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 1020

검사 자주 안하면 안되요?

그녀는 암을 세번 진단받았다. 유방암 난소암 갑상선암 진단받고 수술하고 항암치료하고 재발하고 수술하고 항암치료하고 그렇게 지내기를 7년째. 그러나 다행히도 매번 치료 성적이 좋다. 지난 주 찍은 PET-CT 를 보니 현재 눈에 보이는 병은 없는 상태다. 지난 번 항암치료를 예정대로 다 마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훨씬 지친것 같았다. 곁에 있는 남편이나 언니는 꾹 참고 끝까지 항암치료를 받으라고 종용하지만 치료를 받는게 환자지 가족인가. 항암치료를 받고 힘든 건 환자의 몸이다. 무엇보다 환자의 의지와 체력이 중요하다. 환자는 서로 다른 암이 진단되고 반복적으로 수술, 항암치료를 받는 생활을 너무 힘들어하고 많이 울었다. 나는 예정된 치료를 끝까지 다 마치지 못했지만, 치료..

그녀의 해피콜

그녀는 일을 하다가 짬이 나면 그동안 일하면서 메모해 둔 환자 정보를 점검하면서 해피콜을 한다. 주로 환자에게. 그리고 가끔 나에게. 차트를 보다가 환자가 응급실을 다녀간게 확인되면 이제 괜찮으신지, 추가 외래 진료를 볼 필요는 없는지 상황을 점검해 준다. 조직검사를 하고 간 환자에게는 검사 후 합병증이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여쭤본다. 내 진료를 보다가 울고 간 환자, 기분이 언잖아했던 환자들에게도 다시 한번 전화하여 이제 괜찮으신지 안부를 챙긴다. 내가 메일로 문의했던 사항은 진행된 상황, 알아본 결과를 정리해서 메일로 보고해 준다. 우리 환자가 다른 과에서 추가 검사를 한게 발견되면 나에게도 미리 알려준다. 알고 계시라고. 진료볼 때 참고하시라고. 외래 일정에 변경이 생겼을 때, 내가 외래 준비를 하면..

FDA inspection

저는 오늘부터 미국 FDA 의 inspection (실사)를 받고 있습니다. Inspection 이라는 것은 임상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의 수행능력을 우리 기관 외부의 독립적인 기관 - 미국 FDA, 한국 KDFA, 유럽의 EMA 와 같은 - 에서 평가하고 점검하는 과정의 일환입니다. 임상연구란 환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연구의 윤리적 측면, 환자 안전의 문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임상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이러한 측면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각 병원별 IRB 가 주관하는 자율점검제도, 스폰서(회사) 주도 임상연구에서 시행하는 Audit 등이 진행되고 있는데, 자율점검제도나 audit 은 연구자 혹은 연구를 주도하는 회사가 자율적으로 자신의 연구에 대한 질적 관리를 위해 수행하는 것인데 비해 미..

잠든 뇌를 깨우는 시간

모처럼 전화도 별로 않오고 방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한가로운 주말 오후다. 이렇게 시간이 주어지면 그동안 못했던 일을 많이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다. 딴 생각을 하거나 딴 짓을 하거나 꾸벅꾸벅 존다. 나 일주일 동안 힘들었으니까 이정도 여유는 좀 누려도 되는거 아냐? 그렇게 자위해 보지만 사실 멍한 머리를 깨울려고 커피를 네잔이나 마셨지만 도통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벌써 오후가 되었다. 쯧쯧. 이렇게 뇌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난 내일 외래를 예습한다. 술취한 것처럼 무거운 뇌를 깨우는데는 외래 예습이 최고다. 환자 차트를 볼 때는 일단 머리를 빨리 빨리 굴려야 한다. 컴퓨터 한쪽 화면에는 사진을 띄우고 컴퓨터 다른 한쪽 화면에는 경과기록을 띄운다. 사진 판독이 미리 안..

나를 감동시키는 그들

토요일 오후, 다음주 월요일 오전에 있는 저널발표를 이번에는 내과에서 담당할 차례인데 깜박 잊고 있었다. 외과에서 다음주 저널발표 주제가 뭔지 묻는 메일이 왔다. 아차! 나는 부랴부랴 저널을 찾는다.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이번호에 지난 30년간 유방암 선별검사로 시행된 Mammography 검사의 유용성을 평가하는 논문이 실렸다. 나는 대충 초록만 읽고 발표를 하게 될 우리 레지던트에게 논문을 메일로 보냈다. 일주일 내내 병원에서 먹고 자는 우리 레지던트, 주말은 좀 쉬어야 하는데 토요일 오후에 발표준비하라고 논문을 보내다니 정말 나쁜 선생님이다. 낮에 메일을 보냈는데 저녁에 질문 메일이 왔다. 선생님, 뭐는 어떻고 저떻다고 하는데 그건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요? 선생님..

