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206

치과 선생님과의 집담회

오늘 오후에 우리병원 치과선생님이신 박원서 선생님과 조촐한 집담회를 가졌다. 유방암 환자들 중에 뼈전이가 있을 때 pamidronate 나 zolendronic acid 와 같은 약제를 쓰면 골절이나 고칼슘혈증, 전이된 뼈가 나빠져서 방사선치료나 수술을 하게 될 확률 등을 낮출 수 있다는게 이미 교과서적인 원칙이다. 그래서 전이성 유방암이 진단되면 제일 처음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 뼈전이가 있냐 없냐를 보고 뼈전이가 있을 경우에는 항암치료를 시작함과 동시에 위의 약제를 병용투여하는 것이 치료 원칙의 1번이라고 각종 가이드라인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전이성 유방암 환자는 질병 경과 중에 궁극적으로 뼈로 전이될 가능성이 약 70% 정도 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어 이상의 약제를 쓰게 될 확률이 높다. 특히..

환자로부터 쏠쏠한 재미

지난주 보다 안색 좋아보여요. 좋은 일 있으셨어요? 네, 좋은 일 있었어요. 그래요? 무슨 일요? 성모 꽃마을 다녀왔어요. 거기 좋다는 분들 많으시더라구요. 저도 한번 가보고 싶어요. 어떤 점이 좋은지 궁금해요. 뭘 하면 환자들이 좋아하고 도움을 얻는지 한번 보고 싶어요. 그러세요. 매달 세째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치유미사가 있어요. 누구나 참석할 수 있으니까 선생님도 한번 와보세요. 그럼 우리 1월 24일날 저녁에 성모 꽃마을에서 만날까요? 내가 관심을 보이자, 환자는 신이 나서 이것 저것 설명을 많이 해주신다. 가는 방법까지 알려주신다. 자기는 어떤 면에서 좋았는지도 말씀해 주신다. 신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 전이성 유방암을 처음 진단받고 첫 치료 후 나빠져서 지금 두번째 약제로 ..

고단한 엄마를 도와주세요

그녀는 십년도 더 전에 최초 유방암을 진단받았고 그로부터 몇년이 지나 전이성 유방암을 진단받았으며 그로부터도 이미 수년이 흘렀다. 항암제, 항호르몬제, 방사선치료, 이 치료 저 치료를 돌아가면서 했다. 치료하면 좋아지고, 또 시간이 지나가면 나빠지기를 반복. 암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적용하게 되는 대부분의 치료 방법을 시도해 본 것 같다. 그녀의 CT 사진을 보면 '헉' 깜짝 놀란다. 이렇게 여기 저기 병이 있다니, 몸이 괜찮나? 통증은 심하지 않으신가? 걸음은 제대로 걸으시나? 그러나 깔끔하게 화장하고 가발쓰고 단정하게 가꾸어 옷 입고 외래에 오신 모습을 보면 더 놀란다. 그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이 사람이란 말인가? 겉으로 보기엔 너무 멀쩡하다. 어디 불편한 곳 없으세요? 아이고, ..

병이 오면 따라오는 것들

병이 오면 병만 생기는게 아니다. 좋은 일이 따라 올 수도 있지만 나쁜 일이 더 자주 따라 오는 것 같다. 평소에 잘 묻어두고 지내던 일인데 , 평소에 그럭저럭 잘 지내던 관계인데 새삼 응어리가 터진다. 새삼 섭섭하고 새삼 원망스럽고 새삼 마음이 안맞는것 같다. 이 환자는 몸이 너무 약했다. 재발 후 처음 만난 환자, 항암제를 쓰기만 하면 너무너무 몸이 아프고 약을 견디지 못하였다. 항암제 효과를 평가하기도 전에 독성 때문에 너무 고생을 하셨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항암치료를 쉬었더니 전신 컨디션은 잠시 좋아지는 듯 했지만, 이번에는 겨드랑이 림프절이 너무 많이 커져버렸다. 커진 림프절이 팔신경을 누르니, 팔이 저리고 통증이 심하다. 진통제 부작용이 너무 심해 약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통증 역치를 ..

뇌물 아니고 선물 맞죠?

저 선물 좋아한다고 소문났나봐요.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선물을 많이 받았어요. 선물 받아서 좋지 않은 사람 어디있나요? 저도 너무 좋았어요. 근데 더 좋은 건, 선물을 주신 환자들의 따뜻한 마음이에요. 가끔씩 때가 되면 향초를 주시는 분, 저 향초 너무 좋아요. 방안에 은은하게 촛불을 켜놓는 것도 좋지만, 그 따뜻한 빛과 함께 은은한 향기가 나는 향초를 태우고 있으면 마음이 아주 편안해져요. 출출할 때 먹으라고 과자와 쿠키를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해 주시는 분, 아까와서 먹을 수가 없네요. 정성스럽게, 예쁘게 싼 선물에 그 정성이 느껴집니다. 병과 싸우며 지친 몸과 마음 추스리기도 힘들텐데 정성껏 쓴 편지로 내 안부까지 물어주시는 마음, 정말 감사합니다. 본인 먹을 거 챙기면서 항상 제것까지 같이 챙겨주시는..

