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고생은 자기가 다 해 놓고

슬기엄마 2011. 11. 12. 12:01

수술 전 마지막 항암치료.
진료실을 들어서는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보인다.
수술 전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으러 온 그녀에게 그동안 고생많으셨다고 악수를 청하는데
악수를 하는 두 손에 눈물을 뚝 떨어뜨린다.
그동안 고마웠다며.


B형 간염 보균자라 비보험으로 비싼 간염바이러스 약도 같이 먹고..
임상연구 약 먹느라고 입이 다 헤져서 음식 잘 못드신다길래 영양제를 처방해 드렸더니
그걸 맞고 발생한 피부 알레르기 부작용 때문에 밤중에 응급실도 왔다 가고..
약 처방 일수가 잘못 계산되서 중간에 약 타러도 따로 오시고..
치료 기간 동안 순탄치않고 불편한 점 투성이였는데
나에게 그걸 탓하지 않고 고맙다고 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나 보다 약간 어린 그녀.
슬기 보다 약간 어린 딸이 있는 그녀.
자기 딸이 좋아하는 학용품인데 슬기도 좋아할지 모르겠다며
학용품 선물 꾸러미를 두고 간다.
자기 돈 내고 사기 힘든 비싼 볼펜, 수첩, 색연필 등
완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들로 가득 찬 선물꾸러미다.
슬기에게는 비밀로 하고
내가 쓰기로 했다.


2008년에 유방암 0기를 진단받고 수술 후 호르몬제를 먹고 있는 환자.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목포에서 오셨다.
고향 사람 만난 것 같아 반가웠지만
우리가 만난 건
6개월에 한번씩 하는 정기검진에서 뼈전이가 의심되는 소견을 보여 의견을 물으러 온 시점.

유방암 0기는 원칙적으로, 이론적으로 전이되지 않는 조기암이지만,
드물게 전이성 유방암으로 재발되기도 한다.
외부에서 척추 MRI를 찍어오셨는데 사진만 봐서는 재발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입원해서 의심되는 척추 뼈에 대해 조직검사를 하기로 하였다.
입원한 그녀.
다른 장기로의 전이는 없는지 종합검사를 다 하였다.
온갖 검사를 왕창 다 하고
조직검사 결과는 외래에서 확인하기로 하고 퇴원하였다. 검사만 하고 퇴원한 셈이다. 난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에게 특별히 할 설명도 없었다. 환자는 그렇게 썰렁하게 퇴원하였다.

환자가 퇴원한 후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동안,
나는 외부 MRI에 대한 우리 병원 영상의학과 선생님 자문을 구하였고, 다른 검사 결과도 챙겼다.
우리병원 영상의학과 선생님이 보시기에 전이를 의심하게 할만한 병변의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보셨다. 조직검사 하기를 잘 했다.

그리고 결과는 음성.
모든 결과를 종합했을 때, 척추에 생긴 병변은 전이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른 퇴행성 질환에 의한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뼈 조직검사는 다른 검사보다 환자가 좀 힘들다. 통증도 꽤 오래 간다.
목포에서 검사결과를 들으러 오셨는데, 이제 검사 후유증도 없고, 결과도 음성이라니 환자가 너무 기뻐한다.
나에게 너무 고맙다고 한다. 내 손을 잡고 고맙다며 놓지를 않는다.
그리고 어제 목포산 생낙지를 보내셨다고 전화를 하셨다. 
나는 한게 없는데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환자는
그런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