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그냥 퇴원합시다

슬기엄마 2012. 10. 2. 21:47

 

10년만에 재발했다. 뭔가가.

10년전에 유방암으로 수술했는데 허리가 아파서 검사했더니

사진상 재발된 암인 것 같다는 말씀을 듣고

온가족이 그 사진만 들고 지난 주 목요일 우리 병원 외래에 오셨다.

연휴가 끼어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예전 병원 기록과 조직슬라이드를 가능한 빨리 가져올 수 있도록 조치를 했고

지방에서 오신 분이니 또 왔다갔다 하는 것도 힘들고 마음도 불안하니 재발된 병에 대해 치료를 하고 내려가고 싶다고 하셔서 일단 입원을 하였다.

 

나는 목금을 이용해 알뜰하게 검사를 했고

재발된 것으로 추정되는 폐에서도 조직검사를 또 했다.

 

모든 조직검사는 조직을 얻어낸 다음

그 조직을 가공하여

여러 염색을 하여 암인지 아닌지를 먼저 확인하고

암이라면 어디서 기원한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또 암의 종류에 따라 조직검사로 얻어낸 검체에 유전자 검사 등 특수 검사를 더 하게 된다.

염색을 할 때도 한꺼번에 10가지 염색을 한다든지 하는 그물망 작전으로 검사하는게 아니라

가장 가능성이 높은 염색부터 몇가지 하여 가지치기를 하면서 진단을 하는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꺼번에 검사만 왕창 진행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옳지 않고, 비용효과면에서도 효율적이지 않다.

그러나 모든 염색이나 조직검사는 대통령 할아버지가 부탁을 해도 절대적으로 걸리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왠만하면 몇일간의 시간이 요구된다.

CT를 찍고 판독을 받는 과정은 영상의학과 선생님들이 수고를 하면 1-2일 결과를 빨리 알아낼 수 있지만 조직검사 결과를 얻어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환자는 본인의 진단명을 유방암이라고만 알고 있었지만

가져온 기록을 보니

유방에서 세번의 수술을 하였고

세번 수술한 검체의 슬라이드는 각기 다른 종류의 암세포가 발견되었다.

 

병리선생님들과 지난주, 그리고 오늘에 걸쳐 몇차레 토론을 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추가 검사를 더 해보고

예전 병원에서 슬라이드를 한두장씩만 보내주었는데, 슬라이드를 더 얻어서 광범하게 비교를 해 봐야

이번에 재발된 암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심지어 원발 폐암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세포들의 모양이 전형적이지 않았다.

 

환자는 시키는대로 검사만 하고 나면 뭔가 명확한 결론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리고 이전 병원에서 재발된 암에 대해 아주 예후가 나쁘다는 경고를 받고 왔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 가득인데

정작 나는 당장 진단이 어렵고 추가 검사를 몇차례 더 시행하는데 1주일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거라는 결론을 내려 내일 퇴원하시도록 설명을 드렸다.

 

환자는

재발이라는 상황이 초래하는 두려움도 크고

지금처럼 진단이 잘 안되는 상황도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내가 고민한 궤적을 차근차근 설명하였고 진단의 어려움 때문에 지금 진행되고 있는 추가 검사 현황을 환자에게 설명하였다. 그리고 당혹스러우시겠지만 일단 퇴원하고, 우리가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설명하기 위해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였다.

 

다행히 환자가 잘 이해해주었다.

그녀가 퇴원하더라도, 속히 결과를 얻어낼 수 있게 병리 선생님들과 원할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겠다.

 

드물지만

이렇게 진단이 어려운 상황이 간혹 있다.

환자가 이런 프로세스를 잘 이해하고 견딜 수 있도록 설명을 잘 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나를 믿고

결과를 기다려겠다고 약속한 환자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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