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뇌물 아니고 선물 맞죠?

슬기엄마 2012. 12. 27. 06:14

 

저 선물 좋아한다고 소문났나봐요.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선물을 많이 받았어요.

선물 받아서 좋지 않은 사람 어디있나요?

저도 너무 좋았어요.

근데 더 좋은 건,

선물을 주신 환자들의 따뜻한 마음이에요.

 

가끔씩 때가 되면 향초를 주시는 분, 저 향초 너무 좋아요. 방안에 은은하게 촛불을 켜놓는 것도 좋지만, 그 따뜻한 빛과 함께 은은한 향기가 나는 향초를 태우고 있으면 마음이 아주 편안해져요.

 

출출할 때 먹으라고 과자와 쿠키를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해 주시는 분, 아까와서 먹을 수가 없네요. 정성스럽게, 예쁘게 싼 선물에 그 정성이 느껴집니다. 병과 싸우며 지친 몸과 마음 추스리기도 힘들텐데 정성껏 쓴 편지로 내 안부까지 물어주시는 마음, 정말 감사합니다.

 

본인 먹을 거 챙기면서 항상 제것까지 같이 챙겨주시는 분, 유기농 야채와 곡식거리를 가져다 주십니다. 멀리서 오시는데 그 무거운 곡식들을 종류별로 봉다리봉다리 싸서 가져다 주십니다. 어제는 환자의 큰 딸도 초콜렛 선물을 같이 보내오셨네요. 이제 초등학교 6학년 밖에 안된 딸이 엄마 주치의에게 선물을 보냈습니다. 우리 엄마 잘 부탁한다는, 6학년이지만 다 커버린 딸의 마음이 느껴지는 선물입니다.

 

먹어보니 맛있다며 제주감귤을 택배로 보내주신 분, 우리 외래 간호사, 연구간호사 선생님들과 풍요롭게 나누어 먹습니다. 서울에서 사 먹는 귤하고 차원이 다르네요. 작은 것이라도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누고 싶어하시는 마음. 감사히 받겠습니다.

 

치료를 받던 중 가계가 어려워지고 생활이 어려워 졌습니다. 정작 유방암 치료는 잘 되서 문제가 없는데 환자 마음에 멍이 많이 들었습니다. 환자는 울면서 다 포기하고 싶다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던 환자가 당신이 직접 감을 골라 깨끗하게 말린 곶감이라며 한봉지 가득 말린 곶감을 주고 가십니다. 스스로 역경을 이겨낸 환자도 대단하고 그렇게 본인의 마음을 전해주시니 내 마음이 뭉클합니다. 본인의 주변 상황이 변한건 아닌데 환자가 씩씩해졌습니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선물을 받으면 좋아하는 사람이라는게 소문이 난 걸까요?

옥수수 한개라도 나누어 주고 가시려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전 '뭘 이런걸' 그런 예의상의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뻔뻔하게 '감사합니다. 저 너무 좋아요.' 그렇게 티를 냅니다.

 

모든 환자들이 그렇겠지만

유방암 환자들은 특히나 주치의에게 많은 걸 의지합니다.

긴 투병기간, 자신의 지친 몸과 마음을 의지할 곳은 주치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고민, 병 때문에 약 때문에 생긴 부작용, 그리고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 몸의 불편함,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 모든 것을 함께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주치의인 셈입니다. 병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고, 몸 컨디션이 좋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고, 치료와 일상이 병행되는 삶을 살면서 그 전 과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유방암 주치의 입니다.

그것은 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다른 병원에서 유방암 진료를 주로 하시는 선생님들, 그리고 외국의 의사들을 만나보아도 유방암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조금 더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방암의 특징 때문에 유방암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조금 더 특별한 것 같습니다.

 

주치의인 저를 믿어주시고

저에게 의지하고 싶어하시는 마음 잘 압니다.

저 때문에 실망도 많이 하시고

그래도 여전히 저에게 기대도 많이 하신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뭔가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누고 싶어하시는 마음으로 선물 주시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더 좋은 의사가 되어야 하는데

환자들의 정성과 마음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기에는 너무 부족함이 많은데

그래도 난 우리 환자들과 일상을 함께 하고 진료 시간에 많은 것을 상의하는 유방암 의사가 된 것이 너무 좋습니다.

그 마음에 답하는 길은

최선을 다한 진료를 하는 것이겠죠.

실력에 부족함이 없어야 하구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치료받고 일상에서 투쟁하며 살고 있는 우리 환자들을 기억하며

저도 최선을 다해 진료하고 공부하는 의사가 되겠습니다.

 

책상 가득 쌓인 환자들의 선물과 마음을 볼 때마다 다짐합니다.

정성껏 써주신 카드와 편지를 볼 때마다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