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112

99세에 시집을!

우리병원 간암클리닉 한광협 선생님이 간암클리닉 성원들에게 보내신 메일인데 좋은 글이라고 최혜진 선생님이 나에게 메일을 첨부해 주셨다. 일본 할머니가 99세에 낸 시집이 소개되었다. 할머니는 지금 100세. 백년 인생이 기구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할머니도 인생 굴곡 많으셨던 것 같다. 제목은 '약해지지마' 퇴근하는 길에 홍익서점에 들러 사봐야겠다. 인상적인 몇 구절. 비밀 나, 죽고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번이나 있었어. 하지만 시를 짓기 시작하고 많은 이들의 격려를 받아 지금은 우는 소리 하지 않아 아흔 여덟에도 사랑은 하는거야. 꿈도 많아 구름도 타보고 싶은 걸. 나에게 뚝뚝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멈추질 않네. 아무리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끙끙 앓고만 있으면 안돼. 과감하게 수도꼭지를 비틀어..

환자 마음 이해하기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말하는 환자들. 그 맥락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내가 보기엔 아직 효과적인 약제도 남아있고 환자 전신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은데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환자랑 충분히 잘 얘기해보고 그 속마음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의사가 전이성/진행성 암환자에게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필요할지,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더 나을지를 결정하는 과정이 의외로 주관적일 수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연구도 많이 되어 있다. 직계가족이 없으신 K씨. 혼자 씩씩하게 치료를 잘 받으러 다니신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중요한 결정을 다 하시고 입원도 싫어하셔서 늘 외래에서 치료받았다. 병이 좀 나빠져서 외래를 왔다갔다 하기에 약간의 도움이 필요한 정도라고 생각했다. 숨이 차니까 좀 천..

Dignity therapy

Lancet Oncology 라고 종양학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좋은 저널이 있는데 지난 7월호에 말기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Dignity therapy에 관한 연구논문이 실렸다. 캐나다가 주관하여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3개국 3개기관에서 441명이 참여한 연구가 소개되었다. 이 연구에서 시행한 Dignity therapy는 기대여명이 6개월 미만으로 예상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세번의 미팅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였다. 참여 환자는 통상적인 치료 (신체적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를 중심으로 하는 파트) 심리적인 문제에 대한 상담치료 (심리적, 정신적으로 어려운 부분을 함께 논의하며 치료하는 파트) Dignity therapy 파트 이렇게 세 그룹으로 배정되어 지정된 기간 동안 상담과 치료를 한 다음 1-2주..

언제까지 항암치료를 하는건가요?

항상 별 말이 없으신 분. 입원해도 병실에 잘 계시지 않고 다른 병동이나 병원 내 한적한 곳에 눈을 감고 앉아계신다. 기도를 하시는 중일까? 내가 무슨 설명을 하면 아주 호의적으로 "예 예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께요." 대답해주신다. 폐 전이가 좋아지지 않아 숨이 차니 산소 도움을 받아야 한다. 늑막에 물이 차니까 관도 넣었다가 뺐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본인은 항암치료를 그만 하고 시골로 내려가서 편히 지내시고 싶다고 했었다. 전라북도 장수 근처라고 했던가... 그렇게 하기로 했었는데... 물이 많이 차서 또 관을 넣었다. 그동안 통증이 없어서 진통제를 안드셨는데 숨찬것도 통증의 일환이라고 판단, 진통제를 소량 드렸더니 훨씬 편하고 좋다고 하신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많이 자니까 좋다고 하신다. 하루..

써니의 하춘화

영화 써니에서 써니 멤버의 우두머리 격인 하춘화는 약 2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은 암환자로 등장한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남지 않은 그녀를 위해 친구들이 소식이 끊긴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 '써니' 멤버들을 찾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말로 쓰니 스토리 소재는 좀 진부한 것 같지만 직접 영화를 보고 나면 써니는 우리의 1980년대를 너무나 잘 재현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가까운 우리의 과거와 약간은 촌스러운 그때를 회상하면서 웃음지을 수 있는 감동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해 주는 것에 그 맛이 있다. 가슴아픈 이야기, 그러면서도 웃긴 이야기, 그런 소재들이 잘 버무려져 있다. 춘화는 말기에 암으로 인한 통증이 이따금씩 찾아와서인지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써니 멤버로 활약했던 20년전 솜씨를 발휘..

