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 1020

임상연구의 중간결과 발표

환자들에게 임상연구를 제안할 때 이 연구가 환자에게 100% 이득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시작하는 연구는 없습니다. 그렇게 이득이 될 것이 확실하면 임상연구를 하지 않고 바로 현실에 적용하는게 윤리적으로 맞는 겁니다. 그러나 임상연구를 거치지 않은 채 그렇게 확신할만한 약제를 찾고 치료에 적용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근거가 필요합니다. 종양학, 항암제의 개발 역사는 거듭된 임상연구에 의해 그 지식이 축적되어 왔습니다. 실험실에서 세포실험, 동물실험을 거쳐 일정정도 항암 효과가 있는 것으로 결과가 난 약제를 1상, 2상, 3상 연구에 수차례 적용하여 새로 개발된 약제가 기존 약제에 비해 비슷하거나 혹은 우수하다는 결과를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교과서적인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

좀 야한 얘기면 어때요?

진료 순서가 되었는데 환자가 안 들어온다. 간호사가 여러번 목청 높여 환자를 부른다. 대기실 저 멀리서 까르륵 웃고 있는 환자들 무리에서 뛰어오는 그녀가 보인다. 아니, 뭐 하시느라 자기 이름 부르는 것도 모르고 계세요? 뭐 좋은 일 있으세요? 좋은 일 있는 건 아니구요, 나 뒤에 외래 보는 그이가 웃기는 얘기를 해줘서 그거 듣고 웃다가 저 부르는지도 몰랐어요. 무슨 애기가 그렇게 웃겨요? 저도 좀 같이 웃어요. !@#$%^&*+++ 그런게 있는데요 !@#$%^&*+++ 그런 거래요 아이고, 그런 야한 얘기를 하면서 외래 기다리는 거에요? 오마이갓! 요일별로 오는 환자, 진료 순서가 비슷하다보면 외래에서 대기하는 동안 서로 인사도 나누고 친해지기 쉽다. 형편이 비슷하니 더 말이 잘 통하는 것 같다. 전이..

소원트리

매년 이맘때면 세브란스 병원 본관에는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된다. 매년 세브란스 병원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아주 멋있다. 보통 트리보다 훨씬 큰 나무에 각종 반빡이 장식과 램프들로 멋지게 장식이 되어 크리스마스라고 뭐 특별한 날인가 싶게 무덤덤한 내 마음에도 잠시 설레임이 지나간다. 아주 밤 늦은 시간, 컴컴한 병원에서 반짝 반짝 불빛을 밝히는 트리를 보면 마음이 아주 따뜻해진다. 그래서 매년 기대하게 된다. 올해 트리는 어떨까? 그런데 올해 트리는 얼핏 보니 좀 초라하다. 폼도 별로 안나고, 장식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램프도 없어 반짝반짝 빛이 나지도 않는다. 가까이 가 보니 예년과는 달리 트리 옆에 '세브란스 소원트리'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트리에 줄맞춰 작은 화분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화..

처방 오류

그래서는 안 될 일이지만, 처방오류가 종종 발생합니다. 항암제의 경우 저희 암병원 항암제 약무국에서 오류의 심각도에 따라 처방오류 발생율을 조사하여 6개월이나 1년에 한번씩 종양내과와 간담회를 갖고 처방오류의 실태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오류의 빈도와 종류를 분석하고 오류를 감소시키려는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또 그 노력의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도 보여줍니다. 물론 매일 외래에서 제가 항암제를 처방하면 항암제 조제실이나 약무국에서 내 처방의 오류를 미리 점검하고, 뭔가 의심되는 사항이 있을 경우 진료실로 전화하여 처방사항을 직접 확인하여 사고와 오류를 미연에 방지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몇 번을 거르고 확인하여 오류를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가 처방을 낼 때 잘 내야 하는 것일텐데요 처방이라..

나의 주말

오늘은 대한암학회가 있었습니다. 올해는 프로그램이 좋아서 그런지 참가자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학회가 열리는 발표장이 꽉 차서 서서 듣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자기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사람 최신 지견을 공부해서 발표하는 사람 강의를 듣고 질문하는 사람 내과, 외과, 방사선종양학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신경외과 등 암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 여러 기초분야 연구자 등 암을 연구하고 진료하는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습니다. 한동안 국내 학회가 시들해지는 분위기였는데 오늘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학회를 가면 강의를 듣고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슷한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는 아직 연구해서 발표할만한 변변한 과제도 없고 그저 배우고 따라가기에 급급한 신참인 것 같습니다...

