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112

유쾌한 그녀들

같은 날 나란히 외래에 오는 그녀들이 있다. 그녀들은 비슷한 병기에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유방암 타입으로 수술받았다. 지금은 허셉틴 유지요법을 받고 있다. 그들은 수술을 마치자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운동을 시작하였다. 한명은 등산과 복근 만들기를 위해 윗몸일으키기 하루 150개에 도전하였고 한명은 경락마사지에 이어 헬스와 PT를 시작하였다. PT를 시작한 그녀는 항암치료하면서 살이 많이 쪘다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돈을 더 얹어주고 헬스보다는 더 타이트한 일정으로 근육만들기 체력운동을 시작하였다. 4개월이 지난 지금 매월 1kg씩 감량에 성공하여 지금은 언뜻 봐도 뒤태가 달라졌다. 얼굴도 브이라인이 되었다. 피부도 좋아진 것 같다는 나의 찬사에 그녀는 '마사지도 받았어요' 라며 살짝 귀띔을 하고 진료..

시작부터 씩씩한 그대, 당신은 모범환자 4호.

일단 유방암이라고 진단이 되면 유방을 샅샅이 뒤지고 그 다음으로 겨드랑이, 쇄골근처의 림프절로 전이가 되었는지를 초음파로 검사한다. 의심이 되면 주위 림프절에서도 조직검사를 한다. 림프절 음성이라고 판단되면, 유방에 대한 수술을 한다. 이중 일부 환자들은 수술 전 영상학적 병기는 아주 낮은 것이라 판단하고 수술했지만 막상 수술을 하고 보니 주위 림프절에서 악성세포가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림프절 전이가 확인되면 병기가 올라간다. 겨드랑이 림프절이 양성(즉 악성세포가 발견되면)일 경우 유방암 치료제의 양대산맥-아드라이마이신과 탁센-을 모두 투여하는 것이 재발율을 낮춘다는 연구결과가 여러 차례 입증되어 항암치료 횟수가 8회로 늘어난다. 수술이 잘못되서가 아니라 원래 이런 경우가 많다. 그래도 뭔가 처음..

쿨한 아가씨!

나는 아직 연륜이 짧아서인지 누군가를 한번 보고 척 알아차리는 그런 천리안은 없다. 그래서 처음 환자를 만났을 때의 인상이 이후 전개될 우리 관계에 결정적이지 않다. 한번 봐서는 잘 모르겠다. 몇번 만나보고 이얘기 저얘기 해봐야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은 한번 인연이 맺어지면 오래 갈 사람들이지만 조기 유방암 환자들은 4번에서 8번 정도의 항암치료를 하는 날, 드물게 그 사이 소소하게 문제가 생길 때 만나고, 이후 추적관찰은 외과에서 하게 되니까 긴 인연이 아닌 경우가 많다. 사실 수술한 유방암 환자들은 무슨 문제가 생겨도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자기 힘으로 다 이겨내기 때문에 내가 크게 신경 안써도 다 좋아진다. 이제 갓 30을 넘긴 아가씨. 키 크고 날씬하고..

우리는 small mind!

 갑자기 머리가 아프면서 몇번 토했다. 하지에 반점이 생겼다. 오마이갓, 환자는 눈시울이 벌게져서 외래로 뛰어오셨다. 그녀를 보는 나도 가슴이 덜컥. HER2 양성으로 수술 후 허셉틴 유지 치료를 받고 있다. 환자가 머리 한번 아프다고 해서 뇌 MRI를 찍는 것이 의학적으로 적절한가? 대답은 확실하지 않다. 과도한 검사를 불신하는 나, 그러나 당일 검사실에 부탁하여 MRI를 찍게 하였다. 오후 늦게 사진을 찍고 간 그녀 대신 나는 밤에 가슴 졸이며 사진을 열어본다. 이때 마우스를 움직이는 오른쪽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오 하느님, 깨끗하군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공식판독을 기다려봐야지. 어제 검사하고 간 환자가 오늘 왔다. MRI 결과는 정상입니다. 특별한 문제가 없네요. 하지에 멍든것 같은 반점에 대..

여성으로, 아내로, 엄마로 항암치료 받기

대한민국 아줌마, 항암치료 힘든거 참을 수 있다. 입덧도 해보고 출산도 해봤으니까 토하는 거나 아픈거 다 견딜만 하다. 딸 생리대를 사면서, 난 언제 생리를 하게 될까? 다시 할 수는 있을까? 서글퍼진다. 이제 생리도 안하는 그런 여자가 된걸까? 남편이랑도 멀어지겠지? 호르몬제 드시면서 생긴 관절염 때문에 아쿠아로빅을 권했더니 수영장에 못가겠어요. 아직 자신없어요. 수영복도 잘 안맞아요. 가발 벗는것도 부끄러워요. 손톱 색깔이 변하고 이상한 무늬가 생겼다. 항암제 부작용 전혀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에 대한 훈장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더니 대번에 획 돌아앉는다. 고3짜리 딸은 12시 넘어야 들어오는데 자기는 피곤해서 10시면 잔다고, 그래서 애 얼굴 볼 일이 없다고. 그게 무슨 훈장이냐고 토라져서 나가신다...

