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2009 내가 쓴 책 검색 결과

20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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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24 - 이수현 슬기엄마

    경희, 도담이 엄마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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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31 - 이수현 슬기엄마

    Healthy mother effect for 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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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19 - 이수현 슬기엄마

    결혼을 앞둔 경희에게

  4. 미리보기
    2011.03.04 - 이수현 슬기엄마

    경희 2. 진단 2. 유방암 진단 후 여러 검사를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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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4 - 이수현 슬기엄마

    경희 1. 진단 1. 너 유방암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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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를 소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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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수현 14. 유방암을 넘어 새롭게 살아가기 Living beyond breast cancer

  8. 미리보기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수현 13. 암을 치료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왜 좋은 의사가 되지 못하는가

  9. 미리보기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수현 12.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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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수현 11. 우울함은 당연한 감정

  11. 미리보기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수현 10. 젊은 아가씨 유방암 환자들에게

  12. 미리보기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수현 9. 4기 유방암의 항암치료에 대하여

  13. 미리보기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수현 8. 몸과 마음이 지친 당신께 임상연구를 설명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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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수현 7. 방사선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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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수현 6. 항암치료 3. 유방암 항암치료에 사용되는 항암제의 부작용과 대처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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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수현 5. 항암치료 2. 열나면 병원에 오세요

  17. 미리보기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수현 4. 항암치료 1. 삶의 주기를 재조정할 것

  18. 미리보기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수현 3. 유방암 수술

  19. 미리보기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수현 2. 유방암의 진단과 병기의 의미

  20. 미리보기
    2011.02.27 - 이수현 슬기엄마

    수현 1. 유방암을 처음 진단받은 당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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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22일 밤 1140. 경희가 도담이 엄마가 되었다. 도담이가 뱃속에 있을 때 경희는 입덧도 안하고 감기도 안 걸리고 별로 붓지도 않고 큰 탈없이 잘 지냈다. 출산 직전까지 근무를 했다. 초산인데 10시간 진통을 했지만 정작 배가 아프다 싶었던 건 2시간 정도. 그 와중에도 경희는 카톡으로 문자하고, 페이스북에 들락달락 거리고, 크게 힘들지 않았나 보다. 예정일에 딱 맞춰 세상에 나온 도담이, 엄마를 성가시게 안하는 착한 아들이다.  


오늘 퇴원하는 경희. 뭐 먹고 싶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아무거나 다 먹고 싶다며 거절을 안한다. 주섬주섬 빵을 한 바구니 사가지고 병실에 가 봤더니 산모가 붓지도 않고 아주 쌩쌩하다. 애기 황달검사를 했는데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며 퇴원 준비 한창이다. 옆에 있는 남편이 더 초췌하다. 행복해 보인다. 좋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경희는 지금의 삶 자체를 사랑하고 마음껏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밝은 경희의 표정.


동아리-의학을 쉽게 푸는 모임-에서 의대생 경희를 처음 만났다. 멀끔하게 키크고 별로 말이 없는 사람, 지나치게 침착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표정은 차분하다 못해 다소 침울해 보이기도 했다. 모임이 있어도 있는듯 없는 듯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 2008년 내과 레지던트가 되었다. 자아가 없는 1년차, 늘 멘붕인 1년차 시절은 몇일씩 씻지도 않고 밥을 언제 제대로 먹었는지도 모른 채 시간이 간다. 그러다가 홍역을 앓는다. 이 녀석도 한번 도망갈려고 했었다. 몇 시간을 당직실에 쳐박혀 두 눈이 퉁퉁 붓게 울다가 짐을 싸려고 했던 것 같다. 내가 땀을 뻘뻘 흘리고 그녀를 끌고 가 시원한 맥주를 마신 것으로 기억하는 걸 보면, 아마 지금 이맘때 쯤 되는 것 같다. 그녀는 참으로 심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귀걸이 사주고 책 사주고 밥 사주고 신촌 거리를 헤매면서 걷다가, 다시 병원으로 데리고 들어온 기억이 난다. 그때 그녀의 표정은 참으로 어두웠다. 그렇게 1년차를 마쳐갈 무렵 20092월의 중순, 경희는 유방암을 진단받았다. 3A 혹은 3B.


경희는 수술전 항암치료를 6개월 동안 받았고 유방 전절제술에 이어 방사선치료까지 다 받고 2010 2년차로 복귀하였다. 치료를 받기 시작한 20093월부터 다시 내과 레지던트로 복귀하기 직전인 20102월까지 우리는 1년동안 함께 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를 썼다. 나는 마음속으로 경희가 너무너무 안쓰러웠지만 최대한 루틴하게 안부를 물었고 아무것도 아닌양 종양내과 의사로서 그녀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절대 위로하지 않았다. 위로를 하다가 내가 먼저 무너질 것 같아서. 원래 별 말이 없는 조용한 아이라 만나도 별로 할말이 없는 뻘쭘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난 원고 독촉을 빌미로 경희네 집에도 찾아가고 글 못 썼다고 핀잔주고, 명절날도 나와서 나한테 원고 교정 받으라고 하면서 경희를 괴롭혔다. 나는 경희가 시계 바늘이 돌아가는 것만 바라보며 남몰래 걱정하고 우울해 하는 청춘이 되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경희는 나의 이런 쓸데없는 걱정이 무색하게도 치료 잘 받고, 레지던트로 복귀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였다. 경희가 이렇게 정상적인 생애 주기를 밟아나가는 것은 수많은 젊은 유방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었다. 본인은 모르고 있었겠지만. 나는 학회에 가면 다른 병원에서 유방암 환자를 진료하시는 선생님들로부터 그런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자기네 환자들에게 경희는 희망의 슈퍼맨이라고


이제 disease free survival 3년이 지나가고 있다. 삼중음성유방암은 2-3년을 무사히 넘기면 잘 재발하지 않는다. 전절제상태인 유방도 슬슬 복원수술을 계획할 때가 되었다. 유방암 치료를 받은 젊은 환자가 임신하고 아이를 낳으면 재발율이 더 감소한다. 그 이유는 잘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healthy mother effect 라고 부른다. 경희는 그런 그룹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나는 그녀의 주치의로서 말 못할 몇가지 고민을 함께 나누어야 했다. 불현듯 찾아오는 재발의 두려움, 난소 기능이 떨어져 있는 상태인데 자연 임신이 될까, 한달전 유방 초음파 검사에서 발견된 작은 몽우리, BRCA 검사를 안한 경희가 졸리의 예방적 유방 전절제술 소식을 듣고 지금이라도 검사를 해봐야 하나 다시 고민하게 된 거밝고 행복해 보이는 경희의 마음 속에도 무수한 고민과 갈등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아무 일도 아닌 듯 나에게 그런 자신의 고민을 슬쩍 비춘다. 나는 별로 적극적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 fellow 1년차인데 논문 좀 썼어? 애 낳고 나면 열심히 스터디하고 논문이나 좀 써라. 너 너무 노는거 같아. 너 알레르기 파트 선생님들께는 잘 하니? 박중원 선생님 잘 모시고 있어? Fellow가 되면 레지던트 때처럼 패시브하게 굴면 안되. 공부도 열심히 하고, 논문도 많이 쓰고, 학회도 열심히 다니고 그래야지. 주말에 남편이랑 놀러만 다니지 말고.’


이렇게 짜증나고도 별볼일 없는 일상, 그러나 그 일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를 알기 때문에 경희는 내가 그렇게 말도 안되는 잔소리를 하면 씩 웃는다. ‘네 그렇게 할게요. 언니경희는 내가 만난 수많은 유방암 survivor 중에 가장 쿨하고 긍정적이고 행복한 survivor 중의 한 명이다. 당분간 병원일을 잊고 도담이와 남편과 함께 잘 지내다 오렴.   




  • 준서아빠 2013.05.24 16:40 신고

    언제인지 기억은 가물가물합니다만 집사람이 처음 유방암 진단받고 의욕에 넘쳐
    이것저것 본 책중에 샘 책이 있었고, 그 책 서두글이 '경희야 어떻게 너 암이래...'
    그분이 저분이군요.. 처음 뵙습니다. 미인이시네요.. 산후 바로 후에도.. 여유도 있어 보이시고..

    참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좋은일이 어딨을까요??

    샘 글중 여러가지로 부러웠습니다.. cancer survivor, 복원술... 또 오늘은 금요일..

    힘들게 혼자 싸우는 준서엄마보러 오늘은 좀 일찍 나가야 겠습니다.

  • 준서아빠 2013.05.24 16:41 신고

    참 그거 아세요.. 두분 닳았어요.. 자매같아요.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05.24 18:28 신고

      경희가 싫어할거에요 ㅎㅎ

    2. Rosa 2013.06.30 01:27 신고

      저도 사진 보고 엄청 놀랐어요. 자매이신 줄 알고 ㅎㅎ

  • 김순자 2013.05.24 17:50 신고

    도담엄마 미소 예쁩니다
    천정까지 뛰어 닿고 싶도록 기쁩니다
    야호~
    치맥 간절한 부라보~~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05.24 18:28 신고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병원으로 복귀하면 치맥 한번 해야겠네요

  • 독일인의사랑 2013.05.29 13:54 신고

    제가 읽었던 책속의 주인공이군요.

    책을 읽으며 암투병 환자들의 힘든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 보는 계기가

    되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05.29 21:30 신고

      네 지금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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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2009 내가 쓴 책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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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병원에서 유방암을 보시는 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박경희 선생이 결혼했다는 소식에 많은 환자들이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경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경희는 유방암 환자들 사이에서 공인이 되었다 보다.

시부모님이 경희를 극진히 사랑해주시는 모양이다.
유방암을 이겨낸 며느리라고 더 예뻐해 주신다 한다.
미리 서울시내 8곳의 결혼예식장을 예약해
신부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때에 결혼할 수 있게 시아버지가 손을 미리 쓰실 정도였다.
경희도 장하고
경희를 사랑하여 결혼한 신랑도 장하고
경희를 친자식처럼 귀하게 여기고 사랑으로 보듬어주신 시부모님도 장하시다.
경희 부모님은 결혼식장에서 참석한 사람들에게 매우 고마워하셨다. 마음 속으로 오만생각이 많으셨을 거다.
참석한 모두가 주말에 열리는 의례적인 결혼식에 참석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신혼부부를 격려하고 축하해주었다.
내과 교수님들도 많이 오셨다.

난 경희 덕분에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결혼하면 애 낳아도 되요?"
난 유방암과 임신의 예후에 대해 공부하였다.
"미리 난소를 보존해 놓는 것이 좋을까요?"
난 케이스 리포트라도 찾아서 공부해야 한다.

젊은 유방암 환자가 많은 것이 우리나라 유방암의 특징이다.
대개 65세 전후로 유방암이 주되게 발생하는 서양에서는 그다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환자도 별로 없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은 다르다.
결혼했지만 아직 아기가 없는 젊은 아줌마들.
아기를 갖고 싶은데 지금 항암치료 호르몬치료를 하면 임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실 그리 많이 연구되지 않은 영역이다.

다행히 유방암 치료 후 임신을 한다해도 재발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이터는 없다.
오히려 예후가 좋다는 이론이 있다. 예후가 좋은 이유는 Healthy mother effect (건강한 엄마 효과)라니, 논문을 읽으며 내 마음이 푸근해진다.

경희는 지금 몰디브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신혼여행중이다.
카카오톡으로 소식을 전하고 페이스북으로 신혼여행 이야기를 올리고 있다.
그녀의 행복이 영원하길...

우리 유방암 환자들에게도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힘이 함께 하길...

  • 2011.04.01 18:59

    비밀댓글입니다

  • 박은철 2011.04.27 16:52 신고

    선생님이 쓰신 책의 감동을 느끼고 싶어 지금바로 주문하였습니다.
    책을 낸줄은 몰랐는데 이코너에 들어와서 알게 되었네요. 인구 4명중 한명이 겪어야 하는 현실..., 그게 바로 저라면 그 현실에서 생각하며 받아들이며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1.04.28 09:38 신고

      사실 이 책에 대한 반응은, 유방암 환자가 직계 가족이 아니면, 계속 읽기에 좀 어렵고 딱딱하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제가 원래 기획할 때도 유방암 교육을 위한 안내서 개념으로 쓴 거였습니다. 처음으로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자분께, 이 책 읽으시면 많이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을 포함한 거죠. 그리 재미는 없는 셈이죠. 그래도 읽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 2011.10.24 19:10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1.10.24 21:06 신고

      힘든 시간이었겠습니다. 지금도 삶의 순간 순간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들이 수도 없이 지나가겠죠. 그래도 그것을 이겨내고 더 좋은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저도 쉽사리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그래도 기회가 되면 한번 저희 병원에 오세요. 제가 차 한잔 대접할께요. 적적한 주말에 오실수 있으면 오세요. 미리 메일 주시구요. socmed@yuhs.ac

  • 고운향기 2011.10.26 20:28 신고

    선생님 책을 너무나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작년 항암치료 시작할때 서울대병원 김범석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셔서 읽게 되었어요.
    선행항암치료 시작하며 두렵고 궁금한 여러가지에 너무나 너무나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박경희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는데...꼭 전해주세요.
    박선생님이 힘써 싸워 얻은 건강한 모습,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저같은 이에게 큰 희망의 증거가 되는 것임을 꼭 기억해 주십사고...
    두 분 선생님을 축복하고 축복합니다. ^^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1.10.26 23:23 신고

      김범석 선생님께 감사드리게 되네요.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는 선생님이십니다. 김범석 선생님은 참 훌륭하신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잘 치료받으시면 됩니다. 서울대 유방암 치료하시는 선생님 모두 아주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제가 늘 많이 배우고 있죠. 그래도, 환자는 힘듭니다. 선생님이 누구든간에. 환자 한명한명이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또 방문하여 영웅담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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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2009 내가 쓴 책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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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끔 눈빛이 흔들리는 그녀
내가 진료실에서 진료하는 환자들에게서도 자주 발견하는 눈빛이다.

모든 치료가 끝나고
6개월에 한번씩 검사만 하면서 경과관찰을 위해 병원에 오시는데,
그러니까 병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고, 일상을 즐겁게 사시면 된다고 말하는데,
그런 말을 하는 순간, 그녀들의 눈빛은 순식간에 흔들린다.
가끔 배가 아파도
가끔 허리가 아파도
살이 조금만 빠져도
그들은 눈빛이 흔들린다.
"괜찮죠?"라는 질문 한번에도
눈물을 뚝.

그런 불안함과 순간 밀려드는 공포.
그런 마음이 얼마나 존재를 불안정하게 만드는지 아마 나는 상상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경희는 그런 마음을 이겨내고 결혼을 하려고 한다.
치료를 마치고, 레지던트로 복귀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우리 유방암 파트에 와서 일하며 그녀는 너무 많이 힘들었었나 보다.
나는 힘들어하는 경희에게
혼 내고
언제까지 그렇게 아마추어처럼 굴거냐며
경희가 눈물을 뚝뚝 흘리게 혼내며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것을 명령했지만
스스로도 그런 내가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결혼도 좀 더 있다가 하라고
임신은 좀좀 더 있다가 하라고 그렇게 썰렁하게 말했지만
그 다음은 말할 수 없었다.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말이니까.

그런 그녀가 다음주에 결혼한다.
많이 축하해주고 싶은데, 왠지 마음 한구석에 슬픈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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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2009 내가 쓴 책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진단 2.

 

양성이라고 생각해서 진단 겸 치료 목적으로 수술을 하기로 했다가 조직검사 결과가 악성으로 나오자, 정확한 진단을 위해 여러가지 검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5살 때 폐렴으로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 처음 하는 입원이었다. 의과대학 학생으로 하얀 가운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이 더 익숙했던 이 병원에서 환자가 되어 하얀 환자복을 입고 병실 침대에 앉아있자니 여긴 내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MRI, PET-CT, 초음파, MUGA 등의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며 그 조직 슬라이드가 다른 환자랑 바뀌건 아닐까? 잘못봤을지도 몰라, MRI찍으면 제대로 나올 테니까 그 때까지는 난 ‘R/O(rule out)’ breast cancer 인거야. 암이 아닐수도 있어.’라고 믿으며.

그렇게 며칠을 부정(denial)의 단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MRI PET-CT결과가 나왔다. 확실한 암이었고 게다가 겨드랑이 림프절, 쇄골하림프절, 심지어 내유림프절(internal mammary lymph node)까지 전이되어 있었다. 도대체 림프절 전이가 이렇게 많으면 몇기인거지? 다른 장기로까지 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MRI PET-CT 촬영이 끝나자 마자 영상의학과에서 서둘러 공식 판독을 해주었는데 잘못 봤을꺼야하면서 환자복을 입은 나는 병동 컴퓨터의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니 이제 더 이상 부정할 수도 없었고 내가 암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림프절 전이가 많으니 항암치료, 수술, 방사선치료 단 하나도 피할 수가 없었다. 하나쯤은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고스란히 3가지를 다 해야 되는구나.

이제 마지막으로 호르몬 수용체(Estrogen receptor, ER; Progesteron receptor, PR) HER2 수용체 결과만 나오면 모든 치료 방향이 결정되리라. ER/PR이 음성으로 나오고 HER2 1+가 나왔다. 정확한 HER-2의 결과를 위해 FISH 결과까지 기다리기로 했고, FISH결과 HER2도 음성이 나왔다. ER/PR이 음성이니 항호르몬제를 쓰지 않아도 되니 좋은건가?, HER2가 음성이니 Herceptin을 쓰지 않아도 되겠구나, HER2 양성이면 뇌전이가 잘 된다고 되어있는데 난 HER2 음성이면 뇌전이도 잘 안된다는건가? 그저 1년차 수준에서 알고 있는 유방암 상식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을 뿐이다. 모든 검사를 종합한 결과 나는 3기 유방암, 삼중음성타입으로 진단이 되었다. 수술없이 항암치료를 시작하였고, 정작 항암제는 몇분 만에 슉슉 다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유방암 수용체 검사의 의미, 그 정보들이 내 치료방침을 결정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삼중음성 유방암(triple negative breast cancer)라는 구분이 있다는 것도 잘 몰랐다. 집으로 돌아와 삼중음성 유방암에 대한 논문들을 찾아보기 전까지는 

집에 돌아와 삼중음성유방암에 대해 찾아보기 전까지는, 유방암을 진단받았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항암치료 받으면 많이 힘들거고, 수술 받으면 한 쪽 가슴이 없어지고, 방사선 치료 받으면 피부색이 변하고 기침이 좀 나겠지만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면 다시 건강해 질거라고만 믿었다. 집에 와서 논문을 찾아보면서 삼중음성 유방암이 다른 유방암보다 예후가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논문에 써있는 ‘aggressive behavior’, ‘poor prognosis’의 단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리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 때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의과대학을 다니며 퀴블러 로스(E.Kubler Ross)의 죽음의 5단계에 대해 배웠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경우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순서로 적응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이 순서와 각 단계별 특징을 틀리지 않게 외워 주관식 문제를 맞추는 것이 족보였다. 그렇지만 막상 내가 암환자가 되고 죽음이라는 상황에 직면해보니 시험공부를 하면서 순서를 틀리지 않게 외워야 했던 그 죽음의 5단계는 거짓이었다. 죽음의 위협은 그렇게 5가지 순서를 맞춰 일어나지 않았다. 각각의 단계를 특징짓는 모든 생각들이 한꺼번에 머리 속을 휘저어 놓았다. ‘이건 아니야의 부정, ‘왜 하필 나야?’의 분노, ‘하나님이 더 좋은 의사가 되라고 나에게 잠시 시련을 주신거야 다시 건강해진다면 훨씬 더 좋은 의사가 될거야의 타협, 26살의 결혼도 안한 젊은 여자의 마음속에 콕 박혀버린, 헤어나오기 힘든 우울감, ‘그래도 이제껏 살아온 내 삶에 후회는 없으니, 최선을 다해 치료를 받고 그 결과는 하늘의 뜻에 맡기자는 수용의 감정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수백 번씩 교차되었다.

모든 치료 과정을 마치고 난 지금에도, 내가 이 모든 상황을 잘 수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내가 혹시 암이 아니었던 건 아닐까?, 호르몬 수용체 검사가 틀린게 아닐까? 삼중음성 유방암이 아닌 건 아닐까? 하는 부정의 단계에서 머물 때도, 혼기가 꽉찬 친구들의 결혼식을 다녀오는 날에는 꼭꼭 감춰두었던 우울한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충격적인 뉴스를 장식하는 온갖 나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렇게 나쁜 사람도 병 안걸리고 잘 사는데 왜 하필 나냐는 분노감이 살아난다.

치료를 시작하던 초반에는 이런 생각의 회오리 속에서 혼자 잠 드는 게 두려워 밤이 깊도록,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을 때까지 온갖 드라마 채널을 돌려가며 폐인처럼 미국드라마, 일본드라마에 빠졌고, 친구와 밤을 새워 전화로 수다를 떨기도 했다. 낮에도 뭔가 생각하는게 두려워 그림, 꽃꽂이, 손바느질, 그리고 뜨개질에 빠져 지내야 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많은 생각을 잊게 해준다. 그래서 옛날 우리 여인들은 전쟁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호롱불 밑에서 조각보를 만들고, 직녀는 베를 짜며 1년에 단 한 번 뿐인 견우와의 만날 날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렇게라도 지금의 나처럼 조금이라도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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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1.

