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환자로부터 쏠쏠한 재미

슬기엄마 2013. 1. 7. 20:14

 

 

지난주 보다 안색 좋아보여요. 좋은 일 있으셨어요?

 

네, 좋은 일 있었어요.

 

그래요? 무슨 일요?

 

성모 꽃마을 다녀왔어요.

 

거기 좋다는 분들 많으시더라구요. 저도 한번 가보고 싶어요. 어떤 점이 좋은지 궁금해요. 뭘 하면 환자들이 좋아하고 도움을 얻는지 한번 보고 싶어요.

 

그러세요. 매달 세째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치유미사가 있어요. 누구나 참석할 수 있으니까 선생님도 한번 와보세요.

 

그럼 우리 1월 24일날 저녁에 성모 꽃마을에서 만날까요?

 

내가 관심을 보이자, 환자는 신이 나서 이것 저것 설명을 많이 해주신다. 가는 방법까지 알려주신다. 자기는 어떤 면에서 좋았는지도 말씀해 주신다. 신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

 

전이성 유방암을 처음 진단받고 첫 치료 후 나빠져서 지금 두번째 약제로 치료중이다. 병이 나빠졌다고 내가 말했을 때 그녀의 실망했던 얼굴이 생생하다. 실망과 슬픔을 딛고 그녀는 씩씩하게 두번째 치료를 받기 시작한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성적이 아주 좋다. 이대로 영영 나빠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만 같다.  

임상연구로 진행하는 이 치료는 백혈구 수치가 자주 떨어지는게 특징인데, 이 환자는 수치가 기준 이하로 떨어진 적이 한번도 없다. 내가 이 연구에 참여하시는 분들 중에 백혈구 1등이라고 말씀드리면 매우 흐뭇해하신다. 그래서 은근 자랑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묻곤 하신다. 오늘 백혈구 몇개에요?

 

 

 

 

 

오늘 코트하고 머플러 색깔이 너무 매치가 잘 되었네요 이렇게 날도 추운데 진짜 멋쟁이세요.

누가 60 먹은 아줌마로 보겠어요?

 

그죠?

제가 옛날엔 진짜 날렸다니깐요.

 

지금도 날리고 있는거 같아요.

 

아니에요. 지금은 완전 시골 아줌마지.

 

부산이 뭐가 시골이에요.

 

내가 사는 데는 부산에서 한참 가야되. 우리 동네 얼마나 좋은지 몰라.

 

한참 동네 자랑을 하신다. 부산에서 살다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후 인근 시골로 이사가셨다고 했다.

부산 음식 별로 맛없다는 나의 핀잔에, 갑자기 부산 맛집을 줄줄 읊으신다. 어디 가면 뭐가 맛있고 저기 가면 뭐가 맛있고, 내가 그 말을 들으며 메모를 하니 더 신이 나셨다. 끝도 없이 맛집들을 소개해 주신다. 어찌나 쫄깃쫄깃하고 맛있게 말씀을 하시는지 듣는 동안 내 입안에 침이 고인다.

 

호탕한 아줌마, 진료실을 나가시면서 한말씀 하신다.  

 

부산 한번 와요. 내 한번 쏠께.

 

 

 

 

 

2주전 수술 전 항암치료를 처음 시작하신 분.

생전 처음 항암치료를 받으신 분이니 부작용을 확인하기 위해 2주만에 한번 오시게 했다. 

말씀을 들어보니 항암제 독성때문에 소소하게 고생하신 것 같은데,

그래도 나에게는 담담한 목소리로 잘 견뎠다고 말씀하신다.

겨드랑이 림프절도 꽤 부드러워졌다.

 

이 정도면 좋은 성적이에요. 잘 견디셨어요.

 

부상으로 초콜렛을 2개 드렸다. 함께 온 남편과 한개씩 나눠 드시라고.

지난 번에 사다 주신 천안 호두과자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이렇게 별볼일 없는 초콜렛으로 썰렁하게 대신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의사가 뭐 이런걸 주냐며 다음에는 갓김치를 갖다 주신다고 한다.

 

아이고, 괜찮아요. 제가 치료받는 환자 등골 빼먹겠어요.

 

제가 팥칼국수 체인점을 하는데요 우리집 갓김치 진짜 유명해요. 좀 갖다 드릴께요.

 

그래요? 어디서 하세요? 저 한번 가보고 싶어요.

 

20년동안 팥칼국수 집을 운영하시며 맛과 명성을 얻으셨는지 체인점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애를 많이 쓰셨다고 한다. 그렇게 무리하다가 유방암 걸린거 아닌가 싶다며 잠시 눈물을 글썽거릴려고 하신다.

 

아니에요. 사업하면서 유방암 생긴거 아니에요. 생길라고 생긴거에요. 그러니까 빨리 나아서 더 열심히 사업하시고 체인점도 확장하세요. 나 가면 한그릇 공짜로 얻어먹을 수 있어요?

 

체인점 확장하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환자가 활짝 웃는다.

갓김치가 얼마나 맛있는지 한참을 설명해 주고 가신다.

 

 

 

 

환자가 치료받으며 힘든거, 고달픈거,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의 어려움을 들어주는게 나의 역할인것 같다. 그래서 환자들이 그동안 잘 견디면서 지냈으면서도 내가 이것 저것 불편했던 거 물으면 애기처럼 징징거리기도 하고 울먹거리기도 하고 그렇다.

 

그러던 그녀들이

말문을 트면 알찬 생활 정보들을 쏟아낸다.

내가 외래를 보면서 얻는 쏠쏠한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