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고단한 엄마를 도와주세요

슬기엄마 2013. 1. 2. 22:39

 

그녀는 십년도 더 전에 최초 유방암을 진단받았고

그로부터 몇년이 지나 전이성 유방암을 진단받았으며

그로부터도 이미 수년이 흘렀다.

항암제, 항호르몬제, 방사선치료, 이 치료 저 치료를 돌아가면서 했다.

치료하면 좋아지고, 또 시간이 지나가면 나빠지기를 반복.

암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적용하게 되는 대부분의 치료 방법을 시도해 본 것 같다.

그녀의 CT 사진을 보면 '헉' 깜짝 놀란다.

이렇게 여기 저기 병이 있다니, 몸이 괜찮나? 통증은 심하지 않으신가? 걸음은 제대로 걸으시나?

 

그러나 깔끔하게 화장하고 가발쓰고 단정하게 가꾸어 옷 입고 외래에 오신 모습을 보면 더 놀란다.

그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이 사람이란 말인가?

겉으로 보기엔 너무 멀쩡하다.

 

 

어디 불편한 곳 없으세요?

 

아이고, 제가 참아야죠. 항암치료가 어디 쉬운 건가요?

 

별 불평과 증상 호소가 없으시다. 나도 그러려니 했다. 견딜만 하신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착한' 환자였다.

병이 나빠지고 약을 바꾸고 진통제를 늘려도

밝게 웃으려고 노력하고 열심히 치료하겠다고 다짐하던 그녀가

오늘은 보기 드물게 표정이 어둡다.

 

(지금 환자는 매주 병원에 와서 젬자를 맞고 있다. 오늘이 13주기 시작하는 날이다. 젬자를 이렇게 오래 맞으면 기운이 없고 백혈구 수치도 많이 떨어진다.)

 

오늘 표정이 않좋으시네요. 무슨 일 있으세요. 지금 치료가 힘드신가요?

 

치료야 원래 힘들죠.

 

그동안 저한테 별 말씀 안 하셨잖아요.

 

그냥 말 안한거에요.

내 병때문에 힘들고 아픈거 말해서 뭘 해요. 내가 견뎌야죠.

 

오늘은요?

 

밥 하고 김장하고 시장보러 다니고 그런거 이제 너무 힘들어요.

 

젬자 맞으면서 힘드실거에요. 가족들이 좀 도와줘야죠. 집안일 좀 하지 마세요.

 

아무도 안 도와줘요. 삼시 세끼 밥 차리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냥 차려주지 마세요.

 

내가 안차려주면 남편도, 아들도 다 밥을 안 먹어 버려요.

 

환자 편을 들려고 내가 말을 할수록 환자 복장이 터진다. 결국 환자는 못참고 눈물을 뚝.

 

누구나 가족의 사랑과 격려와 배려를 받으며 치료받는 건 아니다.

가족이 나를 서운하게 해도 병든 내가 죄인이지 싶어서 힘든 척을 더 못하기도 한다.

힘들어도 티 못내고 남들 아내, 엄마처럼 해야할 일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에게도

자기 아쉬운 말 못하고

꿋꿋하게 참고 강한 척 하고 내색없이 살아왔는데

이제 더 이상 견딜 힘이 없나 보다.

 

괜히 내가 그녀 마음에 돌을 던진 것 같다. 아무것도 못해주면서 상처만 들쑤신것 같다.

가족들 한번 병원에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오늘 그녀의 표정과 마음 상태를 보면 그런 말을 꺼낼 분위기도 못 된다.

 

치료 한주만 쉴까요?

 

 

그녀를 그렇게 보냈다.

 

마음으로 기도한다.

 

고단한 엄마를 좀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