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 1020

향 레코드

20년전 신촌에서는 '독수리 다방'에서 미팅을 했고 '오늘의 책'에서 약속을 했었지요 2차를 갈 때는 오늘의 책 메모판에 메모를 남기면 지나가던 친구들이 그 메모를 보고 예정없이 합석하기도 합니다. 친한 친구들과는 소주집 '훼드라'에 가서 라면 국물과 계란말이에 쏘주도 마시고 술이 안 깨면 탁구장 가서 탁구도 치고 야구장 가서 500원 넣고 공 10개 나오는 야구도 했습니다. 그렇게 술 깨고 집에 갑니다. ^^ 그게 제가 대학 1학년 1990년 대 초반 신촌의 풍경이었죠. 지금 현대 백화점 5거리 자리에 무슨 디스코텍도 있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네요. 그 앞에서 데모도 많이 했었는데... 그뒤로 신촌 풍경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옛날 가게 중에 남아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3년에 한번씩은 가게가 바..

H 선생님께

H 선생님. 내가 우리 4기 암환자 수술을 주로 의뢰드리는 선생님이다. 내가 비슷한 증상의 환자를 여러 외과 선생님께 협진 의뢰해 봤지만, 두고 보는게 낫다는 둥, 약을 더 써보라는 둥, 수술적 이득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둥, 수술을 잘 안해주시려고 하는 다른 선생님에 비해 H 선생님은 내가 수술을 의뢰한 이유를 잘 수용해주시고, 비교적 수술을 잘 해 주신다. 난 그래서 H 선생님께 주로 수술을 의뢰하게 된다. 수술하는 의사 입장에서 완치 목적이 아닌 4기 환자에 대한 증상 완화적 목적의 수술은 일반 환자에 비해 훨씬 손도 많이 가고, 수술하기도 힘들고, 수술 시간도 길고, 그만큼 그가 감수해야 하는 위험도 크다. 또 이런 수술들은 대부분 수가가 싸서 본인 및 병원의 수익율 향상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

마사지 한번 받아보세요

온 몸이 뻐근하다. 잔뜩 긴장하고 책상 앞에서 일을 한 탓인지 양 어깨에 귀신이 앉아 있는 것처럼 무겁다. 늙은 의대생 시절, 나에게 가끔 마사지를 해주는 동기가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이 노쇠한 언니를 위해 자기 쉬는 시간을 할애하여 내 어깨도 주물러 주고 척추뼈도 두들겨주고 나를 그렇게 만져주었다. 그러나 가끔. 마사지를 하는 사람도 힘드니까. 자기의 에너지를 나에게 주는 것이니까. 그녀가 긴장해 있는 내 목 주위 근육을 주물러 주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아이고 시원하다. 마사지를 통해 우리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된다. 아이들이 배아프면 엄마들이 손으로 배를 살살 문질러 주며 엄마손 약손을 해준다. 그 온도와 터치가 주는 에너지로 아이들 배가 낫는다. 항암제로 인한 손발저림 항..

삭감 모면을 위해

학회장에서 평소 안면이 없는 선생님께서 - 선생님은 타병원 선생님이시고 종양내과 내에서는 매우 연배가 높으신 선생님인 관계로 나같은 피래미는 선생님 근처에는 갈 일이 없는 관계로 - 나를 따로 찾으셨다. 이선생, 잠깐 얘기해도 될까요? 내 발표에 문제가 있었나? 마음이 긴급 긴장된다. 네, 선생님 말씀하세요. ** 환자 기억나나요? 네. 그런데 선생님이 어떻게 그 환자를 아시죠? 심평원에서 아주 뜨거운 토론을 벌였던 환자라서요. 네? 선생님 말씀인즉슨 그 환자가 말기 암환자로 임종 전 통증 조절을 위해 주사용 몰핀 제재를 고용량으로 쓰고 있었는데 같은 성분의 값싼 몰핀이 있었는데도 내가 사용했던 몰핀 제형의 단가가 더 높아, 전체 진료비용을 줄일 수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약을 쓰는 바람에 비용이 많이..

Physicians' Burning Out

어제는 한국 임상 암학회에서 주관하는 두 분과모임의 학회가 있었다. 오전에는 완화의료분과에서, 오후에는 유방암 분과에서 모임을 주관하였다. 오전 발표 중 Physician's burnout 이라는 주제로 대구 계명대 박건욱 선생님 발표가 있었다.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의사의 기력소진 정도라고 하는게 좋을까? 박건욱 선생님은 종양내과 의사로서 암 환자 진료에 경험이 많은 것은 물론이시고, 통증이나 암환자의 삶의 질에 대해 연구도 많이 하신 중견 연구자 이시다. 평소에 특정 암을 중심으로 의학적인 내용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만 보다가 오늘처럼 다소 소프트한 주제로 발표하시는 것을 처음 보게 되었다. 선생님의 발표를 듣는데, 이건 강의를 듣는게 아니라,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함꼐 집단 치료를 받는 시간이 아닌..

