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나도 믿을 수가 없을 때

슬기엄마 2012. 12. 26. 17:46

 

암은 몇일만에 나빠지는 병이 아닙니다.

첫 진단이든 재발이든 진단을 받고 나면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서두르는 환자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너무 치료를 서두르다가

미처 점검하지 못한 사항들이 생겨서 돌다리에서 미끄러지는 수가 있으니

저는 몇일간의 시간을 확보하여 검사도 하고 환자 상태를 안정적으로 점검한 후

치료를 시작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너무 급하게 서두르다가 낭패를 보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 시점에 진단되어서 그렇지

몸 안에서의 나쁜 변화는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이미 수개월 전부터 혹은 수년 전부터 있었을가능성이 높습니다.

암은 유전자 변화에서부터 시작되는 병인데 

이러한 변화는 몇일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양적인 변화가 축적되어 있다가 어떤 순간에 질적으로 전환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CT나 영상 검사로 눈에 보이는 것만이 병의 전부가 아니고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변화는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는 시간부터 악성세포로 변화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한 변화의 초기 싸인을 잡아내고 위험요인이 있는 환자에서 그러한 변화를 막는 것이 앞으로 암을 예방하는 치료 전략이 되겠지만 이러한 노력은 아직 연구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자연 과학의 발전 속도가 예상치 못하게 빠르니, 좋은 연구 성과가 나오기를, 나 또한 그런 대열에서 연구하는 한 사람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여하간

암은 이렇게 순식간에 변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속성인데

드물게는

정말 몇 일 사이에 놀라운 속도로 나빠지는 환자도 있습니다.

 

수술 전 항암치료를 하면서 매 싸이클 많이 좋아져서 기뻐하던 환자. 말 그대로 '어느날 갑자기' 다시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는 병원에 올 때까지의 몇일이 지나는 동안 유방의 병이 나빠지면서 수술을 할 수 없는 정도로까지 순식간에 병이 진행되었습니다. 지난주 표적치료제를 포함한 병합요법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일주일만에 병원에 오신 환자의 유방을 보니 일주일 전보다 더 나빠졌습니다. 이럴수가. 표적치료제를 쓰면 대개 몇번의 치료 기간 동안은 급격한 호전을 보이는게 일반적인데...

 

방사선 치료를 하면서 부은 팔도 가라않고 3-4회 치료 후 통증도 조절되었습니다. 환자는 병을 진단받고 처음으로 좋아진 셈입니다. 그동안은 항암치료를 했다하면 다음 싸이클 시작하기 전에 병이 다시 나빠지기를 반복했습니다. CT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피부 병변이 놀라운 속도로 번져가기도 했습니다. 흔한 종양의 성격이 아닌 같습니다. 그렇게 잠깐 좋아지던 병이 주말을 지나면서 다시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환자 팔의 통증이 조절이 안되고 폐에도 급격하게 물이 차기 시작합니다. 치료계획을 미처 세우기도 전에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자궁암이 복강 내에 재발했는데, 재발을 확인하고 수술을 기다리는 2주 동안 종양이 커지고, 수술로 완전히 다 제거되지 않아 방사선 치료를 추가로 하기로 했는데 수술 후 2주 사이에 또 종양이 커지고 방사선치료를 하고도 완전치 않아 항암치료를 하려고 한 2주 사이에 또 종양이 커집니다. 환자는 복강 내 커지고 있는 종양 때문에 소변과 대변 보는 것도 편치 않습니다. 보통의 자궁암은 이렇게 빨리 나빠지는게 아닌데...

 

난치성 암.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지식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연구계획서를 준비해 볼까 합니다.

유방암 환자 중에도 드물게 이런 환자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환자를 위해 공부 열심히 해서 연구계획서를 쓰고 연구비를 따서

연구 좀 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