나도 믿을 수가 없을 때

암은 몇일만에 나빠지는 병이 아닙니다. 첫 진단이든 재발이든 진단을 받고 나면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서두르는 환자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너무 치료를 서두르다가 미처 점검하지 못한 사항들이 생겨서 돌다리에서 미끄러지는 수가 있으니 저는 몇일간의 시간을 확보하여 검사도 하고 환자 상태를 안정적으로 점검한 후 치료를 시작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너무 급하게 서두르다가 낭패를 보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 시점에 진단되어서 그렇지 몸 안에서의 나쁜 변화는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이미 수개월 전부터 혹은 수년 전부터 있었을가능성이 높습니다. 암은 유전자 변화에서부터 시작되는 병인데 이러한 변화는 몇일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양적인 변화가 축적되어 있다가 어떤 순간에 질적으로 전환되..

외롭지만 혼자 가는 길

한권의 책과 러브레터. 그녀의 선물이다. 그녀는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아차린걸까? 이 책은 스페인 산티아고 900k를 걷는 여행기다. 정진홍이라는 사람이 2012년 4월부터 47일간 산티아고를 걷고 부지런히 원고를 써서 올해가 가기 전에 책을 냈다. 이것으로써 나는 산티아고 도보 여행 관련 책을 5권째 읽게 되었다. 여러 권의 도보여행기를 읽다보니 여행자들의 경험, 정서, 새롭게 결심하는 것 등의 공통점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도 예비 체험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미리 예습을 한다해도 나 또한 비슷한 오류와 비슷한 고통을 겪게 되겠지. 대략 평균적인 인간의 상상력과 능력의 범위는 오십보 백보니까. 먼 길을 가려면 오히려 어느 정도의 정지와 멈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깨달음은 벼락..

교수님의 메일

나는 환자 관련 상의를 드리기 위해 여러 교수님들께 메일을 자주 보내는 편이다. 내가 비록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세브란스병원에서 트레이닝을 받았지만 우리 병원의 대부분 교수님들을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한다. 내가 또래 동료들에 비해 나이를 많이 먹기는 했지만 종양내과 전문의로서 환자를 진료하고 연구하고 일한 경험은 상대적으로 길지 않다. 나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초심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선생님들께 메일을 드릴 때 여러모로 조심스러운 점이 많다. 매번 메일을 드릴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선생님들은 개인적으로 나를 모르고 환자도 모르지만 의무기록을 점검하여 현재 주어진 조건에서 환자의 상태에 대해 판단하시고 의견을 주신다. 외래 진료나 검사를 서둘러서 진행할 수 있도록 일정도 조절해 주신다. ..

그녀의 세번째 시집

뇌로 전이된 후 수술을 하고도 한동안 말이 어눌하다. 생각보다 회복이 늦다. 두 번째 뇌 전이다. 처음 유방암은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첫 재발은 지금으로부터 5년전. 그때는 재수술을 하여 완치를 노렸건만 3년전 폐로 재발하였다. 그렇지만 전이성 유방암 첫 치료로 꽤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치료가 잘 되던 중이었다. 뇌전이가 있었지만 감마 나이프 하고 2년 이상 안정적으로 잘 지냈다. 그러던 중에 소뇌로 크게 전이가 되어 그녀도 나도 많이 놀랐었다. 신경외과에서 수술을 받은 후 회복하고 온 외래. 선생님, 나 쓸 약은 있어요? 나 이러고도 살 수는 있으려나? 그녀를 보는 내 마음이 철렁하다. 그녀는 힘들고 무섭고 절망스러운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면서도 사람 운명이라는게 하늘의 뜻 아니냐는 낙천적인 모습을 보여..

기다려지는 그녀

3주마다 한번씩 허셉틴을 맞으러 오는 그녀. 벌써 4년이 넘었다. 그녀는 항상 예정시간보다 일찍 와서 진료를 기다린다. 오늘처럼 추운 날, 새벽기차를 타고 선잠을 자며 올라왔을텐데 진료실에 들어서는 그녀의 얼굴은 밝고 화사하다. 원래 미인이기도 하고, 항상 세련된 옷차람과 화장으로 그 미모가 더해진 탓도 있겠지만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친정엄마같은 넉넉한 마음씀씀이다. 진료실에 들어서면 그녀는 내 안색을 살피면서 3주 전보다 얼굴색이 좋아졌다는 둥 얼굴에 뭐가 많이 났다는 둥 나의 안부를 소소히 챙기신다. 내가 그녀의 안부를 묻기 전에 그녀가 나의 안부를 먼저 묻는다. 그녀는 짧은 외래 시간 동안에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나의 한쪽 귀걸이 자리의 피부가 성했다 가라앉았다 하는 것도 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