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퇴원해서 있을만한 병원

슬기엄마 2011. 11. 13. 19:23


유방암이 복막으로 전이된 환자.

어떤 암이든 복막 전이가 진행되면 복막과 장이 유착되어 장 운동이 원할하지 않다.
복막증이 진행된 환자들은 장이 막힌 건 아닌데 꼭 막힌 사람처럼 잘 먹지 못하고
먹으면 토하고, 가스도 잘 배출되지 않아 콧줄을 끼우고 있기도 한다.
유방암 복막 전이는 그리 흔하지는 않은데 이 환자는 복막증이 잘 치료되지 않아 제대로 못 먹고 지낸지가 수개월.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먹고 기운내서 항암치료를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두꺼워진 복막때문에 영양실조로 돌아가시게 생겼다.
60대 초반의 환자는 의식도 맑고 본인의 상황도 잘 이해하고 계시고 우리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받으신 분이라, 어떻게든 치료를 받고 좋아지고 싶어 하셨다. 예전에도 힘든 위기의 시간을 항암치료를 하여 넘기신 경험이 있다. 
그래서 장을 밖으로 빼내는 수술을 하였다. 원래보다 짧아진 장이지만, 유착이 덜 심한 장을 이용해 조금이라도 음식을 먹고 흡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술을 하였다. 복강경 수술로 배를 들여다보니, CT에서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복막전이가 진행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주 미세한 종양세포들이 복막과 온 복강에 퍼져 장운동이 전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항암치료를 못하면 이대로 돌아가시겠구나, 그런데 음식을 하나도 못 드시니 어떻게 항암치료를 하나...
그러는 사이 흉막에도 물이 차기 시작한다. 암의 활동성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나보다. 배는 돌처럼 단단하다. 수술을 했는데도 전혀 음식을 넘길 수가 없다. 들어가는 대로 다 토한다. 이대로 병이 나빠지는 과정을 천천히 지켜봐야 하는구나...

침상에 누워서 할 수 있는 재활치료도 하고...
장을 빼낸 후에도 토하는 증상이 있어 콧줄을 끼워 복압을 감압시키기도 하고...
자꾸 토하다보니 속쓰림이 심해 주사제로 점막 보호제를 드리고...
그런데 그 이상은 더 할게 없다.
이제 더 이상 중요한 검사와 특별한 치료도 없다.
이렇게 시간이 간다.

착한 환자, 그리고 그 남편분께 몇일동안 뜸을 드리고 미루다가
이제 호스피스 병원이나 요양병원에 가서 계시는게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아시다 시피 대학병원의 역할은
급성기나 위기시에 신속히 검사하고 거기에 맞게 치료하여 조기 퇴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른 급한 환자도 제때 병원을 이용할 수 있고....
...
...
협력병원을 알아봐드릴께요.
지금처럼 수액맞고 일반적인 간호와 보살핌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병원으로요.

순순히 그렇게 하겠다고 하신다.

그때가 2주전.

시간이 흐르는데 환자가 퇴원할 준비를 안한다.

또 다시 어려운 말을 꺼내야 했다.
협력병원으로 가시는 문제를 생각해보셨냐고.

아저씨는
협력센터에서 소개해 준 병원을 가봤더니
치매환자, 의식없는 환자, 교통사고 환자 그런 환자들이 다 섞여 있어
분위기도 너무 소란하고 정신이 없어서
암 말기 환자인 부인이 가 있기에는 적절치 않아보인다고
도저히 그런 곳으로 당신 부인을 옮길 수 없다고 하신다.

1주일만 시간을 더 달라고 하신다.
협력센터를 통하지 않고 당신이 직접 알아보시겠다고.
그리고 몇 군데 병원을 돌아다니신 모양이다.
미안했다.

지난주
적절한 호스피스 병원을 찾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병원쪽에 당장 입원 자리가 안나서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1주일이 또 지났다.

2주 이상의 시간동안
환자에게는 큰 변화가 없고
의사로서 나도 환자를 위해 별로 해 드린게 없다.
그냥 시간이 갔다.
회진을 도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간이 지날 수록 환자에게 할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물 한모금 못 넘기는 환자를 억지로 퇴원시킬 수도 없었다.
다행히 환자는 붙이는 진통제로 통증 조절이 잘 된다. 그래서 편안하다. 그냥 못 먹고 있을 뿐이다.
천천히 병이 나빠지면서.
우리병원에서 진행할 수 있는 호스피스 면담도 다 했다. 추가적인 뭔가를 해 드릴게 없다.
그런데 이 분이 갈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임종을 준비해야 하는 암환자가 가서 지낼 수 있는 적절한 병원이 없다.
환자를 떠밀어서 내보낼 수는 없었다.

협력병원이라고 하지만
말기 암 환자를 위한 서비스가 어느 정도 표준화되어 제공되고 있는지
그런 걸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모병원과의 연계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병원이 대학병원으로서 협력병원과 의료서비스를 표준화하고 효율적으로 연계하는데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환자는 낯선 병원으로 가서 찬밥신세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가기 싫어한다.
그럴 때 내가 믿고 보낼 수 있는 병원이 많았으면 좋겠다.

갈 만한 병원이 없다고 퇴원하지 않는 환자들을 보면 내심 울컥할 때도 많다.
그런데 우리 협력센터가 소개해 준 병원에 갔다가 문제가 생겨서 금방 돌아오는 환자들을 보면 아직까지 진료 연계가 효율적으로 되지 않는 우리의 현재 시스템 때문에 환자만 고생하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울컥한 마음을 삼킬 수 밖에 없다. 

검사도 하지 않고
치료도 하지 않고
그런데 집에서 지낼 컨디션은 안되는 환자.
어떤 병원도 별로 환영하지 않는다.
아니면 무관심하게 입원만 시켜놓는 요양병원, 혹은 그냥 환자가 집대신 머물러 있는 요양원이 있을 뿐이다.

호스피스
임종준비
삶의 질
그런 것들이 아직은 우리에게 좀 멀다.
사치스러운 주제라는 생각마저 든다. 어떤 환자를 볼 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