나를 슬프게 하는 병원 풍경들

이렇게까지 힘들어 하며 생의 마지막 시간을 견디는 그녀. 나보다 훨씬 젊은 그녀의 머리맡에 놓인 2살이 안된 똘망똘망한 아들의 사진. 콧줄에서, 복수때문에 가지고 있는 관에서, 오늘 끼운 소변줄에서 스멀스멀 멈추지 않고 나오는 붉은 피. 설사가 심한 약도 아닌데 항암제만 썼다하면 멈추지 않는 설사로 자꾸 입원하는 부인. 한달에 입원해 있는 시간이 집에 가 있는 시간보다 더 긴 그녀를 위해 병원으로 퇴근하는 남편, 뭔가 가득 들어있는 배낭을 짊어진 그의 뒷모습. 어머니의 임종을 앞두고 초조한 아들, 몇일째 제대로 씻지도 못한 듯 푸석푸석한 얼굴. 주차장 뒷켠에서 그의 등뒤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뇌 수술 후 깨어나지 않는 뇌기능. 그녀의 초점없는 눈동자. 바싹 마른 입. 그리고 찢어진 입꼬리에 맺혀 있는..

한 마디

그녀가 퇴원한건 몇 일전이다. 복수 조절을 위해 임시적으로 관을 넣고 잘 못 먹으니 영양제 맞고 약을 바꿔 항암치료를 시작해 볼까 하는데 환자가 몇일 더 쉬었다가 치료를 했으면 한다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이번에 젬자를 많고 전신무력감이 심하게 왔다. 좀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그렇게 3일 정도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걸어서. 혼자. 그녀는 재발된 전이성 유방암으로 5년이 넘게 치료 받고 있었다. 좀 나빠져도 항암치료를 하면 다시 좋아지고 또 운이 닿아 신약 임상연구에 참여할 기회도 많아 여러가지 신약을 많이 쓸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그렇지만 약을 쓰면 좋아져도 시간이 지나 저항성이 생기면 또 나빠지기를 반복. 그러나 그녀는 컨디션이 좋았다. 병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도 초달관 스타일. 이번 약..

내 인생의 타율

전 야구를 아주 좋아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프로야구가 출범을 했는데 그때 전 주말마다 야구장 다니는게 취미였어요. 저는 해태 타이거스 팬이었어죠. 외인구단 해태. 원년 멤버들 정말 끝내줬어요. 그때 야구단 회원이라고 나눠준 소책자에 선수들 프로필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걸 다 외우고 다녔죠. 누가 언제 결혼하고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백넘버는 몇 번인지, 이상형은 어떤지 그런 걸 다 외웠다니깐요. 혼자 테니스공을 잡고 투수 폼을 흉내내며 공던지는 연습도 하고 동생 야구글러브로 벽에 공던지고 받는 연습도 하고 그랬어요. 전 이상윤 투구폼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실재 남자애들하고 야구시합을 해 본 적은 없었죠. 왜냐면 타격연습을 할 기회가 없어서 타자로 나설 자신이 없었거든요. 도무지 이 방망이로..

졸업 축사

한국 임상 암학회 내 유방암 분과 모임이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있는데 여기 가면 유방암을 주로 보시는 다른 병원 선생님들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우리 병원 우리 과에서 다른 암을 진료하시는 선생님들보다 유방암 분과에서 만나는 다른 병원 선생님들이 제 심정을 잘 이해하실지도 모르겠다. 같은 병을 진료하는 의사라서 쉽게 공감대가 형성된다. 아, 그거! 척 하면 척 통한다. 그런 느낌을 받기 때문에 난 이 모임에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나간다. 위로도 받고 도움도 얻을 수 있으니 내가 기다리는 모임이기도 하다. 아마 그만큼 유방암 환자를 진료한다는 것은 다른 암과 다른 어떤 특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방암은 쓸 수 있는 약제도 매우 다양하고 - 항암제, 항호르몬제, 표적치료제 같은 유방암이지만 호르몬, ..

아름다운 산행

저는 환자 진료 기록을 작성할 때 암과 관련된 사항을 제일 먼저 정리하고 그 다음으로 이 환자가 가지고 있는 다른 질환을 나름 임상적 중요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서로 정리를 합니다. 예를 들면 #1. Breast cancer, Lt 최초 유방암 상태 : 언제 수술하고 방사선 하고 항암하고 ER PR HER2가 어떻고 기타 최초 정보 #2. Recurred breast cancer 어디어디 재발하고 어디는 다시 수술했고 방사선치료 했고 비뇨기과 스텐트 넣고 카테터 넣고 어떤 순서로 항암치료 했는지 #3. DM, HTN 당뇨 고혈압 등 기타 심각한 만성질환과 현재 복용중인 약 #4. s/p cholecystectomy due to GB stone osteoporosis (2012.10. BMD L-sp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