 의사이고, 일단 첨부터 CT를 찍는게 아니라 나의 오감을 이용하여 시청탁촉진 등의 신체검사와 흉부 X-ray를 기본으로 검사가 시작된다, 찍어 놓고 영상의학과에서 판독 안해준다고 사진도 볼 줄 모르는 내과의사가 되면 되겠냐, 매년 루틴으로 사진을 찍으면서도 찍어놓고 보지 않아 폐암을 놓칠거면 사진을 왜 찍느냐, X-ray에서 충분히 정보를 주는데도 흉부 CT를 찍는 rationale는 뭐냐, 4년전 병동에서 들었던 꾸지람의 전율이 다시 살아난다.

그 사이에 선생님은 말씀하시는 어투도 조금 부드러워지셨고, 혼내는 톤도 예전보다 조금은 낮아진것 같다. 분노나 화 보다는 안타까움이 조금 더 묻어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신 것 같다.

선생님은 누구나 다 알만한 흉부 X-ray 사진의 판독원칙을 반복하시며 해당 원칙에 위배되었던 사진들을 보여주셨다.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사진들, 내가 전공의 시절 찍었고 제대로 보지 못한 채/제대로 보지 않은 채 지나쳤던 사진들도 있었겠지? 사진을 쫒아가며 촬영연도에만 주목한다. 도둑이 제발 저려서

 

아무리 주옥 같은 말씀을 하셔도

 

나는 선생님 강의를 들으며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촌철살인같은 선생님의 말씀에 내 과거를 반성하며 사진들을 보고 있는데, 아뿔사, 내 앞쪽의 내과 전공의들과 학생들 너무 많이 쓰러져 있었다. 고개를 꾸벅꾸벅 떨구며 졸고있는 것 같더니 어느새 아예 책상에 팔베개를 하고 잠들어 버렸다. 내 앞뒤로 여기저기 시선을 돌려보니 화면을 보고 있는 학생, 전공의들이 많지 않다. 아니, 이렇게 원칙적인 강의를 들을 날도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전멸 직전이다.

스크린이 내려오면 눈꺼풀도 같이 내려오고, 스크린이 올라가야 다시 눈꺼풀도 겨우 올라가는 그 의대생, 의사의 생리적 현상을 어쩔 수는 없겠지만, 내 마음이 안타까웠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이런 강의를 듣고 더 실수하지 말라고 선생님이 강의해주시는 건데잠결에라도 액기스는 챙겨 들었을 거라고 믿어볼 수 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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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환자는 우리 병원에서 오래 치료받은 분이에요. 비급여 약제를 쓰더라도 소송을 걸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본인이 약값을 부담하게 하고 이 약을 쓰겠습니다” “지금 이 약제조합은 사전신청이 들어간 상태니까, 내년에 심의를 통과하면 그때 100:100으로 처방하여 쓰시면 안될까요? 지금 이 약을 쓰면 임의비급여가 됩니다” “아니, 지금 병이 나빠져서 환자가 증상이 심해지고 있는데, 2주 이상 기다리라는 말인가요? 어차피 보험도 안되는 약이고 환자가 자기돈 내고 치료를 받겠다는데도요?” “임의비급여로 처방하시면 불법진료라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지금 이 환자에게는 이 약이 가장 적절한 선택입니다. 저는 쓰겠습니다

환자 본인이 비급여로 약값을 전액 지불하더라도 그 처방 항목이 100:100이면 합법진료고 임의비급여이면 불법진료가 되기 때문에, 이 약제를 쓰겠다는 교수님과 이를 말리는 보험심사과의 대화이다. 불법진료 항목은 항상 소송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보험심사과에서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 환자는 이미 비급여로 수차례 항암제를 쓰며 치료해 온 호르몬 수용체 양성의 유방암 환자.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은 전이에 전이를 거듭하면서도 치료에 대한 반응도 좋고, 재발하지만 오래 사는 지지부진형 암이다. 약제의 선택 폭도 넓고 독성이 강한 항암제 뿐만 아니라 항호르몬 치료도 병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로서 치료의 묘미가 있기도 하지만, 치료기간이 길어질수록 특정 약제가 보험적용이 되느냐 마느냐가 치료법을 선택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또 한번 쓴 약제를 수년이 지난 후 다시 쓰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도 보험심사과의 문의를 꽤 많이 받는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보험심사과와 상의한 다음 약제를 결정하기도 한다. 사람사는게 늘 교과서처럼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질병과 건강을 다루는 문제에서 조차도 돈문제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하다니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감마나이프는 최초 한번만 보험으로