너 유방암이래

 

헤어진 연인을 아프지 않고 좋은 추억으로 회상하는 데에 1년이면 충분할까? 처음 유방암 진단받던 날을 슬프지 않게 과거의 일로 회상하는 데에는 1년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지금도 진단받기까지의 과정들이 생생하게 생각나고, 가끔 잠을 설치는 날에는 꿈속에서 유방암을 진단받고 치료받던 그 시간들이 되살아나 흠칫 놀란다. ‘잘 견디고 있다.’ ‘난 괜찮아라며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 결국 남에게 나를 보이기 위한 치기어린 자신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08 10, 내과 레지던트 1년차 생활이 이제 슬슬 손에 익어가고 병원 생활에도 자신감이 생기던 즈음이다. 어느 날 아침 속옷을 입다가 가슴을 스치는데 무언가 덩어리가 만져졌다. 메추리알 만한 크기에 통증도 없고 말랑말랑하며, 요리조리 움직이고 경계가 분명한 촉감이었다. 나에게도 섬유선종이 생겼구나.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설마 암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난 유방암의 가족력도 없고, 과거력도 없으며 유방암의 위험요소인 빠른 초경, 늦은 폐경, 경구 피임제 등등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담배는 커녕 술은 입에도 못대는 나에게 암이 생길거라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래도 근무 시간을 쪼개 초음파 검사를 받았고, 역시 초음파 검사에서도 양성으로 보인다는 소견이었다. 그래서 2달 후에 다시 검사를 받기로 했고 당분간 경과관찰 하기로 했다.

 

내 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도 모른 채 난 또다시 바쁜 1년차 레지던트의 삶으로 돌아갔고 3개월이 지난 2009 1월의 어느 날, 예전보다 훨씬 커져있는 덩어리를 발견하고 불안하기 시작했다. 12월에 했어야 할 검사를 아직도 안 했다는 것을 깨닫고 윗년차 선생님께 양해를 구한 다음 검사를 받으러 갔다. 촉감은 양성종양의 촉감인데, 크기가 커진다는 것이 불안했다. 초음파 검사에서는 여전히 양성으로 보이지만 크기가 너무 커져서 맘모톰이나 부분마취로는 절제가 힘들고 전신마취를 하여 유방부분절제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러니 그 전에 조직검사를 일단 해보자고 하셨다. 선생님은 암인거 같지는 않다며 애써 당혹감을 감추셨다. 나도 암은 아니라는데 가슴을 쓸어내리기는 커녕, 혼자 의국침대에 걸터앉아 내 몸에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진작에 알아채고 검사를 받았으면 이렇게까지 수술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동안 젊다고 자만하며 내 몸이 내는 소리에, 내 몸이 변화하는 모습에 귀 기울이지 않고, 눈여겨 봐주지 못했던 일들이 너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내 몸이, 내 가슴이 그렇게 안쓰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울고 있는데, 윗년차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검사 결과가 어떠냐고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암은 아닌거 같은데요, 일단 조직검사는 했어요말하고 나니 눈물이 나서 더 이상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수술해야 한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신 선생님이 내 방으로 날 찾아오셨고, 선뜻 병가를 내라고 여기저기에 전화를 하시고 내가 병가를 낼 수 있도록 나의 빈자리를 대신할 사람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차 레지던트 되기 한 달 앞두고 병가를 냈다. 그렇게 낸 병가의 시작이 이렇게 오래까지 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가슴에 뭔가 만져지는데 악성인거 같지는 않고 수술만하면 된데요라고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얘기하고 주섬주섬 의국의 짐을 챙겨 병원을 나섰다.

수술날짜를 잡고 오랜만에 집에 가서 이틀은 죽은 듯이 잠만 자고,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조직 슬라이드가 나올 때쯤 해서 병리과에 있는 친구에게 문자로 내 병원 등록번호를 알려주고 오늘쯤 슬라이드가 만들어져서 나올 거 같은데 혹시나 나왔으면 슬라이드 보고 나에게 연락해달라;고 부탁했다. 수술을 앞두고 입원 전날 오랜만에 엄마와 단둘이 집 근처에 있는 근사한 중식당에서 가서 막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병리과에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경희야, 슬라이드 봤는데, 양성이 아니구 악성이야.”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아무 느낌도 없었다. 그저 멍한 느낌만 있을 뿐. 정말 악성이 맞는건지, 윗년차 선생님이랑 같이 보고 확인한건지, Cell type이 어떤지, nuclear grade는 어떤지 아무것도 물어보지도 못한 채, 아무 생각없이 전화기만 들고 있었다. 그 다음에 친구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뭔가 힘내라는 얘기를 한 거 같은데 아무 기억이 없다. 하지만 양성이 아니고 악성이야.”라는 소리만 무한반복되어 내 머리속을 맴돌았다. 앞에 앉아 점심을 드시고 있는 엄마에게 얘기를 도저히 꺼낼 수가 없었다. 26살의 결혼도 안한 당신의 어여쁜 딸이 유방암을 진단받았다고 도저히 말씀드릴 수 없었다. 꾸역꾸역 점심을 먹다가 항암치료를 하고 수술을 하고 방사선 치료를 받을 내 모습이 떠오르자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엄마는 전화를 끊고 말없이 밥을 먹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 불길한 느낌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리고 내 눈물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이다. 살다보면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혼자서 알아차려지는 그러한 일들이 있다. 엄마도 그렇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유방의 혹은 양성이 아니고 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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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

 

고등학교 졸업-의과대학 입학-인턴-레지던트가 되기까지의 정규코스에서 단 한차례도 미끄러짐없이 의사가 되기 위해 달려온 그녀가 힘든 레지던트 1년차를 거의 마쳐갈 무렵, 유방암을 진단받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그녀를 위해

 

겉으로 드러나는 대화체는 아니지만, 이 책의 구성은 환자인 그녀와 의사인 내가 병에 대해 상의하고 견디며 나눈 대화를 정리한 셈이다. 조직검사를 한 후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지만 3기로 진단받고 망연자실해 하는 그녀. 그런 그녀를 앞에 두고 유방암의 특징, 치료 과정과 스케줄을 설명해야 하는 나. 수술 전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그녀의 마음 속에 회오리치고 있을 수많은 고민과 갈등, 그러나 짐짓 모른 척 항암제의 부작용과 독성을 설명하고 잘 견디라고 말하는 나. 이렇듯 지난 1년간 우리가 함께 병을 경험하고 치료과정을 논의했던 기록들을 가감없이 논픽션으로 기술하였다.

나는 이제 막 진단을 받은 그녀에게 처음부터 우리 치료과정을 잘 이겨내자. 일기처럼 지금의 치료과정을 잘 기록해서 너보다 더 나중에 유방암 치료를 받게 될 많은 환자들에게는 좋은 안내서가 될 수 있는 그런 책을 쓰자라고 말했다. 그때는 정말 책을 쓰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 암 진단으로 갑자기 인생의 시간표가 바뀐 그녀에게 병이 아닌 다른 뭔가로 관심을 돌려주고 싶어서 한 말이었다. ‘만 생각하지 말고 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뭔가 미션을 그녀에게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미션을 훌륭히 수행하였고 방사선 치료를 마친 작년 겨울부터 우리는 과연 책을 쓸 것인지, 어떻게 쓸 것인지 대화하였다. 그녀가 환자로서 경험한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면 그에 대해 의사인 내가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로 답을 하고, 겉으로는 그녀에게 해준 이야기들과 달리 내 마음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덧붙이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그렇게 환자의 시각과 의사의 시각이 교차되는 14가지 주제가 책을 구성하고 있다.

 

나를 위해

 

학부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다소 먼길을 돌아 지금의 의사생활을 하고 있는 나.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는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사회과학적 마인드로 환자와 의사, 병원, 의료시스템을 거시적으로 분석하고, 복잡해 보이는 현실을 멋지게 해석하여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은 소망이 남아있나 보다. 의료사회학을 공부하던 대학원 시절의 나는 환자의 시각에서 질병과 의료, 의사와 병원, 의료시스템을 바라보았다면, 지금의 나는 이제 완연한 의사의 시각으로 현실을 달리 보게 되었다. 환자와 의사의 시각은 각기 다르다. 이러한 차이가 일반 국민과 의료인, 환자와 의사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거나 간극을 좁히기가 쉽지 않다. 병에 대해, 치료에 대해 이해하기 보다 오해하기가 훨씬 쉽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유방암이라는 한 질환이 환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구체적으로 경험되는지, 나조차도 많이 잊게 된 환자의 시각에서 병을 서술하고 싶었다. 설령 그 사람이 의사라 하더라도 병을 진단받고 나면 역시 환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내 후배가 쓴 유방암 체험기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더불어 의사들에게도 환자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책을 통해 환자들도 의사들의 고민과 갈등, 진료의 원칙과 의사로서 가지게 될 수 밖에 없는 입장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심히 환자를 대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저 의사의 머리 속에 환자의 치료방침을 두고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다는 것,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가로막는 현실의 장벽들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하여 내가 의료사회학을 공부하며 의문을 품었던 고전적인 주제들, 병과 환자, 의료를 다소 외부자적 시각으로, 혹은 좀더 거시적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훈련을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또한 병만 치료하는게 아니라 환자를 치료해 한다는 종합적 시각을 강조하셨던 선배 의사선생님들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 물론 이 책을 통해 나의 이러한 고민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을지는 자신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병으로 인한 아픔과 갈등, 상처들을 숨기지 않고 공개적으로 투병한 그녀, 위험 요인이 많아 마음 속으로는 항시 재발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씩씩하고 희망차게 치료받는 모습을 공개한 그녀, 그녀의 이야기는 분명 많은 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감히 책 소개를 해보기로 했다. 한번 읽어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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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beyond breast cancer


수술과 항암, 방사선 요법을 다 마친 유방암 환자는 이제 6개월에서 1년에 한번씩 외래에서 재발 여부를 판정하는 검사를 하면서 추적관찰을 하게 된다. 유방암 세포에서 호르몬 수용체가 양성이었던 환자들은 추가로 항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한다. 항호르몬제를 복용하는는 기간은 환자가 폐경기인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복용하는 약제의 종류와 먹는 기간에 차이가 있다. 폐경 전이며 5, 폐경 후이면 10년까지 하루에 한알씩 항호르몬제를 먹는 기간이 더해지지만, 항호르몬제는 부작용이 심하지 않아 비교적 잘 견디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거의 없어서 환자들 스스로도 항암치료를 지속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항호르몬제를 꾸준히 복용하는 것은 재발 방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반드시 규칙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약제이다. (호르몬 수용체가 음성인 경우에는 항호르몬제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워 복용하지 않는다.)

 

힘든 치료를 마치고 나면 유방암 환자들은 마음 속에서 나는 암 환자다라는 생각을 가능한 머리 속에서 지우고 나는 다시 건강한 사람으로 돌아왔다라고 마음을 다잡고 새출발을 하고싶다.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들의 평균 연령이 40대 후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회적으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유방암을 진단받기 전에 회사생활을 하며 정규직으로 근무했던 사람도 있고, 파트 타임으로 가사일과 병행하여 일을 하는 사람도 있으며, 직접적으로 돈을 버는 일은 아니더라도 집안일과 아이들 교육 등 가족 안정성의 중심축을 이루는 실질적인 주요 멤버들이었다. 치료를 마치고 자신의 일터와 가정으로 돌아온 여성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몸과 예전같지 않음에 놀라기도, 실망하기도, 분노하기도 한다. 치료를 시작할 때만 해도 모두들 나를 극진히 아껴주고 챙겨주는 것 같았는데, 모두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치료의 후유증이 많이 남아있고 몸도 예전같지 않다. 수술한 자리에서 통증을 느껴질 때마다 재발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치료 중에는 가족만한 존재가 없다며 눈물나게 고마웠지만, 일상으로 돌아와서 만나는 가족은 다시 원수로 돌아서는 것 같다.

 

Guidelines for cancer survivor

 

인터넷으로 외국 서적을 검색하다 보면 ‘A Survivor's Guide for When Treatment Ends and the Rest of Your Life Begins’ 류의 책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다. 생존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을 위한 안내서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청이 높아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아직 우리 의료 현실에서는 생존자에 대한 개념이 적극적으로 수용되지 않고 있는 터라,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침서는 없고, 환우회나 동우회에서 환자들끼리 정보를 소통하는 정도로 자신이 개발한 노하우를 전달하며 끼리끼리 도움을 주고 받는 수준인 같다.

 

생존자(cancer survivor)라는 개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게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암생존자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미국 암학회에서는 과거에 암으로 치료받았지만 완치되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나 진단 일차 치료를 통해 암이 치료된 사람 뿐만 아니라 현재 암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환자, 완치 목적이 아니더라도 암에 대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을 모두 생존자의 범주 안에 넣고 있다. 이들 개념 정의에 따르면 말기 암환자로 판단되어 치료를 목적으로 항암 수술을 받지 않기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생존자라는 개념으로 포괄된다. 그만큼 인생에서 암을 진단받고 치료 과정을 겪는다는 것은 단지 병을 앓고 지나가는 것을 넘어선 실존적인 사건이다. 치료를 종결한 환자라도 심리적, 육체적, 사회적 변화를 경험하며 자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영향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체적 불편감의 강도가 약해지겠지만 말이다.

의학적으로는 완전히 나았다고 판정을 받은 사람도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을 겪었다는 자체가 충격이며 정신적 외상(trauma)으로 남아 정서적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생존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리적 스트레스 정도가 높고, 5 이상 재발하지 않고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도 암을 진단받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40%이상 심각한 심리적, 사회적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환자의 10%에서 주요우울증을 진단받게 되고 상당 수가 치료 전후로 적응장애(adjustment disorder) 경험하게 된다. 연구에서는 젊은 생존자들 가운데 20% 외상 스트레스장애로 진단받고 나머지의 45%-95% 가까운 환자들은 외상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까지는 아니지만 관련된 증상을 한가지 이상 가지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많은 연구들에서 생존자들은 다른 인구 집단에 비해 적극적으로 자살을 하고 싶다는 느끼는 비율이 높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생존자들은 아주 사소한 증상의 변화에도 암이 재발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평생 낫지 못할 거라는 생각, 아무런 예고없이 암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사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비단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다.

치료기간이 길거나 치료의 강도가 높을수록 환자의 이전 생활과 치료 후의 생활 사이의 단절이 심각한데, 예를 들면 치료 환자들은 상당 기간 동안 육체적, 정신적 피로함을 경험한다. 피로함(fatigue)이란 치료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특히 완치를 목적으로 광범한 범위를 절제한 수술 후에는 해당 장기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게 되기까지 주변 기관으로부터의 보조적인 지원을 받게 되고 이러한 보상 작용이 지속되는 만성적인 피로함을 느끼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매우 적극적인 재활 훈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의 경우 항암제의 영향이 뇌기능에 영향을 미쳐 ‘chemo brain’이라고도 정도로 신경세포의 피로함이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젊은 생존자들은 어느 정도 기간까지 아이를 가질 없는 경우도 있다.  

 

생존자들은 일상으로 완전히 복귀하고 싶어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정기적인 병원 방문이 예정되어 있고 적절한 모니터링을 받아야 한다. 가슴에 방사선 치료를 받은 유방암 환자들은 치료가 끝난 수개월에서 수년 내에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방사선 폐렴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마른 기침과 가끔씩 숨이 차면 빨리 병원에 가서 가슴 엑스레이를 찍고 스테로이드를 먹으며 새로운 부작용에 대한 치료를 재개해야 한다. 호르몬 수용체가 양성인 젊은 유방암 환자들은 정기적으로 체내 여성 호르몬 수치를 체크하여 몸을 폐경기 여성처럼 유지하는 것이 재발을 방지하는 것에 도움이 되므로 항호르몬제를 복용하게 되는데, 이를 복용하기 시작하면 한동안 안면홍조나 관절통 폐경기 증상을 겪게 된다. 그런 증상을 느낄 때마다 이들은 자신이 유방암 환자라는 사실을 잊을 없다. HER2 수용체 양성이거나 삼중음정유방암 환자가 두통을 느낄 뇌로 전이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한다면, 그걸 두고 의사는 환자분께서 너무 예민하신 같다 함부로 말해서는 안될 노릇이다. 이들 유형은 뇌로 전이되는 장기특이성을 갖고 있다는 연구가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치료를 무사히 마쳤는데도 건강염려증 환자가 되어 병원을 전전 긍긍하며 재발 위협에 대한 노예가 되어 수도 없는 것이고, 조기에 재발을 발견하면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충분히 다시 한번 병을 완치시킬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일상에 충실한다는 신념하에 정기적인 모니터링이나 몸의 변화를 무관심하게 방치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생존자들은 두가지 상황에서 밀고 당기기를 하며 이러한 갈등을 마음 속에 품은 살아가고 있다.

 

 

Return to society

 

생존자들은 치료 직장 복귀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2006 미국 암학회 조사에 의하면 치료를 마치고 직장에 복귀한 생존자 가운데 20% 환자들은 1년에서 5 사이에 자신 능력의 한계에 직면한다. 생존자 10 중에 1명은 노동력이 완전히 상실된다. 현재 아무런 증상과 장애가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고용주로부터 차별을 받을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승진 심사를 능력의 한계가 있고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의구심의 대상이 가능성이 높다. 치료 경력 때문에 건강 관련 보험을 들기도 어렵고 한번 치료를 받은 병원으로 계속 추적관찰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거주와 직장 이전 문제도 간단치 않다.

다른 암에 비해 유방암은 진단 직장 복귀율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북유럽 지방에서 조사된 유방암 환자들의 유방암 치료 1 직장 복귀율은 75-85% 것에 비해 스페인의 경우 직장 복귀율이 57% 보고되어 비슷한 질환, 비슷한 질병 중증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암환자에 대한 인식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있다. 2006 미국암학회 저널에서는 미국 유방암 환자들의 직장 복귀율에 대해 조사하였는데, 치료 . 직장생활을 하던 유방암 환자의 80% 직장에 복귀할 있었고 복귀할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중의 하나가 고용주의 인식으로, 고용주가 유방암 치료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경우 복귀에 어려움이 있고 고용 후에도 차별적 처우를 받는다고 인식되고 있다.

사회로의 복귀가 비단 직장으로의 복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엄마로서, 주부로서 다시 자리잡기, 동년배 친구집단의 일원으로서 어색하지 않게 자리매김하기 모든 복귀의 과정에 다른 이들의 시선이 자리잡고 있다.

 

의사로서는 나는 환자들, 그리고 생존자들에게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쓰기 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격려한다. 그렇지만 생존자들이 씩씩하게 재기에 성공할 있도록 따뜻한 사회적 시선과 제도가 마련되는 것이 절실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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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치료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왜 좋은 의사가 되지 못하는가

 

먹을 수 없는 그림의 떡만 많아진다

 

모든 학문이 그렇겠지만 종양학은 유독 발전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변화가 많은 것 같다. 분자유전학의 발전으로 실험 및 검사 기법이 고도화되고 이를 학문 발전의 원동력 삼아 엄청난 논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자연과학과 기초의학의 지식 및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지금 이 시간에도 수천종의 신약이 개발되고 있고 그 중 극소수의 약이 살아남아 환자 진료에 사용되는 과정을 밟을 수 있다. 초기 약 개발 및 실험비, 관련된 연구비 뿐만 아니라 개발된 약으로 진행하는 임상시험과 관련된 비용이나 홍보비 등 다양한 제반 비용 모두가 궁극적으로 약값에 포함될 것이므로, 환자 진료에 사용될 정도로 살아남는 신약은 엄청나게 고가의 약제로 탄생되지 않을 수 없다. 최근들어 종양학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규모의 3상 연구를 몇차례 진행하여 신약으로서의 효능과 효과에 대해 확정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는 좋은 약들이 많이 개발되었다. 다른 제반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쓰는게 좋은 약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정말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지가 모두에게 유용한 것은 아니다. 사보험으로 자기 진료수준이 결정되는 외국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나라도 국민건강보험에서 포괄하지 못하는 신약들은 결국 환자가 한달에 수백만원이 되는 약제 비용을 직접 지불하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

물론 이런 비용까지 모두 국가에게 지불하라고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에 백퍼센트 동의한다. 그러나 비용 효과를 고려하여 환자에게 매우 확실하게 도움이 되는 약제가 있다면, 국민건강보험으로 이를 커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암환자의 진료비 비용부담을 5%로 낮추는 것을 들어보자. 혜택의 범위를 확대하여 2만원 낼 것을 1만원 내는 것으로 진료를 경감시켜주는 것은 혜택의 양과 범위를 넓히는 데에는 도움이 되고 정부로서 생색내기에는 좋겠지만, 실재로 절박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구집단을 선정하고 그들을 타겟으로 하여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는 기회는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여전히 우리나라 대부분의 중산층은 신약을 써볼 기회를 갖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매체를 통해 신약 관련 정보들이 오인되는 경우도 많다. 아주 환상적인 효과를 갖는 신약이 개발된 것처럼 대중매체에서 홍보되지만 정작 기존 약제에 비해 생존률 향상의 정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약들도 꽤 많다. 기존의 약보다 1.5개월 생존기간을 연장시키는 것을 통계적으로 입증한 논문이 나오면, 종양학 의사들끼리는 괜찮은 결과가 나왔네. 효과가 좀 있나보지?’ 이 정도 생각하고 말 정도의 내용인데, 이것이 대중매체를 통해 어떻게 포장이 되었는지, 마치 이 약을 쓰면 안 나을 병도 낫고, 형편이 어려워서 쓰지 못하면 치료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여 아주 절망하는 환자들이 있다.

