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삶과 죽음에는 때가 있는 법

슬기엄마 2011. 9. 25. 17:03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4기 암환자의 중환자실 및 인공기도삽관, 심폐소생술을 해야하는 기준은

직전의 전신상태가 아주 양호했을 때 - 회복의 가능성이 높으므로
치료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앞으로 효과가 좋은 항암제가 남아 있을 때 - 이 고비를 넘기면 다시 치료하여 생존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찬스가 있으므로
최근 시행한 치료와 관련하여 합병증이 생겼을 때
뇌전이 등 치명적인 장기에 병이 없을 때
정도이다.

교과서에도 명확히 기준이 나와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나 나름의 이러한 기준으로 중환자실 입실을 결정하지만
매번 환자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중환자실 입실을 결정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36세
아이가 둘인 자궁경부암 환자.
진단받은지 1년.
처음에는 수술가능한 병기라고 생각해서 수술방에 들어갔다가
영상에서는 확실하지 않았던 대동맥주위의 림프절로 병이 많이 진행된 것으로 보고
완치목적의 수술을 하지 못하고, 완화적 개념으로 주요 병변을 제거하는 식으로 수술하고 배를 닫고 나왔다.
그리고 항암치료를 6번 했는데,
항암치료를 하고 나서 찍은 CT에서는 폐와 뼈로 전이가 되었다.
완전히 매스를 제거하지 못했던 복강 내 병변도 다시 자라고 있어서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원래 자궁경부암은 방사선치료에 예민하다.
일단 복강 내 병변을 타겟으로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병행하여 진행하였다.
그리고 나서 찍은 CT는 병이 더 나빠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환자는 진단을 받은 후 지속적으로 병이 나빠지고만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협진의뢰되어 진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병이 나빠지니 복수도 많이 차고 배도 아프고 여러모로 불편한 것이 조절이 안된다.
나이가 젊고
항암치료에 적극적인 환자.
현재 보험이 되는 약제도 없다.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항암치료를 하려고 경과관찰을 하는데
신장 수치가 조금씩 올라가고, 진통제 반응이 점점 없어진다.
진통제를 증량하니까 소변도 잘 못 보고 의식도 자꾸 가라않는다며 힘들어 한다.
항암치료를 해보지도 못하고 병이 나빠질 것 같다.
여기서 치료못하면 환자를 호전시킬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환자와 남편에게 항암치료를 하기에 적절한 시점은 아니며 몸 상태도 좋지는 않지만 용량을 감량하여 항암치료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환자는 열심히 치료받고 잘 견디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항암치료가 끝난지 몇일 되지 않아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면서
복수증가, 호흡곤란, 패혈증이 순식간에 발생하였고 당장 인공삽관을 하지 않으면 호흡부전으로 곧 돌아가실 지경이 되었다.
가족들은 당연히 중환자실에 가서 적극적인 치료를 받겠다고 하셨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으로는 회복되어 중환자실을 다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생각했다.
의사로서 나의 판단에 대해 적절히 객관적인 언어로 설명했지만
그들에게는 잘 납득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중환자실 3일째. 소변이 나오지 않아 투석을 같이 하고 있다. 겨우 혈압이 유지되고 있다.
나랑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가족들과 아직 신뢰도 깊지 않다.

최근 몇일간의 상황을 다시 되돌이켜 생각해본다.
항암치료를 하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급작스럽게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달 정도의 시간은 더 벌 수 있었을까?
아무 치료도 하지 않고 죽음을 목전에 둔 채 그냥 있는게 나을 수 있다는 걸 환자가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처음만난 환자에게
당신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얼마나 강력하게 경고했어야 했던 걸까?
너무 젊어서 열심히 치료받겠다고 다짐하는 환자에게 말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삶과 죽음의 시간,
그걸 말하는 나도 어렵고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환자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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