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병실을 옮깁시다

슬기엄마 2011. 10. 12. 00:08


그녀는 자신이 곧 죽을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날짜가 거듭될수록 불평이 줄어든다.
우리는 그날이 곧 다가올거라는 걸 알지만 서로 입밖에 내지 않았다.
급격하게 나빠지는 병.
지난 금요일 환자를 퇴원시키고 싶었다.
하루라도 집에서 아이들과 지내게 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다.
나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항암치료를 하는 문제에 대해 상의하였다.
문헌에 보고된 반응율은 10% 내외.
그러나 환자는 치료를 해보겠다고 한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까 하루라도 더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컨디션이 그럭저럭 괜찮으니까 해보자....

그리고 주말을 보냈다. 주말 사이에 얼굴이 더 퉁퉁 붓는다.
항암제를 투여한지 몇일 안되니까 좀 경과를 봐야겠지만, 약이 안듣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오늘 저녁, 남편과 양가 부모님들을 오시게 했다.

이번에는 퇴원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병실을 옮깁시다. 1인실로.
그리고 갑자기 호흡곤란이 와도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통증조절하고 혈전방지를 위한 약만 유지하겠습니다.
식사도 너무 무리해서 먹으려고 하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환자도
남편도
예상하고 있던 바였지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나보다.
오늘 아침 환자의 눈동자는 겁에 질려 있었다.

나는 진통제를 올렸다. 오늘 하루 통증을 못 느끼고 많이 편안하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을 너무 많이 부어있다.

처음뵙는 시어머니는 상황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우신가보다.
근본적인 문제부터 다시 물어보신다.
그때 유방보존술을 한게 잘못 된건가요?
처음에 항암제를 좀 더 쎈걸 썼어야했나요?
당신 어머니의 질문에 남편은 답답했던지 자리를 일어서서 어디론가 가버린다.

한참을 우시던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친정어머니가 말문을 여신다.

그래도 딸 애가 선생님을 좋아했어요.
병원에서 항암치료 받고 집에 돌아오면 얼굴이 밝아졌어요.
잘 될 것 같다고...
어려운 병이지만 나에게도 기적이 찾아올지 모른다고...

아마 첫 항암치료에 반응이 좋아서 그렇게 생각하셨을거에요.
처음 약제에는 반응이 좋아서 증상이 많이 좋아지시고 CT도 많이 좋아졌었거든요.
몸이 편해지니까 마음도 편안해지셨을텐데...
그 뒤로 안 좋아지기 시작하니까 걷잡을 수 없네요....
저도 면목이 없어요...

환자는 보지도 않고 보호자들만 만나고 나서 내방으로 와버렸다.
환자는 뻔히 내가 병실에 와서 보호자면담을 하고 간걸 아는데도 나는 환자를 만나지 않았다.
그냥 들러서 괜찮으시냐고 물어보고 와도 되는건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와버렸다...

환자가 좋아질 때도
환자가 나빠질 때도
나는 한결같은 의사가 되어야 하는데...
환자가 나빠질 때 의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환자가 너무 젊으니 무슨 말을 해도 어려울 것 같다.
끝까지 환자에게 믿음을 주는 의사, 도움을 주는 의사, 그런 의사로 남고 싶은데...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