그래서 환자에게 신약을 한번 써보자고 권할 때 종양내과 의사의 머리와 마음 속에는 오만 생각이 지나가고 많은 판단을 하게 된다. 환자들이 어디선가 입수한 정보를 들고 와서 자신에게 이 약이 해당되는지를 문의하면 그의 행색을 살펴 지갑두께를 짐작해야 한다. 기대치가 얼마나 되는지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잘못 말하면 환자가 너무 절망하기 때문이다. 돈없어서 좋은 약도 못 써보고 나빠지는 거라는 생각, 신약을 썼다하면 자신의 병이 아주 많이 좋아질거라는 기대수준까지도 잘 파악해서 환자가 상처받지 않게, 그러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치료에 임할 수 있게 섬세한 눈치작전을 펼쳐 진료에 임해야 한다. 만약 신약의 존재 자체를 미리 설명해주지 않으면, 자신에게 왜 그러한 설명을 하지 않았느냐며, 자신에게 가능한 선택지를 의사가 미리 지레짐작으로 앗아가버린 것 아니냐는 항의를 강하게 할 것만 같은 환자들도 미리 분류해 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적절한 환자 진료를 위해 의사가 갖추어야 하는 덕목에는 실력과 심도깊은 지식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의료환경에서 제한된 조건 하에서 최선책은 못되더라도 2-3가지 종류의 다른 차선책까지 준비해 놓으며 진료에 임해야 하는 능력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단 환자를 나쁘게 한 다음에 좋은 약을 쓸 것

 

모든 신약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정말 획기적으로 좋은 약이 개발되어 기존의 치료법을 뒤집는 경우가 있다. ‘좋은 약’이란 대개 기존의 약보다 효능이 뛰어나거나 아니면 약의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는 경우로 구분될 수 있다. 그런 ‘좋은 약’들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까지는 시간적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약을 사용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해당 약제를 포함한 임상연구를 진행하거나 사용의 폭을 넓히거나 아니면 환자가 약에 대한 비용 부담을 전액 감당해야 한다. 더 이상 치료적 대안이 없어 의사가 마지막 카드처럼 ‘이 약이 보험은 안 되지만 한번 써보시겠어요?’라는 제안을 할 때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비보험 약제 사용 동의서에 서명을 한다.
나도 그런 설명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사실 그 약제가 탁월하게 좋은 약이었다면 왜 진작 제안하지 않았겠는가? 표준적인 치료에 별 효과가 없을 때, 큰 효과를 기대하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혹은 뭐라도 해야 하니까, 망설이다 제안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돈을 좀 더 내더라도, 치료만 될 수 있다면 어떤 희생이라도 각오한 사람들 아닌가, 좀 비싸면 어떤가,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게 확실한데 뭘 망설인단 말인가’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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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개발이 어렵다는 ‘좋은 약’이 막상 출시되어, 여러 논문에서 입증되고 여러 나라에서 해당 약제를 사용하면서 치료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보험이 안 되어서, 혹은 임의 비급여 논란이 무서워서 환자에게 해로울 게 뻔한 약제로 치료를 한다면, 이는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런 치료를 지금도 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예를 들면 면역력이 급격히 감소된 혈액 질환 환자들에서 진균 감염이 의심될 때 우리나라 보험에서 허가된 약은 암포테리신(amphotericin)이라는 항진균제인데, 나 개인적으로는 -아마 많은 혈액종양내과 의사 선생님들도 - 이 약을 매우 싫어한다. 이 약은 다른 항진균제에 비해 아스퍼질러스(Aspergillus)라는 균주를 더 커버한다는 장점이 있는데, 아스퍼질러스(Aspergillus)는 다른 진균들에 비해 치명적인 독성이 강해 환자의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어떤 환자가 항진균제를 써야 할 정도의 상황이라면 결국 아스퍼질러스 균주를 커버하는 것이 필요하고 결국 암포테리신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약을 며칠 쓰다보면 거의 100% 신장기능이 악화되고, 이 주사를 맞는 수시간 내내 환자가 투약 자체를 매우 힘들어 한다. 약을 맞는 것 자체가 중장기적으로 환자에게 주는 고통이 크기 때문에 환자를 지켜보는 의사도 매우 힘들다. 항진균제를 써야 할 정도의 컨디션이라면 환자들은 전반적으로 체력이 매우 약해져 있고, 못 먹고 기운없고 다른 항생제나 항바이러스제까지 같이 투여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거기다 덧붙여 암포테리신이라는 어마어마한 독성을 갖고 있는 약을 쓴다는 건 의사로서 정말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국제적인 감염학회에서는 이 암포테리신이라는 약제를 환자에게 더 이상 쓰지 말아야 하는 약으로, 심지어 환자에게 해로운 약으로 분류하였고, 이 약제의 독성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제형으로 변형하여 제조한 암포테리신-B(amphotericin B)나 보리코나졸(voricornazole)이라는 항진균제가 효과면이나 독성면에서 첫 번째로 선택할 수 있는 약임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모두 우리나라에서 처방 가능한 약제이다. 그러나 현재 이들 약제는 보험규정이 매우 까다로워 대개 암포테리신을 쓰다가 신장기능이 정상보다 몇 배 이상 나빠져야 2차 약제로 사용할 수 있고, 그나마 100% 환자가 비용부담을 해야 한다. 콩팥 수치가 나빠지기 전에 임의비급여로 쓸 경우 5년 내로 환자가 소송을 제기하면 그건 병원이 환급해줘야 할 수도 있다. 환자가 약값에 대한 비용부담을 하는 건 마찬가지더라도 임의비급여로 미리 쓰면 불볍진료가 되고 환자의 콩팥기능을 나쁘게 한 다음에 쓰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실정이다. 이런 사실을 환자들에게 설명하면 환자나 가족들은 통탄할 노릇이다. 다들 어이없어 하면서도 결국 치료를 하는 주치의에게 자신의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 이렇게 환자 몸을 나쁘게 한 다음에 더 좋은 약으로 치료하는 것은 무슨 경우란 말인가
!
비단 이 약제 하나만이 아니다. 경합하는 약 중에 성적이 조금 낫기 때문에 써볼 수 있다는 차원을 넘어, 정말 ‘좋은 약’들이 있다. 그런 약을 다 쓰게 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보건의료자원에 대한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별로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다만 사람이 살고 죽을 수 있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경제학적 관점을 넘어 고려해야 할 약제들이 몇 가지 있으며, 이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사용을 허가해 주어야 한다. 굳이 다 보험으로 처리해 달라고까지 요구하지는 않겠다. 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약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에 동의하여 환자가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하면 쓸 수는 있게 해줘야 하지 않는가!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의사의 전문성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왜 이렇게까지 의사의 결정이 존중되지 못하고 의사의 전문성이 인정받지 못하는가? 전문가로서의 의사의 발언이 존중받지 못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있는 것인가? 의사가 뭔가를 주장할 때 이를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더 이상 의사는 사람들의 일상공간에서 만나기 힘든 존재도 아니고,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 사방팔방에 편의점보다 많은 게 병의원인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의사의 취약점이 쉽게 노출되고 단점이 인구에 회자되기도 쉽다. 의사 집단의 자정능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누군가 이상한 진료를 해도, 적절한 기준에 맞지 않는 검사나 치료를 해도, 의사들 간에 이를 논의하고 비판하고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슬며시 피해가는 경향이 있다. 훗날 별 탈 없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대처한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는 방식이다. 정녕 한 직업진단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쉽게 형성되는 게 아닌가 보다.

얼마 전 병원에서 특정 약품을 임의비급여로 사용하는 일을 막기 위해, 미리 사전신청서를 작성하여 심평원에 요청해 100% 환자 부담으로 약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기 위한 서류를 준비하였다. 보험심사과의 요청으로 몇 번이나 서류를 다시 준비하고, 다른 과 교수님들과 심사위원들께 이런 약제를 써야하는 상황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설명하는 기회도 가졌다. 솔직히 그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서류작업도 익숙지 않고 귀찮아서, 그 약을 차라리 안 쓰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아쉬울 것 없다, 보험도 안 되는 약인데 안 쓰면 그만이지…. 비싼 약을 써서 환자가 좋아져 퇴원할 때는 고맙다며 인사하지만 한 5년쯤 있다가 과잉치료라고 소송을 걸면, 그 환자를 치료한 의사는 더 이상 환자를 위해 약제나 더 좋은 치료를 고민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잘 해줘도 돈 많이 나오면 나중에 고소할 텐데 뭐….
엄청나게 다양한 신약들은 쏟아지고 있는데, 새로 나온 약을 다 쓰겠다고 나서면 보험재정이나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건 살고 죽는 약들이다. 효과가 조금 더 나은 그런 약이 아니라 생존에 절실한 약, 그런 약들은 의사의 판단과 전문성을 인정해서 요청을 받아들여주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엉뚱한 약이나 검사에 대해서는 보험 인정을 해주면서, 정작 필요한 검사와 약들을 비용부담을 이유로 사용을 허가하지 않는 걸 보면, 보험 재정에 대해서도 논의의 여지는 분명히 있다.

환자보기와 논문쓰기는 제로섬 게임인가

암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는 개업의로 일하기 보다는 2차 병원 이상의 큰 규모의 병원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큰 병원에서는 시대적 대세가 된 ‘SCI 등재 저널에 논문내기가 의사들에게 중요한 과제로 부여된다. 비단 종양학 뿐만 아니라 웬만한 대학병원의 웬만한 과에서는 이제 SCI 합산 점수, 논문 편수 이런 양적인 데이터가 그 과의 실력 및 실적, 해당 개인의 실력 및 실적으로 대치되고 있고, 승진과 보너스 등의 인센티브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대다수의 의사들은 겉으로 차마 드러내지는 않아도, 논문 압박의 부담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소박한 관점에서의 논문쓰기란 일기와 같아서 꼭 대단한 사건이 없더라도 매일 꼬박꼬박 일기를 쓰듯이 논문을 쓰는 것이다. 놀지 않고 열심히 연구했다는 증거도 되고, 자신에게 심각한 결격 사유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환자를 열심히 봤다는 사실은 객관적 기준으로 평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논문이 훨씬 객관적인 평가기준으로 인정되기 좋다. 의과 대학에서 논문으로 교수임용 및 승진 기준을 강화한 것은 불과 3년을 전후하여 생긴 새로운 트렌드이고, 그전까지는 의사들 사이의 알음알음으로, 핵심 멤버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자기 사람을 선발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 선발 관행에 비해 논문의 양과 질을 임용 및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훨씬 객관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학맥과 인맥이 인재등용의 보이지 않는 카르텔을 형성하여 패거리 문화를 공고히 하는 것보다는, 다수에게, 누구나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기준으로 논문업적을 제시하게 하여 공정하게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내 생활을 돌아보면 논문을 쓰거나 자료 및 아이디어를 정리할 시간이 너무나 없다. 내 능력의 탓도 있겠지만, 환자를 보면서 이상하거나 궁금한 것, 뭔가 환자를 위해 새로운 대안이 필요할 때 폭넓게 논문 및 자료를 찾고 이론적으로 제안된 대답들이 과연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한지, 우리 병원에서 시행해 볼 수는 있는지, 환자에게 경제적으로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이런 것들을 알아보고 확인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드문 질환의 진단 및 치료, 치료에 반응이 없는 환자에 대한 접근, 정확한 진단이 되지 않은 채 나빠져 가는 환자에 대한 추가적인 진단 등의 난국에 봉착하면 마음이 활활 타오르면서 자료를 찾는다. 과연 이론적으로, 혹은 논문에서 제시한 자료들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이용 가능한 자료일까, 자신없어 하면서….
아침 회진을 바람처럼 돌고 지나가 버린 후에 의료진의 결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 환자와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찬찬히 설명해 주어야 할 때, 환자 상태가 좋지 않은데 그동안 병의 경과와 치료경력을 미처 꼼꼼하게 파악하지 못한 주치의의 어설픈 설명에 화를 내며더 높은 의사의 설명을 듣겠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 여기저기 병동에 흩어져 있는 주치의들과 환자의 치료계획에 대해 상의하고 때론 그들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느라 공부해야 할 때, 환자를 특별히 부탁해야 할 일이 있을 때나 타과 의사들과 논의하고 부탁해야 할 때, 협진 보러 갔다가 환자와 보호자가 설명을 요구하며 붙잡을 때, 응급실에서 처음 본 보호자가 나를 위협하며 불만을 토로할 때, 나의 시간은 참으로 부질없이, 순식간에 흘러가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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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또 하루를 버렸구나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이렇게 바쁜 임상 현장에서 많이 경험하고 많이 고민하고 많이 공부하는 것이 장차 내가 평생 살아가야 할 이 분야에서 기초를 튼튼히 닦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대충할 때나에게 시간이 허락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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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보는 시간을 줄이면, 회진을 안 돌면, 환자에게 자세한 설명을 안 하면, 그제야 비로소 시간이 생긴다. 자기를 위한 시간을 만드는 것도 요령이고 실력이라고들 한다. 오후 회진을 안 돌거나 대충 일하면 나를 위한 뭔가를 조금씩 해낼 수 있다. 환자를 보며 허덕이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논문 좀 썼냐?”는 질문을 하기에좀 바빠서…”라고 대답했다가너 그렇게 논문 안 쓸 거면 나가서 환자나 봐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아니, 나가서 환자나 봐!!!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
레지던트 3, 4년차부터 병동에서 환자를 보는 데 시간을 쓰는 것보다 데이터를 입력하고 SPSS를 돌리며 논문을 쓰고 subspecialty를 정하기 전부터 외국 저널에 좋은 논문을 내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도 높아졌다. 내가 호감을 갖는 모 주니어 선생님께선생님, 그동안 논문 많이 쓰셨어요?” 했더니쓰레기 같은 논문 8개 써서 승진할 수 있게 되었어요라며 시니컬하게 쓴 웃음을 보낸다. 어쩌면 진짜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쓰레기를 재생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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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학을 했던 가락이 있어서 논문을 찾고 거기서 아이디어를 내보고 흉내도 내면서 논문 쓰는 것이 그렇게 괴롭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정작 환자 진료와 논문쓰기의 시간이 충돌할 때는 논문이나 자료로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만약 내 실력이 여기까지고 더 이상 환자보기와 논문쓰기의 양팔 저울에서 균형을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된다면, 난 아쉬울 것 없이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 있는 개인이 되지 못한 채 낙오하겠지…. 하지만환자만보다 보면 분명히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아마도, 어려운 케이스에 도전하고 다년간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자료를 정리하면서 논문을 쓰는 학문적 유희를 그리워할 것이다. ‘제로썸 게임이 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왜 나는 환자에게 듣기 좋은 말을 잘 못해주는가?

원발 장기를 넘어 다른 장기로 암이 진행된 경우를 4기 암이라고 한다. 4기가 말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4기 암환자들은 치료를 하더라도 완치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일정 기간 동안 병이 조절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상태가 나빠진다.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등의 방법을 더 이상 시도하기 어려울 때, 막힌 곳에 스텐트를 넣고 관을 넣어 배액하고, 뭔가 환자를 힘들게 하는 상황을 조절하기 위해 시술을 해 보아도 통증이나 피로, 호흡곤란, 식욕부진 등의 증상이 조절되지 않을 때, 병원과 의사가 환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때가 있다. 이미 환자와 보호자는 많은 고통으로 지쳐 있다. 거기에 대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더 이상 해볼 수 있는 게 없습니다에 불과할 때, 의사로서 무기력하고 힘들다. 그런 환자들이 의사를 원망하고 떠나도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무슨 주사를 한두 번 맞고 수백만원을 냈다는 둥, 어디 가서 뭘 해보면 효과가 있다고 하니 거기로 가보겠다는 둥의 말을 할 때 차마 나는 그들에게 별 말을 못하겠다. ‘내가 뭘 해주는 게 있어야 이들을 막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자조하면서….

명확한 건 그들이 잡는 지푸라기는 참 비싸다는 점이다. 비싼 지푸라기의 효과가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아도 그들은 지푸라기를 던진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절박한 그들을 위해 뭔가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푸라기를 던지는 사람 중에는 의사도 있고 한의사도 있다. 둘 다 아닌 무자격자도 있다. 그들은 그런 취지가 아니었고, 환자가 원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환자가 원해 죽기 전에 수백만원짜리 굿을 했다 해도 내가 뭐라 말하겠는가. 나는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그래도 뭔가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암 환자 한 명이 죽기 전에 지출하는 의료비는 얼마나 될까? 평생 냈다는 건강보험료와, 진단과 검사, 수술과 항암, 방사선치료 등 공적영역 의료에 지출한 진료비의 비중과 건강보조식품, 각종 보완대체요법, 암이나 각종 질병과 연관된 보험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지출하는 돈 등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건강추구행위에 지출한 비용을 모두 합치면 얼마나 될까? 어느 쪽의 비용이 더 많이 지출되고 있을까? 지출한 비용만큼 결과는 만족할 만한가? 사실 이런 분야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는 확실하지 않다. 암보험에 가입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치료 성적이나 생존율에 차이가 있을까? 각종 건강보조식품의 복용은 증상 완화 및 삶의 질 향상에 얼마만큼의 도움이 되는가? 그 모든 것들의 비용효과(cost-to-benefit)를 정확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내가 3년차 때 일이다. 4기 대장암으로 2주마다 한 번씩, 34일 동안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는 환자가 있었는데, 이번 입원 당시 Hb 9.0g/dl으로 경미한 빈혈이 있었다. 빈혈의 원인은 anemia of chronic disease, 즉 암 등의 만성질환이 있을 때 동반되는 빈혈이었고, 굳이 수혈을 할 필요는 없었다. 환자의 전신 상태를 고려할 때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target Hb 10g/dl 정도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그리고 그것이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에), 난 수혈보다는 적혈구 생성촉진인자(erythropoietin)를 주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처방을 보니 간헐적으로 이 주사를 맞고 있었기 때문에 별 고민 없이 처방을 했다.

그런데 퇴원 당일 환자가 병동 간호사실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화를 내고 있었다. 이유를 알아보니, 내가 처방한 적혈구 생성촉진인자가 보험이 안 되서 평소보다 10만원 정도를 더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기가 맞겠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보험도 안 되는 약을 처방해서 돈 벌려고 하는 거냐며 화를 내는 중이었다. 나는 Hb 10.0g/dl 미만이면 보험이 되는 줄 알았는데, 이 환자가 최근에 수혈을 하고 나서 한 번 12.0g/dl으로 체크된 적이 있었고, 중간에 12.0g/dl이 넘으면 보험이 안 된다는 조항이 숨어 있었다. 환자 말대로 비보험 약제를 처방한 꼴이 되었다. 나는 좀 억울했지만, 환자 입장에서도 억울하겠다 싶었다.

문득 내 시야에 그의 진료비 영수증이 들어왔다. 23만원의 진료비를 지불하게 되어 있었다(본인 부담금만). 항암제 비용뿐만 아니라 23일 동안 문제없이 항암제가 투여될 수 있게 간호사들이 라운딩 돌고, 입맛 없다고 해서 영양제도 주고, 진통제 등 각종 약도 주고 2주간 집에서 먹을 약도 처방해 주고, 34일 동안 잠도 자고 밥도 먹었는데 23만원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나 때문에 더 낸 돈을 빼면 평소에는 13만원 정도를 내고 나간 모양이다.

암이라는 게 하루 이틀 치료가 아니니 돈 십만원이 작은 돈은 아니겠지만, 하루 만원 하는 병실료와 식대도 참 싸지만, 나머지 의사의 진료와 간호사의 돌봄, 병원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가치도 참 싸게 매겨져 있다는 씁쓸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퇴원하는 그의 가방 속에는 상어연골을 포함한 온갖 종류의 비타민, 건강보조식품, 홍삼엑기스 등이 가득 들어 있는 걸 보니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환자들은 비싼 지푸라기라도 잡으며 의사에게 꼭 듣고 싶어하는 말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의사는 의과대학 학생으로 교육받을 때부터, 그리고 의사생활을 하는 내내, 단지 법적으로 문제가 되니까, 보험에 걸리니까 하는 등등의 이유를 다 떠나서 의학적으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진료할 것을 평생 트레이닝 받는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진료를 해서는 안되고, 수많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제시된 가이드라인에 입각한 치료를 해야한다. 한두 케이스에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자신만의 경험을 근거삼아 이를 환자 진료의 원칙으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환자들이 몸에 좋다고 추천받았다며 싸들고 온 건강보조식품에 대해 쉽게 추천하지 못한다. 그렇게 입증되지 않은 약제를 복용하던 일부는 급성간부전으로 병과 관계없이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런 일이 그리 드물지 않다는 사실을 환자들은 잘 모른다.