작지만 아름다운 공연

찾아가는 뮤지컬 갈라 콘서트가 오늘 오전 11시 우리 병원 본관 로비에서 열렸습니다. 아마추어 뮤지컬 동우회 '렛싱 뮤지컬' 팀에서 우리병원에서 재능나눔 콘서트를 개최하였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이들 동우회와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주대 후배 노연경 선생님이 렛싱 뮤지컬 팀에서 노래하는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환자를 위해 찾아가는 콘서트에 대해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고 연락을 받은 제가 우리 병원 홍보팀에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소리소문 없이 준비된 공연이 오늘 열리게 되었습니다. 홍보팀의 한대금 선생님은 주말인데도 나와서 이번 행사가 잘 진행되도록 도움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병원 로비는 사실 노래하는 공연장으로서는 별로입니다. 공간도 넓고 이동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산만해지기 쉽습니다...

이런 삶도...

그녀는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았을 때부터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 수술 후 항암치료도 한번 받고 말았다. 왜 그런지 모른다. 다른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라 기록도 명확하지 않다. 그렇게 지내다 2년만에 재발이 되어 우리 병원에 오셨다. 보호자가 없다. 첫 재발인데 폐, 뼈, 간, 뇌까지 전이 범위가 넓고 종양 분포 범위도 넓다. 내가 아무리 물어도 환자는 별 얘기를 안한다. 무슨 검사를 하자고 하면 항상 머뭇거린다. 사회복지팀에 연결하여 일정 부분 경제적 지원을 받으실 수 있게 해드렸다. 한동안 치료를 잘 받으셨다. 생각보다 항암제 반응이 좋았다. 항상 피가 나고 염증이 있어 진물이 흐르던 유방도 깨끗해졌다. 여기 저기 전이되었던 곳들이 다들 얌전해졌다. 환자의 치료 스케줄이 D1, D8 그렇게 3주에 ..

이런 죽음도...

나는 암환자를 진료하는 종양내과 의사지만, 매번 환자의 죽음은 낯설다. 가끔 어떤 이유로든 예전 내가 진료하던 환자들-지금은 돌아가신- 의 차트를 볼 일이 있는데 그 환자의 살아 생전, 그리고 돌아가시던 당시의 모습이 떠오른다. 돌아가시던 날 아침 회진 때 본 환자들의 얼굴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리고 그날 나의 기분도 떠오른다. 어떤 죽음도 매번 힘든 일이다. 오늘은 나에게 그런 기억도 채 없는 36세 젊은 환자가 오늘 아침 갑자기 사망하였다. 2기초 유방암. 4번의 항암치료. 나랑은 5번 만난게 전부다. 항암치료할 때 4번. 그리고 항암치료 후 첫 종합검사 시 이상없다는 검사 결과 알려준게 전부다. 그리고 그녀는 외과에서 추적관찰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녀는 항암치료 받은지 1년이 채 안되었다. 재발을..

할머니의 이중잣대

EMR 상 할머니 나이는 85세다. 실재 나이는 88세라고 하신다. 뼈전이, 폐전이가 동반된 전이성 유방암. 재발된지 4년째. 그 사이에 뼈 전이가 악화되면서 항호르몬제를 한번 바꾼 적이 있다. 지금은 두번째 항호르몬제인 아로마신을 드시고 계신다. 할머니는 항호르몬제 치료만으로도 비교적 병이 잘 조절되는 타입에 속한다. 3개월에 한번씩 하는 정기 검사를 안하고 싶어하신다. 맨날 비슷한데 뭐하러 자꾸 사진을 찍냐고 성화이시다. 충청도 서해안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는 병원도 더 이상 안 오고 싶고 약도 그만 먹고 싶다고 한다. 매번 외래에서 약 그만 먹으면 안되냐는 타령이다. 할머니, 힘든거 없잖아요. 그냥 하루에 한알 드시기만 하면 되요. 지금 칼슘약도 잘 드셔서 골다공증도 없고 좋아요. 그냥 이렇게 약 드..

김치 선물

김치 담글 줄은 알아? 우리 집 김장 한거 한통 챙겨왔어. 한번 맛좀 봐. 우리 언니가 저희 집 김장을 대신 해줬는데요, 우리 언니 김치맛은 우리나라 최고에요. 한번 맛 좀 보세요. 종류별로 조금씩 싸 봤어요. 대개 비닐 봉지나 작은 그릇에 김치를 담아오신다. 손이 큰 어떤 환자는 거의 항아리 크기만한 큰 플라스틱 통 2통에 김장김치를 보내주시기도 한다. 우리 엄마는 환자들이 선물로 준 김치가 모이면 은근 올해 김장을 안할 기세다. (그러나 엄마도 버티다가 어제 결국 김장을 하고 말았다 ^^) 할머니가 우리 집 김장 해줬어요. 선생님 입맛에 맞을 지 모르겠어요. 간 전이가 의심되어 조직검사를 할려고 입원한 나랑 동갑내기 환자, 어제 조직검사를 하고 결과도 아직 안 나왔는데 당일 퇴원하면서 김치를 한통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