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2009 내가 쓴 책 20

경희, 도담이 엄마가 되다

2013년 5월 22일 밤 11시 40분. 경희가 도담이 엄마가 되었다. 도담이가 뱃속에 있을 때 경희는 입덧도 안하고 감기도 안 걸리고 별로 붓지도 않고 큰 탈없이 잘 지냈다. 출산 직전까지 근무를 했다. 초산인데 10시간 진통을 했지만 정작 배가 아프다 싶었던 건 2시간 정도. 그 와중에도 경희는 카톡으로 문자하고, 페이스북에 들락달락 거리고, 크게 힘들지 않았나 보다. 예정일에 딱 맞춰 세상에 나온 도담이, 엄마를 성가시게 안하는 착한 아들이다. 오늘 퇴원하는 경희. 뭐 먹고 싶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아무거나 다 먹고 싶다며 거절을 안한다. 주섬주섬 빵을 한 바구니 사가지고 병실에 가 봤더니 산모가 붓지도 않고 아주 쌩쌩하다. 애기 황달검사를 했는데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며 퇴원 준비 한창이다. 옆에 ..

Healthy mother effect for 경희

다른 병원에서 유방암을 보시는 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박경희 선생이 결혼했다는 소식에 많은 환자들이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경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경희는 유방암 환자들 사이에서 공인이 되었다 보다. 시부모님이 경희를 극진히 사랑해주시는 모양이다. 유방암을 이겨낸 며느리라고 더 예뻐해 주신다 한다. 미리 서울시내 8곳의 결혼예식장을 예약해 신부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때에 결혼할 수 있게 시아버지가 손을 미리 쓰실 정도였다. 경희도 장하고 경희를 사랑하여 결혼한 신랑도 장하고 경희를 친자식처럼 귀하게 여기고 사랑으로 보듬어주신 시부모님도 장하시다. 경희 부모님은 결혼식장에서 참석한 사람들에게 매우 고마워하셨다. 마음 속으로 오만생각이 많으셨을 거다. 참석한 모두가 주말에 열리는 의례적인 결혼식..

결혼을 앞둔 경희에게

아직도 가끔 눈빛이 흔들리는 그녀 내가 진료실에서 진료하는 환자들에게서도 자주 발견하는 눈빛이다. 모든 치료가 끝나고 6개월에 한번씩 검사만 하면서 경과관찰을 위해 병원에 오시는데, 그러니까 병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고, 일상을 즐겁게 사시면 된다고 말하는데, 그런 말을 하는 순간, 그녀들의 눈빛은 순식간에 흔들린다. 가끔 배가 아파도 가끔 허리가 아파도 살이 조금만 빠져도 그들은 눈빛이 흔들린다. "괜찮죠?"라는 질문 한번에도 눈물을 뚝. 그런 불안함과 순간 밀려드는 공포. 그런 마음이 얼마나 존재를 불안정하게 만드는지 아마 나는 상상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경희는 그런 마음을 이겨내고 결혼을 하려고 한다. 치료를 마치고, 레지던트로 복귀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우리 유방암 파트에 와서 일하며 그녀는..

경희 2. 진단 2. 유방암 진단 후 여러 검사를 받으며

진단 2. 양성이라고 생각해서 진단 겸 치료 목적으로 수술을 하기로 했다가 조직검사 결과가 악성으로 나오자, 정확한 진단을 위해 여러가지 검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5살 때 폐렴으로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 처음 하는 입원이었다. 의과대학 학생으로 하얀 가운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이 더 익숙했던 이 병원에서 환자가 되어 하얀 환자복을 입고 병실 침대에 앉아있자니 여긴 내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MRI, PET-CT, 초음파, MUGA 등의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며 ‘그 조직 슬라이드가 다른 환자랑 바뀌건 아닐까? 잘못봤을지도 몰라, MRI찍으면 제대로 나올 테니까 그 때까지는 난 ‘R/O(rule out)’ breast cancer 인거야. 암이 아닐수도 있어.’라고 믿으며. 그렇게 며칠을..

경희 1. 진단 1. 너 유방암이래

진단 1. 너 유방암이래 헤어진 연인을 아프지 않고 좋은 추억으로 회상하는 데에 1년이면 충분할까? 처음 유방암 진단받던 날을 슬프지 않게 ‘과거’의 일로 회상하는 데에는 1년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지금도 진단받기까지의 과정들이 생생하게 생각나고, 가끔 잠을 설치는 날에는 꿈속에서 유방암을 진단받고 치료받던 그 시간들이 되살아나 흠칫 놀란다. ‘잘 견디고 있다.’ ‘난 괜찮아’라며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 결국 남에게 나를 보이기 위한 치기어린 자신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08년 10월, 내과 레지던트 1년차 생활이 이제 슬슬 손에 익어가고 병원 생활에도 자신감이 생기던 즈음이다. 어느 날 아침 속옷을 입다가 가슴을 스치는데 무언가 덩어리가 만져졌다. 메추리알 만한 크기..

