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장기입원 할머니

슬기엄마 2011. 10. 7. 13:46

70살을 넘기신 할머니.
내가 할머니를 처음 만났던 지난 7월에는 할머니 몸집이 좋으셨다.
그런데 그때는 통증도 심하고 요로감염이 겹쳐있어 열도 나고 컨디션이 아주 않좋으셨다. 오래된 당뇨로 자꾸 요로감염이 오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열이 나고 힘들고 혈당 조절도 안되는 상태에서 나는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PET-CT를 찍으니 난소암이 재발한 상태.
주요 장기는 아직 괜찮고 목 주위, 사타구니 주위 림프절에 주로 재발이 되어 있으며 일부 허리, 골반뼈에 전이가 확인되었다.
아직 쓸만한 항암제가 남아있고
난소암은 항암제에 반응하여 치료가 잘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 연세가 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항암치료를 해봐야겠다는 욕심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요로감염.
일단 열이 떨어지고 컨디션이 회복되셔서
집에 가서 2주 정도 쉬다 오세요 하고 퇴원했는데
또 다시 요로 감염과 이로 인한 패혈성 쇼크로 2주일만에 응급실행.
지난번보다 상태가 더 나쁘다. 잘 걷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2-3주 치료하고 좋아지셔서 다시 걷고 일상생활을 잘 하시게 되서 퇴원하셨다.
집으로 가기 겁난다며 요양병원으로 가셨는데
또 2주만에 요로감염과 패혈성 쇼크로 응급실행.
응급실로 오실 때는 금방 돌아가실 것 같았다.
이번에는 말씀도 제대로 못하시고
탈수도 심하고...
혈압상승제 엄청 많이 쓰고 겨우 혈압이 유지되었다.
그런데 항생제를 쓰니 다시 좋아졌다.
혈압상승제를 끊고도 혈압이 유지되고 항생제도 강도를 낮추었는데도 회복이 잘 된다.

비슷한 문제가 반복된다.
내가 치료를 잘못하고 있는걸까?
분명히 균 음전을 확인하고
먹는 항생제로 바꿔서 상태가 유지되는 걸 보고 퇴원한건데...
그래서 밖에서 좀 쉬시면서 컨디션 조절하다가 별 문제 없으면 항암치료를 해볼려고 하는건데
자꾸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난소암이라 기본적으로 뱃속이 안 좋긴 하지만,
요로 계통으로 구조적인 이상은 없는데 자꾸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왜 그러지?

한번씩 응급실에 오실 때마다 컨디션이 현격하게 나빠지는 걸 알 수 있다.
몸집도 많이 작아졌다.
그런데
할머니는 생명력이 강하신 것 같다.
매번 좋아진다.
이번에도 또 좋아지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퇴원을 안시키고 장기재원환자로 남아 경과관찰을 하고 있다.
장기재원환자는 병원에서 명단을 따로 관리한다.
난 그래도 그냥 뚝심있게 밀어붙이고 있다.
허리쪽 통증이 있어 방사선치료도 하고
재활치료를 다니며 걷기를 시도하고
휠체어를 타고 산책도 다니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있는 병실은 항상 웃음꽃 만발이다.
할머니가 유머감각이 있어 다른 환자들을 웃겨주신다. 나도 회진가면 이 귀여운(!) 할머니 때문에 즐겁다. 할머니는 컨디션이 좋으면 유머감각이 살아나고, 컨디션이 나쁘면 말씀이 없어진다. 그래서 안색만 봐도, 말씀하시는 것만 봐도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의학적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하기에 좋은 조건은 아니다.
할머니가 지금 항암치료를 받는다 해도 통계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기란 쉽지 않으며 할머니 연세를 고려했을 때 꼭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 할머니가 슈퍼맨처럼 다시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난 마음 속으로 욕심을 내고 있다.

할머니, 이렇게 누워있는 사람은 절대 안 좋아져요. 침대에 앉아있고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는거에요. 누워만 있으면 죽어요. (이렇게 과격한 말을 해도 될 정도로 친하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죽을 때 죽더라도
살아있는 동안 해볼때까지는 해볼려구. 그렇니까 나 꼭 걸어서 나가게 고쳐줘.

보통 환자들이 나만 믿는다는 말을 하면 마음속으로 부담감 너무 큰데
할머니가 나만 믿는다고 말씀하시니 거대한 사명감이 느껴진다. 꼭 좋아지게 해드리고 싶다.
할머니의 생명력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