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정신과 선생님 감사합니다

슬기엄마 2012. 1. 10. 21:44


나는 그 환자의 과거 병력을 자세히는 몰랐다.
그녀는 유방암 수술 후 4번 항암치료 하고 허셉틴으로 표적치료 중이다.
내가 정리해 놓은 병력에는
과거 불면증이 있었고 성격이 예민한 편이라 집근처 신경과에서 약을 복용한 적이 있었다는 정도의 메모로 정리되어 있다. 나는 r/o depression 이라고 내 의견을 적어두었다.
그러나 허셉틴 표적치료는 그리 힘들지 않기 때문에 외래에서 환자랑 별로 많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 피검사도 잘 안하고 가끔 심장기능만 체크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설명할 내용도 별로 없다. 이미 힘든 항암치료를 다 받은 상태라서, 환자들도자기 치료과정에 대해 왠만한 사항은 잘 알고 있고 병원 시스템도 잘 알고 있다. 허셉틴 치료는 힘든 것도 없어서 환자도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외래 진료시간
도 짧다. 이 환자도 그렇게 짧게 외래를 보면서 허셉틴 치료를 하고 있었다.

난 가끔 잠은 잘 주무시냐고 여쭙곤 했는데,
원래 별로 말이 없고 얌전한 그녀는 그럭저럭 괜찮다고 했다.
제가 약을 좀 드릴까요? 하면
동네 병원 다니던 곳에서 약 탈께요 하면서 추가적인 처방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가 좀 불안해보이는 눈빛으로 외래에 들어온다.
좌불안석이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도 괜찮다고 하면서 자꾸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처방을 하지 않고 계속 기다린다.
환자가 나를 똑바로 쳐다볼 때까지.
그랬더니 환자가 오늘 허셉틴 맞고 싶지 않다고 그냥 가겠다면서 나가려고 한다.
환자를 붙잡았다. 보호자에게 연락했다. 남편이 왔다.
입원해서 정신과 진료를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좀 불안해 보이고,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냥 집에 가시면 안될 것 같다고, 가능성은 낮지만 뇌전이일 수도 있다고.
내가 그렇게 까지 말하니
남편은 환자가 10년전 정신분열병을 진단받았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최근에 약을 잘 안 드신 것 같다.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나보다.
입원을 했지만, 환자도 남편도 계속 입원을 원치 않았다. 무작정 집에 가려고 한다. 겨우겨우 설득해서, 뇌 MRI 를 찍고 정신과 진료를 보게 했다. 남편은 환자가 입원하면 매번 상태가 더 악화되었었다고, 집에서 간호하시겠다고 한다. 집에서 가족이 보기에 환자 상태가 안정적이지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퇴원하였다. 사실 경제적인 부담도 크다고 했다. 환자는 약을 처방받고 퇴원하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냈다. 앞으로 어떻게 되려나...큰 일 나는거 아닌가...

그리고 2달이 지났다.
환자는 예전보다 훨씬 더 차분하고 얌전하게 외래에서 치료받고 계신다.
말씀도 조리있게 잘 하시고, 전혀 불안해 보이지 않는다.
이제 마음은 괜찮으세요? 불안하지 않나요? 이상한 소리는 이제 안들리나요?
나는 직접적으로 묻는다.
환자는 웃으면서, 정신과 선생님이 약을 잘 지어주셔서 이제 그런 증상없다고, 잠도 잘 잔다고 말씀하신다.
남편은 진료실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 계신다. 그렇게 증상이 왔다갔다 하는 아내를 짐스러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나에게 자꾸 미안하다고 한다. 밖에서 문을 열고 신경쓰이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씀만 하고 문을 닫는다.
이렇게 차분하게, 안정적으로 환자가 변하는 걸 보니, 정신과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게 된다. 환자가 무작정 퇴원했을 때 정말 마음이 복잡했는데, 외래에서 잘 치료해주셨다. 약을 잘 쓰니까 이렇게 사람이 달라지는구나. 정말 좋아졌다 감탄한다.

그녀가 오늘 외래에서 나에게 부탁한다.
선생님,
저 병원에서 자원봉사하게 해주세요. 집에서 가만히 있으니까 답답해요. 저 자원봉사 해도 될까요?
아픈 사람만 보게 될텐데 마음이 괜찮으시겠어요?
다음번에 올 때 생각해보고 올께요. 선생님이랑 상의하면서 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요...

자기 몸과 마음이 불편한데
그걸 극복해 보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그녀를 위해
힘들지 않고 보람있는 자원봉사 자리를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