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드레싱 도사가 된 할아버지

슬기엄마 2012. 11. 15. 20:01

 

할머니 유방 상처가 낫지를 않는다.

항암제가 잘 들으면 상처가 잘 아물고 깨끗해졌다가

항암제 저항성이 생기면 다시 상처가 덧난다.

항암제가 듣지 않을 때는 진물도 많이 나고 살성도 벌겋게 변해서 드레싱하기도 힘들게 순식간에 나빠진다.

 

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는 항상 외래에 같이 다니신다.

치료 받는 사이 할머니에게는 뇌전이도 한번 왔다 갔고

악화되는 상처 때문에 유방에 방사선 치료도 했고

세가지 약제 이상으로 여러번 항암제를 바꿔서 치료했지만

결국 나빠지고 있는 중이었다.

할머니인데 삼중음성유방암이었다.

 

처음 이 할아버지는 너무 꼬장꼬장 하셔서 사실 나랑 몇번의 실갱이도 있었고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주로 할머니랑 대화하며 치료방법을 결정하고 관련 설명을 드렸었다.

할아버지는 약간 못마땅한 얼굴로 그런 우리를 곁에서 지켜보셨다.

병이 나빠지면

왜 시키는 대로 했는데 병이 나빠지는 거냐며,

치료는 제대로 하고 있는거냐며,

나를 채근하셨다.

치료가 안되는 환자를 보면 나도 마음이 않 좋은데 

할아버지까지 그렇게 비난조로 말씀하시면 나도 빈정상했었다. 솔직히.

 

여러 약제에 저항성을 보이는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연구에 참여하여

할머니는 시험약군으로 배정을 받았다.

Pegylated irinotecan 이라는 약인데,

기존 항암제인 irinotecan 의 독성을 줄이고 체내 효율을 올릴 수 있어,

아주 새로운 신약이라기보다는 기존 약제의 안전성을 향상시킬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론적으로

삼중음성유방암의 약제 저항성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도 논의되는 약이기도 했다.

irinotecan은 한국에서 사용가능한 항암제이지만,

유방암에서는 허가가 나지 않아 평소 환자들에게 쓸 수 없는 약제이기도 하다.

 

난 할머니 할아버니에게 이렇게까지 상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이 연구에 참여하시는게 좋을 것 같다고 설명드렸다.

현실적으로 보험의 한도 내에서 써볼만한 다른 대안적인 약제도 없었다.

다행히 조건이 맞아 임상연구에 참여하실 수 있게 되었다.

 

한 번 투약 후

일주일만에 외래에 오시게 해서 상처를 보았는데

왠지 진물의 양도 줄고 냄새도 덜 나는것 같고 벌건 정도도 가라앉는 것 같다.

다음 주에 다시 한번 상처를 보았는데 역시 조금 더 좋아진 것 같다.

내심 이 약제가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것 같다는 흐뭇한 마음.

임상연구로 치료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였다.

할머니가 아주 좋아한다.

 

할아버지는 딴 말씀을 하신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드레싱을 많이 했는지

드레싱 도사가 됬어.

내가 상처 전문 간호사한테 다 배웠다니까.

상처 덧나지 않게 드레싱하는 법, 화상연고 쓰는 법, 거즈 덮고 잘 고정했다가 떼어낼 때 살갗 떨어지지 않게 하는 법

얼마나 신경을 많이 쓰는데

좋아져야지. 암 좋아져야 하고 말고.

 

이제 4주기가 지났다.

조금씩 병이 좋아지고 있다.

할머니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기력은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

 

할머니, 기운 많이 빠져요?

 

응.

좀.

그래도 아직 견딜만해.

이 약 쓰고 유방이 많이 좋아졌으니까 이 정도는 참아야지.

 

항암제를 자꾸 바꿔도 나빠지기만 했던 경험을 해 본 할머니는

이번 약에 힘들단 말씀을 일절 안하시고 굳세게 치료일정에 맞춰서 주사를 맞고 계신다.

 

할아버지, 고생 많으시네요.

 

괜찮아. 우리 매일 박카스 한병씩 나눠 마시며 기운내고 있어.

걱정마. 내가 잘 돌보고 있으니까.

 

약, 외래일정, 검사일정, 상처간호사 면담 그 모든 일정을 할아버지가 챙긴다.

어디서 사면 드레싱 재료가 싸고 좋은지도 다 아신다.

병원 셔틀버스 시간, 지하철 노선 그런 것도 할아버지가 다 챙긴다.

할머니는 그저 할아버지가 하자는 대로 하면서 병원에 다니신다.

 

일흔이 다 되신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

할아버지가 씩씩하게 간호하고 계시니 할머니는 당분간 걱정 없을 것 같다.

이런게 사랑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