Compassion fatigue

환자를 보는 매 순간 의사는 우리나라의 의료제도와 의료환경이라는 거대 변수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미시적 존재인 개인으로서의 의사와 환자, 거시적 존재인 국가와 보험제도 등의 두 존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결단하며 환자를 마주한다. 최선을 다해도 다한만큼 좋아지지 않은 암환자들, 환자도 힘들고 가족도 힘들고 그걸 지켜보는 의사도 힘들다. Compassion fatigue라는 말은 일반적으로동정심 피로증이라 번역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이해하게 될 때 자발적으로 도덕적 감정이 분출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됨에 따라 이러한 감정이 소모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상에 대한 공감의 능력과 열정이 조금씩 깎여나가고 약화되는 것을 지칭한다. 대형 재난을 당한 사람 등을 위하여 돈과 동정심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데 따른 심리적 탈진 상태를 일컫기도 한다.
동정심 피로증의 증상은 무기력해지고, 삶의 즐거움을 점점 못 느끼게 되며,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불안감 및 부정적 태도를 갖게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나 또한 의사가 되고 나서 반복적으로 경험했던 익숙한 느낌인 것 같다. 힘들고 병약한 환자들을 보며, 나는 의사로서 뭔가를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고, 시스템에 문제가 있거나 혹은 내 능력이 부족하여 문제 상황이 해결되지 않은 채 반복되는 와중에 내 마음의 열정과 성의가 사그라져 버릴 때, 그래서 우리가 흔히 burn out 되어 버렸다고 말하는 바로 그런 증상인 것 같다. 한 명의 환자를 볼 때는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를 위해 내가 뭔가 최선을 다해서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느끼지만, 그런 환자의 숫자가 급속히 증가하게 되면 점점 무덤덤해지고 가슴아파하지 않게 되는 것이리라. 내가 burn out 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주위 동료가 그런 느낌으로 의욕을 잃고 힘들어 할 때, 그런 소모적이고 허무한 감정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긍정의 마인드를 어디서부터 다시 얻을 수 있을까
?
Compassion fatigue
는 의료직 종사자, 특히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에게 자주 생기는 증상이라고 하는데, 이는 환자에게 매우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환자 한 명 한 명을 가족처럼 아끼고 돌본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늘 그런 식으로 진료하다간 정말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해버릴 것이다. 반면 자신의 감정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너무 거리를 두면 환자와 너무 차갑고 딱딱한 관계만이 형성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양자간 적절한 관계유지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적당한 거리두기일지 모르겠다. 그렇게 거리를 두고 환자를 보면, 환자들은 의사들을 정말 썰렁한 존재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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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2009 내가 쓴 책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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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올해 들어 가끔 내가 암을 진단받는 꿈을 꾼다. 수술을 할 수 없는 4기 암으로. 왼쪽 쇄골하 림프절 검사에서 양성이 나온 위암으로 수술의 의미가 없는 경우, 직장암으로 당장의 수술하기에는 주위 림프절이 많아 일단 수술전 항암치료를 먼저 해보고 반응을 평가하기로 한 경우, 두세번 정도 더 있었는데 무슨 종류의 암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난다. 꿈의 패턴이 거의 비슷해서 기억나는 건, 아프게 조직검사를 한 다음, 결과가 양성인지 아닌지, 수술을 할 수 있는 단계인지 아닌지 너무너무 조바심내며 결과를 기다리다가, 결국 양상으로 판정되어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난다. 내가 평소에 환자에게 여러번 설명했던 항암제를 맞기 전, 꿈속에서도 너무 두렵고 남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이를 악 물고 참은 탓에 깨어나면 진짜 턱 관절이 아플 정도였다. 슬기가 걱정되고, 내 인생이 억울해서 속으로 겉으로 많이 운 탓인지 눈두덩이도 아프고 가슴속이 먹먹해질 정도라, 깨어나면 가슴이 아픈걸 물을 마시며 달래야했다.

사실 그런 꿈을 꾸기 전날, 환자 진료를 하다가 환자 상태가 너무 나쁘게 발견된다거나 환자가 너무 젊을 때, 환자가 증상도 없이 건강검진 하다가 뇌까지 전이가 된 상태에서 발견되었을 때, 나도 속상해서 어쩔 줄 몰라하던 감정들이 남아있다가 꿈으로 나타난게 아닌가 싶다. 그런 꿈을 꾸고 난 다음날은 환자들을 대하기가 좀더 조심스럽다. 아직도 그들은 힘든 마음으로 고생하고 있을테니 내가 상처를 덧내는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 싶어서.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들은 사실 마음이 그리 힘들지는 않다. 병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삶의 어떤 이벤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병을 받아들이고 낫지 않는 병을 어디까지 끌고 갈지 다 아시는 것 같다.  

숨 차서 힘드시죠?’ ‘병이 그런건데 뭐 어쩌겠어. 원래 담배 많이 피워서 숨이 좀 찼어. 참을만해혹은 복수 때문에 식사 많이 하시기 힘드시죠?’ ‘늙은이가 많이 먹으면 못써. 그냥 조금씩 소식해야지. 다 이치에 맞게 살라는 하늘의 뜻이야혹은 밤에 잠이 잘 안오세요? 잠을 잘 주무셔야 몸 컨디션이 그럭저럭 유지되실 텐데요.’ ‘병원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지내는데 뭐 잠이 오겄어? 빨리 집으로 가는게 낫지. 퇴원시켜줘혹은 병이 쉽게 낫지 않네요. 어떻게하죠?’ ‘나 자식들 다 키워서 시집장가 다 보냈어. 죽어도 되. 그냥 고통만 없었으면 좋겠어. 할일 다 했으니 저승사자가 데려갈 날만 기다리고 있응게 걱정하지마. 괜찮아이 정도 대화가 오가면 내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인지, 환자가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인지 잘 모를 지경이다. 현명한 노인들이 많다. 삶에 집착하지 않고 자기 삶을 정리한다. 끝까지 항암치료를 받겠다고 우기는 분들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대개 의식이 명료한 노인들은 자기가 치료를 종료할 시점을 아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내 또래의 젊은 암환자와 보호자를 대하기는 솔직히 힘들다. 환자도 보호자도 내 또래이니, 말 한마디도 조심해서 던져야 한다. 자칫하다간 나에게 자신의 분노를 투영(projection)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또래니까 말이다.

이렇게 자꾸 반복적으로 경기를 하시는 걸 보니, 의식이 갑자기 나빠지면서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위급상황이 올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뇌전이 상태가 심해서 심폐소생술의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오늘밤이 고비가 될 것 같네요  우리 남편, 너무 잘 나가던 사람이었어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니까요.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왜 내 남편만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나요. 제발 남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잘 좀 봐주세요라고 울부짖는 부인. 그 원통함에 내가 뭐라 드릴 말씀은 없으나 계속 울면서 억울해 하는 것에도 대책이 없다. ‘저 남이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진료하는 거 아니라니까요!’라는 말이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기도 하지만 꾹 참는다. ‘우리 환자분은 이제 더 이상 항암치료를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어요. 그나마 남은 시간들을 의도치않게 단축시켜보리는 부작용이 예상되니 이제 항암치료는 하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직 애들이 초등학교에 입학도 안했는데, 애들 엄마 병이 나빠지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지켜보고만 있으라구요? 애들은 엄마없이 어떻게 지내라구요?’

 

병으로 가족을 잃는 슬픔에 대해 뭐라 긴 말이 필요하겠는가! 다만 죽음이 예상되면 난 환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하는 편이다. 환자는 그 나이가 많건 적건, 죽기 전에 자신이 정리하고 싶은 것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빚, 남에게 진 신세, 가족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 꼭 보고 싶은 사람. 그런 마음 속 깊이 숨겨진 바램을 이루고 원망을 없애서 마음을 가볍게 해 주는 일, 죽어도 원이 없게 해주는 일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는 이 환자는 말기암환자이고 회생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환자도, 정작 환자 자신은 자신이 결코 죽을 거라는 생각을 잘 안한다고 한다. 어떻게든 좋아질거라고, 이번 고비만 넘기면 좋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나이가 젊을 수록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지만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기본적인 생체 징후들이 흔들리는 경우, 혹은 금방 나빠질 것이라고 예상되는 순간들이 온다. 의사는 환자의 임종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환자와 가족들은 전혀 그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하면,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생긴다. 임종이 예상되는 경우 의사는 과도한 검사나 치료가 환자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데, 환자와 가족들이 의사의 그런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왜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치료해주지 않느냐며 원망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난 현재 환자의 상태에 대한 인식을 가족들과 공유하고 어떤 시점부터는 적극적인 치료보다는 임종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명확히 말해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환자도 지금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돌이켜 볼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대부분의 가족들은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직접 환자에게 하느냐며 반대한다. 가족들이 반대하면 나도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는다. 삶과 죽음이라는 엄청난 주제에서는 의사인 내가 생각하는 것이 틀릴 수도 있으므로.

그렇지만 정말 환자가 가족들이 바라는 것처럼 죽음을 예상하지 못한 채, 죽음을 전혀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하는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한번도 확인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결국 환자 자신이 아닌 가족들의 의견인 경우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나도 지금 내 눈앞에서 말기 증상으로 힘들어하는 환자에게 당신은 회생하기 어렵습니다. 돌아가실 가능성이 많으니 준비하실 일이 있으면 미리 준비하십시오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말 환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임종에 대한 준비는 별로 불편한 증상이 없을 때, 환자의 건강 상태가 나쁘지 않을 때, 의식이 명료하고 판단력이 명확할 때, 자신을 정리하고 필요하면 가족들과도 상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임종을 어떻게 맞이할 것이냐를 준비하는 것이 치료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 는 않는다. 의사는 현대 의학의 범위 안에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치료의 가능성이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환자는 체력을 유지하며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야겠다는 의지로 치료를 견뎌야 한다. 그렇게 열심히 치료받는 과정과 함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도 조금씩 준비해야 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르는 나의 남은 인생을 더 잘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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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2009 내가 쓴 책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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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함은 당연한 감정

 

한국 유방암의 특징 중의 하나가 유방암 발생 나이가 서양에 비해 10년 이상 젊다는 것이다. 아직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여성의 결혼 연령이 늦춰지고 출산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차적으로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초래되어 그렇다는 가설이나 서구의 영향으로 인한 식생활의 변화와 생활 양식의 변화 때문이라는 가설도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른다.

젊은 유방암 환자가 많다 보니 자녀들이 중고등학교 재학중인 경우가 가장 많고 유치원, 초등학교에 다시는 아이들이 있는 엄마들도 많다. 엄마 유방암 환자들은 자신이 유방암이라는 것에 놀랄 겨를도 없이 자식들 걱정부터 한다. 아이가 고3인데 시험기간이라며 항암치료 날짜를 늦춰달라고 하는 엄마도 있고, 치료 중인 자신의 모습을 아이들이 보면 충격을 받을 테니 계속 입원해 있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엄마들도 있다.

정상적인 감정이라면 누구나 암을 진단받고 우울하고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 수 밖에 없다. 나을 수 있을까? 치료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을까? 내가 아픈 동안에 내 아이들과 남편은 누가 돌봐줄까?: 돈은 많이 들지 않을까? 어떤 의사에게 치료를 받아야 좋을까? 도대체 이런 병이 왜 나한테 생긴거지? 암은 치료해도 재발될 수 있다고 하던데, 나도 또 재발하면 어떻게 하지? 처음 암을 진단받으면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머리와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치료방침을 결정하고 일정한 주기로 치료가 시작되어도 한동안은 자기에게 암이라는 병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그러므로 암을 진단받은 환자에서 우울함과 정서불안, 적응장애 등의 정신적 불안함이 찾아오는 것은 어쩌면 존재적 상황 변화에 따른 당연한 감정의 반응일 수 있겠다.

그동안 남편이랑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그것 때문에 후회가 심할 수도, 혹은 반대로 남편을 원망하는 환자들도 있다. 자신에게 생기는 않좋은 일들을 열거하며 자신의 비극적인 인생을 토로한다면 같이 슬퍼하고 이해해 주고 싶다. 비록 그녀의 푸념이 치료에는 전혀 도움이 안되겠지만 최소한 한번은 환자에게도 암환자로 진입하는 통과의례가 필요하니까.

진단과 치료 초반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힘을 합쳐 나를 위해 많은 일들을 분담하고 나는 치료에만 전념하라는 식으로 지극히 챙겨주는 것 같지만, 막상 치료가 수개월째 접어들면서 환자인 나는 점점 더 힘든 과정으로 접어들고 있고 하루하루 고통과 싸우는 것이 점점 힘들어져 가고 있는데 오히려 가족들은 이런 나의 상황을 망각하기 시작한다. 내 모습이 겉으로 크게 달라진게 없으니 예전처럼 엄마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줄 것을 요청하는 통에 속상하고 섭섭하기 짝이 없다. 유방암 수술을 한 쪽의 팔은 자주 쓰면 붓기가 심해지는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설거지 한번 도와주지 않는 남편, 아침마다 늦잠자는 아이들, 학교에 지각하지 않게 깨우는 일도 힘이 들고 짜증난다. 처음에는 병원에도 데려다 주고 치료 부작용이 나타나지는 않는지 관심을 기울여주던 남편은 이제 병원에 데려다 주지도 않고 오늘이 항암치료 몇일째인지, 몇 주기 치료를 마치고 있는지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길게 투병중인 나를 귀찮아하는 것 같은 인상마저 풍긴다.  

 

유방암의 항암치료로 쓰이는 약제 자체가 뇌신경세포를 억제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우울감이나 정서적으로 기분이 나쁜 일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 신경 기능의 변화나 항암제의 울렁거림으로 인해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낮에 항상 피곤하기 때문에도 기이 썩 좋지 않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기운도 없는데 유쾌할 턱이 있겠는가! 유방암 환자들이 치료중에 우울한 감정이 들고 이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경제적으로 넉넉치 않은 살림이라 환자 자신도 가계에 소득이 될만한 일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치료가 시작됨과 동시에 직장도 그만두고 소득도 없어지는 반면 치료비는 계속 나가면서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생활이 시작된다. 치료 중간에 발생하는 소소한 합병증으로 예상보다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아지거나 응급실에 가서 한바탕 고생을 하고 나면 치료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정서적으로 힘들고 외롭고 우울한데 이런 감정들을 제대로 발산하거나 완화시켜주는 탈출구가 없을 때 우울감은 극대화되고 심각해질 수 있다. 병이 생긴다는 것 혹은 암을 진단받는다는 것은 병의 정도를 넘어 그 자체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약화시키고 힘들게 만든다.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조심스럽게 얽어 매어 살아가던 취약한 일상이 병에 걸림으로 인해 가족과 사회의 질서가 단숨에 깨져버리고 개인의 존재적 허약감이 드러나게 되는 잔혹한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적당히 잘 포장하고 살았던 나의 일상이 산산히 부서지고 나를 지탱해 온 신념들도 같이 무너진다. 그래서 암을 진단받기 전에는 그럭저럭 어려움이 있어도 현실을 유지하며 살 수 있었데 이제 더 이상 이들을 유지할만한 에너지가 없는 상태에서 혼란에 빠지게 되니 정서적으로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환자의 우울함이 포착되면 충분히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 환자의 우울함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회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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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아직 적극적으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영역, 그러나 점차 변화의 노력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영역이 바로 투병중인 암환자에 대한 정서적 지원과 지지 프로그램이다. 암환자 당사자 뿐만 아니라 환자를 둘러싼 가족 모두를 치료의 동반자, 환자에 대한 지지자로 만들기 위해 집단 치료의 개념으로 환자의 정서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암을 진단받고 시간의 변화에 따른 환자의 심리적 스트레스의 변화를 일괄적으로 추적관찰하다가  환자의 정서적 스트레스가 극대화되었을 때 적절한 정서적 지원, 그것이 정신과 진료일 수도 있고, 영적인 영역에서 신부나 목사, 스님 등과의 면담에서 종교적 지원을 받는 것일 수도 있다. 경제적 어려움이 악화된다면 사회복지 담당자와 연결해서 가능한 지원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노력을 하기도 한다. 생존기간이 긴 유방암은 그만큼 투병기간도 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를 부정적으로 보면 살아있으되 여려가지 고통에 노출되는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더욱 적극적인 생존자 정서적 지원 프로그램이 모색되어야 한다.

 

우울함으로 힘들어하는 환자에게 혹은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 가장 쉽게 권할 수 있는 것은 정기적인 운동을 해보라는 것이다. 서서히 근육을 강화시킬 수 있는 피트니스를 해 보는 것도 괜찮고, 요가나 가벼운 조깅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스트레칭도 제대로 배워서 매일 30분 이상 실천해 본다면 그것도 큰 운동이다. 치료 중에 땀을 많이 흘리고 격렬한 운동을 하는 것은 탈수나 전해질 이상 등 신체적 이상을 초래할 수 있으니 가볍고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을 꾸준이 하는 것이 게 좋겠다. 중요한 것은 정기적으로 하시라는 것. 적당한 운동은 혈액순환을 돕고 몸을 상쾌하게 해주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우울감에 빠지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활동이 될 수 있다. 바깥 바람을 쐬고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전신을 움직이는 운동을 하는 것. 병으로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깨울 수 있다.

 

나의 병이나 건강 상태를 잊을 수 있는 다른 뭔가를 찾아서 집중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항암치료를 받고 방사선치료를 받는 기간 동안에는 신체적인 변화가 많이 생긴다. 하루하루 조금씩 변화가 누적되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증상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러한 증상의 변화에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이건 또 왜 이러지? 이런 증상이 생기는 건 괜찮은건가? , 이렇게 오래 증상이 계속 된 적은 없었는데, 뭔가 잘못된건가?’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며 그런 질문의 포로가 된다. 내 몸의 병과 건강이라는 주제를 잊고 집중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 그 일의 목표를 세워서 조금씩 단계적으로 성취하는 기쁨을 찾기 바란다. 해결되지 않고 소모적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축축 늘어져서 지내는 것 보다 잠시라도 나의 아픈 현실을 잊고 뭔가를 배워보는 것, 손을 놀리며 뭔가를 만들어보는 것, 집중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생활을 가졌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책읽기는 어렵다고들 한다. 활자가 눈에 잘 안 들어오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책 줄거리가 잘 그려지지 않기 때문에 책 읽는 것이 생각보다 더 큰 스트레스가 된다고 하니 굳이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악기를 배우거나 메이크업 화장술을 배우거나 꽂꽂이를 하는 것, 평소에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먹고 사는 것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소한 것까지 배우느라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없어서 미뤄두었던 것을 큰 맘먹고 시작하시라.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정신과 진료에 대한 거부감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나, 아직까지도 정신과 진료를 권유하면 환자들은 반발심을 갖게 되나 보다. ‘저 괜찮아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라며 정색을 하고 거절한다. 미국에서는 암을 진단받으면 애초부터 정신과 진료를 받고 정신과 의사와 면담기를 의무적으로 제기하기도 한다. 암을 진단받으면 마음 속에서 오만가지 걱정거리들이 생기고, 묻어두었던 감정의 골짜기에서 잊고 있던 예전의 아픈 감정들이 흘러나와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럴 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도 좋지만, 바로 그런 상황을 현명하게 헤쳐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신과 진료와 면담이니 적극적으로 활용하셨으면 좋겠다. 회진을 돌면서 오늘은 좀 어떠세요? 기분은 좀 괜찮으세요? 라고 일상적인 인사를 건네는데 고개를 푹 숙이거나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환자들에게 난 반드시 정신과 진료를 추천한다. 마음에도 감기가 드는 법이라고,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그래서 컵에 물이 반쯤 차있는 걸 보고도, 보통때는 아직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할 상황을 겨우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라며 비관적으로 생각해서 슬퍼하게 되는 거라고. 그러니 정신과 진료를 받는게 좋겠다고 추천한다.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고 해서 누구나 약을 처방받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신과 약을 일단 투여하게 되면 체내 농도가 유지되기까지 2-3주 정도 걸리기 때문에 최소한 몇 개월 정도를 복용해야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겠다. 그걸 부담스러워 하는 환자들도 있은데, 기전이 명확한 건 아니지만, 정신과 약들은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발생하는 구토감을 억제하고 암으로 인한 통증을 경감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있다. 부작용이 심해 약을 견디기 힘들면 그땐 정신과 의사와 상의하여 약을 감량하거나 중단하면 된다. 나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도전해서 이겨내겠다는 정신을 갖는 게 중요하지 않겠는가! 마음에 감기가 찾아오면 감기약을 먹고 이겨내자. 감기는 우리가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는 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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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가씨 유방암환자들에게 : 사랑과 연애, 모두 다 잘할 수 있다

 

Sex and the City는 네명의 중년 여성들의 사랑과 일, 우정을 다룬 미국의 홈 드라마다. 성이라는 주제가 아주 솔직하게 소재화되었고 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에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 공히 인기있는 드라마로 자리잡은 것 같다. 사실 이 제목을 처음 들었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제목부터가 너무 선정적인 것 아니냐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10년 사이에 나도, 사회도 분위기가 많이 자유로워진 것 같다. 2007년 스토리 중에 주인공 중의 한 명인 사만다가 유방암에 걸려 수술하고 항암치료 받는 이야기가 테마였던 적이 있었다. 화려한 싱글 사만다는 몸매도 좋고 또래 남성들에게 인기도 많았는데 그녀는 자신이 유방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며 자신의 병과 슬픔을 공개하고 위로받았다. 머리가 빠지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가발을 선물받고 좋아하던 모습, 자신의 몸매와 체형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던 그녀가 변형 근치적 부분절제술로 유방을 보존하여 만족해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약간 짝짝이 유방이 되었지만 그녀는 아주 만족해 하였다.

알고보니 네명 중 또 다른 한명인 신시아 닉슨은 실재 2006 5월에 유방암을 진단받았고 수술도 일요일에 받아가면서 Sex and the City를 촬영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투병하였고 2년 후 치료를 마치고 이런 사실들을 공개하였다. 병원에서 파파라치의 시달림을 받고 싶지 않았고 쓸데없는 가쉽에 휘말려 마음의 평정심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녀의 심정이었다.

 

암 환자들의 성과 사랑 문제는 아직까지 의학적, 사회적으로 보편적으로 다루어지는 주제는 아니다. 암이라는 절대 절명의 위협 속에서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그 모든 과정이 실수없이, 부작용없이 무사히 잘 마무리되고 신체적 건강의 회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하는 것이 투병기간 중 환자의 의무이다. 그리고 재발이 되는지 여부를 모니터링 하면서 최소 5년에서 10년은 경계심을 늦출 수 없기 때문에 성이나 사랑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고민이 아니겠냐 싶은 것이 일반적인 정서일 것이다.