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를 소개하며

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 고등학교 졸업-의과대학 입학-인턴-레지던트가 되기까지의 정규코스에서 단 한차례도 미끄러짐없이 의사가 되기 위해 달려온 그녀가 힘든 레지던트 1년차를 거의 마쳐갈 무렵, 유방암을 진단받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그녀를 위해 겉으로 드러나는 대화체는 아니지만, 이 책의 구성은 환자인 그녀와 의사인 내가 병에 대해 상의하고 견디며 나눈 대화를 정리한 셈이다. 조직검사를 한 후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지만 3기로 진단받고 망연자실해 하는 그녀. 그런 그녀를 앞에 두고 유방암의 특징, 치료 과정과 스케줄을 설명해야 하는 나. 수술 전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그녀의 마음 속에 회오리치고 있을 수많은 고민과 갈등, 그러나 짐짓 모른 척 항암제의 부작용과 독성을 설명하고 잘 견디라고 말하는..

수현 14. 유방암을 넘어 새롭게 살아가기 Living beyond breast cancer

Living beyond breast cancer 수술과 항암, 방사선 요법을 다 마친 유방암 환자는 이제 6개월에서 1년에 한번씩 외래에서 재발 여부를 판정하는 검사를 하면서 추적관찰을 하게 된다. 유방암 세포에서 호르몬 수용체가 양성이었던 환자들은 추가로 항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한다. 항호르몬제를 복용하는는 기간은 환자가 폐경기인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복용하는 약제의 종류와 먹는 기간에 차이가 있다. 폐경 전이며 5년, 폐경 후이면 10년까지 하루에 한알씩 항호르몬제를 먹는 기간이 더해지지만, 항호르몬제는 부작용이 심하지 않아 비교적 잘 견디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거의 없어서 환자들 스스로도 항암치료를 지속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항호르몬제를 꾸준히 복용하는 것은 재발 방지에..

수현 13. 암을 치료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왜 좋은 의사가 되지 못하는가

암을 치료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왜 좋은 의사가 되지 못하는가 먹을 수 없는 그림의 떡만 많아진다 모든 학문이 그렇겠지만 종양학은 유독 발전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변화가 많은 것 같다. 분자유전학의 발전으로 실험 및 검사 기법이 고도화되고 이를 학문 발전의 원동력 삼아 엄청난 논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자연과학과 기초의학의 지식 및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지금 이 시간에도 수천종의 신약이 개발되고 있고 그 중 극소수의 약이 살아남아 환자 진료에 사용되는 과정을 밟을 수 있다. 초기 약 개발 및 실험비, 관련된 연구비 뿐만 아니라 개발된 약으로 진행하는 임상시험과 관련된 비용이나 홍보비 등 다양한 제반 비용 모두가 궁극적으로 약값에 포함될 것이므로, 환자 진료에 사용될 정도로 살아남는 신약은 엄청나게 고..

수현 12. 죽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올해 들어 가끔 내가 암을 진단받는 꿈을 꾼다. 수술을 할 수 없는 4기 암으로. 왼쪽 쇄골하 림프절 검사에서 양성이 나온 위암으로 수술의 의미가 없는 경우, 직장암으로 당장의 수술하기에는 주위 림프절이 많아 일단 수술전 항암치료를 먼저 해보고 반응을 평가하기로 한 경우, 두세번 정도 더 있었는데 무슨 종류의 암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난다. 꿈의 패턴이 거의 비슷해서 기억나는 건, 아프게 조직검사를 한 다음, 결과가 양성인지 아닌지, 수술을 할 수 있는 단계인지 아닌지 너무너무 조바심내며 결과를 기다리다가, 결국 양상으로 판정되어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난다. 내가 평소에 환자에게 여러번 설명했던 항암제를 맞기 전, 꿈속에서도 너무 두렵고 남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

수현 11. 우울함은 당연한 감정

우울함은 당연한 감정 한국 유방암의 특징 중의 하나가 유방암 발생 나이가 서양에 비해 10년 이상 젊다는 것이다. 아직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여성의 결혼 연령이 늦춰지고 출산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차적으로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초래되어 그렇다는 가설이나 서구의 영향으로 인한 식생활의 변화와 생활 양식의 변화 때문이라는 가설도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른다. 젊은 유방암 환자가 많다 보니 자녀들이 중고등학교 재학중인 경우가 가장 많고 유치원, 초등학교에 다시는 아이들이 있는 엄마들도 많다. 엄마 유방암 환자들은 자신이 유방암이라는 것에 놀랄 겨를도 없이 자식들 걱정부터 한다. 아이가 고3인데 시험기간이라며 항암치료 날짜를 늦춰달라고 하는 엄마도 있고, 치료 중인 자신의 모습을 아이들이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