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임상연구의 중간결과 발표

슬기엄마 2012. 11. 20. 02:56

 

 

환자들에게 임상연구를 제안할 때

이 연구가 환자에게 100% 이득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시작하는 연구는 없습니다.

그렇게 이득이 될 것이 확실하면

임상연구를 하지 않고

바로 현실에 적용하는게 윤리적으로 맞는 겁니다.

 

그러나 임상연구를 거치지 않은 채 그렇게 확신할만한 약제를 찾고

치료에 적용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근거가 필요합니다.

종양학, 항암제의 개발 역사는 거듭된 임상연구에 의해 그 지식이 축적되어 왔습니다.

 

실험실에서 세포실험, 동물실험을 거쳐 일정정도 항암 효과가 있는 것으로 결과가 난 약제를

1상, 2상, 3상 연구에 수차례 적용하여

새로 개발된 약제가

기존 약제에 비해 비슷하거나 혹은 우수하다는 결과를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교과서적인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 병을 진단받은 어떤 환자에게나 투여할 수 있는 표준 약제가 될 수 있습니다.

세포실험이나 동물실험에서는 유용했으나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거나 예상보다 독성이 강하게 나타나 치료약제로 쓸 수 없는 경우도 많고

1상 실험에서 독성을 최소화하면서도 최대효과를 노릴 수 있는 용량을 결정했지만

정작 2상 연구에서는 그 결과가 재현되지 않고

2상 연구에서는 효과가 좋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대규모 3상 연구에서는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상대로 효과가 입증되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기존 항암제 개발의 역사는

약제가 탄생하여 실재 환자에게 투여되기 까지, 또한 보험으로 인정되어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없는 수준으로 보편적으로 확산되기까지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관행이었지만

 

요즘에는 그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변형된 형태의 여러 임상연구가 개발되어

짧게는 5년 이내에도 공식적으로 표준 약제로 승인이 되고 실재 환자에게 투여되는 성공적인 사례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약제가 성공적인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실패하는 약제가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한가지 약제는 모든 암종에서 동일한 효과를 발휘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암종에서는 유의한 결과를 보였으나 어떤 약제에서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또 한번은 좋은 결과가 나왔는데 반복적인 연구에서는 반대의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 험란한 과정에 우리 환자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임상연구의 대상이 되는 약제의 안정성이나 환자의 안전, 연구 윤리가 매우 중요한 사안이 됩니다.

 

약제의 안전성과 환자에 미치는 이득과 해로운 점을 감안하여

많은 임상연구가 중간 분석을 합니다.

중간분석에서 환자에게 기존 약제에 비해 추가적인 이득이 없다고 판단되거나,

이득보다 독성이 더 심하다는 중간 분석 결과가 나오면,

그 임상연구는 중단됩니다.

약제를 개발한 제약회사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게 되고 임상연구에 참여한 환자가 그 과정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진행되었던 대규모 임상연구 중 한가지 약제가

중간분석에서 이득이 입증되지 않아

연구 중간에 종료를 하게 된 임상연구가 있습니다.

저희 병원에서도 5명의 환자가 참여하였습니다.

 

표준적으로 투여해야 하는 항호르몬 치료에 임상 약제를 더하거나 더하지 않거나 하는 형태로 진행된 이 연구에서는 추가적인 약제를 더하여도 표준 항호르몬 치료에 비해 더 나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약을 제공한 제약회사에서는 연구 종료를 선언하고

환자들에게 이 결과를 공지하도록 지시를 내렸고

임상연구 종료에 따라 회사가 제공한 모든 약제를 회수하고 제공하였던 표준적인 항호르몬제도 더 이상 공급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이 연구에 참여했던 환자는

기존에 투여하고 있던 항호르몬제만을 유지하는 것으로 치료 과정에 약간의 변경사항이 생겼습니다.

의학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으나

연구에 참여한 환자들은

그동안 무료로 공급되었던 약제와 각종 검사를

이제는 본인이 직접 비용을 지불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불편감을 표시하고

본인이 그동안 효과도 없는 약을 계속 먹어온 것 아니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이번 임상약제는 독성이 그리 강하지 않아 큰 문제는 없었지만

일반적인 항암제 임상연구에서는 독성 때문에 환자가 추가적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양내과 의사는 가능한 세팅에서 환자에게 임상연구를 권유합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수의 암센터는 전체 환자의 70% 가까이 임상연구 약제로 치료를 받기도 합니다. 그것이 항암제 연구와 개발의 역사입니다.

 

오늘 외래에서

이 임상연구에 참여했던 환자에게

중간분석 결과를 설명드리고 본 임상연구가 종료되며 이후 어떻게 치료하겠다는 계획에 대해 말씀드리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십니다.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이해하기 어렵고 납득하기도 어려우신 모양입니다.

한참을 울다가 진료실을 나가셨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임상연구로 치료해서 신약의 이로운 혜택을 받은 환자들은 임상연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주치의에 대한 신뢰도 높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연구나 주치의에 대한 신뢰도에서 모두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당연할 것 같습니다.

 

모든 약제와 연구가 예상한대로 긍정적인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현대의 과학과 의학의 한계일텐데

그 간격을 어떻게 좁히고 환자의 참여와 이해를 높힐 수 있을지

관건이 되겠습니다.

당분간 설명하느라 진땀 좀 흘리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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