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환자 마음 이해하기

슬기엄마 2011. 8. 11. 10:20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말하는 환자들.
그 맥락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내가 보기엔 아직 효과적인 약제도 남아있고
환자 전신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은데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환자랑 충분히 잘 얘기해보고
그 속마음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의사가 전이성/진행성 암환자에게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필요할지,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더 나을지를 결정하는 과정이 의외로 주관적일 수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연구도 많이 되어 있다.

직계가족이 없으신 K씨.
혼자 씩씩하게 치료를 잘 받으러 다니신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중요한 결정을 다 하시고 입원도 싫어하셔서 늘 외래에서 치료받았다.
병이 좀 나빠져서
외래를 왔다갔다 하기에 약간의 도움이 필요한 정도라고 생각했다.
숨이 차니까 좀 천천히 다녀야 하는데 혼자 와서 수납하고 외래 대기하고 주사실 검사실 돌아다니는게 벅차셨나 보다. 이제 항암치료를 그만 하시겠다고 하신다. 자원봉사자를 연결해드리고 가정간호팀을 연결해 평소에 영양제도 집에서 맞으실 수 있게 해드렸다.
항암치료를 다시 하고 싶으시다고 한다.
항암제 투여 1주일째. 피부에 벌겋게 올라온 병변들이 꾸득꾸득하게 마르고 진물이 줄기 시작한다.

암세포 종류가 아주 희귀한 유형에 속하는 L씨.
아주 드문 유형이라 어떤 약이 효과적인지조차 연구가 별로 되어 있지 않다. 논문을 찾아봐도 케이스분석 정도. 작년부터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계셨는데, 병이 진행하고 있다. 겨드랑이 볼록한 종양때문에 통증이 심해졌다.
그러나 사진으로 보기보다 전신상태는 양호하고 피검사 수치도 정상범위에 있다. 왜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려고 하시냐고 여쭤봤더니, 효과적인 약이 없는 병이라 치료해봤자 효과가 없다면 뭐하러 받겠냐고, 그래서 안받겠다고 생각했다 하신다. 내가 이번에 선정한 약제조합의 평균적인 반응율과 독성에 대해 말씀드렸다. 치료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말씀드렸다. 설명을 들으시더니 '도전'해 보시겠다고 한다. 3일간의 항암치료를 마치고 오늘 퇴원하셨다. 겨드랑이 볼록했던 종양크기가 그새 작아졌다며 활짝 웃고 가셨다.

폐로 전이된 유방암, 전이된 상태를 알고도 2년동안 병원 발걸음 끊으신 P씨.
폐로 전이된 것이 폐암이라고 알고 계셨다. 폐암은 치료도 안되고 해 봤자 금방 죽는데 뭐하러 치료하냐며 2년동안 병원에 안 오셨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서 병원에 오셨다.
폐암이 아니고 유방암 폐전이라는 거, HER2 수용체가 양성이니 허셉틴을 써보자고 했지만, 아주 반발이 많으셨다. 표적치료제의 효과에 대해 설명드렸고, 주먹만한 폐전이 병변이 손톱만큼 작아졌다. 새벽기도도 다니고 등산도 다니고 병 없는 사람처럼 지내게 되었다며 외래에서 '할렐루야'를 외치신다. 기도한 덕택이라 하신다. 난 맘속으로 '허셉틴 반응이 좋은 그룹에 속하신 거에요'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냥 말 안한다. 계속 기도 열심히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암환자 치료가 외래 중심으로 변하면서 
의사와 환자의 communication이 아주 제한된 짧은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난 아직 효과적으로 communication 하지는 못한다.
그냥 시간을 더 투자한다. 시간을 갖고 얘기하면 환자들이 자기 마음의 문을 열고, 병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말한다.  비로소 의사의 뜻이 얼마나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는지, 나의 설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항암치료 안할래요
더 이상 치료 안 받을거에요
라는 환자의 선언 이면에는 사실 환자의 양가감정이 숨어있음을 기억해야겠다.
그리고 환자의 언어로, 환자의 방식으로 어떻게 자신의 병을 정의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물론 항암치료를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여하간
Quality care를 잘 하려면 마음을 잘 헤아리는게 첫번째 스텝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