모범환자 3호 - 대관령 한우

68세 할머니. 10년전에 왼쪽 유방암으로 수술하고 항암치료 하셨다. 유방암 1기. 그때 항암치료는 CMF (cyclophosphamide+methotrexate+fluoruracil) 6번. 당시 표준치료였다. 유방암 수술 후 항암치료제로 adriamycin 의 역할이 대두되던 찰나였으니 CMF를 하는 것이 대세였던 시절. 그리고 10년이 지나서 오른쪽 유방암으로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되셨다. 또 유방암 1기. 이번에는 AC (adriamycin + cyclophosphamide) 4번 하기로 했다. 그 사이 많은 연구를 통해 adriamycin이 조금 더 우월하지 않는가 하는 결론이 나면서 나이가 젊고 컨디션이 괜찮으면 CMF 보다는 AC를 하는 것이 더 낫다는 합의가 도출되었다. 할머니는 그..

생리가 불규칙해졌어요

항암제 혹은 항호르몬치료를 하면 난소의 기능이 억제됩니다. 항호르몬제 치료는 원래 목표가 난소기능을 억제하는 것인데 비해 항암제 치료는 그 부가적인 기능으로 난소기능도 같이 억제되는 것 같습니다. 유방암에서 항호르몬치료의 중요성은 매우 큽니다. 수술 후 항암치료 마저도 항암제 자체의 원래 기능이 아니라 항암제의 난소억제의 이차적인 효과 때문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유방암에서는 에스트로젠 호르몬을 억제하는 약을 먹거나 복용하는 것이 치료의 중요한 목표가 됩니다. 여성호르몬으로 알려져있는 에스트로젠 호르몬이 억제되면 한달에 한번 하던 생리도 불규칙해지고, 한두번 싸이클이 불규칙해지다가 생리를 안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항호르몬제를 복용하는 5년 동안은 계속 그렇습니다. 생리의 양..

윤서맘님께

약자를 잘 아시는거 같으니 약자로 말씀드리죠. AC #4 à T #4 이렇게 하는 것, 현재 우리나라에서 수술 후 보조요법으로 T를 쓰는 것은 겨드랑이 임프절 전이가 있을 때 보험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나 겨드랑이 임프절 전이가 없는데도 삼중음성유방암 환자들에게는 T를 권하기도 합니다. 이후 항호르몬제나 허셉틴 등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다른 옵션이 없기 때문에 TAC #6 으로 하는게 좋지 않겠냐 하는게 유방암을 치료하는 종양내과 의사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때 T는 보험이 안됩니다. TAC #6 은 그 자체의 독성(호중구 감소증)으로 인해 예방적으로 (즉 백혈구 수치가 정상일 때부터) 백혈구 촉진제를 쓰도록 되어있는 레지멘인데 -임상연구로 수차례 입증하였음 - 백혈구 수치가 정상일 때는 약값이 보험이..

기분전환

사실 치료 중엔 뭘 해도 몸 상태가 썩 좋질 않습니다. 왜 이런 증상이 생기는지 어떻게 하면 예방/치료할 수 있는지 공부도 해보고 인터넷으로 자료도 찾아보고 외래에 와서 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뭔가 이해하고, 납득하고, 극복해보려고 하지만 사실 딱히 신통치 않으실거에요. 치료받는 과정 중엔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그러려니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어도 그냥 받아들이는게 좋을 때도 있어요. 의사 선생님 스타일에 따라서는 환자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자세히 해주지 않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도 치료 잘 받고 잘 나아서 건강하게 지내시는 분들도 아주 많아요. 즉 의사의 설명이, 친절이, 환자의 상태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전 그래도 가능하면 환자들의 마음을, 심정을, 이해를 돕고 ..

그레이 헤어

항암치료, 수술을 마치고 1년간 허셉틴을 맞으러 오는 분들이 있다. 수술 후 보조요법으로 허셉틴이 인정된게 2년이 안된다. 허셉틴은 3주간격으로 맞기 때문에 환자를 3주간격으로 꼬박꼬박 만나게 된다. 그렇지 않은 환자들은 수술/항암치료가 끝나고 나서 6개월 간격으로 외래를 보기 때문에 3주간격으로 만날 때처럼 치료 후 환자에게 발생하는 미세한 변화를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3주간격으로 환자를 보니까 조금씩 조금씩 신체적으로 회복되어 가는 과정 심리적인 변화 그런 것들이 눈에 띈다. 그중 내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40대 후반 50대 초반 환자들의 새로난 머리카락 칼라이다. 새로난 머리카락의 색깔은 새치처럼 하얗지도 않고 칙칙한 블랙도 아니고 멋진 그레이 톤이다. 흰색 회색 약간 검은 색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