그러나 암 치료를 받았다고 사랑하지 말란 법, 사랑하지 못하란 법 있겠는가? 특히 젊은 환자들일수록 성과 사랑의 문제는 존재의 안정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그것이 육체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치료 과정에 함께 있고 치료 과정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줄 때 환자들은 통증과 구토감, 피로감 등을 훨씬 덜 느끼고 치료를 잘 견딜 수 있다. 심지어 사회적, 심리적 지지를 더 많이 받은 환자가 전체 생존률도 좋다는 연구가 있을 정도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치료를 마치고 난 후에도 어려운 일들을 직면하게 된다. 여성에게 유방이라는 기관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고려할 때 유방절제술은 대장암 환자가 장 절제술을 받는 것이나 폐암 환자가 폐 절제술을 받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유방 전절제술인지 변형 근치적 절제술인지에 따라 외형의 차이가 크지만 환자 입장에서 외모에 자신이 없어지는 것은 마찬가지 일지도 모르겠다. 옷 맵시도 그렇고 대중 목욕탕이나 수영장을 다니는 것도 그렇다. 아마도 더 큰 부담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부끄러움없이 보여줄 수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다행히 유방 성형술이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외형적으로 유방을 예쁘게 복원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유방복원술은 수술 직후에 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국소적 재발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생각되는 기간에 안전하게 복원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형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자의 자신감이다. 나는 신체적 결함이 있고, 재발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암환자라는 생각 때문에 자신감을 상실하고 자존감이 떨어지면 제대로 사랑할 수 없고 멋진 남자도 만날 수 없다. 어떤 남자가 그렇게 존재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여자를 사랑하고 싶겠는가. 진짜 사랑은 내면에서 충족되는 것이며 나의 내면 세계를 건강하고 밝은 마음으로 채울 때 멋진 연애와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비록 정신과 의사는 아니지만 이것만큼은 장담할 수 있을 것 같다.

  • BlogIcon 암죽인총각 2013.07.12 11:36 신고

    엇! 선생님도 미드를 보시나 봅니다.^^ 얼마전부터 유방암 환자(여성)이 치료후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도 나왔더라구요, 저두 이런 드라마 보면서 자신감을 찿고 있습니다. 항암치료및 방사선치료후 정말 자신감이 제로 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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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는 말기가 아니다

 

4기 암은 완치가 어렵다. 그러나 모든 4기 암이 말기암이 아니다. 말기 암환자라는 말은 현대의학의 시각에서 볼 때 암에 대한 치료적 관점으로 더 이상 뭔가를 시도해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때, 그래서 독한 항암치료를 해서라도 생명연장을 시도해보려는 노력이 오히려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4기가 아닌 말기 암환자라고 일컫게 된다. 말기암 환자라고 해서 모든 치료를 포기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암을 치료하기 위한 들이는 노력은 이득보다 손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항암제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지, 환자에게 발생하는 불편하고 힘든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  각종 시술과 수술을 통해서라도 환자가 고통없이 남은 여생을 보낼 수 있게 도와주는 치료를 해야 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진행되는 진료를 완화의료(palliative medicine)라고 말한다.

암환자의 병 경과를 쫒아 오래 진료하다보면 이제 항암치료를 그만 하는 것이 낫겠다싶은 생각이 드는 떄가 온다. 치료를 했는데도 반응이 거의 없고 오히려 독성만이 환자를 힘들게 할 때, 환자에게 시도해 볼만한 새로운 약제가 더 이상 없을 때, 약제는 있으나 환자의 전신상태가 너무 약해져서 항암제를 견디지 못할 것 같을 때, 의사는 환자와 보호자를 불러 치료를 망설이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함께 의논하여 추가 항암치료를 할지 말지 결정하게 된다.

 

4기 유방암은 다른 암에 비해 치료 반응 좋고, 다양한 항암제가 개발되어 있으며 끊임없이 신약이 개발되고 있는 분야라서 쉽게 치료를 포기하고 희망을 버려서는 안되는 병이다. 약 자체만 놓고 보면 독성도 상당한데 환자들이 반복되는 치료에 독성이 쌓여 힘들 법도 한데 비교적 잘 견딘다. 게다가 세포 독성 항암제 뿐만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 항호르몬제를 쓰면 병이 그럭저럭 잘 콘트롤되어 항암치료 없이 항호르몬제만 복용하며 무증상으로 2-3년을 견뎌낸다. 그러다보니 환자의 차트를 보면 십년 이상된 항암치료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치료 중간에 심장에 물이 차서 관을 넣고 힘들어 할 때, 폐렴으로 중환자실에서 고생할 때, 치료를 하면 좋아지다가 재발하기를 반복하니 우울증이 와서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될 때,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시작했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이 대학교에 입학하고 군대에 입소하게 되자 항암치료 기간을 조금 연장했으면 좋겠다는 말하며 좋아할 때 이 길고 긴 역사가 한 환자의 병력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환자의 상태는 아주 나빠 죽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인데, 이상하게도 유방암 환자들은 그 위기를 극복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젊은 엄마들 뿐만 아니라 할머니들도. 더 이상 새로운 약을 쓸 수도 없을 정도로 항암치료를 오래 하다보니 수년전에 썼던 약 중에 반응이 좋은 약을 골라 다시 투여하기도 한다. 그래도 치료에 반응이 있고 병이 좋아지니 어떻게 쉽게 포기하겠는가.

 

그러나 유방암은 매우 다양한 병의 집합체이다

 

아직까지 현대 의학에서 암의 발생과 진행, 재발의 모든 매커니즘을 알지 못한다. 아는 부분보다는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2000 Nature 라는 잡지에 유방암의 분자유전학적 특성을 바탕으로 5가지 그룹으로 구분했을 때 각 그룹별 질병의 경과와 환자의 예후를 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논문이 실린 부 있다. 이 논문에서는 암세포 표면에 발현되는 두가지 호르몬 수용체(에스트로젠 수용체, 프로제스테론 수용체)의 발현 여부, HER2 수용체 양성 여부를 조합하여 전체 유방암 환자군을 5개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이중 호르몬 수용체 양성 그룹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오래 살고 치료의 반응도 좋고 항호르몬 치료만으로도 도움을 받는 집단이다. 이들은 수술 후 10 20년이 지났는데도 재발할 수 있다. 보통 5년동안 재발하지 않으면 일단 완치판정을 내릴법한데 유방암을 쉽게 완치를 말하기가 어렵다. 암세포가 아주 조용히 몸 안에 숨어있다가 어떤 신호에 자극을 받으면 재분열을 시작해 덩어리를 형성하며 우리 눈에 다시 암으로 포착된다. 다 잊고 살만한데 병이 재발되면 그게 림프절 1개이든, 간에서 재발되었든, 뇌에서 재발되었든 일단 환자는 4기 암 환자로 새로운 이름표를 부여받게 된다. 수술한 자리나 인근 겨드랑이 림프절에서 재발되는 것은 대개 수술 후, 혹은 치료를 마친 후 1-2년 내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이때는 전신 재발로 보다는 국소재발로 간주하여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를 통해 다시 한번 완치에 도전한다. 호르몬 양성 그룹의 환자들은 어쩌면 평생 재발의 위협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재발을 해도 치료반응이 좋고 특히 내장기관에 전이되지 않고 뼈에만 전이가 되었거나 일부 림프절로 병이 국한되어 있으면 항호르몬제를 복용하며 병을 억제하며 지낼 수 있다. 항호르몬제도 신약 개발중이며 항암제도 마찬가지로 많은 약들이 개발중에 있으므로, 재발한 4기 환자들은 신약개발에도 소문이 빠르고 임상연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의사와의 관계도 좋은 편이다. 이들 중에 슈퍼맨들이, 영웅적인 투병생활을 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의사이지만 경외스러운 환자들, 그들에게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인생을 배운다.

 

반면 HER2 수용체가 양성인 환자들은 세포 표면의 HER2 수용체를 막는 역할을 하는 허셉틴이라는 단클론항체를 기본으로 사용하며 이에 더불어 항암제를 선택하여 병용치료를 하게 된다. 허셉틴이 1997년 미국에서 FDA 공인을 받기 전까지는 임상연구를 통해 약제를 공급받았던 일부 환자들을 제외하고는 치료 성적이 좋지 않았다. HER2 양성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나쁜 예후인자였고 병의 진행속도도 빨라 호르몬 양성 그룹과는 매우 다른 임상양상을 보이는 그룹이었다. 그러나 허셉틴의 용도가 점점 확장되어 처음에는 4기 유방암 환자 가운데에서 HER2가 양성인 환자들에게만 보험도 인정되고 이론적으로도 효과가 입증되었으나 점차 수술전 항암치료과정에도, 수술 후 재발방지 치료과정에서도 허셉틴을 썼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예후가 좋고 생존기간이 놀랍게 연장되는 것을 알게 되어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HER2 수용체가 양성이라면 무조건 허셉틴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그렇게 하지 않는 진료는 거의 잘못 된 진료(malpractice) 라고까지 간주하는 시대가 되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4기 암환자들에서만 허셉틴을 보험으로 인정해 주었다가 2009 9월부터 수술 후 재발방지를 위한 허셉틴 사용을 보험으로 인정해 주기 시작하였다. 그전까지 많은 종양내과 의사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환자들에게 허셉틴을 투여하지 않은 과오진료를 한 셈이다.)

호르몬 수용체 음성, HER2 수용체 양성 환자들은 수술과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아 재발을 할 가능성이 높고 재발을 하더라도 뇌로 전이되는 경향이 있다. 호르몬 수용체도 양성, HER2 수용체도 양성인 환자들은 병의 성격이 합치되어 약간 애매하게 임상 양상이 섞여서 나타나는 추세이다. 두가지 수용체 중에 어떤 것이 더 지배적인 성격을 갖고 병의 흐름을 장악하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수 없고 많은 연구가 진행중이다. 여하간 HER2 수용체가 양성인 환자들은 허셉틴의 도움으로 생존기간이 놀랍도록 연장되었고 항암치료없이 허셉틴만 쓰더라도 병의 진행을 억제하는 능력이 있으니 천만 다행이다.

그러나 앞서 논의한 그룹들과는 달리 암세포 표면에 어떤 수용체도 발현되어 있지않아 에스트로젠수용체, 프로제스테론 수용체, HER2 수용체 모두가 음성인 그룹이 있는데 이들을 가리켜 삼중음성 유방암이라고 분류하고, 아직까지도 유방암을 보는 의사들에게 미지의 영역이자 좀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라, 현실적으로 환자 진료에 난항을 많이 겪에 되는 그룹이다. 전체 유방암 환자의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질병의 진행속도가 매우 빨라 치료에 반응하지 않을 경우 급격히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1기로 진단되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1년이 채 되지 않아 전신적으로 재발이 되어 나타는 경우, 혹은 사지는 멀쩡한데 뇌막으로만 전이되어 환자가 경기를 하며 의식이 나빠져 사망하는 경우가 있어 도대체 의사로서 특별히 손쓸 방도도 없고 손쓸 시간도 없이 나빠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기만 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최초 3기로 진단되어 당장 수술이 어려우니 수술전 항암치료를 했는데, 수술로 제거한 조직에서 암세포가 하나도 없는 완전 관해 상태를 유도하는 비율이 호르몬 양성 그룹에 비해 낮지 않아 성공적으로 치료가 되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우리가 아직 다 밝혀내지 못한 분자유전학적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되며 그래서 최근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영역인 것 같다. 이들 연구의 성과가 삼중음성유방암을 진료하는 임상의사에게 현실적으로는 도움을 줄 날이 곧 올거라고 생각한다. 2상 임상연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약제들이 몇가지 있으니 그 약들이 우라나라에 들어오기를 기다려본다.

 

이론적으로는 이렇게 유방암을 구분하고 환자의 약제에 대한 반응을 예상하고 기대 여명을 점쳐 보지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통계적으로 산출된 평균의 위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환자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4기 환자이지만 그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한자에게 무조건 긍정적으로 말해주는게 도움이 안되는 건 어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큼 악조건을 가지고 있고 나쁜 예후를 가지고 있어도 약제에 대한 반응과 병의 진행속도, 몸의 전신상태가 얼마나 버텨줄지는 평균으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서 아주 종종 나의 예상을 뛰어넘고 좋아지는 환자들을 보기 때문에 누가 봐도 더 이상은 어렵겠다싶은 상황이 아니라면 환자를 포기할 수 없게 된다.

 

내가 잔소리를 하지 않더라도 4기를 진단받은 환자들은 마음이 힘들고 괴로워 방황하는 시간을 갖기는 하지만 대개 모두들 마음을 잘 정리하고 병원에 온다. 열심히 항암치료를 받겠노라고. 그렇게 결연해져서 오는 그들을 보면 나는 그들을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들의 투병의지가 꺾이지 않게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의사로서 당연히 알고 있는 의학적 지식을 제공하고, 가장 적절한 약제를 선택하고 설명해주면, 환자들이 그를 받아들이고 이겨내며 치료를 받는 과정, 그래서 다른 암보다는 협력적인 관계가 필요한 분야인 것 같다.

꼭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환자의 나이가 좀 많다고, 병기가 4기라고, 몸이 허약하다고 병원에 오지 않고 각종 민간요법에 기대어 식이요법만으로 나아지겠다며, 침을 맞으며, 기치료를 받으며, 기도원에서 기도하며 1년 이상 병을 키워오는 환자들이 있는데, 재발 그러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4기 유방암은 완치되지 않아도 조절되고, 부분적으로 치료될 수 있으며, 무증상으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여지가 많으니, 병을 더 키워서, 혹은 부작용으로 몸을 상하게 한 다음에 병원에 오시지 말라는 말씀이다. 결국 병원에 올거면서 왜 다른 길로 돌아가셨냐고 소리지르고 싶은 경우가 꽤 자주 있다. 그렇게 몸이 상해서 컨디션이 나빠진 채 병원에 오면 항암치료를 시작하기에 앞서 망가진 몸상태를 회복시키느라 많은 시간이 소모되면서 그러는 동안 정작 치료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이렇게 다 나빠져서 오면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냐는 말이 목구멍 입구까지 튀어나오려고 하는 걸 참아야 한다. ‘이럴거면 그냥 끝까지 받던 치료 받으시지, 이제 와서 손대기도 힘들게 나빠져서 병원에는 왜 왔냐고 막 소리지르고 싶을 때가 있다는 말이다. 민간요법, 침맞기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이제 막 병을 진단받았을 때, 혹은 잠잠하던 병이 활발해지면서 암의 재발이 입증되고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이때는 항암제를 쓰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다른 방법으로 치료를 하시고 싶은 분이 있다면 제발 병원에 와서 의사랑 상의하고 항암제를 맞는 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시기 바란다. 제발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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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암 수술과 항암치료 및 방사선치료를 모두 마친 경희에게 전화가 왔다. 이제 치료가 끝난 줄 알았는데, 특정 항암제를 추가 복용하는 것이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되는지를 보고자 하는 임상연구가 있다는 말을 교수님께 들었다는 것이다. 그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게 좋은지, 임상연구에서 제시하는 약제가 과연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나의 의견을 묻고 있었다. 그 자신도 내과의사이거니와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이미 설명을 다 들었을 텐데, 그 교수님보다 경험도 짧고 실력도 없는 나에게 굳이 전화를 해서 묻는 것은 아마도 다급한 마음, 누가 되었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싶은 환자로서의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도 전공의로 일하면서 각종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설명도 해 봤고,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연구의 의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텐데….

표준치료의 효과보다 더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을 기대하고 시도해 보는 것이 3상 임상연구이다. 그리고 3상 연구를 시도하기에 앞서 전임상실험과 1, 2상 임상연구를 다 수행한 상태에서 기대할만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연구자의 확신이 있을 때 3상 연구에 도전해보게 된다. 3상 임상연구는 표준치료군 대 표준치료보다 더 나을 것으로 기대하는 실험군으로 대상 그룹을 나누고, 환자가 어떤 군으로 배정될지는 환자도 의사도 모른 채 (이중맹검, double blind) 환자가 임상연구에 동의하면 임의로 (randomization) 어떤 한 군에 배정된다. 이제까지의 표준치료가 만약 경과관찰(observation)’이라면 경과관찰하는 그룹은 대조군(control arm)이 되고, 추가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약제를 투여하는 그룹이실험군(experimental arm)’이 된다.

경희는 나에게 다시 한번 임상연구에 대해 설명을 듣더니, 경과관찰만 하는 것은 뭔가가 불안하고 뭐라도 추가적인 투약 등의 조치를 시도해보는 것이 심리적으로 안도감을 주는 것 같다며 고민한다. 임상시험에 참여한다고 해놓고, 정작 대조군으로 배정되어 경과관찰을 하게 되면 그때 동의를 철회하고 시험약을 임의로 처방해서 복용해볼까 하는 생각을 교수님께 비췄다가연구를 망친다그럴거면 하지 마라고 크게 혼났다며 머쓱해한다.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환자들의 고민

여하간 표준치료를 다 했고 현재 병이 없는 상태인 경희가 하는 고민은 사실 갈등이 아주 크지는 않다. 그러나 수술을 하지 못한 4기 암환자들은 암이 다 치료되지 않은 채 몸에 병이 남아 있는데, 그동안 여러 차례 항암치료를 하여 왠만한 항암제는 다 써본 상태라 항암제를 선택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담당 의사가 이제 추가적인 항암치료를 하는 것보다 경과관찰을 하는 게 낫겠다는 말을 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엄연히 몸에 암세포가 남아 있는데 경과관찰을 하면 백퍼센트 병이 재발하거나 악화될 것이 뻔하지 않은가! 무슨 치료라도 시도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컨디션도 괜찮고 아직 나이도 젊은데 병을 방치하란 말인가! 완치도 안 된다는데, 더 이상 약이 없다면 예전에 썼던 항암제라도 다시 쓰게 해달라!’는 암환자들의 안타까운 주장을 접할 때면, 나는 마음속으로 환자를 위한 짤막 강의를 준비한다. 암치료의 원칙에 대해 비교적 알기 쉽게 체계적으로 설명해주고, 우리가 치료를 통해 얻고자 하는 효과가 무엇인지, 재발과 악화란 어떤 과정을 통해 진행되는지, CT에서 보이지 않는다고해서 병이 완치되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 수명의 연장과 삶의 질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항암치료가 꼭 도움이 되는 상황은 어떤 경우인지 등에 대해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용어,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어로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들은 이제 치료를 못하게 되었다면서 근거없이 절망하고 삶을 포기하며 그동안 치료를 담당한 의사마저 원망한다. 이렇게 될 거면 아예 처음부터 치료를 해주지 말지, 항상 희망을 놓지 말라고 말해놓고서 이제 와서 할 치료가 없으니 경과관찰을 하자는게 말이 되는 소리란 말인가!
내 설명이 성공적이면, 환자들은 비교적 차분한 얼굴로경과관찰이라는 의사의 치료계획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임상연구의 경과관찰군이나 약제투여군 어느 군에 속하더라도 임상시험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약이든, 아니면 잘 모르는 신약이든, 기존 시험을 통해 약제의 효능과 독성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하더라도 실제 대규모 임상연구에서 궁극적으로 어떤 효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추가적인 약제 투여의 시도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오히려 해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모든 것을 이해한 후 환자는 임상연구에 동의해야 한다.

임상연구와 윤리, 의사들의 욕망

종양학은 임상연구가 매우 활발히 이루어지는 학문이다. 다국적 제약회사가 주도하는 세계적 규모의 임상연구-이들의 환자에 대한 지원은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에서부터 제약회사로부터는 최소한의 약제 지원만을 받고 몇몇 병원의 연구자들이 연계하여 주도하는 다기관 임상연구, 외부로부터의 어떤 지원도 없이 개별 병원 내의 연구자 개인이 주도하는 작은 규모의 임상연구 등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가능한 모든 암환자들은 임상연구를 통해 치료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도 있고, ‘임상연구에 참여해서 치료받는 암환자의 비율이 높을수록 그 기관은 좋은 병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국 내 최고 암전문병원이라 일컬어지는 MD Anderson 암센터는 전체 환자의 60~70%가 임상연구에 참여하여 치료를 받는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 임상연구가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된다는 삼성서울병원이나 서울 아산병원도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치료받는 환자의 비율이 전체 암환자의 20%에 이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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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암환자들을 가능한 동일한 특징을 갖는 집단으로 분류, 표준화된 진료지침에 입각해서 치료하고, 치료 과정 및 결과를 데이터로 정리하여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과정, 이를 보다 용이하고 체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임상연구이다. 비슷한 환자군에서 어떤 치료나 약제가 정말 도움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일개 임상의사의 선호도나 치료 경향 등 의사의 개인적인 성향을 넘어 객관적인 근거에 입각해 이루어져야 한다. 단지 환자에 대한 최선의 진료, 최고의 설명, 최대한의 성의만으로는 치료 성적을 높일 수 없다. 표준화되고 객관적인 치료과정, 이를 통한 데이터의 정리, 결과 분석 등의 노력은 비슷한 조건을 갖는 다음 환자의 진료에 유용한 자료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종양학 의사들은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지만 임상연구를 기획하고, 단일 기관에서 어려우면 번거롭더라도 타 기관과 연계하여 임상연구를 수행하려고 애쓴다
.

