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열심히 산책하세요 그게 사는 길이에요

슬기엄마 2012. 10. 7. 21:21

 

 

말 안듣는 할머니.

 

'이렇게 힘들거면 그냥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사람 잘 안 죽어요. 그러니까 제가 시키는대로 좀 돌아다니세요. 침대에 누워있지만 말구요.'

'다리에 힘이 없어서 못 걷겠어. 한번 침대에서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것도 귀찮고 혼자 힘으로 잘 안되.'

'제가 담당 간호사 선생님에게 부탁할테니, 귀찮고 힘들어도 하루 세번 침대에서 나와서 밖에 좀 돌아다니세요. 걷는게 힘들면 휠체어 라도 타고 바깥 바람 좀 쐬고 오세요.'

 

침대에 누워있기만 해서는 절대 기력이 회복되지 않는다.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모든 임상연구에서 환자의 예후를 결정하는 건

환자의 활동성이다.

 

자기 힘으로 밥 먹고 돌아다니고 똥도 잘 싸고 잠도 잘 자고 하는 그런 일상의 activity 가

환자의 예후를 결정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건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그러니까

약에 의존하고

치료에만 의존하기 보다는

 

자기 힘으로 돌아다니고

힘들고 기운없어도 되는 데까지 움직이고 운동하는 것에 애를 써야 한다.

 

몸에 특별히 좋은 음식이 있는게 아니라 - 건강보조식품 제발 애써서 사 잡수지 마세요 -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아 밥상 차려놓고 씩씩하게 잘 먹는게 중요하다.

 

특별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항암제 자체가 너무 힘든 환자들이 종종 있다.

치료 한 두번에 못 견디고 눈물을 쏟으며  치료를 포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난 그럼 입원시킨다.

(난 이 점에 대해 우리병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입원이 필요하지만 입원이 잘 안되는 큰 병원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만큼 환자가 많지 않기 때문도 있겠지만, 우리 병원은 의사의 자율성을 많이 인정해주는 편이다. 내가 결정하고 원무과에 부탁하면 잘 들어준다. 원무과의 협조에 늘 감사드린다.)

 

입원해도 별거 해드리는 거 없다.

종류가 뭐가 되었든 수액을 좀 드리고 회진 때 꼬박꼬박 컨디션 물어보고 운동하시라고 권해드리는 정도.

날이 흐리면 암센터에서 새병원까지, 날이 좋으면 연대 캠퍼스로 산책을 다녀오시라고.

환자는 의사가 자신의 힘든 점을 들어주고,

자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의사로부터 인정받는 것 자체에서 위로를 얻는 것 아닐까?

 

아까 부부가 그렇게 수액이 매달린 폴대를 끌고 산책 다녀오시는 걸 봤다.

힘들다는 환자 입원시켜 놓고 해드린게 없는데 두 분이 열심이시다.

그분들 뒷모습 보며

부디 힘들지 않게 합병증없이 이 시기를 잘 넘기시고

앞으로 씩씩하게 치료 받으셨으면 하는 기도를 드린다.

 

의사는 그냥 그런 것.

환자가 씩씩하게 지금의 위기를 잘 넘기도록 도와주는 사람.

잘난 거 없어도

힘든 환자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

 

내가 비록 엑설런트 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그런 능력있는 의사는 아니지만

아픈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가 되고 싶다.

그것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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