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112

치료 부작용 어디까지 설명하는게 좋을까?

환자는 유방암을 진단받고 너무 두려웠나보다. 상세한 설명없이 당장 수술은 어려우니 항암치료를 받으라는 말에 나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보다 생각하고 병원을 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났다. 유방 크기만큼 암이 커져 버렸다. 통증이 심해서 병원에 다시 오셨다. 겨드랑이와 유방에 병이 있었는데 병원에 오지 않았던 지난 4개월동안 많이 커졌다. 서둘러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예민한 환자라 말 한마디 조심하는게 필요했다. 항암제 부작용, 치료 과정 중에 생길 수 있는 합병증 이런 설명을 너무 많이 하면 또 겁 먹고 항암치료를 거부할 것 같다며 자식들이 부탁한다. 환자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완화하여 설명했으면 한다고... 나도 동의했다. 항암 치료 중에서는 수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지만 그걸 ..

병기냐 속성이냐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공부하다가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자는 내가 과연 살 수는 있는건지, 완치될 수 있는지, 재발하지는 않을지, 과연 나는 치료성적이 좋은 사람일지 등등의 두려운 질문을 갖게 된다. 첫 대면에서 의사는 이와 관련된 정보를 환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환자들에게 앞으로 당신의 예후를 결정하는 것으로 다음의 두가지 사항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한다. 첫번째 유방암의 병기 두번째 유방암의 생물학적 속성. 유방암의 크기(T), 림프절의 전이 여부(N) 등을 가지고 병기를 구분한다. 이러한 기준은 다른 암에서도 이러한 기준이 공통으로 적용되는 고전적인 예후 예측 인자이다. 병기가 낮은 환자는 재발 가능성이 낮고 생존율이 높으며 병기가 높은 환자는 재발 가능성이 높고 생존율이 그만큼 낮아진다. 이는..

뇌물을 받고 청탁을 수락하다

수술하기에 유방의 종괴 싸이즈가 꽤 크다. 겨드랑이 림프절에서도 악성세포가 나왔다. 바로 수술하지 않고 수술 전 항암치료를 8번 하기로 했다. 그런데 환자랑 항암치료 날짜 맞추기가 힘들었다. 환자는 일을 하는 워킹맘이다. 형편상 지금 하시던 일을 계속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환자 일정에 맞춰서 토요일에 항암치료를 하기도 하고 일요일에 입원해서 하기도 하고 그랬다. 나는 그녀가 계속 일을 했으면 하고 바랬다. 그정도 컨디션이 유지되어주기를 바란 것이리라. 스케줄이 정규적이지 않으니까 사실 나로서는 다소 성가신 면도 있었지만, 유방암 클리닉 외래 간호사 선생님의 놀라운 배려와 센스로 나는 환자 중심 진료를 할 수 있었다. 항암치료 부작용이 아주 없는 것는 아니지만, 아주 심한 것도 아니라서 환자는 그럭저..

모범환자 8호 - 나날이 씩씩해지는 그녀

속내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가족이 모두 베트남에 살고 있다. 아마 남편 사업 때문에 가족이 이사를 가신 것 같다. 환자는 두 아이의 엄마. 유방암 치료를 시작할 무렵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기는 약에 아주 민감하다고 약 잘 못 먹으면 엄청 고생하는 스타일이라고 입덧도 아주 심했었다고 했다. 국내에 친척들이 있기는 하지만 항암치료 하는 기간 동안 그들 집에 머물기는 어렵다고, 마음이 부담스럽다고 그래서 우리병원에서 항암치료 받고 나머지 기간은 요양병원에서 머물러 계실 거라고 했었다. 그렇게 하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첫날 항암제를 맞고 귀가했다가 바로 당일 밤에 응급실행. 그리고 환자는 일주일 이상 계속 토했다. 내가 본 환자 중에 제일 증상이 심했다. 내가 회진을 가도 그녀는 날 아는 척 조차 하..

정신과 선생님 감사합니다

나는 그 환자의 과거 병력을 자세히는 몰랐다. 그녀는 유방암 수술 후 4번 항암치료 하고 허셉틴으로 표적치료 중이다. 내가 정리해 놓은 병력에는 과거 불면증이 있었고 성격이 예민한 편이라 집근처 신경과에서 약을 복용한 적이 있었다는 정도의 메모로 정리되어 있다. 나는 r/o depression 이라고 내 의견을 적어두었다. 그러나 허셉틴 표적치료는 그리 힘들지 않기 때문에 외래에서 환자랑 별로 많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 피검사도 잘 안하고 가끔 심장기능만 체크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설명할 내용도 별로 없다. 이미 힘든 항암치료를 다 받은 상태라서, 환자들도자기 치료과정에 대해 왠만한 사항은 잘 알고 있고 병원 시스템도 잘 알고 있다. 허셉틴 치료는 힘든 것도 없어서 환자도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외래..