이러한 종양학 의사들의 진료 행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의사들도 있다. 그들은 이미 진단이 다 되었는데 임상연구를 위해 조직이 필요하다며 이것저것 절차가 복잡한 검사를 반복하는 것과, 치료가 한시가 급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연구 참여조건에 맞추느라 치료 시작을 1~2주 연기하는 것을 비판한다. 의학 정보의 불균형을 이용해 환자를 임상연구에 참여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고 결국 자기 논문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 아니냐는 적나라한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난 임상연구 프로토콜을 볼 때마다 늘 고민한다. 이 연구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진정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가? 윤리적으로 문제는 없는가? 학문의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환자에게 피해를 감수하게 만드는 부분은 없는가? 환자와 대면하는 매 순간 떳떳해야 하기 때문에, 내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
그렇지만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이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비윤리적인 의사를 어떻게 통제하고 조절하고 있는가? 내가 알기로 의사집단 내부의 통제 및 조절 메커니즘은 아직까지 취약하다. 아직 어느 병원의 IRB도 그렇게 강력한 자정 기능을 강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문적 업적 때문이든, 경제적 성과 때문이든, 제약 및 병원산업 내 영향력과 명망 때문이든, 어떤 형태로든 의사의 마음속 욕망에 발동이 걸리면, 그 분야에서 대등한 전문가가 아닐 경우 그 욕망의 위선을 알아차릴 길이 없다.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가 아니라면 의사도 환자와 마찬가지 존재에 불과하다. 아직까지 그 위험수위는 개인의 선에서 조절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임상연구 프로그램에 속해서 항암치료가 진행되고 한명 한명 개인의 의학적 자료가 전체 데이터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이야말로 아직까지 불확실한 사실들로 가득한 항암치료의 긴 여정에서 암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로서 다음 환자에게는 더 좋은 치료를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의 기본적인 물적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환자가 자신의 몸을 통해 우리에게 데이터를 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고 환자 진료에 경건한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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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효과를 공고히


수술 후 눈에 보이지 않는 암세포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거나, 수술이 잘 되었어도 원발 유방암 자체가 재발의 가능성이 높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경우 국소 재발의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방사선치료를 시행하게 된다. 수술을 하게 되면 유방의 병변도 제거하지만 의심되는 림프절도 함께 제거하게 되는데, 이때 4개 이상의 림프절에서 종양세포가 관찰되었을 때, 혹은 원발 종양의 크기가 5cm이상일 때  유방과 주변 근육까지 모두 제거하는 전절제술을 하지 않고 부분절제술을 했을 때에는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국소 재발율을 낮출 수 있다고 보고되어, 방사선 치료의 기준이 되는지 여부를 판정하여 시행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낮은 병기의 환자들은 방사선치료 없이 수술 후 항암치료나 항호르몬치료를 하는 것만으로 치료 일정이 종결될 수도 있다.

방사선은 방사선이 조사된 부위를 중심으로 하는 국소적 치료라서 일종의 수술처럼 방사선이 포함된 부위만을 치료하는 효과를 갖는다. 원발 병소가 있었던 유방과 림프절 전이가 있었던 부위를 포함하여 25-33회에 걸쳐 매일 방사선치료를 하게 된다. 매일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게 되지만 실재 방사선 치료를 하는 시간 자체는 5-10분 정도로 매우 짧다. 단지 그 몇 분을 위해 환자들이매일  병원에 와야하는 번거러움이 있지만, 운동삼아 사회복귀 훈련을 하시는 거라 생각하고 다니시라고 말씀드린다.

그렇지만 나도 내심으로는 일주일에 한번만 와서 치료받을 수 있게 한번에 투사되는 방사선의 용량을 올리면 자주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되는거 아닐까? 투여 간격과 투여 횟수를 조정하면 환자에게 좀더 편리한 치료방법을 제공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해본다. 하루에 2번 방사선 치료를 나눠서 할 경우 총 방사선 용량도 줄이고 치료기간도 줄이면서도 치료 효과는 비슷하다는 연구도 있지만, 우리 나라는 방사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대도시 큰병원 몇 군데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병원 앞에 방을 따로 얻지 않는 이상 하루 2회의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다닐 수 있는 환자가 많지 않아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통상적인 한 회당 투여하는 200-300Gy보다 더 고용량으로 800Gy씩 일주일에 한번 해보는 연구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방사선이라는 무기도 그 속성은 같지만 어떤 방식으로 조사하고, 얼마만의 간격과 얼마만의 세기로 투여할 것인가에 따라 치료 성적이 달라진다는 논문이 많은 걸 보면 방사선의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그저 표준적으로 가장 효과가 입증된 방법으로 우리 환자들을 치료해 주십사고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방사선 치료를 하면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부작용이 피부 변화이다. 화상을 입을 것처럼 피부가 벌게지고 물집이 잡히거나 부으면서 염증이 생기기도 한다. 수술 부위의 상처가 다 나은 줄 알았는데 방사선 치료를 하면서 상처가 덧나는 것처럼 진물이 다시 나기도 한다. 매일 치료하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피부 부작용이 심하면 2차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항생제를 복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치료 자체를 일정 기간 동안 쉬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방사선 치료를 받은 지 1달 후부터 대개는 수개월 내에 방사선 폐렴이라는 것도 생길 수 있다. 방사선이 조사되는 핵심 부위는 유방암을 제거한 쪽의 가슴과 겨드랑이 쪽의 림프절 부위이지만, 방사선이 실재 영향을 미치는 영역은 조사 부위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여 폐 실질도 방사선의 영향을 받아 폐렴이 유발되기도 한다. 열이 나거나 가래가 끓는 것이 아닌데 마른 기침이 나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는 호흡기 증상이 발생하면 병원에 와야 한다. 빨리 가슴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청진을 하여 전형적인 세균성 폐렴과 감별하는 게 필요하다. 만약 방사선폐렴으로 진단이 된다면 일정 기간 동안 스테로이드라는 약을 복용하면 대개는 호전될 수 있지만, 쉽게 회복되지 않고 고생하는 환자들도 더러 있다.

 

대개의 환자들은 방사선치료를 받는 동안 크게 힘들어하지는 않는다. 항암치료를 받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부 환자들은 방사선 치료가 훨씬 더 힘들다고 한다. 환자마다 치료 독성이 다르게 나타나는 걸 미리 알 방도는 없으니 치료하고 당해보면서 터득하는 수밖에 없겠다.; 방사선 치료도 일종의 항암치료인만큼 몸에서는 아직 치료과정이 진행중인 셈이다. 쉽게 피로해지고, 소화기능도 완전히 정상화되지는 않는다. 약간의 메슥거림이 남아있고, 아직 머리카락도 새로 나지 않는다.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 즈음이면 환자들이 대략의 암 치료 과정에 대해 이해도가 높아지고 자기의 치료과정도 종결되어간다는 기대 때문인지, 자기 관리를 잘 하며 치료를 견디는 것 같다.

 

유방암 환자에서 수술 후에 시행하는 방사선 치료는 그야말로 치료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지만, 실재로 암환자의 치료에 기여하는 방사선의 쓰임새는 매우 다양하다. 전이성 암 환자는 누구라도 뼈 전이의 가능성이 있는데, 척추와 같이 우리 몸의 무게가 실려 부담을 많이 받는 쪽에 전이가 되면 통증도 심할 뿐더러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골절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국소적인 통증과 골절이 예상되는 뼈에 방사선 치료를 하면 통증도 조절되고 골절 예방효과를 갖는다. 오로지 방사선 치료만으로도 치료가 되는 암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방사선이 조사되는 부위에 국한하여 치료가 되기 때문에 타겟으로 했던 병변은 크기도 줄고 증상을 유발했던 부위의 상태가 호전되었지만 그 동안 다른 쪽의 병이 나빠져는 것을 막을 수 없어 항암치료가 병행되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사선 치료의 일종으로 사이버나이프나 토모테라피 등도 선보이고 있으며 방사선은 아니지만 중성자치료도 암환자의 치료에 도입되고 있다. 첨단의 고가 장비를 이용한 치료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데, 바씨고 신기술이 적용된 좋은 기계이니 만큼 기존 치료에 비해 이득이 있는 것은 확실하겠지만 비용 효과 면에서 약간의 이득을 향상시키기 위해 엄청난 비용이 소모되는 측면이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신기술을 이용한 치료에 대한 각종 임상연구의 결과가 누적되어야 결국 보험으로 적용되는 환자군도 생기고 치료의 혜택이 넓혀질 수 있기 때문에 방사선을 치료의 무기로 다루는 의사들이 도전해야 하는 연구 영역이라는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정말 득을 볼 수 있는 환자군이 제한되어 있다는 면에서 환자가 원하고 선호한다고 하여 시도해보는 그런 단계는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는 의사가 먼저 권유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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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치료에 쓰이는 항암제 중 가장 중요한 약제를 두가지 들라면 독소루비신(혹은 아드리아마시이신)과 탁소텔(혹은 탁솔)을 꼽을 수 있겠다. 이들 약제가 아무리 힘들고 부작용이 큰 약이라 하더라도, 또 아무리 신약이 많아 나왔다 하더라도 이들 두가지 약제가 유방암 치료에 기여한 바는 실로 놀랍다. 그러므로 지금으로서는 이들 약제로 내가 잘 치료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누구에게나 힘들게 찾아오는 부작용을 잘 공부해서, 부작용이 찾아오더라도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작용은 이 시기를 넘기면 거의 다 회복될 수 있는 것들이다.

 

독소루비신 (아드리아마이신, 에피루비신)

 

탈모

 

흔히 빨간 약으로 알고 있는 독소루비신(혹은 아드리아마이신, 에피루비신)을 투여하면 100% 탈모가 된다. 100%. 약제가 투여된지 2주 정도 되면 머리가 솔솔 빠지기 시작해서 다음 치료를 받을 무렵이 되면 뭉텅뭉텅 빠지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2주기 치료를 하러 올 때 머리를 다 밀고 모자나 가발을 쓰고 나타난다. 씩씩하게 회복된 혈액검사 수치를 보며 몸이 잘 견뎌냈구나 짐작하지만, 머리를 깎으며 환자가 흘린 눈물, 마음속으로 했을 걱정과 근심, 불안함을 아는 척 하지 못한다. 탈모를 유발하는 항암제들은 치료가 끝나고 4-6주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삐죽삐죽 다시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한다. 머리가 빠지는 정도가 치료의 효과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니 머리카락이 좀 덜 빠진다고 해서 걱정할 것은 없다. 완전히 빠지지 않고 듬성듬성 머리카락이 남아 붙어있기도 하는데, 외모가 더 흉측해 보이기 때문에 환자들이 몽땅 깎아버리는 것 같다. 이 약을 끊으면 대부분 머리카락이 날 거니까 조금만 잠고 이겨내자고 말하며 격려해본다. 의학적으로는 머리카락 세포의 생존 주기상 당연히 항암제의 공격으로 손상되어 떨어져 나갈 수 밖에 없고, 약을 끊으면 거의 다 다시 나는데, 탈모되었다고 속상해하고 머리를 깎으며 우는 환자들이 이해가 안 될 때도 있다. 아마 그 환자의 눈물의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환자 여러분, 우리 이런 일로 눈물 흘리지 맙시다. 더 힘들고 속상한 일이 생길지도 몰라요. 이건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머리는 다시 다 나요. 예쁘게.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그러나 사실, ‘머리빠지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가 환자에게 크게 혼난 적도 있다. 내가 어찌 그들의 속상한 마음을 다 알겠는가? 난 그래도 말한다.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용기 내세요. 이제 시작입니다라고.)

탈모가 되면 두피에 자극에 되는 파마와 염색은 가능한 피하는 것이 좋고 샴푸도 순한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머리를 짧게 자르면 긴머리보다 숱이 많아보이고 풍성해보이는 효과가 있으며 관리하기도 편하다. 머리카락이 몽땅 다 빠지고 나면 자외선으로부터 두피를 보호해야 하므로 자외선 차단제를 두피에도 발라주고 바깥 출입을 할 때는 모자나 두건을 쓰는게 좋겠다.

 

심장기능

독소루비신 계열의 약물은 용량이 누적되었을 때 심장기능을 약화시킬 수가 있다. 그래서 이 약을 투여하기 전에는 기본 심전도와 다른 위험요인이 있을 때 혹은 병원의 진료 정책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심장초음파를 기본으로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심전도에 이상이 있거나 심장초음파상 이상소견이 관찰되면 약의 용량을 감량해서 투여하거나 투여 기간 중 모니터링을 좀더 자주 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평생 4회에서 6회 정도를 수술 전후로 투여하는 것 정도로는 큰 문제를 유발하지 않는데, 국소적으로 재발했을 때 혹은 전신재발이 발생했을 때에도 다시 이 약제를 쓰면 효과가 좋은 경우가 있어서 재발한 유방암 환자에서 독소루비신 계열의 약물을 투여할 때는 매번 누적용량을 기록하고 환자가 가슴이 답답하다거나 숨이 차다고 할 때 즉시 심장기능 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

이 약제가 유방암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선택되어야 하는 항암제이지만, HER2 양성인 환자에서 반드시 사용하게 되어 있는 허셉틴이라는 표적치료제를 써야할 경우, 허셉틴도 심장기능을 약화시키는 약제이기 때문에 독소루비신을 빼고 탁소텔이나 탁솔을 중심으로 약제조합을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기존에 심장병이 있는 환자라면 자신의 상태를 반드시 항암치료 담당 의사에게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혈관염

 

생명을 위협하는 부작용은 아니지만, 의사와 병원 입장에서 아주 골치아픈 부작용이 바로 혈관염이다. 항암제는 투여 중 혈관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경우 주위 조직에 염증이나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염증과 손상을 일으키는 것이 독소루비신이다. 그래서 혈관이 새카맣게 변색되는 것은 물론이요 혈관 자체가 괴사되면서 주위 조직으로 염증이 확산되어 성형외과적인 피부이식수술을 받게 되는 상황이 초래되기도 한다. 정말 으악이다.

말초혈관으로 직접 맞게 되면 혈관이 샐 때 환자들이 심한 통증을 느끼기 때문에 주사를 주면서 아프세요? 아프시면 즉시 말씀하세요라고 계속 주문 걸듯이 말하면서 주사를 준다. 혈관이 새는 순간 통증을 느끼고 아프다고 하면 즉시 바늘로 혈액을 역류시켜 조금 빼고 난 다음 주사가 들어간 부위를 심장위치보다 높게 올려두고 얼음주머니를 대 주면 증상이 호전된다. 바늘을 빼고 투여를 중단했는데도 계속 통증이 남아있으면 아주 가는 바늘인 24게이지 인슐린 주사바늘로 혈관염이 생긴 부위를 중으로 소량의 스테로이드 주사를 놔주면 염증이 가라앉으면서 빨리 호전될 수 있다.

유방암 환자들은 유방암 수술한 쪽으로는 아예 주사를 맞지 않고, 반대쪽 팔에만 주사를 맞을 수가 있는데, 많은 여성들이 그렇듯이 팔의 혈관 상태가 젊은 남자들의 팔뚝에 불끈불끈 솟아오른 싱싱한 혈관보다 훪씬 나쁜 상태이다. 상체 운동량도 부족하고 지방조직으로 혈관이 쌓여있으면 처음 한두번은 어떻게 혈관을 조심조심 찾아서 주사를 맞을 수 있지만, 횟수가 반복되면 혈관들이 위축되고 숨어버려서 항암주사 맞기가 힘들다. 그럴 때는 중심정맥관을 삽입하게 된다. 예전에는 조혈모세포 이식환자들이 하는 히크만 카테터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며 주사를 맞았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오른쪽 빗장뼈 아래 피부에 심을 수 있는 케모포트를 넣기도 하고 겨드랑이 혈관을 이용해 말초혈관 중심정맥관을 삽입하여 혈관염을 미연에 방지하기도 한다. 혈관염이 생긴 후 환자가 불평하고 불만을 제기하면 이것이 환자의 생명에 치명적 위험을 초래한 것은 아니나 일종의 의료사고로 처리되고 있어서 참으로 골치아픈 문제가 되고 있다.

 

 

탁소텔 (혹은 탁솔)

 

과민반응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부작용으로, 약이 투여된지 몇분 되지 않아 춥고 떨리며 열감이 느껴지면서 입과 목 주위가 붓거나 숨이 차기 시작할 수 있다.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은 느낌이나 통증이 발생하기도 하고 마른 침이 날 수도 있다. 두드러기나 발진, 가려움 등과 같이 피부변화가 있다가 금새 가라앉을 수도 있지만 어지럽고 의식이 변화하며 혈압이 떨어지기도 하는 등의 심각한 증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전처치 약물로 스테로이드와 항히스타민제가 있는데 항암제 투여 전날 밤부터 약을 경구로 먹을 수도 있고 항암치료 당일 주사로 맞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전처치 약물의 투여로 탁소텔의 과민반응이 상당부분 예방될 수 있게 되었다. 약물 투여 중 과민반응이 발생하면 즉시 주위의 의사나 간호사에게 이상 징후가 발생하고 있음을 알려서 과민성 쇼크로 진행되지 않게 조치를 해야 한다.

 

피로와 근육통

항암제를 맞고 3-4일이 지나면 온몸이 나른하고 의욕이 없어서 하루 종일 누워있고만 싶을 정도로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어떤 환자들은 몸이 땅바닥에 붙어서 안 떨어지려고 한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꼼짝하기가 싫고 숨쉬는 것도 귀찮을 정도이다. 밥도 안먹고 싶고 배도 안고프다. 눈 뜨기도 귀찮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재로 응급실에 전신쇠약감, 무기력감을 주소로 내원한 환자가 있었는데, 나는 가서 처음 보고 환자가 숨을 안 쉬는 줄 알았다. 환자가 정말 꼼짝을 안하고 누워있었고 내가 뭔가를 물어보고 진찰을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등 마치 죽은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던 환자도 있었다.

단지 피로감이나 전신쇠약감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항암제로 인한 골수기능 저하에 동반된 빈혈 등이 동반되면서 피로감이 심해질 수 있어, 혈액검사를 하고 수혈을 하면서 보조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이 발생하면 해당 기간 동안에는 사실 환자가 애쓰고 노력해서 좋아질 수 있는 부분이 없다. 가능한 힘든 일은 피하고 가족이나 주취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는 수밖에 없다. 주부라면 집안일을 하는 것이 정말 힘들기 때문에 남편이나 친지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

비슷한 시기에 전신 근육통이 심해서 처방해 준 진통제를 먹고도 전혀 도움이 안된다며 통증이 심해 응급실로 오는 환자도 있다. 탁솔이나 탁소텔의 전형적인 부작용이라 아예 항암제를 맞고 귀가하는 환자들에게 아예 3일후부터는 증상이 없어도 미리 드시라고 진통제 처방을 해주기도 한다. 그만큼 전신통이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말초신경염

 

탁소텔을 4회에서 6회 정도의 투여하는 것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만큼의 심각한 말초신경염은 발생하지는 않는다. 만약 신경염이 생긴다 하더라도 치료가 끝나면 서서히 호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역시 재발이 되었을 때 다시 사용하여 체내 누적용량이 일정 용량이상 올라갔을 때 불편감을 주게 된다.

차가운 곳에 노출되면 손발저린감이나 화끈거림, 무감각, 통증 등의 감각변화가 더 예민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맨손으로 냉장고에서 그릇을 꺼내거나 찬물을 마실 때, 찬물로 세수하거나 손발을 씻을 때 증상이 더 심하게 느껴지므로 조심해야 한다. 물도 미지지근하게 마시고 세수를 할 때도 미지지근한 물로,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낼 때도 장갑을 끼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투약이 반복되면 걸음걷는게 힘들어서 균형잡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모래밭을 맨발로 걷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손의 신경염이 심하면 젓가락질을 하거나 옷에 단추를 채우는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렇게 감각이 무딜 때 날카로운 칼이나 가위를 사용하는 일을 조심해야 하고 외출을 할 때는 양말과 운동화를 신는 것이 좋고 맨발로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요리하거나 설거지 할 때, 화분이나 화단을 관리할 때에도 장갑을 착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환자가 신경염이 심해서 밤에 잠을 자다가 깬다거나 증상 때문에 일상생활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불편하다고 호소할 때는 일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약제를 처방해 주며 경과관찰 해보는데, 100% 증상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도움이 된다는 환자와 그렇지 않다는 환자가 있어서 1-2주일 정도로 시험해보고 효과가 없으면 그냥 증상이 악화되는 상황을 피하고 견디라고 격려해준다. 탁소텔에 의한 말초신경염은 약을 끊으면 증상이 호전될 수 있는 증상이므로.

 

전신부종 (체액 저류)

탁솔보다는 탁소텔을 투여한 경우에 발생하는 특징적인 증상이다. 3-4회 정도 탁소텔을 맞고 나면 얼굴과 손발이 붓고 푸석추석해진다. 환자들이 평소보다 체중이 3-5kg 정도 증가한다고 불편감을 호소하는데 치료가 끝나면 회복되는 증상이므로 크게 걱정할 것은 없겠다. 너무 짠 음식은 피하고 손이나 발에 부종이 있는 경우에 쉬거나 잘 때 베개나 쿠션을 이용하여 조금 높은 곳에 손발을 올려두면 부종이 빠질 수 있다. 일정한 기간을 두고 체중을 측정하여 증상이 심할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이뇨제를 사용하여 증상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증상이 심할 경우 부종이 폐나 심장에 생기는 경우도 있고 생체 활력징후에 이상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체중을 주기적으로 측정하며 진료시 의사에게 상황을 알려주면 가슴 엑스레이 등을 찍고 청진을 하여 저절로 좋아질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니면 일시적으로 물을 빼는 데에 도움이 될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된다.

