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그녀의 세번째 시집

슬기엄마 2012. 12. 14. 15:57

 

 

뇌로 전이된 후 수술을 하고도 한동안 말이 어눌하다. 생각보다 회복이 늦다.

두 번째 뇌 전이다. 

처음 유방암은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첫 재발은 지금으로부터 5년전.

그때는 재수술을 하여 완치를 노렸건만

3년전 폐로 재발하였다.

그렇지만

전이성 유방암 첫 치료로 꽤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치료가 잘 되던 중이었다.

뇌전이가 있었지만 감마 나이프 하고 2년 이상 안정적으로 잘 지냈다.

그러던 중에 소뇌로 크게 전이가 되어 그녀도 나도 많이 놀랐었다.

 

신경외과에서 수술을 받은 후 회복하고 온 외래.

 

선생님, 나 쓸 약은 있어요?

나 이러고도 살 수는 있으려나?

 

그녀를 보는 내 마음이 철렁하다.

그녀는

힘들고 무섭고 절망스러운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면서도

사람 운명이라는게 하늘의 뜻 아니냐는 낙천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 조차 무슨 말 한마디를 꺼내기가 힘든데

자기가 먼저 열심히 치료해 보자고 나를 격려(!)한다.

이 환자에게는 뭔가 안정감이 있는 것이 느껴진다.

 

타이커브와 젤로다를 먹으니 손발이 엉망이다. 입꼬리 주위도 자꾸 헌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걸음걸이도 좋아지고 발음도 정확해지고 혼자 멀리서 기차타고 병원도 다닌다.

 

지난 3주 동안 별 일 없으셨어요?

 

그만그만해요. 견딜해 해요.

 

많이 좋아지셨네요.

요즘엔 평소에 뭐하면서 지내세요?

 

다시 시 쓰고 있어요.

머리에 방사선 치료를 받았더니 정신이 없어요. 시가 잘 안써져요.

 

시요?

 

네.

저 원래 시 좀 썼어요. 그냥 아마추어에요.

 

그래요? 그럼 쓴 시 좀 보여주세요.

 

다음 주기에 온 그녀는 두권의 시집을 선물로 주고 간다.

한 권은  복사물 수준, 한권은 제법 편집을 해서 시집 같다.

동우회 회원 몇 명이 함께 묶어 낸 책이다.

 

차 한 잔 하자구요

 

차 한 잔 하자구요

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 되던가요

발끈하지 말고 가슴을 열어

크게 한번 웃자구요

 

차 한 잔 하자구요

모든 괴로움 커피잔에 담아서

넘길 땐 뜨거워도

눈 한번 질끈 감고

호르르 마셔버리자구요

 

차 한 잔 하자구요

침묵은 금이라지만

수다가 최고의 명약

편안한 휴식으로 마음의 무게 내려놓자구요

 

 

그녀의 톤 그대로다.

그냥 자기의 마음을 옮긴 것 같은 시다.

그녀는 나에게도 이런 식으로 말한다.

이 시를 쓸 무렵 그녀는 전이성 유방암 첫 치료를 받던 시기이다.

그녀는 치료를 하면 반응이 좋다. 그런데 완치되지는 않는다.

그녀는

적당히 지쳤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치료하고 있다.

낙관적, 낙천적이라는 표현과는 약간 다른 느낌, 주어진 상황을 받아 들이면서, 상황을 극복하려고 너무 애 쓰는 것도 아니고, 자포자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흐르는 강물처럼 가는 것 같은 사람이다. 그렇게 조용한 사람이다.

 

다음에 오실 때는 세번째 시집을 가지고 오시기로 했다.

 

내 시 어때요?

 

그렇게 묻는 그녀에게 대답을 못했다. ㅎㅎ 다음에는 꼭 대답을 해 드려야지.

 

시를 쓰는 그녀, 멋지다.

그 시가 무엇이든, 시를 쓰는 행위 자체, 삶을 그렇게 살아가는 그녀가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