 

어떠한 이유로든 생존기간이 길어지면서 각종 암에서 뇌전이를 진단받는 환자가 많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대개 뇌 전체에 대한 방사선 치료가 주종을 이루었지만, 요즘에는 전이된 개수가 많지 않고 크기가 3cm을 넘지 않으면 Gamma Knife surgery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는 전이된 부분만을 타겟으로 하여 감마선을 쏘임으로써 정상 뇌는 방사선으로부터 보존하고 병이 있는 곳에만 집중적인 방사선치료를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치료방법이다. 이 시술은 한번에 3-4백만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되는데, 최초 한번의 시술에 한해 보험이 적용된다. 총 진료비의 5-10%만을 지불하는 보험 급여로 하면 감마나이프수술의 비용이 큰 부담이 아니지만, 이를 비보험으로 처리하려면 꽤 부담스러운 금액이 된다. MRI 상에서 보이는 병변을 타겟으로 하여 치료하니 정상 뇌를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영상사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치료할 수 없으니, 감마나이프수술을 하고도 서너달 사이에 또 다른 곳에 전이된 병변이 나타나면 결국 (보험이 되는) 전체 뇌 방사선치료를 하거나, 해당 부위에 또다시 (보험이 안되는) 감마나이프 수술을 해야 한다.

뇌로 전이가 되어도 수백만원 상당의 비보험 시술을 몇차례 더 받을 수 있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환자는 비록 돈은 많이 들지만 생존 기간이 연장되는 경향을 보인다. 돈이 없는 환자는 한번의 감마나이프시술 후에 뇌전이가 재발하면 전뇌 방사선치료를 선택하게 되고, 정상 뇌가 방사선에 노출된 후 인지기능의 저하 등 후유증을 앓고 전신상태도 저하되는 경향을 보인다. 전신상태가 나빠지면 항암치료를 더 받기도 어려워진다. 10년전 진단 당시부터 뇌전이가 동반된 상태로 진단받은 비소세포성폐암 환자, 보통 예후로 치면 6개월을 넘기는 것도 어려울텐데, 첫 아기를 막 낳고 폐암을 진단받은 그녀는 감마나이프수술만 4, 폐암에 대한 항암치료는 8번째 약제를 변경하여 치료중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지 몇번은 표적치료를 겸한 항암치료를 병행하기도 했다. “4번째 뇌로 전이되고나니 이제 좀 힘드네요. 아무래도 회사는 쉬어야겠어요.” 진단서를 작성해주며 나는 4기 폐암환자로 치료받아온 긴 병력에 놀랐고, 무엇보다도 10년동안 병을 이겨내고 있는 그녀가 대단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비보험 시술과 비보험약제를 감당할만큼의 경제적 여력이 되었었나보다 짐작하게 된다.

 

사회경제적지위와 암 환자의 생존률

 

경제적 소득이 낮을수록 병이 진행된 상태로 진단받을 가능성이 높고 적극적인 치료를 받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암 진단 5년 내의 사망 가능성도 높다는 연구가 여러 암에서 이루어진 바 있고 상식적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국내 아프리카 어메리칸과 히스페닉 어메리칸의 암환자 치료 패턴에 대한 여러 연구에서도 이들 인종에서 경제적 능력이 낮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의료접근도가 떨어지고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병이 더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완치를 목적으로 한 적극적인 치료를 받는 비율이 낮고, 특정 치료법의 선택 상황에서 치료를 포기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12 8일자 Cancer (E-pub)에 실린 한 논문(Are patients of low economic status receiving suboptimal management for pancreatic adenocarcinoma?)에서는 췌장암 환자 16,104명에 대한 분석을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환자들이 수술 및 항암, 방사선치료를 덜 받는 경향이 있으며 수술 전후의 사망률이나 장기 사망률이 높게 보고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같은 저널에서 한달 전에 실린 논문(The impact of health insurance status on the survival of patients with head and neck cancer) 1998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 피츠버그병원에서 두경부암을 진단받고 치료받은 1231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그들의 보험가입 상태에 따라 환자군을 분류하여, 보험이 없거나 Medicaid 소속의 환자가 일반 HMO 가입환자에 비해 1.5, Medicare 장애보험에 가입한 환자가 1.69배 사망률이 높게 나타남을 분석하여 이들의 장기 생존률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입보험유형에 따른 생존률의 차이는 confounding factor로 간주될 법한 흡연이나 음주와는 상호작용없이 독립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통계적 차이가 있는 변수로 분석되었다. 즉 연령, 성별, 인종, 흡연, 음주, 사회경제적지위, 치료기법, 암 병기등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질병의 예후인자와는 독립적으로 가입한 보험유형이 예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제시한 셈이다.