러시아 엄마

러시아 환자들은 옛날 한국 사람들이랑 정서가 좀 비슷하다. 진료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고 작은 러시아 인형, 초콜렛, 보드카 그런 선물을 주신다. 양이나 질이 풍요롭지도 않다. 그냥 성의다. 내 방 창가에 러시아 환자들이 준 인형들이 올망 졸망 모여있다. 진료실을 나갈 때는 내 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하신다. (러시아로 고맙다-스파 씨바-는 말을 알아먹을 수 있게 되었다) 전이성 유방암인 경우에는 진료 계획을 명확하게 세우고 치료를 시작하기 어려운 것에 반해 수술을 하고 4번에서 8번 정해진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들을 진료하는 것은 훨씬 수월하다. 설명하기도 어렵지 않고. 물론 환자의 비행기 시간, 일정에 진료를 맞춰줘야 한다. 그래서 사실 성가시고 귀찮은 일들이 부가적으로 발생한다. 영문 소견서도 엄청..

수술 후 HER2 양성 유방암을 진단받으신 분께

수술을 하면 조직검사 결과에서 HER2 양성 여부를 검사하게 됩니다. HER2 양성 여부에 따라 수술 후 항암약제를 결정할 때 표적치료를 추가로 할 것인지 말것인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HER2 검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간단한 검사결과로 양성이 진단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비싼 유전자 검사를 추가로 해야만 양성인지 여부가 정확하게 진단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재 HER2 양성 유방암 환자 중 겨드랑이 림프절 양성이거나 유방암의 크기가 1cm이 넘을 때 표적치료제인 허셉틴을 1년간 투여하는 것이 재발율을 낮추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여러 차례 대규모 임상연구로 입증되어 2009년 9월부터 우리나라에서 보험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2월 중순부터 새로운 임상연구가 개시됩니다. HER2 양성인 환자에서 ..

복습하는 환자 - 모범환자 6호

환자에게 설명을 할 때 진료실 메모지에 그림을 그린다. 동그랗게 유방암 세포를 그리고 핵과 세포 표면에 ER PR HER2를 그려서 +, - 그런 기호에 따라 유방암 성질이 다르다는 둥 3주 간격으로 백혈구 수치가 떨어졌다가 회복되기를 반복한다는 그래프를 그리기도 하고 전이된 곳이 어딘지 그림으로 그릴 때가 있다. 별로 정돈되지 않은 글씨체로 찍찍 갈겨쓰고 그림도 사실 대충 그리는 셈이다. 설명을 마치고 나면 그 설명 용지를 달라고 하여 가지고 가는 환자들이 있다. 그럴 때면 늘, 아~~~글씨좀 잘 쓸걸... 하면서도 설명에 몰입하기 때문에 그림이나 글씨는 엉망이다. 지난주에 항암치료를 시작한 환자가 외래에 왔길래 수첩검사를 하였다. 아침 저녁 체온도 재고 계시고 새로 발생한 증상도 적어 두었고 (평소 ..

고생은 자기가 다 해 놓고

수술 전 마지막 항암치료. 진료실을 들어서는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보인다. 수술 전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으러 온 그녀에게 그동안 고생많으셨다고 악수를 청하는데 악수를 하는 두 손에 눈물을 뚝 떨어뜨린다. 그동안 고마웠다며. B형 간염 보균자라 비보험으로 비싼 간염바이러스 약도 같이 먹고.. 임상연구 약 먹느라고 입이 다 헤져서 음식 잘 못드신다길래 영양제를 처방해 드렸더니 그걸 맞고 발생한 피부 알레르기 부작용 때문에 밤중에 응급실도 왔다 가고.. 약 처방 일수가 잘못 계산되서 중간에 약 타러도 따로 오시고.. 치료 기간 동안 순탄치않고 불편한 점 투성이였는데 나에게 그걸 탓하지 않고 고맙다고 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나 보다 약간 어린 그녀. 슬기 보다 약간 어린 딸이 있는 그녀. 자기 딸이 좋아..

반지

구슬공예로 직접 만든 맑은 유리구슬반지. 본3때 외과실습 돌다가 수술방 갱의실에서 결혼반지를 잃어버린 후 난 반지를 끼지 않는데 엊그제 외래에서 환자가 자기 손에 끼고 온 구슬반지를 빼주고 갔다. 선생님 이 반지는 선생님에 대한 제 마음이에요. 제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포장해 오면 안받으실까봐 그냥 드려요. 오 마이 갓, 닭살멘트. 저 포장해 오셔도 잘 받아요. 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감사합니다 얌전히 받았다. 환자 몸 온갖 군데를 쪼물쪼물 만져야 하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손을 씻어야 한다. 그래서 진료의 관점에서 보면 의사는 반지를 안끼는 것이 낫지 않나 싶다. 그래서 반지를 선물해 주신 환자분께는 죄송하지만 과연 내가 이 반지를 끼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환자 앞에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