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206

체험학습

전이성 유방암으로 치료 중인 나의 환자. 내가 보기엔 아슬아슬한데 환자는 씩씩하다. 호르몬 치료가 잘 되어서 안정적이었던 기간, 항암제를 썼는데 약이 잘 듣지 않았던 기간, 지금은 젤로다 먹는 약으로 10 cycle을 넘기고 안정적으로 치료 받는 기간. 종양 표지자도 많이 감소하고 환자도 불편한 증상이 거의 없어졌다. 비록 아직 병은 남아있지만... 그리고 그녀는 얼마전 직장으로 복귀하였다. 그래서 오늘 토요일 진료를 보러 왔다. 그녀에겐 고3 아들과 초등학교 3학년 딸이 있다. 엄마가 아프니 아이들도 일찍 철이 들었는지, 아들은 오늘 예식장에 아르바이트 하러 갔고 딸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엄마를 위해 기도한다고 한다. 진료 끝나고 나가보니 남편도 함께 오셔서 부인의 진료비를 계산하고 계신다. 눈물나게..

드디어 스웨터 득템!

벌써 3주가 지났군요. 3주 전 외래에서 손수 손뜨게질하여 저를 위해 스웨터를 만들어 주시기로 약속한게 말이죠. 사실 약속한게 아니라 환자가 입고 온 스웨터가 예쁘다며 내가 너무 군침을 흘렸더니 환자가 (마지못해) 제 걸 하나 만들어주시기로 한 걸지도 몰라요. 그렇게 해서라도 난 얻어 입고 싶었어요. 내 몸 사이즈를 잰 것도 아닌데 아주 잘 맞네요. 아침 외래에서 환자에게 이 선물 받고 너무 신나서 막 크게 소리 지르면서 자랑하고 싶은 걸 참느라 혼났어요. 그리고 지금도 이 스웨터를 입고 좋아서 혼자 실실 웃고 있어요. 자, 어떤가요? (김양순 간호사, 사진 잘 찍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환자가 한 벌도 아닌 두 벌을 떠 오셨어요. 길이와 색깔을 달리 해서 센스있게! 지난 번 외래에서 어떤 색으로 스웨터..

동반자가 있었으면 해요

우리 환자는 늘 별 말씀이 없으시다. 단아하고 미인이다. 성격도 수선스럽지 않고 얌전하시다. 통증이 심해도, '그냥 좀 아파요' 하시고 많이 힘들어도 '그러려니 해요' 그 정도 내색하신다. 병이 좀 나빠진 것 같아요 내가 그렇게 말씀드리면 큰 눈을 꿈뻑거리며 '그래요?' 그정도 반응하신다. 남편이 훨씬 예민하다. 꼬치꼬치 캐묻고 의사인 내 대답을 확실하게 들으려고 하시고 사진 찍으면 어디가 얼마만큼 좋아졌는지 확인해 달라고 하신다. 성격이 대조적인 부부다. 환자가 여자고 나도 여자니, 나에게 이런 저런 속내를 털어놓을 줄 알았는데 1년 가까이 우리가 함께 한 치료 여정동안 환자는 나에게 별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던 그녀가 오늘 나에게 한가지 요청이 있다고 한다. 선생님, 제 동반자를 찾아주세요. 제 곁에..

내년 농사준비 해도 되?

70세가 넘으신 할아버지 드물지만 남자 유방암 환자시다. 할아버지, 외모로만 치면 60대로도 보이지 않아요 내가 그렇게 말씀드리면 아주 좋아하신다. 나 듣기 좋은 말만 해줄려고 한다며 핀잔이지만, 정작 온 얼굴 웃음 가득이다. 실재 강원도에서 농사짓고 사시는데, 얼굴이 구릿빛으로 그을린 것도 멋있고, 인상도 좋으시고 전혀 70대 노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유방암 수술 후 3년만에 재발, 전이성 유방암을 진단받은지 또 3년이 지났다. 폐로 전이된 암은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나빠지고 있었다. 병이 좀 나빠져도 정작 할아버지는 느끼는 증상이 별로 없다. 항호르몬 치료를 유지하는데, 폐 전이가 점점 커지고 종양 수치도 계속 증가해서 5개월전 젤로다로 바꾸었다. 젤로다를 바꾼지 3개월만에 검사했는데, 종양표지자 수치..

열심히 산책하세요 그게 사는 길이에요

말 안듣는 할머니. '이렇게 힘들거면 그냥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사람 잘 안 죽어요. 그러니까 제가 시키는대로 좀 돌아다니세요. 침대에 누워있지만 말구요.' '다리에 힘이 없어서 못 걷겠어. 한번 침대에서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것도 귀찮고 혼자 힘으로 잘 안되.' '제가 담당 간호사 선생님에게 부탁할테니, 귀찮고 힘들어도 하루 세번 침대에서 나와서 밖에 좀 돌아다니세요. 걷는게 힘들면 휠체어 라도 타고 바깥 바람 좀 쐬고 오세요.' 침대에 누워있기만 해서는 절대 기력이 회복되지 않는다.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모든 임상연구에서 환자의 예후를 결정하는 건 환자의 활동성이다. 자기 힘으로 밥 먹고 돌아다니고 똥도 잘 싸고 잠도 잘 자고 하는 그런 일상의 activity 가 환자의 예후를 결정하는데 무..