 

의료행위는 단지 순수한 의학적 지식만으로 진단과 치료가 결정되고 환자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여러 사회경제적 요인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실천되는 사회적 행위로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내 눈앞에 있는 환자를 진료할 때는 최고 좋은 약, 최고 정확한 검사, 최고 환자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 꼭 이 문제가 되고 의사인 나의 인식과 환자의 인식의 차이, 눈에 보이지않는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작동하여 비슷한 치료를 하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차이가 발생하나 보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면 당연한 결론일까? 전체적으로 의료의 질을 낮춰 평등하게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진료하는 암환자들이 의료 외적인 요인의 영향을 덜 받으며 최선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며 노력하는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난 아직도 감으로 환자보지 말고 공부해서 객관적인 지식에 근거하여 환자를 보라는 꾸중을 듣는 신출내기 종양내과 의사이다. 갈길이 멀다. 공부도 많이 하고 경험도 많이 쌓고 논문도 많이 쓰고 환자도 걱정하고연말인데 내 가족들도 안녕한지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는 12월 마지막 주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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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학회에 가면 구석에 숨어 열심히 필기하고 강의를 듣는 편에 속한다. 교수님들은 잘 모르더라도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시지만, 질문도 실력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질문 제대로 못했다가 바보되는 거 많이 봤다. 아직은 구석에 찌그러져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내 수준에 맞다고 생각하니 하루 빨리 플로어에 나가 당당하게 질문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얼마 전 학회에 갔다가 뒤에 앉았더니 집중도 잘 안되고 화면이 잘 보이지도 않아서 제일 앞줄로 나가서 강의를 듣기로 했다. 앞에 앉으니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야 종양학을 공부하겠다고 입문한지 2년째에 불과한 강사 신분. 선생님들 강의를 듣기만 하고 멀찌감치서 뵙던 분들이라 개인적으로 안면없이 익명으로 인사만 하는 관계였으니 선생님들도 내 존재를 별로 의식하지 않으시고 이얘기 저얘기 하시는 걸 옆에서 훔쳐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 제가 여차저차한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데요, 반응은 좋은데 이 약을 언제까지 쓰는게 좋을까요? 이렇게 쓰면 보험에서 문제는 없을까요?”

글쎄요, 저는 몇 년까지 써봤어요. *** 연구에서 데이터가 있으니까 근거는 있는 셈이에요. 그런데 저도 너무 오래쓰는 것 같아서 끊었더니 금방 재발하더라구요. 그런데 또 다시 썼더니 좋아졌어요. 보험으로 쓸려면 심평원에 서류를 좀 많이 써야 할거에요.”

 

선생님, 이 약을 이러이러한 경우에 쓰는게 보험이 안되는건가요? 절 얼마전에 삭감 당했다고 통보받았어요. 환자는 치료가 잘 되고 있는 중인데, 삭감 당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환자는 비급여라도 쓰겠다고 하는데, 그러면 불법진료라는 거 아닌가요?”

아니에요. 소견서에 이러이러한 내용을 쓰면 통과시켜주는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는데 삭감 안당했어요. 그럴 때 한 6개월 계속 소견서쓰면 통과되기도 해요”“

 

선생님은 이러이러한 환자 보신 적 있으세요? 제게 지금 이런 환자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일단 저러저러한 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보고 있는데, 별로 치료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고민이에요. 환자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특별히 시도해 볼만한 약제조합이 없는데…”

그럴 땐 현재 약제가 독성이 심해서 쓸 수 없는 것처럼 의무기록을 남기시고 다음 약으로 무슨 약을 쓰는게 보험으로 삭감이 안되고 쓸 수 있어요. 3주기 하고 CT찍어서 어찌어찌 평가를 꼭 하셔야 해요.”

