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112

환자의 웃음

사실 어제 밤 나는 초조했다. 14년전 신장이식을 한 그녀. 이십대 후반의 젊은 아가씨가 오빠로 부터 신장을 이식받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잘 지내셨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그러다가 지난달 유방암 2기로 수술을 받았다. 면역억제제를 평소에 복용하고 있기 때문에 몸의 면역체계가 보통 사람과 다르다. 감염에 아주 취약하다. 항암치료에 대해서 환자는 아주아주 걱정이 많았다. 나를 만난 첫날부터 눈물이 앞선다. 나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 현재 콩팥 기능은 정상범위내에 있지만 약간 기능이 약한 편에 속한다. 나는 이식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똑같은 항암제를 선택해서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아드리아마신과 탁센계열의 항암제를 쓰는 것이 지금 그녀에게 최선을 선택이다. 장기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는 경우..

치료가 끝난 환자를 우연히 만나

우리병원에서 주관하는 삼중음성유방암 임상시험에 1번타자로 등록되어 항암치료를 받고 수술하신 환자분을 오늘 우연히 만났다. 6번 항암치료를 마치고 수술을 하시고 수술 후 상처가 더디게 회복되어 방사선 치료가 다소 늦게 시작되었다. 치료 기간 중에 등산에 갔다가 원인이 확실하지 않은데 쓰러지셔서 집 근처 응급실에도 가시고 아바스틴 때문에 상처가 빨리 아물지 않아 대구에서 서울까지 헛걸음도 몇번 하셨다. 유방암 공부를 너무 많이 하여 아는게 병이었다. 자아가 강하신 분인데 약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다그치는 노력이 눈에 보였다. 진료를 하다 보면 뒷부분에 가면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난다. 오늘은 무사히 방사선 치료를 마치는 치료 마지막 날이었다. 토요일 점심, 병원이 아니라 연대쪽에 나가서 후배랑 거닐며 얘길 하고..

항구토제와 진통제를 먹을 때 - 아드리아마이신, 탁소텔을 맞는 분들께

약제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항암제는 대개 오심 구토를 유발합니다. 그래서 항암제 맞을 때는 항구토제가 같이 투여되고 먹는 약으로도 처방해드립니다. 항구토제를 복용할 때 원칙은 구토감이 '오기 전'에 미리 약을 복용하여 아예 구토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구토감이 생겼는데 참다가 약을 먹으면 효과가 별로 없고 전혀 못 느낄 때 미리 먹어버려야 약효가 좋다는 말씀입니다. 항암제로 인한 구토는 약을 투여받은 날로부터 24시간 내에 구토감을 느끼는 경우와 3-4일이 지난 후에 구토감을 느끼는 두가지 종류로 나타나는데 아드리아마이신이나 시스플라틴 종류로 항암치료를 받는 분들은 3-4일 후에 발생하는 구토감이 훨씬 힘듭니다. 그래서 '에멘드(Emend)'라는 알약을 항암치료 첫날, 둘째날, 셋째날 드..

죄책감

6개월동안 8차에 걸쳐 항암치료를 마치셨다. 항암치료 후에 한달 반에 걸쳐 방사선 치료도 받으셨다. HER2 양성으로 1년동안 3주간격으로 병원에 다니시면서 허셉틴을 맞으셨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병원출입을 하시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하간 이제 치료가 끝났다. "치료 끝났는데 뭘 제일 하고 싶으세요?" "이제 바깥 좀 나가 돌아다니고 싶어요" "아니, 그럼 그동안 바깥 출입을 안하셨다는 건가요?" "네, 병원만 왔다갔다 했어요. 괜히 암환자가 나돌아 다니는거 않좋아 보일거 같아서요." 엥? 1900년대 초반, 당시 나병이라 불리던 한센씨병 환자들이 사람들로부터 배척되고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살던 시절 얘기를 듣는 것 같다. Stigma... 낙인... '암'이라는 병은 아직도 암이 아닌 ..

치료가 끝나니 시원'섭섭'

오늘로 수술, 방사선치료, 항암치료를 마치시는 분. "치료를 마치시니 심정이 어떠세요? "... 시원섭섭해요..." 시원은 이해가 되는데 섭섭은 왤까? 3주간격으로, 외래 진료 중간기간에 검사가 끼어 있으면 그 사이에도, 항암치료 하다가 열이 나면 응급실에도, 그렇게 병원에 올때마다 병원이 지긋지긋, 의사도 지긋지긋, 피검사 하는 것도 지긋지긋 그 모든 과정이 끝났으니 속씨원하게 털고 병원 문을 나서면 될 것 같은데 왜 섭섭하실까... 이 치료를 마치면 다 잘 될거라는 희망. 치료 기간을 잘 견뎌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 한 주기 한 주기를 무사히 마치면서 잘 해냈다는 성취감. 문제가 생기면 의사와 상의해서 풀어가면 된다는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는 마음. 3주를 간격으로 삶의 시간표가 정해져 있었..

