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임종시간

슬기엄마 2011. 11. 13. 20:01

이제 환자가 돌아가시는 시간이 언제인지 알 것 같다.

24시간 내, 48시간 내, 72시간 내 돌아가실 것 같다는 나의 느낌은
거의 맞는다.
그래서 환자와 가족들을 단속한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할 말 있으면 다 하시라고, 볼 사람있으면 다 만나시게 해 주시라고. 환자는 아직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은데 왜 그러시냐고. 가족들은 부인한다.
재산문제, 법적인 문제 그런 것도 다 정리해 놓는게 좋겠다는 나의 썰렁한 말에 경악을 금치못하면서도 내가 이렇게까지 나오면 가족들이 감상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린다.

내 병이 치료되지 않는 암이라는 사실을 알 때부터
환자와 가족은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이
삶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치료 가능성이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치료해야 한다.
완치되지 않을 거니까 대충 검사하고 대충 치료하면 안된다.
최선의, 최상의 치료를 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연장하고, 그 시간동안 삶의 질이 잘 유지되어야 한다.
항암치료는 그걸 도와줄 수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이득보다 환자에게 위험, 손해가 되면 더 이상 하면 안된다.

항암치료를 안하면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환자와 가족들은 거액의 치료비용을 들여서라도 뭔가를 시도한다. 죽기 직전에 수천만원짜리 치료를 한다.
입증되지 않은 치료에 너무 많은 돈을 쓴다. 그걸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돈을 써도 별로 도움을 받지 못한다. 심리적인 위안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하고
하루를 살더라도 죽기 전에 후회없어야 한다.
눈 감기 전에
그래,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헤어질 수 있으려면 살아있는 시간동안 준비할 게 많다.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지난 한 주간
여러 가족들에게 환자의 임종시간을 예고해 드렸다.
퇴원하겠다는 가족을 잡았다. 이대로 가시면 가시다가 돌아가신다고 했다. 그리고 5시간만에 돌아가셨다.
3일 안에 돌아가실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하루 반짝 좋아지니까 가족들 마음이 또 바뀌는 모양이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잠깐 좋아지시는 거에요. 지금 좋아보여도 치료는 안할거라고. 그러니까 정신 돌아왔을 때 말씀 많이 나누시라고. 그리고 다음날 돌아가셨다.
아주 빠른 속도로 나빠지는 환자,
가족들은 이전 항암치료에서 드라마틱하게 좋아진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번에는 어려울 거라는 나의 말을 믿지 않는다. 부정맥이 오고 혈압이 떨어진다. 가족들은 중환자실을 고집한다. 기관삽관하고 투석도 했다. 24시간 내에 돌아가실거라고 말씀드렸다.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다.

저승사자가 된 것 같다.
시간을 맞추다니.
가족들에게 그만큼 준비할 시간, 마음의 준비를 하실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다.
마지막 시간과 마음을 환자와 잘 나누셨으면 했다.
그래도 가족의 마음은 그런게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