 

선생님들은 학회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쉼없이 환자들 케이스를 서로에게 털어놓으며 의견을 구하고 계셨다. 서로 노하우를 알려주고 꽁수도 알려주며 의견 교환에 한창이시다. 나 같은 피래미가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했던 선생님들, 그들의 유창한 강의만큼, 유수의 대학 병원에서 자기 분야의 전문가인 만큼, 환자 진료에도 거칠 것 없이 척척이신줄 줄 알았는데, 그들의 유창한 강의만큼이나 환자를 보는 과정에서도 거칠 것 없는 분들인 줄 알았는데, 너무 솔직하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으며 고민하고, 서로에게 질문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보니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아니, 고명하신 선생님들께서 이렇게 모르시는게 많았단 말인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암환자를 본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며, 교과서나 논문에서 제시하는 도식화된 지식, 표준적인 방식만으로는 환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병의 특징을 고려한 진료를 할 수 없다는 고전적인 의료의 명제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기도 한다.

 

정말 너무한거 아닌가요?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치료도 치료지만 심평원 심사 피해가기, 보험으로 청구하기 등 비보험, 임의비급여, 100:100 등 진료비와 관련된 문제가 주를 이루고 의료보험 적용을 가능하게 하도록 서류 작성하기 등등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이 그들 대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소곤소곤 상의를 하시는 선생님들이 얼마전 유방암에서 특정 표적치료제를 사용하는 것과 관련하여 수개월 자료를 준비하시고, 근거를 만들어 심평원에 제출했던 파일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유방암 환자에서 이 약제를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과연 얼마나 실질적인 이득을 기대할 수 있는지, 예상되는 환자 수와 비용은 얼마나 발생할 것인지 등등에 대해 외국의 문헌과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여 자료를 만드셨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요즘처럼 개인의 업적이 생존전략의 핵심을 차지하는 시대에, 내 업적에 도움 안되고 잔뜩 준비했다가도 승인 안되면 모든 공든 노력이 무화되어 버릴 수 있는 건강보험공단 관련 서류작업을 하면서, 과학적이고 충분한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 꼼꼼히 서류작업을 준비하시고 끝내 보험 승인을 받아내신 걸 보니, 이분들이 정말 대단하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녕 환자들은 모르겠지만

발표를 위해 몇일밤을 세워 준비하셨을 파일도 선뜻 메일로 보내주신다고 한다. 발표용 파일을 하나 만들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사소한 디자인을 하나 수정하기 위해서 마우스를 몇번이나 반복하며 클릭을 해야 했던가! 한 페이지에 들어갔으면 싶은, 내 마음에 꼭 드는 그림을 하나 찾기위해서 구글 이미지를 얼마나 뒤져야 했던가! 내용도 내용이지만, 표 만들고 그림 그리는데 참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 파일을 누군가가 달라고 하면 솔직히 마음 속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던데… ‘너는 고생안하고 공짜로 먹으려 하다니!’라는 속좁은 마음이 든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바이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서로서로 메일로 보내주고 자료를 공유하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으셨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공부라는게, 내가 환자를 본다는게 결국 나 혼자 힘만으로는 결코 잘 굴러갈 수 있는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가시적인 성과가 아니어도, 온전히 나의 것이 되지 않아도, 환자를 위해 의논하고 노력을 함께 하는 선생님들이 정말 멋지다는 느낌을 받게 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번 학회에서 좋은 걸 얻었다. 이 마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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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가운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나?

