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고생중인 환자를 위해

슬기엄마 2012. 9. 17. 13:04

 

환자들은 말한다.

좋아질 수만 있다면 어떤 고생도 꾹 참고 견뎌내겠다고.

항암치료도 열심히 받겠다고 결의를 다진다.

몇일 치료가 늦어지면 빨리 치료받게 해달라고 성화다.

 

사실 항암치료 기간 중 환자가 자신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일이 사실은 많지 않다. 잘 먹고 가글하는 정도. 그러니까 치료 일정이라도 꼬박꼬박 맞춰서 항암치료 받고 부작용 잘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건 환자 입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눈물겨운 투쟁이자 의지의 발현이다.

 

그러나 환자의 그런 마음과는 달리

항암치료는 효과 이외에도 심한 부작용으로 우리를 괴롭힐 수 있다.

지금 입원해 있는 환자 중 많은 분들이 항암치료 독성때문에 입원하고 계신다.

 

항암치료를 여러번 하다보면 골수기능이 떨어져서 평균적으로 알려진 정도보다 훨씬 더 심하게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고

그 회복도 느리다.

그 사이에 열 나고 혈압 떨어지면 병원 생활 2주는 순식간이다.

혈소판은 백혈구보다 늦게 떨어지고 늦게 회복되는데

혈소판 수치가 떨어지면 출혈성 경향으로 예상치 못한 신체 곳곳에서 피가 난다.

요도의 점막이 벗겨지면서 피가 나고 그게 응어리 다보니 방광 내에서 응고되 소변이 안나오기는 일도 생기고 

입안의 점막이 벗겨지면서 침을 뱉을 때마다 피가 난다.

수치가 낮으니 매일 피검사를 하는데, 바늘이 들어간 자리마다 다 멍이 든다.

 

 

입안과 목구멍, 위장관, 항문에 이르기까지 온 점막이 다 헐고 벗겨지고 궤양이 생겼다.

입안이 엉망인데, 아마 그 모양으로 식도도, 위장도 다 헐어있을 것 같다. 환자는 1주일째 물한모금도 제대로 못 넘기고 수액으로 버티고 있다.

뇌전이는 치료도 못하고 있다. 항암제 독성이 이렇게 심하게 나타날 줄 몰랐다.

젊은 환자고 앞전 항암제도 몇번 안썼는데, 이렇게 심하게 고생할 줄 몰랐다. 나도 환자도.

환자는 앞으로 다시는 항암 치료 안하겠다고 할 것 같다.

그런 중차대하고 심각한 얘기는 나중에 수치가 다 회복되면 하자고 미루어두었다.

 

입원 안하고 몇일째 외래에서 백혈구 촉진제를 맞으며 버텼는데, 결국 열이 나서 입원하신 분도 있다. 알고 보니 잇몸 질환이 도졌다. 평소 백혈구 수치가 정상일 때는 우리 몸의 왠만한 염증을 백혈구가 다 해결해주고 있는데, 수치가 떨어지니 숨어있던 감염원들이 기승을 떨치나보다.

환자는 오른쪽 아래쪽의 잇몸이 욱씬욱씬 하더니 열이 나버렸다. 버티다 버티다 입원해서 주사 항생제를 맞고 수치가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비록 항암 치료 중이지만

환자들은 나름으로 자기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삶을 꾸려가고 있었는데

이렇게 입원할 정도의 심각한 합병증을 겪고 나면

치료의 의지가 많이 꺾인다.

 

더 이상 입증된 효과적인 약제가 없는데

병은 스물스물 나빠진다.

때론 환자가 치료를 해달라고 하기도 하고

때론 내가 욕심을 가지고 치료를 더 해보자고도 한다.

 

효과를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작용을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다.

 

환자가 부작용으로 고생하면

내 마음이 정말 안좋다.

내 탓같기도 하고 하지 말걸 싶기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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