왜 많이 먹는데 체중이 빠지나요?

항암 치료 중에 먹어도 먹어도 살이 빠진다는 질문을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아~~ 조금만 먹어도 살이 무럭무럭 찌고 있는 저로서는 정말 부러운 질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환자분들은 심각하실 줄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항암제는 암세포도 공격하지만 정상세포도 공격합니다. 우리 몸에서 빨리 자라고 분열하며 성장하는 세포 - 꼭 암세포가 아니더라도 - 들은 항암제의 영향을 받아 치료기간 동안 죽어버립니다. (물론 항암치료가 끝나면 정상 세포들은 다시 살아납니다) 우리 몸의 정상 세포가 공격을 당해 죽을 정도면 정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수많은 기능들이 제대로 유지될 수 없겠죠. 그래서 여성분들은 난소 세포가 공격을 받아 기능을 잃고 에스트로젠을 만들지 못하니까 생리도 안합니다. 우리 몸의 영양 성분도..

유방암과 체중

수술전 항암치료를 8주기 하고 수술을 하신 48세 환자. 추가적인 항암치료를 더하는 것이 향후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리는 임상연구에 참여하여 먹는 항암제를 드시는 중이다. 오늘이 마지막 주기 첫째날. 치료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또 먹는 항암제로 추가로 치료한다는 것이 사실 상당히 힘든 일인데 우리 환자는 큰 부작용없이 얼굴색이 약간 검어지는 정도, 피부에도 별 문제없이 항암기간을 보내고 계신다. 아주 씩씩하시다. 지난 번 외래에서 목이 붓는 것 같다고 하셔서 만져보니 특별히 만져지는 것은 없는데 내가 보기에도 도톰하게 목이 부으셨다. 갑상선 호르몬 검사와 초음파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갑상선호르몬 저하증이 진행되고 있었고 초음파 상으로도 전체적인 갑상선이 비후되어 염증이 심한 것..

1기인데 꼭 항암치료를 해야 하나요?

수술 후 병기가 1기 입니다. 이렇게 병기가 낮은데도 항암치료를 꼭 해야 하나요? 머리도 빠지고 항암치료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데 말이죠... 선생님이 하라면 해야겠지만... 지금 병동에는 이렇게 1기인데도 항암치료를 하는게 낫겠다는 나의 설명에 터져나올 것 같은 눈물을 꼭 참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다가 열이 나서, 구토감이 심해서 입원해 계신 분이 두분이나 계신다. 1기인데 이렇게 힘든 치료를 하는게 정말 맞는걸까? 너무 오버하는 건 아닐까? 표준 가이드라인-가이드라인은 가이드라인일뿐, 반드시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다-이라 해도 미국판, 유럽판 기준이 약간 다르다. 예를 들면 유럽은 겨드랑이 림프절 전이가 1-3개 정도 있어도 - 즉 위험요인이 좀 있어도 - 호르몬 수용체가 양성이면 항암..

삼중음성유방암 환자분들께

제가 쓴 '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 책을 읽으신 분들 혹은 본인이 삼중음성유방암으로 수술 전 항암치료를 받으시는 분들은 아마도 삼중음성유방암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대략 아실 겁니다.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으시는 분들은 잘 모르실거에요. 수술을 받으신 분들께는 제가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니까요. 유방암은 다른 암보다 생물학적 특징이 많이 밝혀져 있는 분야이고 최신의 연구, 신약개발 등이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방암 세포 핵 혹은 세포 표면에는 수용체라는게 있는데 크게 ER, PR, HER2로 구분해볼 수 있고 이들 수용체가 모두 없으면 삼중음성유방암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의 특징은 수술 전 항암치료를 하면 기가 막히게 약효가 좋아서 수술을 하고 보니 암세포가 하나도 남지않는 '병리학적 완전..

호르몬약, 이거 만만치 않네

이제 힘든 일은 거의 다 지나갔습니다. 수술도 끝나고 방사선치료도 끝나고 항암치료도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루에 한알, 호르몬제만 드시면 됩니다. 이렇게 힘든 치료를 다 잘 견뎌내신 분이니, 호르몬 하루 한알 먹는것 쯤 별거 아닙니다. 그런데 막상 연구를 해 보니 전체 유방암 환자 중 5년간 호르몬제 복용이 필요하다고 처방받은 환자 중 50% 이상이 이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는다고 조사되었습니다. 저는 내심 충격적이었습니다. 짧은 외래에 오셨을 때 '약 잘 드시고 계시죠?' 라고 물으면 '네'라고 대답하시는 걸 다 믿고 있었는데... 사실 이 호르몬제를 매일 꾸준히 5년 혹은 10년간 복용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단지 약 복용을 잊지 않고 꼬박꼬박 먹는 것이 힘들다는 뜻이 아니라 호르몬제도 부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