 

의사 가운도 패션시대. 우리에게 익숙한, 빳빳하게 풀을 먹인 흰색가운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스타일을 넘어, 은은한 파스텔 톤의 맵시있는 쟈켓 형태나, 세련된 셔츠 형태로 가볍게 변형시킨 여름 가운들도 선 보인다. 내가 세브란스 병원 레지던트로 일할 때는 무릎 위 정도의 길이로 된 긴 가운을 입었고 교수님이나 임상강사들은 자켓처럼 짧은 가운을 입었기 때문에, 멀리서 짧은 흰 자켓이 보이면 , 높은 선생님들인가보다알 수 있었다. 몸에 딱 붙는 맵시있는 짧은 가운이 꽤 부러워 보였다. 나도 전문의가 되면 저렇게 폼 나는 가운을 입을 수 있겠구나

아쉽게도 지금 일하는 삼서서울병원은 전공의나 교수님이나 임상연구센터 연구원이나 다 같은 스타일의 가운을 입으니 폼 잡을 일 없어져서 서운하다(!). 펠로우가 되어 이곳 병원에 처음 들어 왔을 때 의사들의 가운에 대한 첫 이미지는 전체적인 가운의 폭이 너무 넓고 길이도 길며 팔 소매의 통도 너무 넓어 펄럭거리는것처럼 느꼈고 왠지 복장이 세련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가운을 입고 걸어가다가 반대쪽 유리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고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운을 폼 나게 입을 것이냐, 효율적으로 입을 것이냐

 

어느 날 문득 주머니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한 교수님의 호주머니가 눈에 띄었다. 키도 별로 크지 않고 날씬하지도 않으신 선생님의 가운 호주머니에는 두툼하고도 오래되어 보이는 다이어리, fever , 그리고 오래된 듯한 무슨 guidebook이 한꺼번에 포개져 있어 있다. 회진에 집중되지 않고 자꾸 호주머니에 눈이 간다. 다이어리는 무척 오래되어 손때가 잔뜩 묻어있었고, 전공의 1,2년차 주치의 시절에 항생제를 잘 선택하지 못해 몇번이고 들여다 보던 fever 2009년 판에도 포스트 잇으로 뭔가를 표시해 두셨다. 협진이 나서 선생님께 보고를 드리니 어색한 듯 씩 웃으시면서 나도 이제 기억이 잘 안나서…’ 라시면 내가 그렇게 궁금해 하던 다이어리를 꺼내 뒤적이신다. 선생님이 지금 자주 보시지 않는 병들도 다이어리 여기 저기에 정리되어 있었다. 맘 먹고 정리하신 듯 컴퓨터로 정리해서 작게 출력해서 붙인 것 같은 표, 저널을 잘라 붙인 듯 한 그림, 급하게 받아 적어둔 낯선 lab 들이 잔쯕 다이어리 속지에 숨어있다.

나는 선생님의 다이어리를 훔쳐 보는 순간,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나도 다이어리를 사야지! 공부하면서 조금씩 정리하고 차곡차곡 그 지식들을 쌓아 나가다보면 나도 실력이 쑥쑥 자랄거야나는 그 강렬한 느낌을 조금이라도 미룰 수 없어 당장 병원을 뛰쳐나가 근처의 큰 문방구로 향했다. 주치의 것도 하나 더 샀다. ‘우리 같이 열심히 공부하자

 

Physical exma은 전공의 1년차 때 열심히 해 본 exam만 하게 되는 것 같다. 1년차 시절, 어느 당직을 서던 밤 나는 열 나는 환자의 focus를 뒤지다가 환자의 심장 뒤에서 아주 국소적으로 바그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폐렴을 진단했을 때 느겼던 희열! 그 뒤로 나는 항상 심장 뒤 청진을 열심히 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솔직히 neurologic exam은 약하다. 학생 실습 때 시험 본 뒤로 별로 열심히 하지 않았다. 발바닥을 긁으며 Barbinski sign을 찾지도 않았고 crainial nerve sign인지 spinal root sign인지 cerebral sign인지 뭐 그런 건 신경과에 협진내서 exam 해달라고 하자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살았나 보다. (내과 전문의가 되어 이런 고백을 하게 되니 참으로 부끄러울 따름이다)