진단 3일만에

아마도 개인사적으로 많은 일이 몰아닥쳐 자신의 몸과 건강을 챙겨볼 시간이 없으셨나보다. 체중이 많이 빠지고 기운이 너무 없어서 종양내과도 아닌 내분비내과에 갔다가 심각한 폐전이, 뼈전이가 의심되며 전이를 일으킨 원발병소를 찾아야 하는 시점에 우리병원으로 오셨다. 외부병원에서 기본 CT를 흉부, 복부 찍으신 상태이다. 보균자였고, CT상 간의 음영이 정상이 아니었으며 간의 크기가 매우 컸다. 간암에 특이적인 종양표지자 검사를 해보았더니 우리병원 최대치를 넘어선다. CT 소견과 종양표지자 검사로 간암을 진단할 수 있었다. 조직검사를 하지 않아도. '눈감고 앞으로 나란히' 해보았다. 간성혼수도 나타나고 있다. 간기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병원에 오실 때부터 산소를 6리터 이상 하고 있..

내 거짓말이 이루어지기를...

귀가 잘 안들리는 환자분이라 늘 소리를 꽥꽥 지르며 설명해야 했다. 오늘 회진에는 할 얘기가 많은데 소리를 꽥꽥 지르며 설명하게 되면 병실 내 다른 환자들도 자연히 우리 환자의 형편을 알게 되니, 소리지르며 얘기할 조용한 공간을 찾아 환자를 모시고 갔다. 특별히 상담실이 없으니 찾은 공간이 하필 임종 직전에 이용하게 되는 소망실이다. 환자는 1979년 왼쪽 유방암 1998년에 오른쪽 유방암으로 각각 수술하셨다.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각각. 그리고 2007년 재발되어, 이제까지 여러 약제를 시도하며 치료받으셨다. HER2 양성인데, HER2를 타겟으로 하는 표적치료제에 별로 반응이 없으셨다. 오히려 호르몬제에 1년 이상 병이 진행되지 않고 잘 견디신 기간도 있고, 독성이 강한 아드리아마신 투여에 효..

호스피스 환자를 위한 명상 프로그램 준비

환자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워 하지만 항암치료를 하지 않는게 나은 경우가 있다. 병은 조금씩 나빠져 가는데 의외로 전신 컨디션이 괜찮아서 음식을 드시고 여기저기 다니시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다. 효과적인 항암제가 더 이상 없다. 이제부터 항암제를 쓰면 효과보다는 독성이 더 심하게 나타날 것 같다. 그럴 때 환자분께 항암치료를 그만 하고 외래 다니면서 경과관찰만 하자고 말한다. 그러면 환자들은 망연자실해 하기도 한다. '저를 포기하신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항암치료만이 당신의 삶을 더 낫게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을 통증없이, 불편함없이 하실 수 있도록 경과관찰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 정도 외래를 잡아준다. 그러면 환자는 매우 낙심한 얼굴로, 나의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

이렇게 죽을 수 있을까?

"삶에 어떠한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즐거운 일들을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내 딸들과 사랑하는 아내가 내 투병과 죽음으로 부터 희망을 찾기를 바랍니다. 세상 아니 우주 전체가 아름답고 놀라운 세상입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으며 후회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딸들아, 너희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최선을 다한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구나. 나의 베스트 친구이자 나의 아내여. 당신이 없었다면 무엇을 했을지 모르겠구려. 당신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초라한 세상이 되었을 것이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소. I loved you, I loved you, I loved you." 오전 인터넷에서 본 외신 기사이다. 41세의 남자가 결장암으..

미리 예상하지 말자...

어제 내내 오늘 환자 만날 일에 대해 고심했었는데... 환자가 오면 어떻게 대할까... 그런데 오늘 만난 환자.. 얘기를 전해들은 것에 비해 훨씬 괜찮다. 1. 구토감 지난 1주일 동안 많이 토하고 힘드셨다는데 그게 항암제 자체 때문이 아니라 항암치료 후 어지러움증이 심해서 2차적으로 토하신 것 같다. 또 항구토제로 들어갔던 약이 있는데 오히려 이 약의 부작용으로 어지러움증도 심하고 진정 효과가 심해서 불규칙적으로 많이 주무시고 정신도 맑지 않으셨던 것 같다. 2. 항암제 독성 이번 항암 약제가 환자랑 잘 맞지 않았던 모양이. 항암 약제의 부작용이 아주 예민하게 나타났던것 같다. 항암제를 맞고 집으로 돌아간 그 날 저녁부터 어지러움증, 신경 과민증 (차가운 물건을 전혀 잡을 수 없을 수 없었다 함)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