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할머니의 이중잣대

슬기엄마 2012. 11. 21. 16:47

 

 

EMR 상 할머니 나이는 85세다.

실재 나이는 88세라고 하신다.

 

뼈전이, 폐전이가 동반된 전이성 유방암.

재발된지 4년째.

그 사이에 뼈 전이가 악화되면서 항호르몬제를 한번 바꾼 적이 있다.

지금은 두번째 항호르몬제인 아로마신을 드시고 계신다.

할머니는 항호르몬제 치료만으로도 비교적 병이 잘 조절되는 타입에 속한다.

3개월에 한번씩 하는 정기 검사를 안하고 싶어하신다.

맨날 비슷한데 뭐하러 자꾸 사진을 찍냐고 성화이시다.

충청도 서해안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는 병원도 더 이상 안 오고 싶고 약도 그만 먹고 싶다고 한다.

매번 외래에서 약 그만 먹으면 안되냐는 타령이다.

 

할머니, 힘든거 없잖아요.

그냥 하루에 한알 드시기만 하면 되요.

지금 칼슘약도 잘 드셔서 골다공증도 없고 좋아요.

그냥 이렇게 약 드시면서 지내세요.

 

약 먹고 오래살까봐 걱정이야. 더 오래 살면 망령들어.

병원 다니는거 너무 챙피해.

늙은이가 이만큼 살았으면 됬지 또 얼마나 오래 살라고

자식들 등골 휘어지게 일하는데 병원이나 데려다 달라고 하고 말이야.

동네 사람들이 욕할거야.

 

약 안 드셔도 병 그냥그냥 나빠지면서 오래 살 가능성이 많아요.

이 병이 그렇게 빨리 나빠지는 타입이 아니라니깐요. 그러니까 그냥 드세요.

지금 최고 좋잖아요. 제발요.

 

싫어.

나 오래 살까봐 걱정이야.

오래 살다가 망령 들면 어떻해.

 

한참 실갱이를 하다가

결국 내가 졌다.

 

그럼 6개월에 한번이라도 병원에 오세요. 6개월치 약 드릴께요. 그 정도는 오실 수 있죠?

제가 검사처방 내 드릴테니 6개월 후에 검사하시고 외래 오세요.

병원 자주 안 오셔도 되게 할게요.

 

근데 CT가 몸에 그렇게 나쁘대매?

그거 꼭 찍어야되?

 

CT를 6개월에 한번은 찍어야 되요. 폐 병변이 어떤지 확인해야죠.

지금 종양표지자도 오르는 추세니까 이번에는 CT 꼭 찍으세요.

 

CT 조영제 쓰면 몸에 나쁘나며?

CT 찍을 때 방사선 쪼이면 그게 암을 더 만드는 거라며?

아이고 내가 병 치료할라고 병원 다니지, CT 찍고 암 퍼지면 어떻게 해?

나 CT 안 찍고 싶어.

 

CT 조영제를 자주 쓰거나 방사선을 많이 쪼이는게 좋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병변을 정확히 볼려면 조영제를 쓰는게

병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는데에는 도움이 되요.

때론 조금 정확성이 떨어져도 조영제를 빼고 찍기도 해요.

제가 다음번에는 조영제를 빼고 찍고 그 다음번 찍을 때에는 조영제 포함해서 찍을게요.

그렇게 번갈아 가면서 해요.

그리고 그 정도 방사선 양으로 암이 더 번지거나 더 자라거나 하지는 않아요.

(아마 방사서 피폭에 의한 2차 암 발생 등을 설명한 뉴스를 보셨나보다)

 

 

할머니는 그만 살고 싶다고, 그만 치료 받고 싶다고, 너무 오래 살까봐 걱정이라고 하시면서도

CT 조영제가 몸에 나쁠까봐 걱정하신다.

 

아들이 한마디 하신다.

 

아이고, 어머니 이중잣대를 쓰시네요.

빨리 죽고 싶다면서요. 근데 뭐 CT 조영제 같은 걸 걱정해요?

 

그게

사람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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