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마지막 가시는 길

슬기엄마 2011. 8. 27. 20:40

환자들은 밤에 나빠진다.
암환자는 마지막이 가까와지면 예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예상치 못하게 나빠지는 경우도 가끔 있다.
대개 밤에 당직 레지던트가 그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임종이 예상되면 미리 인계를 잘 해서 환자에 관한 상황을 잘 전달하고
이것저것 불필요한 검사를 하기보다는
통증을 조절하고 환자를 주무시게 한다든지 하는
환자가 힘들지 않게 하는 조치를 해 주는게 더 낫다.

뇌출혈 직후 토하면서 흡입성 폐렴으로 갑자기 숨 쉬기 어려워서
일단 인공삽관을 하고 중환자실에도 갔었다.
안정적으로 유지되는데
이렇게 계속 시간이 가겠다 싶었다.
가족들도 조만간 돌아가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환자를 중환자실에 계속 혼자 있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환자를 깨우고 가족들이랑 눈이라도 맞추고 지내다가 가족들 옆에서 돌아가셨으면 한다고 했다.
인공삽관을 제거했는데, 할머니가 의외로 자발 호흡을 잘 하셨다. 중환자실을 나왔다.

일반병실 2인실로 나왔다.
병실로 나오자마자 담당 간호사가
가래도 자주 석션해야 하고 환자 상태도 않좋으니 1인실로 옮기시라고 했다 한다.
좋아질 수도 있는데, 아직 환자 상태에 별 변화도 없는데 방부터 옮기라고 하니, 죽으라는 뜻인가, 곧 죽을거라는 뜻인가, 아직 옆 자리에 환자도 없는데... 딸이 서운하다며 눈물을 쏟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폐렴이 점점 더 악화되고
뇌출혈로 정신이 맑지 않아 가래를 잘 못뱉는 사이. 폐에 가래가 계속 찼다.
그렁그렁 하는 숨소리, 호흡근육을 최대한 쓰면서 호흡을 하신다.
가족들도 곧 돌아가실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했으면 한다는 내 말을 받아들이셨다.
그러더니 결국 폐렴이 나빠지면서 혈압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소변양도 줄었다.
오늘 내일 하시겠구나...싶었는데 그날 밤 저녁 10시 30분에 운명하셨다.

나는 그날 밤 다른 병원에 문상을 하러 갔었고,
당직 레지던트에게 전화를 받고 돌아가신 걸 알았다.

'특별한 문제는 없었나요?'
'...'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 시간에 제가 병동에 없어서 환자 사망선언을 돌아가시고 10분넘게 있다 했어요. 그것때문에 보호자들이...'
'무슨 일 때문에 연락이 안된거죠?'
'중환 회진에 가는 바람에요.'
'전화로 연락하면 되잖아요.'
'제가 전화기를 안가지고 가서요.'
당직 의사 연락이 안되면 다른 의사에게라도 연락하면 되는 일인데 병동 간호사는 왜 그런걸까? 이미 일이 터지고 나서 전화로 자초지종을 따져봤자 부질없으니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밤 늦게 퇴근하는 길에
장례식장을 지나다가 마침 그 보호자를 만났다.
내가 한번도 본 적 없는 아들은 나를 보더니 자리를 피한다. 나는 아들이 병동에 와서 한바탕 뒤집고 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환자 임종 순간에 의사가 와 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했었던 것 같다.

전체적인 경과를 보면
당연히 돌아가실 코스였고, 당직 의사가 봤다고 해서 코스가 달라질 것은 없었다.
더 이상 조치하지 않기로 다 얘기가 되어 있었다. 의사가 있었다면 아마도 그냥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가 사망선언을 했겠지. 그러나 가족들은 그 순간에 의사가 와 보지 않은 것에 대해 크게 화를 내고 분노하고 있었다.

간호사도 그렇고 당직 의사도 그렇고
의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큰 실수를 한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 병원에서 오래오래 치료받고 돌아가신 환자와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마무리를 잘 해야 다 좋은 것인데
환자와 가족에게도 미안하고
우리 레지던트와 간호사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게 교육할 수 있을까?
어쩌다가 서로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마지막에 상처받고 헤어지게 될까?
최고의 치료는 못해도
최선의 치료는 할 수 있는 건데...
이건 꼭 시스템의 문제만도 아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의료의 철학을 공유하지 않으면, 혼자 지쳐가기 쉬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