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진료실에서의 기도

슬기엄마 2012. 11. 15. 18:40

 

오후 외래 들어가기 전

분초를 다투어

다른 일 처리를 하다가

가까운 사람에게 실수를 하였다.

가까울수록 더 예의를 지키고 조심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 사실을 잊었나보다.

 

외래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 심사가 얼굴에 다 드러났는지

오후 외래 첫 환자부터 나를 걱정한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이어 들어온 몇명의 환자가 계속 똑같이 나를 걱정한다.

선생님, 얼굴 표정이 너무 않좋아요. 나쁜 일 있어요?

선생님이 저보다 더 않좋아 보여요. 힘내세요.

 

세상에, 자기 몸 아파 병원에 온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담당의사의 얼굴 표정을 보고 걱정을 하다니

참 엉터리 의사다.

 

소심한 나는 얼굴 표정을 잘 못 바꾸고 그렇게 꿀꿀한 표정으로 진료를 하는데

목사님 환자 차례가 되었다.

 

지난 번 외래에서 병이 약간 나빠졌다. 이 목사님 환자에게는 치료의 옵션이 많았다.

그동안 항암치료를 한번도 안하고 항 호르몬 치료로만 잘 유지되었던 분이라

나는 이번에 항암치료를 한번 해보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치료의 옵션을 환자에게 묻는다는 것은

그만큼 항암치료가 절대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다.

전이성 유방암은 치료를 하다보면

의사의 전권에 의해서가 아니라 환자와의 합의를 통해 결정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걸 설명하는 과정에서 뭔가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었는지 서로 뚱 하게 헤어졌었다.

항암치료 안하고 예전에 썼던 항호르몬제와 비슷한 성분의 호르몬제를 다시 한번 쓰는 것으로 결정했었다.

오늘 목사님을 뵈니 그날이 떠올라서 사과를 드렸다.

 

목사님, 그날 충분히 설명을 못 드리고 우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었던 거 같아요.

제 진심은 이러이러한 취지에서 그렇게 말씀드린 거였어요.

이해하시겠어요?

 

그래요. 잘 알겠어요.

그렇게 신경써주니 고마워요.

전이되었지만

항암치료 안하고 하루하루 좋은 컨디션을 살 수 있어서 만족해요.

선생님, 뭐 좋아하세요? 제가 선생님한테 선물 하나 하고 싶어요.

 

괜찮아요.

 

말해봐요. 뭐 좋아해요?

 

목사님, 그러면 기도 한번 해주세요.

 

목사님이 내 손을 잡고 기도해주신다.

진료실에 낭랑한 목사님의 목소리가 울러퍼진다.

말씀을 강조하고 싶은 대목에서는 내 손을 힘있게 꼭 움켜쥐신다.

 

내가 환자인데 선생님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고마워요.

 

기도를 오래 해 주셔서 외래가 지연(!)되었지만

난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것 같다.

내 실수조차, 내 잘못, 내 허물 모두 인정하고 살자. 부족한 나니까.

그런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환자도 있으니까 감사하고 행복하게 살자.

목사님이 기도해줬으니까

내 잘못 잘 용서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