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112

일상으로 복귀하라 그 구질구질한 일상으로!

입맛 좀 다셔보려고 뭣 좀 먹으려고만 하면 그거 몸에 않좋다 암치료 받고 그렇게 나쁜 음식 먹으면 안된다 이거 먹으면 면역이 좋아진다니 한번 먹어봐라 떡볶이 한개만 집어먹어도 커피 한 잔 마시려고 해도 생크림 케익 한 조각 먹으려고 해도 주위에서 난리입니다. 암환자는 그런 거 먹으면 안된다고. 우리나라에는 왜 이리 몸에 좋은 음식이 많은지, 주위에서 이것저것 선물해주고, 좋다는 음식 알려주고, 아주 관심들이 지대합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런 관심을 받으면 나에게 신경을 써주는구나 고맙다 그런 생각이 들기보다는 다들 왜 이렇게 나를 특별대접 하는거야? 자기 일 아니니까 너무 쉽게 말하는거 아니야? 그들이 던지는 한두마디의 격려조차 짜증이 납니다. 가족도 직장 내 동료도 나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내는거 같고..

목욕탕 가도 되요?

겨드랑이 림프절을 제거한 탓인지 수술한지 1년이 넘었는데도 팔이 자꾸 붓고 어깨랑 등도 뻐근하다. 방사선 받은 부위는 피부도 예민해지고 자꾸 벗겨져서 허옇게 일어난다. 방사선 조사부위는 다른 곳보다 더 뻣뻣하다. 내 살 같지 않다.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열날까봐 제대로 목욕도 안 했다. 개운치 않았다. 그런 환자들이 치료를 대강 마치고 호르몬제만 먹거나 허셉틴 유지치료를 하는 동안 묻는 질문, 목욕탕 가도 되요? 목욕탕 가도 되냐고 묻는 환자들은 대개 유방보존술을 하신 분들이다. 유방전절제술을 하신 분들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아직 목욕탕, 찜질방, 수영장 옷을 벗을 자신이 없다. 대중탕에는 가급적 들어가지 마시라고, 때도 너무 세게 밀지 마시라고 한다. 항암치료가 끝났어도 몸의 면역체계가 정상화되..

병원은 생전 처음이에요

우리 병원에서 유방암을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나를 처음 만나는 환자들은 대략 공부를 많이 하고 온다. 인터넷도 찾아보고 아는 사람들한테 얘기도 듣고 해서 대략 각오를 하고 오시는 것 같다. 그래서 왠만하면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이미 말라버린 걸까?... 마음속으로 눈물을 꾹국 참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쭈욱 설명을 하면 고이는 눈물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시는 것도 알고 있다. 난그냥 모른척 한다. 그런데 오늘 줄줄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한 채 내 설명을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울기만 하는 환자분이 있었다. 지병이 없어서 병원이라고는 처음인데 암이라는 엄청난 병을 진단받고 경황이 없으신가보다. 겨드랑이 림프절 양성, 종양크기는 대략 2cm, 충분히 좋은 결과를 기대해볼..

유전성 유방암을 가진 엄마가...

아침 회진을 거의 마칠 무렵 서른살이 미처 안된, 어느 유방암 환자의 딸이 날 찾아와 조용히 얘기좀 했으면 한다고 한다. 엄마는 얼마전 유방암과 난소암을 진단받고 수술, 항암치료를 마쳤는데, 배 안에 농양이 생겨 항생제 치료를 받고 계신다. 환자가 유방암을 발견한 계기는 환자의 여자 형제 두명이 유방암 진단을 받은 후 한명은 돌아가셨고 한명은 수술을 받은 상태인지라 평소 유방암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자가검진을 열심히 하다가 만져지는 것을 발견하여 유방암을 진단받게 되었다. 환자의 이모도 유방암과 난소암을 동시에 진단받고 돌아가셨다. 가족력이 하도 강력하다보니 이 딸도 어디선가 정보를 찾아보고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되었나 보다. 엄마 몰래 자기가 유전자 검사를 해 봤는데 엄마랑 같은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

손주보니까 우울증약 안먹어도 잠이 잘 와

68세 할머니. 유방암 수술 후 2기말로 진단받으셨다. 수술 --> 항암치료 8번 --> 방사선치료 한달반 --> 허셉틴 1년 호르몬 5년의 치료일정을 진행중이시다. 이 풀코스를 다 견디시기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혼자 병원 다니고 항암치료 하면서도 꿋꿋하게 온갖 부작용을 견뎌내셨다. 댁이 경기도 남쪽이신데, 매일 방사선치료도 왔다갔다 하면서 받으셨다. 그리고 지금은 허셉틴을 반년정도 하신 상태.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호르몬 치료에 대한 부작용은 별로 없으시다. 거의 모범환자 수준이셨다. 늘 혼자 병원에 오시던 할머니가 따님과 함께 오셨다. 처음 뵙는 따님 표정에는 걱정과 불안 가득. 할머니도 더이상 예전처럼 자신 만만하고 용감씩씩한 표정이 아니다. "오늘은 두분이 같이 오셨네요. 따님은 첨 뵙는..