전신 어디서나 문제가 발생하는 암환자를 보게 되니 나의 취약한 physical exam 실력이 몽땅 들통난다. 지금 내가 돌고 있는 파트의 교수님 호주머니에는 penlight, hammer는 기본이고 tongue pressor, 면봉을 비롯해 opthalmoscopy까지 들어있다. ‘아니 내과 의사가 opthalmoscopy를 볼 줄 모른다는 말이니? 한심하다 한심해하시며 입으로는 우리를 꾸짖고 당신의 눈과 손으로는 환자를 진찰하신다.  비좁을 응급실에서도 어지러워하는 환자를 앉히고 걸리고 두드리면서 진찰하시고 papil edema도 당신 눈으로 직접 확인하신다. ‘지난 번 MRI사진 찍은지 며칠이나 됬다고, exam 해보면 아는 걸 그렇게 무턱대고 MRI만 찍어대니?’라고 호통을 치시면 할말 없어진다. 한쪽 호주머니는 일정이 빼곡한 두툼한 수첩이, 다른 한쪽 호주머니에는 opthalmoscopy와 해머 등 각종 physical exam용 도구들이 들어있다. 나도 opthalmoscopy 사야하나?

 

뼈로 암이 전이된 환자의 뼈사진을 다시 찍었다. 환자가 통증이 있다고 말하는 부위가 더 까매진걸 보며 , 병이 진행했나 보다나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내 마음을 다 읽으신 듯, 교수님은 당신 수첩을 꺼내 속지가 보이지 않게 살짝 가리며 ‘(병원 등록번호) ****-**** 사진 좀 띄워보세요. 이 사람도 항암치료 후 일시적으로 uptake가 증가해 보이지만 이런 현상이 반드시 병의 진행을 의미하는게 아니에요. 이런 걸 가리켜 **** 현상이라고 하는 겁니다나는 고개를 쑥 빼내어 선생님의 수첩을 홈쳐보지만 나로서는 알수 없는 숫자들만 잔쯕 적혀있다. 아마 선생님만 아는 암호체계로 환자들의 ID를 정리해 두신 것 같다. ‘훔여보지 마세요. 제 재산이에요라며 수첩을 덥으며 농담하시지만, 아마도 그 수첩은 선생님의 아이디어로 똘똘 뭉쳐진 액기스 메모집일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나는 가운을 깨끗하게 입지도 않고, 날씬하지도 않아 맵시도 없고, 호주머니에는 이것저것 잡동사니가 들어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라, 얼굴 값을 하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그 사람의 사람됨과 삶의 철학이 얼굴에 드러나기 때문인 것 같다. 가운을 보면 의사로서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말은 없다. 실력이 출중한 의사의 가운 호주머니에 우아한 펜 한자루만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 외모가 본질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니 일반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니어 교수님들께서 손수 physical exam을 하면서 사진에서 간과되었던 사실을 발견해내시고, 당신의 환자들에게서 발생하는 이상한, 설명이 어려운 일들을 기록해두고 학문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니 피래미 전문의가 잔뜩 긴장된다. ‘나도 성의껏 한다고 하는데 너무 허술하고 엉망이구나

당분간 맵시보다는 기능성을 충분히 살린 가운을 입고 두꺼비처럼 호주머니를 부풀려 비상지식의 보고를 채워가지고 다녀야겠다. 흥분해서 샀다가 얼마 정리 못하고 책상 구석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다이어리를 다시 정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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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기도

 

나는 천주교 신자이다. 그러나 믿음이 아주 깊지도 않고 성당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며 내 생활 자체가 종교성이 강하지도 않다. (하느님, 죄송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주말미사를 참석하는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신자의 의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난 사실 지난 8개월 동안 주말미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심지어 12월에는 성탄미사도 안 봤는데, 안 봤다고 해서 마음이 아주 괴롭거나 몹쓸 짓을 했다는 죄책감도 크게 심하지 않다. (하느님, 정말 죄송합니다). 솔직히 성당을 안가면 슬기와 엄마가 나를 아주 몹쓸 사람 취급하기 때문에 눈치를 보며 가는 측면이 강하다. (엄마, 죄송해요.)

