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학생들은 과연...

슬기엄마 2011. 10. 6. 20:23

본과 2학년.
순수한 때다.
예과 때 막무가내로 놀던 습성을 벗어던지고
빡세게 공부하는 걸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2학년.
갑작스럽게 생활 패턴이 바뀌어 여러모로 힘들어하던 1학년 때와는 달리
이제 공부하는 것도 제법 틀이 잡히고 의학적인 지식도 꽤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말랑말랑한 뇌를 가진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나쁜 소식 전하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게 되었다. 다음주 금요일.
나는 실재로 지금 내가 진료하는 환자의 사례를 약간 변형하여 토론 케이스를 준비하였다.
엑스레이, CT, 피검사, 지금 쓰고 있는 약....
환자의 질병 경과에 대해
의사의 입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와 의사로서 암환자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하는 원칙에 맞추어서 사례를 준비하였다. 

그런데 의학적 상태와 독립적으로
의사는 암환자에게 어떻게 진단명을 고지하고, 재발을 알리고, 예후를 설명해야 하는가!
이런 주제에 대해 일부 저서에서 교과서적인 원칙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읽어봐도 크게 와닿지 않는다.
특히 아직 실재 환자를 진료해 본 경험이 없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그런 원칙적인 이야기들이 더욱더 와 닿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난 내가 만든 슬라이드를 들여다보다가, 그래 역할극을 해 보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환자, 보호자, 의사 이렇게 3인으로 팀을 구성하여
최초 암 진단, 재발, 질병의 악화 등 상황이 변화하는 장면에서
이들이 과연 어떤 식으로 대화하게 되는지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역할을 바꿔가면서
각자의 역할이 되면 어떤 심정이 드는지, 서로에게 어떤 말을 하게 되는지
입장 바꿔 역할을 수행해 보는 것이다.

내 마음같으면 역할극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듬뿍 보너스 점수를 주고 싶지만, 전체 수업 운영의 원칙상 그런 건 어렵다고 한다.
그냥 밥을 사주기로 했다.
연극반 학생 3명이 반강제로 차출된 모양이다.
난 학생들에게
해당 환자의 사례에 대해 의학적 관점, 종양내과 의사의 관점에서 밋밋하게 나레이션을 해 주고, 이런 상황에서 환자는 어떤 것이 궁금할지, 보호자는 어떻게 반응할지, 의학적으로는 말도 되는 질문을 할지라도는 의사는 어떻게 대답하고 처신해야 하는지를 표현해달라고 주문하였다. 그리고 환자를 위해 어떤 설명이 베스트가 될지도 주문하였다.

나의 상황설명을 들은 그들은 몇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때 남편은 화를 내지 않았나요?
항암치료를 그만 하자고 했을 때 환자의 반응은 어땠나요?
선생님은 그런 말씀 하시는게 힘드시지는 않았어요?

순수하고도 정면을 응시하는 이들의 질문.
1주일 후 이들의 연기가 기대된다.

나도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이들에게 어떤 코멘트를 할 것인가?
나는 환자에게 실재 나쁜 소식을 전할 때 어떻게 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마음 속 많은 것들이 얼굴에 드러나는 편이다.
어떤 환자들은 내 표정을 읽고 미리 검사 결과를 짐작하는 경우도 있다.
내 표정이 밝으면 병이 많이 좋아졌나 보다 하고
내 표정이 어두우면 병이 않좋아져서 약을 바꿔야 하나보다 그렇게 짐작한다.

암환자를 진료하는 종양내과의사는
환자와 일정정도 감정적인 거리를 두라고 되어 있다.
난 아직 그렇게 잘 못한다.
종양내과 의사로서 아직 함량미달이다.

이번 기회가
나에게도 더 성장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학생들,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