 

손발톱의 변화

 

탁소텔을 맞는 횟수가 늘어나면 손발톱의 색이 검게 변색되거나 누렿게 변하고, 표면에 줄이 생기고 딱딱해질 수 있다. 또 손발톱이 들뜨며 염증이 생기기도 하고 쉽게 부서지거나 빠지는 경우도 있다. 들뜬 정도가 심하고 염증이 생기면 2차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항생제를 추여하는 것이 필요할 경우도 있다. 네일 케어를 받는 환자도 있는데, 사소한 상처가 큰 염증으로 번질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싶지는 않다. 역시 투약기간이 끝나고 2-3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면 증상이 호전되고 예전처럼 예븐 손톱이 다시 자라나기 떄문이다. 다만 손발톱이 약해지는 때이므로 발톱보호를 위해 양말을 신고 손톱보호를 위해 집안일을 할 때는 장갑을 착용하는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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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나면 병원에 오세요

 

보통 열이 난다는 건 우리 몸에 뭔가 이상이 생겨서, 자기 면역체계를 가동하여 그 이상을 해결하려고 싸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이다. 무슨 균이 들어오면 내 몸의 백혈구가 그 균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열이 날 수 있다. 그러므로 열이 나면 어디서 기원했는지, 열의 원인을 찾는게 우선이다. 일단 백혈구가 자기 힘으로 싸우고 있는 셈이니, 열이 나게 만드는 원발 병소를 찾아 항생제등의 치료를 더함으로써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

항암치료를 처음 받는 환자에게 의사들이 가장 중요하게, 꼭 당부하는 말은 열나면 지체말고 응급실로 오시라는 것이다. 항암치료를 하는 중간에 열이 나면 바로 그 시기가 내 몸의 면역기능이 최소화되고 백혈구가 거의 없어 외부의 균과 싸울 군사가 거의 없는 기간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게 필요하고, 만약 백혈구 감소증이 있다면 적극적인 항생제 치료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암치료 중에 열이 나는 환자를 진료할 때 의사가 제일 확인하는 것은 피검사를 하여 백혈구 감소증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이다. 백혈구 감소증이 없으면 일단 아주 급한 일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교과서에는 항암치료 중 백혈구 감소증을 동반한 열이 발생하면 아주 신속하게 항생제를 투여하라고 되어 있다. 일반적인 경우에서 항생제를 한두시간 일찍 쓰고 말고의 여부가 환자가 호전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백혈구 감소증, 즉 총백혈구가 천개 이하일 때, 혹은 백혈구 중에서도 면역기능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호중구가 총 500개가 되지 않으면 그 결과를 아는 순간부터 2시간 이내에 항생제를 투여하라고 되어 있다. 순식간에 패혈성 쇼크가 동반되면서 환자의 상태가 급격하게 위중한 상황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백혈구 감소증은 없는데 열이 난다면, 그렇게 다급한 상황은 아니다. 서둘러 항생제를 투여하기보다는 열이 나는 원인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백혈구 감소증이 없는 상태라면, 일반 열나는 환자를 볼 때와 같은 방식으로 진료해도 상관없겠다.

피검사를 통해 나타나는 백혈구 수치 이외에도 중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열이 나는 순간 환자의 임상적인 양상이다.

열이 나면서 환자의 컨디션이 뚝 떨어지고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백발백중 몸에 뭔가 심각한 감염이 동반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럴 때 나는 환자가 의사에게 저는 좀 신경써서 잘 봐 주세요라며 싸인을 보내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객관적으로 백혈구 수치가 아주 낮고 열이 펄펄 나는데 환자에게 가보면 그렇게 많이 힘들어하지 않는 때도 있다. 백혈구가 1000개 이하로 없을 때는 감염을 일으킬만한 원인이 전혀 없어도 열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항생제를 빨리 투여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마음 속으로는 시간 지나가서 백혈구 오르면 상태 좋아지겠네라고 일단 한숨 돌린다.

그만큼 환자가 의사에게 보여주는 임상양상, 환자가 힘들다고 말하지 않아도 온 몸에서 풍겨나오는 환자만의 포스가 있다. 컴퓨터 전자의무기록을 살펴보면서 대략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환자를 보러 가지만, 정작 환자 앞에 갔을 때 환자가 뿜어내는 포스가 의사의 진단과 치료계획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그러므로 나 개인적으로는 환자에게 중요한 이벤트가 생기면 가서 꼭 환자의 관상을 보고 포스를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열이 날 때 병원 응급실에 오면 짐짝 취급되고 환자인 나를 대하는 것도 형편없고 어수선한 응급실에 몇일 있다보면 안날 병도 더 날 것 같다며 불평하는 환자들이 있다. 맞는 말씀이다. 자기는 열나면 서둘러서 병원에 오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심지어 지방환자들은 지방에서 119까지 불러서 서울 병원으로 왔는데, 자기한테 하는 처치도 별 것 없고 자리도 없는 응급실에서 찬밥신세로 지내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다며, 다시는 응급실에 오지 않겠다고 말씀들을 하신다. 정말 송구한 상황이다.

만약 열이 나기는 하는데 별로 몸 상태가 나쁘지 않으면 응급실보다는 외래로 내원하셔서 담당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혈액검사를 통해 백혈구 감소증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면 응급실행을 조금은 막을 수 있겠다. 환자의 전신상태가 별로 나쁘지 않고 백혈구 감소증도 없으며 특별히 열이 날만한 포커스가 없다면 경구용 항생제를 복용할 수 있기 때문에 약을 처방받아 집에서 항생제를 먹으면 된다. 물론 외래에 와서 진료보고 검사를 다 했는데, 결국 입원을 해야하는 몸 상태로 판명나면 당장 입원을 할 수 있는 방이 배정되지 않는 한 응급실로 가게 되겠지만

입원해서 주사 항생제를 맞아야 할 정도라면 백혈구 촉진제도 맞고 혈압도 자주 체크하며 몸의 활력징후를 자주 점검하여 패혈성 쇼크로 진행되는지 여부를 경과관찰하는게 필요하겠다. 패혈성 쇼크라고 생각되면 몸에 중심정맥삽입관을 넣고 혈압을 일시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승압제를 쓰는 등 중환자실에 준하는 처치의 대상이 된다. 패혈성 쇼크가 오면 이에 따른 전신적인 장기 기능부전이 동반되며, 폐기능이 나빠지면 인공삽관을, 콩팥기능이 나빠지면 인공투석을, 심장기능이 나빠지면 인공심폐기계를 연결하여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극한 상황이 초래되기도 한다.

이렇듯 같은 열이라도 환자의 진행양상이 천차만별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의사들은 외래의 바쁜 상황에서 설명할 때는 열이 나면 일단 병원에 오라는 일괄적인 말을 강조할 수 밖에 없다.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열이 나서 예상치 못한 서울행을 반복하는 것이 육체적, 심리적으로 정말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몸도 힘들어 죽겠는데, 서울 병원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 응급실에 와서 대기 하는 시간, 담당 의사에게 연결되서 진료받게 되는 시간 등을 따지면 2시간 이내에 항생제를 써야 한다는 응급지침이 무색하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 중에 집이 지방이신 분들에게는 아예 처음부터 소견서를 써드린다. ‘무슨 병으로 진단받은 분이고, 언제, 무슨 약제로, 얼마의 용량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하신 분인지를 기록하여, 열이 나거나 현재 투여중인 항암제의 흔한 부작용이 나타나면 거주지 근처 종양내과가 있는 병원에 가시고, 그 때 이 소견서를 제출하라고 설명해 드린다. 좋양내과 의사라면 누구나 어떤 약제를, 몇일부터 쓰기 시작했고, 지금 나타나는 증상은 어떻게 처치하며 약을 써야 하는지 다 알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충분히 진료가 가능하다. 아직까지 이렇게 한 환자를 여러 병원에서 같이 진료하는 시트템이나 의료정보를 교류하는 시스템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의사와 나를 연결해주는 매개체는 내가 쓴 소견서가 전부이며, 서로를 모르지만, 같은 암환자를 보는 의사이니 믿고 보내는 셈이다. 왜 첫 치료부터 나에게 받지 않고, 이런 별 것 아닌 부작용 관리만 나에게 치료하게 하냐며 불만을 가질 선생님은 없으시다고 믿는다. 암환자를 보는 의사의 마음은 다 똑같으니까. 다만 환자들인 서울 병원과 지방 병원을 비교하며 의사들의 마음을 후벼파는 경우는 종종 있다고 한다. 모 선생님께서는 환자들이 서울로 가서 진료받고 항암치료 하는거 다 이해한다고, 그런데 서울 병원에서는 이렇게 안해주던데, 여기는 왜 이래요, 이렇게 치료하는게 맞는 건가요? 서울 병원에서는 무슨무슨 영양제 줬는데, 여기는 그 영양제 없나요?’ 라며 하나도 안 중요한 건데 쓸데없는 데에 집착하며 의사의 진료와 병원의 환경을 지나치게 따지는 환자들을 보게 될 때 진짜 짜증난다고 하셨다.

때론 열이 나는데 사실 염증이나 감염과는 관련이 없는 때도 있다. 수술 후 재발방지 항암치료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수술전 항암치료를 할 때나 4기 암환자들처럼 몸에 암세포가 존재할 때는 암세포 자체의 활성도에 따라 열이 나기도 한다. 이럴 때는 항생제를 써도 별로 차도가 없고, 당연히 균 배양 음성이며, 무엇보다도 환자가 열이 나는데 동반되는 증상이 거의 없는 경우이다. 우연히 체온을 재 봤더니 39도가 넘는다며 병원에 걸어온 환자들, 안색도 나쁘지 않고 식사도 잘 하시고, 별로 불편한 거 없다고 말씀하시면 대개 암에 의한 열인 경우이다. 이럴 땐 일시적으로 해열제를 써서 열을 떨어뜨리면 된다. 암에 의한 열 자체가 병의 진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처음 열이 나면 감염에 의한 열이 동반된 것은 아닌지 혈액배양검사를 하고 염증 수치들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여하간, 항암치료 중에 열이 날 땐 일단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료를 받는게 원칙이니 환자들은 이것만큼은 꼭 기억하고 참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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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2009 내가 쓴 책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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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주기를 재조정할 것

 

항암제는 내 몸의 세포를 죽이는 강력하고도 무서운 약이다. 요즘 나오는 표적치료제들은 치료 기전이 조금 달라서, 정상 세포는 죽이지 않고 암세포만 골라 죽이거나 혹은 암세포가 더 증식하지 않도록 억제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부작용에 차이가 있지만, 전통적인 항암제들는 암세포 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결국 나를 지켜주는 면역세포까지도 손상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항암치료의 주기를 잘 알고, 그 시기에 맞게 자기 삶의 주기도 변화시키고 적응하여 지내는 센스가 필요하다.

 

항암제와 골수기능의 감소

 

대개의 항암제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골수기능을 억제한다. 골수는 말 그래도 뼈 속에서 피를 만드는 공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건강하고 좋은 피가 만들어져 전신적으로 순환이 되어야 내 몸도 건강할 수 있다. 항암치료 기간에는 암세포를 공격하는 항암제가 정상적인 골수까지 공격하기 때문에 항암제 주기에 따라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의 혈액 세포도 감소되었다가 회복되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하게 되고, 항암치료가 반복될수록 골수의 회복 속도도 느려지고 회복하는 정도도 느려지게 된다.

 

혈액세포 중 백혈구는 우리 몸에 원래 있던 균 혹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균에 대한 방어막 역할을 하는 세포이다. 그러므로 백혈구 수치가 감소하면 균에 대한 저항성이 약화되고 쉽게 염증이 약화되어 폐렴이나 장염, 심한 설사병에 걸릴 수 있고 몸에 상처가 있거나 중심정맥관 등의 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관 주위의 피부도 벌겋게 변하면서 염증소견을 보인다. 이러한 염증이 문제가 되는 경우라면 몸에서는 열이 남으로써 그 싸인을 우리에게 보낸다. 그래서 열이 나면 병원에 와서 열이 나는 원인을 찾는게 중요하다. 초반에 그 싸인을 무시했다가 아주 위중해지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열이 나니까 임의로 타이레놀이나 아스피린 등의 해열제를 먹으면 열이 나는 상황을 억제해버리기 때문에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므로, 비슷한 상황에서 안 나던 열이 나면 일단 병원에 와서 담당 의사의 진료를 받는게 좋겠다.

스스로 주의하여 미리 열이 날만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반적인 개인위생이 힘쓰기 (외출 전후로 손씻고 양치하기, 식사전이나 화장실 사용 후, 코를 풀거나 동물을 만진 후에 손씻기) 를 비롯해서 피부를 깨끗이 하기, 보습제를 발라 피부가 건조하여 갈라지는 일을 방지하기, 피부에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기, 감기 걸린 사람은 가까이 하지 않기 등은 조금만 신경쓰면 나의 노력으로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실천 전략이 될 수 있겠다. 백혈구가 감소했다가 정상화되는 주기가 있기 때문에 예방접종이 필요한 경우에는 의사와 상의해서 접종이 꼭 필요한지, 접종을 하려면 언제 해야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항시 음식을 먹고 나면 가글을 하고, 평소에도 자주 가글을 하는게 폐렴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명심할 것. 가글액 자체가 구토감을 유발해서 꺼려하는 환자들도 있는데, 그렇다면 생리식염수라도 가글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적혈구가 부족하면 빈혈로 나타난다. 일반 혈액검사에서 빈혈이 생기면 혹시 부지불식간에 출혈이 되는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상 혈액검사에서 빈혈을 발견하면, 여자의 경우 폐경이 될 때까지 생리를 하기 때문에 한달에 한번씩 있는 정기적인 출혈로 인한 빈혈의 가장 흔한 원인이겠고, 남성의 경우에는 암 등의 출혈을 유발할 수 있는 병변이 위나 대장 내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만 암환자들은 치료기간 중에 혈액검사를 매우 자주 하기 때문에 항암제 주기와 관련하여 변화 추이를 보거나 다른 혈액 세포들도 같이 감소해있는지 여부를 보면서 출혈에 대한 적극적인 검사를 할지 말지 결정하게 된다. 항암제로 골수기능이 억제되어 빈혈이 생겼다면, 일정 수치 이하로 아주 낮게 떨어지지 않았을 경우 저절로 회복되기를 기다려볼 수 있고, 아주 낮으면 일시적으로 수혈을 하는게 필요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심한 빈혈은 어지러움증, 호흡곤란, 전신무력감 등의 증상을 동반하기 때문에 빈혈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그런 증상들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잦은 수혈은 드문 전염성 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수혈을 꺼려하는 환자들이 있는데, 그 이론적 확률이 나에게 발생하면 100% 의 사건이 되므로 의사인 내가 그걸 무시하고 무조건 수혈을 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전체적인 항암치료의 스케줄을 고려했을 때 항암치료를 너무 힘들게 받게 되면 미리부터 다음번 항암치료가 힘들어지고 받기 싫고 몸과 마음이 괴롭다. 빈혈에 동반되는 증상이 해결되지 않으면 일상적인 생활 자체가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힘들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우울해진다.

요즘에는 적혈구생성인지 촉진제(Erythropoietin)가 있어서 주기적인 수혈 대신 촉진제를 투여하여 적혈구의 생성 자체를 자극하는 약들도 있다. 헤모글로빈이 8g/dl~9g/dl 근처에서 애매하게 낮고 증상도 명확하지 않아서 반드시 수혈을 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지만 이런 경향이 장기간 계속되는 경우에 고려해 볼만한 약제이다. 항암치료 중에는 헤모글로빈을 10g/d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 환자의 삶의 질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고, 이런 적혈구생성인자 촉진제를 1주일에 한번씩 맞으며 한달에 헤모글로빈이 1g/dl 정도 상승하는 것이 적절한 약제 반응이라고 판단한다. 수혈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종종 환자에게 투여해보기도 하지만, 역시 모든 약은 그 나름의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이 적혈구생성인자 촉진제가 갖는 부작용도 있어서 빈혈이 있는 모든 환자에게 손쉽게 처방할 수는 없는 약제이기도 하다.

 

혈소판은 혈액을 응집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혈소판이 감소하면 출혈이 생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피부에 멍이 들거나 팔, 다리에 고춧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붉은 반점이 생길 수도 있고 양치할 때 잇몸에서 피가 섞어 나오거나 소변이나 대변볼 때 피가 비치기도 한다. 생리 기간이 길어지거나 생리 기간과 관련없이 질 출혈이 있을 때에도 혈소판 감소를 의심해 볼 수 있다. 일상적으로 복용하는 약제 중에도 장기적으로 복용했을 때 혈소판을 감소시키는 약들이 있으니 병용 투여하는 일반약의 목록을 잘 알고 있는게 필요하고, 바이러스 감염이 발생했을 때도 일시적인 혈소판 감소증이 동반될 수 있으니, 항암치료를 받는 암환자에서 혈소판 감소증이 있다고 무조건 항암치료와의 관련성만을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상 혈소판이 15~45만개 정도라면 5만개까지는 수혈을 하지 않고 경과관찰을 하지만 2만개 이하로 떨어지면 수혈을 고려한다. 잦은 혈소판 수혈은 혈소판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 수혈에 반응하지 않는 혈소판 감소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수치가 낮다고 무조건 수혈을 하기 보다는 전신상태를 고려하여 출혈의 증거가 관찰되지는지 판단하여 수혈을 하게 된다. 그래서 혈소판을 자주 하는 환자의 경우 수혈의 기준은 1만개 이하로 감소할 때로 낮춰서 시행하기도 한다. 백혈구나 적혈구는 수혈이 아니더라도 그 생성을 촉진하는 가공된 약제가 있지만, 혈소판은 최근까지 수혈이 아니면 방법이 없었다. 혈소판 생성촉진제는 최근 미국에서는 임상연구를 마치고 FDA에서 공인을 받았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질환에서 임상연구를 수행중인데, 항암치료를 하는 중에 발생하는 혈소판 감소증에 적용되는 시점이 언제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항암치료 중에 발치를 하거나 응급 수술을 하는 등 출혈이 유발되는 시술이 예상되면 반드시 항암치료를 담당하는 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필요하며, 출혈 유발 가능성을 높이는 아스피린계 진통제를 복용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다치기 쉬운 격렬한 운동을 피하는 것이 좋고 코를 풀 때도 부드러운 휴지로 힘을 세게 주지 않고 푸는 것이 좋겠다. 남성의 경우에는 상처가 쉽게 생길 수 있는 일반면도기보다 전기면도기를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 

 

점막염과 구내염, 설사와 변비, 오심과 구토

 

우리 몸의 부드러운 점막이 있는 모든 곳에서 항암제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항암제 투여 후 1주일이 지나면서부터 입안 점막이 떨어져 나가면서 구내염이, 위장 점막이 떨어져 나가면서 오심과 구토가, 대장 점막이 떨어져 나가면서 설사와 변비가 발생할 수 있다. 각각 장기에서 점막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 예를 들면 이물질로부터 장기를 보호하고 수분과 영양분을 흡수하고 배설하는 점막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손상되기 때문에 관련 증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우리 몸에서 가장 균이 많이 번식하는 곳이 입안, 손발, 그리고 항문인데, 입안과 항문이 헐면서 제대로 못 먹고 제대로 못 싸니 환자들의 삶의 질이 이만저만 나빠지는 것이 아니다. 커피 좋아하는 사람이 커피 맛을 못 느끼고, 평소에 좋아하는 걸 먹어도 자꾸 울렁거리기만 하고, 밖에서 친구라도 만날라치면 같이 차 마시는 것도 어렵고 이야기나누다가 화장실 가는 일도 힘들다. 우리가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면 밥 한번 같이 먹자가 인사인데, 항암치료 중인 환자들은 외부 식당에서 조미료가 잔쯕 들어간 음식을 사 먹는 일을 엄두조차 낼 수가 없으니 집으로 초대해서 깨끗한 흰밥과 양념안한 맑은 장국으로 밥 먹는게 아니면 누군가와 같이 식사하는 약속은 할 수없는 셈이다. 삶의 유지되는데 먹고 싸는 것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크던가!

그러나 이게 어디 감기 치료하는 과정도 아니고 결핵 치료도 6개월 이상 한다는데, 항암치료 받는 우리 환자들은 이 정도 불편함 정도는 굳건한 마음으로 이겨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불편함을 넘어서 증상이 심해지면 결국 이번에도 응급실로 입원하는 상황이 초래될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약제에 대한 반응이 다르고 약을 흡수하고 대사하는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같은 약제로 치료하는데도 사람마다 부작용이 다르게 나타난다. 같은 약인데도 부작용의 정도에 차이가 있는 것은 물론이요 설사하는 사람, 변비 생기는 사람이 다른 것이다. 오심과 구토, 변비와 설사 등의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제를 잘 조절해서 복용하며 불편한 증상을 조절할 수 있다. 물론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조절해서 약을 먹을 정도의 고수가 되는 것은 항암치료 하루이틀 받은 것으로는 절대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처음 항암치료를 하는 새내기 환자가 무리하게 고수 흉내를 내려고 하면 안된다. 교육도 무지 많이 받고, 치료 경력도 꽤 오래된 환자들, 약제 부작용으로 응급실에도 몇번 왔다갔다 하면서 고생한 고수 환자들은 자기 몸에 일어난 변화를 비교적 정확히 잘 감지하고 나름대로 증상을 조절하며 약을 먹는 노하우를 터득하게 된다.

