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입원했으나 좋아지지 않는...

슬기엄마 2011. 10. 17. 18:48


환자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입원한 후 좋아지기는 커녕 점점 더 나빠지는 환자들이 있다.
요즘 입원 분위기 왜 이러지?


자궁경부암 할머니는
최근 1-2주일 사이에 한쪽 팔, 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이 생겼는데,
외래날짜가 얼마 안남았으니 그때 말해야하지 하고 외래날 맞춰서 오셨다.
다른 만성질환이 많아 가능하면 입원을 싫어하신다. 당일로 왕 푸쉬를 해서 MRI를 찍었다. 오른쪽 뇌로 전이된 종양이 보인다. 
감마나이프를 했지만, 마비된 왼쪽 팔, 다리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평소 치료 의지가 엄청 강하신 분이었는데, 왜 병원에 빨리 오시지 않았을까?
집이 전라도 저 먼 곳에 있어서 그랬을까?
누워있는 사람은 지금 당장은 제아무리 컨디션이 좋아 보여도 금방 컨디션이 쇠한다.
폐렴도 잘 걸리고
사소한 감염에 노출되고
근육양도 금방 감소하고
휠체어를 타든, 천천히 걷든, 움직여야 산다.
자기 몸을 못 가누는 사람들, 잘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은 항암치료를 하면 예후가 좋지 않다.
할머니는 오른쪽은 쌩쌩하다며 빨리 항암치료를 시작하자고 하시는데...
어려울 것 같다.


유방암 아줌마. 5일 정도 등이 너무 아팠다고 한다.
원래 척추뼈로 전이가 된 상태라 수술을 한 적도 있는 곳이니 그러려니 하셨다고 한다.
아픈 거 참는데 이골이 난 터라 병이 좀 나빠졌나 했다고 한다.
외래 올 날이 지났는데 안 오시길래 전화를 해봤더니, 다리가 잘 안 움직여서 외래를 못오고 있다고 한다. 아뿔사, 난 119라도 타고 응급실로 오시라고 했다. 오자마자 MRI를 찍었고 새로 생긴 종양이 척수를 누르고 있어 양 하지에 운동, 감각 마비가 다 와있다. 소대변 감각도 없다. 소변줄을 넣었더니 1000cc 정도가 나온다.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였다. 매일 아침 회진을 돌면서 다리를 꼬집는데, 오늘 겨우 느낌이 있으시다고 한다. 환자는 그것만으로도 좋은지 활짝 웃으신다. 난 억장이 무너지는데... 나보다 겨우 몇살 더 많은데... 왜 이렇게 미련했을까...


85세 유방암을 진단받은 할머니. 수술과 항암치료를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근치적 목적으로 방사선치료를 시작했는데, 그것도 끝까지 마치시지 못했다.
그리고 3개월 후, 숨차서 폐렴인줄 알고 입원했는데, 아무리봐도 폐렴이 아니다.
당뇨 고혈압이 있어 심부전도 의심했지만 어떤 약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체중이 매일 조금씩 느는데, 이뇨제에 반응하지 않는다. 폐 조직검사를 해보고 싶지만, 그걸 할 정도면 유방암 수술을 하는게 나았을 뻔 한 할머니다.
그냥 항생제 쓰고 네불라이저로 기관지 확장제를 드리지만, 마음 속으로는 폐전이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든다. 전이라는 가정하에 어떻게든 편하게 해드리고 싶어서 주사 진통제도 쓰고 수면제도 써 보지만, 할머니 정신이 말똥말똥 하다. 아침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왜 이렇게 숨쉬는게 편해지지 않는거냐며 호통이다. 똑바로 누워주무시지도 못하는 할머니, 도대체 어떻게 해드려야 편하게 잠을 주무실 수 있을까? 할머니는 귀가 어두워서 잘 못 들으신다. 그래서 큰 소리로 병이 좋아지지 않는 이유는 폐렴이나 심부전이 아니라 폐전이 때문인 것 같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말씀드렸지만, 정작 할머니는 알아먹지도 못하고, 다인실 옆 환자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차...


우리병원에서 난소암 수술과 치료를 받았는데,
재발한 병변에 대한 방사선 치료 이후 발생한 장유착 때문에 너무 고생을 많이 했나보다.
뭔가 치료를 하고 나서 심하게 고생을 하면, 환자들은 그게 다 그쪽 과나 의사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그 의사들을 다시는 보고 싶어하지 않아한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우리병원에서 기록을 다 떼어다가 다른 병원에 가서 고가의 치료를 많이 받으셨다. 내가 보기에는 별로 적절하지 않았고, 효과적이지 않았다. 
환자는 구토를 너무너무 많이 하다가 횡설수설하기 시작했고 뇌전이 의심하에 우리병원에 다시 돌아왔다. 그 병원에서는 방사선 치료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병원으로 가라고 했다고 한다. 검사를 해보니 뇌전이가 아니고 원래 복막의 병이 진행한 상태이다. 전해질 이상 그리고 요로감염이 같이 있어 패혈성 쇼크 상태였다. 환자와 보호자는 우리 병원에 대해서는 원망이 많지만, 이전 병원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의학적 사실과 이에 대한 환자의 감정은 별개로 존재한다. 나는 요로감염을 먼저 치료해야 한다. 항생제 치료. 환자와 보호자가 보기에 해주는 것 없이 시간이 간다고 느끼는 것 같다. 설명을 했지만, 잘 통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병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태인가 보다.


환자가 입원을 하면
매일매일 하루의 계획이 있어야 한다.
오늘은 뭘 검사해서, 뭘 진단하고, 그래서 뭘 해주고, 그리고 나서 뭐가 나아지고
이렇게 스케줄이 쫘악 나와줘야 하는데.
요즘 입원한 환자들은 그렇지 못한 환자들이 많다.
계획을 세우기도 어렵고
뭘 해줘도 별로 좋아지지 않고
환자 상태가 좋지 않으니 라포도 잘 안생기고...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좋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입원환자가 며칠 사이에 늘었다. 
지금으로선 추가적인 항암치료가 어렵겠네요,
지금으로선 입원을 유지하고 있어도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일단 집으로 가셔서 생활을 좀 해보시고, 컨디션이 나아지는지 보고 다음 계획을 세웁시다, 
이런 말을 하려면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
환자, 보호자 마음의 상처 받지 않게.
포기한 듯한 인상 주지 않게.
그런데 정말 나에게 궁극적인 대안이 있지 않으면 이것도 사탕발림이 될텐데 어떻게 하나.
이 모든 영혼을 품고 보살피기에 우리병원 호스피스는 너무 취약하다.

오늘 밤에는 조용히 병동을 순회하며
더 이상 치료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최소한 5명의 환자에게 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