환자의 전시회

아직 30이 안된 나이. 미술공부하러 유학까지 다녀왔다. 귀국해서 이미 전시회도 한번 열어 정식으로 데뷔를 한 상태이다. 이제 막 한국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데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1기. 종양의 크기가 1cm도 되지 않는 조기유방암이다. 아직까지 0.5cm- 1cm 정도되는 작은 크기의 유방암에서 항암치료를 할 것이냐의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핫 이슈이다. 즉 위험도가 높지 않은데 과도한 항암치료가 환자에게 해를 줄 수도 있다는 주장, 아니면 유방암의 장기적인 경과를 고려했을 때 항암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여전히 수많은 임상연구를 통해 적절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한번에 3000불이 넘는 유전자검사를 통해 위험도를 예측하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웃는 낯으로 오시니까 몰랐어요 - 모범환자 6호

77세 할머니. 외래에 오실 때마다 매일 매일 적은 당신 일기를 봉투에 넣어 나에게 주신다. (첨에는 돈봉투인줄 알았다 ㅋㅋ) 환자가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의사도 알아야 한다면서. 글씨만 보면 77세라고는 믿을 수 없는 반듯하고 깔끔한 글씨.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증상이나 몸의 변화에는 빨간 볼펜으로 글씨 위에 동그라미 점을 찍어 오신다. 일기가 마치 참고서같다. 빨간 점은 핵심체크. 할머니, 원래 선생님이셨어요? 적어오신 일기가 선생님 칠판 판서같아요. 어떻게 알았어? 글씨가 예사롭지 않아서요. 맞아, 나 교감까지 했어. 어쩐지 사감 분위기가 났었다. 연세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신 분이었는데 2주기 항암치료를 한 직후 심각하게 구내염이 왔다. 할머니는 곧바로 병원 오시지 않고 아플거 ..

약 제대로 드신거 맞나요?

유방암 항암치료와 표적치료가 끝난 건 2년 반 전. 오늘은 6개월에 한번씩 하는 정기검진을 하고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내원하셨다. 나랑은 처음 만나는 40대 중반 여자환자. 지금은 놀바덱스 호르몬제만 드시고 있다. 우리병원에서는 호르몬제만 복용하는 기간은 외과에서 추적관찰 하고 있는데 이 환자는 수술 후 표적치료 임상연구에 참여했던 환자라서 외과 보는 날 종양내과 진료도 같이 보게 되어 있어, 나도 호르몬만 복용하는 기간의 이런 환자를 만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저랑은 처음이시네요. 이제 치료도 다 끝나고,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요즘은 뭐하고 지내시나요?" "운동도 하고 뭐 그냥저냥 바쁘게 지내요." "호르몬제 드시는 건 괜찮으세요?" "네...." 대답이 어째 수상하다. 바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빵터지는 선물

환자에게 선물을 받으면 책장 한칸에 모아둔다. 선물은 그 사람을 참 기억나게 해주는구나 싶어서 선물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다. 내가 받은 선물 중 기억에 남는 선물 몇가지. 남대문에서 아주아주 작은 가게 한구석을 빌려 장사하며 지내고 거기서 숙식을 해결하시는 분인데 항암치료를 받던 중 가게에 불이 나서 물건이 거의 다 타버리고 잠잘 곳도 없이 어려움을 겪으셨던 분이다. 수술 전 항암치료를 하고 수술 후 수술 조직을 검사해보니 암세포가 하나도 없는 병리학적 완전관해를 달성했고, 종양내과 의사인 나는 그 결과가 얼마나 좋은 결과인지를 흥분해서 환자에게 설명했지만 정작 환자는 돈 안들이고 항암치료 받게 해 줘서 고마워 하는 정도. 동상이몽의 외래시간이었다. 환자가 그동안 고마웠다며 팔다 남은 촌스러운 덧버선..

상담원함

내일 외래 명단을 띄우면 담당 외래 간호사가 해당 환자의 외래 내원 사유를 메모해 놓는 칸이 있다. '4번째 허셉틴' '3번째 탁소텔' '종양평가 후 항암제 결정' '보험회사용 진단서' '유방암 수술 후 첫 내원' 이런 식으로 간호사가 메모를 해 둔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환자, 고민이 필요한 환자부터 차트를 열어본다. 중요도에 따라 파악을 먼저 하고 루틴 케모만 하면 되는 환자는 제일 나중에 파악한다. 그만큼 이제 좀 능숙해진 것 같아 뿌듯하다. 명단만 보아도 어떤 환자인지 아는 경우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다행이다. '상담원함' 이런 메모가 있으면 마음이 무겁고 착찹하다. 또 뭔가 어려움이 생겼구나... 이런 환자는 외래 제일 뒷쪽으로 순서를 옮긴다. 중간에 상담하는 환자랑 시간을 많이 쓰게 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