드레싱 도사가 된 할아버지

할머니 유방 상처가 낫지를 않는다. 항암제가 잘 들으면 상처가 잘 아물고 깨끗해졌다가 항암제 저항성이 생기면 다시 상처가 덧난다. 항암제가 듣지 않을 때는 진물도 많이 나고 살성도 벌겋게 변해서 드레싱하기도 힘들게 순식간에 나빠진다. 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는 항상 외래에 같이 다니신다. 치료 받는 사이 할머니에게는 뇌전이도 한번 왔다 갔고 악화되는 상처 때문에 유방에 방사선 치료도 했고 세가지 약제 이상으로 여러번 항암제를 바꿔서 치료했지만 결국 나빠지고 있는 중이었다. 할머니인데 삼중음성유방암이었다. 처음 이 할아버지는 너무 꼬장꼬장 하셔서 사실 나랑 몇번의 실갱이도 있었고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주로 할머니랑 대화하며 치료방법을 결정하고 관련 설명을 드렸었다. 할아버지는 약간 못마..

진료실에서의 기도

오후 외래 들어가기 전 분초를 다투어 다른 일 처리를 하다가 가까운 사람에게 실수를 하였다. 가까울수록 더 예의를 지키고 조심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 사실을 잊었나보다. 외래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 심사가 얼굴에 다 드러났는지 오후 외래 첫 환자부터 나를 걱정한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이어 들어온 몇명의 환자가 계속 똑같이 나를 걱정한다. 선생님, 얼굴 표정이 너무 않좋아요. 나쁜 일 있어요? 선생님이 저보다 더 않좋아 보여요. 힘내세요. 세상에, 자기 몸 아파 병원에 온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담당의사의 얼굴 표정을 보고 걱정을 하다니 참 엉터리 의사다. 소심한 나는 얼굴 표정을 잘 못 바꾸고 그렇게 꿀꿀한 표정으로 진료를 하는데 목사님 환자 차례가 되었다. 지난 번 외래에서 병이..

재충전

저, 일주일간 학회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애써 블로그를 외면하며 들어와보지 않았어요. 저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마음에 가득 찰 때 블로그에 글을 쓰는데요 환자 진료를 하면서 그런 마음이 들게 되요. 우리 환자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 병원을 떠나 학회를 가니 그런 생각이 잘 안나더라구요.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연결이 잘 안되고 글이 잘 안써져요. 솔직히 다른 한편으로는 방전된 나의 밧데리를 충분히 충전시키고 싶은 생각도 있고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오늘 외래 환자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주치의가 학회가고 없다고 하니까 외래에 안오시고 집에서 아픈거 끙끙 참다가 오셔서 엉엉 우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암 환자들이 통증 때문에 아파서 우는 거, 제가 드릴 말씀이 없었습니다. 입원장을 드리며 마음이..

기적의 책갈피

오늘 우리병원 사회사업팀에서 주관하는 기적의 책갈피 모임이 있었다. 추상적으로 말하면 내가 어떤 환자를 위해, 어떤 조직을 위해 내 마음 다하여 지향하고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전하여 그를 위해/ 그 조직을 위해 여러 사람의 마음을 모은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한달 동안.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책갈피를 누군가에게 준다. 그러면 그가 나에게 이 책갈피를 선물로 받고 나에게 답례로 어떤 선물을 준다. 그러면 나는 그 선물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준다. 그러면 그는 그 선물을 받고 나에게 또 다른 선물을 준다. 그러면 나는 또 그 선물을 또또 다른 누군가에 준다.... 이렇게 한달동안 나를 매개로 하여 선물이 오고 간다. 손을 거칠 때마다 더 좋은 선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내가 지향했던 사람..

Pink Ribbon 볼수록 설래는

왼쪽부터 첫번째 인하대학교 예방의학교실 황승식 선생님이 미국으로 주문해서 보내주신 유방암 뱃지. (태평양을 건너왔음). 배송잘못으로 한번 불발되었다가 선생님의 끝질긴 노력으로 재주문하여 우리병원에 도착하기 까지 너무너무 오래 걸린 미국야구 메이저리그의 유방암 뱃지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 리그에서는 매년 어머니날 (5월 11일)에 유방암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팀별로 다양한 기념품과 행사를 준비한다. 야구 선수들은 핑크색 방망이를 사용한다거나 핑크색 운동화끈을 매고 심판들은 핑크색 손목밴드 등을 사용한다. 게임이 끝나면 이들 기념품이 경매나 기부 등으로 판매되고 이익금이 유방암 재단에 환원된다. 이날 야구장을 찾는 여성 관객들에게 핑크리본 뱃지를 나눠주기도 한다. 이런 기념품을 받은 관객들은 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