나는 그렇게 나이롱 신자이지만, 그 나이롱 끈이라도 놓지 않고 살려고 하는 것은, 병원에서 지내다보면 인간의 한계, 의사의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아서, 환자를 위해서 의사인 내가 아무것도 해줄게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환자를 위해 손잡고 기도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일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기도문을 만들고 지향을 갖는 자유기도를 하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매우 어려운 일이 된 탓에 요즘에는 묵주반지를 이용해 주의기도나 성모송 같이 정해진 기도문을 반복하는 편이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회의 참석하는 중에 딴 생각이 날 때, 불현듯 누군가를 위해, 그의 평안을 위해, 나약한 나를 위해 기도한다. 종교성 여부를 불문하고 인간에게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 같다. 특히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하루라도 착하게

지난 일요일 아침, 슬기와 함께 성당에 갔다. 이미 청소년이 되어 버린 슬기는 엄마보다 친구가 좋은 나이가 되었는지, 친구랑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집을 나서자 마자 저만치 앞서서 뛰어가 버린다. 8개월동안 주말미사를 불참한 상태에서 고백성사를 보러 가는 길이라 슬기를 따라 뛰기보다는 부담스럽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으로 성당을 향했다. 고백성사를 보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마음속으로 죄를 정리한다. 어휴, 어차피 내 죄는 어차피 반복될 것이고 나는 쉽게 착해지지 않을텐데 이거 꼭 봐야 하나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나마 조금이라도 죄를 덜어야겠다는 면피주의적인 마음이 앞서서 불안한 마음을 꾹 참고 내 차례를 기다린다. 고백성사의 내용이나 이에 대한 신부님 보속 말씀은 비밀을 지키라 되어 있으니 내가 그 말을 지면으로 옮길 수는 없겠으나, 나를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는 신부님이 내 삶의 맥락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도 상당히 정확히 상황을 파악하시고 진단을 내려주시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사람 사는게 비슷해서 그런걸까? 나는 가능하면 구체적으로 내 죄의 상황을 묘사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신부님께서 그 상황에 대해 여러가지 질문을 하시면서 코멘트를 해 주셔서 유쾌하기도 하고, 정확한 진단과 치료방법을 제시해 주시는 것에 깜짝 놀랐다. 돌아서 나오는 마음 한편에는 오늘 하루라도 착해지자, 남의 탓을 하고, 구조와 제도의 탓을 하고, 상황의 비합리성을 논하는데 열중하느라 정작 나를 돌아보는 데에는 소홀해졌구나 하는 반성의 마음이 절로 든다.

 

남을 위해 내 놓을 것이 있다면

요즘 의과대학 학제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 통합교육이나 PBL 교육이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본과 1학년 1학기, 의대생을 고통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10학점짜리 해부학실습이런 과목은 없어진 것 같다. 공포라는 것은 해부학 실습이 무서웠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해부를 해 놓고 평가받기나 기발 해부학 땡시, 도대체 의미를 알 수 없는 신체 장기 곳곳의 이름을 외우는데 급급했던 쪽지시험, 그리고 최대학점 과목의 막강한 시험 후유증으로 형편없이 떨어진 나의 성적, 그것이 공포의 대상이었다.

한학기를 마쳐가던 무렵, 우리 동기들 몇 명이 우리도 해부학 실습을 마친 기념으로 사후 시신기증을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나눠 본 적이 있었다. 어차피 죽어 땅 속에 묻히면 몇일만에 썪기 시작해 금새 흙으로 돌아갈 몸인데, 후배들을 위해 시신 기증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누군가가 내 놓은 것이다. 나는 내 스스로가 그런 일에 선뜻 찬성의견을 내 놓을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막상 그런 제안을 들으니 망설여짐이 있었다. 해부를 잘 하는 한 동기가 겨드랑이 림프절 주위를 아틀라스처럼 예쁘게 해부를 해 놓아서 에술작품처럼 느끼게 해 주었지만, 당시 그 아래쪽에서 느리고 둔한 손재주로 손바닥 해부를 담당했던 나로서는 차마 내 몸을 나 같은 누군가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전에 의사파업이 시작되는 바람에 해부학 수업은 정식 종강수업과 시신을 기증하신 분들께 대한 기념식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막을 내렸고 우리의 시신기증 논의도 흐지부지 되고 말았었다. 나는 과연 내 몸을 내 놓을 수 있을까?

