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순서가 되었는데
환자가 안 들어온다.
간호사가 여러번 목청 높여 환자를 부른다.
대기실 저 멀리서 까르륵 웃고 있는 환자들 무리에서 뛰어오는 그녀가 보인다.
아니, 뭐 하시느라 자기 이름 부르는 것도 모르고 계세요?
뭐 좋은 일 있으세요?
좋은 일 있는 건 아니구요,
나 뒤에 외래 보는 그이가
웃기는 얘기를 해줘서 그거 듣고 웃다가
저 부르는지도 몰랐어요.
무슨 애기가 그렇게 웃겨요?
저도 좀 같이 웃어요.
!@#$%^&*+++ 그런게 있는데요
!@#$%^&*+++ 그런 거래요
아이고, 그런 야한 얘기를 하면서 외래 기다리는 거에요? 오마이갓!
요일별로 오는 환자, 진료 순서가 비슷하다보면
외래에서 대기하는 동안 서로 인사도 나누고 친해지기 쉽다.
형편이 비슷하니 더 말이 잘 통하는 것 같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 사이의 애틋한 우정이 있다.
대기하면서 그렇게 서로 웃긴 얘기 하면서 신나게 웃다보면 시간가는지도 몰라요.
어디서 그렇게 웃긴 얘기를 들어요?
저 자원봉사 가면요, 젊은 학생들이 암환자는 웃어야 한다면서 저한테 웃긴 얘기 진짜 많이 해주고요, 제 조카들도 문자로 웃긴 얘기 많이 보내줘요. 저 원래 그런거 모르고 살았는데, 요즘은 아주 도사가 됬어요. 웃겨 죽겠어요.
어디 한번 봐요.
스마트 폰이라 보내준 문자가 다 남아있다.
웃긴 얘기보다 야한 이야기가 더 많다.
이거 너무 야한거 아닌가요? 이 나이에!
(환자분이 나보다 연세가 많으시지만 우리는 매주 외래를 보기 때문에 별 얘기를 함께 나눈다. 젊은 내가 이렇게 얘기해도 환자가 별로 무례하게 느끼지는 않으셨을 거라고 믿는다.)
아이고, 이게 뭐가 야해요? 이 정도는 되야 좀 웃기죠!
매주 병원에 오기를 3년째.
병이 많이 좋아져서 이제는 폐에 흔적만 남아있지만, 그래도 병이 있기는 있다.
매주 병원에 와야 하니
몸 컨디션도 좋은데 어디 맘 편히 여행도 못 가고 사는게 좀 답답한가보다.
지금 하는 임상연구를 끝내고 일반 치료로 바꿔 볼까도 했지만
환자가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래도 내가 그 치료해서 내가 이만큼 좋아진건데 건방떨면 안되죠.
그냥 다닐께요. 열심히. 취미생활 삼아서 병원 다닐래요.
매사 긍정적으로
또 감사한 마음으로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유머감각까지도 애써 키워가며 노력하는 그녀의 생활 태도,
가히 본받을 만 하다.
좀 야하면 어떤가. 큰 웃음 한번 줄수만 있다면.
나도 인터넷 야한 유머 몇개 검색해서 외워가야겠다.
투병에 지친 우리 환자들을 위해 썰렁한 농담 한 마디 던질 수 있으면 좋겠다.
자꾸 웃다보면 행복해 질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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