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모범환자 8호 - 나날이 씩씩해지는 그녀

슬기엄마 2012. 1. 16. 22:06


속내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가족이 모두 베트남에 살고 있다.
아마 남편 사업 때문에 가족이 이사를 가신 것 같다.
환자는 두 아이의 엄마.
유방암 치료를 시작할 무렵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기는 약에 아주 민감하다고
약 잘 못 먹으면 엄청 고생하는 스타일이라고
입덧도 아주 심했었다고 했다.
국내에 친척들이 있기는 하지만 항암치료 하는 기간 동안
그들 집에 머물기는 어렵다고, 마음이 부담스럽다고
그래서 우리병원에서 항암치료 받고 나머지 기간은 요양병원에서 머물러 계실 거라고 했었다.

그렇게 하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첫날 항암제를 맞고 귀가했다가 바로 당일 밤에 응급실행.
그리고 환자는 일주일 이상 계속 토했다.
내가 본 환자 중에 제일 증상이 심했다.
내가 회진을 가도 그녀는 날 아는 척 조차 하지 못했다.
온갖 항구토제를 다 투여했다. 결국 증상이 좋아지지 않아서 아예 수면제를 써서 환자를 재웠다.
환자는 10일이 넘어 겨우 퇴원하였다.

환자는 첫 네번의 항암치료를 이렇게 힘들게 마쳤다.
매번 입원하고 10일간은 거의 죽어 지냈다.
병원에서 영양제맞고 항구토제 맞고 거의 자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너무 힘들어보여서 
내가 항암치료를 그만 하자고 말했는데
자기는 겨드랑이 림프절 양성이니까 계획대로 8번의 항암치료를 다 받는게 중요하다고,
이제껏 고생했는데 중간에 포기할 수 없다고,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자기는 끝까지 치료 다 하고 이겨내겠다고 한다.

약을 바꾸어 다섯번째부터 탁소텔을 맞았는데 앞전 약보다 훨씬 수월해보였다. 베트남도 한번 다녀오셨다. 오늘은 탁소젤 3번째 맞는 날이다.

2번째 탁소텔 맞고 어떠셨나요? 별일 없으셨나요?
진통제 부작용이 있었던거 같아요.
어느날 진통제를 먹고 속이 울렁하더니 한 일주일 계속 토하고 아무것도 못 드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겨우 얼굴에 붙은 살이 다 빠지고 다시 쾡 해졌다.
선생님, 그약 말고요, 첫번째 항암치료 받고 주신 약 있잖아요. 그걸로 바꿔주세요.
쿨하게 요구한다.

환자가 이렇게 항암치료 후유증을 심하게 겪고 오면, 괜히 내가 미안하다. 환자에게 준 진통제는 사람에 따라 구토감이 유발될 수도 있다. 나도 그 약을 한번 먹었다가 구토감 때문에 고생했었다. 그래도 다른 약에 비해 부작용이 가장 적은 약이라 그걸 선택했는데, 환자는 이번에 이 약 때문에 고생이 시작된 것 같다.

환자는 처음 구토로 고생하던 무렵, 겁에 잔뜩 질려있었다.
당시 이것저것 질문도 너무 많고 증상을 조절하려고 약을 쓰면 또 그 약 때문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나서 치료하기에 여러가지 까다로운 점이 많았다. 조금만 부작용이 나와도 그게 유방암 때문인 것은 아니냐고 불안해했다. 환자도 힘들고 나도 힘들었다. 그녀의 수첩은 한달에 반은 도통 먹지 못하고 토하고 어지럽고 그런 힘든 이야기만 잔뜩 적혀있었다.

탁소텔을 잘 견디는 듯 했지만 또 다른 부작용으로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아 괜히 내 마음이 미안해지고 있는데 어째 환자 표정은 밝다.

많이 용감해졌네요. 이제 무섭지 않나봐요?
결국 시간이 지나가니까 다 좋아지더라구요. 무슨 증상이 생겨도 이제 걱정안해요. 시간이 다 해결해주는거 같아요. 저 잘 견딜거니까 걱정마세요.
오, 정말 변했군요. 왠일이죠?
후후 이제 항암제 경력자가 된거죠. 베트남 가서 가족들 보고 오니까 마음이 든든해졌어요. 저 다 이겨낼 수 있을거 같아요. 힘들어봤자 2주 견디면 좋아져요. 나머지 1주 때 열심히 먹으면 되요. 이제 입원 안할거에요. 입원하나 안하나 힘든거 마찬가지에요. 제가 조절하고 적응하는 법을 깨닫게 된거 같아요.

환자는 여전히 혼자 힘으로 
다른 친척들 도움없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치료기간을 견디고 있다.
그게 그렇게 궁상스럽게 보이지 않는 것은
그녀의 환한 얼굴 때문이다. 

그녀는 내 약 처방 때문에 고생을 해도 날 원망하지 않는다.
다 그러려니 한다.
그러니 내가 더 미안하고 안쓰럽다.

이제 한번 남았다.

베트남에서 불어오는 가족 사랑의 바람이 그녀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조금만 더 버티세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