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여성으로, 아내로, 엄마로 항암치료 받기

슬기엄마 2011. 8. 16. 13:49

대한민국 아줌마,
항암치료 힘든거 참을 수 있다. 
입덧도 해보고 출산도 해봤으니까 토하는 거나 아픈거 다 견딜만 하다.

딸 생리대를 사면서, 난 언제 생리를 하게 될까? 다시 할 수는 있을까?
서글퍼진다. 이제 생리도 안하는 그런 여자가 된걸까? 남편이랑도 멀어지겠지?

호르몬제 드시면서 생긴 관절염 때문에 아쿠아로빅을 권했더니
수영장에 못가겠어요. 아직 자신없어요. 수영복도 잘 안맞아요. 가발 벗는것도 부끄러워요.

손톱 색깔이 변하고 이상한 무늬가 생겼다. 항암제 부작용 전혀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에 대한 훈장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더니 대번에 획 돌아앉는다. 고3짜리 딸은 12시 넘어야 들어오는데 자기는 피곤해서 10시면 잔다고, 그래서 애 얼굴 볼 일이 없다고. 그게 무슨 훈장이냐고 토라져서 나가신다. 무슨 엄마가 이 모양이냐고 자책하신다.

의사로서
환자의 신체적 변화, 이상 증상을 감지하고, 치료효과나 항암제 독성을 평가하는 걸로 치면
환자 몸 상태가 최고 좋은 상태로 잘 유지되고 있는것 같은데
정작 환자 마음 상태는 그만큼 좋지 않다.
한국 유방암의 특징은 peak age가 40대 중반, 서양은 60대 초중반에 유방암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들은 폐경전 여성들이 대부분이고
치료를 하는 과정 중에 폐경기로 접어드는 경우가 많다.
항암제나 항호르몬제로 인해 인위적으로 유도된 폐경기는
자연으로 경험하는 폐경기보다 폐경증상으로 인한 불편감, 우울함 등이 훨씬 더 심하다.
엄마로
안내로
여자로
상실감이 큰 것 같다.
무슨 말을 하면 금방 눈물이 뚝이다.
외래 내 책상에는 아예 크리넥스 통을 갖다 놓고 쓰고 있다.

수술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간 여러곳에 크게 재발이 되었다.
환자는 재발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항암치료도 안하겠다는 걸 집요하게 설득해서 치료를 시작하였다.
6번 항암치료 후 간 전이는 많이 좋아지셨다. 흔적이 좀 보이는 정도. 탁솔로 인한 신경염도 별로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환자는 횟수를 거듭할 수도록 우울감이 심해지고 있다. 치료 반응이 좋다고, 아무리 CT를 보여줘도 반응이 없다.
가족도 다 싫다고 한다. 모든게 눈에 거슬린다고 한다. 가족들을 안 보면 좀 나아질 것 같다며, 정신과 진료는 거부하신다. 남편은 매주기 여행과 맛집 기행으로 부인의 흥을 돋우고 치료과정을 지원하는데, 환자는 한달 한달 더 무드가 가라앉는다. 나를 믿고 항암치료를 해서 좋아졌으니, 다시 한번 나를 빋고 정신과 진료를 받으시라고 빌다시피해서 정신과 외래를 잡았다.

유병율과 역학구조의 차이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우리사회에서 폐경전 여성, 40대 초중반의 여성들이 유방암에 걸렸다는 것은 우리 가족과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나의 사회과학적 관심사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사만으로 문제의 돌파구를 찾지는 못할 것이다.
답은 과연 의학에서? 사회학에서? 환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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