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이 환자가 약 먹는 법

슬기엄마 2012. 12. 10. 18:32

 

72세 할머니.

수술 후 2년만에 수술부위와 주위 목 림프절로 재발이 되었다.

재발된 위치는 대개 유방 근처인것 같지만

엄밀하게 병기를 따지면

목 근처 림프절은 원격전이의 위치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이성 유방암으로 보는게 맞다.

 

다행히 컨디션이 좋으신 편이라

광범위하게 시행한 유방 및 근처 림프절 절제술을 잘 견디셨다.

일단 급한 불은 껐다.

 

그렇지만 이후 항암치료를 추가적으로 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했다.

할머니는 삼중음성유방암이라 항호르몬제를 쓸 수 없다.

할머니 컨디션이 좋고 씩씩하셔서 나는 할머니에게 항암치료를 해보자고 했다. 항암치료에 대해 가족과 상의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필요없다고 하신다. 내가 이렇게 정정한데 내 목숨을 왜 자식들하고 상의하냐며.

 

할머니는 이미 2년전에 아드라이마이신과 탁소텔을 다 쓰신 상태다. 삼중음성 유방암이니 플라티눔 계열을 포함하여 탁솔/카보 이렇게 해보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죽어도 머리 빠지는 항암치료를 안하시겠다고 한다.

이 나이에 무슨 낯으로 머리까지 빠져가면서 항암치료 하냐고,

남보기도 부끄럽고,

그렇게까지 살고 싶지않다고 하신다.

 

머리카락 안 빠지면 항암치료 하실거에요?

그럼 생각해볼께.

 

할머니는 1주일간 생각보시기로 했다.

 

그리고 먹는 항암제 젤로다를 시작하였다.

 

오늘은 젤로다 4주기.

다행히 3주기 후 찍은 CT는 깨끗하다. 안심할 수 없어 매번 외래에서 할머니 유방과 목 근처를 유심히 만져본다. 할머니는 진찰실에 들어오자마자 윗옷을 훌러덩 벗고 나에게 잘 살펴보라고, 잘 만져보라고 호령이시다.

할머니는 수족증후군과 구내염이 매우 심한데도 잘 견딘다.

머리 빠지는 것보다는 낫다며

이 약 맛있다 맛있다 노래하면서 드신다고 한다.

갯수가 너무 많아서 한알 먹고 물 한컵 마시고 한알 먹고 물 한컵 마시고

그렇게 한끼 약을 먹고나면 물배가 너무 부르다고 한다. 그래도 한끼도 한빼먹고 드시고 있다.

수족증후군 때문에 내가 용량 감량을 설명했더니, 용량도 줄이지 말라고 하신다. 아직 견딜만 하시다고.

할머니는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배가 불러서 도저히 못 먹겠을 때, 약을 씹어먹기도 한다고 하신다. 세상에 항암제를. 씹어먹어도 약동학적/약력학적 효과가 유지되는 걸까? 생각도 못해 본 주제다.

 

항암제 치료를 하는 동안에는 고기 단백질을 많이 드시는게 좋다고 했더니

자기는 치아가 않좋은데 어떻게 하냐며, 고기도 않좋아하는데 어떻게 하냐며 툴툴거리시다가

급기야 고기를 다 갈아서 우유에 타서 드시고 있다 하신다.

오마이갓!

 

할머니, 6주기까지 잘 견딜 수 있겠어요?

 

그럼, 지금까지도 잘 견뎠는데 뭐.

근데 이렇게 하면 완치되는거야?

 

...

네.

...

좋은 결과가 있을 거에요. 분명히.

 

할머니의 호령에 비해

내 목소리를 그다지 우렁차지 못하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아니,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할머니, 힘내세요, 화이팅.