 

마침 성당에서 조혈모세포 및 뇌사시 장기기증, 각막 기증을 위한 신청서 작성을 받고 있었다. 조혈모세포 기증을 위해서는 기증자의 나이가 만 40게 이전이라는 기준이 있어 나는 이 기회마저도 곧 놓치겠다 싶어 팔을 걷어 붙이고 채혈을 했다. 뇌사시 장기기증과 각막 기증 신청서도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실재 내가 조혈모세포 기증자가 될 확률이나 뇌사를 당하여 장기기증을 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각막 이식은 자연사 후에도 가능한 일이니 잘 하면 각막이식은 실천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일요일 아침, 내 마음의 죄책감을 벗어나기 위해 작은 성의를 보였다는 만족감으로 성당을 나선다. 마음 한 쪽에 나는 과연 얼마나 사회에 기여(contribution)하고 사는 존재인가 물음이 생긴다. 언제부터인가 철저하게 나만을 챙기고 살아온 것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의사라는 직업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고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병원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환자만 보면 큰 문제가 없는 존재가 되다보니 소통의 부재 공간에서 존재적 자각(insight)없이 살기 쉬운 것 같다. 다른 사람과 제대로 소통하기,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기, 이 두가지를 몸과 마음의 축으로 삼아 봄날인데 눈 내리는 이 흉흉한 계절을 이겨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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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할머니 파이팅!

 

내가 만나는 환자들은 대부분 4기 암환자이다. 4기 암환자라는 진단을 받으면,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고 치료받고 암환자로 살아가기까지 환자들은 눈물겨운 투쟁과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고 슈퍼맨으로 거듭나는 분들이 있다.

75세가 넘은 할머니, 유방암을 처음 진단받고 수술받은 것이 1992년이니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이다. 첫 수술 후 7년째 되던 해에 유방암이 있던 쪽 흉곽에서 병이 재발하여 재수술을 하고 첫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로부터 5년 후 이번에는 흉골뼈와 주위 림프절로 전이된 병이 발견되었고 환자는 국소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였고 추가적인 항암제를 쓰지 않고도 호르몬제만 유지하면서 병이 잘 조절되는 듯 하다가 3년이 지난 2007년에는 드디어 폐까지 전이되어 전신적으로 암이 퍼지기에 이르렀고 본격적인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자꾸 재발하는 병이 원망스러울 법도 한데 뭐가 뭐가 좋다더라, 어디가서 기도를 받으면 효험이 있다더라, 어디 가서 한약 지어먹으면 좋아진다더라주위 사람들의 온갖 관심과 참견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우리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표준치료를 받겠다는 입장이 확실하셨다. 자존심도 강하고 어찌나 꼬장꼬장하신지, 의사가 뭘 지시하는지, 지시대로 간호사가 잘 수행하는지 이래저래 참견이 많으셔서 사실 귀찮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잔소리가 많아도 교수님이 오시면 아주 다소곳하게 선생님 지시를 따르셨다. 길고 긴 항암치료의 시절 그저 교수님의 지시대로, 특히 최근 2년간은 약효가 잘 듣지도 않아, 어떨 때는 약을 쓴지 두달만에 재발이 되어도 원망없이 다른 약으로 잘 치료해주시겠죠라며 기다리셨다.

얼마전 환자는 심한 폐렴으로 응급실로 왔다. 공기가 잘 통하는 폐는 엑스레이에서 까맣게 보이는데, 할머니의 폐는 온통 허옇게 변해있었다. 급성호흡부전으로 인공삽관 및 중환자실 치료를 시작하였다. 말기암환자의 상태가 악화될 때 중환자실 치료까지 하는 것이 무의미한 생명연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환자의 암이 어떤 종류이냐, 최근 치료에 반응이 있었는가, 이번 일이 있기 직전 환자의 전신상태가 좋았는가 등 여러가지 요인을 고려해서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유방암은 재발이 반복되어도 비교적 예후가 좋은 암이고, 갑작스럽게 폐렴이 발생하면서 호흡부전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빠른 속도로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믿고 중환자실 치료를 하기로 하였다.

할머니는 단 10일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나오셨고 3일째인 오늘 휠체어를 타고 병동을 돌아다니고 계신다. 용감하고 씩씩한 할머니, 병을 받아들이되 몸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서 치료받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드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 당신 생일이라며 나에게 주신 책상 속의 초콜릿을 볼 때마다 마음 속으로 외친다. ‘슈퍼맨 할머니, 파이팅! 더 좋은 약이 나올 때까지 잘 버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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