행복한 외래

추석 연휴가 지난 오늘 외래. 월요일 수요일이 쉬는 날이라 화요일 목요일 외래가 평소보다 분주합니다. 진료를 보기까지 많이 기다리셨을텐데 죄송합니다. 추석이 지났으니 (어쩌면 세속적인 의미로 따지자면) 굳이 인사를 할 필요도 없는데 오늘 이렇게 명절 선물을 많이 받았습니다. 인터넷으로 외국에 주문한 무거운 양초를 세개나 가져와 선물해 주신 분 오늘은 특별히 명절 다음이니까 평소와 달리 딸기 우유를 선물해 주신 분 차량용 방향제 - 나 이거 진짜 갖고 싶었는데 ㅎㅎ 쌀쌀해지면 타 마시라는 허브차 외국 출장 다녀오는 길에 사오신 초콜렛 추석 떡 대신 먹으라는 케익과 파이 달콤한 스무디킹 제일 감동적인 선물은 동네 뒷산에 열린 밤나무에서 직접 밤을 따서 따뜻하게 쪄오신 밤 선물입니다. 쪄먹을 시간 없을 거라고..

그냥 퇴원합시다

10년만에 재발했다. 뭔가가. 10년전에 유방암으로 수술했는데 허리가 아파서 검사했더니 사진상 재발된 암인 것 같다는 말씀을 듣고 온가족이 그 사진만 들고 지난 주 목요일 우리 병원 외래에 오셨다. 연휴가 끼어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예전 병원 기록과 조직슬라이드를 가능한 빨리 가져올 수 있도록 조치를 했고 지방에서 오신 분이니 또 왔다갔다 하는 것도 힘들고 마음도 불안하니 재발된 병에 대해 치료를 하고 내려가고 싶다고 하셔서 일단 입원을 하였다. 나는 목금을 이용해 알뜰하게 검사를 했고 재발된 것으로 추정되는 폐에서도 조직검사를 또 했다. 모든 조직검사는 조직을 얻어낸 다음 그 조직을 가공하여 여러 염색을 하여 암인지 아닌지를 먼저 확인하고 암이라면 어디서 기원한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또 암의 종류에 따..

추석 선물

추석이라고 선물을 주십니다. 잔잔하고 정성스러운 선물이 많습니다. 사실 평소에도 전 환자들의 선물을 많이 받습니다. 먹을게 제일 많습니다. 같은 아줌마들끼리라서 그런지 손수 농사지은 야채부터 당신 사는 곳 특산물이라는 미역 피로회복과 두뇌회전에 도움이 된다는 견과류 블루베리 홍삼 같은 건강보조식품도 있습니다. 진료 중에 먹으라고 따뜻한 원두커피 한잔 또 커피와 같이 먹으라고 쿠키 환자들과 같이 먹으라고 초콜렛 손수 지은 밥으로 만들어 오신 점심 도시락 직접 쪄 온 만두 일하느라 부엌일 할 시간 없을 거라며 밑반찬을 해다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친정어머니 같습니다. 외국 여행 다녀오시면서 사오신 립스틱 가끔 양말이나 속옷, 수건도 있습니다. 제가 병원에서 살면서 꼭 필요한 아이템인지를 아시나 봅니다. ^^ ..

좋아졌네요

그녀는 처음 유방암 진단, 수술 전 항암치료를 결정했을 때부터 항암치료 중간에 병이 나빠져 미쳐 계획된 항암치료를 다 받지도 못한 채 수술을 받아야 했던 순간 유방 수술을 하면서 같이 검사한 폐 조직검사에 전이가 나와 갑자기 4기로 진단되었던 순간 항암제 부작용으로 고생하며 멀지 지방서 앰뷸란스 타고 우리병원 응급실에 와야 했던 순간 약을 써도 병이 나빠지기만 하던 시간 그 시간들을 모두 나와 함께 했다. 진단, 재발, 전이 등의 무서운 소식을 내가 모두 전했다. 그녀는 때론 울고 때론 나를 원망하고 때론 자신을 원망하였지만 나를 떠나지 않고 나를 믿어주었다. 그녀는 내 앞에서 울지 않았다. 늘 괜찮다고 했다. 내가 어렵게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면 잘 되겠죠 했다.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며 고생도 많이 했..

고생중인 환자를 위해

환자들은 말한다. 좋아질 수만 있다면 어떤 고생도 꾹 참고 견뎌내겠다고. 항암치료도 열심히 받겠다고 결의를 다진다. 몇일 치료가 늦어지면 빨리 치료받게 해달라고 성화다. 사실 항암치료 기간 중 환자가 자신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일이 사실은 많지 않다. 잘 먹고 가글하는 정도. 그러니까 치료 일정이라도 꼬박꼬박 맞춰서 항암치료 받고 부작용 잘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건 환자 입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눈물겨운 투쟁이자 의지의 발현이다. 그러나 환자의 그런 마음과는 달리 항암치료는 효과 이외에도 심한 부작용으로 우리를 괴롭힐 수 있다. 지금 입원해 있는 환자 중 많은 분들이 항암치료 독성때문에 입원하고 계신다. 항암치료를 여러번 하다보면 골수기능이 떨어져서 평균적으로 알려진 정도보다 훨씬 더 심하게 백혈구 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