약제 부작용으로 2-3일 이상 일상적인 식사가 어렵고, 배설 횟수가 비정상적으로 감소하거나 증가하기를 몇일, 그럴 때는 병원에 오셔서 혈액검사를 해서 골수기능을 체크하고 전해질 이상이 있는 경우 이를 교정하며 탈수를 방지하기 위한 수액치료를 하는 것이 몸을 많이 상하지 않게 하는 지름길이다. 항암제로 인해 유발된 설사는 일반 수액치료만으로는 멈추지 않아 지사제를 먹고 48시간 안에 호전되도록 치료의 목표를 잡는데, 약을 먹는데도 호전되지 않으면 주사약을 써서라도 설사를 멈추게 해야 몸의 일반적인 기능이 저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조금 호들갑스럽게 보이더라도 항암치료를 처음 받는 환자들은 자기 몸의 이상상태를 잘 기록하고, 몸이 좀 힘들다 싶으면 병원에 와서 자신 몸의 변화추이를 담당 의사에게 보고하는 게 좋겠다. 의사가 보고 별 일아니니 걱정마라는 말을 듣고 그냥 빈속으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치료 초반에는 자기 몸을 잘 관찰하고 더 손상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주는 것이 좋겠다. (솔직히 말하면 의사입장에서 별일 아닌데 자꾸 병원에 와서 의사를 만나려고 하는 환자들이 반갑지는 않음을 고백한다. 왠만하면 씩씩하게 참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지만 미련하게 참다가 나빠지는 환자가 생기면 절대 안될 노릇이다. (일부 환자들을 제외하고) 병원오기 좋아하는 환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왠만하지 않으니 불안하고 힘들어서 병원에 오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난 힘들면 병원에 오시라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응급실에 와서 힘들더라도 그건 환자들이 견뎌야 할 몫이니 어쩔 수 없지만…)

 

골수기능이 저하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들, 점막세포처럼 몸에서 빨리 자라나는 세포들이 항암제의 공격을 받아 기능이 상실되면서 생기는 구내염, 설사, 소화 장애 등의 부작용들이 놀랍도록 항암제의 치료 주기에 따라 증상이 악화되고 호전되기를 반복한다.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들은 그 주기를 알기 때문에 다음 항암치료기 시작되기 전날 밤이면 예기불안이나 예기구토 증상을 느끼게 된다. 항암치료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구토를 시작하는 자신을 보며 정신력이 약한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고 말한 환자가 있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천하의 체력과 천하의 골수를 가지고 있어도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항암치료가 거듭되다 보면 장사없다. 그 주기를 받아들이고, 가능하면 덜 힘들게, 가장 힘들 때 덜 고생하는 방법을 찾고 예방하며 슬기롭게 항암치료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치료 중에는 의지로 되는 일이 있고 의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음을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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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2009 내가 쓴 책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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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진단하고 나면 수술 가능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부 암에서 수술없이 항암치료만으로, 혹은 방사선치료만으로 완치를 노려볼 수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유방암도 대개의 암처럼 수술을 할 수 있어야 완치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수술을 하지 못할 경우 단기간의 집중치료로 병을 뿌리뽑겠다는 생각을 하면 기대감에 실망이 더 큰 법, 이때는 환자에게 희망과 지나치게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유방암 수술은 전절제술과 부분절제술이 있는데, 수술을 하면서 유방을 지지하는 근육을 어디까지 제거할 것인지에 따라 수술 범위에 차이가 난다. 암 자체만을 생각하면 재발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가능한 주위 조직을 충분히 제거하고 림프절도 많이 제거하는 것이 좋겠지만, 수술 후 후유증을 고려했을 때, 또 유방암의 일반적인 기대수명을 고려했을 때 무조건적인 광범위 절제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변형되어 시행하는 수술이 부분절제술이며 제거하는 근육의 범위가 축소되어 수술 후 정상적인 신체 기능으로 회복되는 데에 걸리는 시간도 짧고 환자의 만족도도 높다. 광범위 절제보다 절제 범위가 좁기 때문에 재발율은 높을 수도 있을같은데 정작 완전절제술을 한 경우와 부분절제술 후 방사선을 병행한 경우 두 그룹을 비교해보니, 재발율이나 전체적인 생존율에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수술적으로 가능하다면 환자들은 부분절제술을 선호하기 때문에 전 전제술에 비해 비중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수술을 마치고 나와 보면 수류탄 크기의 헤모박이라는 이름의 비닐백이 가슴팍에 꽂혀있다. 수술을 하면서 림프절을 제거하고 나면 림프액이 조금씩 새게 되는데 그 액체들이 헤모박을 통해 배액되기 때문에 수술이 끝나도 바로 헤모박을 제거하지 않고, 퇴원할 때도 헤모백을 가지고 가게 된다. 집에서 배액되는 양을 체크해 오면 경과를 봐서 외래에서 뽑으면 되는데, 뽑고 나서도 림프액이 조금씩 샐 수가 있어서 가끔씩 주사기로 소량의 림프액을 빼주어야 할 때도 있다. 환자마다 림프액이 마르지 않고 새는 시간에 차이가 있어서 꽤 오랜 기간 동안 고생하는 환자들도 있다. 

 

수술을 시작할 때 피부를 절개한 라인을 따라 상처로 남는다. 이렇게 절개한 부위의 통증은 수술 후 2년 이상 가기도 한다. 피부를 절개하면서 피부의 잔 신경가지들이 모두 같이 잘려나가기 때문에 통증이 생기는 것인데 신경세포가 서서히 재생되면서 통증이 무뎌지고 견딜만해진다. 일부 환자에서는 절개선이 등까지 연장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경우 환자들은 등쪽의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에 온다. 사실 그 정도의 통증은 심각한 정도가 아니어서 참을려면 참아볼 수도 있는 정도의 통증이지만, 환자들은 수술까지 다 받고 치료가 종결되었는데도 뭔가 예상치 못한 통증이 찾아오면 재발했을 까봐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에 병원에 오는 것 아닌가 싶다.

수술의 원리상 당분간 통증이 간헐적으로 왔다갔다 하게 될 거라며, 심하게 통증이 느껴지면 일시적으로 진통제를 먹는게 도움이 될거라고 설명해주면 그제서야 안심을 하고 진료실을 나간다. ‘재발 때문에 아픈게 아니란 말이죠?’라며 질문에 의사인 내가 아닙니다. 걱정마세요라는 대답을 해주기를 바라며

 

수술 후 재발방지를 위해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들은 총 6-8회에 걸쳐 외래에 내원하곤 하는데 이들은 일단 몸에 병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의사입장에서는 크게 진료에 부담을 갖지 않는다. 암세포를 일단 몸에서 몽땅 제거한 다음이라 환자들의 전신 상태가 양호하기 때문에 왠만한 문제들은 환자의 몸에서 스스로 알아서 해결한다. 좀 불편한 증상이 생겨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별로 신경쓸 일이 없다. 그런 환자들이 외래에 오는데 환자 상의를 다 걷어붙이고 상처에 이상은 없는지, 만져지는 림프절은 없는지 목 주위와 겨드랑이를 검사하시고, 세밀히 유방진찰을 세밀히 하느라 외래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선생님이 계셔서 이미 수술을 다 한 환자인데 신체검진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시냐고 여쭤보았다. 수술한 자리에서 재발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 상처 표면으로 이상 징후가 제일 먼저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눈으로 보는거랑 만져보는 거랑 느낌이 다르고 CT로 보는 거랑 육안으로 검진하는 거랑 다르기 때문에 영상검사를 무조건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매번 림프절을 만져보고 상처를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피부로의 재발을 점검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건강해 보이는 환자라도 이들은 결국 암환자였구나, 아직 함부로 마음을 놓으면 안되는 환자로구나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환자도 마찬가지이다. 수술도 끝나고 항암치료도 끝났으니 이제 치료의 모든 과정이 종결된 것이 아니라, 자기 관리, 자기 검진을 통해 재발의 조기 징후들을 잘 포착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될 것이다. 식생활도 균형잡인 영양식단으로, 살찌지 않게 (수술 후 체중증가는 재발의 위험을 높힌다고 되어 있으므로) 운동하고, 자가로 유방검진해서 남은 유방에서 다시 만져지는 몽우리는 없는지, 피부에 이상소견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이상한 딱딱한 느낌으로 만져지는 건 없는지 잘 챙겨보시라고 당부드린다. 그래도 여하간 수술을 다 마치신 당신, 이제 치료의 절반은 무사히 통과하고 계신 것 같으니 충분히 격려해드려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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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의 진단과 병기의 의미

 

유방암이 진단되면 MRIPET-CT등 영상학적 검사를 통해 암의 크기(T), 림프절의 분포와 개수(N), 원격 장기로의 전이여부(M)에 따라 병기(TNM staging)를 결정하게 된다. 유방암 환자의 예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병기이고 병기에 따라 생존 그래프의 차이가 확실하다. 암을 진단받은 환자의 마음이 다급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병기 설정을 위한 추가 검사를 하는 것은 예후를 예측하고 장기적인 치료계획을 세우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별로 크지도 않고 증상도 없어요. 초음파 검사에서는 양성같다고 했는데, 제가 정말 암이 맞나요?”

 

유방암을 의심할만한 증상들이 있다. 유두가 함몰되거나 유두에서 진물이나 핏빛 분비물이 나올 때, 만져지는 멍울이 있다거나 유방 주위의 피부가 함몰되거나 붓고, 피부 색깔이 붉게 변하고 피부궤양이 생기면 유방암을 의심해야 한다. 정작 유방은 괜찮은데 겨드랑이에서 뭔가가 만져져 진단되는 경우도 있다. 유방은 표피 조직이기 때문에 주의깊게 들여다보거나 만져보다가 이상을 발견하여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항상 이런 가시적인 변화를 동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초기 변화를 놓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육안적인 변화나 여타의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건강검진을 하다가 암을 발견하는 경우, 혹은 전신적으로 암이 진행하여 이미 수술을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 진단을 받기도 한다. 즉 특징적인 증상과 변화가 없더라도, 본인이 눈치채지 못하는 상태에서 유방암을 진단받게 되는 경우도 꽤 많다는 뜻이다. 크지 않고 증상도 없고 통증이 없어도 유방암일 수 있기 때문에 의심이 되면 반드시 검사하고, 애매하면 조직검사로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다.

모든 병에서 질병의 조기 진단이 모두 좋은 예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생존기간과 예후는 비슷한데 자주 검사해서 일찍 발견한 탓에 생존기간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질환들도 있다. 그러나 유방암은 조기 검진을 하여 병기가 낮은 상태에서 발견되면 수술하여 완치될 수 있는 확률이 높고 생존률을 유의미하게 향상시킬 수 있는 병인만큼, 결과가 두려워서 검사를 미루는 것은 아주 미련한 행동이다.

 

일부 암을 제외하고 모든 암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방암은 초음파나 CT, MRI 등과 같은 영상검사를 하여 진단할 수 없고 반드시 의심되는 병변에서 유방 조직을 떼어내 암세포의 존재를 확인해야만 비로소 암이라고 확진할 수 있다. 조직검사를 하여 얻은 조직에 약품을 처리하여 굳히고 녹이고 염색하는 등의 조작 과정에 48-76시간이 소요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추가 염색을 하기도 하고, 조직이 불충분하여 판정을 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조직검사를 재시행하거나, 크기가 애매하면 2-3개월 후에 다시 조직검사를 해보는게 필요한 경우도 있다. 환자들은 조직검사를 다시 하게 되는 상황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오진한 것이 아니냐, 시술을 잘못한 게 아니냐는 원망섞인 불만을 표한다. 환자들은 조직검사를 해놓고 결과가 기다리는 동안 초조하고 지치지 않을 수 없다.

 

유방암이라면 저는 몇기인가요?

 

암을 진단받은 환자의 예후, 즉 완치될 수 있는지, 앞으로 얼마나 무병장수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병기(stage)이다. 4기가 아니라면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대개 수술을 할 수 있다. 수술을 하고 나서 항암치료를 하기도 하고, 수술 전에 항암치료를 하는 항암-수술-항암치료의 샌드위치식 치료를 하는 등 순서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수술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대개 완치 가능성을 가름하기 때문에 의사들은 암이 진단된 환자에서 가장 먼저 판단해야 하는 것이 수술 가능성 여부이다.

그러나 사실 정확한 병기는 수술 후에 확정된다. 수술로 병이 있는 유방과 근처 림프절을 제거한 다음, 그 조직들을 슬라이드로 만들어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아서 각각의 조직에 암세포가 숨어있있는지 없는지 판단하여 병리학적 진단이 붙여지고 이에 따라 병기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간단한 세침흡입술이나 덜 침습적인 방법으로 조직검사를 하여 암이 진단이 될 수는 있으나 정확한 병기는 수술을 해야만 알 수 있다. 수술하기 전까지는 영상검사를 바탕으로 한 임상적 병기로 치료를 시작한다. 그러므로 수술을 하고 나면 처음에 설명들었던 병기와 차이가 나는 환자들이 있게 된다. 처음 진단이 되었을 때는  종양의 크기가 크고 림프절 전이도 많아 병기가 높았는데 수술 전 항암치료를 통해 종양의 크기를 줄이거나 림프절 전이 개수가 감소하게 되면 병기가 낮아질 수도 있다.

 

유방암의 생물학적 특징

 

모든 세포의 표면에는 다른 세포와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수용체들이 존재하는데, 이들 수용체 사이의 신호를 매개로 하여 세포들이 분화, 사멸하게 된다. 암은 세포 사이에 신호가 과다하게 발생하여, 혹은 같은 신호를 보내도 수용체가 과민하게 반응하여 세포의 분열과 성장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세포가 증식하는 현상이다. 유방암 세포의 표면에는 에스트로젠 수용체, 프로제스테론 수용체, HER2 수용체가 존재하고 있는데 에스트로젠, 프로제스테론 수용체가 과발현되어 있는 것을 호르몬수용체 양성 그룹, HER2 수용체가 과발현 되어있는 것을 HER2 그룹, 이들 수용체가 모두 없는 것을 삼중음성그룹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들 그룹별로 질병의 진행과 전이되는 패턴에 차이가 있고, 치료약제의 선정, 예후 등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유방암은 한가지 속성을 가진 질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정 수용체가 과발현되어 있다면 그 수용체를 차단하는 것이 암의 진행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에스트로젠 수용체나 프로제스테론 수용체가 과발현되어 있다면 세포 표면의 호르몬수용체를 직접 차단하는 약제를 쓰거나 에스트로젠으로 전환되게 하는 효소가 작용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림으로써 에스트로젠 경로를 막아 신호등의 빨간 불을 끌 수 있다. 예전에는 HER2 수용체의 과발현 그 자체가 나쁜 예후인자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 수용체에 결합하여 HER2 수용체의 활성화를 억제시킬 수 있는 Trastuzumab(Herceptin)이라는 약이 나오자, 나쁜 예후인자로서의 불리한 점을 극복하고 생존률을 향상시키게 된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 Herceptin을 쓴 HER2 수용체 양성 그룹의 환자들이 HER2 수용체 음성그룹에 비해 오히려 예후가 좋기도 하다는 논의마저 나오고 있다. 그래서 요즘 항암제 시장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 중의 하나는 환자의 암세포 표면에 타겟이 될만한 수용체를 가지고 있을 때 해당 molecular pathway를 차단하는 약제를 개발하는 것이고 유방암은 이런 연구의 흐름을 주도하는 영역이다.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 환자들의 세포는 비교적 얌전한 편이다. 수술을 하고 나면 재발하지 않고 잠잠히 있는 편이다. 그렇지만 다른 암종은 5년이 지나면 재발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일단 완치판정을 할 수 있는 것에 비해 이 호르몬 수용체 양성 환자들은 10, 15년이 지나도 재발할수 있다. 재발해도 병으로 인한 증상이 별로 없고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항암제를 쓰지않고 항호르몬제를 쓰면서 2-3년씩 잘 견딘다. 항암제를 쓰지 않지만 병도 컨트롤 되고 삶의 질도 좋고 누가봐도 재발된 4기 유방암 환자라고는 믿을 수 없게 활동적으로 사는 분들이 많다.

반면 삼중음성유방암 그룹에 속하는 경우, 결혼도 안한 아가씨가 1기로 수술하고 조기 발견에 안도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보조항암치료를 마친 지 불과 3-4개월도 되지 않아 뇌전이가 발견된다든지, 심지어 보조항암치료를 하는 중에 재발이 발견되어 의사와 환자 모두 충격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머리가 가끔 아프다는 말에 혹시나 하고 찍어본 MRI에서 다발성 전이와 뇌막전이가 발견되면 치료한 의사도 할말이 없다. 그리고 매우 빠른 속도로 병이 나빠진다. 삼중음성 유방암이기존의 항암제로 전혀 치료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효과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에게는 아직 타겟이 없다.

병의 코스는 한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 여러 예후 인자들이 상호작용하고, 치료 과정중에 변화하면서 환자들의 투병과정이 전개된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미리 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없다. 다만 유방암 환자는 아무리 상태가 나빠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대개의 4기 암환자들은 중환자실 치료를 잘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방암 환자들은 생명력은 좀더 강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젊어서 그럴까? 그러고 보니 우리 나라 유방암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젊은 유방암 환자가 많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유방암 발생 평균 연령이 60세 전후인 것에 비해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들의 평균 발병 연령은 10년 이상이 젊은 40대 후반이니, 유방이 치밀해서 단순유방촬영에서 유방암이 숨겨져 보이는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젊은 여성들의 유방암 선별검사로 단순유방촬영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초음파 검사를 병행했을 때 선별검사를 통한 조기 발견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왜 젊은 유방암 환자가 많은가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명확한 대답이 제시된 것은 없다. 더불어 젊은 유방암 환자가 많다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해명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젊은 유방암 환자들의 어려움을 지원하는 사회적인 공식적, 비공식적 시스템이 더욱 필요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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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진단받은 당신께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악성입니다.”

악성이라는게 암이라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유방암입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다.

무겁게 긴장되고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침묵

분명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 믿고 싶은 환자가 의사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음으로써, 혹은 암 진단을 받고 파랗게 질려버린 환자를 보고 의사도 마음이 초조해져 앞으로 필요한 추가 검사와 치료 일정을 의례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침묵의 순간을 무너뜨린다.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자들, 앞으로 의외의 상황에서 침묵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지만 처음 진단받는 이 순간의 침묵이 가장 무거울 것이다.

그러나 침묵의 벽을 허물고 앞으로 나가는 용기도 환자 스스로에게서 나온다. 의사는 그 용기를 잘 북돋워주고 이들 모두가 수퍼맨처럼 씩씩하게 치료받고 일상의 수다스러움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아닐까?

 

처음으로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자에게 의사인 나는 다음 중 하나로 설명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 동안의 검사결과를 종합해보니 일단 수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수술을 할 수 있다는것은 완치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 다행입니다. 환자분의 병기는 수술 후 나온 조직을 검사해서 최종적으로 결정될 것입니다. 그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가 필요할지를 상의드리겠습니다. 일단 외과 선생님과 수술 날짜를 잡읍시다

 

혹은

수술을 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만 지금 종양의 크기도 크고, 겨드랑이 림프절까지 전이가 된 것 같아 수술 전에 항암치료를 먼저 합시다. 크기를 좀 줄인 다음 수술을 고려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수술을 하시면 재발의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겨드랑이 림프절에 악성세포가 있는지 확인하는 검사를 하고 만약 거기서도 악성세포가 나오면 항암치료를 먼저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

 

혹은

수술을 할 수 있는 병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유방에서 병이 시작되어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된 4기 유방암입니다. 이제 수술은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전신 항암치료를 통해 병을 다스리는게 좋겠습니다. 완치는어렵습니다. 다만 병을 잘 조절해서 고통없이 생명을 연장하실 수 는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치료해봅시다.”

 

환자가 어느 병기에서 진단을 받았는지에 따라 치료의 시작상황이 약간 다르다. 왜 나는 이런 방식으로 치료를 받게 되는지, 병기가 높지도 않다면서 머리가 다 빠지고 구토감도 심한 빨간 항암주사를 맞아야 하는지, 왜 나한테만 보험도 안되는 비싼 표적치료제를 권하는지, 누구는 방사선치료를 하고 누구는 하지 않는지, 누구는 항 호르몬제를 5년먹고 누구는 10년먹고 누구는 먹지 않는지, 결혼하지 않은 미혼 여성이 항암제를 맞게 되면 임신과 출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지, 이 모든 상황이 환자 개인의 병 상태, 암세포의 특징 등 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개된다. 그러므로 다른 유방암 환자의 치료와 나를 비교할 필요도, 비교할 수도 없고, 하물며 다른 종류의 암 환자들과 치료 방법과 과정이 다르게 진행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의아해 할 필요가 없다. 또 귀가 얇아져서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의 이야기에 솔깃할 필요도 없다. 담당 의사를 믿고 그와 상의하고 표준적인 유방암 치료 지침을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막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이 상황 자체가 얼떨떨하고 의사가 또박또박 이런 설명을 해 주어도 아직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의사는 환자가 마음을 다잡을 시간 동안 잠시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자들에게 병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앞으로의 치료계획을 잘 설명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진단 초반에 환자가 자신의 병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갖는 것이 현명한 환자로 살 수 있는 첫걸음이다. 다른 암에 비해 유방암은 오래 사는 병이지만 수술한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재발되고, 재발되도 치료가 잘 되기 수년을 별 증상없이 지내시는 분도 있어  병의 코스가 천차만별이다. 그러므로 난 암이니까’, ‘재발했으니까절망하고 치료를 포기하고 세상을 등지면 안되는 병이기도 하다. 현명한 환자가 되어 자신의 삶의 스스로 콘트롤하며 지내는 분들이 참 많다.

반면 일부 환자들은 병기도 낮고 수술로 병을 완벽히 제거하여 눈에 보이는 병이 없는 상태에서 시행하는 재발방지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 중에 항암제를 쓰고 있는데도 뇌전이, 뇌막전이, 골수전이 등이 나타나 급격히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악화되면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아직까지 환자의 병이 급격히 악화과정을 밟고 있을 때 이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약은 별로 없거나 약을 써도 잘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환자 앞에서 고민하는 모습만 보여주다가 제대로 치료도 못하고 병에게 패배하여 물러나고 마는 경우도 있다.

환자의 병기가 높지 않고 예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만한 위험요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완치가 가능하다, ‘내가 해낼 수 있다, 이미 많은 환자들이 잘 이겨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위험요인이 많은 환자라면 유방암의 생물학적 특징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고 끊임없이 임상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니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자, 수술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가장 좋고, 그렇지 않다면 증상을 잘 조절하여 일상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항암치료를 하자고 말하여 치료를 시작하고 싶다.

유방암을 치료하려면 자기 몸을 잘 관리하고 공부하는 똑똑한 환자, 교과서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최신 지견에 소홀하지 않으면서, 근거 중심의 치료 전략을 구사할 줄 아는 의사, 이들이 협력적인 관계를 맺고 서로를 신뢰하는 것이 성공적인 치료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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