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사진촬영

슬기엄마 2011. 8. 19. 20:22

2014년에 문을 열 예정인 연세암센터 홍보자료를 위해 여러 종류의 리플렛을 만들고 있나본데
내가 그런 일을 하고 있다.
난 사실 종교적인 심성이 강하지 않고 신실하지도 않다.
우리 병원은 기독교 병원이니 기독교 신자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치료네트워크로 자리잡겠다는 내용으로 교회용 리플렛을 만드라는 오더를 받았다.
환자랑 같이 사진 찍고 리플렛 문구 작성하라는...
자신의 얼굴이 인쇄되고 널리 홍보용으로 쓰이는 리플렛용 사진촬영을 허락하기가 쉽지 않은데
어떤 분께 부탁을 드려야하나 나는 내심 몇일간 고민했다.

처음으로 대장암 간전이 복수를 진단받은 환자. 배가 잔뜩 부르고 숨이 차서 오셨다.
알부민 수치가 2가 안되서 온몸이 퉁퉁 부어있고,
복수가 늑막으로 넘어가서 숨이 차 제대로 누워있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던 환자. 
항암치료를 시작하기에는 이미 황달수치가 3.5에 달해 치료가 위험할 지경이다.
그러나 치료 한번 제대로 못하고 물러설 수는 없다.
나는 가족을 다 불러모으고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설명과 warning. 지겨운 경고. 항암치료를 하고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안하면 시간이 얼마 없다. (조금만 더 일찍 오셨으면 이렇게 위험하게 치료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하는 나의 원망은 할 여력이 없다)
환자는 이렇게 배가 부른데도 병원에 늦게 온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복잡한 사정. 난 그 사정을 묻어두고,
위험하지만 치료를 시작하는게 어떻냐는 주치의로서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눈물 콧물
우리는 호스피스 상담도 하고 항암치료도 동시에 시작하였다. 그렇게 시작한 항암치료가 2주를 지나오늘 2주기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환자는 몇일 전부터 아침 회진을 가면 불편하게 누워있지 않고 자기 힘으로 앉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일반 식사도 하게 되었다. 알부민도 2.5를 넘어 붓기가 빠지고 있다. 성경책을 머리맡에 두고만 있던 분이 이제 다시 성경책을 읽고 계신다.

나는 그분께 부탁드렸다.
이런 취지를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동의해주실 수 있겠냐고.
종교적 단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나지만,
이런 뜻에 환자분이 함께 해주시면 더 큰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할거라는
생각지도 못한 문장이 줄줄 튀어나왔다. (오늘까지 사진을 꼭 찍고 원고를 넘겨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마침 이 환자를 위해, 환자가 다니는 교회에서 교회중창단이 오셔서 찬송을 해주기로 하셨다고 한다.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모두 흔쾌히 동의해주셨다. 우리는 다소 어색하지만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보니 환자 가족분이 함께 하시질 않는다.
복도에서 울고 계신다.
좋은 시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난 윗분들이 시킨 일을 하기 위해 환자에게 양해를 구한 것 뿐인데,
가족은 이걸 고마워하다니...
내가 다 민망하다.

환자가 활짝 웃고 사진을 찍었다. 여러장 뽑아드리고 방문해주신 교회분들께도 드려야겠다.
환자는 모레 퇴원한다.
언젠가는 다시 나빠지겠지.
그래도 우리에겐 오늘이 중요하다.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바로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