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치료 부작용 어디까지 설명하는게 좋을까?

슬기엄마 2012. 1. 29. 12:36

환자는
유방암을 진단받고 너무 두려웠나보다.
상세한 설명없이
당장 수술은 어려우니 항암치료를 받으라는 말에
나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보다 생각하고 병원을 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났다.
유방 크기만큼 암이 커져 버렸다.
통증이 심해서 병원에 다시 오셨다.
겨드랑이와 유방에 병이 있었는데 병원에 오지 않았던 지난 4개월동안 많이 커졌다.
서둘러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예민한 환자라 말 한마디 조심하는게 필요했다.
항암제 부작용, 치료 과정 중에 생길 수 있는 합병증
이런 설명을 너무 많이 하면 또 겁 먹고 항암치료를 거부할 것 같다며 자식들이 부탁한다. 환자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완화하여 설명했으면 한다고...
나도 동의했다.
항암 치료 중에서는 수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지만
그걸 일일히 다 설명하고 각인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가장 흔한거, 환자가 주의하면 되는 거, 일반적인 사항을 교육하고
이제는 병원 열심히 오셔야 된다고 약속하시게 했다.

그렇게 치료를 시작했는데
유방 종괴가 너무 컸는지, 항암제가 들어가면서 터져버렸다.
염증성 진물이 많이 나니까 퇴원할 수 없었다. 매일 드레싱하고 경과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갑자기 급성신부전이 오고 패혈성 쇼크가 동반되어 응급 투석을 하게 되었다.
항암치료를 시작한 환자에서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일은 아니다. 물론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일이지만, 의례적으로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나도 첫 치료를 받는 이 환자와 가족에게 구체적으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하지 않았었다.
미리 예측하지 못한, 설명듣지 못한 응급상황을 맞이한 가족들이 모두 당황하고 있다.
지방에서 황급히 올라온 아들에게 설명을 하였다.
나도 당황스러운데 오죽하겠는가...
잘 참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다.
이따 투석 끝나고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가끔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기고
환자의 상태가 나빠질 때
미리 설명듣지 못한 일이 갑작스럽게 발생했다고 느낄 때 
상황을 수용하지 못하는 환자와 가족들이 있다.
이런 사태를 예방하려면 미리 엄청난 설명을 해 두는 수가 있다.
방어진료가 되겠지.
그러나 그렇게 자세한 설명이 늘 필요한 것은 아니다.
환자가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들고 때론 불필요하게 불안이나 두려움을 초래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 가운데 어디서 기준을 잡아야 할지는 상황마다 달라진다.


오늘 입원한 다른 환자는
건강 검진에서 유방암 0기가 의심되었다.
환자는 수술만 하면 완치된다기에 별 걱정없이 수술을 받았다. 수술 끝나고도 별 말이 없었다.
그런데 퇴원 1주일 후 외래에서
최종진단이 나왔는데 0기가 아니라 2기이며,
겨드랑이 림프절에서도 악성세포가 관찰되어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며 3개월이 아니라 6개월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때부터 불안증이 시작되어 몇일 동안 잠도 못자고 정서가 불안해 어쩔 줄 모르다가 급기야는 내 첫 외래를 보기도 전에 정신과에 입원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정신과 퇴원후 나를 만났다.
사실 진단을 위한 세침조직검사를 할 당시보다 수술을 하고 나면 최종 병기가 올라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그 일을 당하는 환자는 단계별로 좌절감을 느끼고 뭔가 나쁜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정신과 면담 기록을 보니
환자는 의사로부터 제대로 설명도 못 듣고 자기 앞날이 어떻게 될지, 치료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는게 불안함을 가중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 입원한 그녀에게 충분히 설명을 해 줘야겠다. 그런데 얼마만큼 설명하고 얼마만큼 정보를 공개해 주어야 불안해하지 않을까? 그 수위를 잘 결정해야겠다.

종양내과 의사가 하는 일 중 상당 부분은 환자와 가족 면담이 차지한다.
효과적인 대화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말 자체를 잘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말의 지식적 배경도 확실해야 하고
환자의 마음도 읽어가면서 수위 조절도 해야 하고
공감도 할 줄 알아야 하고
의학적 치료의 의미와 한계도 잘 설명해야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한 것에 책임을 져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